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날 동화 보물창고 7
안네마리 노르덴 지음, 배정희 옮김, 원유미 그림 / 보물창고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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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마리 노르덴의 작품으론 세번째 읽은 책이다. <잔소리 없는 날>의 푸셀과 <동생 잃어버린 날>의 얀, 그리고 <아주 특별한 날>의 필립과 미리암을 만나면서 닮은꼴을 발견하게 된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동생에 대해선 사랑보다 질투라는 감정이 먼저라는 것. 질투는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지 모르지만,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면  질투의 감정이 앞서고, 상대를 우선으로 할 때 비로소 이해와 사랑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외동아들 필립에게도 좋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 낮에만 돌봐 줄 아이 미리암을 데려오기 위한 엄마의 작전이 좋다. 가족회의에 붙여 미리암을 돌보면 좋은 점과, 반대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하게 하는 좋은 설득법이다. 엄마가 이미 결정했을 거라고 투덜거리면서도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히는 필립의 태도와 민주적으로 투표했어도 한달의 실험기간을 갖고 최종 결정을 하는 것도 좋은 의사결정법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나라 부모들이 중요한 일에 아이의 뜻을 이만큼 존중하는지 잠시 돌아보게 된다.

특별한 가족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있을 듯한 갈등구조를 그리며 아이들의 심리변화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처음에는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뺏기는 것 같아 싫어하던 필립이, 엄마가 미리암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질투가 생긴다. 또 미리암이 자기 친구 페터를 더 따르는 것 같으니 괜시리 심통이 난다. 감정변화가 냉대했던 미리암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고, 유난스레 건널목을 겁내는 까닭을 알고 비로소 자신이 보호해야 할 동생으로 받아들인다. 멍청한 것 아닌가 생각했던 미리암이 사실은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라는 걸 인정하면서 마음의 통로를 발견하게 된다. 이해하면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질투의 갈등구조가 소통구조로 바뀌며 자신의 비밀까지 공유한다.

놀이터에서 잠시 사라진 미리암을 찾는 필립이 <동생 잃어버린 날>의 얀과 겹쳐보이지만, 아이를 잃었을 때의 심정은 다 같을 것이기에 공감한다. 사람을 잃어버렸을 땐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경찰서를 찾고, 잠시 떨어졌다 만나는 미리암과 필립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확인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경찰차로 돌아오는 특별한 체험이 <아주 특별한 날>이라는 제목과 걸맞게 마무리된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아는 작가가 그려낸 이야기에서 아이들은 내 얘기 같은 공감을 느끼고, 부모들은 아이의 섬세한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이해심을 키울 수 있는 책이다. 동생과의 갈등을 경험한 아이들이나 초등3학년 정도가 읽으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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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 지음, 박건웅 그림 / 실천문학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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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2학기 읽기 책에 '콩, 너는 죽었다'가 실렸고, 6학년 2학기 읽기 책에 '지구의 일'이 실린 김용택님의 시집이다. 10여년 전 마암분교에 가서 시인을 만난 적이 있기에, 시인과 그의 시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시를 읽으면 시인이 느껴지며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특히 표제가 된 '콩, 너는 죽었다'는 덕치학교를 찾은 작가 박완서님이 교실 뒤 게시판에 걸린 이 시가 김용택의 시 인것을 모르고 아이들 시와 같이 걸려 있으니, "이 중에 제일 잘 쓴 시로, 이 애는 커서 시인이 되겠다." 라고 칭찬해서 김 시인이 뻐기며 좋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ㅎㅎ~~

정말 콩타작을 하면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콩 한 알이라도 살려내려고, 언니와 나는 학교 갔다오면 날이 저물도록 마당가에서 콩을 주웠다. 그 때 우리집에 빌붙어 살던 쥐들은 무얼 먹고 살았을까? 내가 워낙 꼼꼼한 성격이라 한 알도 남기지 않았으니까~~~~~ㅎㅎ

이 시집에 우리세대 유년기의 추억을 불러 올릴 시들이 많이 들어 있다.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를 엄마 아빠 시대 이야기가, 아직도 시골 마을엔 많이 남아 있다. 물론 동심으로 그것을 보고 느끼는 김용택 시인이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우리 때와는 조금 다른 오늘의 농촌에 가슴 아픈 시들도 들어 있다. 아이와 같이 시를 읽으며 예전과 오늘의 변화를 설명해주면 좋을 것이다.

한 편 한 편이 잔잔한 그림처럼 덕치학교 주변, 섬진강변이 떠오르며 가슴이 뭉클하다가 따뜻해지기도 한다.  정말 뭉클하고 따뜻한지 한 편의 시를 감상해보자.

머니 집에 가는 길

-여름-

할머니 집에 가는 길
매미가 웁니다

할머니 집에 가는 길
염소가 웁니다

할머니 집에 가는 길
꾀꼴새가 노랗게 울며 납니다

할머니 집에 들어서며
할머니 할머니 찾아 부르면
아이고 내 새끼 더 많이 컸구나
보고 싶은 내 새끼
할머니가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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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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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겨울 책따세 추천도서였는데, 제목만 봐선 뭔 내용인지 짐작도 안 되고, 걍~ 어려운 책인가보다 생각하다가 이번 여름 중2 아들을 위해 뒤늦게 구입하고 읽었다.

요즘엔 헌혈을 많이 하니까 지금도 매혈하는 사람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책은 중국인 허삼관이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이야기다. 여섯 달 땅을 파야 얻을 수 있는 돈을 피를 팔아 얻는다. 두 사발(400밀리)을 팔면 35원을 받는다. 그 돈으로 '꽈배기 서씨'라고 불리는 허옥란과 결혼을 하여 알콩달콩 아들 셋을 낳았다. 그러다 큰아들 일락이가 아내와 사겼던 하소용의 씨임을 알게 된다. 우리 삶에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 일인가? 허허~~ 중국인 최대의 욕이라는 '자라 대가리' 노릇이라는 말로 그의 상황이 묘사된다.

이런 기막힌 상황을 작가 위화는 희극적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슬픈 이야기임에도 슬프게 읽히지 않는다. 정말 술술 잘 읽힌다. 중학생도 충분히 알 내용인데 왜 고등학생 추천도서였는지 생각해보면,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성문제가 조금 낯뜨겁게 리얼해서 그런가 싶다. 요즘 아이들이야 더한 것도 보고, 듣고 읽는 세상인데...... 뭐, 이 정도면 문학이란 이름으로 걸러졌으니 중학생이 읽어도 무방하리라 싶다.

바로 그 아들놈이 대장장이 방씨 아들의 머릿통을 깨서 치료비 때문에 친아버지 하소용을 찾게 되고, 딸 둘 뿐이니 아들이 없다는 하소용네와 만나는 장면도 가관이다. 풍자와 해학으로 비극을 풀어 헤치는 글맛이 장관이다. 이래서 또 희극적으로 보게 된다. 아주 슬픈데도 슬며시 웃음나는 독자의 심보가 잘못된 건 아니라는 변명이다.

이래서 허삼관은 두번째 피를 팔고,.... 그 후 모택동의 문화대혁명으로 많은 중국인들의 굶주림이 시작되고, 57일간 옥수수죽만 먹은 가족을 위해 세번째 피를 판다. 그런데, 헉~~이건 또 무슨 일? 큰아들 일락이는 자기 피를 판 돈으론 절대 사 줄 수 없다며 국수 먹는데 데려가지 않는다. 아~~인생이란, 왜 이다지도 고단한가? 하소용의 아들놈이라며 피를 판 돈으로 사 줄수 없다는 허삼관의 인생관은 참 단순하면서 소박하다. 자신의 처지를 아는 아들놈의 눈물겨운 고구마 먹기는, 눈물샘을 자극하면서도 이건 완전 코미디다. 우리의 주인공 허삼관은 이렇게 단순하지만 가족을 위한 매혈 행보는 이후에도 계속된다.

비극적 상황을 희극적으로 풀어내는 사설에, 독자는 웃으면서도 뭔가 켕기듯 쓰리다. 그 허삼관을 단순한 중국이야기로만 생각하기엔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게 버거웠던 우리 부모 세대의 이야기도 되고, 북녁땅에서 지금도 굶주릴 우리 형제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먹고 사는 것을 하찮게 여길만큼 풍족해진 오늘날도, 세계의 절반은 굷주린다는데 내 배 부르면 그만이라고 치부하기엔 우리의 양심이 찔린다.

내 울타리 가족챙기기에 급급한 우리나 허삼관이나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허삼관의 매혈행보로 가족이 무엇인지, 국가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게 된다. 허~ 참, 어이없어 웃으면서도 가족이란 무엇이고 부부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문화대혁명 때, 화냥년이란 대자보가 붙어 거리에서 '기생 허옥란'이란 나무판자를 붙이고 서 있어야 했던 아내에게 날마다 반찬을 아래에 숨긴 밥을 가져다 주는 허삼관, " ~밥 먹이고 옷 사 입히고 돈 쓸 때는 아들이 셋이나 되는데, 엄마한테 밥을 들고 갈 아들 녀석은 한 놈도 없네 그려." 라고 탄식한다. 또 집에서도 비판투쟁대회를 열어야 했을 때도, 엄마를 증오하지 않도록 자신의 외도까지 밝히는 용기는 참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살만해진 허샴관 예순이 된 어느 날, 옛날 피 팔던 생각에 돼지간볶음 한 접시와 황주 두 냥 먹고 싶어 피를 팔러 갔더니 늙었다고 사주지도 않는다. 서러움에 울고 헤매이는데, 쫒아온 아들놈덜은 부끄럽다 들어가라 하고....그의 아내 허옥란, 아버지가 피 팔아 너희를 키웠는데 '싸가지 없는 녀석들' 욕을 한바탕 퍼붓고는 당장 식당으로 데려간다. 서로 딱 한번씩 다른 사람과 관계한 허물을 덮으며 산 세월에 연민의 정으로 깊어간 부부애가 뭉클~~~감동으로 다가온다.

늘그막에 다정한 부부의 소통을 그려내며 독자의 뒷통수를 꽝~~~후려치는 허삼관의 이 말뜻을 파악하려면, 꼭 읽어봐야 알 수 있으리라! ^*^ 

"그런 걸 두고 좆 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고 하는 거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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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없는 날 동화 보물창고 3
A. 노르덴 지음, 정진희 그림, 배정희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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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 3학년 이상이면 재미있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 막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쓴 독후감으로 지역도서관 독서감상문대회에서 동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어른들에게 잔소리 하는 날을 만들자>   4학년 선민경

"히야∼ '잔소리 없는 날'이라고?"


택배로 책이 왔는데 제목부터 필이 딱 꽂혔다. '잔소리 없는 날이 우리 집에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황금 같은 날을 쟁취한 복 많은 녀석이 누군지 알아보기 위해 단숨에 읽었다. 

 

부모님의 끊임없는 잔소리에 나처럼 몸과 마음이 지쳐 가는 주인공 푸셀. 불쌍한 푸셀은 월요일 하루를 잔소리 없는 날로 결정하게 된다. '와~ 진짜 부럽다!' 모르는 사람 파티 끌어들이기, 학교에서 일찍 오기, 술 취한 사람 집으로 데려오기 등을 시도한다. 모르는 사람 파티 끌어들이기랑 술 취한 사람 집으로 데려오는 것은 사절이지만, 학교에서 일찍 오는 것은 정말 부러웠다.

  내가 푸셀이라면 파티 같은 것은 벌이지 않고 컴퓨터 죽치고 하기, 텔레비전 실컷 보기, 친구들하고 놀러 나가기, 학원 안 가기, 용돈도 달라고 하면 많이 주실까? 하여튼 나는 이렇게 소박하게 보내고 싶다.


  "오늘이 끝나는 건 밤 12시잖아요? 저 공원에서 잘 거예요!"
오후 7시쯤 잔소리 없는 날이 끝났다고 안도하는 부모님께 푸셀이 내뱉은 청천벽력 같은 말이다. '와∼ 이 녀석 대단한 녀석인데 재밌겠다!'
나는 한껏 부러워하며 친구와 함께 텐트를 치고 공원에서 잔다는 푸셀을 지켜보았다. 소풍 같은 느낌도 들고, 한밤중 공원의 텐트에서 지낸다는 것이 떨리면서도 재밌을 것이다.


"귀신? 진짜 귀신이라고?"

  집으로 간다던 올레가 귀신이 있다고 돌아와 푸셀이 조심조심 가보니, 세상에! 그 귀신은 아빠였다. 푸셀과 올레가 걱정돼서 따라오셨다고 한다. '역시 부모님의 사랑은 누구도 못 말린다. 잔소리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이겠지?' 감동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잔소리가 듣기 싫을 때가 있다. 아니, 무척 많다.

  안네 마리 노르덴의 책은 '잔소리 없는 날'과 '동생 잃어버린 날'을 읽었는데, 진짜 어린이 마음을 잘 그려내었다. 내 친구들도 많이 공감하고 엄마도 공감한다고 웃으셨다. 많은 어른들은 개구리 올챙이적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작가님은 어린시절을 잊지않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외국은 우리나라와는 다른 문화적 차이가 있지만, 어린이의 마음은 같다고 느꼈다.


 '잔소리 없는 날'이 책으로만 끝나지 않고, 나라에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해서 지키게 하면 좋겠다. '잔소리 없는 날'에 잔소리를 한 부모님은 벌금을 물려서 아이들이 원하는 걸 다 들어주게 한다면 아이들은 정말 신나게 뛰어 놀며 자랄 것 같다. 헤헤헤∼ 나의 조그만 소망이다! 

  이건 내 생각인데, '잔소리하는 날'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부모님이 우리에게 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가 부모님께 잔소리를 하는 날이다. 정말로 엄마 아빠께 내 맘대로 잔소리하는 날이 실현되면 얼마나 좋을까?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더니, 부모님이 정말 그렇다. 부모님도 어렸을 때는 잔소리가 듣기 싫었을 텐데, 개구리가 된 지금은 올챙이 생각을 해 주지 않는다. 우리가 부모님께 잔소리를 한다면 개구리가 된 부모님도 올챙이에게 하는 잔소리를 줄여나가지 않을까? 헤헤∼

  "전국의 어린이들이여, 꿈의 유토피아를 위해 단결하자. 
 우리도 부모님을 사랑하니까 마음껏 잔소리하는 날을 정합시다!"  


  책 속의 푸셀도 그렇지만, 나도 부모님의 잔소리가 사랑이고 관심이라는 걸 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부모님의 잔소리까지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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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클래식 보물창고 43
생 텍쥐페리 지음, 이효숙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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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전, 기숙사에 있는 큰 딸을 보고 왔다. 우리 딸은 아직도 춥다고 겨울 이불을 덮고 있었는데 이제 바꿔주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공부하는 독서대도 둘러보고 디카에도 담아 왔다. 모처럼 모녀가 손도 잡아보고 돌아올 때, 한번 보듬어 주고 왔다. 그러면서 작년 11월 수능 보던 날 몰아쳤던 우리집의 폭풍이 생각났다. 그때 이 책을 읽고 썼던 글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책이 된다는 건, 특별한 관계를 갖는 것이라 생각되어서.......

안녕, 어린 왕자?

네 친구 여우가 '길들인다는 건 관계를 만드는 것(84쪽)'이라고 했지? 또한 '참을성이 많아야 한다(88쪽)'는 말도 곁들이면서 말이야. 그런데, 난 아직도 참을성이 부족하구나. 어린 벗아, 내 푸념 한번 들어 줄래?

수능 보던 날이었어. '언어란 오해의 근원(88쪽)'이라는 말처럼, 고2 큰딸과 입장이 다른 말이 빌미가 되어 모녀간에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쳤단다. 부모 자식간이라도 서운하고 괘씸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 오늘도 우울함이 지속되었어. 17년간 딸을 위해 쏟은 시간-잃어버린 시간(95쪽)만큼 소중한 존재가 되었기에, 내가 '길들인 것에 영원히 책임 져야(92쪽)' 함을 절실히 느끼며 살았지. 그러나, 심한 배반감이 들면서 그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었단다.

'그래, 오늘은 다 팽개쳐 두고 훌훌 날아가야지~ 엄마 없이 어디 며칠이라도 살아봐라!' 이런 마음이었지. 하지만, 마음이 가볍고 즐거워야 훌훌 털고 날 수 있는지, 생각과는 다르게 몸도 마음도 털고 일어설 수가 없었단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가 보물창고에서 새옷을 입고 태어난 너를 다시 만나게 되었어. 80년의 첫 만남 이후, 무수히 많은 출판사의 책으로 너를 만났고, 밑줄을 그어가며 감동했던 마음 속의 너를 다시 불러 내었어. 첫 만남이었던 문예출판사의 어린왕자, 너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기에 다시 펼쳐보며, 예전에 쳤던 밑줄과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른지도 비교했단다. 컬러로 채색된 보물창고의 새옷에 이효숙님의 훨씬 더 매끄러워진 번역으로 다듬어진 너를 만나니 그때의 감동이 되살아나, 며칠째 무겁게 내리누르던 마음에 따스한 위로의 샘물이 스며들었어.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92쪽),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99쪽)'이라는 말이 위로가 되었단다. 우리 딸이 간직하고 있을 사막의 우물은 아직 보이지 않아 발견하지 못한 거라고, 나지막히 속삭이는 너의 목소리를 들었단다. '집이든 별이든 사막이든 간에 그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100쪽)'고 말하는 아저씨의 목소리까지 듣고서야, 비로소 내 얼굴 근육이 풀어지며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단다. '창문에 코를 박고 무언가를 찾는 아이들(95쪽)'처럼, 마음속에 잠들어 잃어버린 줄 알았던 너를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고맙다. 어린 벗이여!

'어른들은 혼자서는 결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 늘 설명해 줘야 하는 아이들은 참 피곤하다(9쪽)'고 했지? 내가 바로 그런 어른이었음을 깨달았단다. 어른이 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어린왕자 네가 만난 소행성의 사람들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거든.
'자기의 권위가 존중되기를 바라며 명령만 내리는 왕(46쪽)'은, 바로 아이들의 불복종을 허용치 않는 또 다른 모습의 엄마였구나. '이성에 바탕을 두고 각자가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복종을 요구할 수 있다(48쪽)'는 궤변을 늘어놓는 왕과, 엄마의 권위로 복종만을 요구하는 내가 무엇이 다를 것이냐? '남을 재판하는 것보다 자신을 재판하는 것이 훨씬 어려우니, 자신을 재판하는 데 성공한다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49쪽)'이라니,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타인에겐 인색한 내가 어찌 지혜롭다 하겠느뇨?

숭배를 바라는 허영심 많은 사람도 내 모습이고, 술 마시는 게 부끄러워 잊으려고 술을 마신다는 술꾼도, 부끄러움을 감추고 잊으려는 내 모습을 담고 있구나. 소유하는 것에 유익함을 주지 못하면서 소유하려고만 하는 사업가와, 의미없는 일상을 반복하는 가로등지기도, 덧없는 세상에 지리학 책만이 진지하다고 주장하는 지리학자 속에도 나의 단면이 들어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었단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모든 별들이 웃고 있어서 슬품이 잦아들고, 어린왕자를 알게 된 걸 만족스러워 할거라(113쪽)'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장미를 돌보러 작은 별에 돌아 간 어린왕자. 어떤 생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과, 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인 나는, 슬프도록 아름답고 순수한 어린왕자 너를 영원히 그리워 할 것 같구나!

책의 뒷편에 실린 법정스님이 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받은 또 하나의 감동도 오래 간직할게.
오늘 밤에도 저 하늘의 별들 속에서 네가 웃고 있는지 찾아 볼게.
나의 어린 벗이여,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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