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달러로 세상에 뛰어들어라 - 삶의 방식을 재발견하고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는 법
크리스 길아보 지음, 강혜구.김희정 옮김 / 명진출판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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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10만원으로 창업할 수 있는 발칙한 아이디어 모음

 

 

 

나는 대학을 졸업과 동시에 백수가 되었다. IMF 때문이었다. 그래서 취업 대신 창업을 했다. 학교 후문 뒤에 있는 허름한 닭갈비집 아저씨와 손을 잡았다. 요리기술은 온전히 아저씨가 맡고, 체인사업 영업은 내가 맡았다. 기본급 백만 원에 약간의 성과급을 받는 조건으로 우리 둘은 MOU(?)를 체결 체인사업을 시작했다.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겁 없이 시작한 나의 첫 사업은 다행히 4개월이라는 부족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명퇴자들의 창업붐’이라는 호황에 힘입어 1년 반 만에 체인점 68 개를 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체인점 50개를 달성하면 법인을 만들겠다는 아저씨의 약속이 공수표가 되자, 실망한 나는 어느 칼국수 업체에서 제시한 거액의 연봉에 스카웃되었고, 그 선택은 어쩌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실수가 되었다. 나는 비전 있는 사업가에서 봉급쟁이 직장인이 되어버렸고, 동업자를 떠나보낸 닭갈비 아저씨는 ‘업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어느 날 잠이 든 채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 후 나는 5 년 동안 ‘지겨운 밥벌이’를 전전한 끝에 다시 사업을 시작했지만, 그 때는 이미 흐름을 놓쳐버린 때문인지 실패만 거듭했다. 하지만 수년이 흘러 글밥을 먹고 있는 오늘도 나는 창업을 꿈꾸고 있다. 성공창업이 주는 짜릿함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다.

 

그런 내게 <100 달러로 세상에 뛰어들어라>는 촐촐한 오후 네 시의 초콜릿 같았다. 이 책은 되도 않는 책상물림들이 ‘창업전문가’라며 대박집과 쪽박집의 사이에서 예비창업자들을 희롱하고 우롱하는 식상한 창업관련서 사이에서 군계일학처럼 눈에 띄었다. “가진 게 없어서 시작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라는 제언은 온갖 핑계로 창업을 미루고 신세한탄을 하는 예비창업자들에게 일갈하고 있었다. 나는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목적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좋은 일자리, 행복을 주는 직업이라는 게 대체 뭘까? 그것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개인의 ‘가치’도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일자리를 말한다. (중략) 그렇다면 ‘가치’란 무엇일까? 가치란 사람이 어떤 유용한 것을 만들어 세상과 공유할 대 발생하는 무엇이다. 누군가가 ‘좋은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말은, 다시 말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다는 뜻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세계 곳곳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실업률이 심각하다. 특히 청년 실업문제는 더욱 심각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해 12월 현재 청년층 실업률은 7.5%로, 전체 실업률(2.9%)의 3배에 육박한다. 그런 현실에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면서 개인의 가치도 획득할 수 있는 일자리’가 과연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이유는 충분했다.

 

 

<100달러로 세상에 뛰어들어라>는 가치 혁신가이자 사업가인 크리스 길아보가 기존의 직업 개념에 구애받지 않고 작은 돈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창업에 성공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성공 사례를 담았다. 실제로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성장시키는 구체적인 노하우를 듣고자 175개국을 다녔고, 1,500여 개의 성공 비즈니스 사례 중에서 누구나 창업할 수 있는 ‘마이크로 비즈니스’들을 엄선해서 책에 소개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이크로 비즈니스는 단돈 100달러(최대액)와 인터넷과 통신 수단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인’ 규모로 이루어지는 혁신적인 사업 형태로, 얼핏 거창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마이크로 비즈니스는 한마디로 언감생심(焉敢生心), ‘이런 일하면 어디 먹고나 살겠어?’ 싶어서 내버린 사업 아이디어였다. 이를테면 이렇다.

 

한 젊은이가 창고 정리 처분을 해야 하는 침대 매트리스 한 트럭분을 싸게 샀다. 그리고 최근 경기불황으로 문을 닫은 자동차 대리점을 싸게 빌린 후, 약간의 마진을 붙여 손님들이 싼 값에 매트리스를 충분히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여기까지는 요즘 ‘땡처리 장사꾼’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압권이다. 배달을 직접해주는데 특수 제작된 자전거로 집까지 배달해줬다. ‘매트리스를 자전거로 배달을 한다고?’ 궁금했다면 여기서 사업아이디어를 잡은 것이다. 이 똑똑한 사업가는 매트리스를 자전거로 배달하는 재미있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수십만 뷰를 기록하며 화제를 낳았고, 덩달아 사업도 성공하게 되었다.

 

또 아일랜드의 베니 루이스라는 사람은 취직은 못했지만 외국어를 익히는데 소질이 있는 사내였다. 무려 7개 국어를 할 줄 아는데, 이 친구는 단 6개월 만에 외국어 하나를 익히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온라인에 외국어를 쉽게 익힐 수 있는 자신만의 비결을 메뉴얼로 만들어 패키지로 판매해서 대박을 냈고, 지금은 전 세계를 돌며 학생들에게 직접 강의를 통해 외국어를 빨리 배울 수 있는 1인 사업가로 변신했다.

 

어느 여행매니아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국의 방콕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노하우와 쇼핑팁, 현지의 유명한 명소들의 할인쿠폰 등을 담아 온라인에서 독자적으로 전자책을 출판하는 사업가로 변신했고, 개를 좋아하는 리사 셀먼이라는 여성은 주인을 대신해 개를 산책시키는 애견 돌보미 사업으로 연 10만 달러 소득을 일으키고 있었다.

 

책에 소개된 마이크로 비즈니스의 성공사례들은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신뢰할 만했는데, 그 이유는 저자가 많은 성공스토리 중에서 여섯 가지 항목을 만들어서 그중 네 가지 이상을 충족시키는 것들만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열정을 쫓는 사업인가? - 흥미를 갖는 활동이나 취미와 연관된 사업인가

낮은 창업비용인가? - 정말 100달러 이하의 사업인가

최소 5만 달러 이상의 사업 소득인가? - 정말 수익이 발생하는가

특별한 전문지식이 필요하지 않는 사업인가? - 누구나 창업할 수 있는 사업아이템인가

소득을 완전히 공개할 수 있는가? - 불법, 음성적인 사업인가

고용인 5인 이하로 운영되는 사업인가? - 일상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가

 

 

 

책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국내에서는 어떤 마이크로 비즈니스 아이템이 어울릴까?’ 였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성공하는 사업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고객이 나에게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이해하라고 말한다. 요즘 기업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이유도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근본적인 욕구를 이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소비자)의 근본적인 욕구가 무엇일까? 인간은 우선 게으르다. 그래서 게으른 나를 대신 해서 움직여주는 무엇이 있다면 돈으로 바꾸려 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늘 자유를 원해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기꺼이 돈으로 살 것이다. 아울러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랑받고 싶고, 행복하고 싶으며, 부자가 되어 싶어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바로 시간.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다 보니 시간의 소중함을 알아서 내 시간을 아껴주거나 효율성을 높여주는 무엇이 있다면 기꺼이 살 것이다. 반대로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는 것들 다시 말해 스트레스, 갈등, 복잡함, 불확실성 등을 해결해 줘도 소비자의 지갑은 언제든 열릴 것이다. 이상이 내가 이 책에 소개된 성공한 ‘마이크로 비즈니스들’에서 찾은 공통점들이었다.

 

 

이 리뷰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출판전문저널 <기획회의>(338호)에 기고된 리뷰입니다.

 

 

본 이미지는 팍스 TV(2013년 1월 20일) "부자가 되는 책 - 김은섭의 책 CHECK!'에

방송된 내용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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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천재 이제석 - 세계를 놀래킨 간판쟁이의 필살 아이디어
이제석 지음 / 학고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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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의 원작 '광고천재 이제석'의 리뷰 입니다. 드라마는 보지 못했지만, 드라마화될 만큼의 '무엇'이 있겠다 싶어 지난 해 사두었던 책을 펼쳤는데, 단숨에 읽게 하네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게 사실은 옳더라."라는 이제석이 말이 뇌리에 남습니다. 이게 바로 젊은이들이 해야 할 생각이 아닐까요?
오랜만에 '아, 이제라도 읽어서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괜찮은 책입니다. 설 연휴 드라마 대신 이 책, 어떠세요? ^^

 

 

순종하지 말고 생각을 바꿔 판을 뒤집어라!

 

 

책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소설과 만화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시작된 드라마는 일종의 ‘자기계발서’를 원작으로 했다. ‘총각네 야채가게’ 이후 두 번째로 보는 경우다. ‘무엇이 이 책을 드라마로 제작되게 하였을까?’ 이 궁금증이 내가 <광고천재 이제석>을 읽은 이유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판이 불리하면 뒤집어라!“
그 판에 억지로 적응하느니 판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주어진 내 모습을 바꿀 수 없다면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 세상사는 방식도, 창의력도 팍팍 터진다. 결승점을 바꿔버리면 꼴찌로 달리는 사람도 일등이 된다. 판이 더럽다고 욕할 시간에 새판을 이렇게 짜고 그 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나는 죽어라고 고민해보려고 한다.“ (프롤로그 중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가득한 한 청년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변변찮은 스펙 ‘때문에‘ 그 어느 곳에도 취업하지 못하고 동네 가게 간판이나 홍보전단을 만들며 나름 만족하며 살았다. 하지만 어느 날, 쪽팔렸다.

 

“대학 졸업한 걸로 유세를 떠는 체질은 아니지만 명색이 시각 디자인과 수석 졸업자인 내가 동네 명함집 아저씨에게도 밀린다는 사실이 솔직히 쪽팔렸다.” (12쪽)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꿔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안가 이제석은 뉴욕행 비행기 편도 티켓을 끊었다. 그 후 벌어지는 좌중우돌 성공스토리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이 말 그대로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또한 본문 중에 소개되는 그의 광고 아이디어들에 감탄도 절로 나온다.
한편 책을 읽는 내내 ‘대기업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도서관에 틀어박혀 목숨 걸고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 모습이 본문 위에 떠올랐다. 최고의 인기직업이 공무원이고, 취업을 위해 대학 1학년 때부터 스펙을 준비해야 하는 현실은 어제 발표된 초중고등 학생들의 정신건강 결과에 그대로 나타난다(관심을 갖고 관리해야 하는 관심군 학생이 100만 명을 넘었고 이미 문제가 시작된 주의군 학생도, 22만 명이나 된다).

 

 

구직자 100명당 단 1명꼴로 대기업에 취업되는 것이 현실인데, 그 ‘단 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이들을 보면 마치 먹이를 찾기 위해 서로 빨리 뛰려는 경쟁에만 몰두하느라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떼로 질주하다가 절벽이나 호수에서 다 함께 떨어져 죽는 북극 툰드라 지역의 레밍스(나그네쥐)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그 점에서 이제석은 그 무리들로부터 벗어난 친구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대신 ‘세상이 내 가치를 모른다면, 다른 세상에 나를 던져 보겠다.’ 며 뉴욕행을 택했다. 결과는 오늘날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만큼 세상이 주목하는 ‘이제석’이 되었다.

 

 

이제석이 광고쟁이로서 인상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의 유명세가 상업광고가 아닌 공익광고를 통해 더욱 빛났다는 점이다. 본문에 소개되는 다양한 공익광고들을 보면 그가 멋진 ‘광고쟁이’라는 것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탁월한 아이디어로 광고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은 어떻게 저런 멋들어진 아이디어를 쏟아낼 수 있을까?’ 부러워진다. 하지만 그들도 보통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고민하고 ‘산고의 고통’ 만큼 수고를 쏟아 아이디어를 얻어낸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오레오OREO 광고를 만들 때 하루 세 끼 오레오만 먹어댔다. 이빨 사이사이에는 검은 과자 찌꺼기가 끼었고 똥 누고 돌아서서 보면 똥 색깔이 짙은 갈색도 아닌 완전한 흑색이었다. 아스팔트 찌꺼기가 변기에 떠있는 것 같다. 이런 짓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분이 오신다. 빵! 하고 머리가 새하얘지면서 온몸에 전율이 인다. 팔 뒤에서부터 어깨 등줄기 목줄기 뒤통수를 타고 백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고 다시 괄약근과 전립선으로까지 타고 내려온다. 사형수가 따로 없다. 나는 이 맛에 광고한다. 아이디어 째내는 일을 도저히 그만둘 수 없는 거다.” (160쪽)

 

 

그가 경영하는 이제석 광고연구소는 집값, 찻값, 대학등록금, 결혼비용 등 대한민국 4대 악질 사회문제를 개선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게 가능하겠는가?’ 싶겠다만 생각은 구체적이다. 자신처럼 생각을 바꾸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일차적으로 4대 악질이 왜 생겼는지 따져봤다. 그게 문제 해결의 시작이니까. 내가 보기엔 대학 안 가면 루저 되고, 큰 차 안 타면 기 죽고, 결혼식 뻑적지근하게 하지 않으면 불행하고, 고층 아파트에서 안 살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한 이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이 런 인식을 깨는 작업이 내 첫 임무가 될 것이다.” (209쪽)

 

 

바보는 실패하면 가장 먼저 변명꺼리를 찾는다. 그리고 낙담하고 위로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답은 없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 책을 읽어 ‘이제석’에 놀라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의 성공 속에 숨은 땀과 노력, 무엇보다 그의 담대한 '끼와 깡‘을 훔쳐야 할 것이다. 드라마가 백 배 재미있어지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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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영화관 - 그들은 어떻게 영화에서 경제를 읽어내는가
박병률 지음 / 한빛비즈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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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영화 속에서 경제상식을 배우다!

 

 

지난 연말 오랜만에 대학동창들과 송년회를 가졌다. 장소는 강남 교보생명 사거리에 자리 잡은 Urban Hive 라는 건물의 1층에 있는 한 커피숍. ‘도심 속 벌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건물에 구멍이 뚫려 있는 독특한 모양의 건물이었다. 오죽하면 별명이 '땡땡이 건물'일까(알고 보니 중앙대 교수이자 아르키움 대표인 건축가 김인철 씨의 작품이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구멍 뚫린 땡땡이 건물 자랑이 아니라, 그 날 이 건물을 본 친구들의 평가다. 말 그대로 십인십색십(十人十色)이었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친구 '박(朴)'은 이 건물이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 역할을 해서 최고가로 임대하는데 무리가 없었을 것이고, 덕분에 땅값도 많이 올랐을 것'이라고 평가했고, 호텔에서 요리사로 있는 친구 '이(李)'는 깊은 맛을 주는 치즈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 '정(鄭)'은 말이 필요 없다는 듯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만 했다.
끝으로 창업을 준비 중인 친구 김(金)은 '커피맛과 분위기가 좋다'며 매출을 짐작하고 있었다. 난 뭘 했느냐고? 난 그저 재미있는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개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직업은 정말 속일 수가 없구나‘. 그리고 곧 깨달았다. 건축가가 바라본 건물 이야기보다 요리사가 바라본 건물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다는 것을.

<미술관에 간 경제학자>
라는 책이 있다. 몇 해 전에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초로의 중년이 미술관에서 미술품을 관람하고 있다. 그의 눈은 작품을 보지만 머리는 딴 생각을 했다. 그의 직업은 경제학 교수, 그는 작품 속에서 경제 원리를 찾았다. 미술과 경제학, 전혀 상관없는 것 같은 두 학문이 서로 만나자 재미있는 스토리가 되었다.

 

 

저자 최병서 교수는 주인공 경제학자 P씨를 통해 작품 하나를 보고 이에 얽힌 주제나 경제적 모티브를 생각하고, 그와 연결되는 또 다른 그림을 찾는 과정을 책에 담았다. 미술작품 속에 숨어 있는 비화와 에피소드에 딱딱하게만 여겼던 경제 원리가 녹아들어 작품소개에 버금가는 흥미를 선사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고흐의 그림은 왜 비쌀까?" 정답은 예술가는 '독점 공급자'이기 때문이다. 즉, 작품을 그린 화가가 죽으면 공급이 중단되는데, 이처럼 예술가가 창조한 하나의 작품은 그 자체로서 시장에서 유일한 것이므로 늘어나는 수요만큼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고흐는 살아서는 단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다(세상을 떠나기 5개월 전 동생 테오 덕분에 겨우 붉은 포도밭Red Vinyard at Arles를 단 돈 4백 프랑에 판 적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고흐가 죽자 작품에 날개가 생기기 시작했다. 1987년 일본의 한 보험회사에 팔린 '해바라기'는 2천 475만 프랑에 팔렸고, '가셔 박사의 초상Le Portrait de Docteur gachet'은 1990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8천 250만 달러에 팔렸다. 고흐의 사망 이후 작품 값이 무려 백만 배 이상 뛴 셈이다. 약에 쓰일지 모를 개똥도 일단은 귀하고 볼 일이다.

 

 

만약 경제학자 P씨가 미술관 대신 영화관을 간다면 어떨까? 단언컨대 미술관보다 백배는 재밌다. <경제학자의 영화관>을 읽어보면 공감할 것이다. 신문기자 박병률은 어느 날 뮤지컬과 영화를 보다가 ‘어? 저건 경제학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영화 속에 숨은 경제를 찾아 글로 썼다.
저자는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경제학에 의해 움직인다고 강조한다. 경제는 인간과 인간의 접점에서 일어나듯 영화는 인간의 삶을 적나라하게 투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 속 배경은 경제 환경을 떠날 수 없으며 영화 속 인물들 역시 경제 원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 속에 들어있는 35편의 영화가 우리의 삶을 그렸다면, 영화 속에 숨은 우리네 숫자놀음은 경제학이 풀어냈다. 영화 이야기는 눈에 보이는 듯 재미있고, 알쏭달쏭했던 경제 이야기는 스토리를 만나 재미있다.

 

 

 

 

우선 요즘 가장 핫hot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에는 어떤 경제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우선 영화 전반에 19세기 극심한 빈부격차가 담겨 있다. 그리고 출옥한 장발장을 피하는 사람들은 확증편향, 즉 범죄자는 위험하고 신뢰할 수 없다는 선입견에 빠졌고, 신부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은촛대를 팔아 공장을 만들어 큰돈을 번 장발장에게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 느껴진다. 한편 빵 한 조각마저 구할 수 없었던 99% 서민들이 일으킨 프랑스 혁명은 자본가에 대한 저항운동이었고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전혀 뜻밖의 사태, 즉 나심 탈레브가 주창한 블랙 스완Black Swan이었다.
아내는 내게 친구는 <레미제라블>을 세 번 봤는데 볼 때 마다 울었다며 ‘나도 봐야겠다’고 재촉했고(밴드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 나는 ‘남들이 다 보는 건 절대 안 봐’(스놉효과)하고 감히(?) 아내에게 퉁을 놓다가 즐거운 주말 저녁에 아내 없이 홀로 라면을 끓여먹어야 했다.

 

 

지난 해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속에도 경제학은 숨어 있다. 돈이 많던 적든, 집이 크든 작든 지역특산물을 세금으로 내는 공납제는 임진왜란 이후 왜적을 대신해 백성을 괴롭힌 세금이었다. 하지만 광해군은 대동법을 시행했다. 대동법은 갖고 있는 땅에 비례해 쌀로 세금을 내는 조세법으로 소득이 많은 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자는 발상이었다. 당연히 기득권의 저항은 거셌다. 이 같은 ‘부자증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세가 되었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이른바 낙수효과를 기반으로 한 ‘부자감세’가 대세였다. 올바른 ‘리더상’을 보여준 광해군, 아니 엄밀히 말하면 저잣거리 광대 하선은 대선이슈와 맞물린 ‘수혜주’로 관객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한편 만화영화 <라푼젤>에서 마녀가 라푼젤을 높은 탑에 18년 동안 가둬놓은 이유는 ‘희소성의 법칙’ 때문이었다. 마녀는 라푼젤에게서 머리카락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 생명력을 잃어버리기에 마녀에게 라푼젤은 희소성이 컸다. 이 희소성은 반지의 제왕과 같아서 인간의 욕망을 부채질하고, 경제를 뜨겁게 달군다. 홈쇼핑에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절호의 구매기회’를 반복하고, 제품마다 ‘한정판’을 만들어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레터스 투 줄리엣>에서 첫사랑이 애절한 이유에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답이 되고, <은교>에서 노시인 이적요가 통속소설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여자아이 은교에 의한 ‘넛지 효과’ 덕분이었다. 러닝타임이 무려 3시간이 넘었던 영화 <타이타닉>에는 희소성에 의해 같은 상품에 다른 가격을 매기는 ‘가격차별’은 내내 부자와 서민을 갈등하게 만들었고, <시라노 연애조작단>에서 돈 많은 펀드매니저 상용이 연애를 아웃소싱한 배경에는 애덤 스미스의 ‘절대우위론’ 또는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이 들어 있다.

 

 

1960년대초 고등학생이었던 나의 큰외삼촌은 그 시절 ‘영어천재’였다. 그 비결은 일요일 아침마다 헐리우드 영화를 하는 극장을 들어가 영화를 네 번을 보는 것. 처음은 평소처럼 한 번 보고, 두 번째는 귀를 막고 보고, 세 번째는 눈을 가리고 듣기만 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온전히 봤는데, 이때에는 영화대사를 따라 읊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삼촌은 독학으로 스크린 영어와 팝송 영어의 원리를 먼저 깨우쳤던 것이다. 당연히 영어영문학과를 들어가 외무고시에 합격해서 외교관이 될 거라 예상했던 큰외삼촌은 가족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재수를 해서 명문대 치대에 입학한 후 졸업을 해서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슈바이처의 발자취를 따라 아프리카로 떠났다. 영어가 삼촌의 성적을 키웠다면, 영화는 그의 인생을 바꿔버렸다. 이 책을 읽어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데, 등장하는 영화를 읽다 보면 강단에서 저잣거리로 내려온 편한 경제학을 만나고 곧 경제학은 영화 속에도 있고, 우리의 삶 속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장담하건대 평소보다 경제학 1미터 정도 가깝게 느껴질 것이다.

 

 

정진홍 교수는 몇 해 전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찾으라>고 주문하며 ‘기업의 인문학 열풍’에 불을 지폈고 또 어떤 책에서는 그림과 시에서 CEO가 갖추어야할 경영 전반을 찾으라고 했다. 문사철의 인문과 예술, 그리고 문화를 통하다 보면 스마트한 창의력과 인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그렇다. 21세기는 컬처 비즈Culture Biz의 시대다. 영화평론가도 아니고, 경제학자도 아닌 기자가 오히려 앞선 전문가들보다 더 훌륭하게 영화와 경제학을 풀어내고 있다. 아니 훌륭한 한식조리사가 되어 영화와 경제학을 잘 버무려 참기름 내음이 진동하는 전주비빔밥으로 만든 것 같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이젠 미술, 예술, 철학, 영화, 그리고 문화 이 모든 것들이 소수들을 위한 '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떤 직업의 사람이든 제 입맛에 맞도록 해석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언젠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를 살피는 의사도 나오고, 미술품 속에 나오는 건축물을 이야기하는 목수의 책도 나오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 ‘열배 즐기기’를 소개할까 한다. 외삼촌의 방법을 일부 베낀 방법인데, 꽤 쓸모가 있었다. 한 꼭지의 글 제목에 소개된 영화를 먼저 본 후, 글을 읽어보자. 만약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글을 먼저 읽은 후에 영화를 보자. 영화가 열 배는 더 재미있다. 거기에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경제상식은 이 책이 주는 보너스다.

 

 

<이 리뷰는 월간 금융 2월호에 실린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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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도둑들 - 그 많던 돈은 어디로 갔을까
로저 로웬스타인 지음, 제현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영화 <마진 콜>보다 생생하고, 다큐<인사이드 잡>보다 리얼한 금융위기를 읽다!

 

2009년 9월 15일 주말, 미국에서 가장 신망 있고 규모가 큰
투자은행의 하나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또 하나의 투자은행인 메릴린치도 강제매각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큰 보험회사인 AIG의 붕괴되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 전체에 수십조 달러의 손해를 일으켰고, 3천만 명의 실업자를 만들어 냈으며 미국의 국가부채를 두 배로 만들었다. 전 세계에 걸쳐 자산가와 부동산가치가 무너졌고, 약 1,500만 명의 사람들이 수입과 직업을 잃었고, 중산층들이 다시 빈곤층으로 떨어졌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이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닌, 통제불능한 인간의 욕망이 금융산업을 통해 만들어 낸 재앙(災殃)이었다.

 

 

세계 경제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유럽발 재정위기로 주가가 다시 폭락하자 미국과 한국의 주가도 뒤를 따른다. 전 세계는 계속해서 돈을 풀고 있지만 실물경제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자칫 유동성을 거두기라도 한다면 다시 경제는 무너질 것만 같다. 이른바 자생력을 잃은 경제를 말하는 재정절벽에 다다른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어쩌다가 이 꼴이 된 걸까.

 

 

<탐욕의 도둑들>은 그 궁금증을 풀어준 책이다. 이 책은 월가의 유명한 경제 칼럼니스트이자 스토리텔러로 유명한 로저 로웬스타인이 25년간 월가의 펀드 매니저로 금융위기를 직접 목격한 한 남자 로드리게스를 주인공으로 글로벌 금융 붕괴 위기의 전말을 소설 형식의 팩션으로 재현했다. 월가의 CEO, 정부 관계자 등 금융위기에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인물들을 180여 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생생한 스토리로 담아 거대 금융기관들과 CEO들의 도덕적 헤이를 직접 겨냥해 밝혀냈다. 리얼한 스토리는 금융위기 하루 전 월스트리트를 그린 영화 <마진 콜Margin Call>보다 낫고, 팩트fact는 2011년 아카데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인사이드 잡Inside Job>보다 충실하다.

 

 

 

 

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번영을 국가의 최우선과제로 삼는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로 경제학자들과 금융로비스트들의 지지 속에 금융규제완화를 시작했다. 90년대 초반 규제완화와 금융기술의 발전은 파생상품이라 불리는 복잡한 금융상품의 폭발을 일으켰다. 경제학자들과 은행가들은 수천 개의 모기지와 다른 대출 즉, 자동차 론, 학자금 론, 신용카드 론 등을 모두 합해서 만든 부채담보부증권(CDO) 파생상품이 시장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워런 버펫이 말했듯이 ‘대량살상무기‘였다.

2001년 부시 행정부가 들어섰을 때 미국은 5개 투자은행과 2개의 금융기업, 3개의 증권보험사, 3개의 신용평가사로 사실상 재편되었고, 이들은 새로운 먹이사슬을 만들었다. 즉 은행이 돈을 빌려준 후 채권을 투자은행에 팔았고, 투자은행은 파생상품CDO을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은행은 더 이상 대출받은 사람들이 돈을 갚을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출자들에게 받아야 할 돈은 채권을 팔면서 이미 투자은행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파생상품이 불안해지자 AIG를 통해 신용부도스와프CDS라는 보험상품을 만들어 리스크를 헤지했다.

 

 

 

 

그리고 저신용자에게도 서브프라임(비우량) 모기지를 남발, 이른바 약탈적 금융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정부와 금융기관에 속아 내 집 마련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고자 대출을 받았던 사람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대출자가 압류를 당하고 집에서 쫓겨나자, 파생상품CDO은 부실채권이 되었고, 리먼브라더스를 시작으로 ‘부실 도미노’가 시작된 것이다.

월스트리트와 워싱턴의 탐욕과 무책임은 세계를 대공황 이래로 가장 심각한 금융위기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금융계의 경영인중 단 한 명도 범죄행위로 기소되거나 심지어 체포되지 않았다. 특별검사도 임명되지 않았으며, 어떠한 금융회사도 증권사기죄나 분식회계죄로 형법상 기소되지도 않았다. 전 세계가 엄청난 댓가를 치뤘고, 아직까지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이러니는 금융위기를 초래한 사람들과 기관들은 5년이 지난 아직도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넘겨볼 책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본문을 읽다 보면 카드채 부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부산저축은행 사태 등 금융을 둘러싼 굵직한 사건들이 오버랩될 것이다. 가계 부채 1000조, 하우스푸어 150만 가구,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빚을 진 2013년 대한민국. 그 많던 돈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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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5
우타노 쇼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이런 게 반전소설이다!

 

 

오랜만에 집어든 소설,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을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출판평론가 한기호 선생이 자신의 블로그에 “내가 만난 최대 반전의 소설”이라는 평에 혹해 덜컥 주문을 했고, 주말에 도착한 책을 일요일에, 엄밀하게 말해서 세 시간 만에 읽었다. 처음부터 중반까지는 잔잔함을 훔쳐보듯 느끼듯 읽었고, 결말의 70여 페이지는 숨 쉴 틈 없이 훑어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뭐냐, 이 미친 반전은!”

 

 

 

 

여기 한 사내가 있다. 좋을 일도 없고, 굳이 찾지도 않을 것 같은 사내, 그래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아무런 표정이 없을 것 같은 무미건조한 사내, 하지만 알고 보면 복이라곤 지지리도 없는 우울한 사내다.

 

 

“대학에서 마케팅 동아리에 든 것은 십 년쯤 시대를 앞선 것이었지만, 졸업 후 창업할 만한 재능과 배짱이 없어 대부분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마차를 끄는 말처럼 일하는 것이 당시 일본의 평범한 샐러리맨의 모습이었다. 열렬한 연애는 아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적령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가정보다 일을 우선하는 아버지와 집안일을 야무지게 돌보며 취미생활에 바쁜 엄마, 엄마와는 나이차 있는 자매 같지만 아빠는 다소 무시하는 딸, 홈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전형적인 가정이었다. 히라타는 평범하게 나이를 먹어갔다. 그런데 딸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아내는 자살했다. 자신은 암 선고를 받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평범과는 무관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186-187쪽)

 

 

주인공 히라타 마코토는 지방 대형마트의 보안책임자로서 특별할 것 없이 일상을 보내는 한 50대 남성이다. 그는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까지 잃은 기구한 운명의 사내, 한마디로 홀아비다. 근무 중 음식을 훔치다 들킨 20대 여성 스에나가 마스미를 취조하다 그녀가 9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딸과 같은 나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평소 같았으면 경찰을 불렀을텐데, 그녀를 놓아준다. 죽은 딸과 같은 나이라는 이유만으로...이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우연히 그리고 일부러 만나게 되고 서로를 알아간다. 하지만 사람 속이란 게 한 길 아니, 한 치라 할지라도 전부 알 수는 없는 법이다. 두 사람이 서로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결말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꼭 만난다.”는 말이 있다. 살다보면 거짓말 같고 소설 같은 뜻밖의 조우(遭遇)를 경험을 하게 되는데, 말 그래도 ‘운명 같은 만남’이다. 읽는 내내 복 없는 사내 히라타 마코토의 심경을 추측했다. 그리고 끝내 그에게 공감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뺑소니사고, 공소시효, 자살, 가족해체, 데이트폭력 등의 일본의 사회문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우리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미래의 내 모습 같아서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작가 우타노 쇼고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게 만든 작품이었다. 최고의 반전 소설, 맞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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