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5면. 1976.1.13. 보고싶은 프로를 원하는 시간에. 

76년에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텔레비전 혁명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TV 혁명이 이루어지면 시청자들은 TV방송국의 프로변화에 더이상 구애되지 않게 될 것이며 어린이 쇼우프로를 보려는 아들과 축구경기를 보려는 아버지간의 다툼이 사라지게 될 것이며 시청자들은 오늘날 녹음기나 전축으로 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쇼우를 쉽게 녹화할 수 있고 좋아하는 영화나 연주회 강연등을 쉽게 볼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TV혁명의 기수는 아직 시판단계에 있는 비디오 녹화장치를 갖춘 새로운 TV수상기인데 이것이 금년에는 미국전역에 보급되어 그같은 TV 혁명을 대중화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TV수상기는 한편으로는 TV영상이 브라운관에 나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브라운관에 나타난 것은 물론 나타나지 않은 다른 방송국의 프로를 동시에 녹화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같은 시간에 방영되는 다른 방송국들의 2개프로 중 하나는 그 시간에 보고 다른 하나는 녹화해두었다가 편리한 시간에 볼 수 있으며 꼭 보아야 할 프로가 방영되는 시간에 외출을 하게 되는 경우 그 시간에 보고자하는 프로가 녹화되도록 해놓았다가 귀가해서 볼 수 있으며 인간의 달착륙과 같은 역사적인 장면을 녹화하여 영원히 보관해둘 수 있게 되었다.   

박완서(1979.11.9). 살아있는 날의 시작<34>.동아일보 4면. 

"(전략) 과외방은 여름엔 서늘하고 겨울엔 따뜻하죠. 방음장치도 잘 돼 있고요. 그리고 누구네 다 있는 테레비말고 아직은 귀한 비디오가 있어요. 통때는 그림의 떡이던게 갑자기 신기한 실용성을 띠고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죠. 먼저 입맛을 다시는 놈이 비디오를 조작하죠. 엄마 우리는 나무라지 마세요. 우린 그게 거기 있었으니까 본 것 뿐이니까요. 거기있는 비디오테이프는 다 일본말로 녹음된거죠. '대부'도 '광야의 무법자'도 연기는 코쟁이들이 하는데 시부렁 거리긴 일본말로죠. 구경군은 열여덟 살의 한국소년이고요. 상상력이 풍부한 나이죠. 코쟁이는 행동하고, 왜놈은 말하고 엽전은 사고한단가요? 그 광경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그야말로 코메디죠."  

박완서(1979.11.12).살아있는 날의 시작<36>.동아일보 4면. 

"엄만 '에마뉴엘 부인'을 보셨어요?" 

"뭐라고? 너 지금 뭐랬니? 그럼 거긴 그 테이프까지 마련돼 있더란 말이냐?" 

그 여자는 불에 덴 것처럼 잡고있던 아들의 손을 뿌리치며 대경실색했다. 

"아니예요. 전 봤다고 안했어요? 보셨느냐고 여쭤봤을 뿐이죠?" 

"못봒다. 안봤어. 그 해괴한 걸 왜 보니?" 

"보시지 않으셨다면서 해괴한 건 어떻게 아셔요?" 

"소문도 못듣냐? 세상에 아들하고 이런 얘기까지 해야하다니.." 

"엄마, 어제던가요. 그제던가요. 아뭏든 가외에서 시험을 본 날이었으니까요. 며칠전서부터 시험본다, 시험본다로 협박받다가 마침내 시험을 보고난 다음이었기때문에 우린 모두 다 어지러울 정도로 피곤했죠. 어두운 골목에서 한 녀석이 책가방을 드립다 태질하면서 말했어요. 야아 새끼들아 우리 심심한데 계나 하나 모으자고요. 참 시시한 놈도 다 있죠. 쳇 대학 뒤구녁으로 들어갈 기부금 계라면 우리 엄마가 이미 하고 있을 걸. (중략)그랬더니 녀석 씩 웃으면서 뭐랬게요? 야, 왜 그렇게 말이 많니? 내 계는 '에마뉴엘 부인'계다. 들래? 안들래? 우린 모두 다 어두운 골목에서 말없이 더운 침을 삼켰죠." 

"얘야,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엄마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못알아듣겠다." 

"보충설명을 하죠. '에마뉴엘 부인'의 비디오테이프는 빌리기만 하는데도 돈이 꽤 든다는군요. 그래서 그 자금을 우리끼리 합자를 하자는 소리였어요." 

(중략) "실망했어요. 엄마도 다른 엄마들과 조금도 다르지않군요. 우리들의 책상서랍속의 담배 한 갑, 우리들 속에 있는 '에마뉴엘 부인'에 대한 호기심만 얼핏 엿보고도 대경실색, 우리를 죄인취급 하려는 건, 학교에서 가끔 예고없이 우리의 주머니나 가방을 뒤져서 꽁초나 연애편지를 찾아내가지곤 사건 난 것처럼 우리를 망신 주고 수틀리면 퇴학이나 정학까지도 불사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에요. 엄마는 물론 담배보다는 '에마뉴엘 부인'이 더 용서할 수 없는 무도덕이라고 생각하시겠죠? 근데 왜 제 방에서 담배만 찾아내고 '에마뉴엘 뷰인'은 못찾아 내셨나요? 문맹도 아니면서.." 

 


 

음반법 개정안 마련 제작 업자에 체형도. 경향신문(1980.2.23).7면. 

정부는 시중에 범람하고 있는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법적규제를 신설하고 불법,불량음반제작자에게 체형을 가할 수 있도록 단속벌칙규정을 강화한 음반법개정안을 마련했다. 22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오는 임시국회에 상정될 음반법개정안은 음반에 영상과 음이 함께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포함시키고 음반제작업체의 등록 취소요건을 강화, 등록을 취소당한 자는 1년 이내에 재등록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또한 단속공무원에게 불법불량음반을 적발, 수거할 수 있도록 새로 규정, 단속공무원의 권한을 법적으로 뒷받침했고 벌금형으로 그치던 벌칙도 강화, 2년 이내의 체형을 부과하거나 벌금을 현행 1백만원이하에서 3백만원 이하로 대폭 인상했다. 

김성녕(1980.2.26).VTR.경향신문.4면. 

하오 7시. 어둠이 깔린 서울의 신흥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H씨 집앞에 3대의 택시가 동시에 멈췄다. 10여명의 장년들이 그 집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돌 잔치라도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 집에서는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었다. 모두 숨을 죽이고 한 곳을 향해 시선들을 집중하고 있었다. 성인용 VTR을 보기 위해 퇴근 후 직장동료들이 몰려든 것.  

VTR, 곧 비디오테이프레코더는 TV화면에 나타나는 영화로서 성인용의 총아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돈푼깨나 있다는 집에는 한 대쯤 준비돼 있는 일종의 '스테이터즈 심벌'이기도 하다. 밤만이 아니다. 낮에는 그집 주부의 친구들이 요지경(?)을보기 위해 모여 들어 똑같은 장면이 벌어지곤 한단다. 이에 뒤질세라 아이들까지 어른들이 집을 비운 사이 몰래 안방에 들어가 슬쩍(?)해 본다니 문제는 여기서부터 벌어진다.   

김유경(1980.4.29). 유익한 문화정보 생생히..주한 문화원들-자국 문화영화 상영. 경향신문.4면. 

독일 미국 프랑스 문화원은 서울에 모여 있는 주한외국문화원 가운데 그중 활동이 두드러진 곳이다. 도서실 이용과 함께 여기서 정기적으로 상영하는 영화나 영상녹화필름(VTR)은 해당국의 각 분야에 걸친 문화권을 생생히 보여주는 역할을 해내고 있어 이용도가 높은 편이다. 영화상영의 경우 어느나라보다 번잡한 일정을 잡고 있는 프랑스 문화원은 68년 문화원 창설 당시 매주 2회의 필름을 상영하던 것을 74년부터는 연 72편으로 늘려 매일 4회씩 상영하고 있다. 프랑스 국내 제작회사 소유의 흥행권에 대한 상업성이 소멸한 영화를 16MM필름으로 복사, 각국의 문화원으로 보내지는 것인데 1940년대 영화에서부터 70년대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망라돼있고 작품수준 역시 형편없는 영화에서부터 화제를 일으켰던 수준작까지 다양하다. 

서울에서 보게되는 프랑스영화는 방콕을 중심으로 동남아권을 도는 필름 중 연초에 주한 프랑스문화원에서 선택해오는 것들이다. 매주 화,목요일에는 특별히 전문영화인을 위해 또는 보통 때 시간을 내지 못하는 일반인을 위해 상영되기도 한다.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는 감독이나 작품을 대할 수 있어 긴요한 참고자료가 된다는 게 이용자들의 말이다.  

영화클럽에서는 감독이나 그 영화기법에 따른 관찰자료로 문화원의 영화상영프로그램을 애용한다. 모두 영어자막이 따라나와서 영화의 이해는 불어를 듣고 이해하거나 영화를 해독하는 층만이 감상이 가능하다.  낮은 천장으로 불편한 1백10석의 자리는 대부분 학생들로 메워진다. 이곳의 입장권은 1백50원. 

(중략)77년부터는 영상녹화기에 의한 비디오필름 4백80여편이 확보됐다. 최근에는 아비뇽축제 파리오페라단등이 비디오필름에 담겨 소개됐다.  (중략) 미국문화원은 불규칙적으로 매달 1회나 2회 '흘러간 명화'의 상영이 있다. 그러나 영상녹화기의 이용이 높고 16MM의 문화영화필름이 예술 경제 등 각 분야 별로 수백 편이 비치돼 있다. 
 

김상(1980.4.11). 늘어가는 비디오이용. 동아일보.5면.  

"아빠 우리는 비디오 안 사" 이웃집에서 VTR로 컬러만화영화를 신나게 보고 온 꼬마가 아버지에게 매달리져 졸라댄다. "생일날엔 꼭 비디오를 사달라"는 아들의 말에 김모씨(37.회사원)의 표정은 심각해진다. 특권층의 표상으로만 여겨오던 VTR가 언제부터 아이들의 입에서까지 오르내리게 됐을까. (중략) 1956년 개발된 VTR가 우리나라에 흘러들어온 것은 10여년전부터, 해외여행자 및 미군 부대등의 복잡한 루트를 통해 음성적으로 침투한 음향과 영상의 이 마술상자는 일부 특권층과 부유층으로 퍼졌다. 자체 프로그램을 제작,공급하는 프러덕션도 없을뿐더러 여러가지 정치 경제적 여건에 묶여 VTR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비디오를 갖춘 상류층에서는 일본에서 제작된 혹은 일본 프로그램을 복사한 외설테이프를 구입해서 돌리게 된 것이다. 뿐만아니라 비밀요정 등의 고급유흥업소에도 비디오를 설치, 비밀영화관을 차리게됐다. 

그러다 7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VTR의 대량생산으로 가격이 1백50만원 정도로 다소 떨어지고 대중의 관심이 쏠리자 VTR는 대중업소에도 등장했다. 낙지집 주점 다방 등에 설치된 VTR는 주로 일본의 스포츠나 쇼프로그램을 복사한 것. 청소년들은 비디오에 대한 호기심으로 어두컴컴한 '청소년출입금지구역'에서 시간을 보내고 일어 자막에도 별 저항을 느끼지 못한 채 저질테이프에 몰두해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VTR의 건전한 이용도 시도되고 있다. 요즘 고급주택가나 호화 아파트 주변의 유치원에서는 "비디오가 있어야 유지가 된다"는 말까지 생겼다. 동기야 어쨌든 이렇게 설치된 VTR는 유희 등의 유아용테이프를 사용, 교육에도 이용되고 있다. 또 회갑이나 결혼식의 모습을 비디오 카세트에 담아주는 대행업소도 늘어나는 추세. 주로 아파트촌과 고급호텔예식부를 무대로 활약하는 이들 잔치녹화업자들은 건당 5만~8만원씩 받으며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아직은 소규모이고 자체 프로그램을 제작할 정도는 못되지만 그런대로 VTR의 올바른 이용이 이뤄지고 있다. 일부 대기업이나 대학에서도 연수 특별교육용에 사용, 제방향을 잡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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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디오영상회 엮음. 제3의 영상 - 비디오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1991. 다보문화. 

유현목(1982.5). 비디오를 문화의 생명체처럼. 

16~17쪽 

요즈음 우리의 어린이들을 관찰해 보면 누구나가 느끼는 것처럼, 그들은 이미 우리들 지나간 세대들이 겪었던 문자부호적인 논리를 통한 사고방식을 떠나, 새로운 영상적 사고(16)의 특질을 체질화 하고 있음을 본다.  

황왕수(1982.4). 한국영화의 방향모색. 

57~58쪽. 

텔레비젼의 보급으로 극장용 영화가 점차 사양화 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만이 아닌 이미 오래된 세계적인 추세이고,또 어쩔 수 없는 시대적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선진 외국에서는 텔레비젼과 싸우기 위해 시네마스코프를 개발하고 입체영화까지 등장해서 영화가 한층 대형화 됐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방편이었을 뿐 이미 텔레비젼에 빼앗긴 관객을 극장안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중략) 그것은 극장에 가지 않고서도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5mm나 70mm의 대형영화가 아니고서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는 관객도(57) 있지만, 자기집 안방에 편안히 누워서 텔레비젼 화면으로도 얼마든지 만족할 수 있고, 오히려 그편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근래 새로 등장한 홈 비디오는 극장용 영화에 더욱 위협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극장이나 텔레비젼에서 일정한 시간에 한번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록해서 보관할 수도 있고, 서가에 책을 꽂아놓듯이 수집해 놓고,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마음대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61쪽 

영화가 반드시 필름만으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이유가 어디 있으며, 극장에서 영사기로만 보여주어야 한다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필름이든 테이프든 좀 더 편리하고 효과적인 것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이며, 극장이든 텔레비젼이든 필요와 수요에 따라서 자연히 발전해 갈 것입니다.  

김대훈(1982.5). 영상 표현력의 세련을 위하여. 

65쪽 

(전략) 최근에는 VTR의 출현으로 시각영상의 정보마저도 팩키지화 하여 저장해두고,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안방에 앉아서 되풀이 반복하여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 때나 원하는 것을 선택하여 접할 수 있게 됨으로써, 1회성을 탈피하고 인쇄매체처럼 반복 다회성을 갖게 됨으로써, 막강한 매체로 성장하고 있다.  

박상규(1982.12). 비디오 잡감 - 체험으로 배우는 비디오 - 

 199쪽 ~200쪽

+ 방안에 들여놓은 화분이 고장의 원인  

3년전 쯤의 어느 추운 겨울날, 잘 나오던 비디오가 갑자기 고장이 났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아파트를 방문했다. 친구의 얘기로는 3일전부터 VTR이 동작을 안해서 수소문한 끝에 기술자를 모셔와 보였드니, 드럼 헤드에 이상이 있다며 부속을 일본에서 구해와야 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선 VTR에 전원을 넣고 작동을 시켜 보니 화면에 컬러가 전연 없고, 화면 가득히 스노우 현상만 생기는 드럼 헤드의 불량증세와 똑같았다. 그런데 쓰지도 않은 기계가 하루밤 사이에 고장이 났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한참 고심하고 있는데 방안에 있는 화분이 보였고, 나도 갑자기 더운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추운 밖에서 더운 방안으로 들어와 코트를 입은채 그대로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혹시 그게 아닐까? 하고 한 생각이 떠올랐다. 친구에게 화분을 방안에서 옮기도록 하고, 헤어 드라이어를 가져오라고 하여 VTR의 드럼 헤드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고 나서 VTR을 작동시켜 보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컬러 화면은 조금도 이상없이 재생되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친구의 말인즉,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며칠 전(199) 에 값비싼 화분만 골라서 방안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전자제품이 습도와 은도에 약하지만, 특히 비디오는 더욱 민감해서 고장이 아닌 고장을 자주 일으키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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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윤리위원회 엮음. 내 딸의 미소를 찾아주세요 - 불법비디오 추방에 관한 충격고백.1987. 고려가.

7쪽 

문화 창조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첫째가 그 나라 그 민족의 도덕적 소질입니다. 인간의 도덕적 소질을 좀먹는 벌레라 할 수 있는 퇴폐와 폭력은, 그래서 더욱 뜻있는 사람들의 근심을 자아내게 합니다. 최근 우리 생활주변에는 불법비디오가 크게 범람하고 있읍니다. 이 불법비디오의 태반이, 심한 음란물과 잔혹한 폭력 범죄물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것을 주로 청소년들이 보고 있다는 데 있읍니다. (중략) <정신적 에이즈>라고까지 불리는 불법비디오를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는 데.. 

조연경. 불법 비디오,우리의 자녀를 망친다  

14쪽 

그러다가 한 친구의 집에서 우연히 음란 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해외근무로 집에 안 계셨고, 어머니는 시내에서 찻집을 운영하고 있어 집은 거의 매일 비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들이 몰려 있기에는 알맞은 장소였다. 어느날, 그 친구의 어머니가 봐서는 안 된다며 이불장 속에 숨겨 둔 비디오를 친구들과 함께 꺼내 보게 되었다. 어머니의 봐서는 안 된다는 말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혹으로 들리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김정자. 초야의 무법자.   

21쪽

나는 숙희에게 설겆이를 부탁한 다음 비디오가게로 향했다. "보고 즐길 만한 테이프 한 개 주세요" 사오십대로 보이는 남자 주인은 힐끔 한번 쳐다본 다음, "마침 좋은 테이프를 가지고 온 참이었지요."하며 벽 쪽에 나란하게 세워진 것이 아닌 모퉁이의 가방에서 한 개를 꺼내 주는 것이었다. 제목은 <초야의 무법자>였다. 나는 여고시절에 흥미있게 봤던 <황야의 무법자>를 연상하며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왔다. 기대에 찬 숙희는 비디오와 TV를 연결하고 있었고, 나 역시 흐뭇해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유간숙. 팔아버린 비디오. 

52쪽 

시장에 갔다 오니 아이들이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나는 무슨 테이프인가 싶어 잠시 지켜보았다. 나는 무슨 테이프인가 싶어 잠시 지켜보았다. 중국 무술영화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내용은 도무지 알아 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테이프 화질이 너무 형편없었다. 시커먼 어둠 속에 그림자만 왔다갔다하니 아이들은 자세하게 보고 싶은 마음에 비디오에 눈을 붙이다시피 하여 보고 있었다.  

"이 따위 테이프를 뭐하러 빌어 오니?" 

"엄마, 그래도 지금 극장에서 한창 하고 있는 영화란 말예요. 2천 원 주고 볼 것을 1천 원에 볼 수 있으니 좋잖아요." 

53~54쪽 

우리가 비디오를 산 것은 남들보다 훨씬 늦은 불과 몇달 전의 일이다. 아이들이 친구들 집에는 다 있는데 우리는 왜 안사느냐고 보채도 척 넘어 왔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아는 집에 다녀오더니 멋진 녹화 프로를(53) 보고 왔다며 우리도 비디오를 사야겠다고 말했다. 생물의 신비와 동물의 생태계,자연과 인체의 변화, 과학 생활, 세계의 여행, 흘러간 명화 등 볼 만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며 나를 부추기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집안 일을 혼자 하느라 TV 볼 시간도 제대로 없었기 때문에 비디오 같은 데는 별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남편이 열을 올리면서 설득하는 바람에 우리집에도 비디오가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비디오를 들여놓은 뒤부터 나에겐 엉뚱한 일거리가 하나 더 생기게 된 셈이었다.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 테이프에 시간을 빼앗겨야 했고, 아이들이 행여나 좋지 않은 프로를 보지는 않나 하고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다. 아이들은 아무거나 무조건 보려고 안달을 했고, 나는 그것을 막으려 했으니 싸움은 끝없이 이어질 판이었다. 나는 점점 비디오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었다. 

윤옥선. 동전 한 닢이 준 뜻밖의 충격. 

57~58쪽 

(전략) 도시화의 덕분인지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비디오 상점들이 도처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나 각종 상점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은 남편이 다니는 회사에서 마련한 사원가족 아파트로서 수십 동이 넘는 5층짜리 건물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데, 이 아파트 사람들의 대부분이 한두 명 정도의 자녀를 둔 20대 후반에서 30대에 이르는 젊은 부부들이다. 그리고 비디오를 갖추고 있는 가구가 타지역보다 많은 이유는, 남편이 다니는 직장의 계열회(57)사 중에 전자제품 생산업체가 있어서 사원들이 보너스로 지급받았거나 사원가격으로 할부구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혜영,잘쓰면 양약, 못쓰면 독약. 

69쪽 

(전략)그제서야 동생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학교가 파하면 곧바로 만화가게의 밀실로 가거나 아니면 삼류극장으로 가서는 외설 비디오를 보았다고 했다. 삼류극장에서는 오후 4시와 6시 사이에만 외설물을 틀어 주고 그 이후에는 성인들이 오기 때문에 보통 일반 영화 프로그램을 진행시킨다고 했다. 그리고 저녁이면 단골 만화가게에 가방을 맡겨 놓고 청량리 근처의 심야다방이나 청계천 상가에 가서 외설물을 보기도 하였으며, 가끔 그런 종류의 비디오가 있는 친구네 집에서 부모가 안 계신 틈을 타 몰래 보기도 했다고 한다.   

이영이.단속에 앞장선 반상회. 

99쪽 

아뿔싸! 이건 차라리 동물들한테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화면 가득히 비치고 있었고, 제대로 녹음이 안 된 상태에서 알아듣지 못할 외국어와 시끄러운 신음소리가 화면 밖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이것이 이른바 음란 비디오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거기에 모여 있는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오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할 테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타일렀다. 그런 것을 보려고 여관을 찾은 창민이가 죽도록 미웠으나, 우선 어떻게 해서 그곳을 찾게 되었는지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다.  다섯 명이 1인당 2천 원씩을 내어 1만 원을 만들어 주면 1시간 40분짜리 비디오를 보여 주며, 테이프는 날마다 내용을 바꾸어 틀어 준다는 것이었다.  

김분옥. 독(毒)을 먹은 아이.  

136~137쪽 

사십대의 여인이 주인이라는 그 만화가게는 아침부터 청소년 손님들로 부산했고, 오후가 되면 책가방을 든 중고등학생들로부 만원이었다고 한다. 또 만화가게 안에는 내실로 들어가는 비밀 통로가 있는데, 내실에는 비디오 시설과 2십여 개의 의자가 나란히 준비되어 마치 허름한 소극장처럼 꾸며져 있었다고 한다.(136) 아이들은 만화를 보며, 또는 만화가게 안에서 팔고 있는 먹을 것으로 요기를 하면서 비디오 상영 시간을 기다렸고, 그 중에는 술 내기 화투를 치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138쪽 

요즈음은 만화가게뿐만 아니라 오락실, 분식집, 심지어는 일부 서점에서까지 불법 비디오를 보여 주면서 천진한 아이들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있다니, 참으로 슬프고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관과 호텔, 카바레와 술집, 다방은 물론 목욕탕, 이발소에도 비디오 시설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그래서 음란 비디오를 틀어대지 않으면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왜 나와야만 하는가? 

송주자. 멍이 드는 동심의 세계. 

159쪽 

좁은 단간방에 시장 점포 여인네들이 우르르 모여 앉아 방은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이 집 주인인 섭이 엄마가 요즘에 새로 구입한 비디오로 인심을 쓴다 하여 다들 모여 앉은 것이다. 

160쪽 

비디오를 산 축하주인지 인심 좋게 맥주 한 잔씩이 돌려졌다. 그리고 나서 좁은 방을 더욱 더 좁아 보이게 하는 두꺼운 커튼이 이중창에 가려지자, 이윽고 비디오의 화면이 선명해졌다. 난생 처음 보는 도색영화에 호흡이 곤란할 정도의 현란한 장면들로 금방 머리 꼭대기까지 피가 몰려 솟아오르는 듯했다.  

원복순. 질좋은 비디오를 위한 홍보. 

169쪽 

그러니까 81년도 초부터 비디오가게가 성행하기 시작했는데, 제 남편은 그간 부진하게 해 오던 일을 청산하고 새로이 이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읍니다. 테이프는 문공부의 심의를 거친 정품만 취급해야 했으나, 비디오가 선보인 초창기였던지라 정품의 내용이 부실했던 것은 사실이었읍니다. 그러다 보니 차츰 손님들의 취향 

170쪽 

이 재미가 있는 불법 외화라든가 아니면 심지어는 음란 비디오까지 찾게 되니, 장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당장 눈앞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때부터 불법 비디오가 만연하는 계기가 된 셈이었지요. 

윤옥희. 잉크 한 방울의 흔적. 

172쪽 

1980년대 초에 오일 파동이 가라 앉으면서 칼라 TV 시대가 도래하자, 비디오와 전화가 있어야만 문화인에 든다는 이상한 풍조가 가정주부들 사이에 만연해 있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너도나도 비디오를 장만하느라 법석이었다. 그러나 우리집에는 비디오가 없었으므로 옆집 태웅이 엄마가 저녁 늦게 은밀히 본 비디오 내용을 자랑삼아 얘기할 때면 비디오 있는 집이 무첫 부러웠다. 태웅이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적금을 타면 어떤 일이 있어도 비디오부터 사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했다. 

진소현. 불법 비디오 추방운동. 

195쪽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에 비디오가 있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어 있고, 중 ,고교생의 책가방 속에서 도색 비디오 테이프나 그림들이 종종 발견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들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라는 표정이다. <천 원만 내면 만화도 보여주고 야한 비디오도 틀어 준다>는 문구를 버젓이 밖에 내걸고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포장마차에서도 비디오를 보여 줘야 장사가 잘 되고(이를 비디오맨션이라 한다고 함). 또 변두리 지역의 여관에서는 여관을 찾는 손님들에게 으례 도색영화를 보여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은 비디오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문화의 한 단면으로 뿌리깊에 자라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태원. 강력한 입법조치로 근절책 마련해야. 

이태원(전국극장연합회 회장) 

237쪽 ,238쪽

특히 저희 극장협회 측으로 볼 때 현안의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는 것은, 영화 수입을 추진중이거나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당국의 허가를 받아 상영일을 기다리며 극장에서는 선전을 하고 있는 중인데 그 극장 옆다방에서는 전혀 삭제되지 않은 오리지날 필름이 불법 비디오로 거림낌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심의에서는 수입이 불가토록 결정된 작품이 자막까지 삽입되어서 얼마든지 판매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극장이나 다방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국에 등록되지 않은 비디오 테이프 판매점들의 음성적인 점조직을 통해 가정에가지 파고드는 지하 판매망이 전국에 산재하고 있으며, 외국으로부터 반입해 들여오는 반입조직, 외국여행자들이 입국시 현행법으로 허용되는 5편 이내의 휴대입국, 미8군 PX 등을 통한 유출, 이러한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셔 불법 비디오 테이프의 사업조직은 날로 비대해지고 주객이 바뀌어서 확고히 굳어(237)져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239쪽 

말을 다시 정리해보면, 똑같은 내용을 담은 똑같은 성질의 것이 한쪽은 영화필름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단 1편이라도 공연윤리위원회의 정식 심의를 받아 수입이 허가되어야 하고, 똑같은 구실을 하는 비디오 테이프는 음반에 관한 법률 중의 음반이란 개념으로 예속시켜 버린 법의 미비때문에 5편까지는 아무런 심의나 허가없이 반입되어 다방 같은 불특정 다수인 앞에서 마구 방영되어도 뚜렷한 법적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방관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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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철(05.9.16). 비디오 시대의 종말.  씨네21.

(전략) 지난 몇년간 수많은 비디오가게가 문을 닫고 업종전환을 시도했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런 사태로 얼마나 많은 테이프가 사라졌을까이다. 요즘 길을 가다 비디오가게 앞에 테이프를 쌓아놓고 파는 풍경을 자주 본다. 가끔 괜찮은 영화가 있나 살펴볼 때가 있지만 건질 수 있는 물건은 드물다. 그래도 눈길이 가는 건 저 테이프 무더기 속에 보석 같은 영화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과거에 비디오로 나왔으나 아직DVD로 나오지 않은 작품 가운데 수많은 영화가 이제 더이상 구할 수 없는 작품이 됐다. 외화도 외화지만 한국영화도 구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70년대부터 90년대 한국영화 가운데 비디오가게의 경우는 구할 수 있는 테이프를 실로 몇 개 안된다.(중략)문득 예전에 활동했던 영화인들의 푸념이 떠오른다."한국영화 필름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아나, 상영 끝나면 밀짚모자에 두르는 장식으로 써버렸어. 그렇게 다 없어졌지." 옛 영화의 필름들이 유실된 것처럼 지금 옛 영화의 비디오들이 사라지고 있다. 비디오라는 매체가 명을 다하는 마당에 당연한 일인지 몰라도 옛날 영화인들이 한탄했던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CD가 나오면서 LP를 몽땅 처분해버리고 뒤늦게 후회한 경험이 떠오른다. 가끔 LP가 그리울 때처럼 비디오테이프를 그리워할 날도 오지 않을까.  

김송호(05.8.29).<스타워즈 에피 3>dvd만 출시..비디오의 종말 징후? 씨네21.

dvd가 vhs 비디오를 대신하여 홈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주도권을 잡고 있음은 이미 상식 수준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미국의 대형 할인점들이 잇달아 비디오 취급을 중단하거나 대폭 감축시키는 등 점차 비디오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 또 하나의 징후가 나타날 예정이어서 관계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문제의 주인공은 영화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지난 여름 팬들의 열렬한 성원 속에 공개되어 다시 한 번 극장가를 압도했던 이 영화가 미국에서 11월 1일(한국은 11월 3일)dvd로만 출시된다는 것. 따라서 <스타워즈 에피소드 3>은  <스타워즈>시리즈 가운데 유일하게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은 작품이 된다. (중략)특히 <스타워즈 에피소드 3>의 dvd 단독 출시는 한때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장의 비디오를 판매했을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대표적인 킬러 컨텐츠를 잃게 된다는 점에서 비디오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정한석(06.4.11). DVD 수집가 이용철. 씨네21

(전략) 수집가란 소장 목록을 자랑스러워할 때는 있어도 누군가의 손에 선뜻 넘기지는 않는다. 왜 안 그렇겠나? 수집가에게 수집이란 사물과 교감하고 기억을 소유한다는 것인데 그걸 쉽게 남에게 나눠 주긴 힘들다. 달리 말하면 수집품은 인생의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고 얻은 것들일 테고, 그 수집품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건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아낀다는 말이나 같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게 정당한 거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암암리에 수집가의 그 지독한 명예율을 저버린다. 덕분에 한국의 영화 시청각 문화는 숨은 지원자 하나를 얻은 셈이다. 물론 "잘 알고 지내는 공적인 집단"에만 한해서지만, ebs나 시네마테크 등에서 참고 자료가 필요하거나, 프린트 지연으로 자막 작업을 손대지 못할 때 급하게 구조신호를 보내는 게 바로 이 사람이다. 90년대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시절 종종 열악한 화질로 영화상영을 하던 그때에 직접 자신의 DVD를 틀지 않겠냐고 제안한 이후, 인연은 지금까지 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그를 소개하고 싶다. 이 사람은 매일같이 세브르 도자기로 식사를 하는데, 그것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모여 같이 만찬을 즐기도록 향연을 베푸는 정말 이상한 수집가다.  

홈비디오 문화를 스승으로 모셔온 영화광 

(전략) 독특한 건 그 시절 한국영의 영화광들이 으레 거치던 문화원 무용담이 이용철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셀프 메이드'라고 부르면서 아마도 그게 자신의 특이함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일반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는 영화까지 보고 싶다는 갈증은 "80년대 후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말하자면 돈을 벌면서 커졌고, 영화에 대한 수집벽도 동시에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그래서 그에게 영화 스승은 홈비디오 문화다. 그때 vhs를 모으면서 "대부분의 유명감독들의 영화를 보게 됐고", 요즘 그를 점점 더 깊은 생각으로 몰아가는 "피터 왓킨스 감독을 알게 된 것도 그때쯤"이다.   

DVD보다는 VHS, VHS보다는 스크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용철은 몇년 전까지도 DVD와 VHS로 같은 영화가 있으면, VHS로 보는 걸 더 선호했다. "DVD는 넣으면 기계하고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기계적인 느낌이 싫었어요. 그런데 VHS는 돌아가는 순간 마치 필름이 돌아가는 것과 많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또 한편으로 그는 VHS보다 스크린을 더 선호한다. (중략)예상과 달리 화려한 홈시어터 장비를 구비해놓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전문 리뷰어들은 내 욕을 많이 해요. 저 사람은 왜 화질에 대해서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씨네 21>이나 내가 썼던 다른 지면을 읽는 사람들은 나하고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av만족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처럼 dvd를 보는데, 단지 그 사람들이 엉망인 제품을 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 정도인 거에요. 저는 테크놀로지를 좋아하지도 않고요. DVD를 사는 것도 기술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작품을 따라간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김태진(04.4.9). 어떤 매체로 영화 라이브러리를 꾸밀 것인가? 씨네21. 

모든 영화 애호가의 꿈은 자신만의 영화 라이브러리를 갖는 것이죠. 하지만 막상 라이브러리를 꾸미기 시작하면 곧바로 '어떻게' 채우느냐에 못지않게 '무엇'으로 갖출 것인가가 심각한 고민거리로 대두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 필름이 대상인 감상과는 달리 소장의 전제인 어떤 매체로 구입할 것인가는 각자의 영화 취향뿐만 아니라 경제력과 공간, 외국어 독해 능력 같은 요인들의 복합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접어든 이후로는 수록 매체 자체의 물리적인 수명은 반영구적이지만, 정작 매체를 재생하는 플레이어의 교체 주기가 지나치게 짧아져 결국 매체의 실질적인 재생 가능 기간은 10~20년 정도로 오히려 아날로그보다 더 단명하는 긴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ld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소장 매체의 선택은 애호가들의 절실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 소장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은 역시 필름입니다. 하지만 35mm 필름은 가격이 워낙 비싸고 부피도 커서 소장용으로 판매되는 필름은 대부분 16mm나 8mm로 옮겨진 것들입니다. 비디오 테이프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유일한 소장 매체였던 필름은 우리나라에도 의외로 많은 수가 개인 소장용으로 들어왔었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대중적인 영화 소장 시대의 막을 연 마그네틱 방식의 비디오 카세트 테이프는 소니의 베타맥스 방식이 1969년에, 마쓰시다의 vhs방식이 1970년대에 각각 개발되었지만, 국내에 본격적으로vtr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 부터입니다.  

(중략) 일반 가정의 4:3tv 화면에 맞추기 위해 와이드스크린 비율인 원필름의 좌우를 잘라내고 중앙 부분의 영상만 수록하는 비디오 테이프의 가장 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80년대 중반부터 ld와 같은 마스터를 사용하여 원래의 화면비율을 수록한 와이드스크린 포맷의 비디오 테이프들이 셀스루용으로 1천 타이틀 가까이 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2.35:1 비율인 이 와이드스크린 버전들은 일반인에게는 아래위의 블랙바에 의해 영상영역이 지나치게 좁아 환영받지 못했고, 오리지널 화면비율을 선호하는 영화나 AV애호가들은 일찌감치 컬렉션의 대상을 LD로 옮겼기 때문에 기대했던 만큼의 호응은 받지 못했습니다. 화면비율과 무관한 고전영화들도 컬렉터들의 골치를 썩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저작권 보호 연한이 만료된 고전영화들은 한 작품이 여러 제작사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출시되기가 일쑤인데 러닝타임이나 더빙, 음악 등이 각각 다른 버전에서부터 컬러버전이나 SP버전들까지 뒤섞여 있어 카탈로그만을 보고는 어떤 것을 구입해야 제대로 선택한 것인지를 확신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김태진(04.4.16). 어떤 매체로 영화 라이브러리를 꾸밀 것인가 2.씨네21.

수평해상도 240선과 돌비 서라운드까지만 수록 가능한 포맷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비디오 테이프는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15만종(미국 기준)이상의 타이틀을 출시함으로써 현재까지 발표된 가정용 영상 저장 매체들 중 가장 방대한 목록을 구축했습니다. 비디오테이프의 낮은 해상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원단 소재의 개선과 크롬,메탈 증착 방식이 개발되어 정보량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S-VHS방식이 80년대 중반에 선보였습니다. (중략)S-VHS테이프는 판매 및 대여용으로는 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니아들의 녹화용이라는 좁은 영역에만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중략) 레이버 픽업을 사용한  디지털 방식으로 LD의 포맷이 바뀜에 따라 LD는 수평해상도 400선에 달하는 고화질과 레터박스 방식을 이용한 오리지널 화면 비율의 제공, 돌비 디지털과 DTS5.1채널 같은 디지털 입체 음향채택, 멀티 트랙을 활용한 음성 해설 삽입, 제작 다큐멘터리에서부터 스틸 갤러리에 이르는 현재 DVD에 적용되고 있는 다양한 부가 영상 등을 일찌감치부터 수록함으로써 영화 애호가들에게 홈 무비 라이브러리 구축에 이상적인 매체로 찬사와 환영을 받았습니다.(아쉽게도 이러한 점은 미국과 일본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국내판 LD들은 비디오테이프와 동일한 마스터리로 4:3에 돌비 서라운드 사양으로만 제작되어 국내 AV애호가들로부터는 철저하게 외면받았습니다.) 

김태진(04.4.23). 어떤 매체로 영화 라이브러리를 꾸밀 것인가 3.씨네21. 

현재 20달러 내외인 DVD와 15년 전에 40달러 전후였던 LD의 가격은 그동안 급등했던 물가 상승을 고려한다면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1988년에 2장짜리 <카게무샤>LD의 가격은 7만원 정도로, 당시 대학가의 1달 방세와 맞먹었습니다.)어지간한 애호가들도 구입에 부담을 느낄 정도였던 LD의 비싼 가격이 국내에서의 LD보급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고, 그것이 LD가 대중화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에 비해 DVD는 처음 출시될 때부터 비디오 테이프보다도 더 싼 2만원 내외로 가격이 책정되었기 때문에 영화 애호가들은 부담없이 비디오 테이프에서 DVD로 소장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거치형 시스템이 아닌 컴퓨터의 DVD롬으로 자신의 방에서 독립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공간적인 장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Djuna(01.2.2). 초보 영화광의 그때 그 시절.씨네21. 

<비틀 쥬스>라는 영화에 대해 알게 된 건 당시만 해도 유일한 영화잡지였던 <스크린>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영화 관련 정보를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영화가 국내에 수입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도 꽤 길어서 영화잡지에 실린 간단한 기사만 가지고도 꽤 오랫동안 우쭐거릴 수가 있었습니다.  

(중략) 몇 년이 지난 뒤 이 작품이 드디어 <유령수업>이란 제목으로 출시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팀 버튼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무명이었고 <비틀 쥬스>도 알려지지 않은 영화였기 때문에 저처럼 소식 빠른 사람들은 '무식한'비디오가게 주인 앞에서 으스댈 기회를 잡았습니다.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모 평론가가 저와 비슷한 경험을 했더군요. <유령수업>이 있냐고 비디오가게 주인에게 물었더니 "저흰 그런 저질 비디오는 안 가져다 놔요"라도 대답하더라니요. 당시 그 평론가가 남몰래 품었을 가벼운 경멸과 우월주의는 저 자신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여전히 <비틀 쥬스>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당시 제가 이 영화에 느꼈던 진짜 흥분은 드문드문 쏟아지는 해외영화 정보를 가지고 으쓱거리던 '초보 영화광'의 우월감에서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비디오무비>(1997.10.) <비디오무비>자료로 활용하기.115쪽.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람의 그 정도 차이를 쉽게 판별할 수 있는 리트머스 용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은 누구나 쉽게 '매니아'가 되고 매니아를 '자칭'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정말일까란 의심이 들 만큼 목소리만 높여 보기 좋은 겉치레만 멋들어지게 행세할 뿐 깨놓고 들여다 보면 알맹이도 없는 '가짜'들이 많다. 

강한섭(1993). 강한섭의 영화이야기. 285-295. 

비디오 때문에 터지는 분통 

290쪽 

지금 시장에는 하루에도 다섯 편이 넘는 비디오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이제까지 한국에 소개된 비디오 영화의 총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다. 그러나 정말 조금의 과장도 없이 그 비디오 영화들은 거의 불량품들이다. 영화의 수준과 내용이 죄다 저질이라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비디오 카세트로 옮겨지는 과정이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저질이라는 것이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비디오 프로그램은 악명 높을 만큼 끔찍한 화질을 자랑한다. 전자 기술의 비디오 테이프는 광학 필름에 견주어 원래 상대도 안될 만큼 화질이 열악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다. 비디오 테이프에 담겨진 영화, 특히 한국 영화는 돈 몇 푼 아끼려고 깨끗한 영화 프린트 대신에 극장에서 수없이 돌린 낡은 프린트를 그대로 사용한다. 화면에는 장대비가내리고 소리는 지워져 잡음과 함께 들린다. 외국영화의 한심한 화질은 매 한 가지다. 그래도 원본 그대로 다 보여 주면 그나마 참을 만하다.  

그러나 한국의 비디오 영화는 절단되어 있다. 검열의 가위가 영화를 이리저리 잘라 버린다. 그것도 영화계에서 계속해서 문제가 되는 정부의 검열이 아니다. 그거야 영화관에서도 매 한가지니 새삼스럽게 비디오에서 성토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비디오 영화제작자가 휘두르는 경제적인 이유의 검열이다. 우리나라에서 비디오 영화는 120분의 공테이프 길이에 끼워 맞추느라고 마음대로 잘려진다. 곧 95분의 상영시간을 가진 영화라면 5분 이상이 잘려 90분 짜리 테이프에 담기고 133분짜리 영화는 90분이나 120분 짜리 테이프에 담기느라고 길게는 40분에서 짧게는 10분 넘게 삭제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 그 절단되는 필름들을 생각하면 비통해지지만 누가 그 부분을(290) 결정할까를 생각하면 차라리 웃고 싶다. 발에 신발을 맞추는 게 아니라 신발에 발을 맞추는 그 용감성과 뻔뻔함이여! 또 비디오에서는 영화의 화면 비율, 곧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텔리비전 브라운관에 맞추어 변형된다. 비율이 적어도 2대 1인 영화가 브라운관의 가로 세로 비율인 4대 3에 맞추다보니 영화 화면의 양끝은 저절로 잘려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특히 가로 세로 비율이 큰 시네마스코프를 사용한 영화는 거의 3분의 1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비디오 영화들에서 소리는 들리는데 배우가 안 보이는 수가 있게 된다. 그것을 영화 감독이 대단히 실험적인 기법을 사용해서 만들었나 보다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블랙코미디다.  

상영 시간을 자르고 화면의 부분을 자르는 데 쾌감을 느꼈던지 몇몇 비디오 제작사들은 절단의 미학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다. 그것이 바로 영화의 중간 부분을 동강내어 영화를 두 개로 절단하는 것이다. 비디오 시장이 급속히 커지고 영화 한 편의 판권이 억대를 넘어서게 되자 그들은 테이프 하나로도 충분할 영화를 테이프 두 개로 만드는 재주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일에 125분의 영화라면 그 넘치는 5분의 길이를 최대한으로 이용해 영화를 1부와 2부의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다. 120분이 넘는 영화를 자르지 않고도 충분히 담을 수 있는 160분용 테이프가 시판되고 있으니 그걸 사용하면 될 것이고 그 남겨지는 테이프가 아깝다면 테이프 생산 회사에 알맞은 길이로 주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어김없이 120분을 조금 넘는 영화를 테이프 두 개로 만들어 파는 그 고약하고 염치없는 장사속이 비디오계를 활보하고 있다. 291. 

292쪽 

우선 아무리 큰 가게라도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비디오 영화는 오직 세 나라의 영화들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국산영화와 중국영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국영화 밖에는 없다. 국산영화라는 표현 뒤에 숨겨진 한국영화에 대한 불신고 업신여김, 그리고 홍콩영화를 중국영화라 부르는 혼돈과 둔탁함,게다가 나(292)머지 그 수많은 국가의 영화를 외국영화로 몰아부치는 그 저돌성과 분별없음.293. 

293쪽 

이렇게 세계를 한국과 중국, 그리고 외국으로 3등분한 다음에 영화장르는 보통 드라마, 에로영화, 그리고 공포영화로 역시 3등분 된다. 에로영화, 거기에서도 국산 에로영화의 진열대로 다가서면 갑자기 비디오 가게는 홍등가의 불빛으로 붉게 물들어간다. 그 제목들을 읽어보자. '목마부인', '싸릿골 마님' '찬란한 욕정' '굿바이 매춘' 등등.(중략) 이 풍요롭지만 거의 무정부 상태의 혼란에 빠진 비디오 대여점을 거쳐 비디오 문화는 우리들의 가정에 닿는다. 거기서 새로운 영상의 소비 행위가 미래의 영화관을 예고하면서 일어난다. 80년대 중반 뒤로 나타난 가장 중요한 문화적인 사건의 하나가 우리의 가정용 텔레비전 수상기가 점차로 대형화되어 극장의 스크린을 닮아간다는 점이다. 게다가 스크린을 가정의 텔레비전을 닮아 축소되고 있다.  

(중략) 영화는 보통 어두운 공간에서 의자에 몸을 깊숙히 묻은 채로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조용히 감상하는 행위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정신 집중의 소중한 경험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정신 집중의 소중한 경험을 준다.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혼란했던 신경조직이 한 올 한 올 가로 세로 잘 정렬되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다 이러한 영화감상의 환경과 방법에서 나온다. 그러나 비디오는 이와 전혀 다른 혼란한 감상 행위를 전제로 한다. 

294쪽 

비디오를 보는 공간은 너무 밝고 지나치게 시끄럽다. 게다가 손님도 찾아오고 전화도 걸려온다. 한 편의 작품을 감상하기에 비디오의 소비공간은 낙제점이다. 아니 비디오 영화를 보는 것은 작품의 감상이라기보다는 그저 내가 무엇인가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그걸로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략) 비디오 시장에서 인기가 있는 영화들은 비디오 감상의 이러한 혼란스러운 환경과 부주의한 관객에게 맞추어 강도 높은 자극의 영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유없이 빠른 장면 전환, 그리고 남용되는 카메라의 움직임, 번득이는 특수 촬영들이 인기 비디오 영화가 뽐내는 특징들이다. 게다가 비디오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돌발적인 사건의 시작 - 단순한 논리의 전개 - 그리고 급작스러운 결말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이 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움직이는 관객을 위해서 만들어진 비디오의 참담한 미학인 것이다.  

(중략) 비디오 관객의 손에는 원격 조종기(리모트 콘트롤)라는 마법의 물체가 들려져 있다. 이것으로 관객은 재미의 극대화와 감각 자극의 영속화를 위해 만들어진 상(294) 업 영화의 처방에도 만족하지 않고 최소한의 사고를 요구하는 부분을 건너 뛰게 된다. 그래서 조금 덜 재미있는 부분은 화면 탐색(서치)기능에 의해 스쳐 지나치게 되지만 매우 재미있는 부분은 반복과 느린 동작(슬로우)기능에 의해 거의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 295. 

295쪽 

솔직히 말해서 나는 비디오를 심심해서 본다. 거기서 의미를 억지로 가져다 붙이자면 최근의 영화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고 본다. 비디오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영화의 매우 긴 예고편을 보는 기분이다. 비디오를 통해 감동을 받을 준비가 나는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나는 계속해서 극장에 갈 것이다. 

이런 비디오도 있다 

296쪽  

우리의 비디오 가게에는 멋진 영화가 실종된 상태다. 아무리 열심히 동네 가게를 들락거려도 볼만한 영화를 찾기란 쉬(296) 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나라 비디오 산업과 그 시장의 믿을 수 없는 허상이 다시 한번 드러난다. 한 해에 2천6백여편의 비디오 영화가 출시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중에서 동네의 비디오 가게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고작해야 30퍼센트 정도다. (중략)필자도 얼마 전에 이 수치를 확인하고 어리벙벙해졌다. 그럼 나머지 70퍼센트의 비디오 영화들은 어디로 가나? 또 소비자에게 접근도 하지 못하는 상품은 왜 만드는 것일까? 단답식으로 말하자면 그 영화들은 대개 비디오 제작회사에서 비디오 도매상으로 배포되고 한 달쯤 뒤면 다시 제작사라로 반품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판매하기보다는 도로 반품 받기 위해 상품을 만드는 기가 막힌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97쪽 

지금 대한민국에는 전국에 3만 군데가 넘는 비디오 가게, 즉 비디오 소매점이 있다. 3만 군데, 이것이 어느 정도의 수효인가를 알려면 다시 한번 통계 숫자가 필요하다. 일본은 우리보다 인구는 세 곱절, 국민 소득은 네 곱절이 넘는 크고 잘 사는 나라다. 그런데 그 나라에는 비디오 가게가 1만2천 군데밖에 없다. 이것은 단적으로 우리나라의 비디오 소매점들이 지나치게 영세하고 너무 많다는 해석을 내려준다. 한 비디오 가게가 기껏해야 1천개가 넘는 정도의 테이프를 가지고 있을 만큼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제작사가 아무리 새로운 영화를 비디오로 출시하더라도 일반 소비자에게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이상한 비디오 경제학이 지배하고 있다.

303쪽 

우리나라 영화는 거의 누구나 그 사정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극장이나 브라운관에서도 만나기 힘든 흑백시대의 고전들을 보고 싶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영화들은 찾아볼 수 없다. 상업성이 안맞는 것도 주요한 이유지만 영화 프린트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더욱 큰 이유다. 최근까지만 하더라(303) 도 한국영화는 극장 상영이 끝나면 폐기처분되기 일쑤였다. 많은 한국영화의 고전들이 필름의 성분인 은을 재추출하기 위해 불에 녹여졌다. 영화를 문화자산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상품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304. 

304쪽 

나는 영화관에서 상영된 화제의 영화를 비디오로 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영화는 아무래도 극장에서 불을 끄고 대형화면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영화의 진짜 맛을 느낄 수 있다. 비디오는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영화를 볼 적에 그 가치가 있다. 비디오는 더욱 전문화된, 다양한 정보와 문화의 수용자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으로 김 빠지는 소리를 한 번 더하겠다. 열거한 비디오영화들은 독자들의 동네 비디오 가게에 없다. 거기에는 이미 알려진 뻔한 프로그램들로 가득하다. 멋지고 개성적인 비디오 문화를 즐기려면 시내를 횡단하여야 한다. 그리고 샅샅이 비디오 가게의 진열대를 뒤져야 한다. 누구도 도와 주지 않는다. 가게의 주인도 자기가 무엇을 비치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비디오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은 외롭다. 그러나 그 여행에서 거두어 올 전리품들로 우리는 얼마쯤 행복해질 수 있다.  

홍성남(1998). 비디오로 영화를 본다는 것. <필름 컬쳐>34~45. 

34쪽 

'유통'이나 '소비'의 측면에서 볼 때, 영화의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건 분명 아직은 이른 일로 여겨진다. 아니, 그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영화들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영화가 넘쳐나는 세상에 영화의 종말이라니. 물론 현재의 우리는 통상 영사기가 스크린 위에 사출하는 이미지와 사운드보다는 vtr의 신호를 거쳐 tv 브라운관에 맺히는 그것들을 통해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은 영화들을 접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무수(34)한 영화들과 만날 잠재적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도 비디오 테크놀로지이다. 텔레비전 역사의 일부로서 시작된 비디오 테크놀로지는 어느새 영화(보기)의 역사에 그 곁가지를 굳건히 뿌리내리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이제 영화를 보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비디오는 1차적으로 영화를 담는 매체와 거의 동일한 것이 되었고 심지어는 영화를 본다는 것과 비디오를 통해 본다는 것 사이의 경계는 사라지다시피 해 버렸다.(예컨대, 한국의 경우 비디오로 '미지의 영화들'을 보여 주는 몇몇 모임들을 굳이 '시네마테크'로 부르는 것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고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기본적으로는 한국 영화 문화의 토양이 척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디오에 의존한 영화 보기가 자연스러운 행태로 인식되기에 이르렀음을 말해 주는 건 아닐까? 35. 

36쪽 

매체의 경계를 넘어가면서 텍스트가 굴절을 겪는다는 이런 식의 논의는 우리가 비디오로 영화를 볼 때 자주 목격하고 실감하곤 하던 바 그대로이다. 비디오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비디오 매체의 '부정확함'을 인식하는 것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밝기와 콘트라스트의 범위, 해상도, 컬러 재생력 등, 그 어떤 기술적인 요소에서도 비디오는 아직까지 필름을(36)앞서지 못한다. 타시로식으로 말해, 바로 그런 차이, 또는 상대적인 열등성이 비디오 텍스트를 형성하는 주요 요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차이는 그 존재 자체를 기꺼이 인정해 줄만한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더 우월한 것, 또는 이른바 '오리지널original'(물론 이 필름-오리지널이란 것도 실제 시공간상에 존재하는 필름의 판본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이데아 같은 것임을 지적해야겠다)과의 사이에서 생긴 격차에 더 가까운 것이다. 우리는 비디오로 가공된 영화 텍스트를 볼 때에도 항상 그것을 완결된 존재로 인정하기보다는 셀룰로이드 원 텍스트의 열등한 복제품내지는 파생품 정도로 생각한다. 그 원텍스트는 비디오라는 파생 텍스트를 낳는 모태인 셈이다.따라서 비디오 텍스트는 항상 그것의 필름 텍스트(즉, 원본 텍스트)와 결부되며, 그것을 보고(37) 있는 동안 오리지널의 존재는 우리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요컨대,최소한 어떤 영화 텍스트를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 볼 때, 비디오는 여전히 필름보다 열등한 매체이며 필름에 대해 파생적인 매체, 또는 2차적인 매체로 여겨지는 것이다. 비디오 테크놀로지의 비교 열위는 우리가 가진 이런 관념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비디오의 질을 향상하고 비디오 테크놀로지를 발전시키려는 일련의 시도들은 '진품'에 근접하려는 욕망에의 실현 노력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38.

38쪽

 비디오 텍스트가 오리지널을 닮으려 한다는 것이 어떤 함의를 품고 있는지에 대해서 레터박스 처리된 비디오 이미지는 흥미로운 실례를 보여준다. 화면을 굳이 '훼손'하면서까지 화면 위와 아래에 검정색 띠를 두른다는 것은 이미 오리지널의 존재를 상정한다는 것, 그것의 권위를 기꺼이 인정하면서 되도록 그것의 새로운 복원을 열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레터박스 방식은 비디오 이미지가 필름 오리지널보다 열등한 존재임을 실토한다는 것이다. 레터박스는 분명 와이드 스크린의 '형태'를 모방함으로써 비디오 이미지를 오리지널에 보다 근접케 하려는 한 방식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더 광범위한 폭(즉, 공간)을 포섭하겠다는 와이드 스크린의 본래 '효과'마저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레터박싱은 (VCR과 연결되어)텔레비전에 나타나는 이미지의 크기를 더욱 작게 만듦으로써 실제로는 영화를 텔레비전의 미학에 종속시킨다. 레터박스 방식을 통해 이미지의 크기가 더욱 축소됨으로 인해 비디오를 보는 우리는 필름-오리지널을 보는 것과 유사한 경험을 할 가능성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되는 셈이다.  

39쪽 

영화적 아우라의 상실에 대하여 

비디오 관람의 경험은 어떤 점에서 볼 때는 일종의 상실의 체험이라고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비디오로 영화를 보는 우리는 오리지널리티(또는 진품성)를 잃어버린 텍스트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상실하는 것들 가운데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영화 관람이 제공했던 농밀한 체험 혹은 (준) 종교적인 경험일 것이다. 텍스트의 컨텐트만을 담아 내는 비디오 테이프에 복제할 수 없는 그것은 영화적 아우라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고유한 광휘이다. 

40쪽 

아우라적 경험, 황혼녘의 최면적인 몽상, 충일한 감각의 유포리아, 그 어떤 표현을 쓰든, 이것들은 확실히 비디오 시청을 통해서는 도통 얻을 수 없는 경험들이다. 물론 이건 보고 있는 어떤 영화의 질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영화를 보는 조건과 관련된 문제이다. 비디오 경험의 기본 조건으로서 텔레비전적 환경에서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이 줄 수 있는 일종의 충만한 엑스타시는 대개 증발해 버린다. 텔레비전의 작은 화면이 그 한 가지 요인으로 꼽힐 수 있을 테지만, 여기서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어둠의 부재'일 것이다.  

(중략) 영화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지각 형태에 있어서 이제(40) '일별 glance'의 양식이 '응시 gaze'의 양식을 대체하게 된 것이다.(41) 비디오를 매개로 영화 보기가 이처럼 일종의 의식의 영역, 또는 적어도 비일상의 영역에서 일상의 영역으로 이월하면서 그것의 각 체험들은 다른 한편으로는 나름의 이름을 잃게 되었다. 즉 비디오는 그것들을 일련의 '익명적인 체험들'로 바꿔버린 것이다. 영화관에서의 경험과 비교해 비디오 관람은 상대적으로 시공간의 제약을 덜 받기에 비디오는 영화 보기로부터 어느 때, 어떤 장소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탈취한다. 그렇게 고유성을 상실한 영화보기는 다른 일상적 경험들, 이를테면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행태가 되어 가고 있다.  비디오를 통한 영화 보기의 일상화와 관련해 또 하나 지적해야만 할 것은 그럼으로써 영화라는 것에 대한 경외감이 점차 희박해진다는 점이다.  (중략) 비디오에의 접근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사실도 어느 정도는 영화의 신성함을 희석시키는 데 기여하지만 무엇보다도 모두가 동일한 형태를 갖춘 비디오테이프를 손에 쥐었을 때부터 이미 우리에게서 영화가 무언가 신비한 것이라는 관념은 자취를 감춘다. 물론 필름에 감긴 영화도 똑같은 모양들을 취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비디오 테이프처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일상용품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42쪽 

비디오 테이프의 물성이 우리의 손에 직접 감지될 때, 바로 그때서야 우리는 영화란 대량 복제된 공산품의 일종이기도 함을 실감하게 된다. 지독한 물신 숭배자가 아닌 이상 여기에 특유의 어떤 독특한 분위기나 정기가 배어있다고 믿기란, 그리고 그런 비디오 테이프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예술품이라고 믿기란 힘든 일처럼 보인다.('특정' 비디오 테이프를 손에 쥐고 전율하는 경험을 하는 것은 아마도 소수의 비디오 수집가나 시네필의 몫일 것이다).  

고전 영화의 종언 

43쪽 

영화관에 들어가는 동시에 우리가 (영화관의 스케쥴, 텍스트의 권위 등에 의한) '통제'를 받는 대상이 되는 것과 달리, 비디오 경험은 우리에게 능동성을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 일단 비디오 관람은 우리 자신의 행동이 없이는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우리가 비디오 테이프를 VCR에 넣고 작동을 하는 순간(43)에서야 이 경험은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영사 기사가 된 우리들은 영화를 보면서 더 많은 노동을 우리 자신에게 부과한다. (자신이 영사 기사가 되게 함으로써 비디오 관람자는 '프롤레타리아화'한다고 타시로는 지적한다). 우리는 어떤 장면을 멈추게 할 수 있고, 뒤로 돌아갈 수 있으며, 흥미 없는 부분은 함부로 건너뛸 수도 있다. 그리고 심지어는 우리 마음대로 중도에서 영화를 끝마칠 수도 있다. 비디오는 이런 식으로 영화를 통제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텍스트와 관람자 사이의 위계 질서를 뒤집어 놓는다. 선형적인 방식을 따르길 거부하는 이런 행태들은 단순히 영화를 대함에 있어서 우리의 무책임하고 부주의하며 게으른 태도의 소산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영화에 대한 일종의 공경심의 결여가 우리로 하여금 지극히 기능주의적인 '통제'를 행사하도록 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전편이 챕터별로 나뉘어 있고, 그런 중간 지점들에 들어갔다 나오기에 아날로그 비디오보다 훨씬 용이한 DVD의 경우는 지루함의 제거라는 기능을 더 잘 충족시켜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텍스트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통제력을 행사한다. 이를테면 리와인드는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하고 프리즈 프레임은 극장 경험이 줄 수 없었던 영화 이미지에 대한 감식을 가능케 한다. 그렇기에 비디오는 우리를 단지 경험의 지평에 위치시키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비평과 분석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건 분명히 '영화적 경험'이 줄 수 있는 엑스타시와는 다른 차원의 쾌락일 수 있다.  44쪽 

45쪽 

(옮긴이 : 타시로나 한센) 이들의 추상적인 유토피아론은 도대체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비디오는 분명 고전적 영화의 해체에 일조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것의 개념을 거부한다. 그렇다면 그렇게 무너진 고전 영화의 잔해 위에는 무엇이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우리의 눈엔 아직 그것까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듯 싶다. 

김지태(1996.6). 컬트 영화. <비디오 무비>. 162-165.  

162쪽

컬트 영화는 여전히 낯설다. <록키 호러 픽쳐 쇼>,<글렌 혹은 글렌다 Glen or Glenda?>,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플라밍고>등 '공인된'컬트 영화들을 우리는 영화 전문 저널이나 평론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일부 시네마 테크의 비정기적 상영을 통해 이러한 영화들을 접할 수 있지만, 컬트영화의 본래 의미인 '특정한 영화에 대한 종교적 숭배'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 시네마 테크라는 '컬트적 공간'에서 우리의 영화광들은 미국 심야극장의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던 컬트 영화들을 엄숙하게 확인해 볼 뿐이다. VCR을 통한 영화보기는 그나마의 관객 체험도 허용치 않고 집단적인 열광 현상을 개인적인 발견과 만족으로 바꿔놓고 있다. 젊은이들의 열광적 지지 속에서 뉴욕에서만 14년간 연속 상영됐다는 전설의 <록키 호러 픽쳐 쇼>가 VCR의 반복관람을 통해 은밀하게 확인될 뿐이라면 컬트 영화로서의 생명력은 이미 잃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이런 특수한 영화 체험이 영화광들을 중심으로 '나 만의 컬트'식 자가당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165쪽 

비디오를 통한 개별적 영화 체험의 확산은 컬트 영화의 속성마저도 변모시키고 있다. 심야 컬트 영화에서 나타났던 저항과 위반, 일탈이 사라지고 개별적인 '컬트적' 요소들의 의식적 조합으로 스스로 컬트 영화임을 표방한다. 음반 산업에 포섭되면서 변절된 록 문화처럼 컬트 영화는 거대한 영화 상품 시장에 편입되면서 '컬트적'이라는 모호한 볼거리 혹은 색다른 스펙타클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갖가지 선전문구와 가십성 평론도 여기에 한 몫을 하고 있다. 

류미혜,한전영,장성림(1991.12). 긴급제안 컬트영화 걸작 100. <로드쇼> 

193쪽 

온 세상에 갑자기 컬트 '사기꾼'들이 천하대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컬트영화를 알린 것은 전적으로 영화광들의 사랑에 대한 응원과 지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컬트영화는 장사꾼들의 프로그램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영화광이라면, 그래서 92년 영화의 자존심을 걸고 컬트영화를 지키는 싸움에 나설 것을 긴급히 제안합니다. 우리를 컬트영화 진영에 대한 전면적인 논쟁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먀, 이 100편의 영화는 바로 그 선전포고입니다. 제발 더 이상 순진한 영화광들을 농락하고 짓밟으며 거짓 프로그램으로 그들을 현혹시키지 마십시오.  

도정일(1995.6.13-20). 영화보다 더 큰 텍스트 : 날씬한 관객되기의 훈련.<씨네21>. 

32쪽 

많이 본다고 좋은 관객은 아니다 

영화의 경우에도 좋은 관객은 반드시 유능한 생산적 관객이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유능한 관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 영화 세편씩 보거나 온종일 비디오를 켜놓는 '광'의 경지에 이른다 해서 유능한 관객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감독과 배우의 신상명세를 줄줄 꿰고 스캔들을 외우고 제작에 얽힌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수집하는 것도 유능한 관객의 능사는 아니다. 유능한 관객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사람이 아니라 문학 독자의 경우처럼 영상 텍스트를 '읽어내는'사람이다.  

DJUNA(1996.12.24~1997.1.17). 영화, 억지로 보지는 마셔요.<씨네21>. 

83쪽 

(전략) 문화인 행세를 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봐야 하는 영화들이 꽤 많습니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중 상당수는 무척이나 지루하고 재미없어요.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게 되죠. 아까도 말했지만 요새는 정보 얻기도 쉬우니 거짓말도 쉽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조금도 없다는 겁니다. 영화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여러 가지 있는데 그것들 중 일부는 영화를 보지 않아도 기능을 수행합니다. 이를테면 지식 과시, 마감 땜빵, 영화퀴즈 풀기, 심지어 평론(영화를 본 뒤 자기 예단을 바꾸는 경우가 몇이나 될까요?) 같은 것들 말이에요. 영화관에서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아대며 주변 관객들을 방해하지 않고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냥 보지 마세요. 영화는 고문이 되어선 안 되니까요. 

정성일(1998.12). 영화 매니아들이여, 무대 위로 나서라!. <월간 말>. 

221쪽 

(전략) 홍콩영화가 일시에 무너졌다. 한국 시장에서의 철수가 아니라 홍콩영화 산업의 자체붕괴에 따른 결과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한국영화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것은 다행이었을까. 지하시장의 움직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옮아가고 있었다. 비디오라는 새로운 매체는 지난 20년간 한국영화의 역사에서 매니아의 자생적 출현을 낳은 토대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매우 독특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비디오는 무차별하게 출시된 영화들 속에서 '쓰레기속의 보물'을 찾아 내는 즐거움을 안겨 주는 한편, 국경을 넘나드는 불법 비디오 시장을 창출해 냈다. 그 중 가장 먼저 시작되었으며,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 특징은 저패니메이션 매나아군의 형성이다. 80년대의 '비정치적 불법연대'를 이뤘던 매니아들은 비디오 지하시장을 본거지로 '안전한' 즐거움을 얻었으며, 혹은 즐거움은 금지되었더라도 지식의 기쁨을 누렸다. 이 기쁨은 정보를 획득한 이들과 차단된 이들 사이에서 미시적인 권력의 형태로 바뀌었다. 동호회는 확대 재생산되었고, 매우 빠른 속도로 전염되었다. 

222쪽 

그들은 그 어떤 경제적 이익을 바라지 않으며,(그렇기 때문에 통제되지 않는다.) 매우 진지하지만 동시에 변덕이 심하고,또한 경쟁에 민감하다. 유행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일제히 열병에 사로잡혀 커다란 힘을 만들어 내지만, 지나가 버리면 반성적 성찰의 시간을 갖지 않는다.  (중략) 영화는 탐욕에 불타는 잡식성을 가졌다. 소설이건 만화건 유행가건 가리지 않고 자기의 자장권으로 끌어들인다. 유난히도 영화가 퀴즈에 어울리는 것은 그것이 잡다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대중문화의 자락을 펼쳐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이광호(2002.6). 영화평론가 정성일. <월간 말>.  

137쪽 

(전략) 영화평론가는 영화를 어떻게 볼까 궁금하다. "처음에는 그냥 편안하게, 두 번째 볼때의 준비물은 세 가지입니다. 메모장은 목에 걸고, 한 손에는 타이머로 커트수를 재고, 다른 손은 롱테이크인지 편집인지를 알기 위해 시간을 재는 워처를 들고 있죠. 영화는 소설과는 달리 보다가 되돌아갈 수가 없잖아요. " 

김소영(). 시네필리아와 네크로필리아. 1051~1069. 

1061쪽 

90년대의 영화 수용적(물론 이때 수용은 생산과 분리된 것이 아니며 그 둘은 상호 영향권 안에 서 있다) 맥락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흐름은 영화과 대학원이라는 학문적 제도와 각종 문화 강좌를 통해 생산되고 있는 영화 연구자들의 급격한 수적 증가와 영화 마니아라고 불리는 시네필리아CINEPHILIA의 출현이다.  

1062쪽 

80년대에도 프랑스 문화원이나 독일 문화원의 시네마테크에 모여들어 필름 소사이어티를 구성하고 '열린 영화'와 같은 잡지를 만들고 8밀리나 16밀리 카메라로 영화를 만들던 시네필리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그 수가 많아야 수십 명을 넘지 않는 소수의 그룹이었다. 사회적인 현상으로 감지되어 하나의 담론적 장을 이룰 수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록 마니아나 컴퓨터 게임 마니아 등과 더불어 사회적으로 가시화된 90년대의 영화 매니아는 동시대의 영화 지형의 변화를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집단이다.  

1068쪽 

(전략) 역사화해서 본다면 시네필리아는 그 자체가 비정치적인 집단이라기보다는 어떠한 문화 정세 속에 놓여 있고 어떠한 지향점을 갖느냐에 따라 영화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수용자와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인 집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미지의 대량적 기계 생산이 이루어지고 스펙터클 사회가 형성되고 극장과 비디오를 통해 영화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상당한 수의 시네필리아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안적 영화 프로그램을 갖춘 극장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주로 비디오들을 통해 영화 사랑이 이루어지고 그래서 시네필리아이기보다는 비디오필리아에 가까운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중략)현재 대안적 영화문화의 빈곤함 속에서 구성되고 있는 시네필리아는 이런 '볼 수 있는 자'로서의 예민함보다는 감독의 연보나 작품의 백과사전적인 영화적 지식의 습득을 영화 사랑하기의 원칙으로 삼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 경우 스크린 위에서 나와 관계를 맺지만 언어로 환원되길 거부하는 이미지의 어떤 과잉, 친숙한 것이지만 억압되어있던 어떤 것이 주는 감정적 강도의 경험이라는 포토제닉한 그리고 시네필적인 경험의 판타지는 안전하게 백과사전화된 지식의 탐식으로 대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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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서(1997.6). 구프로 새롭게 다시보기 : 걸작 호러무비 골라서 다시보기. 224-225. 

224 

프로급 매니어와 그렇지 않은 보통 관람자의 차이는 프로의 대여행태에서부터 나타난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잘 나가는 프로 몇편에만 매달리지만 노련한 매니어는 어차피 조금만 지나면 구프로가 될 새프로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고 대여점에 꽂혀있는 수많은 테이프들 속에서 끊임없이 놓치기 아까운 프로들을 골라낸다. 사실을 이것이야말로 비디오를 즐기는 진정한 재미중의 하나다.  

우리나라 대여시장에서 공포영화는 전통적으로 시세가 없는 편이다. 여름 한 철 납량물로 한두번 빌려보는 것은 모를까 소름끼치는 공포체험을 지속적으로 즐기는 색다른 취향의 매니아가 많지 않은 탓도 있지만, 실제로 이 장르에선 작품성을 갖춘 좋은 필름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도 한가지 이유일 것이다. 

225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공포영화는 영화로도 기록적인 히트를 치고 비디오대여점에서도 빅프로 대우를 받기도 했지만, 아직도 공포영화의 수많은 걸작 수작들이 매니어들의 편견이나 정보부족으로 대여점 한 구석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형편이다.   

김은구(1995.9). 성폭력을 다룬 영화 4편 : 시사적 사건과 관련된 영화를 기억해두라! 396쪽. 

396 

매니아들은 tv나 신문을 통해 시사적 사건들에 익숙해져 있다. 시사적 사건들과 관련된 영화들을 기억해두었다가 시기적절하게 권하여 보라. 영화속에서 그 사건들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간단히 이야기해주는 것만으로도 잠재의식속에 있는 호기심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프로들을 고객들에게 소개하는 방법 중에 신문이나 TV를 통해 잘 알려진 사건들과 관련된 영화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시기에 맞게 소개하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의식,무의식 속에 시사적 사건들이 어떻게 영화를 다루어지고 있는가하는 고객들의 호기심을 이용하는 것이다. 즉 환경오염 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 때에 이와 관련된 영화들을 소개하는 것은 효과적인 렌탈 전략이 될 것이다. 

이미경(1987.9.26). 연속극스타일 무협비디오 인기. 조선일보 ?면. 

비디오에도 베스트셀러가 생겨났다. 연속극스타일의 중국사극-무협극 비디오가 비디오광들에게 대단한 인기다. '초류향신전','외로운 검객','비룡검객','측천무후','초한지'등의 이 비디오들은 모두 17~21권의 초장편. 대부분 유명한 무협지나 고전을 드라마화한 대만과 홍콩의 tv드라마를 녹화한 것이기 때문에 단편영화보다는 극적 요소가 적지만 가족들이 다함께 볼 수 있고 지나치게 잔인하지 않은 것이 특징. 그러나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도중에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중략)중국장편비디오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 지루하다고 기피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시리즈만 골라보는 사람도 있다고 말하는 한 비디오상 주인은 '자기 마음에 드는 배우가 나오는 시리즈는 다 섭렵하는 비디오광도 있다'고 덧붙였다.  

옥대환(1993.7.7). 영화기획자 정종화씨(매니아). 조선일보.16면. 

"안정효씨의 소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모두 몇편의 영화가 거명됐는지 아십니까? 제가 세어봤더니 4백 16편이었습니다. 지료와 대조해 보았더니 그중에는 국내에서 미녀와 우유배달로 개봉된 the kid from brooklyn이 브루클린 키드로, 축복(count your blessings)이 행복으로 나오는 등 표현이 틀린 곳도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편지로 작가에게 그 내용을 알렸더니, 안씨가 만나자고 해 밤을 새워가며 영화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40년간 영화 포스터를 모아온 정종화씨(51)는 우리 영화계의 살아있는 사전이다.  

(중략) 비디오테이프도 2천개쯤 지니고 있다는 정씨는 몇년째 일주일에 10편이상씩의 영화를 봐오고 있다. 그러나 정씨의 불만은 우리 비디오시장이 너무 최신작에만 매달려 흘러간 명화를 다시 접할 기회가 적다는 점. 게리 쿠퍼의 무숙자, 존웨인의 수색자 등 서부영화의 걸작들을 비디오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지니고 있다. 

옥대환(1993.7.21). 문화체육부사무관 용호성 씨(매니아).조선일보.16면. 

"제라르 드 파르디유가 주연한 프랑스영화 내겐 너무 이쁜 당신에서는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현악4중주 등 슈베르트 음악만 10여곡이 나옵니다. 이 영화는 현실과 상상장면이 교묘하게 편집이 돼, 유심히 보지 않으면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상상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음악이 바뀌는데 유의하면 금새 컷의 나뉨을 알아차릴 수 있죠. 저는 레코드판을 다 가지고 있는데다 외우다시피하는 곡들이라 영화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문화체육부 사무관 용호성씨(27 문화정책국 총괄과)는 철저히 음악적인 관점에서 비디오를 감상하고 있는 매니아다. (중략) 대학노트에 영화 수백편에 대한 감상문을 적어놓은게 몇 권이나 되며, 한편 한편마다 희고 검은 동그라미들로 평점을 매겨놓기까지 했다. 그의 영화노트에는 작년 한해동안 비디오 1백30편, 영화 50편 등 모두 1백80여편을 본 것으로 기록돼 있다. 동그라미 5개가 만점인 그의 평점방식으로 4개이상을 받은 작품들은 불과 10여편. 핑크 프로이드의 더 월, 베티 블루,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사랑은 비를 타고, 그리고 흑인 색소폰연주자 찰리 파커의 일대기를 그린 최근 출시작 버드 등. 

(중략)고시공부 틈틈이 영화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그가 섭렵한 국내외 영화서적은 50여권에 달한다. 어치피 같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보는 영화라면 조금이라도 많이 알면 더 많이 얻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권 두권씩 읽다보니 매니아가 됐다는 것. 그는 일반인들도 영화보기와 영화읽기, 영화의 이해, 필름 아트 등 번역서나 프리즘에 비친 영상, 영화 이렇게 보면 두배로 재미있다 등의 국내 저작들을 읽어가며 영화를 본다면 훨씬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극장의 명작감상서클인 코아 시네마라이브러리의 회원으로, 또 컴퓨터통신 하이텔 시네마천국 동호인으로 근무외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는 "희귀비디오나 명사 추천작을 구해보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지금까지 출시된 모든 비디오를 1~2편씩이라도 다 갖춰놓은 자료관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옥대환(1993.7.28). 소설가 조성기 씨(매니아).조선일보.16면.  

(전략)..소설가 조성기씨(42)는 스스로를 "매니아 근처에도 못가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한창 많이 볼 때가 1주일에 3~4편 정도. 명작 희귀본을 골라보는 것도 아니고, 특정 장르에 몰입해 있는 편도 아니다. 그저 집이 있는 서울대앞 녹두거리 근처의 일반 대여점에서 한편 두편 골라보고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그의 비디오 보기에는 하나의 일관된 방법론이 있다. 좋은 대화나 인상적인 장면은 앞으로 쓸 소설을 위해 모두 메모한다. 설령 빌려온 비디오가 3류 영화일지라도 끝까지 보면서 스토리나 구성 등에서 왜 이 영화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분석한다. 다른 사람들이 담배를 물고 또 술을 마시면서 느긋하게 비디오를 볼 때, 그는 펜을 꺼내들고 메모하고 장면을 스케치하는 것이다. 라이언의 딸 아라비아의 로렌스 위트니스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부터 모 베터 블루스 철목련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비디오 감상노트 2권에는 만 4년째 이렇게 봐온 3백 50여편의 영화들이 삽화와 함께 깨알같은 글씨로 적혀있다.   

옥대환(1993.8.4). kbscg실 심재옥씨(매니아).조선일보. 16면. 

(전략) 그가 소장하고 있는 비디오는 1천여편. 그러나 이중 절반이상이 국내에서 개봉되지도 않았고, 비디오로도 출시되지 않은 희귀본이다. "예술적인 향취로 명성이 높은 소련감독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은 다 갖춰놓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감독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 1백20일이나 컨포미스트, 영국 데릭저만 감독의 엔젤릭 컨버세이션과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요리사,정부, 그의 아내 그리고 도둑 등이 자랑할만한 작품들이지요." 영화의 서술구조를 파헤치고, 어떤 장면이 무슨 의미를 지녔는가 따져가는 것은 결코 좋은 감상법이 아니라는 그는 "특히 현대 영화들은 화면에 몸을 맡기고 그냥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 

옥대환(1993.8.11). 개그맨 박세민(매니아).조선일보.12면. 

(전략),,, 이렇게 시작해 그가 지니고 있는 비디오는 1천여편. 이중 3분의 2는 뮤직비디오고, 나머지는 홍콩과 할리우드 액션영화들이다. 이 영화 저 영화에서 장면들을 따와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움직임이 강한 액션영화 위주로 모으게 됐다는 설명이다. 요즘도 일주일에 10여편씩 비디오를 보면서 잠이 들곤 한다는 그는 어떤 장르의 영화든지 두 시간동안 보는 사람을 몰입시킬 수 있다면 다 좋아한다고 했다.   

옥대환(1993.9.1). 카페경영 이상무씨(매니아).조선일보.16면.  

영화 볼 시간 없어 첫 직장 사표도

(전략) 한때 비디오테이프도 1천5백개가량 있었으나 지금은 ld로도 구하기 힘든 독일 파스빈더 감독의 여우 등 20여개만을 보관하고 모두 주위사람들에게 나눠준 상태. (중략) 매일 하루 3편의 비디오를 보고있다는 그가 추천하는 비디오는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과 프랑스 배우 겸 가수인 바네사 파라디 주연의 하얀 면사포. 택시 드라이버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가 30대에 처음 손을 잡고 만든 비열한 거리와 곧 출시된 금지된 사랑은 반드시 챙겨보아야 할 작품으로 꼽았다. (중략) 그는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몇편을 소장하고 있고, 무슨 영화를 봤느냐가 영화를 좋아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면서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나, 스스로의 안목을 위해서라도 한편을 수십번씩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옥대환(1993.9.15). 계원조형예술대 교수 유택상 씨(매니아).조선일보.16면. 

(전략) 그가 건축학에서 영상디자인으로 전환한데는 국민학교 입학전의 영화체험이 큰 작용을 했다. 아마추어 영화광이었던 아버지 덕택에 8mm 영화카메라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고, 그의 집에는 35mm슬라이드 필름이 박스째 굴러다녔을 정도. (중략) 건축학을 공부하면서는 점점 한강에 돌을 던져넣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결국은 좋아하는 영상쪽으로 마음을 정했다는 얘기다. 이후 그의 생활은 비디오보기로 일관된다. 일반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줄거리나 등장인물에 몰입하는 감상이 아니라 카메라나 조명, 편집기법, 영화속의 아이디어들을 집중적으로 따져보는 분석. 미국에서는 학위를 마친 뒤에는 비디오테이프 10만여개를 비치한 시카고의 파세트 시네마테크라는 대여점 앞으로 이사를 해 세 끼 밥 먹는 것 외에는 오직 비디오를 보면서 1년을 보내기도 했다.   

옥대환(1993.10.20). 대한항공 최정훈 차장(매니아).조선일보.16면. 

대한항공 객실영업부 서비스용품 팀장 최정훈차장(43)은 기내영화를 선정하는 일 때문에 매니아가 된 케이스다. (중략) 지금은 직배형태로 외화가 들어오는 탓에 신선도가 떨어졌지만, 2~3년전만 하더라도 기내영화는 항상 국내 극장개봉에 앞서 소개됐다. 이렇다보니 그는 국내 어느 영화전문가나 매니아보다도 신작들과 빨리 만나왔던 편.  

(중략) "영화는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삶 속의 추억"이라는 그는, "신작이나 액션영화에 빠져있는 비디오 팬들이 고전영화의 참맛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갰다"고 말했다. 

옥대환(1993.12.1). 예인사 용산지점장 서영국 씨(매니아).조선일보. 16면. 

(전략) 음반판매회사 예인사 용산점 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서영국 씨(29)는 독특한 스타일로 비디오를 보는 매니아다. 그의 감상법의 특징은 많이 보기보다 철저하게 보기. 지금은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편이지만 한창 그가 비디오에 빠져있을 때는 보통 하룻밤에 4~5편씩을 보곤 했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반드시 이들 가운데 한 편을 선택해 다시 꼼꼼하게 정독을 해왔다. 장면별로 등장인물들의 관계나 대사, 화면구성 등을 노트하면서 분석하다보면 한층 작품에 깊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비디오 감상에서 항상 나는 엿보는 사람이고, 비디오는 보여주는 쪽입니다. 비디오가 보여주는 내용에 그냥 실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좀 더 능동적인 자세를 취하자는 생각이었죠." 

정성일(1994.6.2). '비디오 광'들의 그릇된 선택. 한겨레21 11호.  

어떤 분야건 소비과정을 이끄는 가장 지속적이고도 끈질긴 힘은 그 분야의 매니어(mania)들이다. 그들은 가장 믿을 만한 감식가들이며, 어떤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로운 진정한 비평가들이다. 아마추어 비평가란 언제 어디서든지 매니어들이다. 그런데 지금 비디오 분야에서는 그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왜 그럴까? 놀랍게도 기형화된 비디오 유통구조가 아마추어 영화광들마저 기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취미도,취향도,모조리 상품화시키는 이 무서운 논리를 한 번 캐들어가보자. 

각종 동호모임 '아벨 페라라'추천 

비디오매니아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정말 영화광들이다. 그들은 영화잡지를 보면서 하루에 한 개 이상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다본다. 이 사람들이 영화계에 종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각종 잡지에 영화평을 투고하고, 컴퓨터 통신의 영화동호회에 가입해 있다. 비디오 시네마 테크를 부지런히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런 매니어들이 자신들이 관련을 맺고 있는 영화동호모임 등을 통해 지금 '베스트'라고 추천하는 영화가 아벨 페라라 감독의 <바디 에이리언>과 <스네이크 아이>다. 두 편은 모두 공식적인 대여순위에는 오르지 못한 것들이다.(만일 올랐다면 이런 대접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작은' 비디오 가게에서는 벌써 반품시켰을지도 모른다.  

(중략) 아벨 페라라가 비디오매니어들을 사로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헐리우드 상업영화와 홍콩 무협영화, 유럽 소프트 코어 외에 영화광들이 좋아할 만한 '진지한'작품들의 수는 너무 적다. 상업영화에 질린 영화광들의 선택은 이제 상업영화를 패러디한 또 다른 상업영화인 것이다. 두번째, 영화광들의 상업화를 유도하는 현행 영화 유통구조가 문제다. 이들을 만족시킬 만한 비디오는 '작은'비디오 가게에서는 감당하지 못하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별난'비디오이다. 그런데 이런 프로그램들을 영화잡지 같은 데서 '숨은 걸작 찾기'등과 같은 고정코너를 마련해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부익부, 빈익빈! '큰' 비디오가게는 '작은' 비디오 가게의 목조르기를 하는 것이다. 

낯선 영화에서 쾌감 느껴 

이 악순환은 이들 매니어들이 비디오산업의 의견지도자가 되어 더욱 가속화된다. 마침내 기이한 영화들이 좋은 영화로 둔갑하고, 좋은 영화들은 정말 보기 힘들어진다. 비디오가 더욱 서구 중심주의(그것도 헐리우드 중심의)로 집중되는 것은 비디오 회사들이 몇 개 기업으로 집중돼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영화와 케이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고리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탈출하는 방법은 우리의 선택이다. 그러나 선택을 이끌어야 할 영화광들은 서구 중심주의 문화 속으로 더 깊이 파고 내려가 그 속에서 자신을 낯설게 만드는 영화를 통해서 쾌감을 느끼는 방법을 먼저 배운 셈이다. 그것이 지금 비디오 가게에서 자주 마주치는 매니어들의 선택이다. 뉴미디어 시대는 불길하게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정성일(1998.9.10). 비판의 화살, 마니아에서 '영화'로 돌려라.인제제일. 

비디오와 함께 90년대에 등장한 신인류의 탄생  

문제는 결국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그 외부적인 - 정치적인 검열과 제도,그와 동시에 경제적인 토대에 조응해야 하는 문화적 빈곤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과정 전체가 우리에게는 생략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뉴 미디어의 발전이라는, 또 다른 외부의 힘에 의해 갑자기 실현된 것이다. 점멸하는 비디오와 증식하는 케이블 채널, 국경을 넘어오는 인공위성의 전파는 우리들을 영화의 변방으로부터 단숨에 전지구적인 네트웍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사람들이 함께 꿈꾸는 편집광적인 힘의 영화라는 꿈은 이 땅에서 정신분열증으로 변모했다. 레오스까락스의 <나쁜 피>와 <희생>의 타르코프스키와 삼색 연작인 <블루>와 <화이트> 그리고 <레드>의 키에로슬로프스키, <천국보다 낯선>의 짐 자무쉬와 <비정성시>의 후 샤오시엔, 또는 <바톤 핑크>의 코엔 형제, 그리고 <중경삼림>의 왕가위와 <트레인스포팅>의 대니 보일은 진정 영화적으로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미지는 넘쳐나고 그 수사학은 자기의 역사로부터 아무런 해석의 고리를 가져오지 않았다. 서로 다른 영화들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우리 앞에 아무런 맥락 없이 불현듯 유령처럼 나타나서 우리를 놀라게 만들었다. 우리의 마니아 문화는 이런 토양 위에서 생겨났다. 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이미지 앞에서 분산시켰다. 언제나처럼 쉽게 영화에 대해서 입을 열지만,이미지를 둘러싼 알레고리와 스타일의 역사는 암호 속에 섞여들어서 난수표에 가까운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들은 그 스스로 꾼 꿈에 대해서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일시적인 관찰자들은 아마도 여기서 마니아를 둘러싼 지식의 권력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영화는 불현듯 대중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 버림받은 대중들 사이에서 80년대 내내 지하에서 숨죽이며 거의 쓰레기 하치장처럼 버림받은 비디오 '보물창고'를 뒤지며 자료를 모으로 그 자신이 열광하는 영화를 외국으로부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하고-아마도 대부분은 친척들과 유학간 친구들이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 발견의 재미를 만끽하는 신인류가 태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영화관이 아니라 자기 안방에서 벤야민의 명제를 실천한 세대이다. 누구도 그들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이 영화를 사랑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90년대에 안방으로부터 영화관의 중요한 관객으로 옮겨왔다. 그럼으로서 90년대의 영화관객들은 일시적인 소비의 태도를 지닌 관객들과 안방에서 비디오로 스스로 무장한 비판적 거리를 지닌 관객들이 공존하였다. 그들은 일반관객들로부터 스스로를 귀족화 하였으며, 일시적으로 그것은 새로운 유행처럼 보였다. 아직(불법적인 비디오 동호회를 제외하고 공식적으로) 시네마데끄가 존재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일반곽객들에게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모임이었으며, 반대로 새로운 관객들에게 그들은 영화를 알지 못하는 구경꾼들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마니아는 서방세계마니아-특정 장르의 영화만을 집중적으로 탐닉하는 병적인 의미의-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관객들인 것이다. 그 둘 사이에는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단절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과 마니아 간의 간극 줄이기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트 하우스가 먼저 생겨나서 위로부터 만들어진 수동적인 서구의 마니아들과는 달리 한국의 마니아들은 자생적으로 아래로부터 생겨나서 90년대 후반 아트하우스 영화관을 열도록 유도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마니아들이 비판적 거리를 잃지 않을 수 있는 힘의 바탕이다.  말하자면 90년대의 마니아현상은 - 그렇다! 누가 마니아이고 누가 아니냐는 논쟁은 정말 무의미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이건 그저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그 부정적인 여러 효과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에서는 대중들 사이에 점으로 흩어져 있는 영화를 사랑하는 필(말 그대로 순수하게 사랑하는 phille)들이 정신분열증에 빠진 대중들 사이를 선으로 연결하며 아무런 맥락없이 들어온 영화들의 코드와 스타일의 암호들을 우리 방식으로 이해하고 해석하고 더 나아가 대중들 사이에 유포시켜 껴안으려는(결코 연대한 적이 없으며 더 나아가 그들은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의 자생적인 문화적 뿌리의 일부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분명하다. 서로 들로 나누어진 두 개의, 서로 다른 관객들의 대화의 통로를 열어가는 것이다. 마니아 상업주의라고 불리울만한 온갖 형태의 장삿꾼들은 마니아 현상을 계속 부추기어 그들에게 허영심과 헛된 엘리트 의식을 불러일으켜 계속 고립되도록 만들 것이다. 마니아들은 점점 희귀하고 기이한 소재와 배타적인 태도에서 오는 차별성에 우월감을 느끼며 소비적인 태도에 탐닉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대중관객들은 마니아 현상에 대해 점점 더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진정 예술영화들이 주는 감동을 의심하며 배타적인 마니아들이 만들어내는 문화의 일부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또는 이미 그렇게 되었다!) 그럼으로서 영화에 대해 가져야 하는 비판적 거리는 엉뚱하게도 대중관객과 마니아들의 진영 사이에서 형성될지도 모른다. 마니아 현상은 정신병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비가 아니라 생산으로, 마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 바깥의 잡다한 지식의 경쟁으로부터 영화 그 자체에 대한 토론을 통한 지혜로 옮겨 놓아야 한다. 만일 그러하다면 먼 훗날 이미지의 시대라고 예언하는 21세기의 어느 날, 이 모든 토론은 1990년대 영화 마니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정성일(1999.3). 독점과 소비의 트랙을 질주해 온 매니아 시대의 종언. 월간 말. 

사라진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코엔 형제 영화가 권태로운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시시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시시해진 것일까. 영화는 변하지 않았는데 왜 즐겁지 않게 된 것일까. 여기서부터가 논점이다. 이미 이 모든 것은 예정된 순서를 밟아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80년대에 갑자기 나타난 영화광들은 매우 특별한 경로를 선택했다. 그들은 비디오라는 가정용 시네마떼끄를 어느 날 갑자기 선물 받았고, 그 이전에 상상할 수 없는 경로로 온갖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 영화를 보는 방법은 셋 중 하나였다. 얌전하게 수입된 영화만 보든지, 끈질기게 주말의 명화극장을 기다리든지, 아니면(정말 어쩔 수 없이)외국에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비디오는 모든 게임의 규칙을 버리게 만들었다. 비디오 가게는 동네마다 교회 수와 맞먹게 되었으며, 출시되는 비디오들은 일주일에 평균 12편을 상회했다.  

그래서 급기야 비디오 가게에서 후진 디자인에 엉터리 제목 아래 숨은 걸작 찾기는 종종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찾기에 비유되곤 했다. 어디 그뿐인가. 비디오들이 국경을 넘어 소포로 날아왔으며, 세포증식이라도 하듯이 복제되어 지하시장을 통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불법복제 비디오는 '전함 포템킨'에서 하드코어 포르노에 이르게 되었다. 당연히도 정보와 지식은 이 경쟁의 와중에서 새로운 힘으로 부상했고, 영화동호회는 경쟁적으로 새로운 영화를 찾아냈다.  

남이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영화 목록은 이 흐름을 주도하는 일종의 위험한 유혹이 되었다. 걸작 목록은 언제나 소수만을 위한 것이었으며 열렬한 추앙과 경배는 정식 개봉과 함께 증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런 가운데 영화는 예술이 아니라 마치 신학의 대상처럼 여겨졌다. 소수가 독점한 걸작은 우상숭배 대상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공개적인 자리에 불려 나오면 존경과 예찬은 사라지고 진정한 토론이 시작되어야 할 시간은 영원히 유예된다. 레오 까락스는 그 첫 번째 희생양이었으며 타르코프스키는 상징적인 거품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연말 만날 수 있었던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의 실패는 예정된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영화가 사랑의 담론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의 경쟁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즐거움을 주는 것은 영화가 아니라 영화를 내세운 소비라는 트랙 안에 들어가 벌이는 경주가 된 셈이다. 누가 먼저 소비하는지를 따지는 이 경주는 정치적인 것도 아니고 미학적인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러나 소비의 경쟁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트랙 안에 자기의 친구들을 끌고 들어오기도 한다. (중략) 정말로 인정하기 싫겠지만 우리들 시대의 영화 매니아 논쟁의 정체는 기이한 자본주의적 소비의 변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올해는 영화 매니아의 영년이 될 것이다. 그것은 끝이든지, 새로운 시작이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 예술은 경쟁이 아니라 조화다. 미와 추, 화음과 불협화음. 체험과 존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조화를 함께 나누기 위하여 영화는 그 무엇보다도 공개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속도의 트랙에서 벗어나 천천히 갈 때 우리는 비로소 제대로 주변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펠릭스 가타리의 말을 빌린 나의 호소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횡설수설하며 일정 방향으로만 달리는 이 거대한 소비의 속도에 맞선 반동분자들이 되어야 한다. 정말이지 트랙 따위는 두들겨 부셔 버리자. 

<이 달의 추천 비디오> 

-미드나잇 가든 

한 신문기자가 미국의 남부 도시 사바나의 한 유서 깊은 가문을 취재하러 간다. ....노인이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굴곡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아이러니에 관한 슬픈 우화. 2시간 20분의 원판을 자르지 않고 단 한 개의 비디오에 담은 경제적 배려가 돋보인다.  

월간 비디오.(1985.4). 비디오수집광 신경소. 108쪽. 

신경소. 그는 현재 비디오가게의 주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앞으로라도 비디오가게를 열겠다는 생각도 없다. 그저 '취미로'모아온 프로테이프가 천여편, 어마어마한 분량이 아닐 수 없다. 1981년도부터 모으기 시작했다니 이제 겨우 5년 남짓, 1년에 2백편이 넘게 수집하였다는 얘기인데 우선 경비조달방법이 제일 궁금하다. "삥땅 쳤어요. 다니던 영화사서." 

(중략)이 1981년이라는 해는 그에게 있어 두가지의 의미를 가진 해로 기억된다. 첫번째는 영화와의 만남이다. 대학에서 공부한 회화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중 움직이는 그림인 영화에 깊이 함몰하면서 그 주변의 또래들과 뉴-버드(new bird)라는 모임을 조직한다. 김수철,진유영,강ㄴ마길,이미례 등 이름을 대면 알만한 친구들끼리 모인 그 모임에서 8mm,16mm 영화도 만들고 또 영화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한다.  

(중략)그 다음 두 번째가 바로 비디오테이프 수집을 시작한 것. 중요한 첫 스타트가 된 프로그램은 바로 알란 파커의 '미드나이트 익스프레스(midnught express).' 어렸을 때부터 뭐든지 모으는데 장기를 보여온 그였는데 이 한 편의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순간 아찔한(108) 감동과 함께 콜렉션의 새로운 대상으로 지목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시작된 수집은 '돈이 아까와서 배우지 못한 술, 담배'값도 몽땅 털어넣게 만들고 또 어디에 어떤 물건이 있다는 얘기만 들으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는 부지런함도 가르쳐 주었다. 미군 부대 주변에서 살다시피 하기도 하였고. 그렇게 모아온 작품들을 대충 분류해보면 영화가 5백여편, 록 비디오가 백여 편, 록 오페라, 뮤지컬류가 50~60편, 코미디류가 30~40편, 기타 공포물 등등 해서 천 여편에 이른 것이다. 물론 빌려가서 회수되지 않은 것들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은 분량이 될 것이지만. 그렇게 모여진 작품들을 그는 참 유용하게 사용한다. 우선 그 자신의 왕성한 영화에의 욕구를 채운 다음 서강대 커뮤니케이션 센터나 동국대 연극영화과 또 영화에 대한 진지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개방해주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도 보급은 하고 싶으나 방법이 문제란다. 그 '보급'을 위해 일하다가 까딱 '걸려들'뻔한 사건도 당했었고.

조선희(1999.1.26-2.2).<오발탄>을 어디서 볼까. 씨네21. 

(전략) 나는 '암시장'에서 이른바 '보따리장수'아주머니에게 부탁해 <오발탄>불법비디오를 어렵사리 구했다. "이 필름은 원판이 분실돼 샌프란시스코영화제에 출품된 필름을 사용했다"는 안내문으로 시작하는 이 비디오는 영어자막이 들어있는 데다 복사를 거듭한 듯 화면과 음향이 뭉개졌고 간신히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90년대 들어 여러 비디오제작사에서 고전명작시리즈들을 내놓았고 누벨바그는 물론 프리츠 랑이나 데이비드 그리피스 같이 영화관람의 즐거움을 주기보다 그저 학습교재 역할을 할 뿐인 영화사 초창기 작품들까지 비디오가게에 나와 있다. 그럼에도 <오발탄>은 찾을 수 없는 이유가 뭘까. 

허문영(1999.1.26-2.2).영화마니아는 무엇으로 사는가. 20-23.  

(전략) 따지고 보면 ㄱ씨는 영화광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1주일에 적어도 두세편 정도의 영화를 본 지가 벌써 10년 가까이 돼가고, 영화에 관한 책도 20권은 넘는다. 집에는 소장테이프가 50여편 있다. 그 중에는 개봉 안 되고 비디오 출시도 안 된 작품도 꽤 들어있다. 그러니 어디 가서 영화에 대해 한마디 할 정도의 밑천은 있다고 늘 생각해왔다.  지금은 약간 식었지만 한창 때는 극장가는 길이 데이트 나갈 때만큼 설레던 적도 있었다. 요즘도 며칠 영화를 안 보면 어딘가 허전하고, 동네 비디오가게 앞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게쪽으로 옮겨지는 경험을 여러번 했다.  

ㄱ씨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도 왜 영화광으로 불리기는 싫은 걸까. 왜 영화광보다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쉽게 생각하면 해답은 간단하다. 영화광의 '광'은 미친이란 뜻의 한자다. 영화광은 영화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사람이다. 미친 듯이 좋아하는 일은 철없는 10대들이나 하는 짓 아닌가. 영어쪽으로 옮겨가도 마찬가지다. '마니아(mania)'란 말은 조울증의 한 증상인 광조증을 가리키는 정신분석학적 용어다. 한마디로 약간 이상한 정신상태인 것이다. 영화광의 또 다른 표현인 '시네피리아(cinephillia)'를 써도 (20)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필리아'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병적 애호'로 나온다. 혹시나 해서 일본쪽을 쳐다보니 '오타쿠'란 말이 눈에 띈다. 단독으로 쓰면 '당신'의 높임말이지만 영화나 애니메이션 뒤에 붙이면 우리말의 '광'과 거의 마찬가지 의미가 된다. '무엇엔가 정신없이 빠져 있는 사람'이다. 때로 부정적인 뉘앙스가 더 강해진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소개한 한 미국 책자에는 "일본에서 누군가를 '오타쿠'라고 부르는 것은 싸움을 거는 데 적절한 방법"이라고 소개돼 있다. 재미있는 일은 미국의 일본 애니메이션팬들은 '오타쿠'로 불리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이건 신경쓸 필요가 없다. 언어가 바다를 건너가며 뉘앙스가 달라져버린 거니까. 

여하튼, 영화광이라는 말이 국제적으로도 별로 좋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ㄱ씨는 더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영화광은 확실히 비정상적인 사람들이란 생각을 굳혔다. 영화광은 말하자면 영화를 맹목적으로 좋아하는(21) 사람이다. 그들은 영화라는 우상을 신전에 모셔놓고 경배를 올리는 신도들이다. 숭배나 맹신은, 어떤 대상을 향한 것이든, 현명함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와 영화광 사이에는 비판이나 지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 합리성이 결여된, 그리고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찬 일부 영화광의 글을 떠올리며 ㄱ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그런 몽매한 무리에 끼어 있다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깐 문학광이나 미술광이란 말은 없는데 왜 영화광이란 말은 있는 걸까. 문학이나 미술은 지적인 예술이고 영화는 그렇지 않기 때문일까. 그건 분명히 아니다. ㄱ씨는 유럽예술영화의 지적 전통을 떠올렸고 프레드릭 제임슨, 움베르토 에코, 질 들뢰즈 같은 당대의 석학들이 영화의 친구였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영화 전공이 아니면서도 내로라하는 국내 교수들과 문필가들이 영화에 관한 책을 펴내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무슨 예술이든 90%는 쓰레기다. 더구나 영화동네에는 천박한 오락만을 추구하는 장사꾼들이 어느 분야보다 많지 않은가. 광적 사랑을 받는 영화들은 아마 이런 쓰레기더미 안에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ㄱ씨는 혼란스러워졌다. 자신이 가장 즐겨 봐온 영화가 타르코프스키나 베리만의 근엄하고 지적인 영화가 아니라 바로 그 쓰레기더미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곧바로 발견했기 때문이다. ㄱ씨도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작품성이 어떻고 깊이가 어떻고 얘기하지만 지친 몸을 끌고 집에 돌아와 VTR의 버튼을 누를 때는 섹스와 폭력이 난무하는 할리우드표나 홍콩표 영화 심지어 유호표 에로비디오를 쥐고 있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물론 안토니오니를 보며 감동받은 적도 있고 키아로스타미가 훌륭한 감독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지만, ㄱ씨는 주윤발의 춤추는 쌍권총이나 브루스 윌리스의 이죽거리는 말투를 잊을 수가 없다. ㄱ씨는 실제로 <첩혈쌍웅>을 불법복제해서 10번 이상 봤다. (중략)취향도 변해하고 입맛도 점점 까다로워진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싸구려영화들이 전부 거짓이었다고 말할 자신은 전혀 없다. ㄱ씨는 꼼짝없는 영화광이었다. 

이쯤에서 ㄱ씨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자신도 별볼일 없는 맹목적 영화신도라고 고백해버리는 대신, 적극적인 영화광 옹호론을 찾아나서기로 했다. 어쩌면 영화의 본령은 몇몇 걸작들의 미학적 성과가 아니라 영화광들의 무조건적인 애호와 관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잡지를 뒤적이다 맨처음 눈에 띄는 인물이 쿠엔틴 타란티노였다. 딱 맞아떨어졌다. 이 자는 비디오 가게에서(22)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배웠다고 큰소리치는 90년대의 대표적인 영화광 아닌가. 그런데도 근엄한 칸 영화제가 황금종려상까지 선사하지 않았는가. 그와의 인터뷰 기사에는 타란티노가 자신의 싸구려문화 취향을 변호하면서 스티븐 킹의 <죽음의 댄스>에서 한구절을 인용하는 대목이 나온다. "크림맛을 알려면 우유를 많이 마셔봐야 하고 우유맛을 알려면 상한 우유를 많이 마셔봐야 한다."이 거친 비유는 허점이 있지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타란티노의 영화를 빛나게 한건 지성이 아니라 싸구려문화에 대한 애정이라는 것. 흙 속에 엉뚱하게 진주가 끼어 있는게 아니라 보배로운 결정체를 빚어내는 건 바로 흙이라는 것.영화는 말하자면 8할은 흙이 키운 보석이다. 즉각적 쾌락과 통속적 즐거움을 밑바닥 사람들과 나누며 자란 대중의 예술이다. 더러운 흙이야말로 영화라는 예술의 말 그대로 토양이다. (23) 

24쪽 

허문영.마니아 1 : 대사의 묘미가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조문선씨  

(전략),.,.스케일로 승부하는 영화는 싫어한다. 전쟁영화가 싫고 제임스 카메론의 대작도 별로다. 호러는 무서워서 전혀 못봤는데 <스크림>만은 대사의 맛이 기가 막혀 즐겁게 봤다. 작년 한해 동안 극장에서 본 영화는 모두 80여편. 집에 100여편 정도의 비디오테이프를 소장하고 있다. 97년과 98년 동아-lg만화대전 때는 단편 번역작업을 한 적이 있고,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아직 버리지 않았다. 현재 외국 증권회사 한국지점에 근무중. 

 25쪽 

남동철.마니아 2:  영화전단 모으기가 취미인 최명국씨 

진도희의 필모그래피도 기록해두면 가치가 있을 때가 올 것이다. 최명국(28)씨의 영화사랑은 남들이 홀대하는 작품들에도 자리를 마련해두고 있다. (중략) 최명국씨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영화에 푹 빠져 있으면서도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기보다 혼자 영화공부하는게 낫다고 판단했다."주류에선 일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지나친 생각인지 모르지만 그런데 휩쓸리면 영화를 사랑하는 순수성이 오염될지 모른다고 느꼈다."그가 주류 바깥에서 영화광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데는 비디오가게와 PC통신 동호회가 큰 힘이 됐다. 부모님이 인수한 비디오가게를 운영하면서 숨은 걸작 찾기를 즐겼고 통신동호회에서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다. 최명국씨는 현재 유니텔 영화동호회 '배드 테이스트'방장을 맡고 있다. <13일의 금요일><버닝>같은 슬래셔영화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지만 취향은 잡식성이다. '베스트5'로 대중적인 영화를 꼽은 반면 16MM국산에로영화도 지나치지 않는다. (중략) 그는 이런 영화가 한국의 영화문화에서 한부분을 차지한다고 역설한다.(중략)그는 평균 하루 1편 이상 영화를 본다. 그의 방은 잠잘 자리와 컴퓨터 작업할 공간을 빼곤 모두 영화전단 박스와 비디오테이프가 차지하고 있다. 그에세 소장하고 있는 비디오편수를 묻는 것은 실례다. 한번도 세어보지 않았을뿐더러 아버지의 비디오가게가 보관창고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중략)그가 최근 영화 중 숨겨진 보석으로 추천하는 영화는 국내 스턴트맨들이 힘을 합쳐 만든 저예산영화 <고수>,신약성서를 은유한 영화<줄리안포>.액션영화를 가장한 신세대영화<세터드 이미지>와 <아메리칸 퍼펙트>등 모두 비디오로만 출시돼 일반인들이 좀처럼 빌리지 않는 작품들이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파헤칠 생각은 없다. 단지 조언이 없어서 놓치기 쉬운 영화들을 발굴하는 게 즐겁다"는 최명국씨는 조만간 자신이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를 인터넷 바다에 출항시킬 계획이다.  

26쪽

허문영.마니아 3: 영퀴방의 전설 김상국씨  

쓸모없는 영화는 없다 

(전략) 공포영화를 통해 영화세상에 입문했지만 다른 장르영화도 두루 좋아하고 빔 벤더스 같은 진지한 유럽 감독도 좋아한다. 심지어 마니아들이 대체로 싫어하는 할리우드 메이저영화들에서도 장점을 본다. 그의 모토는 '전혀 쓸모없는 영화는 없다' 혹은 '어떤 영화를 봐도 시간낭비는 아니다'라는 것. 대신 평론은 거의 보지 않는다. 영화 볼 때의 즐거움을 빼앗는 탓이고 별로 공감할 만한 평론이 없는 탓이다. 영화이론? 따로 공부할 필요성을 전혀 못느꼈지만 무성영화에까지 관심의 폭이 넓어지다보니 영화사에 대해서만큼은 웬만한 영화학도 못지 않게 알게 됐다.

27쪽 

박은영.마니아 4 : 호러의 아들 이성원씨  

반년 전쯤 남기남 감독 특집을 준비할 때다. 비디오대여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작품도 아니라 난감해 있던 취재부는 우연히 남기남 감독의 대표작 여러편을 소장하고 있다는 독자 이성원(26)씨를 알게 됐다. 열편이 넘는 비디오 테이프를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온 이성원씨의 특이 취향은 그뒤로도 취재부 사이에서 여러분 회자되곤 했다. (중략) 호러영화와 고전SF가 주종목이지만, 철 지난 B급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영화마니아 사이에서 '호러의 자식'으로 통하는 데 대해 그는 "영화다운 영화를 신봉할 뿐"이라고 항변(?)한다. 취향에 비추어 지나치게 진지하고 엄숙한 학문인 '법학'을 전공으로 택했다가,2년 연속 휴학했고 얼마 전 제적됐다. 다 그놈의 영화 때문이다. 이성원씨의 영화 편력에는 주거 환경이 크게 한 몫했다. 평택에 사는 그는 어려서부터 미군부대 가까이 살았고,부대에서 음성적으로 빠져나온 온갖 영화들을 비디오가게에서 구했다. 그 시절 가장 많이 접한 것이 싸구려 호러영화들이었다. (중략)한장에 300원하는 비디오를 사다볼라치면, 가끔씩 이상한 웃음소리에 깡통 굴러가는 소리도 묻어나오고, 조금 더 있으면 왔다갔다 하는 사람 그림자도 보인다. 극장에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들어가 스크린을 그대로 찍어 내다 판 '비품'인 것이다. 청계천에서 간혹 보물을 골라내기도 하는데, 그중 애니메이션 <태권브이와 황금날개>,<전자인간 337>,남기남 감독의 <평양 맨발>같은 영화는 어린시절이 떠올라서 특히 좋아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것들을 포함해 그가 소장하고 있는 사운드로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또 보고'하는 데서 희열을 느낀다. 처음엔 희소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손에 넣고 '나 이런 것도 있다'하고 과시하고 싶은 맘에서 수집하기 시작하는데, 지금은 나름의 잣대가 생기는 것 같다고. 이젠 "자주 보게 되고 자주 기억하게 되는 존재감 있는 영화"를 찾는다. 키아로스타미나 그리너웨이 등의 '예술영화'는 싫어한다. "폼만 재고 재미는 없기 때문". 정말 그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대중영화 취향이 무시당하고, 주류와 비주류가 뒤바뀌고 있는 '기현상'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자꾸 '컬트,컬트'하면서 자기 영역을 스스로 줄여가는지 모르겠어요." 오락영화의 명예회복은 꼭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28쪽 

조종국. 마니아 5 : 정형외과 의사 이희대 씨  

이희대(45)씨는 '의사선생님'이자 병원 원장이다. 그는 주로 '피를 보는'정형외과 의사라 긴장과 스트레스가 남다르다. 원래 애주가이기도 하지만 일과 뒤 "피 냄새를 씻기 위해"술을 자주 마시고, 취하기도 한다. 그는 술에 취하듯 영화에도 취해 산다. 술을 마시고 곯아떨어지는 날을 빼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화를 본다. 물론 대개 비디오로 보지만 어림잡아 일주일 동안 평일에만 10여편 정도. 주말에는 비디오, TV영화, 케이블TV영화까지 7~8편을 본다. 집에서도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술을 마시며 영화를 본다. 영화보는 시간만큼은 누구로부터 어떤 일로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다.  

(중략)그는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난 뒤 멍한 화면까지 즐긴다"는 영화중독자다. 이희대씨의 영화편력은 장르나 경향으로 구분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천방지축이다. "내가 재미있는 영화면 다 좋고, 나한테 맞으면 다 베스트다. 베스트영화는 평생 찾기 때문에 몇편을 꼽을 수 없다"며 베스트 5 선정을 사양했다.  

29쪽 

조종국.마니아 6: 마니아 경력 2년차 고교생 장혁재 군 

장혁재(19)군은 비닐봉지로 둘둘 싼 비디오테이프를 외투 주머니에 푹 찔러놓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A TO Z>을 옆구리에 끼고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비디오테이프는 몽타주에 대해 확인할 게 있어 어제 빌린 <전함 포템킨>인데, 인터뷰 끝나면 반납하러 갈 참이란다. 장혁재군은 영화 때문에 '인간'이 됐다. '호환.마마보다도 더 무섭다'는 비디오가 '삐딱선'을 타고 있던 소년을 수렁에서 건져낸 경우다. (중략)고3이면서도 비디오 보느라 밤을 새고 지각까지 해댔으니, 영화가 사람을 만든 것인지 더 망친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중략) 고1때야 겨우 집에 VTR이 생겨 비디오를 즐겨보게 됐고 고2가 되자 순식간에 영화의 바다에 몸을 던졌다.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략)지금은 하루에 비디오를 2편 이상 안 보면 입 안이 근질거린다. 고3이지만 진로는 일찌감치 정해뒀다. 8월에 입시를 치르는 영상원에 가기 위해 일반대학에는 원서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답답하다. 나름대로 영화를 많이 보고 있지만 비디오로 출시되지 않은 작품을 구해 볼 수 있는 경로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직은 혼자 열심이다. 정독도서관에서 모든 영화전문지를 통독하고, 부지런히 영화를 본다.  

21쪽 영화광 체크 리스트 

中 VCR 관련 

2. 국내 미출시 비디오와 ld를 인터넷이나 해외 친지를 통해 구입한 적이 있다. 

6. VTR이 재생용, 복사용 합쳐서 두 대다. 

9. 비디오대여점에서 주인아저씨가 작품을 권유하면 짜증이 난다. 

10.영화 혹은 비디오를 보느라 밤 새는 날이 한 달에 평균 3일 이상 된다. 

17. 청계천에 단골 비디오가게가 있다.  

로드쇼(1992.8). 독자페이지.  

268쪽.  

"이 비디오테이프를 찾습니다!" 

보고싶은 마음은 주체할 수 없는 데 도대체 비디오점에서는 찾을 수 없는 비디오들을 공개한다. 도대체 이 비디오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구희영(1992.8). 명장면 연구: 당신도 영화평론가가 될 수 있다 

176쪽 

영화광의 이상한 애정  

영화광이 되는 첫번째 입문은 한장면을 '다시'보는 것이다. 그리고 수십번을 다시 보아 암송하는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화면 뒤에서 움직이는 감독과 카메라와 조명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평론가로 데뷔하는 첫 걸음이다. 

shot-by-shot: 유행 또는 새로운 관습? 80년대 말부터 전세계의 대중영화잡지에 'shot-by-shot'이라는 새로운 포맷의 기사가 실리기 시작하였다.  (중략) shot-by-shot은 다른 분야의 출판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영화저널리즘 특유의 장르로 정착되어가는 느낌이다.  

shot-by-shot의 역사 : 편집실(steenbeck)에서 안방(VTR)으로  

이 시대의 영화관객과 전 시대의 영화관객을 구분짓는 결정적인 조건의 하나로 '비디오'의 출현을 들 수 있다.('비디오'로 영화를 보는 것과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의 차이를 여기서 일일이 늘어놓을 필요는 없으리라) SHOT-BY-SHOT을 읽는 독자들은 바로 이 '비디오세대'에 속하는 관객들이다. 극장에서만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전 시대의 관객들이 못 가졌던 경험을 이들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데, 그것은 '보고 싶은 장면만 따로 보기','같은 장면 여러번 보기', '정지화면으로 뚫어지게 바라보기','천천히 움직이는 화면으로 자세히 뜯어보기', '명장면만 모아 녹화해두고 심심할때마다 보기'등등이다.  

 (중략) 물론 위에 예를 든 여러 '보기'방법들은 비디오가 나오기 이전에도 가능했다. 단,VTR과 비교할 수 없이 까다로운 조건이 갖추어진 경우에만.  

첫째, 장비. 영사기 또는 필름 편집기(지금은 전세계적으로 스틴벡 회사의 제품이 가장 많이 쓰인다)가 갖추어져야 함. 

둘째, 장소. 영화 편집실, 영화학교 또는 시설을 갖춘 영화도서관. 

셋째, 사람들. 편집기사. 영화감독. 기타 제작스탭. 영화학교의 교수와 학생들,운좋은 일부 평론가, 영화학자,영화연구가 등. 

넷째, 필름. (요샛말로 하면 '소프트웨어')..위의 세 조건이 갖추어졌더라도,'연구'하고픈 영화의 35mm 또는 16mm 프린트를 구하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이기 십상..따라서, 'shot-by-shot'은 평범한 관객으로서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고, 영화 업으로 삼는 전문가들도 여간해서 손댈 수 없는 작업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VTR이라는 신기한 기계가 나타나서.. 

189쪽. '미래'영화평론가에 도전한다.  

Shot-by-shot 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shot-by-shot은 어지간한 인내력과 관찰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만약 이 작업에서 '짜증'이나 '막막함'보다 '즐거움'과 '깨우침'을 더 얻는다면, 당신은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영화광임을 자부하여도 될 것이다. 당신이 영화에 대하여 정규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그러나 진지하게 영화에 접근하는 관객이라면 어딘지 모르게 끌렸던 장면들을 더 깊숙히 이해할 수 있음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르 전공하거나 영화'전문가'에의 길을 꿈꾸고 있다면, '교과서'에서 배운 원칙들이 실제 영화 속에서 적용되고 있는 생생한 예들과 만나는 동시에, 그러한 원칙들을 과감하게 깨뜨리는 장면들의 효과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될 것이다. 또한 막연하게 생각했던 '작가의 세계관'이나 '미학적 원칙'들이 영화 속의 아주 미세한 부분에 드러나고, '관철'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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