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2023년~

알라딘 친구 여러분들, 2023년 좋은 책들 많이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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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2-31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한 자리에 책 쌓으시는데만도 한참 걸리셨겠어요? 23년의 독서기록을 사진 한장으로 압축하셨군요!! 와! 내년에도 좋은 책들 함께 나눠요. 북홀릭님

bookholic 2023-12-31 18:48   좋아요 0 | URL
한 해 마무리의 루틴이 되었어요^^
얄라알라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좋은 책 소개 부탁드려요~~

호시우행 2023-12-31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이 읽었네요. 건강과 행운을~~

bookholic 2023-12-31 18:49   좋아요 0 | URL
책 읽는 것이 몇 안 되는 낙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파랑 2023-12-31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북홀릭님의 독서는 매년 엄청나네요~!! 진정한 책 중독자이십니다~!! 책탑 사진만 봐도 뿌듯 하네요~!!

bookholic 2023-12-31 18:51   좋아요 1 | URL
북플이나 알라딘 서재에서는 중독이라고 하기 어렵죠^^ 닉네임을 부끄럽습니다 ㅎㅎ
새파랑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즐독 하시길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3-12-31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책탑이고, 그것을 또 다 읽으셨다는 것에 감동 받습니다.
매년 저에게 내년에 더 분발해야겠다는 의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ookholic 2023-12-31 18:54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저도 내년에는 올해보다 좀더 높여보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크pek0501 2023-12-31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 푸짐하군요.
새해에도 건필하십시오.^^

bookholic 2023-12-31 18:56   좋아요 1 | URL
올 한 해 잔잔하면서 따뜻한 좋은 글들 감사했습니다.
내년에도 부탁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대장정 2023-12-31 14: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어봤습니다. 104권 맞나요? 역시 북홀릭이십니다. 👍 내년에도 健讀하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ookholic 2023-12-31 18:59   좋아요 1 | URL
아...힘들게 세시다니.. 고맙습니다.. 몇 권 빠진 것 같아요^^
대장정 님도 내년에 올해를 뛰어넘으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니데이 2023-12-31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복많이받으세요.^^

bookholic 2023-12-31 19:01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님~~
늘 좋은 글도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행복하세요...

호시우행 2023-12-31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감사합니다.
 

















(142)

카메라는 간단한 기계여서 제아무리 바보라도 사용할 수 있는데, 도전이라면 그것으로 예술, 곧 참된 것과 아름다움의 결합을 창조하는 데 있다. 그러한 탐색은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일이다. 나는 투명한 가을 낙엽과 해변의 완벽한 모양의 소라에서, 여체의 등허리 곡선과 오래된 나무둥치의 결 조직에서 참과 아름다움을 찾는다. 포착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형태들에서도 찾는다. 때때로 암실에서 하나의 상을 가지고 작업하다가 한 사람의 영혼, 한 사건의 감동 또는 한 사물의 생동하는 본질을 만난다. 그러면 감사하는 마음이 치솟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그렇게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내 일의 목적이다.


(252-253)

그녀는 세기가 바뀐 이래 칠레에 벌써 다섯 차례의 전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우리 칠레인들은 악의가 없어 보이고 심지가 약하다는 평판도 있는 데다 심지어 저기요, 제발 물 한잔 좀 주실 수 있을까요?”하는 식의 비굴한 말투를 사용할 정도지만, 일단 기회만 닿으면 식인종으로 돌변한다고 했다. 우리의 난폭한 기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조상은 스페인에서 온 정복자들 중에서도 가장 노련하고 사나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막의 태양에 시뻘겋게 달궈진 무기를 들고 최악의 자연 장애물을 이겨 내면서 걸어서 칠레까지 올 생각을 한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그러고는 자신들 못지않게 용맹스러워서 결코 굴복하지 않은 유일한 신대륙 부족이었떤 아라우칸족과 혈통을 섞었다. 아라우칸족은 포로들과 자신들의 추장 토키를 먹는 습성이 있었고 정복자들의 껍질을 말려 제식용 가면을 만들었는데, 특히 턱수염과 콧수염이 있는 사람들의 가죽을 선호했다. 자신들은 수염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백인들에게 복수도 할 수 있었다. 반대로 백인들은 인디오를 산 채로 태워 창에 꽂은 뒤 팔다리를 자르고 눈알을 뽑았다는 니베아의 설명이었다. “그만해라, 됐다! 그런 끔찍한 얘기를 내 손녀딸 앞에서 하지 않도록 해라.” 할머니가 그녀의 말을 중단시켰다.


(348)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진보의 메아리는 우리에게 들려왔고 사회의 변화를 모르고 지낼 수 없었다. 산티아고에서는 이미 실외 스포츠와 실외 게임, 산책 등 카스티야 이레온 귀족의 느긋한 후손들보다는 외향적인 영국인들에게 맞는 놀이들을 광적으로 즐기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 유래한 예술과 문화의 바람으로 칠레의 분위기가 새로워졌고, 독일산 기계들이 중후하게 돌아가는 소리에 칠레의 오랜 식민기적 낮잠은 중단되고 말았다. 벼락부자에 교육도 받고 부자들처럼 살고 싶어 하는 새로운 중산층이 탄생했다. 파업, 폭행, 실업, 칼을 뽑아 든 기마경찰의 공격 등으로 국가 기강이 흔들리는 사회 위기가 조성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아주 먼 이야기여서 칼레우푸의 생활 리듬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백 년 전에 같은 침대를 썼던 고조부들처럼 여전히 농장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20세기는 찾아들었다.


(430)

기억은 허구다. 우리는 부끄러운 부분은 잊어버리고 가장 밝은 부분과 가장 어두운 부분만 선택하여 인생이라는 널찍한 융단에 수를 놓는다. 나는 사진과 글을 통해 내 존재의 덧없는 상황을 이겨 내고 사라져 가는 순간들을 붙들어 과거의 혼돈을 벗겨 내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매 순간은 순식간에 사라져 금방 과거가 되어 버린다. 현실은 하루살이같이 덧없고 변하는 것이며 순순한 그리움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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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질의 사랑 - 천선란 소설집
천선란 지음 / 아작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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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소개해 줄 책은 천선란 님의 <어떤 물질의 사랑>으로, 단편모음집이란다. 모두 여덟 개의 단편집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 한 작품이 <어떤 물질의 사랑>이고 그것을 책제목으로 뽑은 것이란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천선란 님의 소설은 아빠 취향이 꼭 맞는 것 같구나. 천선란 님의 책들은 모두 좋았어. 이 책은 아빠가 천선란 님을 알기 전에 출간한 책인데, 나중에 검색해 보고 알게 된 책이란다. 주로 SF를 쓰시는 천선란 님의 이 단편 모음집도 모두 SF 소설이란다.

SF 소설에는 <쿼런틴>같은 Hard SF 소설도 있지만, 천선란 님의 SF 소설은 Soft SF 소설이라고 해야겠구나. 천선란 님의 엄마가 적은 나이에 치매에 걸리셔서 고생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엄마를 연상케 하는 등장인물들도 있더구나. 엄마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어. 첫 번째 작품인 <사막으로>가 작가의 엄마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보였어.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하는구나.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돔 안에서만 살아야 하는 지구. 그 심각한 대기오염 속 어떤 것 때문인지 모르지만, 엄마는 신종 질병에 걸리셨는데, 그 증상이 치매와 비슷했단다. 마치 현실에서 작가의 엄마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치매에 걸리신 것처럼 말이야. 그런 엄마와 그런 엄마를 정성스럽게 보살피면서 자식에게는 짐을 주지 않으려는 아빠의 이야기

….


1.

<너를 위해서>라는 소설은 정말 짧지만 임팩트가 강한 소설이었단다. 먼 미래, 아기를 낳는 조건을 나라에서 관리하는 세상이었어. 주인공은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하여 아이를 낳게 되는데, 그런데 아이의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성인이 되어 심장마비로 죽을 확률이 엄청 높다고 했어. 그러면서 주인공의 심장을 보관해야 한다면서 주인공을 죽이려고 하는 이야기. 정말 짧은 소설이라고 했는데 얼마나 짧은지 아니? 네 페이지가 끝. 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소설.

<레시>라는 작품은 지구의 바다 생물의 멸종을 막기 위해 바다의 생물들을 데리고 토성의 위성으로 데리고 간 이야기란다. 그런데 그곳에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야.

<어떤 물질의 사랑>은 심라현이라는 사람, 아니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아무튼 지구의 사람과는 다른 존재란다. 겉모습은 사람과 비슷해. 그런데 알에서 태어나서 배꼽이 없고, 성별도 없었어.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 맞게 성별이 바뀌었어.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남자의 성징이 나타나고,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여자의 성징이 나타나는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엄마도 신비에 쌓인 분이었어. 심라현은 어느날 라오라는 사람, 아니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아무튼 지구의 사람과 다른 존재를 알게 된단다. 라오는 몸에서 뭔가 떨어지는데, 라현이 자세히 보니 비늘이었어. 둘은 말을 트는 사이가 되었고, 알고 보니 라오는 외계인이었고, 오래 전에 지구에 와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어. 알고 보니 라오가 찾고 있는 사람은 라현의 엄마였단다. 그러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란다.

<그림자 놀이>공감이라는 감정이 사회악으로 치부되어 시술을 통해 그 감정을 없애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의 이야기란다. 주인공 이라도 수술을 통해 공감이 없었는데, 20년 전에 우주비행사로 떠났던 소중한 친구인 도아가 다시 돌아왔단다. 우주에서 얻은 방사능으로 병이 생겨서 2주밖에 못 산다고 했어. 하지만 공감이 없어진 이라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모르핀뿐... 아무리 공감을 없앴다고 하지만, 몸 어딘가에는 아직 남아 있지 않았을까.

<두하나>라는 소설은 동아시아 대륙 상공에 정착한 미확인 물체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물체가 생긴 다음부터 남자들만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고, 전염되었어. 좀비는 아니지만 그 움직임은 좀비와 비슷했어. 그 전염된 남자들로부터 대피하게 되었는데 영종도에 그 대피소가 있었어. 전염되지 않은 소수의 남자들도 있어서 대피소로 왔지만, 얼마 못가 전염이 되었고, 대피소에 있는 여자들 중에는 자신의 남자 가족 구성원들도 데리고 오려는 이들도 있었어. 그러면서 갈등을 빚는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설 제목 두하나는 등장 인물 중에 한 명인데, 전염된 남자들의 소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단다. 그러면서 일어나는 일들의 이야기가 <두하나>라는 소설이란다.

<검은색의 가면을 쓴 새>는 멸종된 줄 알았던 저어새 수천마리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란다. 그 저어새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확인해 보니 철원 근처 비무장 지대였는데, 그 곳은 수십 km 깊이의 싱크홀이 있었고, 그곳에서 저어새들이 온 곳이었어. 사람들은 수색대를 조직해서 조사해보았지만, 씽크홀로 들어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어. 드론도 보내봤지만, 4000m 이하까지 내려갔다가 사라졌단다. 이 구멍에 대해 많은 노력들을 했지만 허사였단다. 구멍에 들어갈 수색대원을 더 뽑게 되었는데, 주인공 은지도 지원했고 최종 4명에 뽑혀서 씽크홀을 탐험하게 되었어. 대기업 취업 보장에 큰 돈을 준다고 했거든그런 것에 희망을 걸어야 하는 은지의 처지가 안타깝기도 했지만, 은지는 그 전의 수색대원들과 다른 결과를 얻기 바랬지만

….

마지막 소설은 <마지막 드라이브>라는 소설이야. 안드로이드 더미와 델리의 이야기란다. 더미와 델리의 역할은 교통사고 시뮬레이션에서 운전석과 보조석에 앉아서 시험을 하는 거야. 그런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교통사고 사망자가 없어지게 되어 그 일도 하지 않아도 되었어. 하지만 운전사가 보조석에 있던 애인을 보호하려는 행동으로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더미와 델리는 이 경우를 시뮬레이션을 하기 위해 다시 실험을 하게 되었어. 그리고 150번이나 이 시험을 하게 되었고, 마지막 시뮬레이션을 앞두고 더미는 델리와 데이트를 하게 해달라고 하여 허락해주었단다. 인공지능 로봇의 학습 능력으로 사랑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

이상으로 8편의 소설을 간단히 이야기했는데, 이 책도 읽은 지 오래되어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구나. 짧게 적어둔 메모와 겨우 남은 기억으로 이야기를 해서, 책의 내용이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 바라고오늘은 이만 줄일게.


PS,

책의 첫 문장: 사막에 대해 글을 써보는 건 어떠니?

책의 끝 문장: 사랑하는 델리, 나와 드라이브를 함께해줘서 고마워요.


우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구는 그 많은 행성들 중 어쩌다 생긴 하나에 불과했고,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 행성이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별 상관 없는 행성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안에서 존재의 이유조차 알 수 없도록 우연히 생긴 생명체였다. 사랑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은 인간이다. 이 땅을 외롭게 만든 것은 오롯이 인간의 짓이라는 걸 상기할 때마다 나는 그저 이 행성을 떠나야만 그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 P18

엄마는 원장과 눈을 마주 보고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엄마가 자주 하는 우기기의 비법인데,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펼칠 때일수록 당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는 네모난데 왜 동그랗다고 하는 거예요? 라는 말을 내뱉은 학자처럼 말이다. 원장은 그럴 수도 있나? 하다가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고 엄마의 계략에 넘어갔다. 세상이 이렇게 얼렁뚱땅 생겼다는 걸 엄마를 통해 배웠다. 세상은 치밀해 보이지만 사실 대체로 엉성하고 얼렁뚱땅 넘어간다는 것을. - P93

이 사랑은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 사랑일까. 나를 꽉 끌어안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이 미적지근한 온도의 사랑은. 엄마가 내게 마지막으로 알려준 것은 온도였다. 이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가, 이런 온도의 존재를 만나야 한다고. - P153

내가 가족들을 가능 늦게 만났잖아. 늦게 태어났으니까. 그 단단한 결속력, 나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에 쌓았을 추억. 그런 걸 감내하고 버텨야 하는 자리라고, 막내가. 그런 의미로 애교란 살아남기 위한 생존수단인 셈이지. 나는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어필. 마치 강아지나 고양이가 주인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애교를 부리듯이. 언니는 그럴 필요가 없었겠지. 언니가 태어났을 때는 언니 혼자였으니까.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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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이 막걸리라면 그걸 그린 자화상은, 그나마 볼 만한, 증류식 소주 같은 거고 역사가 보리로 담근 발효주라면 소설은 그걸 증류한 위스키라고 할 수 있을 테죠. 히치콕이라는 영화감독도 비슷한 말을 했어요. ()이란 지루한 부분을 오려 낸 인생이다. 영화가 인생을 그대로 옮겨 놓기만 한 거라면 사람들이 왜 그걸 보고 있겠어요? 더럽게 지루한데다 매일 신물나게 보고 겪는 게 그건데요. 저처럼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죠. 창밖의 소리가 아무리 싱그럽고 청량해도 그걸 그대로 옮겨 놓은 건 음악이 아니라는 걸요. 반대로 아무리 비싼 악기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해도 낯설고 기이하기만 한,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감정과 무관한 소리들 역시 음악이 아니죠. 그건 그냥 악기로 만들어 낸 소음일 뿐이니까요.


(8-9)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겪지 않은 것과 다름없고, 아무것도 겪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끝내주는 음악은 끝난 뒤의 침묵도 끝내주죠. 죽여주는 영화는 극장 불이 켜진 뒤에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잊어버리게 하고요. 음악이든 그림이든 영화든 소설이든 그제 제대로 된 작품이라면 체험을 만들어 내야 해요. 그게 아니라면 뭘 제대로 만든 게 아닌 거죠.


(17)

준연은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하나 마나 한 소리 같지만, 진실도 그 진실을 체험하는 것도 정말 중요해요. 한번 생각해 보자고요. 누가 자신이 죽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 수 있나요? 또 누가 태어남에 대한 기억이나 감각을 갖고 있나요? 우리는 태어났다는 것도 죽는다는 것도 이야기로만, 체험이 아니라 간접적인 증거로, 자료로만 알고 있어요. 시간도 마찬가지죠. 어떨 때는 1분이 한 시간 같지만 게임이라도 하면 사흘이 한나절 같잖아요. 그 두 가지 시간이 같은 건지, 다른 건지 우린 몰라요. 그저 같겠거니 생각할 뿐이죠. 태어남과 죽음에 대해서도 그러겠거니, 하듯이요. 사실 우리한테 발생한 어떤 사건보다 가장 크고 중요한 사건인데도 그렇죠. 준연은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리는 우리한테 가장 중요한 것들을 실은 말로만, 추측으로만 알고 있어요.


(27)

좋은 사람이란 그 한 사람만 있어도 살 만하다 생각이 드는 사람이죠. 싫은 사람이란 그냥 생각하기도 싫은, 결국엔 우리와 무관한 사람들일 뿐이고요. 제 생각에, 분명한 건 이거예요.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살 수는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잘, 열심히 살 수는 없어요. 그게 우리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이유고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싫은 사람에게도 자지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낼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게 밑진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싫은 사람을 만나고 겪어 봐야 좋은 사람이 왜 좋고 어떻게 좋은지 알 수 있으니까요. 또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싫은 사람은 대가고 좋은 사람은 목표죠. 좋은 사람, 싫은 사람이란 글자 수만 같을 뿐 사실 그렇게나 다른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67)

압도적인 풍경을 볼 때 풍경과 그 풍경을 보고 있는 아주 작은 자신을 함께 지각하게 되는 것처럼, 침묵과 그 침묵을 드는 내가 거기에 있었다. 이전에 준연이 말했던, 음악이 끝나고 달라진다는 침묵이 바로 이런 것임을 나는 실감할 수 있었다. 무음이 아닌, 음악에 빗질이 된 것처럼 정갈하고 가지런한 고요함. 거긴엔 침묵이 주기 마련인 두려움도 의심도 없었다. 오직 파고들 듯 깊숙이 간직되는 환희만이 있었다. 연주회장에서 우리를 포효하듯 환호하게 하고 열렬히 박수치게 만드는 환희. 어쩌면 우리는 이런 침묵을 듣기 위해 음악을 듣는 건지도 몰랐다.


(109-110)

내가 누군가와 연애를 했던 건 늘 그렇게 예쁨을 발견할 때였다. 내 기준에서, 연애란 예쁜 여자와 하는 게 아니었다. 예쁜 데가 있는 여자와 하는 게 연애였다. 객관적으로 예쁘건 말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예뻐 보이려는 것도 나는 싫은 쪽에 가까웠다. 멋있어 보이려는 남자가 결코 멋있지 않듯 예뻐 보이려는 여자도 결국에는 예쁘지 않았다. 남자든 여자든 자기가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는 사람과 하는 대화는 금세 지루해졌고 대화가 지루하면 외모도 지루해졌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랬다. 술자리가 끝나기도 전에 한창 술에 취해 있을 때조차 내가 왜 여기 앉아 이 술값과 시간을 버리고 있나 싶어졌다. 지금 내 앞에 있는 하진은 아니었다. 계속 얘기하고 싶은 여자, 웃게 해 주고 싶고 나를 웃게 해 주는 여자였다. 아무리 웃고 예기해도 지치지 않을 것 같은, 오히려 더 웃고 얘기하고 싶어지는 여자.


(127-128)

하진의 말대로 그때는 몰랐다. 어렸기 때문에 모르는 건 많고 아는 건 적었지만, 생각은 늘 반대였다. 다 안다고, 내가 아는 걸 사람들은 모른다고 생각했다. 실상은 사람들이 아는 걸 내가 모르는 것이었는데, 뭔가를 안다는 건 나만 안다고 게 아니라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조금 더 안다는 뜻에 불과한데도.


(137-138)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모든 게 쉽고 가벼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문제들은 어렵고 복잡해졌다. 가진 것도 지킬 것도 적은,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가 늘 더 쉽고 더 가벼웠다. 똑 같은 외도라도 연애할 때는 바람이지만 결혼하고 나면 불륜이 되듯.


(178-179)

친구와 연인이 다른 것 같지만 진실한 의미일 때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연인이란 내가 이성을 발견한 타인이었다. 친구란 내가 나 자신을 발견한 타인이었다. 친구는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연인은 이성으로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195-196)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실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준연이 말했다. 꿈과 이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고요. 현실과 반대라거나 동떨어진 거라고들 생각하지만, 꿈이나 이상이 없다면 현실은 점점 더 시궁창이 될 수밖에 없고 또 현실이 온전하지 않으면 꿈이나 이상도 건강할 수가 없잖아요. 가난하고 못살았기 때문에 다들 희석식 소주밖에 마실 게 없었고 그래서 술이라고 하면 그런 소주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처럼요. 더 나은 건 늘 있어요. 현실에 아직 없기 때문에 꿈이나 이상이라는 망원경으로 볼 수밖에 없을 뿐이죠.


(214)

우리는 한 인생에서 오직 한 사람만 될 수 있어요. 인생은 하나고 우리의 시간은 하나니까요. 우리는 다 매여 있어요. 속박당해 있죠. 인생에, 시간에요. 그걸 벗어나려고 하면 방종이고 망상인 거고 거기에 갇히려고 하면 감상(感傷)이고 자박(自縛)인 거예요. 우리는 속박 안에서 생각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해요. 벗어나려 하지도 갇히려 하지도 않은 채로요. 그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속박이라는 뜻이죠. 어떤 속박을 선택하느냐가 우리의 자유예요.


(223)

우리에게, 남자들한테 사랑을 가르쳐 주는 건 늘 여자라고요. 안아 주고 보살펴 주는 최초의 어머니로서, 또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는 사람으로서도, 늘 여자들이 우리에게 사랑을 느끼게, 보여 주고 일깨워 주죠. 여자들이 아니라면 우리가, 남자가 사랑이라는 걸 알 수 있을까요? 애초에 우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잖아요.


(270)

맞아. 배부른 소리야. 하지만 배가 부르니까 해야 하는 소리지. 배가 부르다고 만족할 수 없는 게 우리니까. 인간이란 먹고 살기 위한 존재에 그쳐지지가 않으니까. 우리한텐 좋은 술이 필요해. 좋은 집, 좋은 차, 외식도 하고 드레스도 입어야 돼. 그래야 살았다가 아니라 살아 있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 먹고 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으로,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건, 남들보다 더 많이 먹고 마시는 게 아니라 더 좋은 걸 먹고 마실 때니까. 물론 없어도 먹고사는 데아무 지장 없지. 하지만 그것뿐이면 우리가 먹고살기만 하는 존재 같아지는 거야.


(280)

살아 있는 것이라서 아름답다는 건, 사라지는 것이라서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해. 이렇게 생생하고 울창하게 살아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메마르고 작아지겠지. 음악도 그래. 아름답지만 오직 만들어지는 그 순간에만 존재했다가 끝나면 사라져. 술도 아름다워. 솔직하고 속 깊은 얘기들, 울고 웃는 것들이 다 비워지는 술병과 함께 사라지지. 아름다운 건 다 살아 있고, 사라지는 것들이야. 그래서 우리는 그걸 만들지. 만들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으니까. 오직 사라지기만 할 테니까. 만든다는 건 사라진다는 걸 받아들인다는 뜻이기도 해. 거기에 만든다는 것의 아름다움이 있는 거지.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만든다는 것만큼 살아 있다는 걸, 사랑한다는 걸 증거하는 건 없으니까. 사람들은 아름다움이 무용하다고, 쓸모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의 쓸모와 유용함을 일깨워 주니까. 우린 아름다운 걸 좋아해. 아름다운 걸 사랑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아름다운 걸 만들 수밖에 없지.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 그게 우리의 능력이야. 다른 어떤 생물에게도 없는, 오직 신만을 닮은 우리의 능력.


(293)

이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 흔히 <월광 소나타>라고 하는 곡이에요. 들어 본 적 있어요? 준연이 말하며 비장한 느낌의 셋잇단음표를 연주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유명한 곡이었다. 준연이 나를 보고 말했다. 이건 죽음의 선율이에요. 다가오는 죽음, 피할 수 없는 죽음, 억울하고 비통한 죽음이죠. 제 마음대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베토벤이 모차르트에게서 빌려 온 선율이에요. 모차르트 오페라에 그렇게 나오거든요. <돈 조반니>에서 기사단장이 살해당할 때 거의 똑 같은 선율이 현악으로 연주되죠. 그리고 베토벤도 이 곡을 쓸 무렵 청력을 상실해 가고 있었어요. 그런 음악가로서 죽음을 의미했죠. 역시나 다가오고 피할 수 없는, 억울하고 비통한 죽으미요.


(296)

음악 안에서는 아무것도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규칙이 있을뿐 모든 게 상대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곡을 쓴다는 건 음표 하나하나가 아니라 이런 맥락들을 엮고 쌓아올린 총체적인 구조고요. 거기서 가지 위에 잎이 돋듯 음표들이 자라나는 거예요. 음들은 300년 전에도 있었고, 2000년 전에도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도 이미 있었어요. 음악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표기법, 악기, 작곡법, 연주법 같은 것에 따라 발견되고 발전해 왔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맥락과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게 한결같이 곡을 쓰는 사람의 몫이고 노동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았어요. 시대나 사조마다 달라지는 것도 음악이나 음들이 아니라 이런 맥락과 구조에 대한 것일 뿐이죠.


(346)

사랑은 인정이고 긍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이 죽음에 반항하는 방식이었다. 사랑하고 있을 때, 단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을 열렬히 실감할 때, 죽음은 단지 침묵에 불과해진다. 하진의 연주가 끝났을 때 들였던 그 의심도 두려움도 없고 외로움마저 없는 침묵. 사랑은 환상이나 감상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것 없이도 사랑은 이미 사랑이었고 절실히 필요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만으로, 허기를 채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까.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할 때 죽음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까. 자식들이 커 간다는 그 실감 속에서 부모들이 다 그런 거지, 한마디로 자신들의 늙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듯. 그 긍정, 인정이 슬프면서도 기쁜 것이듯 사랑도 기쁘고 그래서 슬펐다. 모두, 모든 것이.


(381-382)

최악이라는 건 생각하자면 끝이 없어. 우리 벌써 거기에 대해서는 얘기했잖아. 진짜 최악의 의미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이고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아직 있다면 최악은 아니야. 그러니 최악이란 늘 접어 놔야 하는 거지. 할 수 있는 건, 언제 어디서든 늘 있어. 그게 없다면 어차피 안 되고 안 될 거, 그냥 불운이고 불행일 뿐이야.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런 건 그저 마음과 시간을 스스로 좀먹는 짓일 뿐이지. 거기에 붙들리면 아무것도 해 나갈 수가 없어. 할 수 있는 만큼만, 그걸 피하고 대비할 만큼만 하게 되니까. 일이란 건, 그렇게 하는 게 아냐. 방어가 아니라 공격이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걸 해야 되는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이 요구하는 걸 해야 하고, 그걸 할 때까지 해내는 거야. 그래야 성장이라는 게 되는 거니까, 그래서 성장이라는 게 힘든 거고. 하진은 진지하게 나를 봤다.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아니라 해내야 하는 걸 하는 거, 그게 일이야. 그걸 알면 할 수 있어. 죽고 사는 일도 아니고 다들 그렇게 뭔가를 해내니까.


(488-489)

아버지가 말했다. 세상만사 다 길이 있는 법이다. 왜냐하면 다들 이렇게 길을, 누가 봐도 아무 쓸 데 없는 길을 뚫어 놓으니까. 이렇게 뚫어야 알뜰살뜰 여기저기서 기름칠해 주는 사람이 생기거든. 시키지 않아도 똥 치워 주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우습지. 크고 빳빳한 기름종이들 살랑살랑 흔들어 주면 다들 혓바닥 내밀 듯 손을 내밀지. 아버지는 나를 봤다. 인간이란 다들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죄 한두 개쯤은 지어 가면서 사는 거다. 어느 자리쯤 올라서면 짓지 않을 도리도 없고, 짓지 않을 이유도 없지. 감당할 수 있으니까. 감당이 되면 죄가 아니니까. 감칠맛이 돌지. 남들 다 하는 거 하면서, 지키라는 거 지켜 가면서 남들 안 볼 때 한번씩 혀를 낼름, 낼름해서 핥아 보는 그맛이 혀에 감겨서 잊히질 않거든. 그럴 때야 사는 거 같으니까, 사는 맛이 그거니까. 남들 못하는 걸 나만 할 때, 남들 모르게 나만 아는 걸 하는, 바로 그때.


(500)

무엇을 사는지(購買)가 어떻게 사는지(生活)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살 수 있는 능력이다. 아버지는 톡톡 시가를 떨어 재떨이에 떨어진 재를 시가 끝으로 부쉈다. 그러고는 끄트머리를 세워 내게 보였다. 여기 있는, 요 타고 있는 까만 재, 이게 우리 인간이야. 그 가운데에 빨갛고 뜨거운 불이 세상이지, 불가에서 말하는 아수라. 아버지가 깊게 한 모금을 빨자 빠직거리며 담뱃잎이 타 들어갔다. 가운데가 빨갛게 환해졌다.


(566)

마음이라는 건 세면대 같아요. 거기엔 뭘 붓든 모두 한곳으로 흘러 들어가죠. 우리 자신이라는 그 구멍으로요. 하지만 그 구멍이 이어지는 곳은 결국 하수구, 하수도예요. 썩어 가고 악취를 풍기고 끈적거리고 질척거리는, 토악질 나는 것들밖에 없죠. 거긴 우리한테 묻은 더러운 걸 씻어 내는 데지 우릴 욱여넣어서 더러워지는 데가 아니에요.


(659)

사랑의 본연이 그런 것이기 때문에 사랑은 다른 사랑과 비교당하지도 평가당하지도 않았다. 가장 좋은 것, 값비싼 걸 해 주는 게 사랑이 아니니까, 최악을 지워 주고 최악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 모든 수고를 다해 마지막까지 같이 있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게 바로 사랑하는 사람의 의미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일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람이 된다는 건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믿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뜻이니까. 그게 늘 하진에게 해 주지 못한 것, 그래서 매번 틀리고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사랑한다면서도 이해하는 만큼만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만큼만 믿으려 했으니까. 그래서 그건 이해도 믿음도 아니었다. 알던 만큼만 아는 건 앎이 아니니까, 모르던 걸 아는 앎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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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노트르담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4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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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그럼 오늘은 <파리의 노트르담> 2권을 이야기해줄게. 1권에서 카지모도가 라 에스메달라를 납치해갈 때 구해주었던 사람이 있었잖아. 기억나니? 그 사람은 중대장 페뷔스라는 사람이야. 페뷔스는 약혼녀와 약혼녀의 친구들과 베란다에 있다가 라 에스메달다가 춤추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약혼녀와 약혼녀의 친구들은 페뷔스에게 그 춤추는 이집트 아가씨를 불러서 이쪽으로 오라고 부탁했어. 그녀들은 에스메랄다를 조롱하고 놀리고 싶었거든. 에스메랄다는 자신을 부르는 페뷔스를 보았단다. 자신을 구해주었던 사람이란 걸 알았어.

사실 에스메랄다는 페뷔스가 자신을 구해준 이후 페뷔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단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불렀으니, 얼마나 떨렸을까. 에스메랄다는 자신의 반려 동물인 염소 잘리를 데리고 페뷔스에게 갔단다. 며칠 전 밤에 구해주었을 때 에스메랄다의 얼굴을 제대로 못 봤던 페뷔스는 이제서야 에스메랄다를 제대로 보고 호감을 가졌단다. 하지만 집시인 에스메랄다를 진심으로 사랑할 생각은 없었단다. 그것도 모르는 에스메랄다는 페뷔스도 자신을 사랑하는 줄 착각하게 되었어. 그런데 에스메랄다가 광장에서 춤추고 있던 모습을 노트르담 성당 꼭대기에서 몰래 훔쳐보고 있던 이가 있었어. 바로 클로드 부주교란다. 버려진 아이 카지모도를 데려고 와서 키워준 클로드 부주교. 그는 에스메랄다와 어떤 사이길래, 1권에서는 납치를 하려고 했고, 또 에스메랄다의 춤을 몰래 보고 있는 것일까.

클로드 부주교는 우연히 그랭구아르를 만나게 되었어. 그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거든. 그랭구아르는 거지 소굴인 기적궁에 잡혔다가 에스메랄다와 형식적이지만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지금은 거지들과 함께 지낸다면 최근 자신의 안부를 이야기를 했어. 그러자, 클로드 부주교는 격분을 했어. 어떤 부분이 클로드 부주교를 격분하게 했냐고? 바로 에스메랄다와 결혼했다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야. 클로드 부주교는 에스메랄다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해지고 감정이 격해졌단다. 어느날 클로드의 망나니 동생 장이 돈을 빌려달라고 찾아왔단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 장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어 답답하지만, 그의 부탁을 안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었어. 돈을 주고 돌려보냈지. 그렇게 얻은 돈으로 장이 하는 것은 술집에 가서 술을 먹는 것.. 장은 페뷔스와 알고 지내고 있었어. 둘이 함께 만나 술도 먹었단다.


1.

에스메랄다는 페뷔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이후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어. 결혼을 하게 된다면 페뷔스와 하고 싶어했어. 페뷔스도 에스메랄다를 가끔 만났단다. 하지만 페뷔스는 그냥 즐기기 위해 만나는 것이었어. 집시 아가씨와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 에스메랄다는 이제 열여섯 살로 순진하고 사람 볼 줄도 모르고페뷔스와 에스메랄다가 데이트를 하다가 포옹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클로드 부주교가 나타나서 페뷔스의 등과 목을 찌르고 도망갔단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고, 놀란 에스메랄다는 정신을 잃었어.

경찰이 그 현장에 들이닥치고, 에스메랄다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에스메랄다는 살인자가 되어 있었어. 괴한이 침입을 했고, 자신이 괴한의 얼굴을 보았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에스메랄다의 말을 믿지 않았어. 결국 에스메랄다는 페뷔스를 죽인 죄로 재판까지 받게 되었단다. 재판장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클로드 부주교였단다. 에스메랄다는 클로드 부주교를 알아보았지만, 그녀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자신이 결백하다고 계속 이야기를 했지만, 고진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에스메랄다는 자신이 페뷔스를 죽였다고 거짓 자백을 했단다. 거기에 에스메랄다는 마녀라고 판결받았단다.

유럽의 중세시대에는 마녀사냥이라고 해서, 기독교 교리와 어긋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을 마녀로 몰아 죽인 일이 있었어. 에스메랄다도 마녀로 지목되어 판결되었단다. 에스메랄다의 반려 동물인 염소 질다가 재주가 많은데, 그것이 마녀인 에스메랄다가 마법을 썼기 때문이라고 했어. 마녀로 판결을 받으면 교수형을 받아야 했단다. 그렇게 에스메랄다는 감옥에 갇히게 된단다.

….

감옥에 갇힌 에스메랄다를 찾아온 클로드 부주교. 지금까지 클로드 부주교가 에스메랄다에게 보였던 행동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스토킹 같은 짓들이었어. 클로드 부주교는 왜 그런 일들을 했을까. 클로드 부주교는 신학이 독실한 사람이었어. 평생 신부로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지. 그런데 어느날 에스메랄다를 보고 자신의 마음이 심하게 흔들렸단다. 에스메랄다를 깊이 사랑하게 된 거지. 클로드 부주교도 괴로워했어. 평생 신학과 함께 살려고 했는데, 사랑이라니자신이 이런 모습에 정신이 혼미해졌어. 감옥에 갇혀 있는 에스메랄다를 찾아와 이런 이야기들을 했단다.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자신이 에스메랄다를 탈출시켜줄 수 있다면서 자신과 함께 살자고 했어. 클로드 부주교는 에스메랄다와 함께 한다면 신학도 버릴 수 있었던 거야.

하지만 에스메랄다는 클로드가 페뷔스를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런 클로드와 함께 할 수 없었지. 그를 경멸했어. 클로드는 에스메랄다를 결국 구해주지 않았단다. 에스메랄다가 자신의 뜻에 동의했다면 신학을 버리고 살아가려고 했고, 만약 에스메랄다가 자신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에스메랄다를 죽게 나둘 생각이었단다. 에스메랄다가 죽는 것은 마음 아프겠지만, 그렇게 되면 다시 신학에 몰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야. 클로드 부주교는 완전 사이코패스 스토커였구나.


2.

에스메랄다가 교수형에 처하는 날이 되었어. 그레브 광장에서 진행되었단다. 클로드는 신부 자격으로 참가하였고, 에스메랄다에게 다시 한번 권유를 했단다. 자신을 사랑해준다면 살려줄 수 있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때 에스메랄다는 멀리 한 저택의 발코니에서 페뷔스를 보았단다. 죽은 줄 알았던 페뷔스가 그곳에 있었어. 사실 페뷔스는 살아 있었단다. 클로드에게 찔려 중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몇 달 치료를 받고 다시 회복을 한 거야. 에스메랄다는 당연히 페뷔스가 자신을 구출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페뷔스는 에스메랄다과 마주쳤던 눈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단다. 이에 에스메랄다는 배신감에 큰 충격을 받았단다. 이제서야 페뷔스의 거짓 사랑을 알게 된 거지.

이제 에스메랄다는 죽을 일만 만났어. 그런데 교수형 직전에 카지모도가 나타나서 에스메랄다를 납치해서 도망갔어. 에스메랄다를 데리고 노트르담 성당으로 피신했단다. 당시 성당 안은 성역으로 죄수들이 성당 안에 있어도 잡아가지 못했어. 하느님의 보호하고 있는 곳이니까 말이야. 그래서 카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그곳을 데리고 온 거야.

1권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카지모도를 모두 무시하고 조롱했는데, 에스메랄다만이 카지모도에게 물을 전해주었잖니. 카지모도는 아마 그때부터 에스메랄다를 진심으로 사랑했을 거야. 그래서 에스메랄다를 구출해서 노트르담 성당으로 피신할 생각까지 한 거지. 에스메랄다는 성당 안에 있었지만, 그 밖을 나갈 수는 없었어. 나가면 곧장 잡히니까 말이야. 어쩌면 성당이 아니라 감옥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구나.

정신을 잃었던 에스메랄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카지모도를 보고 깜짝 놀라 다시 정신을 잃을 뻔 했어. 에스메랄다는 카지모도를 두려워했고, 시선을 피했어. 그러면서 자신을 죽게 놔두지, 왜 구해주었냐고 울면서 말했어. 카지모도는 자신도 예전에 도움을 받아서 그렇게 했다고 했어. 사랑,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단다. 에스메랄다는 성당 안에 머물면서 안정을 찾아갔어.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카지모도는 에스메랄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단다. 할 말이 있을 때는 문 밖에서 이야기를 했어. 에스메랄다가 자고 있을 때만 와서 잠자고 있는 에스메랄다를 바라보았지.

에스메랄다는 페뷔스가 자신을 외면했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었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카지모도는 페뷔스를 찾아갔단다. 페뷔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에스메랄다를 만나러 가자고 했지만, 페뷔스는 거절했단다. 에스메랄다가 마음 아파할까 봐 카지모도는 페뷔스를 만나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단다.

클로드 부주교도 에스메랄다가 노트르담 성당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되어 찾아왔단다. 더는 참지 못하고 에스메랄다를 겁탈하려고 했어. 에스메랄다는 카지모도가 준 호각을 힘껏 불었단다. 그 호각은 에스메랄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불라고 카지모도가 준 것이거든. 카지모도가 귀머거리이지만, 높은 호각 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 카지모도는 호각소리를 듣고, 에스메랄다에게 달려왔는데, 에스메랄다를 겁탈하려는 사람이 있는거야. 그 사람을 공격하고 죽이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자신의 스승인 클로드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카지모도는 잘못을 했다면서 사죄를 했단다. 카지모도에게 클로드는 절대적인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에스메랄다가 더 중요한 사람일지도 몰랐어. 심한 갈등을 하는 카지모도.


3.

클로드는 아직도 에스메랄다를 포기하지 않았어. 언제까지 에스메랄다가 성당 안에 있을 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어. 기적궁이라고 하는 거지 소굴에 있던 그랑구아르에게 이야기하여 노트르담 성당을 공격하게 했어. 그랭구아르는 기적궁의 리더인 클로팽에게 이야기하기를, 에스메랄다도 원래 기적궁 소속이었으니, 그녀를 구해주고 노트르담 성당에 보물도 훔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어.

이에 클로팽을 일당들을 데라고 노트트담 성당을 공격했단다. 이 공격에 클로드의 동생 장도 참여했단다. 카지모도는 노르트담 성당을 공격하는 기적궁 사람들이 적인 줄 알고 열심히 싸웠단다. 그 와중에 장은 죽고 말았어.

어수선한 틈에 그랭구아르와 클로드는 에스메랄다를 성당에서 빼갔단다. 클로드는 다시 한번 에스메랄다에게 자신을 사랑해 준다면 살려줄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죽음보다 싫다는 대답이었어. 클로드는 다시 그녀를 경찰에 넘기기로 한단다. 경찰을 불러오는 동안 클로드는 에스메랄다를 귀딜 수녀에게 잠시 맡겨주었어.

1권에서 귀딜 수녀 이야기했었는데, 기억나니? 본명은 파게트이고 자신의 어린 딸을 이집트 집시에게 빼앗긴 이후 이집트 집시들을 경멸하던 사람. 클로드의 부탁을 당연히 들어주었어. 에스메랄다는 이집트 집시 아가씨였으니 말이야. 그런데 에스메랄다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죽은 줄 알았던 자신의 딸이었던 거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기 신발 한 짝의 다른 쪽을 에스메랄다를 가지고 있었단다. , 이런 운명이….

귀딜 수녀는 에스메랄다가 경찰에 잡힐 위험에 빠진 것을 알고 숨겨 주었어. 그리고 클로드와 헌병대가 도착했을 때, 에스메랄다가 도망을 갔다고 했단다. 아빠도 제발조마조마하면서 읽어났단다. 귀딜 수녀의 에스메랄다 숨기기는 거의 성공할 뻔했어. 헌병대에 함께 온 페뷔스의 목소리가 들려 오기 전까지는 말이야. 페뷔스의 목소리를 들은 에스메랄다는 반가운 마음에 뛰어나갔지만, 에스메랄다는 헌병에 붙잡히고 말았단다. 귀딜 수녀는 엄마의 마음으로, 에스메랄다를 구해보려고 헌병대에 매달리다가 내동댕이쳐져서 그만 뇌진탕으로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결국 에스메랄다도 교수형에 처해져서 적었어. 에스메랄다를 지켜보며 기뻐하던 클로드 부주교. 그런 클로드를 보고 분노한 카지모도를 클로도를 종탑에서 밀어 떨어뜨렸단다. 그렇게 클로드도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는 카지모도도 사라졌어.

….

세월이 흐르고 사형수들의 시체를 보관하는 납골당. 그 안에 꼭 껴안은 두 사람의 뼈가 발견되는데,

하나는 교수형을 당한 사람의 뼈이고, 나머지 하나는 등이 굽은 꼽추의 뼈였단다. 카지모도는 죽은 에스메랄다를 꼭 껴안고 자신도 죽은 것이란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아빠는 <파리의 노트르담>이런 줄거리의 소설인 줄 처음 알았단다. 예상 밖의 줄거리구나. 지은이 빅토르 위고의 또 다른 명작 <레 미제라블>의 뜻이 불쌍한 사람들인데, <파리의 노트르담>에도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구나. 카지모도도 불쌍하고, 에스메랄다도 불쌍하고, 에스메랄다의 엄마인 파케트 귀딜 수녀도 참 불쌍한 사람이구나. 클로드 부주교의 빗나간 사랑만 아니었다면, 위 세 사람의 운명이 그렇게 비극적이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소설을 읽다 보니, 지난 여행에서 본 파리의 노르트담 성당이 다시 생각났어. 몇 년 전에 정신 나간 방화범에 의해 많은 부분이 불타서, 여전히 복원작업 중이지만 말이야. 다행히 앞쪽의 석조건물은 피해를 입지 않아서 그 위상을 볼 수 있었잖니. 그렇게 아픈 역사를 갖게 된 노트르담 성당에는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있더구나. 나중에 기회가 될 지 모르겠지만, 노트르담 성당이 다 복원이 되고 나면, 내부에도 한번 들어가 보고 싶더구나. 파리 여행 기념으로 읽었던 <파리의 노트르담> 많은 늦었지만, 그래도 여행도 다시 한번 떠오르게 해서 좋았단다.


PS,

책의 첫 문장: 여러 주일이 흘러갔다.

책의 끝 문장: 그가 껴안고 있는 송장에서 그를 떼어내려고 하자, 그것은 먼지가 되어버렸다.


중세에는, 하나의 건물이 완전한 경우에는, 땅속에도 바깥과 거의 같은 정도의 건물이 있었다. 노트르담처럼 말뚝 위에 세워져 있지 않다면, 궁궐이나 요새나 성당은 으레 이중의 토대가 있게 마련이다. 대성당에는, 밤낮으로 파이프오르간과 종소리가 울리고 불빛으로 넘쳐흐르는 지상의 홀 아래에, 낮고 캄캄하고 신비롭고 빛 없고 소리 없는, 말하자면 또 하나의 지하 대성당이 있었다. 궁궐이나 성에는, 감옥이 있었고, 때로는 분묘가 있었으며, 또 때로는 그 두 가지가 다 있었단다. - P159

신부는 숨이 막혀 또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고 나서 계속했다.
"벌써 반쯤 홀린 나는 무엇엔가 매달려서 추락을 막으려고 해봤어. 나는 사탄이 이미 내 앞에 파놓은 함정을 생각했어. 내 눈 아래 있던 여자는 하늘이 아니면 지옥에서밖에 올 수 없는 그런 초인적인 미인이었어. 거기에 있는 것은 약간의 우리 흙으로 만들어진, 그리고 내면에서 여자의 넋의 가물거리는 빛으로 희미하게 밝혀진 하잘것없는 처녀가 아니었어. 그것은 천사였어! 그러나 암흑의 천사, 불꽃의 천사였어. 광명의 천사는 아니었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당신 옆에서 염소 한 마리가, 마술사의 야연의 짐승 한 마리가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어. 한낮의 태양은 그 염소의 뿔을 새빨갛게 만들어주고 있었어. 그때 나는 악마의 함정을 보는 듯했고, 당신이 지옥에서 왔다는 것을, 당신이 지옥에서 온 것은 오직 내 영혼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어. 나는 그렇게만 믿었어."
- P171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마음속을 파고 들어가면서, 자연이 거기에 얼마나 널따란 자리를 정열에게 준비해 놓았는지 보았을 때, 그는 한결 더 고통스럽게 비웃었다. 그는 자기 마음의 밑바닥에서 자신의 모든 증오를, 자신의 모든 악의를 휘저어 보고, 환자를 진찰하는 의사와 같은 냉철한 눈으로 그 증오는, 그 악의는 부패한 사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간의 모든 미덕의 원천인 이 사랑은 신부의 가슴 곳에서는 끔찍한 것으로 변한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와 같이 생긴 인간은 신부가 됨으로써 악마가 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는 소름 끼치게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는, 자신의 숙명적인 정열, 결국 한 여자에게는 교수대를, 한 남자에게는 지옥을 가져다주어 그 여자는 사형수가 되고 자기는 영벌 받는 사나이가 되는 결과밖에 초래하지 못한 그 부식적이고 유독하고 증오에 넘친, 빙탄 같은 사랑의 가장 끔찍한 면을 생각하고는 다시 창백해졌다. - P225

여러분은 저를 가엾게 여겨주실 거예요. 네, 나리들? 이집트 계집들이 제 딸을 훔쳐 갔어요. 그년들은 십오 년이나 그 애를 감추고 있었어요. 저는 그 애가 죽은 줄로만 믿고 있었어요. 상상을 좀 해보세요. 좋은 친구 양반들, 제가 그 애를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는 걸 말이에요. 저는 십오 년간을 여기서, 이 지하실에서, 겨울에 불도 없이 지냈어요. 그건 참 힘든 일이에요. 이 조그맣고 가련한 사랑스러운 신짝! 제가 하도 울부짖었더니 하느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주셨어요. 오늘 밤, 하느님은 제 딸을 돌려주셨어요. 하느님의 기적이지요. 제 딸은 죽지 않았어요. 여러분은 어 재를 제게서 뺏어 가지 않겠지요. 저는 확신해요. 그것도 저라면, 아무 말 않겠어요. 하지만 제 딸은 열여섯 살짜리 어린애라고요! 햇빛 볼 시간을 그 아이에게 남겨주세요! 저 애가 여러분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거예요? 전혀 아무 짓도 한 게 없어요. - P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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