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은 세상의 흐름과 사회 분위기, 그 시대 사람들의 공통적인 사고와 감정을 가장 세밀하고 빠르게 반영하며 전달할 수 있는 좋은 문화수단이다. (중략) 팝 음악의 영향력에 관한 가장 극적인 이야기는 1950~1960년대의 미국과 1960년대의 영국에서 있었다. - '책을 펴내며' 중에서

책의 저자 방석인은 PC통신 천리안 시절 '올드팝 동호회'를 개설해 국내에 많은 올드팝 애호가들에게 팝의 인문학을 소개하고,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팝 음악의 자문을 아까지 않았다. 또 네이버 밴드 '재미있는 세계사'와 '추억의 올드팝'을 운영하고 있다.
책은 팝 음악과 관련 가수들을 소개하는데, '두 개의 이름으로, 리샹란李香蘭 혹은 야마구치 요시코山口淑子의 야래향夜來香'부터 '맥(Mac), 오(O')가 붙은 아일랜드인의 성姓'까지 총 70가지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미국 대중음악의 여러 장르 중에서 가장 전달력이 높은 요소들이 결합하며 1950년대 초반에 탄생한 로큰롱은 젊은이들의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되면서 1950~60년대 反문화운동의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다. 로큰롤은 음악에 대한 세상의 개념을 바꿨다. 그동안 어떤 정치적 행위나 문화적인 방법으로도 송공시킬 수 없었던 일들을 로큰롤이 해냈다.
1960년대 초반, 영국의 밴드들이 미국 시장에 본격 진출하면서 세계 음악 시장에 새로운 흐름이 나타났다. 비틀즈로 대표되는 브리티시 인베이션은 미국 중심의 대중음악 시장 구도에 충격을 주었고, 영국 대중음악이 세계 음악 문화를 선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던순히 음악적 유행을 넘어서, 영국은 청년 세대의 감성, 패션, 언어, 사고방식까지 수출했고, 영국 청년 문화 전체가 세계 무대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후 수십년이 지난 오늘날, 이와 유사한 흐름이 다시 한국에서 일어났다. K-팝은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기획과 연습 시스템, 팬덤 문화, 소셜미디어 활용까지 결합한 복합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개별 밴드의 창의성과 독창성에 기반한 자연 발생적 확산이었다면, K-팝은 철저히 계획되고 조직된 사업 시스템 중심의 문화 수출 전략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21세기 K-팝은 비영어권 대중음악의 성공 사례로, 21세기 팝 음악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야래향夜來香
난 '예라이샹'이란 중국식 발음으로 이 노래를 많이 들은 기억이 난다. 야래향이란 이름의 식물은 낮에 꽃봉오리가 닫혀 있다가 밤이 되면 꽃이 피고 엄청난 향기를 내뿜는다. 그래서 나도 '모기 퇴치 효과'가 있다길래 꽃시장에서 구입해서 아파트 거실에 두고 관리했던 적이 있다.
이 노래는 대만 출신 가수 덩리쥔鄧麗君(1953~1995년)이 불러서 크게 알려졌지만 1944년 처음 부른 가수는 중국 랴오닝성에서 출생한 일본인 여성 리샹란李香蘭(1920~2014년)이다. 아버지가 직장 때문에 중국으로 이주했던 일본인이고, 어머니 또한 일본인이었다.
일본은 1932년 3월에 '만주국'이란 위성국가를 세우고 국가의 건국이념인 '오족협화五族協和'(한족, 일본인, 조선인, 만주족, 몽골인 등의 협치)를 실현하기 위한 홍보가 필요했다. 베이징어와 일본어에 능통한 예능인으로 적합한 인물이 바로 리샹란이었다.
1941년 2월 11일, 일본 건국 기원절을 기념하고 민주국과의 친선을 도모하고자 기획된 '일만日滿 친선 노래사절단'의 일환으로 리샹란의 공연이 도쿄에서 이틀간 열렸다. 이 쇼를 보려는 관객들이 크게 몰리면서 그 인파가 극장 주위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돌았다고 알려진다.

(사진, 7바퀴 반 현장)
아사히신문사는 동아시아 최고 스타인 리샹란이 사실은 일본인이라는 특종을 터뜨릴 준비까지 했다고 알려진다. 아사히는 인파로 인해 보도용 차량 몇 대가 파손까지 당하자 오히려 복수를 하듯 신랄한 비판기사를 실었다. 아무튼 일본인이란 기사까지 났음에도 일본인 대부분은 중국 여성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그녀의 신세는 크게 변해 '중국인이면서 중국을 모독하고 간첩 활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총살형을 당했다는 기사까지 나오기도 했지만 1946년 2월 초라한 부랑자 행색으로 일본으로 향하는 귀국선을 어렵게 탔다. 아이로니하게도 아때 선내 스피커에선 자신의 히트곡 야래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귀국 당시 26세로 일본에서 가수로 활동하기 충분한 젊은 나이였지만 '야마구치 요시코'란 일본 활동명의 인지도가 높지 않아 오히여 배우로 미국 헐리우드에 진출했다.
로큰롤의 시대, 풍요했던 미국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은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1950년대 미국은 계급 평등화가 이루어진 사회였고 경제, 사회, 문화 등에 있어서 전성기를 누렸다. 1955년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 테마파크 '디즈니 랜드'가 개장했지만 소련과 극심한 냉전 상태라서 불안도 공존했다.
미국경제가 대호황기임에도 경제적 기회에서 소외되어 이에 동참하지 못하던 이탈리아계, 그리스계, 히스패닉계의 청년들은 대부분 가난한 동네에서 살며 주로 패션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삶의 즐거움을 찾았다. 포마드나 바셀린을 머리에 바르고 빗질한 헤어스타일과 리바이스 청바지와 가죽 재킷 등의 패션스타일 등을 추구하며 제임스 딘, 말론 브랜도, 엘비스 프레슬리 등의 스타일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스타일은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청년들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49년 미국에서 음반을 구매하는 인구의 3분의 1은 21세 이하의 젊은이였다. 1950년대 10대들이 주요 음반 수요층으로 등장하면서 매년 레코드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다. 레코드의 매출은 1억 8900만 달러(1950년)에서 6억 달러(1959년)로 대폭 증가했다.
로큰롤은 기성세대에 의해 형성된 질서에 대한 반항심을 드러냈다. 로큰롤의 세계적 확산은 45회전 싱글 음반과 값이 싼 휴대용 라디오의 보급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휴대용 라디오 와 건전지가 시판된 시점이 1954년이다. 이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혼자 들을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엘비스 프레슬리(1935~1977년)는 1956년 1월 내슈빌에 위치한 RCA-빅터 녹음실에서 몇 곡의 노래를 녹음했다. 이중 '하트브레이크 호텔'은 팔맂; 않고 재고로 쌓였다. 엘비스는 TV 출연과 콘서트를 통해 십대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결국 '하트브레이크 호텔' 싱글 음반은 빌보드 톱 40에서 1위, 칸트리 차트 1위, 리듬 앤 블루스 차트 1위를 휩슬며 RCA-빅터 전체 음반판매량의 5분의 1을 차지했다.
1960년대의 브리티시 인베이전
클래식 음악의 전통이 다른 유럽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부하지 않았던 영국은 20세기 미국의 대중음악을 수용하는 데에 있어 더 개방적이었다. 대영제국의 최전성기였던 빅토리아 여왕(재위기간 1837~1901년) 시대의 사회적 전통은 20세기에도 이어져서 대부분의 청년들은 이를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다고 느꼈다. 이때 미국에서 로큰롤이 수입됐고 비틀즈가 나타났다.
재즈와 포크, 컨트리 음악들을 조금씩 절충한 '스키플'의 큰 장점은 배우기 쉽다는 점이었다. 멜로디와 듬이 쉽고 단순해 간단한 기타 코드 몇 개만 연주할 수 있다면 누구나 밴드를 만들어 연주할 수 있었다. 1956~1957년 사이 영국 전역에 5천 개 이상의 스키플 밴드가 만들어졌다. 리버풀 청소년 사이에서도 크게 유행했다. 비틀즈의 시작도 바로 스키플 밴드였다.
비틀즈의 멤버들이 태어나 성장한 힝구 도시 리버풀은 19세기 대영제국 전성기 시절엔 세계무역 물동량의 절반 가까이가 항구를 통해서 전 세계로 나갔다. 그 이전엔 세계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유럽 내 최대 미 공군기지였던 버튼우드와 가까이 있었다. 이를 통해 미국문화와 최신 유행 음반이 함께 들어와 리버풀의 주류문화에 바로 연결됐다.
링고 스타의 의붓아버지는 미국에서 들여온 만화책과 음반을 꾸준히 보여주었고, 미군을 쫓아다니던 존 레넌의 어머니는 많은 최신 음반을 수집할 수 있었다. 영국 라디오 방송에서 로큰롤을 듣기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리버풀 청년들은 쉽게 이를 들을 수 있었다. 리버풀을 흐르는 강인 '머지'와 비트를 합친 '머지비트'는 미국에서 건너온 로큰롤에 영국의 감성이 더해진 음악이었다.
1962년 2월 7일, 역사적인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시작되었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고 11주 후에 4명의 비틀즈 멤버들이 미국 케네디 공항에 도착했다. (사진) 3천명이 넘는 팬들과 2백명이 넘는 취재진이 공항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진화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노래를 통해 웃고, 울고, 기억하고, 싸운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LP를 대신하고, AI가 가사를 쓰는 시대가 되었지만 음악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본질적이다. 지금 시대의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K-팝과 보이그룹 BTS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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