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머리 앤 특서 청소년문학 10
고정욱 외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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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개적으로는 '성불평등'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각 개인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남성 위주로 된 사회 속에서 살아왔는데, 그런 사회가 쉽게 바뀌겠는자? 그러니 겉으로만 '성은 평등하다'고 할 뿐 실제 삶 속으로 들어가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9-)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파고 들어온 조앤이 상민의 발에서 살짝 떨어져 있던 공을 툭 쳐 가랑이 사이로 빼낸 뒤 재빨리 뒤로 돌아 몰고 갔다.믿을 수 없었다.상민이 이렇게 간단하게 공을 뺏겨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 하냐? 정말 어니가 없네."(-18-)


"3반 가서 말해.나 머리 자르고 왔다고.추구하는데 여자가 어쩌고 머리가 어쩌고 한 마디만 더 하면 죽여 버린다고 그래."
그러나 3반에 가서 말할 필요도 없었다.소문이 바로 전교에 퍼졌기 때문이다.순식간에 2반 교실 앞은 삭발하고 온 조앤을 보러 온 아이들로 가득 찼다.
"야 옆 반에 축구하겠다는 여자애가 머리 밀고 왔어."(-32-)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크나큰 약점이며 죄스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자라났다.가해자는 활보하며 다니고 피해자는 숨어 다니는 꼴이었다.남녀 간의 문제가 생겼을 때 질타의 손가락이 여성에게 향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나도 딸을 낳았다.나도 내 어머니처럼 불안 속에서 딸의 귀가를 종용하는 전화를 했다. (-69-)


그렇다면 지금 내 불안의 실체는 무엇인가? 나는 지금 내 삶의 출발선에 서 있다.가가린처럼 지구를 떠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가 지구를 떠나는 것만큼이나 나도 지금 몹시 불안하다.그냥 이대로 견디면 나도 얼마 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89-)


내가 여중으로 오면서 진욱이와는 완전히 헤어지는 듯했다.그런데 뜻밖의 행운이 나를 찾아왔다. 학원에서 진욱이를 만난 거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진욱이는 더 멋져졌고 인기는 그냐말로 하늘을 찔렀다. 진욱이는 감히 스잔 캐릭터 따위를 얻을 만큼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나는 서서히 진욱이를 포기했다. (-115-)


"엄마 아빠 성을 둘다 쓰거든.그런 너는 남자 이름이라 좋겠다.난 내 이름이 중성적이거나 남성적이었으면 좋겠어."
연희는 내 이름에 무척 호감을 갖고 있었다.사실 내 이름이 남자 이름인 게 궁금할 대가 있어 엄마에게 내 이름은 왜 남자 이름이야?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엄마는 그 질문에 대해 그냥 여자에게 남자 이름을 지어주는 게 그때는 유행이었다고 했다. (-139-)


하지만 선유의 말처럼 사람의 만남이란 상대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꾹 참으려고 했다.그런데 미정이가 윤빈이 때문에 요즘 힘들다고 고백을 한 것이다. 윤빈이가 다른 여자랑 만나는 것 같다고 하면서, 그래서 나도 윤빈이가 다른 여자랑 만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고,그 쓰레기 같은 놈이랑 헤어지라고 쏘야댔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아무리 그래도 '쓰레기 같은 놈'이라는 표현은 좀 너무했다. (-174-)


우리 사회는 성에 대해서 평등한가,아니면 여전히 성에대해서 평등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누군가 질문하게 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성에 대한 평등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말할 것이다.그건 우리 사회가 여전히 남성 기분의 사회 시스템으로 고착화 되어 있으며, 많은 부분들이 여성에게 불합리한 측면이 강하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대목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대 그 원인을 객관적으로 보고, 문제를 찾는게 아닌,여서에게 비중을 더 두고,원인을 탐색하려는 성햐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의 단적인 모습이다. 더군다나 남녀가 공통적으로 즐기는스포츠 종목의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종목에 대해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은 고정되어 있으며, 여성의 실력이 남성보다 우월할 경우 거기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여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이면서 ,여섯편의 단편 소설 중 하나인 단편 소설 <빡빡머리앤>은 축구를 잘하는 여학생 조앤이 마주하는 엘리트 축구와, 자신의 적성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그건 우리 사회가 어떤 특정 스포츠 종목에 있어서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며, 거기에 대해서 주인공 조앤은 자신의 머리를 깍음으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고유의 특징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그건 성에 대한 인식과 다양서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에 대한 반감의 표시이다.


돌이켜 보면 이 여섯 편의 단편 소설은 우리의 뿌리 깊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나가고 있다. 여성에게 흔히 하는 잔소리들 안전에 대한 인식,'밤 길 조심하고, 집에 일찍 다녀라' 는 요구는 절대 남성에게 하지 않은 잔소리이다. 그건 우리 사회의 고정된 불안과 걱정의 대부분이 여성과 엮이는 경우가 많다. 그마큼 우리의 사회적 인프라는 여성을 배려하지 않은 측면이 강하다. 성에 대한 인식의 부재가 우리 사회레 여전히 있으며, 그 성에 대한 강점을 부각하는 것에 대해서,약점과 무능력으로 판단하려는 모습은 여전히 숨어 있다.즉 이 책을 읽으면서,우리 스스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가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여성이 어던 문제와 엮이면, 배제당하고,배척하고, 순종적이어야 한다는 인식, 여성이 쎄고 강한 모습을 보이면,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고, 감정적인 것을 무능력함과 일치시키려 하는 사회적인 모순과 위선들이 걷혀질 때 우리 사회는 여성과 남성이 서로 평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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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풀리는 만능 생활 수학 - 마트 줄 서기에서 모두가 행복한 가사분담까지
크리스티안 헤세 지음, 강희진 옮김 / 해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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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쓰레기 정보, 장보기, 주방청소, 빨래, 집 정리 등 가사노동도 '슈타인하우스 규칙'을 이용해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다. 가족회의를 수집한 엄마가 각각의 가사노동에 부담지수를 매긴다고 가정해보자. 수치가 높을수록 부담도 커진다.엄마는 요리-쓰레기 처리-장보기-주방 청소-빨래-집 정리에 각기 25-5-20-10-15-15 라는 점수를 매겼다.아들은 30-5-30-10-10-10을 주었고, 아빠는 25-10-15-15-15-20 을 부여했다. 단 이 점수들은 독자와 나만 아는 것이다. 그래야 분배 고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마와 아빠,아들은 다른 사람이 각 항목에 몇 점을 주었는지 알지 못한다.이 상태에서 세사람은 슈타인하우스 규칙에 다라간다. (-43-)


생일도 쉽게 예측하기 힘든 사망 위험요인이라고 한다. 잉그리드 버그먼과 윌리엄 셰악스피어도 각기 자신의 생일에 죽음을 맞이했다.과연 우연일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하지만 생일은 사망확률이 가장 높은 날이라고 한다. 생일은 그만큼 위험한 날이다. 나이가 들수록 생일에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진심으로 드리는 충고이다.(-77-)


개미도 최단거리를 선호한다.예컨데 먹잇감을 찾을 때도 가장 짧은 길만 가고 싶은 게 개미의 보능이다. 개미 떼들은 먹잇감을 사냥할 때 일군의 정찰대를 파견한다. 먹잇감을 발견한 정찰대는 각자가 짊어지거나 밀 수 있는 만큼의 먹이만 포획한 채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올 때는 직선코스를 선택한다. 정찰대 개미는 그 코스에 자신들의 체취를 남긴다. (-177-)


일상 속 많은 상황이 이렇게 얽히고 설킨 구조로 복잡하게 짜여 있다.아르네와 베르니가 같이 산다고 가정해보자.아르네 혹은 베르니에게 가장 편한 상황은 상대방이 집안일을 처리해 죽는 것이다.하지만 모든 가사노동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면 집안 꼴은 엉망진창이 된다. 물물거래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아르네는 사과 농사를 짓고 베르니는 바나나 농사를 짓는다고 생각해보자.아르네에게 사과 한 상자는 아마도 10유로의 가치박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나나 한 상자는 아마도 그 보다 높은, 예컨데 100유로의 가치를 지닐 것이다. 반대로 베르니에게는 바나나 한 상자가 10유로, 사과 한 상자는 100유로의 가치를 지닐 것이다. (-230-)


우리 사회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돈과 돈이 서로 엮여 있고,그 안에서 새로운 답을 구하고자 매진하게 된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들은 우리가 어떻게 눈앞에 놓여진 것들을 풀어갈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수학은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지혜로운 문제 해결 방안을 도출하고, 사람들은 수학을 통해 만족도를 높여 나가게 된다.


이 책은 수학 공식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서, 수학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맛을 보고, 느끼면서, 세상을 보지만, 수학자는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있다. 특히 우연적 사건에 대해서 예리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에 대한 답을 논리적으로 풀어 나가고 싶어한다. 그건 수학에 대해서,세상의 가치들을 수학 공식에 대입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보편적인 기준과 차이가 나며, 금융기관이나 증권사에 애널리스트 들 중에 수학자가 많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수학적인 공식을 현실과 대입하여, 통계와 확률을 이용해 주가의 흐름을 분석하고,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으며, 거기에 대한 적절한 답을 도출해 나가고 있다.


우리가 수학에 대해 관심 가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 스스로 이상에 대해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민주적이고, 정의롭고, 공평한 것, 만족과 행복을 느끼고 싶다면, 수학을 공부해서 생활에 접목해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도출해내고 있었다. 직관에 의존하는 세상과 사회안에서 사실에 근거하여, 논리적으로 어떤 문제에 접근해 나가는 것, 불확실한 것들 안에서 정교하게 짜여진 체계와 규칙을 찾아나갈 수 있는 것도 수학의 강한 힘이다. 즉 우주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부이지 않는 규칙을 찾아내는 것도 수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며, GPS를 통해 최적화된 경로를 우리가 찾아갈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수학적 게산을 소프트웨어로 직접 대입해서 풀어왔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수학의 기본적인 요소들은 자연에서 시작되었고, 자연 속의 오묘한 규칙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하게 된다. 즉 생존을 위한 도구로서 인간은 수학을 활용하였고, 기후 예측이나 자연재해를 직과에 의존하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을 수학적 게산으로 대체해 나가고 있다. 또한 수많은 구성원들이 모여서 조직을 이룰 때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보편적인 기준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수학에 대한 이해가 먼저 우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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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use of Broken Angels (Hardcover)
Luis Alberto Urrea / Hodder & Stoughton General Division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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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브리울리오,미니의 오빠.벌써 죽은 지 10년 가까이 된 무덤 속 존재.그 아들은 세상을 떠남으로써 가족의 성인 자리까지 등극했다.불쌍한 아부지.아 큰 아들 둘이 있지만 아들 둘 다 처절하게 망했다.아무도 그 둘 이야기를 감히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랄로나 데리고 스스로를 속이고 계신다. 얘는 좋은 아들이라,아마도 어후,그녀의 머리가 또 지끈거렸다. (-39-)


라 글로리오사는 방금 막 들어와 환하게 불을 밝힌 식당 벽감안에서 엉덩이에 손을 대고 역광을 받으며 서 있었다. 보정 속옷을 입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금빛 치마가 불꽃처럼 펄럭이며 갈색 다리를 드러냈다. 그는 옷감 너머로 그 다리의 그림자를 보았다.어깨에 드리워진 그녀의 머리카락은 탄력적이고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잉크의 바다 위에 반짝이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그녀는 리틀 엔젤에게 시선을 보냈다.그는 씩 웃었다.그녀는 타코 가게에 걸린 아즈텍 여신의 모습이었다. (-161-)


라 글로리오사는 완벽한 아침의 힘을 과시하며 모습을 드러내었다.머리카락이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게 후광을 두른 듯 했다.세사르는 그녀를 보자 얼굴을 붉혔다. 리틀 엔젤도 마찬가지여다.두 남자가 간식을 간절히 원하는 슬픔 개처럼 멍청하니 서 있는 꼴을 본 그녀는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휙돌아서서 단호한 손짓으로 비닐 식탁보를 탁탁 풀어헤쳤다. (-303-)


리틀 엔젤은 숨을 깊이 들이 쉬었다
"내가 떠나서 미웠겠지.알아,내가 형을 비롯해서 모두를 깔보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도 알아.뭐 어쩌면 그랬을지도 .난 평생 살아남기 위해서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그런데 이제 형이 날 떠나려 하고,나는 형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가 없어.난 언제나 생각했어.내가 원했던 아버지를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그리고 이제껏 내가 원했던 아버지는 사실 형이었어." (-423-)


모든 사람은 비밀을 품고 죽는다.빅 엔젤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가장 끔찍한 사실을 안전하게 숨긴 채로 죽을 테니까.삶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또한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긴 투쟁이다. 이것이 그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었고,그건 결코 죄가 아니었다.다만 그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것 뿐이었다. (-466-)


마마 아메리카와 돈 안토니오 사이에 태어난 빅엔젤이 태어난 곳은 멕시코 본토였다.가난과 고통의 상징 멕시코, 그에 반해 빅 엔젤의 배다른 형제였던 리틀 엔젤은 아빠 돈 안토니오와 베티 사이에 태어난 아이로서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문화를 받아들이게 된다.일흔이 된 빅 엔젤과 이제 쉰살이 넘어선 리틀엔젤,서로 배다른 형제이면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그들 사이에 정겨운 우애가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묘하게 삐걱거리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빅 엔젤이 70 생일을 맞기 직전에 그에게 찾아온 곳은 죽음이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 빅엔젤은 슬퍼할 겨를이 주어지지 않았다.그건 백살 노모의 죽음이 자신 앞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한 죽음을 꿈꾸었던 빅엔젤은 자신의 생일을 미루고, 노모의 장례식을 준비하게 된다.삶과 죽음이 치열하다는 것을 빅 엔젤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통해서 보여주었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부모의 삶과 겹쳐 놓고 있었다.


빅엔젤과 리틀엔젤, 멕시코와 미국의 문화가 두 사람의 삶에 투영되고 있었고, 두사람 사이에 금빛 찬란한 라 글로리오사라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었다. 아름다운 아즈텍 여신처럼 보여지는 라 글로리오사 앞에 놓여진 현실은 가난 그 자체였으며, 미국에 불법으로 넘어오면서 살기 위해 식당 서빙을 하는 라 글로리로사의 삶은 지극히 이질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설은 가난한 나라 멕시코, 멕시코 문화 속에 숨겨져 있는 아픔과 고통의 문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한편 이 소설은 미국 사회 안에 내제되어 있는 히스패닉계 가정의 인종차별적인 요소들이 소설 곳곳에 배치되고 있어서,그들의 치열한 삶과 개방적인 성문화를 느낄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이 소설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건 죽음을 마주하는 멕시코 문화의 특징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에 대한 인식과 비교하게 된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결코 슬퍼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다만 그들에겐 어두움이 없으며, 현재에 주어진 삶에 충실할 뿐이었다. 매번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의 보편적인 정서와 그들의 삶은 서로 배치되고 있었으며, 왜 우리는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마주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거였다.소설은 행복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재인식을 심어주고 있었다.매번 죽음을 목도하고, 그 안에서 슬픔에 잠겨 있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와 그들의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은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그들에게 장례식이란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고, 살아잇는 사람에 대한 이벤트였고, 관계 속에서 양보와 용서의 기회였다.그건 우리가 장레식에서 매번 보여주는 그러한 일상적인 아픔과는 차별화하고 있다. 즉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전체적인 삶,데라 크루스 가정의 삶이 한국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소섪처럼 결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진 않았을 것이다. 문화의 차이,정서의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따스한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볼 수 있는 한 권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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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use of Broken Angels (Hardcover)
Luis Alberto Urrea / Little Brown & Co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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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브리울리오,미니의 오빠.벌써 죽은 지 10년 가까이 된 무덤 속 존재.그 아들은 세상을 떠남으로써 가족의 성인 자리까지 등극했다.불쌍한 아부지.아 큰 아들 둘이 있지만 아들 둘 다 처절하게 망했다.아무도 그 둘 이야기를 감히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랄로나 데리고 스스로를 속이고 계신다. 얘는 좋은 아들이라,아마도 어후,그녀의 머리가 또 지끈거렸다. (-39-)


라 글로리오사는 방금 막 들어와 환하게 불을 밝힌 식당 벽감안에서 엉덩이에 손을 대고 역광을 받으며 서 있었다. 보정 속옷을 입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금빛 치마가 불꽃처럼 펄럭이며 갈색 다리를 드러냈다. 그는 옷감 너머로 그 다리의 그림자를 보았다.어깨에 드리워진 그녀의 머리카락은 탄력적이고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잉크의 바다 위에 반짝이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그녀는 리틀 엔젤에게 시선을 보냈다.그는 씩 웃었다.그녀는 타코 가게에 걸린 아즈텍 여신의 모습이었다. (-161-)


라 글로리오사는 완벽한 아침의 힘을 과시하며 모습을 드러내었다.머리카락이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게 후광을 두른 듯 했다.세사르는 그녀를 보자 얼굴을 붉혔다. 리틀 엔젤도 마찬가지여다.두 남자가 간식을 간절히 원하는 슬픔 개처럼 멍청하니 서 있는 꼴을 본 그녀는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휙돌아서서 단호한 손짓으로 비닐 식탁보를 탁탁 풀어헤쳤다. (-303-)


리틀 엔젤은 숨을 깊이 들이 쉬었다
"내가 떠나서 미웠겠지.알아,내가 형을 비롯해서 모두를 깔보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도 알아.뭐 어쩌면 그랬을지도 .난 평생 살아남기 위해서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그런데 이제 형이 날 떠나려 하고,나는 형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가 없어.난 언제나 생각했어.내가 원했던 아버지를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그리고 이제껏 내가 원했던 아버지는 사실 형이었어." (-423-)


모든 사람은 비밀을 품고 죽는다.빅 엔젤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가장 끔찍한 사실을 안전하게 숨긴 채로 죽을 테니까.삶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또한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긴 투쟁이다. 이것이 그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었고,그건 결코 죄가 아니었다.다만 그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것 뿐이었다. (-466-)


마마 아메리카와 돈 안토니오 사이에 태어난 빅엔젤이 태어난 곳은 멕시코 본토였다.가난과 고통의 상징 멕시코, 그에 반해 빅 엔젤의 배다른 형제였던 리틀 엔젤은 아빠 돈 안토니오와 베티 사이에 태어난 아이로서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문화를 받아들이게 된다.일흔이 된 빅 엔젤과 이제 쉰살이 넘어선 리틀엔젤,서로 배다른 형제이면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그들 사이에 정겨운 우애가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묘하게 삐걱거리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빅 엔젤이 70 생일을 맞기 직전에 그에게 찾아온 곳은 죽음이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 빅엔젤은 슬퍼할 겨를이 주어지지 않았다.그건 백살 노모의 죽음이 자신 앞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한 죽음을 꿈꾸었던 빅엔젤은 자신의 생일을 미루고, 노모의 장례식을 준비하게 된다.삶과 죽음이 치열하다는 것을 빅 엔젤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통해서 보여주었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부모의 삶과 겹쳐 놓고 있었다.


빅엔젤과 리틀엔젤, 멕시코와 미국의 문화가 두 사람의 삶에 투영되고 있었고, 두사람 사이에 금빛 찬란한 라 글로리오사라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었다. 아름다운 아즈텍 여신처럼 보여지는 라 글로리오사 앞에 놓여진 현실은 가난 그 자체였으며, 미국에 불법으로 넘어오면서 살기 위해 식당 서빙을 하는 라 글로리로사의 삶은 지극히 이질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설은 가난한 나라 멕시코, 멕시코 문화 속에 숨겨져 있는 아픔과 고통의 문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한편 이 소설은 미국 사회 안에 내제되어 있는 히스패닉계 가정의 인종차별적인 요소들이 소설 곳곳에 배치되고 있어서,그들의 치열한 삶과 개방적인 성문화를 느낄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이 소설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건 죽음을 마주하는 멕시코 문화의 특징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에 대한 인식과 비교하게 된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결코 슬퍼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다만 그들에겐 어두움이 없으며, 현재에 주어진 삶에 충실할 뿐이었다. 매번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의 보편적인 정서와 그들의 삶은 서로 배치되고 있었으며, 왜 우리는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마주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거였다.소설은 행복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재인식을 심어주고 있었다.매번 죽음을 목도하고, 그 안에서 슬픔에 잠겨 있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와 그들의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은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그들에게 장례식이란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고, 살아잇는 사람에 대한 이벤트였고, 관계 속에서 양보와 용서의 기회였다.그건 우리가 장레식에서 매번 보여주는 그러한 일상적인 아픔과는 차별화하고 있다. 즉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전체적인 삶,데라 크루스 가정의 삶이 한국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소섪처럼 결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진 않았을 것이다. 문화의 차이,정서의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따스한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볼 수 있는 한 권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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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ouse of Broken Angels (Paperback)
Luis Alberto Urrea / John Murray Press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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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울리오,미니의 오빠.벌써 죽은 지 10년 가까이 된 무덤 속 존재.그 아들은 세상을 떠남으로써 가족의 성인 자리까지 등극했다.불쌍한 아부지.아 큰 아들 둘이 있지만 아들 둘 다 처절하게 망했다.아무도 그 둘 이야기를 감히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랄로나 데리고 스스로를 속이고 계신다. 얘는 좋은 아들이라,아마도 어후,그녀의 머리가 또 지끈거렸다. (-39-)


라 글로리오사는 방금 막 들어와 환하게 불을 밝힌 식당 벽감안에서 엉덩이에 손을 대고 역광을 받으며 서 있었다. 보정 속옷을 입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금빛 치마가 불꽃처럼 펄럭이며 갈색 다리를 드러냈다. 그는 옷감 너머로 그 다리의 그림자를 보았다.어깨에 드리워진 그녀의 머리카락은 탄력적이고 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잉크의 바다 위에 반짝이를 뿌려놓은 것 같았다.그녀는 리틀 엔젤에게 시선을 보냈다.그는 씩 웃었다.그녀는 타코 가게에 걸린 아즈텍 여신의 모습이었다. (-161-)


라 글로리오사는 완벽한 아침의 힘을 과시하며 모습을 드러내었다.머리카락이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게 후광을 두른 듯 했다.세사르는 그녀를 보자 얼굴을 붉혔다. 리틀 엔젤도 마찬가지여다.두 남자가 간식을 간절히 원하는 슬픔 개처럼 멍청하니 서 있는 꼴을 본 그녀는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휙돌아서서 단호한 손짓으로 비닐 식탁보를 탁탁 풀어헤쳤다. (-303-)


리틀 엔젤은 숨을 깊이 들이 쉬었다
"내가 떠나서 미웠겠지.알아,내가 형을 비롯해서 모두를 깔보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도 알아.뭐 어쩌면 그랬을지도 .난 평생 살아남기 위해서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그런데 이제 형이 날 떠나려 하고,나는 형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가 없어.난 언제나 생각했어.내가 원했던 아버지를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그리고 이제껏 내가 원했던 아버지는 사실 형이었어." (-423-)


모든 사람은 비밀을 품고 죽는다.빅 엔젤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가장 끔찍한 사실을 안전하게 숨긴 채로 죽을 테니까.삶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또한 타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긴 투쟁이다. 이것이 그의 가장 은밀한 비밀이었고,그건 결코 죄가 아니었다.다만 그가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것 뿐이었다. (-466-)


마마 아메리카와 돈 안토니오 사이에 태어난 빅엔젤이 태어난 곳은 멕시코 본토였다.가난과 고통의 상징 멕시코, 그에 반해 빅 엔젤의 배다른 형제였던 리틀 엔젤은 아빠 돈 안토니오와 베티 사이에 태어난 아이로서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문화를 받아들이게 된다.일흔이 된 빅 엔젤과 이제 쉰살이 넘어선 리틀엔젤,서로 배다른 형제이면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그들 사이에 정겨운 우애가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묘하게 삐걱거리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빅 엔젤이 70 생일을 맞기 직전에 그에게 찾아온 곳은 죽음이었다. 죽음을 코앞에 두고 , 빅엔젤은 슬퍼할 겨를이 주어지지 않았다.그건 백살 노모의 죽음이 자신 앞에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한 죽음을 꿈꾸었던 빅엔젤은 자신의 생일을 미루고, 노모의 장례식을 준비하게 된다.삶과 죽음이 치열하다는 것을 빅 엔젤은 스스로 자신의 몸을 통해서 보여주었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부모의 삶과 겹쳐 놓고 있었다.


빅엔젤과 리틀엔젤, 멕시코와 미국의 문화가 두 사람의 삶에 투영되고 있었고, 두사람 사이에 금빛 찬란한 라 글로리오사라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었다. 아름다운 아즈텍 여신처럼 보여지는 라 글로리오사 앞에 놓여진 현실은 가난 그 자체였으며, 미국에 불법으로 넘어오면서 살기 위해 식당 서빙을 하는 라 글로리로사의 삶은 지극히 이질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설은 가난한 나라 멕시코, 멕시코 문화 속에 숨겨져 있는 아픔과 고통의 문화를 마주하게 되었다. 한편 이 소설은 미국 사회 안에 내제되어 있는 히스패닉계 가정의 인종차별적인 요소들이 소설 곳곳에 배치되고 있어서,그들의 치열한 삶과 개방적인 성문화를 느낄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이 소설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건 죽음을 마주하는 멕시코 문화의 특징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에 대한 인식과 비교하게 된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결코 슬퍼하지 않으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다만 그들에겐 어두움이 없으며, 현재에 주어진 삶에 충실할 뿐이었다. 매번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의 보편적인 정서와 그들의 삶은 서로 배치되고 있었으며, 왜 우리는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마주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거였다.소설은 행복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재인식을 심어주고 있었다.매번 죽음을 목도하고, 그 안에서 슬픔에 잠겨 있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와 그들의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은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그들에게 장례식이란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고, 살아잇는 사람에 대한 이벤트였고, 관계 속에서 양보와 용서의 기회였다.그건 우리가 장레식에서 매번 보여주는 그러한 일상적인 아픔과는 차별화하고 있다. 즉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전체적인 삶,데라 크루스 가정의 삶이 한국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소섪처럼 결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진 않았을 것이다. 문화의 차이,정서의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따스한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볼 수 있는 한 권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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