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가니 청명하고 푸른 하늘 아래, 잔디와 화단이 촉촉했다. 하지만 도로는 벌써 빗물이 말라 건조했고, 공기에 상쾌한 기운이 없었다면 태풍이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날씨였다.  - P142

엘런은 간밤에 올랐던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빠르게 나아갔다. 그런데 자꾸 굽이가 나타나서 발걸음을 재촉하면 잠시 후 또 다른 굽이가 나타났다. 높은 담벼락이 솟아나서 바다 풍경을 가리기도 했다. 야자수가 담장보다 높이 솟아 있었음에도 가지가 풍성하지 않아서 그늘은 없었다 무화과나무 몇 그루만이 익숙한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 P142

날이 점점 뜨거워졌다. 언덕 꼭대기에 멈춰 서서 브래지어를 풀었다. 저 밑에서, 정확한 거리를 가늠하기는 힘들었으나 저기 내려다보이는 마을에서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기를 바랐다. 

집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었고, 그러자벌써 기분이 좋았다. 배우를 놓친 아쉬움도 사라졌다. 시드니로인한 메슥거림, 서글픈 여자로 인한 슬픔도 전부 엘런의 삶에서사라졌으므로 이제 엘런은 안전했으며, 집에 가면 아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엘런은 달리다가 멈춰 서서 숨 고르기를 반복했는데, 달릴 때든 멈출 때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 P1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밖으로 나가니 청명하고 푸른 하늘 아래, 잔디와 화단이 촉촉했다. 하지만 도로는 벌써 빗물이 말라 건조했고, 공기에 상쾌한 기운이 없었다면 태풍이 지나갔다는 사실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날씨였다.  - P142

엘런은 간밤에 올랐던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빠르게 나아갔다. 그런데 자꾸 굽이가 나타나서 발걸음을 재촉하면 잠시 후 또 다른 굽이가 나타났다. 높은담벼락이 솟아나서 바다 풍경을 가리기도 했다. 야자수가 담장보다 높이 솟아 있었음에도 가지가 풍성하지 않아서 그늘은 없었다. 무화과나무 몇 그루만이 익숙한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 P142

높은 담벼락이 솟아나서 바다 풍경을 가리기도 했다. 야자수가 담장보다 높이 솟아 있었음에도 가지가 풍성하지 않아서 그늘은 없었다. 무화과나무 몇 그루만이 익숙한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담벼락에서 피어난 양귀비는 크레이프로 만든 종이꽃 같았다. 엘런은 이따금 한 송이씩 뽑아서 향기를 맡고는 손가락으로 꽃송이를 찢어 버렸다.  - P1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의에 대한 답변>
... ... 사랑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당신은 일생 동안단 한 번이라도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에 빠지면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되는지, 솔직하고순수한 마음으로 느껴본 상태라야만 합니다. 물론 분노나 이름 없는 슬픔 등 모든 이가 살면서 한 번쯤 겪게 되는 감정들의 경우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에 곁들여서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충고는, 최대한 자주 방에서 체조 연습을 할 것, 숲으로 산책을 자주다닐 것, 폐를 강화시키는 훈련을 할 것, 스포츠를 할 것, 단 종목을 잘 선별해 절도 있게 할 것, 서커스 구경을 갈 것, 광대들의 태도를 익힐 것, 그래서 어떤 재빠른 몸놀림이 영혼의 전율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할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연구할 것 등입니다.

무대는 시가 감각으로 구현되는 장소, 시의 열려있는 목구멍입니다. 당신 다리의 움직임에서 어떤 구체적인 영혼의 상태가 가슴을 도려내는 표현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당신의 얼굴이나 얼굴이 나타내 보여야할 수천 가지 표정은 말할 것도 없죠. 당신의 머리카락도 당신의 의지에 복종해야 합니다. 당신이 경악을 몸으로 표현할 때 머리카락이 곤두선다면, 은행가든 양념가게 상인이든 할 것 없이 모든 관객들이 당신 앞에서 오싹함을 느낄 테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이 안읽혀 ...
수술실 들어간 내 꽁주는 왜 안나오지
한 시간이면 되는 수술이랬는데...

"130으로 달리고 있었어." 누군가가 말했다. 대부분 프랑스어를 썼다. 죽은 자는 독일인이라고 했다. 독일 신분증을 갖고있다고. 엘런은 이국에서 병이 나거나 죽는 상상을 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빛기둥이 있는 런던 집이 아니라 혈육이 사는 고향으로 가고 싶었다. 엘런은 지금 옆에 있는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자기 머릿속의 생각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몸을 떨었다. - P101

현실에서 사라져 어린 시절로, 엘런의 두려움을 탄생시킨 어둠의 근원으로 이동했다. 서둘러 기도문을 외웠고, 동물들이 바보처럼 빠져 죽곤 하던 습지의 수렁과 미친 여자 둘이 자살한 산속의 호수를 떠올렸다. 주변 몇 킬로미터 내에 아무런 건물도 보이지 않던 산속 호수 그 자체가 여름날의 서정이고 기만이었다. 잔잔한 수면 위의 수련. 잎보다 꽃이 더 풍성한 식물. - P101

엘런은 죽음이 두려웠다. 엘런은 언젠가 바다에 갔을 때 위험할 정도로 깊은 곳까지 나아가려는 자신을 제지하던 젊은 신부를 떠올렸다. 신부의 눈은 애정을 담은 채 부드럽게 빛나고 있었다. 신부는 긴장한 듯 경고문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엘런은 보지 못했다. 신부가 없었다면 충격 속에서 대비도 없이 원치않는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엘런은 눈을 빛내며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다. 신부의 창백한 손을 잡고, 검은색 커다란 사제복 소매에 가려 보이지 않는 손목 쪽으로 손가락을 넣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신부의 순결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감히 그러지 않았다. - P101

"뒤로 쓰러져 봐." 엘런이 팔을 놓아주자 바비가 말했다.
"못 해." 엘런이 말했다. "운동 신경이 없어서"
"젠장, 맞는 말이야." 바비가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가르쳐주겠어."
그러고는 손을 뻗었는데, 그 움직임이 마치 날개를 펴는 독수리처럼 잽싸고 날랬다. 엘런이 독수리에 관해 아는 것이라고는 어디서 들은 이야기뿐이었지만. 바비는 엇비슷한 간격으로 손가락을 벌리고 손바닥을 조금 오므리면서 그 위로 쓰러지는 엘런을 받아 내려고 준비했다. - P111

"어서." 바비가 말했다. 다른 손으로 엘런을 살포시 뒤로 밀었는데, 몸을 기울인 엘런의 모습은 뻣뻣한 막대기 같았다.
"날 믿으라니까." 바비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엘런이 그간의 거친 이야기와 싸움과 술에 취한 나날들을 잊어버릴 수있을 만큼 부드러웠다. 엘런은 뒤로 쓰러졌으나 자연스럽지 않았고, 바비는 "좋아."라고 외치며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뒤에 선 그는 엘런이 쓰러질 때마다 조금씩 뒤로 움직였으므로, 엘런은 매번 더 큰 용기를 내야만 했다. 둘 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바비가 확실하고 근사하게 엘런을 받아 낼 때마다 엘런은 바비의 든든한 손이 너무나도 좋아서 공연히 더 안겨 있고는 했다. 
비스듬하게 바닥을 향한채, 그에게 몸을 맡긴 채. 바비는 단 한 번도 목을 잡거나 시시덕거리지 않았으나 엘런은 지금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음을 알았다.
- P11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4-11-16 0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하수 2024-11-16 20:50   좋아요 1 | URL
네~~^^
복강경으로 하는 간단한 수술이었는데 회복실에서 기다렸다 나온거라 꽤 걸리더군요!
지금은 집에 데려와 몸조리하고 아주 좋아졌어요.
입맛도 돌아와 잘 먹어서 그저 감사한 날입니다~~^^
 

나 원 참!
혼자 있는 여자한텐 말을 걸어줘야한단 법이라도 있나. 뭔 근자감인지...

6장
식당에는 테라스가 있었다. 한쪽 끝에서 건너편 끝까지 하얀 식탁이 죽 늘어선 너머로 야자수가 보였다. 근사한 야자수 기둥 위로 노란 조명이 환하게 비추었고 식탁 위에선 촛불이 타올랐다. 성수기 동안 흘러내린 촛농이 촛대 옆면에 두껍게 굳어 있었다. 두툼한 촛대 안에서 온갖 색상의 양초가 타올랐고, 온갖 색상의 촛농이 굳은 흔적을 남겼다. 엘런은 남자의 양초 이야기를 떠올렸다. 크리스마스 연휴 무렵이면 두 사람은 친구가 되어, 엘런이 남자에게 선물을 주게 될까?  - P58

옆자리에는 가벼운 당뇨를 앓는 미국인 의사가 앉았다. 신경 써서 식단을 관리해야 하는 사람.
"어디에서 왔어요?"
"잉글랜드요." 엘런이 말했다. 엘런은 잉글랜드에서 왔다고 말하기가 지겨웠고 게다가 그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 왔다고 말하면 요정이나 할머니에 관한 지루한 이야기가 이어지니 어쩔 수 없었다. - P58

남자는 가족이 있지만 혼자 공부 중이라고 했다. 외롭다고.
"오해하지 말아요." 남자가 말했다. "나는 행복합니다."
아이들과 햄버거가 인생의 전부라고 했다.
"엘런은 어때요?" 그가 물었다.
"나도 행복해요." 엘런이 말했다. 가족이 있음을 넌지시 알리려고 자기 결혼반지를 내려다보았다. 둘이 카지노에 가면 어떨까?
"나야 좋죠." 남자가 말했다. 엘런이 고개를 저으며 무어라 대꾸하려는데 생선 가시가 목에 걸렸다.  남자가 빵 껍질을 건네고는 꼭꼭 씹으라고 했다.
"씹어요." 그의 목소리가 아주 컸다. 
시범을 보이려고 와작와작 씹었다. 정말이지 상스러운 인간이었다. - P59

"오해하지 마세요." 그가 말했다. "나는 저녁이면 마나님 모시고 외출하는 남자니까. 우린 즐겁게 지낸답니다."
엘런은 불쾌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엉뚱한 상상을 하실까 봐 마음이 안 좋아서요. 그러느니 처음 보는 여자랑은 절대 말 섞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고." 그의 눈에 노여움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엘런은 줄곧 냅킨의 꿰맨 자리만을 내려다보았다. 여러 차례 세탁한 까닭에, 꿰맨 실은 벌써 오래전에 천만큼 하얗게 표백되어 있었다. - P59

"그래도 같이 가시겠어요." 남자가 말했다.
"그만 물어봐요." 엘런이 버럭 대꾸했다. 남자는 손가락을튕겨 웨이터를 불렀다. 앳된 남자 직원이 다가오자 미국인은디저트 주문을 취소해 달라고 말했다. 직원은 말을 알아듣지못했다. 미국인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자리를 떠났다. - P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