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곡선이 지금 어느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고 싶은 요즘, 아마도 이건 분명해 보인다. 수준급의 스트레스가 압도적 스케일로 점점 몸을 불려가는 와중에도 이렇게 조용히 엎드려 잠복해 있을 수 있다는 것. 바야흐로 독서에 집중하기 좋은 계절인가. 그러하다. 매우 그러하다. 겨울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꼭 겨울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독서를 방해하는 것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들의 몸집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독서는 결코 내 인생의 돌파구가 될 수 없다. 아니 더 똑바로 말한다면, 돌파구 자체가 없다. 비상계단 정도는 있으려나 하지만 애초의 설계도를 보면 그런 건 있지도 않았다. 꼼짝없이 갇힌 것이다. 눈발이 날리고 있다. 아니 있었다. 눈발이 조금 나부끼길래 읽던 책을 덮었고 잡스런 상념이 흐르는 동안에 다시 밖을 내다 보니 희끗하던 것들이 사라지고 없다. 잠시 독서를 방해 받았고 잠깐의 선물이 허망하게 사라지는 걸 보았다. 이제 책을 읽어야겠다. 조용히 엎어져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를 바친다. 당장 죽는다 해도 억울해 할 이유를 잠시 잊게 만드는, 여실한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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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가 뭐라고. 이제 이말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나 무르익었나? 개뿔이나. 하지만 난 좀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리뷰에 함몰되지 말자 다짐했건만, 모처럼 고인 이슬처럼 영롱한 이 헛된 다짐도 역시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위기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주둥이는 파국을 맞도록 되어있다. 덧붙이고 덧붙이다가 인생 끝난다. 덕지덕지 내 마음에 창호지를 바르고 나면 그 안온한 방구석에 꼬마인형처럼은 아니고 꿰매다만 입술이 있겠지. 리뷰는 이래서 문제다. 책을 읽자고 덤벼든 리뷰가 책을 잡아먹는다. 나도 끌려가 같이 잡아 먹힌다. 표현이 과하지만 이대로 둔다. 냅둬야 반성을 한다. 길거리에 발가벗겨 내쫓기는 그 악몽만 악몽이 아니다. 표현이 과하다. 냅둬라, 표현. 갈 때까지 가다가 죽거나 말거나 하겠지. 


다시 돌아와 리뷰가 뭐라고, 망가진 거울을 보듯 나를 본다. 살만한 나날인가, 요즘? 끄덕이고 싶다. 긍정에 긍정을 다하여 이 한 몸 내달리고 싶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그곳의 밀림을 달리다 찢긴 발가락을 주무른다. 좀처럼 각질은 낫질 않는다. 새로운 각질은 날로날로 성장한다. 그만두라고 외치지만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오늘도 난 발가락을 주무르며 리뷰 생각에 몸을 떤다. 변태 아줌마가 여기 있다. 아 재수없구만요, 이 맛에 나는 산다. 이 말에 힘을 얻는다. 다시 달려갈 힘. 사방이 가시이고 가식이고 간에 변태 아줌마만 믿고 달려간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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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싶은 음악도 보고 싶은 풍경도 보고 싶은 영화도 없다. 난 요즘 그렇게 살고 있다. 아, 그러니까 뭘 해도 별로인 것이다. 이해력은 물론이고 감수성이라는 것도 그 실체가 무너진지 오래다. 도무지 뭘 해도 설레지가 않다. 좌표도 없는 희멀건 지도를 펼치면 불안의 너울을 쓰고 달려드는 휑한 도로에서 두리번거리는 내가 있다. 한 명도, 어떻게 단 한 명도 없을 수가 있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지? 나를 구원할 누군가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내가 구원할 누군가에 대한 얘기다.


.........



한 분야에 꽂히면 끝장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소. 풍문으로 들었지만 풍문으로만 듣지 않았다오. 풍문이면 풍문이지 뭔 소리오? 하는 분들 위해, 그러니까 이럴 때의 내 유치함의 끝은 어느 정도냐면 이거요. 우편함도 없으면서 날아든 우편물이 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만 듣던 어느 먼나라의 유적지에 머리를 조아리며 졸다가 저 바람소리가 내 방 문풍지 소리인지 풍문으로만 듣던 그 바람인지 사리분별 못하는 딱 그 수준이라오. 아무튼 그 끝장의 정도가 어디냐에 달렸겠지만, 이런 류의 사람들이 흔치 않다는 건 사실 아니겠소. 게다가 축복이라오. 여기엔 희소성의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오. 아니 희소성의 가치만 있소. 그러니까 그 한 분야라는 것이 어떤 분야인가 하는 희소성인 것이오. 이를테면?  글쎄요. 각자 하기 나름 아니겠소? 편하군요. 네 편하오. 불철주야 주구장창 한 우물만 정신일도하사불성 투철한 정신 순전한 몸과 마음 온전히 불살라 맨바닥 육신의 백골 난망난망 하염없이 진토되는 그날까지 한 우물만 파다가 아 그래 콸콸콸 솟구치는 그날에 대한 확신도 기약도 없기로서니 아 드디어 해냈어 언젠가는 이럴 줄 알았어 근데 뭐야 이게 뭐야 이건 아니잖아 잘못 건드렸어 오마이갓 신음처럼 흘러나오는 되돌릴 수 없는 다시는 돌아가지 못해도 괜찮다 괜찮다 이를 악물고 굳게 다짐하는 그런 편안함 이라오. 그나저나 풍문으로만 듣던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한단 말이오. 그 정신으로 정신나간 축복을 챙기는 사람들이 내게도 있기를 내 집에도 들러 주기를. 뭘 더 바라겠소 하는 마음으로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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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4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컨디션 2017-01-04 21:08   좋아요 2 | URL
뭐이런 페이퍼 제가 한두번도 아닌 걸요. ^^ 힘든 일은 언제나 있고 누구나 있는데 그때마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말을 하는 거죠. 그나마 이런 곳에 서요.

2017-01-04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5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트에 2027년 12월 1일이라고 쓰지 않았다. 그밖에도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오늘 하루 쓴 글씨는 2027. 12.1. 이것 뿐이다. 볼펜에 라벨을 붙이느라 쓴 것인데, 이걸 대체 왜 붙인 걸까. 괜한 소리 해봤자 우스울 뿐이다. 왜 모르겠는가. 종이와 연필이 함께 하지 못한 이 어긋남을 보면서 지난 시간을 함께 본다. 그 속에 후회할만한 것이 조금이라도 있었던가. 있었다고 믿었고 그래서 후회도 하고 자책도 했지만, 소용없는 일임을 이제는 안다. 이 집구석에 있는 종이란 종이, 필기구란 필기구, 책이란 책은 모두 없애고 컴퓨터니 폰이니 하는 것도 죄다 버리고 나면, 마침내 올 것인가. 카타르시스가 당최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 뻔 하지 않았나. 그렇게 살 뻔 했다고 하늘을 향해 소리치고 땅이 파이도록 길게 울어도 마침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다만 한가지. 마침내 흐르던 콧물이 멎고 끓던 가래가 사그라 드는 날. 그 오늘 같은 저녁이 있으리라. 지금 내게 말이다. 지금 당장의 일이라서 걷잡을 수는 없지만 그래서 더 분명하게 와있음을. 나는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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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5분 남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보낸 시간이 활자와 영상으로 채워졌음에도 마음 한구석이 구석으로 처박힌 느낌이다. 시간의 흐름을 이길 수 없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인데 절망과 비탄마저 모호하게 되어버렸으니 한번더 버림받은 기분으로 이 밤을 보내야겠다. 기분은 비록 이렇지만 그래도 뭔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쓰다 보면 이상하게 그런 힘이 생긴다. 글씨를 쓰고 마음을 쓰고 시간을 쓰고. 살다 보면 반드시 어떤 날은 좋은 날이 있듯이 쓰다 보면 시간은 흐를 테고 그러다 보면 살아갈 힘도 생길 것을 믿는다. 꼭 믿는다. 죽기살기로 살아본 적은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눈을 감게 되는 그날 비로소 후회하는 지점이 있다면, 왜 난 한번도 죽기살기로 살지 못했나. 그런 후회의 눈물을 흘릴 것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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