인연 아닌 사람은 있어도 인연 없는 사람은 없다
묘장 지음, 소리여행 그림 / 불광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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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로>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 회기역 연화사蓮花寺 주지인 묘장 스님은 이 책에서 ‘인연’과 ‘생명’이란 주제를 통해 삶의 지혜를 우리들에게 전하려 한다.


(사진, 책표지)


책은 세 개 파트, 즉 ‘후회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고 인연에 의해 사라진다’, ‘끝없이 넓은 세계와 나와 남이 조금도 떨어져 있지 않다’라는 소제목하에 총 38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연因緣


<능엄경>은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보리심을 얻고 진정한 경지를 체득하는 걸 강조하는 경전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인 아난의 스캔들이 소개된다. 그는 부처님을 곁에서 모신 시자侍者로 용모가 출중했다고 알려진다.


하루는 홀로 탁발에 나섰던 아난이 목이 말라 강가에서 물 긷는 여인에게서 물을 얻어 마셨다. 아난의 뛰어난 외모에 홀딱 반한 여인은 귀가해서 어머니에게 생떼를 부렸다. 첫 눈에 운명의 짝임을 느꼈다며 아난과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여인의 어머니는 인도의 하층 계층인 ‘마등가摩登伽’라는 비천한 집안 출신이었는데, 딸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기에 아난을 집으로 초대해 공양을 올리고 딸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아난은 수행자이므로 결혼은 불가하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에 이 어머니는 주술을 부려 아난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부처님이 급히 문수보살을 보내 아난을 구한다. 뒤이어 아난을 찾으려고 마등가 여인은 절 안 곳곳을 뒤지다가 부처님을 마주친다.


부처님은 이 여인에게 아난처럼 삭발하고 출가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잘 생긴 아난의 부인이 될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부처님이 아난의 외모가 모두 좋아 보이겠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예쁘지도 않고 오히려 더럽다고 부정관不淨觀을 설법하자 마침내 마등가 여인은 애욕愛慾을 버리고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사진)


생명生命


불교에서 행하는 의식 중에 ‘방생放生’이 있다. 이는 죽을 위기에 처한 생명을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선한 행위이다. 한국불교에선 예전부터 물고기 방생을 많이 해왔다. 지금도 그 전통의 맥이 이어져오고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오히려 낚시꾼의 밥이 되게 하는 살생이라고 비난하는 이도 있다. 이는 그 본질을 왜곡하는 뒤집힌 생각인 셈이다. 이를테면 <반야심경>에 나오는 귀절인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을 떠올리게 한다. 잘못을 저지른 이는 따로 있는데 이를 꾸짖지 않고 엉뚱하게 피해자를 꾸짖는 셈이 된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성추행이 발생했을 때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어서, 밤늦게 다녀서 등을 거론하며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을 탓하는 경우와 같다.


물론 생태교란종으로 평가받는 물고기를 풀어 준다면 우리들이 오래토록 즐겨야 할 자연환경을 훼손하는 일로 오히려 비난받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일로 인해 방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실수는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지만 막무가내식으로 본질을 흐리는 지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진, 불교의 방생 의식)


#불광출판사서포터즈빛무리 #인연이아닌사람은있어도인연없는사람은없다 #나는절로 #묘장스님 #불교 #인연 #사랑 #독서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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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는 고기 살 돈만 있으면 된다면서요 - 초보 농사꾼의 고군분투 영농기
김영화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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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삼년상을 치르는 마음으로 시작한 농사였습니다. 이제는 여리여리한 레이스 가득한 옷보다 고무줄 바지가 더 잘 어울리고, 흙이 묻어도, 벌레가 옷깃에 붙어도 별것 아니라는 듯 툭툭 털어냅니다. 진드기마저 익숙해졌습니다. 동물들이 싸고 간 똥을 봐도 찌푸리지 않고 거름 생겼다며 좋아하는 여유를 부립니다. 호미, 괭이, 삽 등 연장 보기를 백화점 명품 보듯 합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저자 김영화는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깊은 산골에 살고 있다. 감, 호두, 벼농사까지 하는 억척스런 아가씨 농사꾼인데 시골에서의 삶을 사랑하며 농사를 통해 얻게 되는 땅의 언어를 글로 옮기고 있다. <농민신문> 영농생활수기 공모에 당선된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책은 겨울, 봄, 여름, 가을이라는 농사꾼의 사계절로 구성되어 소한 추위는 꿔다가라도 한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 하지를 지나면 발을 물꼬에 담그고 잔다, 입추 나락 크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등의 소제목으로 계절별 농사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겨울 이야기를 첫 번째로 넣은 것은 겨울은 농사를 끝내고 쉬는 농한기農閑期가 아니라 오히려 농사를 시작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벼농사를 짓는 논은 잘린 볏짚이 흙과 잘 섞이도록 갈아엎어 놓아야 하고, 과일을 맺는 나무들은 가지치기 작업을 마쳐야 한다.

바람과 햇빛과 물 등 환경을 잘 읽어야 하고, 꾸준히 보아야 모든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아직 생계형 농사는 꿈도 꾸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풀인지, 작물인지 조금씩 알게 되고 농사가 손에 익어 간다. 땅으로 맺은 인연으로 기쁘고 소중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가씨 농사꾼의 이야기를 들춰본다. 

겨울 

겨울은 추워야 한다. 이 표현은 내가 어린 딸자식을 훈육할 때 늘 사용하던 말이다. 물론 농사꾼과 일반인의 의미가 동일하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어린 딸 둘은 아빠를 지독한 꼰대로 보았을 것이다. 경상북도 한 시골에서 성장한 나는 추운 겨울철도 무척 좋아서 실컷 즐겼다. 농사는 머슴 형이 하는 일이라 그 시절의 난 편안한 시골생활의 연속이었다. 일보다는 노는 것에 푹 빠져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손을 호호불며 꽁꽁 얼어붙은 못에서 스케이트를 타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이렇게 탐닉하다 결국엔 손에 동상이 걸려 무척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무튼 농사꾼의 생각은 역시 다르다. 춥지 않으면 겨우내 죽어야 할 벌레들이 이듬해에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겨울은 농사일을 준비하고 시작하는 계절이라서 봄이 다가오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살충, 살균해야 할 일들이 산적하다. 아가씨 몸으로 이많은 일들을 하느라 땀 흘리는 모습이 눈에 선한다. 

3월이 오기 전에 감나무, 호두나무에 기계유제를 살포한다. 기계유제의 기름 성분이 해충의 숨구멍을 막아 해충을 방제하는 효과가 있다. 나무의 새순과 꽃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4월 초순경 사용하게 되면 꽃이 피지 못하거나 수정이 되지 않고 세력이 약해지는 등의 약해藥害가 발생할 수 있어 반드시 3월이 오기 전에 방제를 마쳐야 한다.

커다란 물통에 500리터 물을 받아놓고 18리터 기계유제를 혼합한다. 그러고는 전기식 분무기를 꺼내와 약을 치려는데 기계가 너무 조용하다. 분무기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호스가 들어가는 곳에 균열이 가 있다. 대안으로 텃밭에서 사용하는 밀차식 엔진분무기에 휘발유를 넣고 시동을 걸어 보는데 아무리 시동줄을 잡아당겨도 이것도 시동이 안 걸린다.
 
하필 일요일이라 대부분의 농기계 수리센터가 쉬는지라 고칠 수도 없다. 기계유제는 물과 혼합해 놓으면 빨리 사용해야 하므로 정말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할 수 없이 손잡이가 있는 플라스틱물통에 기계유제를 담아서 작은 바가지로 퍼서 나무마다 다니며 뿌렸다. 불어오는 바람에 기계유제들이 흩날리며 골고루 뿌려진다. 물론 처녀 농사꾼도 기계유제를 뒤집어쓴다.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서야 살포작업은 끝이 났다. '다음부터는 기계 점검부터 먼저 하자'고 다짐해본다. 아무튼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이처럼 너그러워지는 법이다.

여름

농사꾼 아버지는 예초기보다는 낫으로 풀을 베었지만 날카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처녀 농사꾼은 낫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예초기 사용법을 배워 틈틈이 예초 작업을 하였다.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와 진동, 휘발유 타는 메케한 냄새를 벗삼아 풀을 베었다. 

사실 난 예초기 작업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다. 고등학생 때 추석을 앞두고 가족 산소에 벌초작업을 나갔다가 예초기를 돌리던 사촌 자형이 악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움켜 잡고 나뒹굴었다. 예초기에 돌이 튕겨 하필 눈을 강타했던 것이다. 산에서 내려와 응급차를 타고 병원에서 도착했지만 이미 한쪽 눈은 복구 불능상태였다. 무척 나와 가깝게 지냈던 자형은 평생 한쪽 눈을 실명한 상태로 지내다가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었다.   

자고 일어나니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는다. 어떤 날은 손바닥과 손가락이 연결되는 관절 부위에 통증이 오고, 손가락은 뚱뚱하게 부었다. 손가락을 펴거나 구부리려고 할 때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손가락이 튕기듯 펴지곤 했다. 며칠 고민 끝에 찾은 병원에서 방아쇠수지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생전 처음 들어본 병명이다. 예초기나 드릴처럼 반복적으로 진동하는 기계를 만지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많이 발생하는 증상이란다. 이후 통증을 완화하려고 스키장갑을 끼고 작업을 했더니 손등에 땀띠가 났다고 한다. 무더운 여름철에 스키장갑이라니.

가을

소牛처럼 일을 하는데도 수익이 일정하지 않아 계획성 있게 살기가 쉽지 않은 게 농사꾼의 삶이다. 농사가 잘되어도 언제 어떻게 가격이 폭락할지 아무도 모른다. 자연재해와 기후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수요와 공급이 들쭉날쭉해서다.

이 대목에선 신혼 살림을 시작한 조카가 경남 말양에서 토마토 하우스 농장을 해보겠다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호기롭게 억대 농부를 꿈꾸며 농사꾼이 되었던 일을 소개해 본다. 농촌진흥원에서 필수 교육도 이수하고 차근차근 준비했지만 그 꿈은 결과적으로 이상에 그치고 말았다. 기후 변화로 인한 생산량도 문제였고, 판로 또한 걱정거리였다. 

비닐하우스에서 생산된 토마토의 상등품만 조합에서 매수하므로 출하가 안되는 토마토의 판매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나는 그해 여름 조카 농장에서 토마토를 구매해 입에서 냄새가 날 정도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농사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억대 농부의 노력은 실로 엄청난 것이리라.    

그럼에도 저자는 '농사가 묘한 매력이 있다'고 옹호한다. 즉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슴이 뛰고 설렌다는 것이다. 여성이라 그런지 감수성만큼은 갑이다. 제철 작물을 심고 가꾸며 수확하는 일을 이어가면 보이지 않는 많은 소비자들이 함께 동행해 주므로 비록 육체노동의 가치가 폄하되고 농민의 삶이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흘린 땀과 노력은 정직하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이다. 

농사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농사란 봄에 씨앗을 뿌려 여름을 김을 매고 가을에 추수를 하는 단순한 공식이 적용되는 게 아니다. 농사꾼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행복하게 사는 그런 형편도 아니다. 여름이면 태풍이 몰아쳐 과수 농사를 망치고, 겨울이면 폭설로 인해 비닐하우스 작물 재배가 엉망이 되기도 하는 불확실한 자영업이다. 나의 조카는 억대 농사꾼의 꿈을 중도에 접었지만 충청도 산골 처녀 농사꾼의 밝은 미래를 계속 응원하고 싶어진다.

#에세이 #시골에서는고기살돈만있으면된다면서요 #김영화 #초보농사꾼 #학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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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왈도 에머슨이 저술한 자기신뢰를 읽고 있어요. 아직 이 도서 [초역 자기신뢰]가 등록 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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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의 시대 - 치열하게 살았는데 왜 이토록 허무한가
조남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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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당신은 ‘삶의 변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분이라면,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도대체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위해 여러 인문학, 철학 책들을 읽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 이야기들은, 좋은 말이지만 ‘영감’ 정도로 끝났을 것입니다. 삶에 흡수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철학서이면서 실용서입니다. 당장 실천하게 만들어줄 책입니다. 실제 삶을 변화시켜줄 수 있는 책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조남호는 라이프코드 대표로 지금까지 여러 콘텐츠와 강연을 통해 '목적주의 탈출, 충만주의 회복'이란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네이버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가'란 주제에 대한 솔루션을 만들자는 목표로 퇴사했다.


총 3개의 파트에 걸쳐 12개 장으로 구성된 책은 조남호 저자의 강연 콘서트 <공허의 시대>를 책으로 확장한 결과물이다. 이 강연 영상은 3시간이 넘는 재생에도 불구하고 누적 조회수 310만 회를 기록하며 청년들 사이에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책은 충만한 삶을 위한 새로운 인생철학을 제안한다.


목적주의란 무엇인가?


누구든 자신의 삶에 대해 허무한 감정을 가질 때가 있다. 나 또한 그러했다. 다람쥐 챗바퀴 도는 듯한 직장생활에 지쳐 '과연 이렇게 살면 어떤 미래가 나를 반길까?'라는 불안한 의구심이 생겼었다. 그 시절 직장인은 누구나 마치 기계처럼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 늦게까지 일하면서 오직 출세만을 목표로 삼았던 듯하다. 하지만 이 목표가 자신의 뜻대로 순탄하게 이루어지기보다는 도중에 쓰라린 실패의 맛을 보게 만든다는 거다. 이 헛헛한 마음이 바로 허무감 아닐까 싶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밤, 자려고 누웠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 적이 있을 겁니다. '아. 이렇게 사는 게 의미 있는 삶인지 모르겠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쎄하게 퍼지는 거대한 허무함. 그런 감정이 간혹 좀 찝찝한 정도로 지나가는 사람도 있고, 인생이 불행할 지경으로 극심한 공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아마 조금씩 정도는 달라도 모두가 느낀 적 있을 겁니다." 


이처럼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서다. 이를 저자는 '목적'이라고 명명한다. 하루일을 마치고 퇴근해서 잠자리에 누워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큰 의미나 가치를 부여할 정도로 뿌듯한 마음이 들지 않으면 그 목적에 많이 미달하다고 느껴서 그러하다. 이런 목적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 '목적주의'이며 이를 아래와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사진, 목적주의 도식)


그런데, 책은 '목표'와 '목적'은 다르다고 지적하면서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살펴보자. 목표는 쉽게 말해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고 편한 것'으로 예컨대 '1년에 해외여행 다섯 번'이라고 계획했지만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이를 달성하지 못해 불만족스럽더라도 결코 내 인생이 비참하다고는 느끼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이처럼 목표는 그저 단순 지표와 같다. 반면, 목적은 '내 삶의 이유'와 연결되므로 이를 성취하지 못하면 '헛 산 인생'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헛 산 인생'일까? 목적주의를 추구한다면 '제대로 산 인생'일까? 목적주의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이 드는 건 나 뿐일까. 잘 세운 목적을 향해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심지어 남들이 좋다는 방법으로 바꿔가면서 하루하루 온 힘을 다했지만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오히려 남는 건 자책감과 허무감이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목적주의 도식은 애초에 인간의 삶에 맞는 공식이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즉 '목적주의'라는 삶의 기준이 완전히 허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이다. 


한편, 철학자들은 수천 년에 걸쳐 '인간이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절대적인 의미, 절대적인 목적은 존재할까?'에 관해 질문을 가져왔다. 하지만 철학자들의 오랜 탐구 활동 결과, 하나의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즉, 인간은 이러이러한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철학자는 없다. 


또 진화를 연구해온 진화학의 가장 큰 오해는 '인간이 지구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진화했다'는 명제이다. 인간이 마치 두 발로 서기 위한 '목적'을 위해 노력하고 진화해온 것일까? 아니다. 인간은 우연의 산물이자, 생존의 결과일 뿐이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바로 '인생의 목적 같은 건 애초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인류가 수천 년간 탐구해온 결과라는 것'이다. 


계획이란 그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또 '작심삼일'이란 말이 있듯이 성취해보겠다는 의지 또한 허상일 뿐이다. 동기부여도 마찬가지다. 그때 뿐이다. 잠깐 불타오르다가 이내 불꽃이 사그러들기 때문이다. 그렇다. 앞서 살펴본 목적주의 도식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의 본성을 고려치 않은 허점투성이인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목적을 세우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삶, 즉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고 싶어서다. 그러나 그 목적은 달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노력의 영향력은 겨우 최대 30%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통제불가능한 변수들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는 말이다. 이런데도 목적주의에 집착한다면 이는 거의 도박과 마찬가지이다. 목적 달성 또한 허상이다. 


충만주의란 무엇일까?


이에 저자는 오류와 허점투성이인 목적주의에서 탈피해 충만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렇다면 충만주의란 뭘까? 특별한 목적도 없이 어떤 일에 몰입했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저 일에 깊게 빠져들었을 뿐인 상황인 것이다. 몸은 다소 피곤할지라도 마음만큼은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가득 찬 느낌이 든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는 우리 모두 잘아는 유명한 격언이다. 목적주의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을 법한 말이다. 내일 사라질 판에도 불구하고 나무 심기에 올인하는 삶이라니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이미 목적 없이도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낀 적이 있다. 이럴 때엔 이유 없이 충만했음을 느낀다. 삶을 100%로 살고자 하는 바람은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가장 근원적인 의지이다. 


(사진, 잘 살았음을 느끼는 원리) 


“내 삶에 없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대신, 지금 내 삶부터 제대로 충만하자. 삶은 삶으로 채운다.” 이것이 삶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을 때 대전환되는 공허함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자 대응 방식이다. 목적주의와 충만주의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어디에 두는지를 아래 사진이 잘 보여준다. 



(사진, 목적주의 vs 충만주의)


지금껏 우리들은 거창한 뭔가가 있어야 의미 있는 삶이 가능하다고 믿어왔다. 예를 들면 일에서의 거창한 성공, 공부에서의 압도적인 성취, 꿈의 실현 등등. 그래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게 쉽지 않을 거라고 비관하기 일쑤였을 것이다. 

충만주의는 그런 우리를 혁신적으로 구원해줄 수 있다. 거창한 것만이 아닌, 그 어떤 경험에서도 내 삶의 의미와 가치감을 회복할 수 있다는 논리적 증명이니까. 심지어 우리가 사소하게 여겼던 일상 경험으로부터 이를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아주 가까이, 늘 곁에 있었던 일상으로부터 의미와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 이젠 거창한 뭔가를 찾아 헤매는 걸 멈추자.


놀라울 뿐이다. 충만주의는 여태 꿈꾸지도 못했던 의미와 만족으로 가득한 삶을 내 현실에서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반면에 목적주의는 아무리 자기계발하고 성장하고 성취해도, 결국 공허하고 무너지는 삶을 반복하게 만들 것이다. 이처럼 인생관을 바꾸는 것 하나로 내 삶은 크게 달라진다. 가히 인생 혁명인 셈이다.


내 삶의 르네상스를 맞이하자


정리하자면 목적주의 인생관대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키지 못한다. 결국 다수가 행복하지 않은 ‘공허의 시대’에, 내 인생을 위해 기꺼이 ‘충만한 소수’가 되자. 비록 충만주의는 학문적인 철학 이론이 아닐지라도 현실적인 인생철학이다. 이제 내 삶의 르네상스를 맞이하자.


#공허의시대 #조남호 #라이프코드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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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뇌과학 -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설명하는 뇌의 숨겨진 작동 원리
엘리에저 J. 스턴버그 지음, 조성숙 옮김, 박문호 감수 / 다산초당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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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이끄는 ‘신경 논리(neuro-logic)’가 존재한다. 이 신경 논리를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논리 시스템의 암호를 해독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력과 출력을 관찰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논리 시스템을 만드는 뇌의 시스템이 무엇인지도 찾아보아야 한다. 우리 내부에 있는 소프트웨어의 암호를 해독하는 것은 신경학과 정신의학 연구에, 인간관계와 상호작용 연구에, 그리고 인간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 '서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엘리에저 J. 스턴버그는 신경의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이며, 과학 전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뇌 연구를 통해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인간의 인지과정을 탐구한다.  젊은 과학저술가로 선정되기도 했고 <워싱턴포스트>, <파이낸셜리뷰>, <월스트리트저널> 등 다수 매체에 칼럼을 기고했다. 

총 여덟 개 파트로 구성된 책은 무의식이 지각을 만들어내는 방식, 의식 없이 작동하는 무의식의 루틴, 운동과 감정을 연결하는 뇌의 시뮬레이션, 기억과 감정 및 자아를 만드는 뇌의 서사, 초자연적 믿음고 환각이 생겨나는 이유, 조현병 환자에게 환청이 들리는 이유, 최면 살인은 가능한가?, 자아의 분열과 통합을 둘러싼 무의식의 전략 등을 차례로 설명한다. 

잠재의식 깊은 곳에는 보고 듣고 느끼고 기억하는 모든 것을 조용히 처리하는 시스템이 있다. 우리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동안 감각정보는 수없이 뇌로 쏟아져 들어가며 융단폭격을 한다. 영화 편집자가 영상과 녹음 기록을 모으고 정리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민들어내듯이 뇌의 기본 논리 시스템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지각을 조합해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인생 경험과 자의식으로 발전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선

꿈 연구자로 널리 알려진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 존 앨런 홉슨은 뇌줄기가 신경세포를 무작위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꿈을 꾸는 것이라는 이론을 세웠다. 즉 뇌줄기에서 내보낸 신호는 시상으로 전해지고 시상은 이 신호를 여느 시각 신호와 똑같이 처리한다. 시상은 단지 신호를 시각겉질로 보내는 역할만 할 뿐이다. 

시각겉질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시상에서 보낸 신호가 무더기로 도착한다. 질서도, 체계도 없이 뒤죽박죽이다. 그런데, 시각겉질은 시상이 보낸 정보는 전부 눈을 통해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각겉질은 저장된 지식과 기억을 이용해 서로 다른 신호 조각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 통일된 시각적 장면을 만들려고 애쓴다. 그 시각적 장면은 우리가 경험하는 꿈이다.  

뇌는 최선을 다해 이야기를 만든다. 뇌의 무의식계는 패턴을 찾아내고, 다음 패턴을 예측하며, 맥락의 실마리를 이용해 불완전한 그림의 빈틈을 메우는 뛰어난 재주가 있다. 어쩌면 이런 활동이 총체적으로 작용해 무의식이 수신한 누더기 신호를 바느질해 꿈속 풍경으로 엮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사고, 기억, 두려움, 바람으로 맞춰 이은 조각보가 우리의 정신을 차지하고 가끔은 은유적인 이야기까지 탄생하게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의 꿈은 대체적으로 꽤 기괴한 편이다. 

무의식에 운전석을 맡길 때

딴생각에 깊게 빠진 운전자는 운전을 했다는 의식적 경험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빨간색 신호에서는 멈추었고 신호를 받아 좌회전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자동조종장치 상태에서 운전한다. 자칫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에서는 깜짝 놀라 얼른 정신을 차리고 브레이크를 세게 밟는다. 그는 우편트럭을 불과 몇 센티미터 앞에 두고 끼이익 소리를 내며 급정차한다. 

운전자는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잠시 부주의했기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잠깐이 아니라 훨씬 심각한 수준으로 멍하니 운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는 운전하는 내내 자신이 완전히 다른 데 정신을 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멍한 상태에서 운전하는 것은 앞을 보지 않고 운전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운전 중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연구도 이런 부주의 운전자의 생각을 확인시켜 준다. 한 연구에서 피험자들은 이어폰을 끼고 통화를 하면서 시뮬레이션 운전을 했다. 시뮬레이션 상의 지도 프로그램으로 잠시 연습한 후 도로교통법을 준수하며 미리 정해진 경로를 운전했다. 운전하는 내내 이어폰을 끼고 통화를 게속했다. 피험자들은 도중에 보았던 옥외광고판을 찾아내는 다지선답형 문제를 풀었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정신이 팔렸던 피험자들은 운전에만 집중한 피험자에 비해 정답률이 형편없이 낮았다.

뇌는 기억을 편집한다

기억은 상호연결되어 있는 탓에 시간이 지날수록 변할 여지가 있다. 뇌는 특징이 비슷한 기억을 연결하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건들을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뇌는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그 사건들을 재구성할 수 있다. 기억은 촘촘하게 얽힌 이야기처럼 나름의 방향과 관점을 갖고 잇으며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다.

우리의 개인사는 우리의 자아상을 만들고 저장된 지식을 모은다. 무의식계는 기억을 암호화하면서 우리의 인격도 형성한다. 무의식은 비디오카메라처럼 경험을 있는 그대로 담지 않는다. 대신 무의식은 그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이 맡은 역할에,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에 집중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 오면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그 순간의 감정은 무엇인지, 무엇을 기대하고 두려워하는지, 그 순간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에 대한 맥락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맥락을 바탕으로 뇌는 초고를 쓰기 시작한다.

수면과 각성의 틈

신경학자들이 수면마비(가위눌림)라는 신비한 현상에 대해 알게 된지 한 세기가 지났다. 램수면 동안 근육이 마비되고 가장 생생하게 꿈에 빠져든다. 잠에서 깬 순간 중요한 두 가지 변화가 생긴다. 첫째, 의식이 완전히 돌아온다. 둘째, 마비된 상태에서 벗어나 근육을 컨트롤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학계에서는 수면마비를 겪는 사람이 인구의 8퍼센트 정도라고 추산한다. 미국만 해도 2000여만 명이 평생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수면마비를 경험한다. 증상의 심각성은 사람마다 다른데, 대다수는 수면마비 시간이 고작 몇 초이고 더 이상 길어지지 않아 환각까지는 경험하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불안감이 심한 사람일수록 수면마비 동안 낯선 존재가 옆에 있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수면까지 그대로 이어진 스트레스는 쉽게 잊히지 않을 환각을 더 무서운 것으로 바꾼다. 약한 형태의 사회 공포증인 사회적 이미지 기능장애가 있는 사람도 수면마비가 오면 환각에 빠질 가능성이 더 높다. 사회적 이미지 기능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항상 자신을 주목하고 재단한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은 수면마비가 찾아오면 외계인이 자신을 실험하고 몸에 무언가를 찔러 넣는 것 같은 환각을 더 심하게 느낀다.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최근 저자 부부는 코네티컷주 미스틱 시포트에 여행을 갔다가 한적한 거리 끝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했다. 창문에는 딸기가 토핑된 와플콘 사진이 붙어 있었고 나무로 만들어진 가게 간판은 바람에 앞뒤로 흔들렸다. 가게를 보는데 익숙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 느낌이 굉장히 강했던 탓에 저자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여행하면서 이 가게에 온 적이 있었다고 아주 자신만만하게 말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주 주말에 아버지는 우리 가족이 코네티컷에는 가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지만 왜 그런 느낌이 들었을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장소에서 굉장히 낯익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무의식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최면이 할 수 있는 일

무대 최면술사는 관객 가운데 자원자를 뽑아 그에게 최면을 걸어 당혹스럽고 희한하고 웃기기까지 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저자의 친구가 자원해서 성공적으로 최면에 걸렸다. 어느 순간 최면술사는 그 친구에게 매가 방금 공연장으로 들어와 우아한 포즈로 날개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친구는 보이지 않는 새를 눈으로 좇으며 경이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면술사의 말이 이어졌다.

“매가 다시 날아올라 방금 당신 머리에 앉았어요.” 

친구는 공포에 얼어붙었다. 그의 눈은 관중을 향했다가 자기 이마로 향하기를 반복했고, 그 상상의 동물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있는 모습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관객은 웃었지만 친구는 신경쓰지 않았다. 최면술사는 한 단계 더 나아갔다. 

“매가 다시 날아올라 당신 셔츠 안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친구는 얼굴이 시뻘게지고 식은땀을 흘리며 공격자를 물리치려고 난리를 피웠다. 그러다 그의 셔츠가 절반 정도 찢어졌다. 마침내 최면술사는 매가 멀리 날아갔다고 말해주었다. 최면이 끝난 후 친구는 자신의 눈에는 관객도, 새도 모두 뚜렷하게 보였으며 정말로 매와 벌인 싸움을 믿는다고 맹세하듯이 말했다. 어쨌든 최면 상태는 그로 하여금 공연장에 있지도 않았던 생물체를 인식하고 사투까지 벌이게 만들었다.

무의식계의 역할

무의식계는 단편으로 끊어진 경험 조각들을 끌어와 필요하면 빈틈을 메우고 우리의 인생사를 순서대로 배열한다. 무의식계는 우리의 자아의식을 구축한다. 또한 자아의식을 보호하고 유지하며, 심지어는 분열까지 이용해 나쁜 생각과 기억을 몰아낸다.

진화적 관점에서 말하면 자기숙고를 하는 유기체일수록 생존 확률이 높다. 우리는 생존을 중요시하며, 자신과 후손을 보호한하는 데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다. 뇌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온전히 유지해 주기에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통찰할 수 있다. 뇌의 도움으로 자신의 의도를 이해하고 곰곰이 추론하고, 결정을 심사숙고하고, 목표와 욕구에 딱 들어맞는 행동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뇌가 건강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유지하는 일에 특히 중점을 두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뇌의 바탕에 깔린 논리 회로는 우리가 깨어 있는 매 순간 쌓은 경험을 흡수하고 빈틈없이 조사한다. 인간의 정체성을 성숙하게 만들고 개선하기 위해서다. 깨어 있는 시간뿐만 아니라 매일 밤 꿈을 꾸는 동안에도 무의식이 골몰하는 목표는 같을 수 있다.

과학의 역사에는 블랙박스 취급을 하며 미스터리라고 선포하는 것들이 종종 있다. 연구자들이 알맞은 연구 틀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올바른 질문을 해야 한다. 발견으로 향하는 길은 무엇을 찾아보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뇌가 의식계와 무의식계로 되어 있다는 생각은 의식의 신비를 밝히는 답이 되지 못한다. 

단지 여정의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누군가가 이미 알려진 지식의 연장선을 연구하는 데 매진하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블랙박스를 열어보려 애를 쓸 수도 있다. 그는 정해진 틀을 벗어나 생각하고 언뜻 듣기에는 괴상한 질문도 서슴없이 할 것이다. 뇌 연구가 발전할수록 블랙박스를 파헤치는 여정도 계속되어야 한다. 이제 빈틈을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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