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활자 중독증도 아니고 난독증도 아니다.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아니 그것과 전혀 상관없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에는 번번이 실패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사실에 별로 실망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인간이다.

 

오늘은 하루 종일 햇빛 속에서 8시간을 일했다. 일했다, 라고 쓰고 보니 사실 별반 일한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늦었지만 하게 된다. 글은 이렇게 뭔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구나..아, 이 문장은 마치 사람의 인격마저 돌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가만 보면 이 역시 착각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글은 아메바이거나 럭비공이다. 단순하거나 종잡을 수 없거나 둘 중 하나다. 글은, 마치 글은, 정연한 체계속에서 잘 짜여진 구조 안에서 최적화된 피트니스의 절차를 밟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그게 아닌 것이다.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아무도, 아니 나는 글을, 그렇다고 확신하지 못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하루종일 집에 있었고 그는 하루종일 밖에 있었다.
나는 오늘 꼭 해야 할 일 중에 (아니, 하기로 한 일 중에) 단 한가지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하지 않아도 될(아니, 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했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건 일이랄 것도 없는, 말하자면 보잘 것 없는, 즉, 나를 위한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저녁이 되자 하루종일 밖에 있었던 그와 함께 저녁을 함께할 시간이 되었다. 저녁은 생각보다 일찍 왔다. 춘분과 하지 사이의 시절을 감안하더라도 저녁은 빨리 왔다. 나의 마음이 온전하게 받아들인 체감의 결과라 해도 난 항변할 의지가 없다. 맞는 말이니까. 

막걸리를 사들고온 그는 오자마다 옷을 벗었다. 골이 패인 마른 엉덩이. 얼핏 듬직한 심볼. 난, 이때다 싶을만큼의 수위로  슬몃 나긋한 미소를 지어봤지만 그의 두 다리는 이미 나른하게 풀려있어서 얼른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아 배고프겠구나. 너무나 당연한 욕망. 하루종일 안락하게 집에 머문 대가를 달게 받겠다는 자세로 분주하게 그릇을 달그락거리는 일은 의외로 전투력을 자극했다. 당신이 샤워하는 동안 저는 밥과 술을 대령하겠나이다.. 뭐 이런 투.

막걸리를 마시는 동안 그가 팟빵을 켰다. 잠시 귀를 기울이던 우리는 이내 입을 열었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더이상 경청하지 못하게 되었다. 방송은 뒷전이 되었고 곧바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정치인은 시정잡배 같다는 내 말이 빌미가 되었고, 그가 말하기를, 그건 잘못된 생각, 아니 태도다, 그런 식의 상투적 발언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아니 오히려 보수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결과만 만들 뿐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성토를 했다. 요즘 그는 자주 이런다. 나는 이런 그의 술버릇이 계속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는 요즘 더이상 술주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간을 정해놓고 글을 쓰는 어느 님을 본받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딱 10분간 쓰고 나가자. 왜냐면 자야하니까.

 

오늘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와 책도둑을 조금 읽었다. 아주 조금.

 

책을 읽는 일이 어느날의 즐거움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난 그런 류의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운명(까진 아니고) 그냥 처지로 인생이 처지게 되는 나날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경험의 뚱딴지 같은 자각에 대해 날벼락과도 같은 축복이라고 해두면 어떨까.

 

아무튼 오늘 몇 페이지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있었는데..

 

그리고 그 와중에 잠깐 잠깐 무기력하게 졸았다는 사실이 차마 부끄럽지만..

 

이젠 부끄럽지 않다.

 

아니 않게 되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15-04-15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

컨디션 2015-04-17 03: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
우리 서로 익히 알고 있는 사이인듯 아닌듯 애매하게..ㅎㅎ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즐겁다. 고요하게 위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즐겁다. 그렇다고 고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고요하게 위장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고요를 위장하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위장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힘이 내겐 없다. 비관이 아니다. 내 판단의 근거를 취약하거나 하잘것 없는 걸로 만들자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좋을지 모르는 이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도 되는 상황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다. 일이란, 세상 어떤 일이든 모든 건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 누구의 강제된 지배나 사사로운 욕구에 이끌리지 않고 가장 선선하게, 가을바람처럼 쓸쓸하게, 봄바람을 모르는 듯 쓸쓸하게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게 힘들다면 노력을 해서라도 자연스러워져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막걸리 1.7리터의 절반쯤과 맥주 일반 글라스로 세잔쯤 되는 술을 마셨다. 오타가 잦은데도 기어이 수정을 하게 되는 건 완벽에 대한 강박이 아니라 아무 것도 아닌 습관이다. 오타를 발견했을 때 방치냐 수정이냐를 놓고 갈등하는 것 자체가 피곤하기 때문에 그냥 이끌리는대로 하기로 한다. 결국 최소의 오타를 위해 술기운을 빌어 싹싹 지우는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컨디션 2015-03-28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야겠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이마에 와서 꽂힌다. 한때? 관계 맺었던 이웃들의 글을 보기 위해 이런 저런 경로를 거쳐야하는 번거로움이야 아무 것도 아니지만 못난이 같아지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분명 피곤한 일이다. 그래도 어쩌랴. 이 정도 피곤쯤이야. 몇잔의 술을 마셨는지 저렇게 쓰느라 시간을 낭비한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