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려도 괜찮아 토토의 그림책
마키타 신지 지음, 하세가와 토모코 그림, 유문조 옮김 / 토토북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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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월욜마다 초등학교에서 상담봉사할 때 만났던 아이들 대부분이 쑥쓰러워 발표를 못한다는 말을 듣고, 이 책을 소개하고 읽어주며 리뷰를 올렸었다. 이제 막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병아리들이 발표에 겁을 낸다면,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얻으라고 다시 추천한다.

 

아이들이 발표를 잘 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격적으로 소심해서 그럴수도 있지만, 의외로 '발표하고 싶은데 쑥쓰러워서' 혹은 '틀렸을 때 애들이 웃을 까 봐' 못한다고 말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읽어주거나 스스로 읽게 하면 좋은 책이 바로 “틀려도 괜찮아”다. 새 학년이나 새 학기에 다시 읽으면 발표할 수 있는 용기도 얻고 새롭게 다짐할 수 있는 책이다.

 

겉표지의 그림은 정말 감동적이다. 바로 우리가 바라는 선생님 상! 두 팔 벌려 아이들을 품어 안은 인자한 선생님이 다정한 미소까지 짓고 있으니, 이런 선생님과 만나는 아이들은 행운이다. 오밀조밀 선생님 품에 안긴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이 우리 아이들 교실 풍경이기를 희망하며 먼저 그림을 살펴보자.
 



첫 장, 발표하려는 아이들이 다섯 손가락을 힘 있게 펼치고 오른손을 들었다. 요즘 우리 초등학교에선 손드는 것도 손가락 표시에 따라 뜻이 다르다. 검지 손 하나를 들면 보충, 검지와 중지 둘을 세우면 동의, 주먹 쥔 것은 의견에 반대하는 표시다. 물론 우린 왼손으로 표시한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발견을 할 수 있다. 모두 오른손을 든 첫 장의 그림에 두개의 왼손이 보인다. 그리고 23, 24쪽(위 오른쪽)의 그림에 바로 그 왼손의 주인공인지 둘이만 왼손을 들었다. 화가의 섬세함에 감탄하며 나의 눈썰미에 혼자 뿌듯하니 요즘 아이들 말로 ‘자뻑'이다.ㅋㅋ 그림책을 보는 묘미는 바로 이런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남들이 모두 '예' 할 때 '아니오'하는 사람"이라는 광고도 생각났다.^^


이 그림책은 일본 작가와 일본 화가가 그린 그림이라 우리교실 풍경과는 조금 다르다. 이렇게 따뜻한 책을 우리 작가가 쓰고 그렸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생기는 부분이 또 있다. 20쪽에 말의 화살을 쏘아대는 그림, 일본의 사무라이 복장인지 궁사의 복장인지 모르지만, 우리 화가라면 이런 옷은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별점 하나 감한다. 우리 작가와 화가들이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주기 바란다.^^


"틀리는 걸 두려워하면 안 돼. 틀린다고 웃으면 안 돼. 틀린 의견에 틀린 답에 이럴까 저럴까 함께 생각하면서 정답을 찾아가는 거야. 그렇게 다 같이 자라나는 거야. 언제나 맞는 답을 말해야한다고 생각하니까 틀리는 게 무섭고 두려워져. 손도 못 든 채 작게 움츠러들고 입은 꾹 다문 채 시간만 흘러가지. 할 수 없이 선생님은 혼자서 설명하고 아이들은 딴청만... . 그러면 조금도 자라날 수 없어. 구름위의 신령님도 틀릴 때가 있는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우리들이 틀린다고 뭐가 이상해. 틀리는 건 당연하다고


이런 글을 읽은 아이라면 발표에 겁을 내거나 틀릴까봐 쑥쓰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뜻하고 명쾌한 가르침에 꼬마독자들도 자신감과 용기를 얻고 힘차게 손을 들 수 있다. 자~~~ 아직도 발표가 어렵거나 부끄러운 친구가 있다면 “틀려도 괜찮아”를 읽고 자신 있게 손을 들어 멋진 교실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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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8-03-11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제가 무척 좋아하는 아이들 필독서 중의 하나.^^
그렇군요. 활 쏘는 아이의 옷이... 그래서 별점 하나가 빠졌군요.^^
이런 점은 아쉬움으로 남아요.ㅡㅜ 그래도 역시! 멋진책이지요.^^

순오기 2008-03-11 23:12   좋아요 0 | URL
아수이움은 있지만, 정말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지요.
용기가 절로 나서 마구 발표하고 싶어지는 책.^^

마노아 2008-03-1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옷, 손가락에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저도 오늘 이 책 도착했어요. 조만간 리뷰 써야지요^^ㅎㅎㅎ

순오기 2008-03-11 23:12   좋아요 0 | URL
손가락의 의미, 민경이한테 배웠어요.ㅎㅎ
마노아샘은 조카와 같이 깔깔 웃으며 보시겠군요.^^
 
아들 선생님이 보내신 가정통신문

토요일 병원에 가야했는데 깜박 하는 바람에 약이 떨어져 약간의 두통이 동반하긴 하지만, 기침으로 나오지 않던 목소리도 아쉬운대로 들어줄만하다. 게다가 눈부신 햇살에 유쾌한 봄나들이를 꿈꾸는 여유도 부려봤다. 아침 어머니독서회 모임에서 아이들의 입학과 졸업에 분주했을 회원들의 근황에도 귀 기울이고... 새출발을 시작한 새내기들처럼, 엄마들의 인생 2막도 시작하겠다는 다짐으로 '마시멜로'를 토론했다. 이미 2막의 시작으로 방송대와 사회교육원에서 공주(공부하는 주부)의 삶을 시작한 회원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모두를 축하하기 위해 '팥죽'집에서 점심을 함께 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모처럼 여유있는 월요일이라 '조금 쉬었다 병원에 가야지!' 막 등을 기댔는데,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녀석이 선생님의 가정방문을 알린다. "엄마가 집에 있는 날 오시니 다행이다. 어여~ 청소기라도 돌려라!" 각자의 위치에서 잠시 분주한 청소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아들녀석 방은 홈스테이 뒤끝이라 청소할것도 없이 깔끔하다. 문제는 거실이다. 책상엔 책이 한 가득 놓여있고, 부도덕한 몸관리 탓에 걸레질, 청소기와 거리가 멀게 살았으니 눈에 보이는 먼지라도 닦아내느라 부산스럽다.

한 시간 후, 잘 생기신 아들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오홋~~ 딱 내 스탈이야! 부리부리한 눈매와 말끔한 이미지.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모습이라니...' 이미 가정통신문으로 후한 점수를 드린 선생님이라 실물을 뵈니 더 더욱 안심이다. 짧은 시간을 유용하게 쓰겠다며 차도 거절하셨는데, 좀 길게 잡아두고 싶은 엄마 마음에 중간에 차를 내왔다.^^ 덕분에 예정보다 조금은 더 계셨다. 아직은 얼굴과 이름을 다 익히기도 짧은 기간이었고 아이를 자세하게 파악할 시간이 없었기에, 가정방문으로 아이와 환경도 살펴보고 이후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자고 하셨다. 중3이니만치 진로를 생각하며 지도할 것이며 아이들이 공부만 최고로 삼지 않고, 함께 어울리는 따뜻한 학급이 되도록 하시겠다며 - 현재, 두어명이 혼자인 것 같은데 ㅇㅇ과 ㅁㅁ 에게도 다가가 말을 붙여주는 성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하셨다. 음, 지당하신 말씀이다. 우리 아들이 선생님과 함께 할 1년의 그림이 떠올라 마음이 따뜻한 오후였다.

그리고, 국어선생님답게 거실에 가득 들어찬 책을 보시며, 학급문고 조성할 때 도와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고등학교에서 당신의 책을 가져다 학급문고를 운영했는데, 녀석들이 자물통을 자르고 책을 가져갔다며 읽고 싶어 그랬으면 주었을텐데, 중고로 팔아치워 돈을 만들었다며 마음 아파하셨다. 음, 나도 도서관을 꿈꾸는 사람이라 한 두권 외에 많이 지원할 수는 없는데... 그래도 부탁받으면 거절하지 못하는 나의 성격상, 돌아올 기약이 없으니 내 책은 못 드리고 몇 권 사서라도 드려야할 것 같다.^^ 벌써 마음에선 리스트를 추리고 있다.

며칠 전, 교감샘께 학운위에 참여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홈스테이로 여러차례 전화를 나누다보니 어느 정도 친밀함과 이해가 쌓여 부탁한 것인데, 실은 많이 망설여진다. 초등학교 12년 학부모에 네 차례나 학운위에 참여했다. 첫해야 뭐가 뭔지 모르니 지켜보는 입장이었고, 나름대로 학교생활에 참여하며 얻은 것은 '구두약속'은 절대 실행이 안된다는 것과, 학운위의 역할은 거수기계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게다가 선거가 있는 해에는 정치적인 이권을 쫒는 무리들이 대거 등장하는지라, 이들로부터 학교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탈락시키기 위한 후보자 전체연설을 거쳐 당당히 금메달로 당선된 전적도 두번이나 있다. 이땐 그야말로 애정과 열정이 넘치는 시기였으니 가능했다.

문제는, 올해도 곧 국회의원 선거가 있으니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방선거나 교육감 교육위원 선거때 두 번 했는데, 집 앞까지 굴비나 봉투를 들고 온 지인을 돌려보내는 일이 만만치 않게 피곤했었다. 그 후, 선거가 있는 해에는 아예 학운위 참여를 자제했다. 또 학운위 참여도 내 스스로 결정했었지 학교나 누구의 부탁으로 했던 적은 없다. 아마 교감샘도 내가 학운위에서 어떻게 활동하는지 아셨다면, 절대 나한테 참여를 요청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아들의 담임샘은 마음이 결정되어 참여한다면 충분히 도와주시겠다며, 아이들을 위해 학부모의 적극적인 참여가 좋다 하셨다. 올해는 그냥 조용히 살면서 알라딘 놀이나 즐기려고 했는데... 학운위 할까 말까 갈등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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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3-11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세요. 순오기님같은 분이 학운위에 많이 참여해주셔야 학교도 좀 나아지죠. ㅎㅎ

순오기 2008-03-11 01:07   좋아요 0 | URL
흐흐~ 저도 예전에 나같은 사람이 해야한다고 두팔 걷어부쳤는데, 이젠 귀찮기도 하고... 나, 확실히 늙어가나 봐요!ㅠㅠ

웽스북스 2008-03-11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알라딘도 순오기님이 필요해요

웽스북스 2008-03-11 02:05   좋아요 0 | URL
아 나 너무 자아를 알라딘과 동일시하고 있었군요
알라딘 마을도 필요해요 ㅎㅎ

그리고 알라딘도 필요할걸요?
순오기님이 소개해주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저 아부 제왕이에요 모르셨구나!

순오기 2008-03-11 09:00   좋아요 0 | URL
흐흐~ 우린 항상 본질과 어긋난 댓글놀이를 즐기고 있어요.^^
알라딘보다 내가 더 알라딘을 필요로 하겠죠.
우~ 난 알라딘에 아부하는거야?ㅋㅋ아부의 제왕 2 ^^

웬디양님, 나도 알라딘과 나를 동일시하며 살아요.

조선인 2008-03-11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바람돌이님에게 한 표.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엉엉.

순오기 2008-03-11 09:01   좋아요 0 | URL
ㅋㅋ 조선인님, 한표는 저에게 주셔야죠~ㅎㅎㅎ

조선인 2008-03-12 08:12   좋아요 0 | URL
아니죠. 바람돌이님처럼 님의 출마를 밀겠다는 거죠. ㅋㄷ

순오기 2008-03-12 10:04   좋아요 0 | URL
후후~ 그 말씀인지는 아는데 추천 한표 주시라는 말이었어요.^^
조선인님이 밀어주신다니, 내일 후보 등록해야겠군요. 불끈~~~

마노아 2008-03-11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옷! 가정방문도 하는군요! 놀라운 풍경에 감탄했어요. 담임쌤 멋진 듯!
학급문고 책은 알라딘 중고샵을 이용해 보세요^^ㅎㅎㅎ
학운위 부탁하신 교감샘이 중학교 교감샘이셔요? 초등학교 교감샘일 거라 내내 생각했거든요.
순오기님의 어느 정도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라 막 부추기기 미안해요.
그래도 학교에 이런 멋진 학부형이 필요한 건 사실이라고, 막 가재는 게편을 들고 있어요^^;;;

순오기 2008-03-11 10:39   좋아요 0 | URL
우리 애들 중학교는 누가 뭐래도 줄기차게 학년초에 꼭 가정방문 합니다.
민주때는 처음 맞는 가정방문이라 거실장도 사고, 막~ 그랬어요.^^
이제는 초연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선생님을 맞아 들인답니다.
알라딘 중고샵, 그런잖아도 어제 들어가 보니 판매자가 다르면 배송료를 번번히 물어야 되는 것 같던데...배보다 배꼽이 큰...ㅠㅠ
초등학교에선 제가 '지역위원'으로 또 나올까 쬐금 긴장하지 않을까요?ㅎㅎ
'가재는 게편'이라는 님의 말이 너무 좋아요!^^

순오기 2008-03-12 10:05   좋아요 0 | URL
중고샵에서 내 책 포함해서 14권인가 구입했어요. 지금...^^

무스탕 2008-03-11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요즘도 가정방문이 있네요?! 아직 학부형 7년차인 무스탕에게는 낯선 이야기..
저희 동네엔 정말 열과 성을 다해 학교일을 내일같이 치뤄내는 엄마들이 많아서 전 그저 따르기만 한다지요..
순오기님처럼 옳게 땡겨주시는분들, 정말 필요하세요!!

순오기 2008-03-11 10:42   좋아요 0 | URL
가정방문은 선생님의 수고가 따르지만 참 필요하다 싶어요. 아이들 환경을 담임샘이 알아야 긍정적인 지도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너무 좋잖아요! 여기는 환경이 열악한 '복지우선투자학교'인데, 그 전에도 항상 가정방문 했어요. 부모님이 거절하거나 시간이 안 맞으면 전화로도 대신하니까,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지요. 저도 작년엔 시간이 안 맞아서 전화로 대신했어요. 그래도 담임샘과 진지한 대화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학운위는 13일까지 결정하면 되니까...

2008-03-11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11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08-03-1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살청님의 의견에 백표던집니다!!


순오기 2008-03-12 10:06   좋아요 0 | URL
어머나~ 방금 님 서재에 일당백이란 댓글 달고 왔는데, 우리가 서로 엇갈린 방문에 댓글로 통했군요.^^ 역시 알라딘은 소통의 공간이야요!!

BRINY 2008-03-12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순오기님같은 경험많으신 멋진 학부형님이 활약해주시는데 한표요~

순오기 2008-03-12 18: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러잖아도 오늘 아들편에 서류를 보냈다고 전화하셔서 더 사양하긴 어렵네요. 내일 등록하려고요, 일을 맡으면 열심히~~~~^^

세실 2008-03-18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운위 저두 고민입니다. 보림이랑 규환이가 서류 1장씩 가져왔습니다. 이번에 2년 임기가 끝나서 많이 뽑아야 한다고 임원 맡은 애덜은 다 보냈나 봅니다. 에휴...이러다 저 직장에서 짤리면 어쩌죠? 아웅...고민..고민...
제가 순오기님이라면 당연히 하죵~~

순오기 2008-03-18 23:02   좋아요 0 | URL
학운위는 임기가 1년인데요?
제가 등록한 중학교는 정족수 등록이라 내일 총회에서 무투표로 승인될 예정인데, 저는 방과후수업이라 총회 참석도 못합니다. 그래도 학운위는 오전에 회의한다니 회의는 참석이 가능해서 결정했어요.
직장다니면서 하기는 좀 어려울 듯해요. 일년에 아마 7~8회 정도 모이게 될텐데...
 
지각대장 존 비룡소의 그림동화 6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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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지각을 했거나 숙제를 안 해서 반성문을 써본 부모라면 이 책을 보는 맘이 편치 않을 것이다. 앞뒤로 빼곡히 채워진 반성문을 보며 웃어야 할지...참 난감하다. 다만 요즘엔 저렇게 하는 선생님이 안 계시겠지, 믿어볼 뿐이다.

이름도 길고 이국적인 '존 패트릭 노먼 맥허너시는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섰습니다.'로 시작되는 지각대장 존의 이야기는 황당무계한 지각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친절한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역설로 들린다. 하긴 어떤 선생님이라도 존의 말을 그대로 믿기는 힘들 것이다. 존이 세번이나 지각한 이유는

"하수구에서 악어가 나와 책가방을 덥석 물었고, 덤불에서 사자 한마리가 나와 바지를 물어뜯으며, 다리를 건너는데 커다란 파도가 밀려와 덮쳐서"

늦었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길길이 뛰면서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300번 쓰거나, 400번 외치고, 500번 쓰라는 벌을 내렸으니... 아, 존은 늦게까지 남아 반성문을 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존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면,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존의 마음을 헤아려봐야 할 것이고, 존의 말이 사실이라면 등교길에 그런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는 게 선생님의 본분일 것이다. 하지만, 존의 선생님은 길길이 뛰면서 그런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억지 반성만 하게 하셨다.

자~ 이 책이 이렇게 끝났다면? 그 유명한 '존 버닝햄'의 이름에 걸맞지 않으리라. 우리의 이야기꾼 존 버닝햄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마음을 아신다. ㅎㅎ 절묘한 반전, 통쾌한 복수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자~ 털북숭이 고릴라한테 잡혀 천장에 매달린 선생님을, 존은 어떻게 했을까?"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쓰러진다. "야호~ 선생님이 당했다!"  마치 '존 패트릭 노먼 맥허너시'가 된 것처럼 통쾌한 복수의 감정을 느낀다. 바로, 존 버닝햄이 꼬집은 교육의 문제점을 느끼며, 선생님과 부모들은 아이의 말에 귀기울여야지 다짐도 하게 된다. 이야기도 재미있고 그림도 간결하지만 눈을 확 끌어당기는 여유있는 편집에 읽기에도 부담없어 별점을 후하게 준다. 이 책이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분명 있다.^^

이 책을 읽고 1,2학년은 '뒷이야기 이어쓰기'를 했더니,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을 죽게 하거나 사고가 나게 하는 등, 선생님에 대한 유감을 여과없이 드러내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주인공을 죽게 하거나 잔인한 이야기로 만들지 말고, 재미있게 혹은 감동적인 이야기로 꾸미도록 주문하게 되었다.^^  한 차원 높은 3,4학년은 '존의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면, 혹은 진실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논술쓰기를 하니, 진실이라고 생각한 아이들은 등교길의 안전을 위해 톡톡 튀는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거짓이라고 생각한 아이들은 존과 선생님께 예리한 비판을 가했다. 그래서 이 책은 결코 유치원생이나 1학년 아이들만의 책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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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3-10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며칠 전에 이 책 다시 읽었어요. 다시 봐도 너무 재밌고 메시지가 강렬한 존 버닝햄이에요! 그의 명성이 결코 거저 쌓인 게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순오기 2008-03-10 23:37   좋아요 0 | URL
리뷰 쓸려고 학교도서관에서 빌려다 놓고 계속 딴짓이라 연체됐어요.ㅠㅠ
중고책이 나왔길래 살려고 했더니 택배비 포함하면 새책보다 더 비싸더라니까요.
존 버닝햄, 참 멋진 할아버지죠?^^
 

  아침 햇살이 눈부셔 창을 열어젖힌다. 이런 날은 봄나물을 뜯으러 가야는데......  쑥이라도 뜯을 수 있던 산자락 논자락은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휭~ 한차례 나갔다 오면 반찬거리 소쿠리에 가득  담아오던 그 시절이 그. 립. 다.

  이 아침은 봄나물을 뜯으러 가는 대신 어머니 독서모임에 가면서, 내게 시와 시조를 가르쳐 주신 교수님의 시를 올린다. 해남 출신으로 광주여대에 있다가 몇년 전 경기대로 가셨지만, 그분은 해마다 '해남에서 온 편지'로 내게 봄소식을 전한다.

   
 

 해남에서 온 편지       -이지엽-

  아홉배미 길 질컥질컥해서
  오늘도 삭신 꾹꾹 쑤신다


  아가 서울 가는 인편에 쌀 쪼간 부친다. 비민하것냐만 그래도 잘 챙겨묵거라 아이엠 에픈가 뭔가가 징허긴 징헌갑다 느그 오래비도 존화로만 기별 딸랑하고 지난 설에도 안와브럿다 애비가 알믄 배락을 칠 것인디 그 냥반 까무잡잡하던 낯짝도 인자는 가뭇가뭇하다 나도 얼릉 따라 나서야 것는디 모진 것이 목숨이라 이도저도 못하고 그러냐안.

  쑥 한 바구리 캐와 따듬다 말고 쏘주 한 잔 혔다 지랄놈의 농사는 지먼 뭣 하냐 그래도 자석들한테 팥이랑 동부, 깨, 콩 고추 보내는 재미였는디 너할코 종신서원이라니... 그것은 하느님하고 갤혼하는 것이라는디... 더 살기 팍팍해서 어째야 쓸란가 모르것다 너는 이 에미더러 보고 자퍼도 꾹 전디라고 했는디 달구 똥마냥 니 생각 끈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이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야

 
   

*시인이 있던 학교, 제자 중에 수녀가 한 사람 있었다. 몇 해 전 남도 답사길에 학생 몇이랑 그 수녀의 고향집을 들르게 되었는데 다 제금나고 노모 한 분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생전에 남편이 꽃과 나무를 좋아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꽃들이 혼자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흐드러져 있었다.

이지엽 시인은 '해남에서 온 편지'로 1998년 '한국 시조 작품상'과 1999년 제18회 '중앙시조대상'을 받았다. 2007년 '북으로 가는 길'이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고, 우리의 시조 보급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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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8-03-10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말은 정말 종다래끼와 호미를 챙겨서 들판으로 나가 냉이 등을 뜯어도 될 만큼 봄기운이 완연했습니다. 이번주까지 날씨가 좋다고 하니 이번 주말에는 냉이와 쑥까지 뜯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순오기 2008-03-12 10:10   좋아요 0 | URL
아~ 종다래끼, 반가운 이름이에요.^^
몇년 전만 해도 아이들 데리고 쑥 뜯으러 나갔는데, 이젠 아파트현장으로 바뀌어서. 요새 아이들은 이런 맛을 모르니 참 짠해요.ㅠㅠ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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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우리 부모의 셋째딸이며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둔 엄마다. 내 큰딸은 책 속의 위녕이처럼 교대를 갔고, 아들은 둥빈보다 서너 살 많은 중3이다. 막내는 제제보다 훨씬 커서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우리 가정이 책 속의 가정처럼 이혼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했던 경험이 두번이나 있었다. 첫번째는 큰딸이 세 살 때, 두번째는 큰딸이 중3, 아들이 초등5학년, 막내가 초등3학년 때였다. 이때는 정말 이혼서류도 다 준비했고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건 우리는 이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살면서 이혼을 생각하지 않은 부부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정말 인내심이 없다면 홧김에라도 이혼할 수 있는 게 부부다. 내 인생만 생각한다면 이혼해서 생길 나쁜 것, 좋은 것 다 책임지고 살 수 있지만, "신이 내 행실을 적은 치부책을 펼치면서, 너는 아무래도 지옥으로 가야 하겠지? 물으면, 아니에요, 이건 이래서 그랬고, 저건 걔가 그래서 그랬던 거에요.......하면서 박박 우기려고 했는데, 신이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그럼 위녕은? 하면 엄마는 넵! 하고 바로 지옥으로 내려갈 거 같다" 고, 책 속의 위녕엄마처럼 나도 말할 것이다. 자녀에게 부모의 이혼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죄악이거나 상처일 수 있다. 나도 아이를 셋이나 두고 이혼한다는 게 미친 짓 같아서 멈추었지만, 아이들에게 '즐거운 나의집'이 되지 못한 상처는 끝까지 남을 것이다. 이제는 그 아픔의 시절이 지나 그런대로 살만하다.  어른들 말씀처럼 인내하면 또 좋은 시절이 오는 것이겠거니 믿는다.

  이 책을 읽은 2월 24일은 딸의 대학 입학을 마치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느라 잠시 동생집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신경 쓸 일이 많아서였는지 계속되는 두통에 눈이 빠질 것 같아 쇼핑도 할 수 없어 두통약을 먹고 쉬는 중에 읽었다. 그 와중에 주체못할 눈물이 쏟아진 건 위녕에게 외할머니가 하신 말씀 때문이었다.

   
  네 에미 원망하면 안 된다. 네 에미처럼 노력했던 사람은 없어. 할머니도 그만큼 노력하면서 살지는 않았다...... 너를 떠나보내고 난 후, 네 에미가 몹쓸 일을 겪을 때마다 외할아버지하고 나하고 밤새 번갈아 네 에미 방 앞을 지켰다.  
   

  위녕은, 밤새 방문 앞에 서있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숨죽임 때문에 엄마가 살았다고 느낀다. 부모의 사랑은 바로 이런 것, 어떤 고통과 좌절속에서도 자식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지켜내는 것처럼 신성한 일이 있을까? 우리가 이혼의 기로에 있을 때, 며느리의 방자함이 못마땅했을 시어머님도 내게 와선 아무런 비난도 하지 않고 가만히 손을 잡아 주셨고, 사위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넘쳤을 내 친정엄마도 전화로 "열심히 살라!"는 말씀만으로 침묵하셨기에 우리 부부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거라 생각된다. 부모의 자식 사랑은 세상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런 부모의 사랑으로 우리는 또 제 자식을 그렇게 사랑하면서 살아나간다.

  가족은 세상이 모두 비난하고 손가락질할 때도 무조건 내편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힘인가! "아빠는 내 딸이 세번이나 이혼한 여자가 되는 건 싫다...하지만, 네가 불행한 건 더 싫어. 건강만 챙겨라. 앞만 보고 가라. 네가 최선을 다했다는 건 우리가 다 안다. 그러니 주눅들지 말고 당당해라.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야. 지금은 오직 너와 아이들만 생각해라." 라고 말했던 외할아버지의 응원은 위녕엄마가 세 아이들과 살아가는데 힘을 실어주셨다. 위녕이 새엄마에게 맺힌 맘을 전할때 잘못인 줄 알면서도, 위녕엄마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전적으로 동지가 되어준다. 이렇게 서로 믿고 의지하며, 힘이 되고 내편이 되어주는 유일한 사람들이 가족이다.

  이 책은 작가의 체험을 소설화한 성이 다른 세 아이와 살아가는 특별한 가족이야기다. 세번의 사랑과 상처 그로 인해 생겨나는 갈등과 사랑, 감정폭발이 열아홉 살 위녕의 시선으로 잡아 낸 톡톡 튀는 문장으로 다가온다. 우리네 삶과 별다를 것 없는 위녕가족의 일상이 섬세하게 그려지며 감동으로 눈시울을 젖게 한다. 그러면서도 유쾌 상큼한 대사와, 치열한 설전에서 오가는 대화에 우리도 저런 말을 했었지 공감할 수 있다. 자신의 삶과 자녀 문제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이혼을 했든 안했든 자기만의 무게를 감당하는 그 누구의 삶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상처를 감싸고 보듬어 안으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위녕엄마와, 오늘도 한부모 가정에서 버거운 삶을 살아갈 이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을 읽고 큰딸은 책과 비슷한 상황인 친구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 했다. 이 책은 이렇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읽으면, 불끈 힘이 솟아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힘이 들어도 행복을 찾아가는 인생역정을 잘 이겨내자고...

  위녕엄마는 아이들과 살아가면서 "밥을 먹는 일은 신성하다" 고 강조한다. 밥을 먹는 일이나 밥을 버는 일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가장 신성한 일이다. 오늘도 난 봄나물에 쓱쓱 비벼 신성한 일을 수행하면서, 기숙사에 있는 큰딸도 신성한 이 일을 게을리하지 않기를 거듭 당부한다. 그리고, 넌 찬란한 청춘이니까 미모도 꼭 챙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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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8-03-10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공지영의 소설은 읽지 못했지만
리뷰에 섞여있는 순오기님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네요.

순오기 2008-03-10 08:27   좋아요 0 | URL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일거라는 생각에...부끄러운 내 얘기도 풀어봅니다. 화창한 봄날, 오늘도 열심히 삽시다!^^

마노아 2008-03-10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다가 코끝이 찡해졌어요. 작가의 마음도, 리뷰를 쓴 이의 마음도 진솔되게 전해져서 그런가봐요. 저도 이 책 읽을래요. 나중에요~

순오기 2008-03-10 21:27   좋아요 0 | URL
눈물이 많은 난, 이 책 읽으며 여러번 울었어요. 그러면서도 곧 유쾌하게 깔깔거릴 수 있어요. 절망의 순간에도 '미모는 꼭 챙겨야 해'라고 말하는 가족이 있어 삶을 지탱할 수 있었다 싶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