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3부작 Mr. Know 세계문학 17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책을 받아봤을 때 표지 디자인도 괜찮았고, 무엇보다도 책이 작고 헤깝해서(다소 무게가 나갈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의외로 가벼울 때 경상도 사투리로 헤깝하다는 표현을 쓴다. 그냥 가볍다고 하는 것보다 내 느낌을 더 적절하게 나타내는 것 같다. 남들이 이해하고 못하고는 별개의 문제로 치고 말이다.) 무척 마음에 들었다. 손에 착 감기는 것이 화장실에 앉아 똥을 누면서도 한 손으로는 담배를 피우고 다른 한 손으로는 책을 들고 읽기에 따닥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말았다하는데 돌이켜보니 나는 이제 담배를 안피운다. 그건 그렇고, 다만 글자 크기가 작고 빽빽하여 처음 보기에 답답한 느낌이고 오래 읽기에 눈알이 조금 아프고 피곤하지 않을까 우려도 있었다. 항상 그렇듯이 적응하니 또 그런데로 괜찮았다.


한심한 본인 생각에, 우리나라 책들이 대부분 특별 소장본도 아닌 것이 종이 질이 뺀질하니  너무 좋고 또 무게가 많이 나가서 이사라도 할라치면 책 때문에 여간 고생이 아니다. 국내 도서관들이 장서의 무게로 건물의 안전성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외국 문고판 책들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저런 책이 나오면 값도 좀 헐할 것이고 근수도 덜 나갈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금번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다.


 Mr. Know시리즈는 이른바 페이퍼백 세계문학전집이다. 페이퍼백이 뭐신가. 인터넷을 대충 찾아보니 설명이 이렇다. 종이표지에다 본문도 중질지 이하의 용지를 쓰고, 흔히 대량 염가판으로 보급되는 책으로 우리나라의 신서판이나 문고본도 넓은 의미의 페이퍼백에 속한다. 1935년 영국의 펭귄북스가 최초이고 2년후 자매서 펠러컨 북스가 나왔다. (펭귄과 펠리컨이 자매라고 생각하니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배다른 자매쯤 될까) 대량생산과 대중화 현상을 구현한 페이퍼백은 1950년대 이래 전세계를 정복했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신서판이 무언가 또 궁금하다. 대충 찾아봤다. 책의 판형의 한가지로 가로 103mm×세로 182mm(3.4치×6.0치)의 크기로 만든책이다.  4.2치×6.2치 치수의 책자를 사륙판이라고 하듯이 3.4치×6.0치의 책자이므로 삼륙판이라고도 한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페이퍼백은 대부분이 이 신서판형이다. 라고 한다.


폴 오스터의 책은 처음이다. 빛나는 명성이야 익히 듣고 있었지만, 소위 베스트셀러에 대한 가당찮은 반감을 가지고 있던 본인의 도서목록에서는 항상 뒤로 밀려 있었는데, 어느날 문득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읽게 되었다.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있는 방> 세편의 작품이 《뉴욕3부작》이라는 제하에 한데 묶여져 있다. 배경이 뉴욕이라서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 아니면 뉴욕이라는 현대의 거대도시 속에 매몰되어 가는 인간관계를 암시하고자 하는 것인지. 제목이 왜 뉴욕3부작인지는 잘 모르겠다. 


<유리의 도시>는 잘못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누구 소설인지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에 걸려온 전화'인가 뭔가 하는 소설이 문득 생각난다.) 그것이 우연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결말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부랑자 행세까지 해가면서 보초를 설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유령들>은 서로를 감시하는 두남자의 이야기이다. 블랙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블랙의 문제가 무엇인지 역시 오리무중이다. <잠겨있는 방>은 화자의 어릴 적 친구이자 천재적인 소설가가 되어버린 한 남자의 행방을 쫓는 이야기이다. 세편의 작품중에 제일 재미있는 것 같다. 《뉴욕3부작》은 대체로 요령부득이고 외롭고 쓸쓸하고 답답한 느낌이다. 읽는 동안 문득 문득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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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2006-03-12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에 걸려온 전화'는 이탈리아 작가 알베르토 베빌라콰의 단편입니다. 예전 삼성세계문학전집에 실려 있었지요^^

붉은돼지 2006-03-13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니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8권(부제 : 시간의 파괴력과 돌아보는 쓸쓸함)에 나오는군요. 읽기는 읽었는데 무슨 꽈배기 비슷한 작가의 이름도 초문인 것 같고 내용도 전혀 기억나지 않고, 다만 제목만 머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 쓸쓸한 느낌하고 말이죠...
 

 

열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

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 문고

위장병에 걸려 1년간 휴학할 때 엠포젤 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 문고

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먹은 삼중당 문고

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 문고

경제개발 몇 개년 식으로 읽어간 삼중당 문고

급우들이 신기해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 문고

표지에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사용한 삼중당 문고

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삼중당 문고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 문고

쉬는 시간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내려간 삼중당 문고

방학중에 쌓아놓고 읽었던 삼중당 문고

일주일에 세 번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교장실에 불리어가, 퇴학시키겠다던 엄포를 듣고 와서 펼친 삼중당 문고

교련문제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곁에 있던 삼중당 문고

용돈을 가지고 대구에 갈 때마다 무더기로 사온 삼중당 문고

책장에 빼곡히 꽂힌 삼중당 문고

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은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읽은 삼중당 문고

처음 파출소에 갔다왔을 때, 모두 불태우겠다고 어머니가 마당에 팽개친 삼중당 문고

흙 묻은 채로 등산배낭에 처넣어 친구집에 숨겨둔 삼중당 문고

소년원에 수감되어 다 읽지 못한 채 두고 온 때문에 안타까웠던 삼중당 문고

어머니께 차입해 달래서 읽은 삼중당 문고

고참들의 눈치보며 읽은 삼중당 문고

빧다맞은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읽은 삼중당 문고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히 끼고 나온 삼중당 문고

머리칼이 길어질 때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읽은 삼중당 문고

삼성전자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문흥서림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레코드점 차려놓고 사장이 되어 읽은 삼중당 문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고시공부 때려치우고 읽은 삼중당 문고

데뷔하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영 물물교환센터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박기영 형과 2인 시집을 내고 읽은 삼중당 문고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

쫄랑쫄랑 그녀의 강의실로 쫓아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여관 가서 읽은 삼중당 문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오 짜장면집 식탁위에 올라앉던 삼중당 문고

앞산 공원 무궁화 휴게실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파란만장한 삼중당 문고

너무 오래 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

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을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

집채만해진 삼중당 문고

공룡같이 기괴한 삼중당 문고

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 문고

그러나 나 죽으면

시커먼 배때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나가고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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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불현듯 마흔을 넘어섰거나 아니면 그 근처쯤 어디를 어정거리고 있는 세대는 알 것이다. 삼중당 문고. 크기는 손바닥만 하고 종이질은 누리끼리 똥색이고 글짜는 정말로 깨알같아 흔들리는 버스같은 데 앉아서 읽자면 눈알이 다 빠져버릴 것만 같았던, 하지만 그 목록만은 동서고금의 기라성같은 작가들의 보석같은 명편들로 빽빽하게 넘쳐났던 그 삼중당 문고. 서점마다 빼곡하게 꼽혀있던 그 많던 삼중당 문고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 시는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삼중당 문고에 바치는 헌사다. 없어진 삼중당 문고를 생각하니 쓸쓸한 마음이다. 혹시 '잊혀진 책들의 묘지' 에 간다면 만날 수 있을까


계대 불문과 용숙이는 장정일의 아내로 <숨어있기 좋은 방>을 쓴 신이현을 말하는 것이리라. 계대 불문과에는 시인 이성복이 있었는데(지금도 있나?), 용숙이 따라다닐 당시의 장정일이 이성복을 만났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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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아담이 눈뜰 때>를 처음 읽은 것이 아마도 군대 제대하고 나서이니 년도로는 90년대 초반이 되겠고, 나이로는 20대초반이 되겠다. 기억나는 것들. 주인공이 가지고 싶어했던 세가지가 아마 "턴테이블", "타자기", "뭉크화집"이었던 것 같다. 맞나? 뭉크는 위 사진의 <마돈나>나 그 유명한 <절규> 보다는  <사춘기>가 주로 언급되었던 것 같다. 장정일을 읽고나서 친구와 함께 뭉크의 사춘기 그림을 처음으로 찾아 보면서 '뭐 별거 아니네....'했던 기억이 난다.  <아담이 눈뜰 때>가 본인으로 하여금 뭉크에 눈뜨게 해준 셈이다. 

 고백하건데, 저 뭉크의 마돈나는 우리 공장 도서실에 있던 뭉크화집에서 잘라 온 것을 남아도는 액자에 넣은 것이다. 4~5년 전의 일이다. 인쇄상태가 썩 좋은 것도 아니고 못 견디게 가지고 싶었던 그림도 아니었는데, 그 때 왜 그런 무리한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만 도서실 구석에서 먼지에 덮여 있던 그 화집은 수백년이 지나도 아무도 찾지 않을 것만 같아 보였고, 그래서 한 장이나마 내방에 같다 놓고 보는 것이 그 화집을 위해서도 더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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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

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

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

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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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가 20살 때 썼다는 시다. 20살 그 나이에 쓸 수 있는 시라는 느낌이다. 본인처럼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는 어렵다. 감정이 시베리아 벌판 혹은 사하라 사막 같으니 저런 표현을 생각해내기에는 실로 난감하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20살이라고 아무나 저런 시를 쓸 수 있는건 아니다. 우리같은 사람이 20살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저런 시를 노트에 적어놓고 다니거나 아니면 외우고 다니면서 술자리에서 어설픈 가객 행세를 하는 정도가 아닐까. 그렇다. 황순원의 아들이나 되니 가능한거다. 나는 우리 아부지의 아들이라서 안된다. 본인도 20살 나이엔 그게 몹시 슬프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40가까이 되고 보니 뭐 그다지 슬프지도 않고 또 세상살이가 대충 그렇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문지에서 지금까지 나온 시집이 대충 300여권 쯤인 것으로 아는데, 황동규 1인의 시집이 8권을 차지하고 있으니 다작이라면 다작이겠고.... (다작하면 역시 고은인데, 본인이 시야 잘 모르지만 어떨 때는 시인께서 대충 막 쓰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손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선생께서 시낭독을 하는 것을 보면 너무 폼 잡는 것은 아닌가 그런 또 황송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오다.) 

 

창비와 더불어 우리나라 시집출판의 양대산맥중 하나인 문지가 신인발굴보다 안정된 기성작가에 메달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우리나라 시인이 몇 명이관대, 불쌍한 후생들을 좀 양성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문지시인선 1번의 작가로서 8권이 아니라 80권도 쓰기만 하면 출판해주는 것이 당근지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 이런저런 생각이 중구난방......

 

위의 황동규 문지 시집들중 no image는 문지시인선53 <악어를 조심하라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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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니 2015-06-16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편지˝ 덕분에 많은걸
알게되었네요..저도 이분 시집은
딱 1권 뿐이라.
 



결혼전이니까 4~5년 전은 되겠다. 내가 사는 광역시 교보문고에서 샀던 그림이다. 액자에 넣자니 복사본 주제에 너무 거창하고 돈도 많이 들거 같아서 코팅해서 내 방 벽에 붙여 놓은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에곤실레보다는 클림트가 훨씬 인기가 많았다. 까페나 레스토랑 같은 곳엘 가면 클림트의 그림 <키스>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사실은 클림트 그림을 하나 사고 싶었는데 없어서 꿩대신 닭으로 산 그림이다. 내가 꿩맛이야 모르지만 닭도 맛으로 따지자면 꿩보다 못하지 않을 것이다. 벽에 붙여놓고 보니 그럴듯한 것이 보기에 좋아라 했다. 그때 교보에서 이 것 말고도 청전 이상범의 산수화 복제품도 하나 구입했었는데 지금은 어데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그것도 거금들여 코팅해 놓은 것인데,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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