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의 순간들 - 자동차, 아파트, 재벌, 도시에 관한 가장 현대적인 이야기
정몽규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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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관점에서 보자면 글로벌 경기 사이클에 따라 가쁜 숨을 고르며 도시 개발의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던 HDC그룹의 사사이고, 리더십 측면에서는 인프라 시공에 운영을 더해 더 넓은 포트폴리오를 그린 '보수적인 혁신가', 저 정몽규의 위기 관리 매뉴얼이고자 했습니다. - 결정의 순간이 있기까지' 중에서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포니 전성시대(1장), 도시의 탄생(2장), 결정의 순간들(3장)을 통해 HDC그룹의 성장사를 보여준다. 1장에선 정주영 회장이 종로에 '현대공업사'란 간판을 달고 수리 공장을 열었을 때부터 저자의 아버지 정세영 회장이 현대자동차의 리더가 되어 자동차 포니를 생산할 때까지의 일들을 추적한다.

2장에선 도시 개발의 역사와 현대산업개발의 기업사를 담아낸다. K건축의 새 모댈을 제시한 '아이파크' 프로젝트의 성공 사례와 함께 예싱치 못한 사고와 과오를 가감 없이 다루며, 마지막으로 3장에선 이런 과정에서 얻은 저자의 경영적 통찰을 공유한다.

서평을 쓰기에 앞서 난 현대건설에서 직장인 근육을 키웠던 현대맨 출신임을 먼저 밝힌다. 외환은행에서 근무하던 중 대학 선배의 권유로 현대건설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후 앞만 보고 달렸다. 새롭게 배우는 일이 재미도 있고해서 마치 회사 주인인 양 잠자는 시간마저 반납하고 항상 늦은 새벽에 퇴근했다. 그런 옛 추억에 잠기며 이 책을 읽고 있다.   

포니 전성시대

포니(조랑말)은 고 정세영 회장이 현대자동차를 경영하던 시절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네이밍 공모 끝에 탄생한 브랜드이다. 당시 출품작은 아리랑, 도라지, 무궁화 등이 가장 많았으며 집안 성씨인 '당나귀 정鄭'에서 파생된 '포니'란 응모도 100여 편이나 되었다. 네이밍은 브랜드의 운명이자 회사의 방향임을 감안, 최종 '포니'로 결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정세영 회장은 '포니 정'으로 불리었다.

한국에서 탄생한 고유 모델 포니는 1974년 가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데뷔했다. 1975년 3월 방한한 영국 롤스로이스 회장이 울산 공장을 방문, 포니차를 시승한 후 "차가 꽤 좋네요!"란 반응을 보였다. 이후 포니는 1976년 2월 29일에 출고가 시작됐다. 이 해에 에콰도르에 5대의 해외수출이 성사되었고, 생산 2년 만에 50개국에 수출되는 성과를 올렸다.

1981년 11월에 미쓰비시로부터 전륜구동 기술을 도입하면서 현대차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모델 개발 작업에 착수했다.캐나다에서 혹한酷寒 테스트를, 미국에서 종합 성능 테스트(1984년 12월)와 배기가스 테스트(1985년 2월)를 거쳐'엑셀Excel'이란 새 모델을 선보였다. 1986년 일년 동안 18만 대를, 1987년엔 26만 대를 판매함으로써 미국 언론에서도 호평했다.

기아차 인수로 현대차의 글로벌 경쟁력은 높아졌다. 연간 250만 대 생산 체제를 갖추어 세계 10대 자동차 회사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현대차 회장으로 취임한 이듬해 IMF 사태가 찾아와 극심한 판매 부진을 겪었다.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로 위기 탈출을 모색했다. 이에 노동조합은 파업으로 맞섰다. 마치 전쟁터와 같은 살벌한 분위기 속에 노조 대표와 담판을 짓기 위해 나섰다. 정부의 개입으로 노조 파업은 일단락되었다.

당시 대기업의 젊은 회장이란 사회적 관심 때문에 노사 분규 뉴스가 나올 때면 저자의 얼굴이 방송에 송출되곤 했다. 어떤 결정은 원대한 목표와 계획에 따라 내려지기도 했고, 또 어떤 결정은 의도치 않았으나 순리대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후 가장 큰 변화는 경영진의 교체였다.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와 기아차의 대표이사 회장이 되었다. 저자는 부회장으로 일하게 되었다. 현대자동차와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몽구가 장자인데, 몽구에게 자동차 회사를 맡기는 게 좋겠어"(정주영)

새로운 일터는 현대산업개발이었다. 주택 건설 회사였다. 아버지 정세영 회장은 1957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이후 40여 년 만에 다시 건설 회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내가 현대에 근무하던 시절, 이 회사는 '한도개발'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참고로, 현대건설 주택사업부에서 분리되어 1976년 설립된 회사였다.

도시의 탄생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으로 온 국민들이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향하는 '이촌향도離村向都' 시절이었다. 하지만 서울은 살 집이 턱없이 부족했다. 무허가 판잣집도 허다했다. 주거 환경의 안정이 시급했다. 이런 수요에 따라 현대건설과 한국도시개발은 한강변 압구정동 일대에 약 6천여 세대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에 돌입했다. 대한민국 주택 문화사에 길이 남을, 강남 중산층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 형태를 선보였다. 나 또한 이곳에 위치했던 독신자 아파트에서 여러 해 동안 기거했었기에 이 단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정주영 회장의 아랫 동생 정인영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중퇴하고 귀국해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영어를 전공했기에 한국전쟁 기간엔 미군사령부에서 통역 일을 하면서 미군이 발주하는 공사의 상당 부분을 현대건설에 연결해 주었다고 알려진다. 형보다 5살 아래로 전쟁이 끝나자 현대건설에 합류, 1969년엔 현대건설 사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독립하여 경기도 군포에 현대양행을 설립(1977년), 훗날 한라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현대양행에 이어 한라건설을 설립했는데, 정부의 중화학 투자 조정 과정에서 이 회사는 현대그룹으로 편입되었다. 일시 자금 지원과 연대보증 요청차 자주 방문했던 한라건설 자금팀 간부가 떠오른다. 한라건설은 화력 발전소, 시멘트 공장 등 대형 플랜트 공사와 중부고속도로 공사, 간척 사업, 산업단지 조성 등을 수행하며 토목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해외 건설 시장에도 진출해 약 25건의 해외 공사를 시행했다. 1986년 11월, 한국도시개발과 한라건설이 합병하여 현대산업개발로 재탄생했다.

1980년대 초 정부의 주택 2백만 호 건설 계획과 함께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필두로 한강변에서 시작된 새로운 주택 문화는 강남 곳곳을 물들였다. 강남은 새로운 주택 문화를 대표하는 최신식 아파트들의 각축장이었던 것이다. 현재 양재역 4,5번 출구에서 도곡동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목이 과거 역사엔 '말죽거리'로 불리던 곳으로 이는 말에게 죽을 먹이던 거리란 뜻이었다. 조선시대엔 역참이 있던 곳으로 논밭 일색이었던 땅이다. 나의 대학 시절 이 근처에서 신혼집을 시작한 사촌 누나를 만나러 갈 때면 진흙길을 밟아야 했다. 이런 불편 때문에 이사를 선택한 사촌 누나는 이를 엄청 후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현대그룹이라는 커다란 우산에서 벗어나 저자는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하기로 용단을 내렸다. 강남에서 아파트 단지 조성은 단순히 몇 채의 건물을 올리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단지의 구조, 조경, 커뮤니티 시설, 학군과의 거리, 교통 접근성, 상업 시설 등 모두가 중요한 경쟁 요소였다. 같은 지역 안에서도 어느 단지에 사느냐가 중요해졌고 건설사들은 점점 아파트 단지의 고급화, 명품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이파크'라는 브랜드로 승부를 걸었다.

결정의 순간들

가장 막심한 후회는 ‘어떤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이다.(238쪽)

사업을 하면서 새삼 깨닫게 사실은 어떤 사람 혹은 어떤 일을 책임지면 반드시 인연이 따라온다는 거다. 책임을 진다는 것이 당장 눈앞의 보상을 바라지 않더라도 다음 인연을 소중히 하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연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도 바로 '인연'이다.

라이언 홀리데이의 <에고라는 적>이란 책 내용 속에 장난감 회사 CEO 타이 워너의 사례가 실려 있다. 한 직원의 반대를 무효화시킨 후 "변기통에 내 이름 태그만 붙여도 사람들은 그걸 살거야!"라고 자만했다고 한다. 모든 조각들이 잘 맞아떨어져서 성공한 사업을 자기 능력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오만에 빠져 일을 그르치기 쉽다. 이 장난감 회사는 '비니 베이비스'를 히트시켜 유명하지만 CEO가 10억 달러 회사를 망치고 말았다. 책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는 "생선은 머리부터 썩는다"라고 경종을 울린다.

겸손을 통해 자신보다 더 잘하는 사람과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을 거쳐야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있을 때는 과감하게 승부를 걸어야 한다. 포스코와 맞붙었던 용산 정비창전면 제1구역 재개발은 단순히 시공권 경쟁이 아니라 서울 도심에서 누가 대규모 도시 정비 사업을 제대로 하는지를 두고 벌이는 한판의 시험대였던 것이다. HDC는 공사비 줄이기, 공기 단축 같은 1차원적 제안이 아니라 최고급 호텔, 오피스, 상가 등이 포함된 복합 개발 노하우를 어필했다. 조합원들은 미래 자산 가치 상승에 지지표를 보냈던 것이다.


HDC그룹의 성장사

1976년에 설립한 한국도시개발이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무엇보다 나의 대학교 한참 후배인 정몽규 저자가 이미 나이 육십을 넘겼다는 사실에 '참 세월 빠르다'는 걸 또 한 번 느낀 독서였다. 또 이명박, 심현영, 이방주 등 익숙한 이름에서 내 과거 직장 생활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처음은 미미할지라도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귀절처럼, 내 젊은 시절의 한도개발이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경영학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경제경영 #결정의순간들 #기업성장사 #현대산업개발 #HDC그룹 #정몽규 #쌤앤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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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하고 끈덕지게
박유연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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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커서만 홀로 깜빡이는 하얀 화면에 첫번째 단어와 문장을 쓰는 것이다. 그게 무서워 오랜 기간 글 쓰는 일을 주저했다. 매우 오랜만에 긴 글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와 깊게 대화할 기회가 좀더 빨리 잇었다면, 내가 일하며 겪었던 위기를 피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윤종규의 인생을 통해 본인의 인생을 반추하고,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반전시킬 아이디어를 얻었으면 한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의 저자 박유연은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 매일경제, 조선일보 등에서 주로 경제를 담당했다. 지금은 조선일보의 커머스 계열사 '비비드몰'의 대표를 맡고 있다.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된 <지금 당장 세계경제를 공부하라>를 비롯한 다수의 저서가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윤종규의 노력과 성과를 담고 있는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그가 KB맨이 된 후 회장에 올라 퇴임할 때까지 여정과 성과를 정리한 파트로 재임 9년 동안 확실한 국내 1등 금융 그룹으로 환골탈태한 변화를 다룬다. 둘째는 유년 시절부터 은행원, 회계사 시절을 지나 KB맨이 되기까지의 인생을 정리한 파트로 그의 집념과 노력으로 어떻게 인생이 변화했는지를 보여준다.


삼일회계법인에서 은행으로  


(서태식 회장)“내가 주말 동안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모두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너 같이 잘 나가는 파트너가 그런 선택을 한다니. 은행으로 옮기면 지금 받는 경제적 대우는 절대 못 받는다. 네 속마음에 있는 게 정말 뭐냐.”


(윤종규)“말씀 그대로입니다. 금융의 삼성을 만들고 싶습니다. 회계법인에서 잘 훈련된 회계사가 기업 경영도 잘 할 수 있다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 후배 회계사들의 선택지를 넓혀보고 싶습니다. 은행 CEO가 돼 그 꿈을 꼭 이루고 싶습니다.”

당시 윤종규는 잘 나가는 삼일회계법인 소속의 전도유망한 파트너였다. 은행 CEO가 되겠다는 포부에 서 회장은 된다는 보장도 없음을 우려하자, 그는 일단 도전해 보겠다며 CFO로 시작해 은행 모든 업무를 관여해 단기간에 견문을 넓히면 자신의 역량을 펼칠 기회가 반드시 온다는 생각이었다. 즉 그는 스스로에게 가능성의 배팅을 한 셈이었다. 

꺾여버린 꿈

우리 사회에 소위 '카드 대란' 사태가 있었다. 국민은행도 국민카드 부실이 드러났다. 금융회사에서 손실을 처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돈으로 이를 메우는 것이다. 말하자면 돈으로 쓰레기를 처리하는 셈이다. 국민은행에서 벌어진 문제는 충담금 회계 처리 방식이었다. 국민카드 흡수 합병 과정에서 아래의 의사결정이 필요했다.

1. 자본 잠식 상태인 카드사에 먼저 충담금을 쌓은 후 흡수 합병할지
2. 흡수한 후 은행이 충당금을 채울지

이에 당시 윤 부행장은 회계법인의 세무 담당자들을 불러 논의했다. 그는 어차피 충당금을 쌓는 금액은 은행이나 카드사 중 누가 하든 같지만 세금 부담에서만 차이가 나므로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결정을 선택, 국세청에서 괜찮다는 답변을 받고 그리 처리했다. 그러나 추후 금융당국의 감사에서 이 부분이 지적됐는데,  탈세 목적을 위한 부정 회계로 본 것이다. 

징계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윤 부행장은 자진 사퇴 형식으로 은행 문을 나서면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란 이형기 시인의 낙화落花로 심경을 대변했다. 계획했던 모든 일을 완수하지는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는 퇴임사에서 “어느 때보다 변화와 경쟁이 심화되면서, 국민은행은 리딩뱅크의 지위를 강력하게 도전받고 있다”며 “보리 한 움큼 쥔 손으로 절대 쌀자루를 쥘 수 없듯이,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노력을 하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마지막까지 변함이 없었던 국민은행에 대한 애정이 담긴 말이었다.

윤 회장의 전략 짜기

KB금융지주의 회장으로 선임된 후 KB 성장 전략에 골몰했던 윤 회장은 기존 금융권에서 사용하는 3가지 프레임인 C(customer), P(product), C(channel) 에다 2가지(E와 T)를 추가했다.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결국 ‘직원’이다. 그래서 Employee의 E를 추가했고, ‘기술’이 매우 중요해졌으므로 Technology의 ‘T’까지 추가해 전략을 짜는 데 활용했다.

윤 회장은 새로운 사업이나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는 반드시 사업화 후 End-image를 그려 보라고 강조했다. 사업으로 회사가 뭘 얻을 수 있을지 명확화하는 것이다. 즉 엔드이미지는 가능한 정교하게 수익 계산 모델을 만들어 수치화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꼭 매출이나 이익일 필요는 없다. 예상되는 고객 증가 등 다른 결과치라도 숫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윤종규의 3R

윤 회장은 좋은 리더라면 3R(Remove, Reduce, Redesign)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애자일 조직을 만들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Remove는 보고서 작성 같은 직원들이 시간을 많이 뺏기는 부분을 찾아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관성과 타성, 관행에 의해 해 온 일을 없애는 것이다. 

Reduce는 필요한 일을 효율화하는 것이다. 필요한 보고서라 하더라도 목차부터 결론까지 길고 화려하게 작성할 필요는 없다. 보고서를 통해 알고 싶은 것은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것을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이다. 이 내용에만 집중한다면, 불필요한 부분을 대거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Redesign은 일의 프로세스를 바꾸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해야 했는데, 지금은 자동화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이런 부분을 찾아 디지털화해야 한다는 게 또한 그의 생각이었다. 좋은 리더라면 실시간 쌓이는 정보를 활용해 이런 부분을 찾아 Redesign해야 한다.

어린 윤종규의 꿈

그는 어려서 꿈이 없었다. 가정 형편 탓이었다. 꿈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고, 꿈을 심어줄 주변 사람도 없었다. 서울의 명문대나 고시 합격 같은 목표를 희미하게나마 생각해 볼 법도 하지만, 하루하루 버거웠던 삶에선 너무나 먼 얘기였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당장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그의 집안은 가난했지만 지역에서 명망이 있었다. 대대로 한학漢學을 하는 집안이었고, 아버지는 일제 시대 때 훗카이도에서 광부로 일히다가 귀국해선 마을 이장을 맡았다. 하지만 명성과 인망이 밥 먹여 주는 건 아니었다.

일의 덕목德目

내 회사도 아닌데 무작정 열심히 일하긴 어렵다. 윤종규는 일의 미션과 비전, 핵심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일한 대가로 돈을 받는 프로라면 조직에 있는 동안 발자취나 흔적, ‘Footprint’ 또는 ‘Milestone’을 남기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의 목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물이 없을 때는 목적을 설정하지 않고 일했을 경우가 많다. 보고서를 쓴다면 왜 이 보고서를 썼는지 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윤종규는 훗날 KB 회장이 된 후 직원들에게 ‘3心’을 강조했다. ‘초심, 뚝심, 득심’ 세 가지다. 세 가지 마음이 있으면 개인과 조직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게 윤종규의 얘기다. 즉 늘 초심을 잊지않고 기억하며, 끈덕지게 실행하고, 주변과 고객의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담대하고 끈덕지게

2002년 KB에 합류해 2023년 퇴임하기까지 집념의 21년. 윤 회장은 퇴임사에서 “경쟁에서의 본질적 승패를 가르는 미세한 차이인 ‘앵프라맹스(Inframince)’를 만들어 가 달라”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차이지만 근본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 차이’를 뜻하는 프랑스 말이다. 경영과 리더십을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경제경영 #리더십 #담대하고끈덕지게 #윤종규KB회장 #원앤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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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들이 모여 삶은 반짝이는 보물이 된다
지서희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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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누군가에게 뒤쳐지는 것만 같았고, 조금만 틀려도 인생이 무너지는 것처럼 끼곤 했습니다. 이 책에 실린 문장들은 그때의 저에게, 그리고 지금 비슷한 마음으로 "어른이 되기 직전"의 시간을 건너고 있는 당신에게 조금 늦게 도착한 안부 인사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지서희는 문인협회 정회원으로 광주문인협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수능필적확인란문구 선정 시인이다. 수능필적확인란 문구는 수능 시험지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마주하는 문장으로 짧은 글임에도 수능 응시자에게 감동과 용기를 준다고 합니다. 참고로 2025 학년도엔 '저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펼쳐라(곽의영, '하나뿐인 예쁜 딸아')'였답니다.


총 7부로 구성된 책은 나와 조금 더 가까워지는 시간(1부), 마음이 부서질 것 같을 때(2부), 친구와 사랑이 가르쳐 준 것들(3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잊지 않기를(4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꿈들(5부), 함께 살아가는 마음을 배우는 시간(6부), 언젠가 오늘을 떠올릴 당신에게(7부) 등을 통해 수능 시험지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그 문장을 쓰게 만든 수많은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어른이 되는 중인 당신'의 오늘을

조용히, 그리고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실수한 나를 감싸 보기


우리들은 살아가는 동안 이런저런 실수를 많이 한다. 이런 나를 괜찮다고 위로하고 용기를 내라며 격려한다면 더 이상의 심리적 침체에서 벗어나 이를 교훈 삼아 더 발전적인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 실수를 저지른 나를 몰아세우고 비난한다면 내 편은 없다는 생각에 오히려 심리적 공황에 빠질 우려가 있다.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하며 더 성장한다. 이때 가장 필요한 벗은 바로 나 자신이며, 이런 나를 감싸는 행동이 필요한 법이다.


(사진, 실패 감싸기)


오늘 실수한 나까지 같이 안아 줘요.

조금 틀렸다는 건 조금 더 배웠다는 뜻이고,


그만큼 내일의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진다는 뜻이니까요.


참다가 더 아파지는 눈물의 무게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실컷 울고 싶은데 차마 울지 못하고 목까지 차오른 울음소리 마저 끝까지 참아 본 적이 있나요? 사실 울음이 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자연스런 심리 반응이다. 남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이를 억지로 참는 것은 가식적인 행동이라. 누가 눈물과 울음을 나약하다고 말했던가?


"여기서 울면 안 돼", "이 정도로 내가 왜 울어?" 같은 말을 안으로 되뇌이며 억지로 참는 행동을 계속 하다보면 오히려 이는 마음의 병病이 될 수도 있다. 눈물은 나의 안구眼球를 씻어내는 측면보다 오히려 내 마음을 정화淨化시키는 과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버티는 게 강하다'고  억지 생각하는 대신 시원하게 한 바탕 울고 눈물까지 흘리면 속이 다 후련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쉽다.


(사진, 눈물 허락하기)


숨 참고 버틴 눈물도

오늘을 지나온 힘이라고 믿어요.


이 정도면 울어도 되는 하루였다고

조용히 마음 쪽으로 안아 줘요.


서툰 사랑도 사랑이라고 불러보고 싶은 밤


사랑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도저히 느끼지 못할 감정이 있다. 몰래 한 사랑, 나만의 사랑, 소위 '짝사랑'이라고 불리는 그런 사랑의 감정이다. 그렇다. 좋아한다는 마음이 머리에서 계획적으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끌리는 이성을 향한 순수한 감정이다.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그 사람이 눈에 먼저 들어오고, 한 마디 말이라도 건네볼 까 망설이게 된다. 혹시 상대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나에게 심한 말로 '꺼지라'고 하면 등등 나 혼자만 소설을 쓴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행복감이 밀려오는 걸 어찌 막을쏘냐. 이런 감정은 남녀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나또한 남학생임에도 성당 교리반에서 우연히 목격한 고등학생 누나를 그렇게 대했다.


(사진, 서툰 사랑)


서툰 고백이었어도

한 순간은 분명 진심이었어요.


어색한 웃음과 떨리는 말들까지

오늘 마음이 지나온 사랑이라고

조용히 소중하게 안아 줘요.


나를 사랑하라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남을 사랑할 수 없다. 아니, 사랑할 자격이 없는 거다. 남들과 비교할 때 "나만 왜 이렇지?"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려오면서 나를 질책할지라도 오늘만큼은 나 자신을 좀 더 다정하게 안아 주도록 하자.


#에세이 #힐링 #용기 #격려 #순간들이모여삶은반짝이는보물이된다 #지서희 #바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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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자들의 시간
줄리아노 다 엠폴리 지음, 이세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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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여 년간 서양 민주주의의 정치 지도자들은 16세기 아스테카인들을 그대로 빼다 박은 태도로 첨단 기술의 정복자들을 대했다. 그들은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 인공 지능의 천둥 벼락 앞에서 요정의 가루가 자기들에게도 다소나마 떨어지기를 바라며 납작 엎드렸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책의 저자 줄리아노 다 엠폴리는 정치평론가이자 소설가로 1973년 프랑스에서 출생해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피엔차로마대학교에서 법학을, 파리정치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피렌체市의 문화 부시장으로 활동하다 마테오 렌치 총리 재임 시절 수석 고문으로 발탁되어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22년에 발표한 첫 소설 <크렘린의 마법사>는 평단을 주목을 받아 단숨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 콩쿠르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새로운 것은 너무 새로워서, 우리는 그걸 뭐라 부를지조차 모른다. 그들 중 일부를 가리키는, 그나마도 본질을 정확히 짚는 대신 명명자의 감정이나 소망이 담긴 단어들을 나열하자면 이러하다. 극우 포퓰리즘, 선출 독재, 스트롱맨, 암흑 계몽주의, 빅테크, 기술 권력, 테크노 봉건 영주, 브롤리가키 등등. 새것은 이 모든 것을 다 합한 것 그 이상이다.

그 新 세력들은 2010년대 초엽까지도 변방의 괴짜들로 보였다. 정치권에서 나타난 새로운 세력들은 지성과 인성이 모자란 무식쟁이 낙오자들로 보였다. 실리콘밸리에서 등장한 새로운 세력들은 사회성과 감수성이 모자란 지질한 너드들로 보였다. 양쪽 다 상식 밖의 존재들이었고, 너무 괴상해서 심각한 위협이라기보다는 웃음거리로 보였다.

낡은 질서는 무식쟁이 낙오자들과 지질한 너드들이 선을 넘으면 언제든지 자신들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신들이 자정작용自淨作用이라는 신비한 면역 시스템을 지닌 건강한 양복 신사이고, 상대는 매년 왔다가 지나가는 감기 같은 존재라고 판단했던 듯하다.

그렇게 10여 년이 흐른 지금, 낡은 질서는 정체 모를 신종 바이러스에 걸려 신음하는 환자 신세다. 우리가 그 바이러스에 명명할 이름도 붙이지 못한 사이, 새것은 낡은것을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신세계의 침략자들은 더 이상 우스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꿈꾸는 신세계는 점점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이에 저자 다 엠폴리는 500년 전 아메리카 대륙에, 아스테카 제국에 스페인 침략자들이 도착했을 때를 떠올려 보라고 한다.

에르난 코르테스의 상륙 소식이 아스테카 제국의 수도에 도착했을 때 모테쿠소마 2세는 이방인들이 초능력이 있는 듯하다는 보고를 받은 탓에 혹시 야만인이 아닌 신들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정을 내리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굴욕을 무릅쓰고라도 전쟁을 피하려 선물을 챙겨 이방인들에게 사절을 보내기도 했지만 결국 굴욕과 전쟁을 모두 겪고 말았다.

지난 30여 년간 서양 민주주의의 정치 지도자들은 16세기 아스테카인들을 빼다 박은 태도로 첨단 기술의 정복자들을 대했다. 모테쿠소마 황제가 납작 엎드린 것처럼 고분고분함만으로는 위정자爲政者들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 그들은 어느새 열등한 위치에 서 있었고, 정복자들은 그네들의 제국을 서서히 밀고 들어왔다. 그렇다. 지금은 '포식자들의 시간'이다.       

다 엠폴리는 신세계 침략자들을 마키아벨리 시대의 냉혹한 군주 체사레 보르자에 빗대 '보르자형 인간'들이라 부른다. 그들은 '왜 안 된다는 거지?' 하는 표정으로 타인들의 눈엔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사건들을 일으킨다. 리츠칼튼 호텔에서 물고문을 곁들인 궁중 암투가 벌어지기도 한다. 메시아 신드롬과 아스퍼거 증후군을 함께 앓은 듯한 부자가 범죄, 이민, 물가 같은 문제의 해법을 내놓기도 한다.

트럼프의 귀환


트럼프 당선 다음 날, 부켈레는 X에 "당신들이 어제부로 시작된 인류 문명의 분기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거라는 것만은 확신한다"라는 글을 올렸다. 한 달 전, 대선 후보 트럼프는 펜실베이니아주 이리를 방문해 청소넌 범죄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다. "우리가 단 하루라도 정말 독하게 나간다면, 한 시간만 난폭하게 밀고 나간다면,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고 모든 것이 멈추겠지요"라고 말이다.

8년 전과 다른 점은 옛 질서의 기반이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브렉시트 찬성파, 도널드 트럼프, 전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상부 권력에 맞서 싸우는 반란군이 으례 그러듯이 기존 질서에 도전하고 혼돈을 전략적으로 채택하는 주변인 무리처럼 보일 수 있었다.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다. 혼돈은 반란자들의 무기가 아니라 지베자들의 표식이다.

보르자형 인간들은 격동기에 특히 잘 적응하는 생명체다. 그러한 시기에 정치 체계는 자체적 한계에 부딪히고 불확실성과 위험에 대응할 방법은 속도와 힘밖에 남지 않는다. 결국 포식자들의 시대가 도래한 것은 정상으로의 회귀에 가깝다. 오히려 피비린내 나는 권력 추구를 어떤 규칙 체계로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짧은 시기를 예외로 보아야 한다.(102쪽)

테크 포식자들의 시대


실제로 테크 거물들은 보르자형 인간이 맞다. 트럼프의 재선은 이러한 시각에서도 중대한 전환점이다. 이제 테크 정복자들이 사상 처음으로 기존 엘리트들과의 전쟁을 선포해도 될 만큼 힘을 키웠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테크 거물들은 다보스 블록의 지배적 위상에 감히 대놓고 도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보르자형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숨겨 왔다. 오랫동안 그들은 외교적 수완을 보여 주면서 사자보다는 여우에 가깝게 처신해야 했다.

포식자들의 시대에 전 세계의 보르자형 인간들은 자기가 지배하는 영토를 디지털 정복자들에게 실험실로 내어 주고 있다. 그들이 구시대의 법과 권리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에 대한 그들의 비전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은 스마트 도시를 건설 중이고, 엘살바도르의 부켈레는 비트코인을 자국의 공식 화폐로 채택했으며, 아르헨티나의 밀레이는 AI 서버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검토 중이다. 트럼프 또한 행정부의 주요 영역 전체를 실리콘밸리의 가속주의자들에게 맡겼다. 그들의 주도하에 세계는 아무런 제동 장치 없이 포스트 휴먼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영토들의 조각보가 되어 간다.

AI, 새로운 권력의 출현



AI는 단순히 권력의 기폭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기계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형태의 권력이다. 자동화는 수단에 관한 것이지만 AI는 목적에 관여한다. AI는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으로 믿어 왔던 역량을 계발한다. AI가 미래에 대한 전략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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