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때 백혈병에 걸린 아이가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백혈병'이 뭔지 몰랐던 그때, 난 반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서 그 아이를 구경(?)했다.
학교에선 그 아이를 위해 때때로 성금을 걷었고, 성금을 낼 때마다 나도 가난한데 우린 왜 안 도와주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3학년때 그 아이가 옆집으로 이사를 왔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우린 금새 친해져서 잘 어울렸다.
그 아이집에 놀러갈때마다 그때 당시 중학생이던 그 아이 오빠나, 아주머니께선 항상 간식을 챙겨주셨고, 그게 너무 좋아서 그 아이집에 자주 놀러갔다.
가끔 병원엘 가느라고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했지만, 특별할 것 없이 잘 어울려 놀았던 것 같다.
그렇게 1~2년을 같이 지내다가 우리집이 이사를 하고 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고, 다른 친구들을 사귀었고, 상급학교로 진학을 했고, 그 아이에 대한 기억도 잊혀졌다.
그렇게 그렇게 나이를 먹어 이십대가 되었을 때,
시장을 다녀오신 엄마가,
그 아이의 어머니를 만났고, 내 얘기를 했다면서 말씀하시길,
나랑 그 아이가 어울려서 놀던 어느날 저녁,
그 아이가 "왜 우리집엔 쌀통이 없어? 그로밋이 놀렸단 말이야 쌀통 사줘~"라며 울었단다.
그 얘길 들은 그 아이 오빠가 "내일 당장 사 줄께"라고 말했고, 그 다음날 그 아이 집엔 빈 쌀통이 방 한구석을 차지하게 되었다며,
가뜩이나 빠듯했던 살림에, 병원비 감당하기도 어려워서 도움을 받던 그 때,
쌀통을 마련한다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혹여 내가 그 아이와 안 놀게 될까봐,
그래서 아이가 상처 받을까 그것이 두려워 어렵게 돈을 융통해서 사왔다고......
그리고 아직도 그 쌀통이 집에 있노라고.
아들은 이젠 그만 버리라고 말하지만, 그 쌀통이 아이에게 해준 유일한 선물이라서 버릴 수 없노라며 한참을 우셨다고 한다.
사실, 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 우리 집에도 쌀통이 없었고, 쌀통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쌀통이 없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짐작도 가질 않는다.
하지만, 철없이 한 내 말 한마디가 그 아이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안겨 줬을지를 생각하면 너무 죄송스럽다.
이젠 이름도, 생김새도 기억나지 않는 아이.
아니, 기억한다해도 볼 수 없는 아이.
아직도 초등학생으로 남아 있는 친구에게 이제야 겨우 미안함을 전한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그리고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