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로 빚은 인문학
박운석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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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는 우리 전통주의 맛과 멋을 알리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이미 잘 알려진 매력 외에도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전통주가 지닌 인문학적 가치를 발굴하고 알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우리 전통주가 같은 발효주인 와인이나 맥주와 비교해 더 뛰어난 술임을 실제 사례를 통해 알려준다. - 머리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박운석은 한국발효술연구원 원장이다. 우리 술의 대중화와 교육에 힘쓰는 전문가로 활발한 저술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대구일보에 '박운석의 우리 술 이야기'를 연재 중이며, 매일신문에 '박운석의 전통주 인문학', '박운석의 수제맥주 이야기'등을 연재하기도 했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선조들의 술 문화(1부), 이야기의 보고, 전통주(2부), 고문헌 속 전통주 이야기(3부), 전통주의 오늘과 내일(4부) 등을 통해 최근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K-푸드 발전을 위해선 K-술과의 결합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우리 전통주가 세계에 널리 알려질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다.


술자리에서 풍류를 배운다


술은 그 나라의 정치 수준까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적 척도라 했다. 옛 선조들은 술을 마시는 데도 불문율을 지켜 왔다. 일종의 주도酒道인 풍류風流였다. 풍류는 함부로 웃통 벗어 제끼고 박장대소하며 소란을 떨면서 노는 게 아니라 멋스럽고 풍치 있게 노는 일이다. 


그렇다고 잘 노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문과 예술적 소양까지 갖추어야 풍류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엔 풍류가 생활의 주요 영역이었다. 자연 속에서 술을 마시며 시詩, 서書, 금琴을 즐겼다. 이때는 당연히 선비들의 술 문화가 음악과 그림이라는 문화를 생산하는 모태가 되었다.

윤선도는 “술을 마시되 덕이 없으면 난亂하고, 주흥을 즐기되 예를 지키지 않으면 잡雜되기 쉬워 술을 마실 때에는 덕과 예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고, 조지훈은 “술에 취하지 않고 흥興에 취하기를 즐긴다. 오욕칠정의 잠재된 모든 감정을 술로 풀려는 것은 술의 사도邪道”라고 했다. 


이처럼 술 때문에 생기는 폐해를 막고 예를 바로 세우기 위한 방안도 있었다. 향촌의 선비와 유생들이 향교, 서원에 모여 학덕과 연륜이 높은 이를 주빈으로 모시고 술을 마시는 행사인 향음주례鄕飮酒禮였다. 하지만 향음주례는 1905년 일제에 의해 사라졌다. 1895년, 조선을 되살리기 위해 전국의 유생들이 향음주례를 핑계로 세 규합에 나섰고, 이는 의병 활동으로 이어졌다. 결국 일제는 이를 금지시켜 버렸다. 


금주령의 두 얼굴

영조는 말년에 다리가 아파서 고생을 했다. 이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송절차松節茶 덕분이었다. <영조실록>엔 송절차를 마시고 나서부터 걸어다닐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송절차는 송절주다. 소나무 가지 마디를 채취해 말린 다음 빚은 술이다. 송절은 관절통, 신경통을 완화시켜 준다고 알려져 있다.


송절주를 굳이 송절차로 부른 것은 이유가 있었다. 영조는 재위 기간 대부분 금주령을 내렸다. 쌀을 주원료로 술을 빚다 보니 백성들이 먹을 식량도 부족한데 술을 마신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영조는 술을 ‘사람을 미치게 하는 광약’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대신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경계하도록 했다. 


강력한 금주령을 발동했던 영조도 재위 후반부엔 조금씩 느슨해졌다. 1767년 종묘제례에 감주가 아닌 술을 사용토록 허용했다. 이런 조치 배경엔 스스로 금주를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송절주를 송절차로 위장하기보다 대놓고 맘 편하게 들이키고 싶었을 것이다.


전통주는 이야기의 보고寶庫

<고려대규합총서>엔 술맛이 아름답고 사나움으로써 주인의 길흉을 안다고 하였고, 술맛이 시고 나쁘면 주인집에 근심이 생긴다고 했다. 예전엔 양반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 모시고,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었다. 


중국 전국시대의 맹상군, 평원군, 신릉군, 춘신군 등 네 공자公子(군자)도 별채에 食客들을 불러모아 이들에게 술과 음식을 제공하는 한편 이들이 보유한 기술과 정보를 활용했음이 사마천의 <사기>에도 수록되어 있다.


당시엔 곳곳에서 모여드는 손님들이 중요한 소식통이자 돈 되는 최신 정보를 가진 정보원이었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접하다 보니 항상 앞서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당연히 술맛이 나빠지면 과객이 줄고, 최신 정보도 얻을 수 없으니 주인집엔 근심이 생기는 것이다.


술 빚기는 과학이다

우리 전통주는 발효주이다. 발효를 잘 시켜야 맛 좋은 술이 되고 잘못 되면 시큼해서 쉰 내가 풍긴다. 여기에 바로 과학이 숨어 있다. 전통주 빚기에 물누룩인 수국水麴을 만드는 과정엔 과학이 들어 있다. 단양주單釀酒를 빚을 때 사용하는 수국은 누룩을 사용하기 전에 물속에 3~5시간 담가 둔다. 바짝 말라 있는 누룩 속 미생물을 미리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알코올을 만들어 내는 누룩 속의 효모는 본격 활동에 앞서 8시간 정도의 잠복기를 거친다. 이 시기가 술 빚기에서 외부 잡균에 노출될 수 있는 가장 취약한 시기다. 결국 수국을 만드는 이유도 이 잠복기를 줄여 효모가 더 빠르게 알코올을 만들어 내게 하기 위해서다.


쌀을 다양한 방법으로 가공해서 술을 빚는 것도 술의 맛과 향을 다양화하고 좋게 하는 방법이다. 밑술을 죽이나 범벅, 떡 등의 방법으로 빚어 술의 맛과 향을 살려 놓고, 마지막 덧술에 고두밥을 넣어 주어 알코올 도수를 올려 준다. 하나의 술을 만드는 과정에 여러 가지 쌀의 가공 방법을 써서 다양한 풍미를 내는 것이 우리 전통주의 매력이다. 


전통주의 적정음주량?

국립청주박물관에는 조선 선조 대의 정치가이자 문인이었던 송강 정철(1536~1593)이 선조에게 하사받은 은술잔이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은술잔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는 술을 너무나 좋아했고, 술 때문에 구설이 잦아 반대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많이 받았다. 이에 선조는 그에게 은술잔을 하사하면서 하루 석 잔만 마시라고 명했다. 그러나 어명을 어길 수 없었던 그는 술잔을 두드려 크기를 늘린 후 사용했다고 한다. 가히 술꾼다운 발상이다.


당시 식사 때 반주로 마시는 술도 한두 잔이었다. <동의보감>에 전하는 적정 음주량 석 잔, 선조의 어명인 하루 석 잔, 반주로 마셨던 한두 잔도 정확한 측정치는 없지만 아마도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하루 적정 음주량 이내였지 않을까 싶다.


혼자 마시는 술, 동정춘

책에 수록된 동정춘 빚는 법을 보면 쌀 11㎏에 물은 불과 1L만 쓴다. 물을 거의 넣지 않고 단맛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술을 빚기 때문에 술맛은 많이 달다. 실제 ‘꿀보다 달다’고 기록해 뒀을 정도다. 워낙 단맛이 강해 전통주 강의 교육 과정에서 동정춘 빚기를 실습할 때는 『임원경제지』 레시피 절반의 쌀을 사용한다. 쌀 6㎏에 물 1L를 쓴다는 뜻이다. 쌀의 양을 절반 정도 줄였지만 발효가 끝난 이후 술의 단맛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단맛만 강하다면 좋은 술이 아니다. 동정춘은 쌀과 누룩, 그리고 극히 적은 양의 물만으로 빚는 술이지만 완성된 술은 다양한 과일 향과 꽃 향도 품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통주 교육을 받은 분들이 수시로 교육원에 와서 동정춘을 빚는다. 수업 중 실습으로 만들었던 동정춘의 맛과 향이 너무 강렬해서다. 발효실에선 또 다른 팀이 빚은 동정춘이 익어 가고 있다. 3개월 교육 과정 중 매주 여러 종류의 술을 빚었으면서도 유독 동정춘에 끌리는 모양이다.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우리 술

요즘은 냉장고에 보관하던 술을 꺼내서 차게 마신다. 맥주도, 와인도, 막걸리도, 증류 소주도 그렇게 한다. 그런데, 술의 온도가 너무 차가우면 그 술의 향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다. 술맛도 날카롭다. 사실상 이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10%~14%로 높고 단맛이 강한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온도가 15℃ 정도일 때 마셔야 향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차가울 땐 맥주의 향을 전혀 알 수 없을뿐더러 맛이 날카로운데, 온도가 올라갈수록 향이 살아나고 맛도 부드러워진다. 냉장고에서 금방 꺼내서 마실 때와 한 시간쯤 지나고 맥주 자체의 온도가 올라갔을 때 맛과 향은 천지차이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식 소주는 술의 온도가 상온에 가까울 때 마시는 게 좋다. 그래야 높은 도수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알코올 향을 부드럽게 느낄 수 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은 밥을 담은 식기의 뚜껑에 증류 소주를 따라 마시던 추억을 가끔 이야기한다. 뜨거운 밥을 담았던 식기의 뚜껑에 차가운 소주를 부으면 적당하게 따뜻한 상태로 온도가 올라가 소주의 향과 맛이 확 살아나게 된다. 맛과 향이 좋아질뿐더러 추운 날 혈액 순환을 돕는다. 콩나물 해장국과 함께 마시던 모주도 그렇고, 퇴근 때 오뎅을 안주 삼아 마시던 히레사케도 그러했다. 


#전통주 #우리술 #전통주로빚은인문학 #박운석 #학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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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카브리니 - 세상 가장 낮은 땅에 희망의 제국을 일구다
시어도어 메이너드 지음, 고정아 옮김 / 니케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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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프란체스카 카브리니는 중국에 선교를 가고 싶어헸고, 성심선교수회 역시 중국을 염두에 두고 세웠다. 스칼라브리니 주교가 프란체스카에게 그보다 뉴욕의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먼저 돕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을 때 그녀는 뉴욕도 미국도 자신에겐 너무 좁을 뿐, 전 세계 또한 좁다고 답했다.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가세요, 수녀님"


프란체스카가 레오 13세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야심을 드러냈을 때 운명이 결정되었다. 흰 예복을 입고 흰 모피로 가장자리를 두른 진홍색 망토를 걸친 노교황老敎皇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에 교황을 올려다보는 그녀에게 부드럽게 말했다.프란체스카가 거칠면서도 섬세한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그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사진, 카브리니의 어린 시절 모습)


위대한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들이 첫걸음엔 실수하는 게 흔하다. 프란체스카 카브리니의 시작도 예외는 아니었다. 8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녀의 어린 시절 꿈인 선교사와 그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들 즈음 지역 사제의 부탁으로 한 공립 학교에서 2주간 임시 교사를 맡았으나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 처음이라 언니에게서 배운 엄격한 훈육 방식으로 임했다. 

그런데, 봉사자 신분이었던 프란체스카와 달리 돈을 벌 목적으로 일자리를 원했던 여자들은 취업 기회를 놓치자 '엄격함'을 비난의 구실로 삼았다. 그리고 부당하게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고까지 비난했던 것이다. 프란체스카의 첫 실수는 교실에서의 경직된 태도였다. 

또 프란체스카는 가톨릭 금욕주의를 신봉하며 침대가 아닌 나무판자에서 자느라 건강이 더욱 나빠졌다. 당시 교구 사제 세라티 몬시뇰은 그녀를 눈여겨보다 성심수녀회에 지원하려는 걸 알고 자신의 사업에 쓸 목적으로 원장 수녀에게 건강이 나쁘다는 정보를 흘리며 거절하도록 유도하는 교활한 방법을 사용했다. 결국 프란체스카는 입회를 거절당했다. 이후 이같은 작전이 밝혀졌지만 프란체스카에겐 최선의 결과를 안겨 주었다. 

세라티 몬시뇰의 목표는 교구의 고아원 시설인 '섭리의 집'을 개혁하고자 프란체스카를 이곳에 묶어두려 했다. 그럼에도 프란체스카는 자신의 계획을 기꺼이 포기하고 고아원 시설을 개선하는 일에 참여했다. 이는 수녀로서의 진정한 수련이었다.      

프란체스카는 섭리의 집의 수녀가 되기로 한 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낼지 모르는 가운데 자신만의 진정한 선교 수녀회를 만든 셈이다. 다른 방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섭리의 집은 괴짜 수녀 안토니아 톤디니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아주 부적합한 이름이었지만, 진실로 섭리가 지혜와 힘과 사랑을 보여준 집이었다.


(사진, 책표지)

만일 성인聖人이 화를 낸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그를 성인이라고 지칭했을 때다. 그는 신과 자신의 긴밀한 관계를 알 수도 있지만 아무리 가까워도 거기 만족하지 않는다. 이 생에서는 이룰 수 없는 더 큰 완전함이 언제나 저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성인은 한순간이라도 자신이 성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는 프란체스카 카브리니에게 꼭 들어맞는 사실이었다. 누가 프란체스카의 지인에게 "그분이 성인인 걸 아셨습니까?"하고 물으면 몇몇은 아주 솔직하게 대답할 것이다. "아뇨, 전혀 몰랐어요. 물론 정말로 훌륭한 분, 친절한 분이라는 건 알았습니다. 하지만 성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프란체스카는 이 대답에 만족했을 사람이다. 그녀는 항상 평범하게 보이려고 애를 썼다.

프란체스카 카브리니는 고독과 묵상을 갈망하는 사람이었지만 맹렬한 활동 역시 그녀의 기질에 맞았으리라는 생각이 들 법하다. 마더 카브리니에게 잠재되어 있던 커다란 에너지와 실행력은 기회만 있으면 발현될 수 있었다. 물론 이 모두를 신이 하사했을지도 모른다. 프란체스카는 오직 소명에 순종해서 선교수녀회의 장상 자리를 받아들였고, 그 직무를 맡아 이토록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은 그녀를 수줍고 예의 바른 시골 교사로만 알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사진, 마더 카브리니의 관)

성인으로 가는 길

프란체스카 카브리니는 생전에도 당대의 모든 교황에게 성인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레오 13세는 실제로 그녀를 성인이라 불렀고, 베네딕토 15세-1889년에 프란체스카가 미국에 가져간 교황 훈령을 작성한 델레 키에사 몬시뇰-는 그녀에게 성령이 충만하다고 말했다. 비오 10세는 그녀를 복음의 진정한 사도라고 불렀다. 

#에세이 #종교에세이 #성인 #마더카브리니 #가톨릭인물 #미국최초의성인 #시어도어메이너드 #니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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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시대 이야기 울림 2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마이너스 옮김 / 해밀누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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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시대'라는 이름은 스콧 피츠제럴드 자신이 명명한 시대의 이름이다. 이는 주로 1920년대 미국의 사회, 문화, 경제적 격변기를 일컫는 용어였다. '표효하는 20년대'라고도 불린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종전 직후부터 1929년 뉴욕 대공황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짧지만 격렬했던 황금기였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이 소설의 저자 피츠제럴드는 미국 태생으로 제1차 세계대전 참전 후 출판계로 방향을 돌려 <낙원의 이쪽>(1920)을 발표하며 일약 문단의 스타가 되었다. 소위 '잃어버린 세대'의 대표적 인물로 부상한 그는 제2차 산업혁명 이후 번영을 구가하던 미국 사회의 허영과 낭만, 그리고 몰락의 정서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재즈 시대 이야기>는 저자의 문학적 개성과 시대 인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단편집인데 3부(마지막 플래퍼들, 환상들, 분류되지 않은 걸작들) 에 걸쳐 젤리빈, 낙타의 등, 메이데이, 도자기와 분홍색,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행복의 앙금, 산골소녀 제미나 등 총 11편의 단편소설을 싣고 있다. 

마지막 플래퍼들

또한 이 시기엔 플래퍼가 등장했다. 단발로 머리를 짧게 자르고 직선형의 짧은 드레스를 입고, 공개적으로 춤을 추고 담배를 피우는 젊은 여성들은 전통적 여성상을 거부하며 여성 해방의 상징이 되었다. 라디오와 영화, 광고 산업이 일상을 바꾸며 도시가 팽창했고, 젊은 세대는 과거의 윤리보다 현재의 쾌락을 더 중시했다. 

'젤리빈'이란 말은 옛 남부 연합 지역에서 '한평생 게으름이란 동사를 1인칭으로 활용하며 사는 사람'을 뜻한다. 즉 '나는 빈둥거린다. 나는 빈둥거려왔다. 나는 앞으로도 빈둥거릴 것이다'라는 식으로. 북부 사람들의 무심한 표현을 빌리자면 '거리의 한량閑良'이었다. 

짐 파월은 젤리빈이었다. 짐은 초록빛 모퉁이에 서 있는 하얀 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싸움 중에 총상을 입고 죽었는데, 당시 짐은 고작 다섯 살이었다. 이후 하얀 집은 한 여인이 운영하는 하숙집이 되었다. 짐은 그녀를 '메이미 아주머니'라고 불렀는데, 매우 싫어했다. 

열여덟 살에 전쟁이 터지자 해군에 입대해 찰스턴 해군 조선소에서 일 년 동안 놋쇠를 닦았다. 브루클린 해군 조선소에서 또 일 년 동안 놋쇠를 닦았다. 전쟁이 끝난 스물한 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동네의 한 정비소 위층에 방 하나 얻어 지내며 오후엔 차 손보는 일을 도와주며 지내고 있었다. 

4월 어느 저녁, 파티 초대를 받았다. 마을 최고의 인기남이자 짐의 같은 반 친구 클라크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컨트리클럽 파티에 초대했다. 짐은 여자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무도회장 구석의 외딴 소파에서 구경만 하는 조건으로 클라크와 함께 파티장에 들어갔다.   

"그곳엔 다 모여 있을 것이다. 그 옛 무리들, 오래전에 팔려나간 하얀 집과, 그 벽난로 위에 걸려 있던 회색 군복 차림의 장교 초상화로 보건대, 짐 역시 본래는 그 무리에 속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무리들은 소녀들의 치맛자락이 해마다 조금씩 길어지고, 소년들의 바지가 어느 날 갑자기 발목까지 내려왔던 것처럼,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단단한 소집단으로 자라났다. 

이름만 부르면 다 통하는 그 친밀한 사회, 이미 잊힌 첫사랑들로 엮인 그 작은 세계 속에서, 짐은 철저한 외부인이었다. 가난한 백인들과 어울려 다니는 사람. 남자들은 그를 알고 있었지만, 언제나 약간의 우월감이 섞인 태도로 대했다. 그가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여자아이들은 세 명, 많아야 네 명. 그게 전부였다." - '젤리빈' 중에서


(사진, 젤리빈) 

재즈 시대는 1920년대와 1930년대 초 재즈 음악과 댄스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시기다. 이는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아프리카계系 미국인 문화에서 유래해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엔 연 평균 9%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며 호황기를 누렸던 미국에선 중산층이 증가함에 따라 자동차가 대대적으로 보급된 '마이카 시대'가 열렸다.  

'젤리빈'은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남부의 젊음을 짐 파월이란 인물을 통해 재즈 시대의 도취와 허무를 보여준다. 이어서 작품 '낙타의 등'은 낙타로 분장한 남자의 우스꽝스런 오해 속에 사랑과 체면이 뒤엉킨 희극이며, '메이데이'는 1차 세계대전 후 혼란에 바진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상류층의 환락과 퇴역 군인들의 절망이 교차하는 모습을 그린다. '도자기와 분홍색'은 욕조 속의 한 여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도발적인 희곡극을 보여준다. 

영화에 출연해도 결코 손색이 없을 만큼 매력적인 여성 베티 메딜은 톨리도 태생의 스물여덟 살 변호사 페리 파크허스트를 사랑했다. 그리고 또 사랑하지 않았다. 너무 즐거운 인생을 보내고 있었기에, 결혼이라는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그들의 비밀 약혼은 이미 너무 길어져 언제든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작은 키의 남자 워버튼이 페리를 부추겼다. 

“그녀에게 초인처럼 굴어! 혼인 허가증을 받아서 메딜 집에 가. 지금 당장 결혼하자고 하든가, 아니면 영원히 끝내버리라고 말해!” - '낙타의 등' 중에서

전쟁은 승리로 끝났고, 승전국의 거리는 개선문으로 가로질러졌으며 흰색, 붉은색, 장밋빛 꽃들이 뿌려져 환희로 물들었다. 길고 긴 봄날 내내, 귀향한 병사들은 둥둥거리는 북 소리와 유쾌하고 울려 퍼지는 금관악기 소리를 뒤따르며 주요 도로를 행진했다. 그동안 상인들과 사무원들은 말다툼과 계산을 멈추고, 창문으로 몰려나와 창백한 얼굴로 밀집해 지나가는 군대를 엄숙하게 바라보았다. - '메이데이' 중에서 


(사진, 고든 스테릿의 권총 자살)

환상들

이 파트는 네 개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리츠 호텔만큼 큰 다이아몬드'는 엄청난 부富를 감추고 있는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 미국식 욕망과 허영을 상징하는 탐욕과 파멸을 다룬다. '벤저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어려지는 벤저민 버튼의 생애를 통해 인생의 아이러니와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일깨워주는 우화이다. 

이어서 '치프사이드의 타르퀸'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런던의 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쫓기는 친구를 숨겨주면서 벌어지는 풍자극이다. '오 루셋 마녀!'는 평범한 서점의 점원인 멀린 그레인저가 평생 한 여인을 멀리서 바라만보다가 기회를 놓치고 마는 이야기다.

나는 벤자민 버튼이 열두 살에서 스물한 살 사이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길게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그 시절은 ‘정상적인 역성장’의 세월이었다는 것만 기록해두면 충분할 것이다.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벤자민은 마치 쉰 살 남자처럼 꼿꼿했다. 머리숱은 더 많아졌고, 색깔은 짙은 회색으로 변했다. 걸음걸이는 단단했고, 목소리에서는 더 이상 노인의 떨림이 사라지고 건강한 바리톤의 울림이 났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를 코네티컷으로 보냈다. 예일대 입학시험을 치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벤자민은 시험에 합격했고, 신입생으로 등록되었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중에서


(사진, 벤저민 버튼)


분류되지 않은 걸작들


마지막으로 이 파트엔 세 편의 단편 작품이 소개된다. '행복의 앙금'은 사랑과 시련 속에서도 끝내 남겨지는 감정의 잔향殘香을 그린, 깊은 여운을 남기는 비극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미스터 이키'는 世俗化된 가족과 물질만능 사횔를 향한 풍자를 담은, 이키 가족의 기묘한 희극이며, '산골 소녀 제미나'는 격렬한 집안 싸움에 휘말리는 산골 소녀와 도시 남자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룬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그녀를 돌봐주고 싶어 미칠 남자들이 한둘이 아닐 거에요.” 실제로 그랬다. 여기저기서 어떤 남자들은 그녀에게 다가왔다. 희망으로 시작해 경외심으로 끝났다. 그녀의 마음에는 사랑이 없었다. 단, 이상하게도 ‘삶’에 대한 사랑만은 남아 있었다. 세상 사람들에 대한, 거리에 나앉은 부랑자에게 나눠주는 빵 한 조각에서부터, 그녀에게 싼 고기를 건네는 정육점 주인에게까지 닿아 있는 사랑이었다. 다른 형태의 사랑은 이미 봉인되어 있었다. 그것은 늘 빛을 향해 고개를 돌린 채, 마치 나침반 바늘처럼 움직이지 않는 시신 속 어딘가에 묻혀 있었다. 그는 그저 마지막 파도가 심장을 덮칠 때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 '행복의 앙금' 중에서 



다시 피츠제럴드를 읽는 이유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위대한 개츠비'가 그랬던 것처럼, 그가 묘사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리듬이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욕망, 허무, 그리고 사랑과 상실은 시대를 초월한 것으로 같은 박자를 연주한다. 그가 남긴 문장들은 지금도 재즈처럼 우리들 내면에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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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거인 한의빌더
김석욱 지음 / 좋은땅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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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가치에만 집중합니다. 그러한 태도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 긍정적인 가치를 위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 내야 하는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성공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정작 필요한 건 눈앞의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건데, 저 멀리 있는 신기루 같은 성공만을 바라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김석욱은 작은거인 한의원 대표원장이다. 그는 소심했고, 자신감이 없었고, 노력하지 않았으며, 인내심도 없는 아이였다.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말도 붙이질 못했고, 공부와 운동은 커녕, 아침에 눈을 뜨면 그저 게임을 할 생각밖에 없었다. 무엇 하나 진득하게 할 줄 몰랐다.


총 2부로 구성된 책은 작디 작은 내 인생(1부)에선 저자를 둘러싸고 있는 부정적인 상황에 관해, 작은 거인을 만든 가치관(2부)에선 부정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인 저자의 생산적인 실천 과정에 관해 여러 이야기들을 펼치면서 우리들에게 '할 수 있다'는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이제 저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1부와 2부에 걸쳐 전개된 77편들의 이야기들 중에서 나에게 무척 인상적이었거나, 진한 감동과 함께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던 그런 내용들을 소개함으로써 서평에 갈음하려 한다. 마치 독서 감상문 처럼 느껴지더라도 이해해주길 바라면서.


현실적으론 지방 국립대에 입학하기에도 벅찬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목표는 서울대학교 입학이었다. 또 외모가 출중하지 못해서 여성 앞에선 자신감이 없을지라도 예쁘고 착한 이상형 여성과의 결혼할 것이며 나아가 멋진 보디빌더의 육체를 가지겠다는 목표까지 세우고 있었다. 


(사진, 보디빌더 대회)


누가 뭐라던 목표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전력투구를 다하는 것도 자신의 몫이다. 그렇기에 목표를 높게 잡은 저자의 결정을 난 적극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었다. 나 또한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었고 이를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경험을 잠시 소개하려 한다. 중학생 시절, 전교 1등 성적을 3년 내내 유지했기에 자연스레 고등학교 진학은 지역 1등 명문고에 입학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당시 경영하던 사업체가 도산한 탓에 공부 뒷바라지가 어렵다고 판단, 취업에 유리한 상고商高에 응시할 것을 강권强勸했다.


아버지의 엄명嚴命을 거역할 가정 형편이 아니라서 그렇게 했다. 입학 후 내 반항심은 공부보다는 운동에 쏠려 있었다. 여러 격투기 종목을 섭렵하면서 싸움 잘하는 학생으로 유명세를 날리고 있었다. 마침내 아버지가 내 폭주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학해 줄테니 제발 정신 차리고 이제 공부에 전념하라고 간청했다. 이때가 2학년 겨울방학 기간이었다.


집안 경제가 여전히 어려운 상태였기에 한동안 고민한 끝에 이왕 입학했으니 공부에 전념해 입행入行 시험에 합격, 초급初級 행원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야간에 대학 입시 공부를 병행하겠다고 아버지께 용서룰 구하며 방탕했던 생활을 접고 새 출발을 다짐했다. 결국 은행원이 되었고 야간에 단과 입시 학원에서 공부를 병행하던 중 한 곳에 집중하려고 은행을 사직하고 입시에만 전념한 끝에 명문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저자의 인상적인 글귀가 돋보인다. '주변의 조롱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주변의 조롱이 내 목표를 이르는 데 도움을 주는 것도 없고, 방해를 하는 것도 없습니다. 내 목표는 오직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높은 목표를 세우니 그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진, 주변의 조롱)


그렇다면 저자는 어떤 결과를 맞이할 수 있었을까? 수능시험 점수가 낮아 대입에서 낙방했다. 이후 그는 스스로 해결자의 삶을 이어감으로써 대입 낙방이 바로 그의 인생의 최저점이 되었고 곧바로 재수를 시작했다. 흔히 우리의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듯, 그는 도착지점을 향해 한 걸음씩 뛰어 3월 모의고사에서 국영수 과목 모두 1등급을 받았다. 공부는 계속되었다. 


"핑계를 잘 대는 사람은 좋은 일을 거의 하나도 해내지 못한다" 

- 벤자민 프랭클린 


재수하는 과정에서 그는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했다. 과속 차량에 치어 횡단보도에서 피를 많이 흘리고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후송되어 응급처치를 받고 종합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지 않고 현재 상황을 수용, 치료와 공부를 병행했다. 인생에 불평 불만을 하는 것은 절대로 최선의 선택이 아님을 알기에. 


"나를 파괴시키지 못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대입 원서 접수기간에 그는 첫 번째로 서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두 번째로 동신대학교 한의학과를 지원했다. 이렇게 선택한 이유는 이과 수학을 응시한 문과생에겐 가산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동기는 없었다. 그 결과 동신대학교 한의학과에 합격했다.


본과 2학년 때 처음으로 보디빌딩 시합에 출전했으며, 본과 3학년 1학기에 전국 대학생 보디빌딩 시합을 준비했다. 이 당시 준비 시간을 보내면서 친구들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반식 대신 닭가슴살, 고구마, 적정향의 견과류, 약간의 반찬 등만 섭취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저자는 이같은 환경적 요인에 대해 '역풍이든 순풍이든 내가 원하는 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래 징기스칸의 말처럼 남 탓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야겠다.


(사진, 징기스칸의 말) 


국가고시를 마친 저자는 공중보건의가 되어 경남 통영시 보건소에 배치를 받았다. 한의사로 한방 진료를 보는 업무였다. 어린 시절, 밤잠을 설쳐 가며 보고 싶어하고 남몰래 짝사랑하던 여인과 거의 매일 휴대폰으로 연락하며 지내다가 두 사람은 마침내 결혼했으며 아이도 생겼다. 


높은 목표를 가져라 


목표를 어떻게 수립하느냐에 따라 이를 성취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가치가 달라진다. 물론 어려운 목표를 설정하면 그만큼 마음의 부담은 크다. 그럼에도 어려운 목표는 높은 수준의 노력을 동반한다. 열심히 공부하고, 절제하는 삶을 추구함으로써 스스로를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고양시킨다. 지독하게 노력하는 인생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


#책추천 #자기계발에세이 #자기계발에세이추천 #작은거인한의빌더 #김석욱 #한의사 #인생목표 #좋은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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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채식주의
김윤선 지음 / 루미의 정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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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가치가 존중받는 더 나은 세상을 기다리며, 한 사람의 '완벽한 비건'보다는 10명의 '채식주의자'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17년 차 윤리적 비건인 필자가 책 제목에 '비건' 대신 '채식'을 넣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시작하는 첫걸음을 환영합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 김윤선은 고양이 집사이자 캣맘이다. 2009년부터 요가와 명상과 비건 라이프에 입문했으며, 2000~2008년엔 채식주의자로, 2009년부터는 채식인의 가장 엄격한 등급인 비건 생활 방식으로 전환해 현재에 이르렀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도심 속 작은 정원 같은 <니콜의 흐름 요가>를 운영했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식탁 너머 생각들(1부), 연민주의자들(2부), 이토록 사소한 순간들(3부), 직접 만들어 본 비건 요리 레시피(4부) 등의 이야기를 펼치면서 일상에 희미하게 스며드는 한 줄기 빛처럼, 고통이 없는 식재료들이 전해주는 순하고 아름다운 에너지를 함께 느끼고 싶다고 말한다. 

식탁 너머 생각들

1부에는 가지, 두부, 녹두, 팥, 봄동, 당근, 오이, 콩나물, 열무, 된장찌개 등의 음식 재료에 얽힌 얘기들이 이어진다. 채식菜食 위주의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매우 익숙한 재료들인 셈이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탓에 나는 가지 밭에서 바로 딴 보라 빛 가지를 생生으로도 먹곤 했다. 내 입엔 살짝 단 풍미가 느껴졌지만 날 것으로 많이 먹으면 복통을 일으킨다고 어른들로부터 주의를 받은 탓에 조심스레 먹곤 했다. 아무튼 떫은 맛도 있어서 날 것으로 먹는 것은 호불호가 갈린다. 주로 가지를 익혀서 먹는 이유도 가지가 지닌 특유의 독성 성분을 제거할 목적이라고 알고 있다.

사회로 나가기 전까지 내 식단은 주로 식물성 위주였다. 육류 섭취를 거부한다고 어머니로부터 핀잔도 많이 들으며 자랐다. 특별히 내가 좋아했던 음식은 두부 요리였으며 지금까지도 이 식성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동네 근처에 두부 공장이 있어서  두부를 사러 가는 심부름은 항상 내 몫이었다. 동상凍傷 걸린 손 치료를 위해 따뜻한 두부 물을  매일 아침 일찍 공장에서 얻어오곤 했던 추억도 떠오른다. 또 막걸리 애주가였던 아버지의 술안주는 두부 김치였으니 이래저래 두부는 나에게 매우 친근한 음식이다.

팥이 들어간 오곡밥을 내가 무척 좋아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붉은색 팥에서 따스한 기운이 느껴져 서다. 또 동짓날 엄청 큰 솥에 끓였던 팥죽은 겨우 내내  먹었던 음식인데, 이를 만드는 과정에 비록 남자일지라도 한 손을 거들었다. 죽에 첨가되는 새알을 만들거나 죽을 쑬 때 바닥에 눌러 붙지 않도록 주걱을 젖는 일을 했었다. 오래 먹을 수 있도록 많이 만든 죽은 큰 통에 보관되어 있어서 입이 심심하면 항상 꺼내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추운 겨울밤에 살얼음이 살짝 덮인 동치미와 함께 먹던 팥죽은 그야말로 별미였다. 요즈음 일반 가정에서 이렇게 팥죽을 많이 쑤는 풍속도 이젠 많이 희미해진 듯해서 아쉽기만 하다. 

옛날 여러 절에서 모인 스님들이 자기네 절이 크다며 자랑하기 시작했다. 한 스님이 기거하는 스님들이 많아서 해우소도 이에 걸맞게 엄청 깊게 만들었는데 저녁에 일을 보면 아침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라고  자랑했다. 이를 듣던 다른 스님은 우리 절에선 동짓날 팥죽을 쑤려면 초대형 가마솥에 보트를 타고 다니며 주걱들을 휘젓는다고 말하자 더 이상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당근의 쓸모는 무한하다. 고운 색으로도, 맛으로도, 영양으로도 결코 뒤지 않는 채소다. 김밥을 쌀 때도 시금치와 단무지는 기본, 당근은 꼭 넣어야만 했다."(32쪽) 


원산지가 아프카니스탄으로 알려진 당근은 '홍당무' 로도 불리는 미나리 과의 쌍떡잎 식물이다. 베타카로틴이 풍부하여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채소라 요리에도 많이 활용된다. 볶은 당근을 간을 한 밥 위에 듬뿍 얹어서 말아내면 바로 '당근 하나로 김밥'이 된다. 과수원 한 켠에 당근밭이 있었는데, 여름방학 때면 밭에서 잡초를 뽑는다고 땀 흘리며 힘들게 일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연민주의자들

연민주의자란 타인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공감하고 마치 내 일인 것처럼 함께 아파하며 돕는 일을 중요시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2부에선 여러 연민주의자들이 소개된다. 피타고라스, 다이애나 황태자비, 안토니 가우디, 레프 톨스토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빈센트 반 고흐, 틱낫한 스님, 임수정 배우 등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이 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사진, 피타고라스 어록) 

우리들에게 익히 알려진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만든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학대 당하는 동물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따뜻한 영혼을 가졌기에 자신의 제자들에게 철저하게 채식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만물의 원리는 數'라고 말했던 그가 불교적 세계관인 윤회설輪廻說을 주장한 엄격한 채식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시 관습에는 '위대한 발견'을 하게 되면 살아있는 '100마리'의 소를 죽여 제단에 바치는 기념의식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피타고라스는 제물이 될 소들이 겪게 될 고통과 희생을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중략)찾아낸 해결책이 밀가루로 소 모양을 만들어서 제단에 바치는 거였다."(89쪽) 

이 내용을 읽고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만두가 떠올랐다. 남만南蠻을 정벌하고 촉으로 귀환하던 제갈공명 군대는 강풍과 험한 물결이 일렁이는 노수라는 강에 도달했다. 마을 사람들은 무사히 도강渡江하려면 원혼이 깃든 귀신을 달래야 하므로 사람머리 아흔아홉과 흰 양과 검은 소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거다. 이에 공명은 무고한 생명을 또 죽일 수가 없어서 사람머리 모양의 만두를 빚어 제사를 한 후 안전하게 강을 건너는 이야기이다. 생명 중시란 공통점이 있다. 


(사진, 160쪽)

3부(이토록 사소한 순간들)에선 먹자골목에서 흔히 만나는 유황오리집과 저자가 호수 산책길에서 만나는 오리를 대비하면서 생존의 이유가 아니라 단지 혀의 취향을 위해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행동을 안타까워한다. 마찬가지다. 애완견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 어찌 개고기를 먹을 수 있겠는가? 굳이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고기를 먹는 한국인'이라는 잡소리를 세계 만방에 외칠 이유가 전혀 없는 한국인의 애완견 사랑을 말이다. 생명 존중은 강요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깨달음과 실천하는 용기에 연결되어 있음을 어짜 모르는가.  




(사진, 비건 요리들)

마지막으로 4부(직접 만들어 본 비건 요리 레시피)에선 총 스무 가지의 레시피가 소개된다. 당근 하나로 김밥, 비건 샌드위치, 파프리카 실파 강회, 봄동 간장 비빔메밀, 채소 듬뿍 물냉식 메밀, 보양 채소탕, 채소찜, 두부 마요네즈, 비건 초밥 도시락, 채식 왕만두 전골, 녹두 부침개, 미역 샐러드 등을 통해 비건 요리 만드는 법을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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