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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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것이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삼종지덕(三從之德), 삼종지의(三從之義), 삼종지례(三從之禮), 삼종의탁(三從依託) 이라고도 한단다. 삼종에다가 온갖 좋다는 도(道)니, 덕(德)이니, 의(義)니, 례(禮)같은 것을 갖다 붙여 놓았다.  《의례(儀禮)》 〈상복전(喪服傳)〉에 공자께옵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여자는 세 가지의 좇아야 할 길이 있는데[女子有三從之道] / 집에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在家從父] / 시집을 가면 지아비에게 순종하며[適人從夫] /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의 뜻을 좇아야 한다[夫死從子]."

우리 마누래는 이런 소리하면 눈에 불을 켜고 달겨든다. 조선조 유교 봉건사회에서 여자들은 평생 동안 억압되어 자신의 생각을 고집할 수가 없었으며, 아버지와 남편, 자식에 대한 복종만이 미덕으로 숭상되고 있었으니, 동서(東西)가 거의 같은 생각이었고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고금(古今)이 비슷한 형편이다. 책읽는 여자가 위험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똑똑한 여자는 쉽게 복종하지 않는 법이다. 삼종지도 운운은 이제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몇몇 한심한 인사들은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는 지 모른다. 진실로 그렇다면 위험한 것은 여자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는 제목에서, 나는 사실 은근하게‘팜므파탈’ 비슷한 것을 상상하고 기대했었다. 조금은....... 그러나 결론을 말하자면 내용에 비해 제목이 다소 과장되어 있다는 느낌이고, 의도적으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을 택했다는 혐의가 보인다. 책 읽는 여자들에게 무슨 치명적인 위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남자들이 똑똑한 여자들을 싫어한다는 그런 정도 이상은 아닌 것 같다. 꼭 남자가 아니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보다 잘난 넘들을 시기하기 마련이고, 지식인들은 남녀를 떠나 어느 시대에서나 위험한 사람들이었다. 


60여점의 ‘책 읽는 여자’ 그림이 등장한다. 그중 렘브란트의 <책을 읽고 있는 노파 p74>, (나는 램브란트 그림의 그 은은한 황금빛을 무척 좋아한다). 베르메르의 <편지를 읽고 있는 푸른 옷의 여인 p79>, 고흐의 <아를의 여인 p171>(고흐가 빠질 수는 없겠다), 그웬 존의 <회복기의 환자 p228>(그웬 존이란 화가는 처음 알았다), 호퍼의 쓸쓸한 <호텔방 p245>이 마음에 든다. 율리시스를 읽고 있는 메릴린 몬로의 사진도 재미있다. 사진에서 몬로는 섹시하다기 보다는 멍청하게 보인다. 브래이지어 끈을 풀면 물풍선 같이 동그란 가슴이 흘러내려 퉁퉁거리며 튀어다닐 것만 같다.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조이한과 김정근이 무슨 관계인지 쓸데없이 조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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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었는데 지방에 사는 몸으로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였으나

역시 박물관 관람은 많은 체력과 인내를 요구하는 일종의 구도를 위한 고행 비슷한 것이었다.

지난날의 유물이나 유적이 반드시 그 크기로 우열의 첫째를 삼는 것은 아니나

일단 크고 보면 눈에 띄게 마련이다.  박물관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것은 저 석탑이었다.

그 옛날, 탑을 쌓은 사람들의 마음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곰곰 생각에 잠겨 볼 수도 있었겠으나

처음 들어갈 때는 볼 것이 많아 마음이 바빴고, 나중에 나올 때는 노동으로 지친 몸이  여유가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잠시 생각해 보았으나 역시 내가 그 마음을 알 수는 없었다.

 

추신 :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깜빡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반가사유상이 있다.!!!

어둑어둑한 방에서 어여쁜 금동보살님이 은은한 광체를 뿜으며 생각에 잠겨 턱을 고이고 앉아 계신다. 

그건 정말 볼 만하다.   언제 다시 한번 가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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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일간지 모모한기자의 홈피에서 가져왔던 것이다. 3~4년 되었지 싶다.

연애편지 쓸때 써먹을려고 말이다. 처음 봤을 때는 실로 심금을 울리는 바가 있었다.

그래서 어디 저장해 놓았던 것인데, 세월흘러 다시보니 비록 심금이 덜 울기는 해도

아직 그 울림의 여운은 남아있는 듯 하다.  이성에 대한 사랑이 아니더라도

오랜세월 잘 담궈놓았던 무언가가 마음속에 있다면  좋을 것이다.

돌이켜 보니 나는 그런게 없는 것 같다. 빈 주전자를 어디에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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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靜菴 趙光祖가 갓 젊은 나그넷길에서 어느 집에 한동안 묵으려 했을

때, 그 집 시악씨가 한눈에 반해 홰를 치고 바짝거려 오고 있었던 걸로

보면 趙光祖는 생김새도 아주 잘생긴 美男子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光祖는 그 여인의 秋波를 받아들이질 않고,  냉큼 딴 집을 찾

아 옮겨 가려고만 하고 있었다.


  여자가 마지막 작정으로 그 머리에 꽂은 비녀를 빼 光祖에게 주었을

때,  光祖는 그걸 위선 받아 가지고 가긴 했지만, 이내  되돌아와서 그

비녀를 그 여자의 집 한쪽 벽 틈에다 꽂아 놓고 물러가 버렸다.


  어땠을까?

  光祖가 그 때 그 여자의 秋波를 받아들여 한때 히히덕거리며 즐길 수

도 있는 사람이었더라면, 그의 서른 여덟 살 때의 그 飮毒死刑 같은 건

면할 수도 있지 안 했을까? 적당히 그때그때를 끌끌끌끌 히히덕거리면

서 父母妻子 안 울리고 살아남아 있었을 것이다.


                    -『燃黎室記述』 卷之八 , 中宗朝 「己卯黨籍」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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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역사관이란 이런 것이었다. 조광조가 주초위왕의 누명을 쓰고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기묘사화 이야기는 TV사극의 단골메뉴이다. 아마 본인이 기억하기에 가장 최근에 조광조역을 맡은 배우는 유동근이었던 것 같다. 텔레비전 사극에서 조광조는 꼬장꼬장한 대쪽같은 선비라기보다는 뭐랄까 신념과 사명감에 불타는 혁명가 비슷한 이미지였다.


미남자에 공부도 잘하는 정의의 사나이였으니, 팬도 많았겠지만 당연히 적도 많았겠다. 팬이 많았으니 사림의 정신적 표상이 되었을 것이고, 적도 있었으니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명횡사의 비운을 겪었을 것이다. 시악씨의 추파를 받아들여 히히덕거렸다면 부모처자야 울리지 않았겠지만 이른바 표상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둘 다 얻을 수는 없다.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법인데, 우리네 같은 필부필부에 이르면 부모처자의 눈물이 너무 가슴에 사무치는 것이다. 



조광조 趙光祖 (1482∼1519, 성종 13∼중종 14)

자는 효직, 호는 정암. 김굉필의 문인으로, 김종직의 학통을 이은 사림파의 영수이다. 김굉필·정여창·이황과 함께 동방4현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1510년 사마시에 합격, 1517년 경연시독관과 춘추관기주관을 겸임, 1518년 부제학, 대사헌. 1519년 정국공신 위훈삭제를 강력하게 청하다가 남곤·홍경주 등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서 전라도 능주로 유배되고, 이어 사사되었다. 그의 도학정신(道學精神)은 후세에 계승되어 이황·이이 등 많은 후학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사림의 정신적 표상이 되었으며, 조선유학의 기본적인 성격을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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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06-02-22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조, 광조 하니까 문득 가수 이광조가 생각난다. 소문도 무성했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내가 쓴 글에 내가 댓글을 달자니 좀 그렇다...)
 
퐁네프의 연인들 CE - [할인행사], 완전 무삭제판
레오 까낙스 감독, 줄리엣 비노쉬 외 출연 / 이지컴퍼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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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대가리 마냥 머리에는 털이라는 털은 한 터레기도 남아있지 않는 넘이 불 뿜는 용도 아닌 것이 입으로는 불을 토해내며 그 불로 자기 팔을 지지고하는 그런 위험천만의 곡예를 하는 녀석하고, 눈알이 빠져 없어져 버릴 그러한 절체절명의 치명적인 위기에 처한 자포자기의 막가는 처녀 화가하고. 둘이 발광 용을 쓰는, 말하자면 별 거지같은 사랑이야기인데, 줄리에트 비노쉬가 막가파가 확실하다는 것은, 그 우둘뚜둘한 벽에다 주먹을 갖다대고 긁어 버리는 피가 질질 유혈이 낭자했던 그 오금저린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났으니, 본인은 심사가 처절해져 차마 두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어서 한 눈은 찌부려 감고 나머지 한 눈을 겨우 떠서 간신히 보았던 것이다.

우리네 관습이란 거지들은 주로 다리아래에 서식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야네들은 다리위에서 주로 죽때리고 있더라나. 그넘의 다리가 요상하게 예술적으로 생겨 먹은 것이 여관방 객실처럼 차 나다니는 길에서 하나씩 똑똑 동그랗게 떨어져 나가앉아 있는 공간이 있어서, 집구석에서 쫓겨났든 지발로 기어나왔든 어쨌든간에 집없는 아새이들 한 밤새기에 안성마춤일러라. 비오거나 일기 악천후시에는 애로가 과중할 것이나 어차피 집나오면 고생이고, 이 막가파 처녀화가가 루브르박물관 문지기 할배에게 육보시를 하고, 그 대가로 천국의 열쇠를 얻어내어 모두 자빠져 자고 있는 깊은 밤, 어두운 밤, 촛불하나 외로이 밝혀 들고 박물관으로 잠입하여 울며 쓰다듬으며 황홀하게 바라본 그 그림이 램브란트의 자화상이라는데, 영화를 볼때는 그것이 램브란트 자화상이었는지 뭐였는지 무식한 본인은 몰랐다. 나중에 듣기로 그렇다고 하니 그런줄로 알았다.


여기서 의문 하나, 박물관의 문지기 영감은 왜 뒈져버렸나? 늙어빠진 육신이 가졌던 덧없고 허망한 욕망의 값이 죽음이라!! 하기사 죄의 값은 사망이라 했던가, 허나 내 생각에 영감 너무 오바한 것 같아. 강가에 신발 두 켤레만 달랑 남겨두고 말이지. 막가파 처녀화가는 결국 실명하여 영감탱이가 빠져 죽은 그 강물에 몸을 날려 수장되고, 문어대가리는 제 입에서 나온 불로 제 몸을 불살라 등신불이 되어 화장되어야 할 것인데....화려한 불꽃놀이에 모타보트, 사랑의 유람선으로 이 영화를 끝낸다는 건 아무래도 조금 아쉽다. 연이나 년넘둘이 회오리바람처럼....팽팽... 팽이같이 미쳐 돌아가는 포스터는 일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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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06-02-20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를 정리하면서 페이퍼에 있던 것을 리뷰로 옮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