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use of Broken Angels (Paperback)
Luis Alberto Urrea / Back Bay Books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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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울리오,미니의 오빠.벌써 죽은 지 10년 가까이 된 무덤 속 존재.그 아들은 세상을 떠남으로써 가족의 성인 자리까지 등극했다.불쌍한 아부지.아 큰 아들 둘이 있지만 아들 둘 다 처절하게 망했다.아무도 그 둘 이야기를 감히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랄로나 데리고 스스로를 속이고 계신다. 얘는 좋은 아들이라,아마도 어후,그녀의 머리가 또 지끈거렸다. (-39-)


라 글로리오사는 방금 막 들어와 환하게 불을 밝힌 식당 벽감안에서 엉덩이에 손을 대고 역광을 받으며 서 있었다. 보정 속옷을 입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금빛 치마가 불꽃처럼 펄럭이며 갈색 다리를 드러냈다. 그는 옷감 너머로 그 다리의 그림자를 보았다.어깨에 드리워진 그녀의 머리카락은 탄력적이고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잉크의 바다 위에 반짝이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그녀는 리틀 엔젤에게 시선을 보냈다.그는 씩 웃었다.그녀는 타코 가게에 걸린 아즈텍 여신의 모습이었다. (-161-)


라 글로리오사는 완벽한 아침의 힘을 과시하며 모습을 드러내었다.머리카락이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게 후광을 두른 듯 했다.세사르는 그녀를 보자 얼굴을 붉혔다. 리틀 엔젤도 마찬가지여다.두 남자가 간식을 간절히 원하는 슬픔 개처럼 멍청하니 서 있는 꼴을 본 그녀는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휙돌아서서 단호한 손짓으로 비닐 식탁보를 탁탁 풀어헤쳤다. (-303-)


리틀 엔젤은 숨을 깊이 들이 쉬었다
"내가 떠나서 미웠겠지.알아,내가 형을 비롯해서 모두를 깔보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도 알아.뭐 어쩌면 그랬을지도 .난 평생 살아남기 위해서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그런데 이제 형이 날 떠나려 하고,나는 형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가 없어.난 언제나 생각했어.내가 원했던 아버지를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그리고 이제껏 내가 원했던 아버지는 사실 형이었어." (-423-)


모든 사람은 비밀을 품고 죽는다.빅 엔젤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가장 끔찍한 사실을 안전하게 숨긴 채로 죽을 테니까.삶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또한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긴 투쟁이다. 이것이 그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었고,그건 결코 죄가 아니었다.다만 그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것 뿐이었다. (-466-)


마마 아메리카와 돈 안토니오 사이에 태어난 빅엔젤이 태어난 곳은 멕시코 본토였다.가난과 고통의 상징 멕시코, 그에 반해 빅 엔젤의 배다른 형제였던 리틀 엔젤은 아빠 돈 안토니오와 베티 사이에 태어난 아이로서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문화를 받아들이게 된다.일흔이 된 빅 엔젤과 이제 쉰살이 넘어선 리틀엔젤,서로 배다른 형제이면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그들 사이에 정겨운 우애가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묘하게 삐걱거리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빅 엔젤이 70 생일을 맞기 직전에 그에게 찾아온 곳은 죽음이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 빅엔젤은 슬퍼할 겨를이 주어지지 않았다.그건 백살 노모의 죽음이 자신 앞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한 죽음을 꿈꾸었던 빅엔젤은 자신의 생일을 미루고, 노모의 장례식을 준비하게 된다.삶과 죽음이 치열하다는 것을 빅 엔젤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통해서 보여주었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부모의 삶과 겹쳐 놓고 있었다.


빅엔젤과 리틀엔젤, 멕시코와 미국의 문화가 두 사람의 삶에 투영되고 있었고, 두사람 사이에 금빛 찬란한 라 글로리오사라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었다. 아름다운 아즈텍 여신처럼 보여지는 라 글로리오사 앞에 놓여진 현실은 가난 그 자체였으며, 미국에 불법으로 넘어오면서 살기 위해 식당 서빙을 하는 라 글로리로사의 삶은 지극히 이질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설은 가난한 나라 멕시코, 멕시코 문화 속에 숨겨져 있는 아픔과 고통의 문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한편 이 소설은 미국 사회 안에 내제되어 있는 히스패닉계 가정의 인종차별적인 요소들이 소설 곳곳에 배치되고 있어서,그들의 치열한 삶과 개방적인 성문화를 느낄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이 소설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건 죽음을 마주하는 멕시코 문화의 특징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에 대한 인식과 비교하게 된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결코 슬퍼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다만 그들에겐 어두움이 없으며, 현재에 주어진 삶에 충실할 뿐이었다. 매번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의 보편적인 정서와 그들의 삶은 서로 배치되고 있었으며, 왜 우리는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마주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거였다.소설은 행복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재인식을 심어주고 있었다.매번 죽음을 목도하고, 그 안에서 슬픔에 잠겨 있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와 그들의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은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그들에게 장례식이란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고, 살아잇는 사람에 대한 이벤트였고, 관계 속에서 양보와 용서의 기회였다.그건 우리가 장레식에서 매번 보여주는 그러한 일상적인 아픔과는 차별화하고 있다. 즉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전체적인 삶,데라 크루스 가정의 삶이 한국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소섪처럼 결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진 않았을 것이다. 문화의 차이,정서의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따스한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볼 수 있는 한 권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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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엔젤의 마지막 토요일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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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울리오,미니의 오빠.벌써 죽은 지 10년 가까이 된 무덤 속 존재.그 아들은 세상을 떠남으로써 가족의 성인 자리까지 등극했다.불쌍한 아부지.아 큰 아들 둘이 있지만 아들 둘 다 처절하게 망했다.아무도 그 둘 이야기를 감히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랄로나 데리고 스스로를 속이고 계신다. 얘는 좋은 아들이라,아마도 어후,그녀의 머리가 또 지끈거렸다. (-39-)


라 글로리오사는 방금 막 들어와 환하게 불을 밝힌 식당 벽감안에서 엉덩이에 손을 대고 역광을 받으며 서 있었다. 보정 속옷을 입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금빛 치마가 불꽃처럼 펄럭이며 갈색 다리를 드러냈다. 그는 옷감 너머로 그 다리의 그림자를 보았다.어깨에 드리워진 그녀의 머리카락은 탄력적이고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잉크의 바다 위에 반짝이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그녀는 리틀 엔젤에게 시선을 보냈다.그는 씩 웃었다.그녀는 타코 가게에 걸린 아즈텍 여신의 모습이었다. (-161-)


라 글로리오사는 완벽한 아침의 힘을 과시하며 모습을 드러내었다.머리카락이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게 후광을 두른 듯 했다.세사르는 그녀를 보자 얼굴을 붉혔다. 리틀 엔젤도 마찬가지여다.두 남자가 간식을 간절히 원하는 슬픔 개처럼 멍청하니 서 있는 꼴을 본 그녀는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휙돌아서서 단호한 손짓으로 비닐 식탁보를 탁탁 풀어헤쳤다. (-303-)


리틀 엔젤은 숨을 깊이 들이 쉬었다
"내가 떠나서 미웠겠지.알아,내가 형을 비롯해서 모두를 깔보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도 알아.뭐 어쩌면 그랬을지도 .난 평생 살아남기 위해서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그런데 이제 형이 날 떠나려 하고,나는 형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가 없어.난 언제나 생각했어.내가 원했던 아버지를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그리고 이제껏 내가 원했던 아버지는 사실 형이었어." (-423-)


모든 사람은 비밀을 품고 죽는다.빅 엔젤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가장 끔찍한 사실을 안전하게 숨긴 채로 죽을 테니까.삶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또한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긴 투쟁이다. 이것이 그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었고,그건 결코 죄가 아니었다.다만 그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것 뿐이었다. (-466-)


마마 아메리카와 돈 안토니오 사이에 태어난 빅엔젤이 태어난 곳은 멕시코 본토였다.가난과 고통의 상징 멕시코, 그에 반해 빅 엔젤의 배다른 형제였던 리틀 엔젤은 아빠 돈 안토니오와 베티 사이에 태어난 아이로서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문화를 받아들이게 된다.일흔이 된 빅 엔젤과 이제 쉰살이 넘어선 리틀엔젤,서로 배다른 형제이면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그들 사이에 정겨운 우애가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묘하게 삐걱거리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빅 엔젤이 70 생일을 맞기 직전에 그에게 찾아온 곳은 죽음이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 빅엔젤은 슬퍼할 겨를이 주어지지 않았다.그건 백살 노모의 죽음이 자신 앞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한 죽음을 꿈꾸었던 빅엔젤은 자신의 생일을 미루고, 노모의 장례식을 준비하게 된다.삶과 죽음이 치열하다는 것을 빅 엔젤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통해서 보여주었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부모의 삶과 겹쳐 놓고 있었다.


빅엔젤과 리틀엔젤, 멕시코와 미국의 문화가 두 사람의 삶에 투영되고 있었고, 두사람 사이에 금빛 찬란한 라 글로리오사라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었다. 아름다운 아즈텍 여신처럼 보여지는 라 글로리오사 앞에 놓여진 현실은 가난 그 자체였으며, 미국에 불법으로 넘어오면서 살기 위해 식당 서빙을 하는 라 글로리로사의 삶은 지극히 이질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설은 가난한 나라 멕시코, 멕시코 문화 속에 숨겨져 있는 아픔과 고통의 문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한편 이 소설은 미국 사회 안에 내제되어 있는 히스패닉계 가정의 인종차별적인 요소들이 소설 곳곳에 배치되고 있어서,그들의 치열한 삶과 개방적인 성문화를 느낄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이 소설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건 죽음을 마주하는 멕시코 문화의 특징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에 대한 인식과 비교하게 된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결코 슬퍼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다만 그들에겐 어두움이 없으며, 현재에 주어진 삶에 충실할 뿐이었다. 매번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의 보편적인 정서와 그들의 삶은 서로 배치되고 있었으며, 왜 우리는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마주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거였다.소설은 행복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재인식을 심어주고 있었다.매번 죽음을 목도하고, 그 안에서 슬픔에 잠겨 있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와 그들의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은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그들에게 장례식이란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고, 살아잇는 사람에 대한 이벤트였고, 관계 속에서 양보와 용서의 기회였다.그건 우리가 장레식에서 매번 보여주는 그러한 일상적인 아픔과는 차별화하고 있다. 즉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전체적인 삶,데라 크루스 가정의 삶이 한국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소섪처럼 결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진 않았을 것이다. 문화의 차이,정서의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따스한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볼 수 있는 한 권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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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앤 스타일
데이비드 코긴스 지음, 신소희 옮김 / 벤치워머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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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맥 투더 퓨처>에서 입었던 투톤 청재킷도 내 열망의 대상이었다.물론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지만, 만약 있었다면 그 금찍한 재킷의 유사품을 찾는 나 같은 열성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나는 그 청회색 재킷을 손에 넣기 위해 이베이 낙찰가를 올려놓기 전에 사람들의 맹렬한 반대 의견을 접하고 그들의 빈정거림에 정신을 차렸으이라. 그 무렵 나는 마이클을 모방하여 바라쿠타 재킷 위에 조끼를 입기도 했지만, 아직도 차마 그 부끄러운 과거를 부모님에게 확인받진 못하고 있다. (-29-)


한 번은 뉴욕의 어느 양복점에 갔다가 재단사 롤런드 멜레단드리를 만났다.당시 그의 자게는 이스트 56번가 74번지였다.내게도 그가 만든 슈트가 한 벌 있는데 붉고 가는 줄무늬가 들어간 근사한 진청색 슈트다. 1960년대 중반에 맞춘 그 옷을 나는 아직도 자랑스럽게 입는다. 12016년 신년 파티에도 입고 갔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1964년 엘레인스에서였는데 ,그가 말해주길 그보다 10년 전쯤 가게를 냈을 때 젊은이 하나가 넥타이를 팔러 왔기에 몇 개를 진열했다고 했다. (-129-)


어떤 면에서 그것은 관대함의 감각이다. 그들은 단순히 "난 이런 차림도 소화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난 세상이 이런 식이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것이다.좀 더 불순하게 ,좀 더 별나게, 좀 더 이상적으로, 그리고 말해두지만, 그들도 고등학교 졸업파티에 갔던 시절엔 온갖 실수를 저질렀다.다만 그들은 그 증거를 묻어버릴 만큼 영리했을 뿐이다. (-253-)


지갑은 여전히 남자에게 상징적인 존재다.여자의 손가방만큼 심오하진 않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알려주는 소지품이다.당신이 현금을 넣고 다니는 수단은 당신에 관한 온갖 것들을 말해주며, 따라서 신중하게 고를 필요가 있다.아마도 당신은 처음 가졌던 지갑을 기억할 것이다. 보통 남자 친척이 선물했거나 더 근사하게는 물려준 것이었으리라.그것은 중요한 단계이며, 아직 지갑 안에 넣을 것이 거의 없다 해도 뭔가에 도달한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 (-367-)


패션은 유행이다. 패션은 자본주의의 젖줄에 해당된다, 산업혁명 이후, 본격적인 산업화 사회 이전에 의식주를 중시하였고, 그 선두 주자로 패션과 패션의 유행이 있었다.대중매체는 우리에게 간접적인 경험도 선사해 주지만 그 안에 보여지는 주인공들의 다양한 패션들은 그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21세기 지금을 보자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맨 앤 스타일'보다는 '우먼 앤 스타일'에 더 가깝다 말할 수 있다.수많은 대중매체와 다채널 공간은 거의 대부분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여성의 유행을 선도하고 있으며,그녀들의 니즈와 원츠,씨즈에 맞춰져 있었다.이런 가운데 우리에게 생각할 꺼리를 안겨 주는 책, 데이비드 코긴스의 <맨 앤 스타일>은 1960대에서 1980년대까지 영국의 패션의 흐름을 되짚어 볼 수 있도록 이끌어가고 있다.


지금은 있지만, 그 시대에는 없었던 것이 인터넷이다.바다 건너 패션을 선도했던 유럽의 남성 패션 흐름이 대한민국으로 옮겨오려면, 1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그건 1960년대 그들의 패션은 1980년대 우리의 패션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지고 변혁의 물결을 타고 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장발을 추구하고, 헐렁한 긴바지를 입었던 그 시대의 유행을 되짚어 볼 수 있다.여기서 흐름이라는 것이 사람에 의한 이동이 아닌 이제는 인터넷과 모바일로 대체되었을 뿐이며,기업은 거기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가능성과 기회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되는 패션들의 흐름이 익숙한 세대가 있고, 어색한 세대가 있다. 지금 소비의 주체가 되고 있는 8090 밀레니얼 세대에겐 이 책은 상당히 낯설다 말할 수 있다. 과거 영화 007 시리즈,홍콩의 주윤발 세대에서나 나올 법한 그들의 패션들이 이 책에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봐왔던 패션들 , 패션을 선도했던 제임스 딘이 추구했던 유행들, 비틀즈의 패션 스타일, 숀코너리를 연상하게 되면서, 멎쟁이 남자들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으며, 지금의 맷데이먼이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추구하는 패션을 보면 이 책에 소개되는 남자들의 스타일과 교차되고 있다.


단순하면서 심플하고, 그 가운데서 낡음을 추구하는 구제 스타일,그것이 남자들의 중후한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깔맞춤 패션이었다. 구두와 재킷,모자와 턱수염, 지갑은 선택이 아닌 필수 유행이었으며, 넥타이는 골라서 개성을 연출하게 된다.수십개의 넥타이 소장을 넘어서, 500개 이상의 넥타이를 골라 입으면서, 패션을 연출해 나가고 있다.검은 양복에 검은 구두, 그리고, 하얀 셔츠 속에 은밀하게 감춰진 넥타이는 남자의 패션의 완성이며, 향수와 파이프, 지갑과 자동차,회중시계는 남자의 패션을 보완해주는 상징적인 보조 수단이었다. 남자의 패션 스타일의 부족한 2프로는 그 남자의 재력에서 시작하여,재력으로 완성될 수 있다.더 나아가 남자에게 욕구되는 격식과 메너,유머스러움과 여성을 배려하는 센스는 그 남자의 패션을 완성시켜주는 힘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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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오늘입니다 -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은 가장 소중한 날은 오늘이다
보현 지음, 김도아 그림 / 코쿤아우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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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마세요.
사실, 남은 나를 그다지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습니다.
괜히 나 혼자 전전긍긍
걱정과 근심의 거미줄을
만드는 것뿐입니다. (-20-)


때로 얼굴 붉히며 큰 목소리를 내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씩씩대기도 합니다.
실수로 인한 시비로
인간 관계가 깨지는 순간입니다.

들판의 초목을 보십시오.
나무들이, 풀들이, 바람 분다고
비가 오고 눈보라가 친다고
짜증내고 투덜거리는 것 보았습니까? (-70-)


슬픔으로 온몸이 누더기처럼 변하고,
근육과 핏줄에 힘이 하나도 없어도,
털고 일어나 나가야 합니다.
나가서 어떤 일이든
시작해야 합니다.

그 일이 무엇인지는 상관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시작하여

세상으로, 사람 속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빨리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97-)


누군가 당신에게
어떤 일을 제안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거절하지 말고
얼마쁨 여백의 시간을 가지세요.

몇 시간도 좋고
며칠도 좋습니다.
그 제안이 자연스럽게
땅에 닿을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123-)


벌어진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고집을 과감히 버리고
남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이 바라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습니다.

고집은 개성이 아닙니다.
고집은 고집일 뿐입니다. (_171-)


답을 찾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묻고 또 물어 하루하루
성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깨달음이란 다른 게 아닙니다.
성장하는 삶의 끝에서 만나는 
내 안에 숨어 있는
진짜 나일 뿐입니다. (-214-)


고요한 가운데 움직여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요즘의 내 길이다.때로는 고요히 참선하며 나를 살피고 때로는 맑은 노래로 사람들 영혼에 위안과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일 것이다.오너라 가거라 매이지 않고 다만 고요함 속에 움직이며 가만히 나를 내려 놓는다. (-283-)


1980년대 아이유였던 가수 이경미는 홀연히 연예계를 더나게 되었고, 비구니가 되었다.그리고 이제는 보현스님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남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의미해졌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마저 잃어버린 채 방치되었을 때 느껴야 했던 좌절과 자괴감, 연예인으로서 궁정동에서 성노리개가 되는 것을 참지 못했던 보현 스님은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면서,고요한 삶과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 속의 지혜를 얻고 있다.


이 책은 보현스님의 삶의 지혜이다. 살아가면서,느껴야 했던 수많은 삶의 퍼즐들 속에는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삶도 있다.그러한 삶들을 살펴보면서 슬픔과 아픔에서 스스로 벗어나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힘들도 아픔 속에 파묻혀 있어도, 그 안에서 벗어날 줄 아는 지혜와 삶을 살아가게 되면, 남들이 업신여기지 않는 삶을 비로서 살아갈 수 있다.우리는 보현 스님의 삶 속에 자연에 대한 관조가 숨어 있었다.자연은 서로 경쟁하지 않으며, 서로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는다. 서로 비교하지 않으면서, 자연은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그들의 삶에 임하는 자세를 인간의 삶과 결합한다면, 좀더 나은 삶, 내 앞에 놓여진 것들에 대해서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더 나아가 어떤 일이 내 앞에 놓여진다 하더라도,스스로 세울 수 있다.


나를 세운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가치이다. 살아가면 넘어질 수 있는 일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늘어날 수 밖에 없다.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존재의 한계,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을 뿌리 내릴 수 있어야 한다.내 고집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언제라도 내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누군가 나의 옆구리를 찌를 때, 거기에 곧바로 반응하지 않으면서 살아간다면, 세상은 나를 알아봐 줄 것이며, 나는 비로서 성장의 발판을 만들 수 있다.여기서 보현 스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성장을 꼽고 있다. 성장할 줄 안는 이는 결코 불행한 삶을 살아가기 않는다.내 안의 작은 것,소소한 것에 대해 만족할 수 있다.몰입하고 집중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내 삶의 성장 안에 숨어 있다. 또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나에게 무언가를 제안할 때 곧바로 딱 잘라 말하지 않고, 시일을 두고 말할 필요가 있다.빠름 빠름을 강조하는 사회 안에서 느림을 추구하는 삶의 미덕이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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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 15초 안에 ‘Yes’를 이끌어내는 보고 테크닉 50
김범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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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인 그들은 불안하다. 승자독식의 원칙이 지배하는 곳,즉 조직 안에서 매일 경쟁을 하고 있다. 경쟁에 지쳤기에 주변의 모든 사람을 '내 편인가 아닌가'라는 잣대로 바라본다.자신이 키워줄, 하지만 언젠가는 자기를 보호해 줄 사람을 자기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어떻게? 일상의 대화를 통해서. 
이를 파악했다면 우리는 타협, 아니 결심해야 한다.
"줄 건 주겠다. 대신 받을 건 받겠다."
줄 건, 보고다. 받을 건 직장에서의 승진, 연봉 상승, 편안함 등이다. 보고 하나로 발전과 성장을 얻어낼 수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지 않은가.그런데 보고를 준다는 것, 보고를 한다는 것에도 중요한 철칙이 있는데 그건 바로 윗사람인 그들의 시간과 장소를 장악하는 일이다. 이제 다짐해야 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보고하겠다." 
보고를 하겠다고 덤벼드는 우리를 상사인 그들은 인재라고 받아들인다. 왜 그런 것일까. (-43-)


"상사는 자신의 지시 사항이 어떻게 구성원에게 전달되었는지에 대해 늘 궁금하다.'알아서 잘하는' 부하가 있다면 최고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그래서일까.보고의 과정에서 늘 일정과 진행 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려 하고 질문하면서 보고의 질을 높여가는 구성원을 보면 믿음직스럽다. 그리고 그런 구성원의 업무 결과물은 늘 만족스럽다. 당연하다.이미 보고와 피드백,그리고 질문을 통한 대화의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완료되었으니까." (-107-)


보고를 받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자.그들이 보고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갖게 되는 의문은 무엇일까.
"이것으로 뭘 할 수 있는가?"
아마 이런 의문 아닐까. 이 의문을 해소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보고라고 할 수 있겠다.어떻게 해야 보고를 받는 그들의 의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우선 그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이해 혹은 통찰이 첫 번째이고, 그들이 어떤 순서대로 진행하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두 번째다. 이 두가지를 잘 준비한다면 보고의 자리에서 크게 지적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154-)


보고할 주제에 대한 '무작정의 숨김'이 아니라 '단계적 보고'의 과정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한 번에 보고하기에는 덩어리가 너무 크니 보고하는 정보의 양을 보고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나눠서 보여준다고 말이다. 지나치게 작은 덩어리로 나누어 보고받는 사람이 보고 시간에 대해 비효율적이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조심한다면, 단계적 보고는 핵심에 접근하는 보고 방식으로 추천할 만하다. (-200-)


우리 속담에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속담이 있다. 그 속담은 직장이나 회사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될 성 싶은 인재' 는 신입때부터 일하는 자세부터 차이가 나며, 그들의 승진은 도덕적인 흠결이 없다면, 고속 승진을 할 가능성이 크다.여기서 될 성 싶은 신입 사원에게 필요한 기본 자질로 보고서 작성 요령 숙지와 직장 상사에게 보고하는 것이다.문제는 시중에 파는 책들에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요령은 일목요연하게 체계적으로 나와 있지만, 보고하는 요령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그건 보고의 체계적인 노하우와 요령들은 경험으로 습득할 수 있는 것이며,그 과정에서 이론으로 체계화한다는 것은 쉽지 않는 것이다.그러나 시대가 달라졌고, 직장과 회사의 요구와 목적은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었다.그건 직장인들에게 다양한 요구 조건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다양한 가치와 능력을 직장 상사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 책에는 보고에서 시작하여 보고로 끝맺고 있다 여기서 놓칠 수 없는 것 하나는 '보고'는 부하 직원도 싫어하지만, 직장상사도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그건 둘의 관계가 서로 직장 내에서 위치는 다르지만,생각과 가치관은 똑같다는 의미였다. 보고를 하는 입장과 보고를 받는 입장이 차이가 날 뿐 시간과 에너지를 소요한다는 데서 동등한 위치에 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하였던가,보고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면, 꼭 적제적소에 보고를 해야 한다. 단 정확하게 해야 하고, 일목요연하게 할 필요가 있다.직장 상사는 보고받는데 시달리며, 그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즉 직장 내에서 부하직원은 직장 상사의 마음 씀씀이를 헤아려서,보고를 할 때 구태연한 설명을 덧붙이는 것보다 간결하고,일목요연하게 핵심을 짚어줄 수 있는 직장 상사의 스타일에 맞추는 보고를 해야 한다. 직장 상사가 듣고 싶어하는 보고의 형식에 자신을 스스로 맞춰 나갈 필요가 있다,그건 직장 생활에서 능숙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처세술이며, 남들보다 좀 더 앞서 나갈 수 있는 직장 스킬이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직장 내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바깥 외부 활동에 있어서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  내부에서도 통용될 수 있으며, 항상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정확한 피드백과 평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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