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민주주의 역사
로저 오스본 지음, 최완규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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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폭력이 영토와 권력과 집과 노예와 먹을 것과 온갖 아름답고 진귀한 것을 보장해 주던 그 시절에, 왜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사이좋게 나눠 갖길 원했던 걸까? 그들이 너무 순진했던 걸까? 아니면 만민의 평등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본능 이었던 걸까?


아테네는 1년 내내, 열흘에 한 번씩 민회가 열렸다. 아고라에 모여 정치와 국방과 경제를 논하던 시민들은 주홍 물감에 적신 밧줄을 흔들며 민회 참석을 독려하는 서기들의 고함 소리를 따라 원형 극장 '프닉스'에 모였다. 6,000명의 시민들은 그곳에서 500명의 평의원과 대면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누가 뽑히든 현실 세계에 어떠한 변화도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좌절하게 만드는, 그래 그렇게 우리를 정치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시시한 대의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아테네 시민이라면 누구나 1년에 한 번은 500인 평의회에 들어가 봉사해야 했다. 500인 평의회는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수의 특권층이 아니었던 것이다. 프닉스에는 이 500인 평의회와 시민들이 모여 침략과 평화, 공공 사업과 과세에 대한 결정을 모두 '합의'하에 도출해 냈다. 단군 할아버지가 웅녀와 결혼해 고조선을 세우던 그 시절에 말이다.





나는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가 기적처럼 느껴지는 것 만큼 이후 이 천년 가깝게 인류의 역사를 지배한 억압적인 통치 체계가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아테네 이후 민주주의를 실천한 국가는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대놓고 그리스 문화의 카피캣을 자처했던 로마의 공화정이(왕이 없는 정치 체제라는 뜻) 있긴 했다. 하지만 집정관들은 결국 황제를 자처했고 막강한 권력을 차지한 이들의 폭력은 자유와 토론을 중시하고 국가적 의사 결정에 기꺼이 참여할 힘을 지니고 있던 시민을 소수 특권층의 삶을 위해 착취 당하는 노예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아테네에서 평화를 부르짖고 전쟁에 반대하던 자유 시민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인간이 드디어 거추장스러웠던 가면을 벗어 던지고 본래의 잔인성을 되찾은 걸까?


이 후의 역사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바다. 물론 이 기간에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진 지역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15~16세기에 걸쳐 존재했던 '그라우뷘덴'은 주변 정세를 두고 봤을 때 아주 이례적인 직접 민주주의 국가였다. 이곳의 민주주의는 권력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한 통치 체제였다. 그 누구도 권력을 차지할 자격이 없으며 이로인해 그 누구도 타인을 통치할 자격이 없다면, 시민은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실행에 직접 참여해야만 한다. 민주주의가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 자발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아테네와 그라우뷘덴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계급적 평등(=권력의 부재)이야 말로 민주주의 탄생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반대로, 우리가 그것을 실천했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를 확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오랜 공백은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한꺼번에 채워진다. 분노한 파리 시민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으며 파리 시장 드 소비니와 그의 장인 풀롱을(가난한 자들이 배가 고프면 건초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한 인물) 참수했고 급기야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를 단두대 위로 끌고 간다. 왕의 머리가 떨어지는 순간 막강했던 프랑스의 전제 왕정은 막을 내리고 드디어 프랑스 공화국이 탄생한다. 이 사건은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입헌군주국 또는 공화정으로 이양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민주주의가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같았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혁명이 일어난 많은 나라가 국민의 투표를 허용하긴 했으나 선거권을 부여하는 기준은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그 기준은 대개 보유한 재산이었는데, 이는 근대 민주주의가 만민의 복지와 평등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한 합법적 지배 체제였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물론 많은 이들의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는 점차 올바른 길을 찾아갔으며 오래지않아 모든 성인 남성들이 선거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여성, 소수 민족, 노예들에 대한 선거권은 여전히 요원했으며 특히 여성 선거권의 경우 18세기, 19세기도 아닌 무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거의 모든 국가에서 그 권리가 인정된다. 그러고 보면 만인의 의한 만인의 민주주의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갓난 아기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 선거권의 확립으로 국민은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은 민주국가가 가진 영원한 숙제였다. 이에 레닌은 선거를 '억압받는 계급이 몇 년에 한 번씩 의회에서 인민을 '대표하고 억압'할 유산계급 대표를 결정할 권리를 누리는' 착취 행위(p. 324)라고 규정하기 까지 했다. 오늘날 세상을 웬만큼 아는 사람치고 이 말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을 엿 먹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선거다. 저 사람이 우리를 위해 일할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뽑으면 되고, 그 사람이 아니라는게 판명되는 돌아오는 선거를 통해 그를 몰아내면 된다. 민주주의는 이처럼 간편하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은 이 같은 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막강한 돈과 언론의 힘을 엎은 정치인들은 대다수 국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재선에 성공한다. 투표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습관화된 무력감은 결국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을 양산하고 급락한 선거율이 기존 세력의 재선에 도움을 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아무도 원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황당한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30년 전만해도 바람직한 민주사회의 시민은 사회주의자를 때려 잡고 정부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이었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오늘날 민주주의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나라는 없다. 민주주의는 오래된 것처럼 보이나 갓 솟아난 새싹처럼 싱싱하고 고정된 것처럼 보이나 시대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가 비록 우리가 의도한 바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사실에 심각히 좌절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각기 다른 시기에 존재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흐르면서 개선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p. 22) 라고 말했다. 기원전 500년 고대 아테네에서 발흥한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침체 일로를 걸어왔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민주주의는 확실히 진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대체로 점진적이지만 때때로 급발진을 시도하기도 하며 그 부작용으로 인해 잠시 주춤하기는 하지만 또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보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2012년의 대한민국을 떠올렸다. 지금 우리가 빠져 있는 비탄은 명백히 민주주의가 만들어 놓은 함정이었기 때문이다. 사악하고 멍청한 지도자에게 합법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정치 체제라면,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해 좀비가 된 국민들이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자를 구원자라 착각하고 표를 던지는 정치 체제라면, 그딴건 차라리 없어져 버리는게 나은거 아닐까? 이런 생각에 잠겨 우울해 질때마다 이 두꺼운 책은 나에게 이런 말을 던지는 것 같았다. 상처 받지 말라, 우리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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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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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은 분노, 허무, 그리고 아무리 떼어 놓으려 애를 써도 기어이 삶을 따라 잡고야 마는 죽음에 대한 무력감에서 나온다. 자신감 넘치고 강하며 선하고 올바른 자들은 역설을 비겁한 자조나 자포자기, 허약한 비아냥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오만한 소리! 역설은 허무를 온 몸으로 받아들였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삶의 정수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열심히 입을 놀릴 수 있는 사람은 역설을 지닌 자들이다. 그리고 대개는 그들의 역설에서 죽음을 때려 눕힐 '웃음'이 탄생한다. 




에밀 아자르의 책은 처음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뇌세포가 쫄깃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솔로몬 왕의 고뇌. 지나치게 사색적이라 떠맡지 않아도 될 고뇌를 억지로 업어 올 것만 같은 걱정. 세상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게 될 수록 고통과 비극은 멀어질거라 기대하지만, 사색의 깊이에 비례해 삶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이 철학의 함정이다. 모르는게 약이지라는 말은 그냥 있는게 아니지. '심연을 오래 들여다 보면 어느새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 보는 법이니까' -프리드리히 니체.


그런데 이책, 재밌다. 솔로몬 왕의 고뇌는 신나는 풍자와 역설로 부드럽게 다져져 애정어린 비웃음으로 요리된다. 우선 이 책의 화자 '장'부터 소개해야겠다. 장은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에서 살아남은 캄보디아인 통, 가난과 역병의 땅인 아프리카에서 온 요코와 함께 한 대의 택시를 번갈아 가며 운전하는 택시 기사다. 한 대의 택시를 세 명이! 이 가난한 청년은 어느 날 '기성복의 왕'이라 불리는 거부 솔로몬을 태우게 되는데, 장의 얼굴에서 비밀스런 추억을 느낀 솔로몬은 그 즉시 택시 임대비로 진 장의 빚 1만 5천 프랑을 갚아준다!


동화같은 이야기!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우리는 불가한 꿈에 취해 비틀거리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쓰고 현실로 돌아와야하는 무기력한 독자? 그렇지 않다. 이 책은 그렇게 시시한 책이 아니야. 들어보게.


기성복의 제왕 '솔로몬'은 여든 네 살이다. 마흔 넷이 아닌 여든 넷이다. 여든 넷! 팔십 사! 죽음을 코 앞에 둔 늙은이지만 솔로몬은 그 예정된 방문자의 응시를 완전히 무시한다네. 그는 젊은 시절 기성복을 만들어 거부가 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 친구의 방문을 받을 뻔 했지만, 샹제리제 거리의 어느 지하실에서 4년간 꼼짝않고 지낸 덕분에 그 불행을 면할 수 있었다. 그가 여든 네 살이 되어 임박한 죽음에 그토록 분개했던 이유는, 젊은 시절 그토록 드라마틱하게 죽음을 피해 살아남았건만 이제와서 고작 '자연사'라는 시시한 방법으로 그것을 맞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거부한다. 그는 앞으로 5년간 쓸 수 있는 최신식 세라믹 이빨로 임플란트를 해 넣고 '트레이닝'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운동복을 입은채 격렬한 체조를 한다. 왜냐구? 인간은 언제나 내일을 대비해야 하지 않는가!


솔로몬의 또 다른 취미는 젊은 시절 벌어들인 돈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근심과 걱정이 있는자, 수고롭고 짐진 자들은 망설임 없이 솔로몬의 집으로 전화를 거시라. 그곳에는 여든 네 살의 노인과 함께하는 자원 봉사자들이 24시간 당신의 전화를 기다린다. 이른바 솔로몬의 구조회. 

'장'에게 내려진 1만 5천 프랑의 은혜는 사실 이 곳에서 심부름 꾼으로 일하는 대가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는 택시를 이끌고 전화만으로는 도움이 부족한 사람들을 찾아가 과일 바구니를 선물한다. 그들은 대개가 노인들이었다. 솔로몬은 특히 자신과 비슷한 운명에 직면한 사람들을 각별히 도왔던 것이다. 노인들에게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을 선물하면서, 마치 그들이 30년은 더 살수 있을 것처럼.


장의 룸메이트 척은 솔로몬의 구조 활동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솔로몬 씨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선한 마음에서가 아니라고 한다. 솔로몬 씨는 신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 모범을 보이기 위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16p)


척의 말을 수긍한다면 솔로몬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 나아가 이 세상, 나아가 이 세상을 만든 자에게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신이 정한 생사의 법칙을, 그가 인간을 위해 만든 유일한 친구의 도움을 거부한다. - 인간의 친구는 타자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약탈, 살인, 전쟁을 보고 있으면 신이 타자를 만든 이유가 서로를 죽여 그 수를 조절하기 위함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고로 신이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든 유일한 친구는 '죽음' 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신이라면 마땅이 해야할 기적과 은혜의 축복을 대신 행사한다. 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 그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신은 죽음을 만들어 인간을 다스리려 하지만 여기 만만치 않은 존재가 서있다. 그는 여든 네 살의 노인이지만 그 눈은 어떤 젊은이 보다도 삶에 대한 열망으로 활활 타오른다. 그는 여든 네해를 쉼없이 보내 삐그덕 거리는 노구를 이끌고 사창가를 찾고 예순 여섯살의 옛 연인과 재회해 미래를 계획한다. 나는 이토록 천박하고 우아하면서 유쾌하고 진지한 반항아를 본 적이 없다. 


이 소설은 역설의 옷을 입고 인생의 무대에 올라 죽음을 노래한다. 그 노래가 끝나고 나면 죽음은 사그라 드는 박수 소리를 등에 업고 무대 뒤로 사라진다. 죽음이 정복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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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 2012-07-1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봤습니다.^^

한깨짱 2012-07-11 13: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횡설수설 엉망인 리뷰라 손을 좀 볼까 하는데 어렵네요... 좋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가면의 고백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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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본명 하라오카 기미타케. '금각사'의 저자. 극우파 민족주의자. 원자폭탄 두 방에 가까스로 제 정신을 차린 일본을 다시금 폭력의 핏물 속에 빠뜨리기 위해 안달하다 스스로 배를 갈라 새빨간 선혈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한 정신병자.


난 이 사람이 싫다. 우파를 증오하니까. 그냥 우파만해도 치가 떨리는데, 극우파라니. 이런 남자가 쓰는 소설은 그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아무런 의미없는 구둣점조차 심기를 거스를게 분명하다. 세상에, 극우파의 소설이라니!





그럼 왜 나는 미시마 유키오를 펼쳐 들었나? 싫어하려면 그 만큼 더 잘 알아야 한다는 유치한 집념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미시마 유키오, 고작 31세에 문학 인생의 절정을 맞은 천재, 당대 최고의 소설가. '금각사'라는 이름은, 그래 소설을 읽기 시작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보았지. 그러니 어쩔 수 없잖아. 정치적 견해 때문에 하나의 기념비가 될 수도 있는 문학을 놓쳐 버릴 수는 없어. 나는 그 정도로 참을성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 궁금해 미칠 지경,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사람들은 이 정신병자에게 그토록 환호하는가. 나는 이런 호기심에 걸려든 평범한 독자인거야. 그리하여 펼쳐든 작품이 바로 이 '가면의 고백'. 





첫 장을 읽는 순간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의외였다. 이 소설은 미시마 유키오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자전에 가깝도록 써낸 소설이다. 그러니 이 소설에 묘사되는 소년은 미시마 유키오 자신일 것이다. 그런데 글 속에 근육질의 일본도를 든 극우 꼴통의 중년 아저씨는 없었다. 허약하고 창백한, 말라 비틀어진 소년이 하나 있었을 뿐이다. 그는 어린 시절 자가 중독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고비를 넘겼다고는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소년의 옆을 지키는 빚쟁이였던 것 같다. 죽음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허무와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찬미를, 이 병약한 소년도 지니고 있었다.


소년은 죽음을 사랑했다. 총알이 심장을 뚫고 지나가 분수처럼 피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지는 병사를, 뜨거운 장작 위에서 갈기 갈기 태워져버리고 마는 잔다르크를, 소년은 사랑했다. 죽음에 대한 찬미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갈망과 비례한다. 무서운건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주머니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다. 더럽고 무례하고 혐오스러운건 고통이다. 소년은 고통이라는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쓰고 죽음을 찾아 떠나는 탐험가다. 끝없이 고통스러울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라는 생각은 지극히 합리적인 생긱이다. 고통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에겐 죽음이 황홀할 수 있는 것이다.


소년은 끝내 고통의 열매를 얻지는 못했다. 삶이 지속되자 그는 남성을 욕망했다. 그것은 아마 강함에 대한 갈망이었을 것이다. 허약한 자신에 대한 증오가 커질수록 덩달아 커지는 생명력에의 갈망. 그것은 사춘기 소년에게 남성을 사랑할 기회를 안겨줬다. 또래의 친구들이 나체의 여자를 떠올리며 은밀한 습관을 문지를 때, 소년은 벌거벗은 남성의 육체를 상상하며 자위했다.


죽음과 비정상적 사랑의 근처에서 우물쭈물하다 소년은 성인이 되었다. 그 때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너는 20세에 죽을거야'라는 말에 당혹감보다는 우쭐한 쾌감에 젖었던 청년은 막상 그것과 마주하고 나자 공포에 몸을 떤다. 공습 경보가 울리면 누구보다도 빨리 방공호로 대피했던 것이다. 모든게 정상이 되가고 있다는 신호였을까? 청년에겐 사랑하는 '것 같은 여자'까지 생겼다. 청년은 여자와 함께 잔디밭에 앉아 키스를 나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청년에 따르면, 임시로 고용해 몸에 달고 있었던 '정상성'이 키스 후에 찾아온 무감각과 서글픔에 산산조각나고 말았던 것이다. 여자는 결혼을 원했다. 청년은 정중히 거절했다. 





자전적 소설이라고는 하나, 그 말에서도 드러나듯 이것은 엄연히 소설이다. 가면의 고백에  쏟아지는 모든 고백들이 미시마 유키오를 그대로 재현한다고 생각해선 안되는 것이다. 소설은 허구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생각한다면 소설은 허구이기에 그 속에 과감한 고백을 담을 수도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해서 대부분의 소설은 작가 자신의 내면적 고백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257p, 해설 중)


나는 이 소설을 미시마 유키오의 고해성사로 받아 들이고자한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도 정확히 헤아릴 수 없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진지하게 탐구하려 했던 것 같다. 작가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그래 그 새로운 출발을 위해 미시마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정의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의가 단단히 뿌리 내리지 않으면 인간은 결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없다. 그러니 작가라는 위대한 첫발을 내딛는 바로 그 순간 그가 행할 수 있는 일은 과감히 자기를 고백하는 것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p.s - 미시마 유키오의 예술 세계는 이후의 작품을 더 탐독하고 나서야 말할 자격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의 문장 만큼은 아니다. 그 위력은 '가면의 고백'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눈 앞의 글자가 그대로 향기가 되어 하늘하늘 피어오르는 것처럼 황홀한 언어의 춤. 굳이 소설로 묶여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문장 하나하나가 각각의 문학 작품이 될 수도 있을 정도다. 이 정도의 경지를 24살에 보여줬다니. 천재적 예술성이란, 어쩌면 죽음을 껴안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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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 2012-07-1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봤습니다.^^

한깨짱 2012-07-11 13:17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
 
궁녀 - 궁궐에 핀 비밀의 꽃, 개정증보판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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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궁녀에 관한 책이다. 물론 영화 '후궁'의 섹슈얼리티를 끼얹고 서가에 다리를 꼬고 앉아 은밀한 속살을 드러내며 독자를 유혹하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시기가 공교롭다. 진실은 본디 사실에 기반한 것이라기 보담 믿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잡풀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 책에 바로 그러한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것은 그다지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들어보라, 이 책은 역사서다. 부제는 '궁궐에 핀 비밀의 꽃'. 이런! 이 비밀이라는 단어에서 나약한 우리는 또 다시 은밀한 상상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지만, 믿어보라 이 책은 역사서다.




우리가 아는 궁녀의 모습은 두가지다왕을 둘러싼 병풍, 음모를 꾸미는 악녀. 게다가 그들의 유일한 짝궁은 내시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중성인. 피다만 꽃. 결코 하늘을 날 수 없는 새. 순종하고 순종하고 또 순종해 족쇄가 풀려있는줄도 모르고 영원히 감옥에 갇혀 있는 불쌍한 운명들. 이 모든 이미지는 어디서 부터 나왔는가. 드라마다. 이런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낸 드라마를 탓하고 싶지만 그나마 이것조차 없으면 우리 사회에  궁녀가 등장할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리고 만다. 

나는 웬지 다른 사람의 억울한 심정을 내 일처럼 분노하는 괴벽이 있다. 세상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오해에 휩싸여 평생 고독하게 살다 외롭게 죽어간 사람들. 내가 영혼의 친구라고 부르는 자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 책의 지은이도 나처럼 이해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가슴 짠한 애잔함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우리는 흔히 궁녀가 왕궁의 잡일을 도맡아 하는 하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본질적으로 궁녀의 역할은 왕궁의 가사 노동을 전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왕궁의 가사 노동이란 왕이 입는 옷을 짓고 왕궁 자수를 놓는 일이었으며 왕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는 다르게 말해 궁녀가 왕궁을, 아니 조선 시대를, 아니 한 역사를 대표하는 의복과 음식과 공예 문화를 만들어내는 전문 기능인이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이 바로 궁녀에 대한 재인식이요 이 책의 핵심이다. 


그들이 기능인이었다면 자신의 직무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을 남겼을 법하고 또 그들의 소속이 엄연히 왕궁인지라 실록에도 자주 등장할 법 한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의자왕과 삼천궁녀를 봤을 때 궁녀는 적어도 삼국시대 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삼국시대는 커녕 왕조 실록이라는 위대한 기록을 남긴 조선 왕조에서 조차 그들의 모습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것은 궁녀가 국가 최고 권력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파악하고 있던 정보원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궁녀의 조직도를 살펴보자. 조선시대에 궁녀는 그 업무에 따라 몇 개의 처소로 분류되었던 모양인데 그 명칭과 업무는 대충 다음과 같다.



각 방 명칭

 이름

 지밀

각종 궁중 의례에서 왕이나 왕비 등 인도, 시위

궁녀 조직의 헤드 쿼터 개념으로 총무, 회계 업무를 담당

서적 관장, 글 낭독, 글 필사!, 의례에서 왕을 수행하는 등의 업무 담당

 침방

책에는 제반 의대 거행에 종사, 라고 나와는 있으나 도무지 말의 의미를 알 길이 없고 추측컨대 침실 또는 건강을 관리하지 않았나 싶다

 수방

각종 자수에 종사(왕이 입는 곤룡포, 그 가운데 화려하게 놓인 용 모양이 바로 이 궁녀들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내소주방수라상! 및 음식물 거행에 종사 
 외소주방각종 궁중 잔치에서의 잔치상 담당 
 생것방수라에 올리는 각종 과일, 간식을 담당 
 세수간

세숫물을 대령하고 욕실 물품을 세탁 

 세답방

각종 세탁, 불 때기 및 등촉(어두워지면 궁궐 곳곳에 있는 등잔에 불을 붙이러 다니는 일), 침실 청소를 담당 

 퇴선간수라상을 물리고 처리하는 곳 



이렇게 보면 왕 없이 궁녀가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궁녀가 없으면 왕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궁녀가 왕의 생활에 밀착해 있는 것 아닌가. 내가 만약 왕을 살해할 목적을 갖고 있다면 나는 우선 궁녀의 조직도와 각 처소에 소속된 인물의 명단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그런 다음 퇴선간 궁녀를 포섭해 왕이 평소에 무엇을 즐겨 먹고 무엇을 남기는지, 그 습관을 물어볼 것이다. 그 다음 내소주방의 궁녀를 포섭해 왕이 좋아하는 음식이 나갈 때면 그 안에 아주 조금씩 독약을 탈 것을 명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나에게 포섭되지 않는다면? 난 그들의 신상명세를 털 것이다. 병들어 있는 노부모, 범죄를 저질러 잡혀간 오래비 등등, 내가 수집한 정보는 곧 그들의 약점이 되고 그만큼 그들은 나에게 포섭되기 쉬워진다. 


독살이 불가능할 땐 자객을 보내는 것도 유효하다. 이번에 나는 우선 지밀에 소속된 궁녀 중 야간 경계를 총괄하는 사람을 포섭할 것이다. 그 다음 거사일에 맞춰 궁녀의 경계 인원을 반으로 줄일 것을 요청한다. 세답방의 궁녀를 포섭하는 이유는 자객의 침투 경로에 일부러 등촉을 하지 않을 것을 요청하기 위해서다. 다음 차례는 침방의 궁녀다. 자객은 기별을 주고 받은 침방의 궁녀를 따라 왕의 침소까지 이동한다. 그 다음에...


역모에 궁녀가 빠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궁녀를 알지 못하면 거사는 불가능하다. 궁녀는 왕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으며 그의 사적인 습관과 건강 상태와 잠드는 장소까지! 그러니 이들에 대한 정보를 드러내놓고 공개한다면 그것은 왕의 처소를 저자 거리에 내놓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궁녀의 정보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유래한 것이란 말인가? 그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추안급국안'이라는 범죄 심문 기록에서다. 조선 시대에 중죄인의 심문 내용을 기록했던 이 책에는 역시 심문 답게 죄인의 출신과 이력을 상세하게 기록해 두고 있으며 이는 왕조 실록에도, 궁중 의례에서도, 국가의 행정 문서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궁녀의 정체를 밝혀주고 있다. 어린 나이에 입궁해 평생을 수절하며 살다 모시던 상전이 죽고 나면 출가해 비구니로 생명을 마감해야 했던 그들은, 자신의 근본을 범죄 심문 기록에서나 고백할 수 있는 불행한 여인들이었던 것이다. 


책은 이 밖에도 궁녀의 성과 사랑, 월급, 재산, 출신, 자격, 특기할 만한 궁녀 이야기 등을 파편적으로 담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궁녀에 대한 기록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반증이리라.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닥치는 대로 궁녀에 대한 기록을 모아 희미해져가는 존재를 부여잡는 일일 뿐이다. 이건 이거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누군가 초석을 다지지 않으면 기둥도 마루도 지붕도 집도 없을 테니까. 


역사를 이야기하지만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내용 하나하나가 생소한 것이었기에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제조 상궁'이란 말을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던 사람들에겐 신선한 지적 오딧세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는 일이다.


p.s. - 이 책은 2004년에 초판이 나왔다가 8년 만인 2012년 5월 재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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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섬 - 19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아나톨 프랑스 지음, 김우영 옮김 / 다른우리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한 때 프랑스어권 소설가 중에 가장 좋아했던 사람은 역시 아멜리 노통이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시라. 이 여자는 벨기에 사람이다. 그녀는 프랑스 사람들이 자신의 모국어를 프랑스어라고 부르는 걸 싫어한다. 아멜리 노통은 확실히 자극과 개성을 추구하는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푹 빠져들만한 매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갈증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프랑스어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멜리 노통 하나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보바리 부인'(플로베르 작)을 만나고 '비계 덩어리'(모파상 작, '여자의 일생'이라는 소설이 더 유명하다. 하지만 이 남자의 최고작은 뭐니뭐니해도 '비계 덩어리')와 조우한다.


하지만 당신이 아직 이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당신은 프랑스 문학사의 거대한 기둥 하나를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름에서 부터 확연한 아이덴티티가 느껴지는 이 남자, '아나톨 프랑스'다.





1844년, 아나톨 프랑스는 태어났다. 본명은 '자크 아나톨 프랑수와 티보'(Jacques Anatole François Thibault). 센 강 기슭에서 조그만 서점을 운영했던 아버지 탓에 어릴 적 부터 책과 친했다. 아나톨 프랑스는 '황금 시집'으로 데뷔한 이래 꾸준히 평론과 소설을 썼고 그 당시 사람치고는 드물게 오래 살며 1896년는 아카데미 회원으로, 1921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수상작은 바로 이 소설 '펭귄의 섬'이다.





노벨상 수상자, 아카데미 회원같은 권위적 색채와는 어울리지 않게 '펭귄의 섬'은 아주 유머러스하다. 마치 개그맨의 만담을 보는 것 같은 친근함이 있지만 사회와 역사를 향한 풍자의 칼날은 섬뜩하리만치 날카롭고 정확하다. 


간단한 줄거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평생을 수도원에서 보낸 '성 마엘'은 어느날 자기 앞에 나타난 돌구유를 보고 그것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평생동안 수도원을 나가 본 적이 없는 성자가 여행을 떠난다. 성 마엘은 이후 37년동안 세계를 돌며 218개의 교회와 74개의 수도원을 세운다. 여전히 성스러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던 어느날 성 마엘은 자신이 처음으로 세례를 내린 외디크 섬의 주민들이 또 다시 우상을 숭배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첫 복음 전파에 대한 강한 애착을 느낀 마엘은 또 다시 돌 구유를 타고 여행을 떠나지만, 늘 그렇듯 영웅의 여행에는 시련이 따르기 마련. 악마의 유혹에 빠진 마엘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순수한 돌구유에 돛과 키를 달게 된다. 노인은 남쪽으로 키를 잡고 항해를 시작했지만 이윽고 강한 물살에 의해 남서쪽으로 떠밀려 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강한 바람이 불자 돌구유는 통제 불능, 성스런 여행은 타락한 의지와 함께 속절없이 얼음의 땅을 향하게 되었다.


갖은 고초 끝에 거대한 섬에 도착한 마엘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한다. 그 땅에는 대학살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주민들은 우아하고 기품이 있었다. 처음 본 이방인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 들일만큼 온순하고 선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감동한 마엘은 그곳의 주민들에게 세례를 내려 하나님의 축복을 내려주었다. 그러자 천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성 마엘이 사람으로 착각한 이들이 봄철을 맞아 짝짓기를 하러 몰려든 펭귄이었던 것이다. 지독한 근시와 여행의 고초는 이 노인으로 하여금 펭귄을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례를 인정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성인들을 모아 회의를 개최한다. 성인들은 세례의 효험이 형식에서 나오느냐 아니면 내용에서 나오느냐를 두고 두패로 갈려 싸웠다. 한 때 질투와 시기의 대명사로 유대인에게 저주와 멸망을 안겨줬던 신이었지만, 다가오는 세대에 '선한 의지'로 부각되길 원했던 신은 그 자애로운 마음을 발동하여 펭귄을 사람으로 변신 시킬 것을 명한다. 그리하여 펭귄은 사람이 되었고 사람은 역사를 만들었다. 





줄거리만 봐도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하나님의 명으로 사람이 된 펭귄은 이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간의 역사를 되풀이 하며 사유 재산과 토지의 경계를 만들고 전쟁과 살육을 발명한다. 아나톨 프랑스는 이 펭귄의 역사를 프랑스의 역사에(신화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1:1로 대입하며 날카로운 풍자를 전개하는데, 겉으로는 프랑스의 역사에 국한된 것으로 보이는 이 스케일은 사실상 인류의 역사로 확대한다 하더라도 모자랄 것이 없을 만큼 깊은 사유로 독자를 압도한다. 


보통 노벨상 수상 작가의 책들은 뭔가 멜랑콜리하고 어려운 맛이 있는데, '펭귄의 섬'은 정말 정말 재밌다. 하나도 어렵지 않다. 현대의 작가 중 이와 유사한 소설가를 찾자면 '커트 보네거트'가 있을 것이다. 둘은 모두 휴머니스트로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해치는 모든 권위와 폭력에 거부한 성인들이었다.


종교? 그거 그냥 사람이 만든거 아니야? 나의 신을 믿어라 믿지 않겠다로 처참한 살육의 파티가 벌어진다면, 그따위 것 그냥 사라져 버리는게 우리를 위해 더 나은게 아닐까? 그렇다면 예술은? 미에 명확한 기준이 존재한다면 시대마다 천차만별로 변화하는 예술의 역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세대의 생각은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이 진실의 권위는 독특한 실험과 창의를 발현하는 예술가들을 질식시키지. 진실, 정의? 그런건 차라리 존재하지 않는게 나을지도 몰라. 아무리 선한 의지도 진실이 되는 순간, 정의가 되는 순간 폭력을 잉태하니까.


나는 아나톨 프랑스가 남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지적 회의주의와 신랄한 비꼬기로 가득찬 그의 소설은 태어날 때 부터 반항심으로 가득차 있던 내 영혼과 깊은 교감을 나누며 마음 속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선사한다. 산 사람하고만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죽은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아나톨 프랑스는, 매일 매일 역겨운 권위에 피투성이가 되는 내 마음에 편안한 안식처가 된다. 그를 만난건 정말 행운이다.


p.s - 아나톨 프랑스의 소설은 번역본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군사 독재와 그 정신을 이어 받은 정치 세력이 이 땅에 단단한 보수적 권위의 성벽을 세운 탓이리라. 이처럼 비상식적인 사회를 이토록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뭘까? 나는 '펭귄의 섬'의 문구를 인용해 이를 설명하려 한다. 


'정부의 한결같은 조처도 축복받은 한국 사회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본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정부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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