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창비시선 219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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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뜬한 잠'으로 만난 박성우 시인이 2002년에 낸 첫시집이다. 대학 때 매주 4~5편의 시를 써서 교수님께 내밀었다는 박성우, 교수님은 한번도 시를 갖고 야단치지 않아서 울었다는 박성우는 시인이 되었다. 이 시집 끝에 실린 강연호교수의 해설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열심히 썼으니 시인이 되었고, 좋은 시를 쓰게 되었음이 이해되었다. 

예전에 사회교육원 시창작반을 기웃거릴 때, 매주 시를 써오라고 했지만 나하고 옆집 언니는 한 번도 써가지 않았다. 다른 분들이 써오는 시를 들으며 잘썼다, 못썼다 평가만 했다. 하지만 그때 사춘기 소녀의 낙서같은 시라도 열심히 써오던 분들은 지역 신문 공모에 당선돼 시인이란 이름표를 붙였고, 옆집 언니랑 나는 여전히 시 한 편도 쓰지 않으며 시집만 사들이는 독자로 머물렀다. 

1971년 전북 정읍 출생, 신경숙 작가와 같은 정읍 사람이다. 사람은 결핍으로 단단해지기도 하지만 시인은 시적 감성을 훈련받기도 한다. 박성우 시에는 그의 가족사나 생활이 고스란이 드러나 그의 시세계를 가늠하게 된다. 처절하고 절박한 현실, 경제적 궁핍이 불러왔을 삶의 무게가 드러나 짠한 마음이 절로 든다. 하지만 그러한 결핍이 그를 시인으로 키웠구나 생각되었다.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성되었다는 '거미'를 비롯한 시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 그림을 그리듯 섬세한 묘사와 시인의 진술에 저절로 공감된다. 쉽게 이해되지만 담고 있는 이야기는 무거워서 마음이 편치 않아도 시인의 인간적인 면모에 반하게 된다.  

거미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갯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유서의 첫 문장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사흘 만에 유령거미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조장 뜰에 남편을 묻겠다던 그 사내의 아내는
일주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렀고
어디론가 떠났다 하는데 소문만 무성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 
                                 <8~9쪽 '거미' 전문>

감꽃 

옹알종알 붙은 감꽃들 좀 봐라
니가 태어난 기념으로 이 감나무를 심었단다
그새, 가을이 기다려지지 않니?
저도 그래요, 아빠 

뭰, 약주를 하셨어요? 아버지
비켜라 이놈아, 너 같은 자식 둔 적 없다!
담장 위로 톱질당한 감나무, 이파리엔 햇살이
파리떼처럼 덕지덕지 붙어 흔들렸다
몸을 베인 뒤에야 제 나이 드러낸 감나무
나이를 또박또박 세고 또 세어도
더 이상의 열매는 맺을 수 없었다 

아버지 안에서
나는 그렇게 베어졌다 

후략
                <56쪽 '감꽃' 부분>
  

찜통 

내가 조교로 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는
청소를 하시다가 사고로
오른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셨다 

넘실대는 요강 들고 옆집 할머니 오신다
화기 뺄 땐 오줌을 끓여
사나흘 푹 담그는 것이 제일이란다
이틀 전에 깁스를 푸신 어머니,
할머니께 보리차 한통 내미신다 

중략 

찜통더위는 언제쯤이나 꺾일런지
찜통에 오줌 싸는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는 홀어머니
소일거리 삼아 물을 들이키신다 

막둥아, 맥주 한잔 헐텨?
다음주까정 핵교 청소일 못 나가면 모가지라는
디 
                     <84~85쪽 '찜통' 부분> 

 

콩나물 

너만 성질 있냐?
나도 대가리부터 밀어올린다
           

참으로 비통할 가족사와 없는자들이 감당했던 현대사 산업발전의 역꾼이었던 미싱공이 등장한다.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인지 보조사원 박성우도 등장한다. 흙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여전히 몸으로 책을 읽히시는 어머니께 바친다는 시인의 말이 그 어떤 시보다 애절하게 다가왔다. 

*인용된 시의 저작권은 저작권자와 출판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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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작가와의 만남 현장 스케치

 


2009-08-07   이주의 다음블로거뉴스 베스트특종   +20,000   0   20,000
 

다음 블로거뉴스 베스트 특종은 처음이다. 적립금 2만원~~~ ^^ 
사실은 후기에 당첨되기를 바랬는데, 블로거 특종 됐으니 후기는 욕심을 버려야할까? 한 사람한테 두 가지 다 밀어주진 않을지도... 후기는 적립금이 3만원이라 교통비에 보탬이 되겠다 싶었는데 말이지.^^  어차피 2만원이든 3만원이든 알라딘에서 책 사는데 다 들어가지만.^^ 

알라딘 개편되고 '이주의 마이리뷰, 영화리뷰, TTB리뷰'는 적립금 1만원으로 팍 줄어버렸네.
다음 블로거 뉴스 특종은 그대로 적립금 5천원, 베스트 특종은 2만원.... 다행이다. 

이주의 마이리뷰~~ 적립금 1만원은 알라딘 오류였다는 직원의 댓글이 달렸네요.^^ 순오기의 투철한 신고정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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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희망꿈 2009-08-0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전 적립금은 꿈도 못꾸는 요즘이랍니다.^^

순오기 2009-08-08 14:33   좋아요 0 | URL
자기가 책사고 받는 적립금 있잖아요.ㅋㅋ

행복희망꿈 2009-08-12 15:43   좋아요 0 | URL
그건 공짜같지 않아서 싫어요. 어쩜 당연하게 느껴지구요.^^

직원 2009-08-08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순오기님 알라딘 오류이고요, 이주의 마이리뷰는 상금 5만원 예전처럼 운영됩니다.

순오기 2009-08-08 14:33   좋아요 0 | URL
이주의 마이리뷰만 5만원이고, 영화리뷰와 TTB리뷰는 1만원이라는 얘긴가요?

무스탕 2009-08-08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페이퍼가 뽑히는건 당연하지요.
적립금이란건 그저 열심히 책 사서 쌓이는 적립금이 다에요..;;;

순오기 2009-08-08 14:34   좋아요 0 | URL
ㅋㅋ 내돈주고 내책사고 다시 적립금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마노아 2009-08-0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기 당첨도 같이 되면 좋겠는데 그건 두고봐야겠네요.^^
마일리지는 본인이 산 책에만 붙으니까 5천원 채우려면 책도 부지런히 사야 해요.^^;;;

2009-08-09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9-08-08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새 껀수 없어서 책 팔면서 살아요 ㅋㅋ 순오기 님 왕부럽습니다~~

순오기 2009-08-09 11:15   좋아요 0 | URL
하하~ 승주나무님이 베스트특종 잘 먹었는데~ 요즘 뜸한가요?ㅋㅋ
책 팔면서 산다니요? 무슨 책을 어디서 파는지... 설마 중고샵에 판다는 얘긴 아니겠죠?

꿈꾸는섬 2009-08-0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후기 당첨도 함께 되시길 바랄게요.^^ 교통비는 뽑아할텐데요.ㅎㅎ

순오기 2009-08-09 11:15   좋아요 0 | URL
교통비 일부만 벌충해도 감사하지요~ 욕심은 금물이에요.ㅋㅋ

이매지 2009-08-08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저는 나의 계정에는 '베스트특종'이라고 되어 있고 5천원 들어와 있어서
은근 2만원이긴 바랬는데 아쉬워요 ㅎㅎㅎㅎ

그나저나 저 위에 직원분의 댓글은 잘못인듯.
지기님의 서재에서 변경된다는 글을 봤는데;;;
http://blog.aladdin.co.kr/zigi/2996740
마이리뷰, 영화리뷰, 포토리뷰, TTB 리뷰 다 만원이예요.
대신 뭐 이전보다 덜 뽑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좀 아쉽네요.

순오기 2009-08-09 11:16   좋아요 0 | URL
여기 들어가서 봤더니 정말 일만원으로 돼 있던데
직원이 남긴 댓글을 보면 오류라는데 아직 수정이 안된 건지?
하여간 덕분에 자세히 보게 돼서 고마워요!^^

바람돌이 2009-08-09 0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저런거 언제적 받아봤는지 기억도 안나요. ㅎㅎ

2009-08-09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월의바람 2009-08-09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글을 잘 쓰섰더라구요. 사진도 많고 생생했어요. 축하드려요

순오기 2009-08-09 11:20   좋아요 0 | URL
글을 잘 쓴 건 아닌데 현장 분위기를 잘 전달했기에 뽑아준듯...^^

송도둘리 2009-08-10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순오기님이 베스트특종을 먹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 한비야씨 직접보고 너무 좋았겠어요..부럽습니다!

순오기 2009-08-10 18:48   좋아요 0 | URL
하하~ 지난 주엔 님이 한비야 책 '그건, 사랑이었네'로 베스트특종 먹었지요.^^

같은하늘 2009-08-1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못 들어왔더니 이런 좋은 일이~~~
축하드려요... 교통비 조금 충당 되셨겠네요...^^
저도 거기 있었지만 현장을 생동감 있게 너무 잘 얘기해 주셨어요...

순오기 2009-08-15 04:30   좋아요 0 | URL
교통비 충당~ ㅋㅋㅋ
 
은서야, 겁내지 마! 네버랜드 꾸러기 문고 30
황선미 지음, 조민경 그림 / 시공주니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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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3월, 가슴에 콧수건을 달고 입학했던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언니가 3학년이라 당연히 언니 손을 잡고 학교에 다녔다. 당시는 한 마을 아이들끼리 같은 반을 했기에 하굣길은 삼삼오오 떼지어 돌아왔다. 쭉 뻗은 신작로를 지나 구불구불 마을 길에 들어서면, 나무 아래서 공기놀이와 고무줄놀이를 하기도 했다. 겨울엔 얼어붙은 논바닥에서 얼음도 탔고, 장마철엔 불어난 냇물에서 송사리를 잡는다고 옷을 버리기도 했다.

추억을 되돌려 봐도 등하교길이 항상 즐거운 건 아니었으니, 우리 동네로 들어서려면 거쳐야 하는 '지랄쟁이네'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을 지나려면 손바닥에 땀이 배도록 긴장했다. 그집의 아들녀석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막대기에 죽은 쥐나 뱀을 꿰어 쫒아왔고, 똥을 퍼서 뿌리며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내 위 언니 오빠도 그 곳을 지날 때마다 녀석들이 안보이면 후닥닥 달렸다고 했다. 이제는 나이가  50도 훨씬 넘었지만, 동문회에서 만나면 지금도 짖궃고 못됐다고 언니가 말해줬다. 고향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지랄쟁이네' 얘기를 하는 걸 보면, 근방에선 악동으로 소문이 자자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학교길이 겁나던 '지랄쟁이네'가 있었기에, 혼자서 학교 가는 걸 겁내는 은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 


초등학교 입학한 다음날부터 혼자서 학교를 가야 하는 은서는 겁나는 게 너무 많다. 은행나무집 멍멍이도 황씨아저씨네 황소와 꼬꼬닭 때문에 학교에 갈 수가 없다. 게다가 기와집의 바보 아저씨는 들창으로 지켜보다가 종이새를 날리는데 그건 더 겁난다. 어린시절 별 것 아닌 거에 두려움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다. 이제는 배시시 미소짓지만 그땐 어떤 것보다도 두려웠단 말이지.^^  은서가 무엇을 겁냈는지 친절하게 약도를 그려넣은 목차로 은서의 학교길을 알려준다. 

 


  
황소와 꼬다기에 겁을 내는 은서는, 그 길을 안 지나려고 채소밭을 가로질러도 가보지만  바보 아저씨의 들창문은 피할 수가 없다. 겁을 내던 은서는 어느 날 멋진 해결책을 찾아낸다.

 


은서는 친구 상민이의 로봇가면과 요술지팡이를 200원에 사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황소는 외양간에 들어가 있어 폼잡지 못하고, 깡패 꼬다기(암탉)만 혼내준다. 겁이 난 꼬다기는 은행나무집 멍멍이가 있는 대문으로 뛰어 들었다가 변을 당했다. 은서는 자기 때문에 암탉이 죽었다는 죄의식에 혹독하게 앓느라 사흘이나 결석했다.  

다음 날 학교가는 길, 어미 잃은 병아리에게 미안해 보리쌀을 가져다 주고 앞으로 잘 돌봐주겠다고 다짐하는 은서가 사랑스럽다. 

  
방 벽지를 뜯어 종이학을 접어 날렸던 바보  아저씨가 장가를 가게 되었다는 결말은 작가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땐 마을마다 모자라는 사람이 하나쯤은 꼭 있었고, 그런 이들은 보통 골방 신세을 면치 못했으니 안타까운 풍경이었다. 부모가 먼저 공감하고 아이들에게 엄마의 어린시절과 더불어 들려주면 좋을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길에 무엇이 겁나는지도 알아보고, 어른이 보기엔 하찮은 것에 겁내는 아이 마음을 인정하고 위로한다. 황선미 작가의 경험이 배어있는 듯, 아이들 마음을 잘 짚어낸 따뜻한 동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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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9-08-0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선미 작가 책이군요. 좋아하는 작가^*^
보림이는 강아지를 그렇게 무서워 했어요. 집에 키우자고 하면서도 어찌나 무서워 하던지...
은서가 무장을 하고 닭 혼내주는 장면 상상하느라 웃다가 사흘동안 앓았다는 그 맘 생각하니 마음이 짠 했습니다.

순오기 2009-08-08 10:22   좋아요 0 | URL
우리애들도 강아지를 무서워했는데 키우니까 안 무서워하더라고요.
하지만 돌보는 게 힘들어서...
엄청나게 꼬다기를 혼냈는데 그만~~ ㅜㅜ

같은하늘 2009-08-07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 시절이 그려지는 책인걸요~~^^

순오기 2009-08-08 10:23   좋아요 0 | URL
님도 학교길에 무서운 게 있었나요?^^

꿈꾸는섬 2009-08-08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 강이지 엄청 좋아하면서도 막상 실물 앞에선 무서워서 꼼짝을 못합니다. 아이들의 서정이 담겨 있는 예쁜 책이네요.

순오기 2009-08-08 10:23   좋아요 0 | URL
무서워하지만 키우니까 무섬을 안 타더라고요.
예쁘죠~
 
겨울밤 0시 5분
황동규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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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0시 5분'이란 제목에 걸맞게, 1부에는 겨울에 읽어야 제 맛이 날 시들이 포진했는데 한여름 땡볕에 읽었다. 그래서일까 감정이입이 안되고 시가 겉도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익숙지 않은 낱말들이 튀어나와 당황스럽기도 했고... 어쨋든 내게는 쉽게 쏘옥 쏙 들어오는 시가 별로 없었다. 그래도 몇 편은 확 들어와서 다행이었지만, 시집 말미에 정끝별 시인이 쓴 해설을 읽으니 조금 이해가 됐다. 그래서 다시 찬찬히 읽어봤더니 마음에 드는 시들이 더 늘어났다.  

잠깐 동안  

잠깐!
삶이 잠깐 동안이라는 말이 위안을 준다.
잠깐이 몇 섬광(閃光)인가?
(57쪽 전문)

이 시집에서 제일 짧고 쉽게 이해되는 시였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시란, 읽는 순간 화악~ 이해되는 시다. 읽는이가 느끼는 대로 이해하면 되지, 굳이 해설을 덧붙여야 알 수 있는 시라면 독자와 친해지긴 어렵다. 어릴 때는 시간이 안 지나서 발을 동동 구르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어른이 되고 보니 세월이 너무 빨라서 뭔가 이뤄 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먹었다는 자괴감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 시처럼 삶이 잠깐 동안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로 받을 때가 있다. 이런 삶이 한 생전 계속된다면 살아내기가 버거울 거 같다. 즐거움도 고통도 잠깐이기에 견디거나 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려니 생각한다.   

삶을 살아낸다는 건 

다 왔다.
하늘이 자잔히 잿빛으로 바뀌기 시작한
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
마지막 잎들이 지고 있다. 허투루루.
바람이 자나가다 말고 투덜거린다.
엘리베이터 같이 쓰는 이웃이
걸음 멈추고 같이 투덜대다 말고
인사를 한다.
조그만 인사. 서로가 살갑다. 
(16쪽 부분) 

사는 일이란 이렇게 아는 사람들이 인사를 나누며 살가운 정을 나누는 것이다. 같이 투덜거려주는 이웃,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이웃이 있어 사는 일이 즐거운 거다. 예전 농경사회에선 공동의 생활이 많았지만 현대화된 사회에선 개인주의가 팽배해 알면서도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사는 이웃이 많다. 시인의 발견처럼 걸음 멈추고 인사를 나누는 살가운 이웃들과 열심히 살아가자.   

 

헛헛한 웃음 

요새 뭘 하지?
뭘 하다니?

(중략)

뭘 하고 있지?
뭘 하든 않든 아침저녁으로
하늘과 땅이 서로 들고 난 곳을 새로 맞춰보는
소나무들이 솔가리를 촘촘히 빗질해 내려보내는
가을이 오고 있겠지.
그래 그 가을의 문턱에서 지금 뭘 해?
여름내 속으로 미워한 자 하나
내처 미워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지.
그 할까 말까가 바로 피 말리는 일.
아예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 미워하든가
마음에서 슬쩍 지워버리는 거야.
아니면 어느샌가 바위의 따스함이 그리워지는 저녁.
바위의 피부를 간질이는가벼운 햇볕.
볕이 춤춰. 하면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가만히 춤추다가
생판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 한번 헛헛하게 웃든가?
 
(112~113쪽 부분) 

두번째 읽으니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시들이 많아서 시읽는 재미가 더했다. 황동규 시인은 소설가 황순원의 아드님 아니던가? 마종기 시인은 동화작가 마해송의 아드님이고. 부전자전이라고 다른 영역도 그렇겠지만 문학도 대물림이 많다. 황동규 시인과 마종기 시인처럼 대물림 된 문학적 유전자가 탐나고 시를 쓰는 삶이 부럽다! 표제작인 '겨울밤 0시 5분' 일부만 소개한다.

'겨울밤 0시 5분' 

별을 보며 걸었다.
아파트 후문에서 마을버스를 내려
길을 건너려다 그냥 걸었다.
추위를 속에 감추려는 듯 상점들이 셔터들을 내렸다.
늦저녁에 잠깐 내리다 만 눈
지금도 흰 것 한두 깃 바람에 날리고 있다.
먼지는 잠시 잠잠해졌겠지.
얼마 만인가? 코트 여며 마음 조금 가다듬고
별을 보며 종점까지 한 정거를 걸었다. 

. 

(20~22쪽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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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08-06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샌 도통 시를 보질 않는데 황동규님 신간이군요. 저도 얼른 사야겠어요.^^

순오기 2009-08-06 21:58   좋아요 0 | URL
시집은 많이 보는데 리뷰는 안 쓰고 주로 시를 소개하는 정도의 페이퍼만 썼는데... '도착하지 않은 삶'리뷰 이후 그냥 내 소감 정도로 써야겠다 생각해요.^^

하늘바람 2009-08-06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그런가요? 이상하게 마리에요 시는 마음이 아주 처절하고 슬플때 아플 때만 도올라서요.
ㅣ를 쓰게되면 아주 슬플 것같아요

순오기 2009-08-06 21:58   좋아요 0 | URL
그럴때 떠오른 시를 남기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듯...

같은하늘 2009-08-06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동시집 밖에 안봤는데...
저도 읽고 이해가 쉬운 시가 좋아요~~

순오기 2009-08-07 00:38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동시집이 더 좋아요.^^
처음 읽을 때 내 마음에 꽂히는 시~~ 그게 좋지요.
 
공선옥 마흔살 고백
공선옥 지음 / 생활성서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한때 푹 빠져들었던 공선옥. 그녀가 마흔살 언저리에 썼던 생활성서에 연재한 글을 모아서 낸 책이다. 생활성서에 실은 글이라 종교적인 성찰을 깔고 있지만, 어떤 종교를 갖고 있든지 사람다웁게 살려는 것이기에 타종교라도 무리없이 읽힌다. 3부로 나뉘어진 '그것은 인생,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것들, 잊히지 않는 하루'라는 제목만 봐도 생활인의 소소한 일상을 들여다보는 글이다. 

이미 내가 지나온 마흔 살 주변의 공선옥 이야기에 공감하며 같이 눈물글썽이거나 미소 지으며 읽었다. 사실 에세이는 읽기에 부담없지만 읽을 때 가볍게 끄덕이는 공감으로 족하지, 오래도록 기억하는 내용은 실상 많지 않다. 그래도 에세이집을 읽고 나면, 나도 삶의 흔적을 남겨야지 생각은 하는데 알라딘에 리뷰 쓰고 페이퍼 쓰는 것 말고는 손글씨를 쓰지 않는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일의 지엄함을 감당하는 작가라는 걸 행복으로 여기면서도 원고 마감이면 스트레스 받는 글쟁이들의 생활도 쉬운 건 아닌 듯하다. 농부가 씨뿌리고 거둬들이듯 글쟁이도 날마다 무언가 쓰는 일이 농부의 일상과 같다는 말에 끄덕여진다. 소소한 일상에서 글감을 건져올려 따뜻한 시선으로 감동을 담아낸 글쓰기가 부럽다. 하지만 작가도 써야 할 이야기에서 삼천포로 빠지는 걸 보면서 살짝 즐거워했다.^^

그녀의 신산한 삶이 이제는 좀 편안해진 것 같아 다행이다. 절름발이 자기 할머니를 동무들과 같이 악을 쓰며 놀려대는 삼식이의 눈물에 나도 같이 눈물이 났다. 자기 할머니를 동무들과 같이 놀리는 것으로 저항하고 절규했던 삼식이 마음이 절로 느껴졌다. 맏이 아람이를 '내 인생의 선장'이라고 말하는 그녀, '못난 어미 만난 죄로 어미와 고난의 세월을 함께 해 준 나의 동지'라는 말은 어찌나 눈물겹던지 내가 우리 큰딸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세 아이를 키우며 홀로 사는 그녀의 경제적인 어려움이 글 곳곳에 보인다. 사는 일의 녹록치 않음에 마음이 짠해진다. 셋째 아빠인 전 남편에 대한 이야기, 중학교를 다니다 중퇴한 둘째를 전주 대안학교에 보낸 이야기, 결핍으로 배운 감사한 생활 등 짠하게 공감됐다. 여수에서 살다가 눈을 실컷 보고 싶어 춘천으로 이사했다는 그녀, 그곳도 사람과의 인연으로 정을 붙이며 살아간다. 사람 사는 곳 어디든지 정들면 고향이 된다. 나도 광주살이 21년째, 이제는 본래의 고향보다 더 정이 들어 광주사람보다 더 광주를 사랑하게 되었다.^^  

세상을 보는 일도 엄마의 마음으로 보듬는다면 성내거나 투덜댈 일도 없으련만, 살다보면 벌컥 성을 내는 일이 종종 생긴다. 공선옥 그녀가 사람이 많은 터미널에서 애꿎은 둘째에게 성내고 하지 않아야 될 말을 쏟아내고 부끄러워 하는 이야기는 정말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더란 말이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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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8-06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도 공선옥은 나이가 굉장히 많을 것 같단 생각을 줄곧 했어요. 64년생이니까 40대 중반인데 사진보고 너무 젊어서 깜짝 놀랐죠. 작가님의 글에선 삶의 치열함과 처연함이 같이 보였어요. 짠해요...

순오기 2009-08-06 00:51   좋아요 0 | URL
어~ 63년생 아닌가요? 나보다 세 살 아래라고만 기억하거든요.^^
삶의 치열함과 처연함이라~~ 그래서 그녀의 글을 읽는게 편치 않을지도...

세실 2009-08-06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선옥씨도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군요....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감명깊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깊이 있는 작가들은 에세이도 좋아요.

순오기 2009-08-06 22:02   좋아요 0 | URL
공선옥씨 삶도 공지영씨 못지 않게 드라마틱하지요~ ㅜㅜ
나도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로 공선옥씨를 만난 후, 그녀의 작품을 여럿 봤지요~~

hnine 2009-08-06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선옥도 제가 묻지도 않고 일단 읽고 보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거든요. 이 책도 구입해서 지금 바로 제 눈 앞에서 읽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미리 순오기님 리뷰 읽고 가요.

순오기 2009-08-06 22:02   좋아요 0 | URL
오호~ 묻지 않고 일단 보는 작가로군요. 한때는 나도 그랬는데...내가 사는 게 힘들 때는 일부러 보지 않았어요.ㅜㅜ

같은하늘 2009-08-0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흔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다가올 나이...
책이 한번 보고싶어지네요...

순오기 2009-08-07 00:37   좋아요 0 | URL
소소한 일상에서 글감을 잡아내는 센스도 배우고~~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좋지요.^^

노이에자이트 2009-08-07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남출신의 40대 여성문인 중 유명작가가 몇 명 있는데 신경숙이나 은희경 같은 인기작가는 아니지만 은근히 공선옥 팬이 많은 것 같죠? 같은 공씨인 공지영과 비교되는 것 같기도 하고...공선옥 고향이 곡성일 거예요.

순오기 2009-08-08 07:54   좋아요 0 | URL
나는 은희경이나 신경숙보다 공선옥이 더 유명하다고 생각했는데...^^
공선옥씨 곡성출신 맞아요~ 공지영씨와 여러 면에서 닮았으면서 또 다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