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필사 - 별과 바람 그리고 나를 힐링하는 시간
윤동주 지음 / 북카라반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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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는 1917년 12월30일, 독립운동의 성지 북간도 명동촌에서 윤영석과 김용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첫 아이를 잃고 ,8년 만에 태어났으며,윤동주의 어릴 적 이름 아호는 해환이었다.어려서, 부모님의 영향를 받아서, 기독교인으로서 세례를 받았던 윤동주의 시에서는 기독교적인 심상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하였던 윤동주는 어려서부터 엉뚱하고, 마음이 여리고, 눈물 많고, 어진 소년이었다. 고종사촌 송몽규, 외사촌 김정우, 문성근의 아버지 문인환 목사와 함께 막역한 친구지간이었으며, 몽규는 용정의 은진 중학교에 입학하였으며, 그 당시 송몽규와 문인환 목사는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에서 함께 지냈다.1935년 9월 숭실중학교에 편입하였고, 송몽규와 문익환은 서로 떨어져 지냈다.



윤동주 필사』에서는 ㄹ민족시인 윤동주늬 내면을 이해할 수 있다. 아주 온순하고 다정하였돈 윤동주는 고집이 있었고, 연희전문학교 문과대에 입학하였다. 조선어 강의와 역사를 배우면서,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는 자신의 시를 통해서, 나라를 잃은 설움과 어두운 시절을 민족 저항시로 써왔으며, 일제는 1939년 민족말살정책으로 창씨개명을 시행하였다. 자신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 마음을 시로 승화하였고, '별헤는 밤'이 탄생되었다. 추억과 쓸쓸함 동경에 대해서, 써왔으며, 첫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써왔으나, 주변 사람들의 반대로 , 첫 시집을 출간하지 못했다.한글을 쓸 수 없는 일제 시대의 암울한 시대적인 아픔을 읽을 수 있었으며, 1943년 7월 여름방학 때 일본 특고경찰이 갑자기 들이닥치면서, 조선의 독립과 민족운화 수호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조선독립운공선동죄'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고, 1945년 2월16일 새벽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만다. 1945년 3월 7일 송몽규도 사망하였다.



1948년 1월, 후배 정병욱이 가지고 있었던 필사본과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윤동주의 31편의 시를 모아서, 윤동주 시후, 유고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탄생되었다. 영원한 청년 시인 윤동주, 한글을 사랑한 소년, 언어가 말살될 수 있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흩어진 한글로 쓰여진 것을 모으다가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혀 버린 윤동주는 1945년 광복을 앞두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가 쓴 『서시』 는 저항시인 윤동주의 발자취가 있으며,살아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겠다는 의지와 성찰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그의 강한 의지가 대한민국 민족의식 고취로 이어졌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 지난 지금도 그를 기리고 함께 아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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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 비움은 자유다, 새롭게 정리한 개정증보판
김세중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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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때는 그 행복에 매달리지 말고,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 하지 말라.

다만 그대로 받아들이며,

맑은 정신으로 자신의 삶을 지켜보라.

법정스님의 수행의 궁극적 지향을 '풍부한 소유'가 아닌' 풍성한 존재'에 두었다. (-8-)



우리는 필요에 의해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인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무엇인가에 앍매인다는 뜻이다.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말이다. (-10-)



우리는 숲속에서 고독하게 살고 있다.숲속에 나뒹구는 나뭇조각같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부러워한다. 지옥에 떨어진 이들이 천상에 사는 이들을 부러워하듯. (-48-)



밥을 먹을 때 잘못 잡으면 손바닥을 상하듯이

수행자의 행실이 그릇되면 지옥으로 끌려 들어간다.화살을 바르게 잡으면 손바닥을 상하지 않듯이 수행자의 행실이 바르면 열반이 가까이 있다. (-63-)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그리고 연기를 보는 자는 부처님을 본다. (-102-)



객기 부려 만용하지 말고, 허약하며 비겁하지 말며, 지혜롭게 중도의 길을 가라.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모습이다. 사나우면 남들이 꺼려하고, 나약하면 남이 업신여기나니, 사나움과 나약함을 버려 중도를 지켜라. (-104-)



항상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참회하는 마음은 모든 장엄 중에서 으뜸이 되나라.참회하는 마음은 쇠갈고리와 같아서 능히 인간의 잘못된 마음을 억제하나니,무든 선남선녀들은 항상 참회하는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느니라. (-126-)



지혜로운 사람 없는 곳에 모임은 없고, 법 아닌 말을 하는 이는 지혜롭지 않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모두 끊으면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니라. (-210-)



2010년 3월 11일 일적한 법정스님은, 자신이 창언한 길상사에서 열반에 들었다. 법정 스님은 자신의 사후에 책을 모두 절판하라고 지시하였고,그대로 따랐다. 그의 불교적 가치관은 무소유에 있으며, 필요한 것만큼만 쓰되, 채우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성냄, 탐욕, 어리석음과 멀리함으로서,누구나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을 중생에게 전해주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였다.1993년 성철 스님은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열반에 들었으며, 수행과 정진을 실천하였으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책 『무소유』은 두 사람이 우리에게 남기고자 하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정리하였다. 무소유하되, 탐욕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 행복을 갈망하지 않고,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며,오직 현재에 살아가는 삶이 지헤로운 삶이라 했다. 물질적인 소유가 커질 수록 ,그 물질에 얽매이게 된다. 비싼 명품 하나를 가지게 되면,그 명품에 얽매이게 되고, 어떤 직책이나 직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소유하지 않으면, 탐욕과 어리석음, 성냄에서 자유로워지게 되고,나의 감정조차도 소유하지 않게 된다.



불행한 삶과 행복한 삶은 종이 한장 차이에 불과하다. 내 앞에 놓여진 행복한 삶을 즐기되, 불행한 삶에 천착하지 않아야 한다.이 세상 모든 것은 생겨났다가 소멸되어 지므로, 인과관게에 따라서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은 정진에는 타협이 없다 하였다. 도를 얻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인간의 삶에서, 수행은 잠깐이 아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스스로 거듭나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매순간 참선하며,자신의 행위를 되돌아 보되,그 과거에 대해서, 연연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행복한 삶이 깃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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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결이 파도가 되어 - 김삼환 목사의 나누는 삶, 섬기는 사랑에 대하여
은파기념사업회 지음 / 현암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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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김삼환 목사의 어린 시절, 그가 살았던 집은 첩첩 산중 두메 산골이었다. 자동차도 없고, 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사람들의 발자국만을 헤아리며 찾아가야 했던 , 자칫 잘못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벼룩길'이라는 길을 지나야 나오는 집이었다. (-17-)



그는 그렇게 신학교에 다니고 이후 1963년 고향 근 처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송편을 버릴 때의 다짐과는 달리, 나눔의 목회를 마음껏 펼칠 수가 없었다. 그는 나누어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가난뱅이 전도사였던 것이다. (-26-)



그 병원이 바로 성소병원이었다.지금 명성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안동성소병원은 김삼환 목사가 피눈물을 흘리며, 첫 아이를 하나님께로 보냈던 바로 그곳이다. 차비도 없고 장례비용도 없어 차갑게 식은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직접 산에 묻어주었던 그대, 슬피 우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듯했다. (-28-)



MCM을 시작할 당시 에티오피아에는 의사가 약 4천명 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숫자가 많이 늘어 현재느 1만명 가까이 되지만, 에티오피아 인구가 약 1억명인것을 생각하면 인구 만 명당 의사 1명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사가 인구 500명당 1명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였다. (-73-)



그리하여 1991년에 영광여자고등학교를 인수하게 되었다.가장 시급한 과제는 학생들이 더 나은 학습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었다.아이들은 나무와 같아서 물만 잘 주면 알아서 쑥쑥 자란다.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잘 해낼 것이었다. (-109-)



안동성소병원은 경북 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서양식 병원으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작터 플레처가 사택 마당에 천막을 치고 교회와 진료소를 열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안동에 서양의술이 전래된 것이다. 천막을 처서 만든 임시진료소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초대 병원장 플레처선교사와 2대 병원장 스미스 선교사 이후에도 수많은 선교사들의 노력이 있었다. 일제에 의해 병원이 강제 폐원되고 한국 전쟁 당시에 전물이 폭파되었음에도 안동성소병원은 다시 일어섰다. (-132-)



내가 사는 경북 영주에는 영광 재단이 잇다. 영광중학교, 영광여자중학교,영광고등학교,영광 여자고등학교,이렇게 네개의 교육기관이 영광재단 소속이었다. 이 학교들은 사립학교이며, 기독교 종교 교육이 학교 수업에 포함되어있으며,경상북도 영주에서,어느 정도 공부잘한다는 아이들이 입학하는 곳이다. 이 학교를 인수한 곳에 은파 김삼환 목사가 1980년 개척한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다. 가난한 학교 재단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던 김삼환 목사는 나눔과 섬김으로서, 가난한 이들을 모른척 할 수 없었던 것이다.그의 기독교적인 사랑이 곳곳에 스며들었다.



작은 물결이 파도가 되어』의 주인공은 명성교회를 개척한 김삼환 목사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경상북도 영양군의 두메 시골에서 태어났으며 ,자동차나,버스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스스로 가넌한 삶과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신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1980년 서울 명일동에서 명성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그의 사역 활동은 국내에 머무르지 않았다. MCM을 통해, 1억 인구 에티오피아에서,의료 사역을 진행하였다. 대한민국은 의사를 늘리기 위해서, 의과 대학을 확충하려는 추세이지만, 대한민국보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에티오피아에는 의사 1명단 1만명의 에티오피아 인들을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의 탁월한 의료 인프라를 해외에 사랑과 나눔으로, 함께하기 시작하였으며, 에티오피아인들이 조금 더 나은 의료 혜택을 누리도록 힘써왔다.자신의 어린 시절의 고난과 고통과 상처가 목회자의 길을 걸어옴에 있어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지거나, 자신보다 어려운 이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며, 섬김과 사랑으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학고 있었다. 김삼환 목사는 1980년부터 2015년까지 담임목사로 활동하다가,이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소외된 사람을을 찾아가서 돕는 일읋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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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엄마의 감정을 돌볼 시간이다 - 마음이 아픈 엄마들을 위한 감정공부
윤정희 지음 / 프로방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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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음과 감정을 돌아보고, 건강한 자아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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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엄마의 감정을 돌볼 시간이다 - 마음이 아픈 엄마들을 위한 감정공부
윤정희 지음 / 프로방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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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자녀가 사춘기에 이르면 감정과 지성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특히 이 시기에 엄마는 이전의 훈육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자식의 행동과 태도의 변화로 확신하게 된다. 보육 위주로 해주던 어릴 때가 가장 쉬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



엄마가 되고선 넘어져도 다시 금방 일어나야 한다.미쳐 몰랐던 잠재적 능력을 발휘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엄마가 되면서 세상이 달라지고 놀라운 변화가 생긴다. 내가 생각해 온 미래와 다른 모습을 직면하면서 하루를 또 시작한다. (-23-)



왜 이렇게 힘들고 벅차지?

내가 욕심이 많아서 이렇게 두번이나 시련이 찾아온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잘 극복하고 살아가는데 왜 나는 이렇게 나약할까?

이 우울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까?

이 길 끝에 행복은 있는 것일까?

너무 답답해.

건강하지 못한 엄마라 늘 미안해.

난 못난 엄마인 것 같아.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내가 나를 돌보지 못해서 스스로에게 미안해.

너무 지친다.

난 아무리 노력해도 매일 우울하고 불안해.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

예전처럼 돌아가서 웃으며 지내고 싶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엄마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 (-35-)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부모의 삶이 있고,자녀의 삶이 존재한다 한국 사회의 독특한 문화 중에는 부모와 자식 간에 천륜이라는 개념을 주입시킨다는 점이다. 자녀의 잘못이 부모의 잘못처럼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은 항상 엄마에게는 큰 책임이 되고 있으며, 가정적이지 못한 엄마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결국 참고,인내하고, 끊임없이 노력해도,제자리에 있는 기분이 드는 이유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드는 그 순간 엄마의 감정은 처참하게 바닥으로 내려가는 기분이 들 수 있다.



책 <이젠 엄마의 감정을 돌볼 시간이다> 을 통해서, 한국 엄마의 감정과 고민,걱정을 읽을 수 있었다. 작가 윤정희는 화학을 전공한 이학박사였으나, 아이를 낳고 난 뒤 전업주부의 길을 걸었고, 우연한 기회로 국가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며, 경단녀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역할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한국 사회에서, 엄마의 표본은 여전히 조선시대 심사임당의 모습이다. 남편이나, 자녀가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무기력해지고, 자녀의 삐뚤어진 행동에 대해서,그 모든 과오가 자신의 책임인 것처럼 생각하고, 아이의 보육과 훈육에 있어서, 내 잘못으로 생각한다.죄책감, 미안하ㅁ,우울과 불안,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음 속에 억눌린 감정과 생각들, 자아에 대해서,단단하지 못하고, 눈앞애 놓여진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있다.바로 그런 엄마의 마음 상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다. 부모가 바로 서야,자녀가 바로 설 수 있고,자냐에게 집착하는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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