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밤길
공선옥 지음 / 창비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0년이던가,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라는 산문집을 읽다가 그녀처럼 엎드려 울었다. 울다 보니 내 설움인지 통곡이 되었고, 놀란 우리 아이들이 "엄마, 왜 그래? 책이 그렇게 슬퍼?"라고 물었다. "아니, 너무 아름다워서, 자운영 꽃밭에서 울 수 있는 감성이 아름다워서..."라고 궁색한 변명을 했었다. 그 후 뒤늦게 그녀의 등단작부터 찾아 읽었고 새 작품이 나오는 족족 읽으며, 공선옥 그녀에게 전염되어 갔다. 사랑도 병이런가! 그녀에게 애정이 깊어가면서 내 삶도 신산해졌고, 그녀의 작품에서 만나는 여자들의 삶이 지지리 궁상스러워 신물이 났다. 내 삶이나 그녀들의 삶이 왜 다 그 모양인지...... 굳이 책을 찾아 읽으며 스트레스 받을 이유가 없기에 '붉은 포대기' 이후 손을 딱 끊었다.

그리고 5년이 흘러 다시 만난 공선옥, 그녀는 여전히 상처뿐인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무책임하고 뻔뻔하고 이기적인 남자도 여전하고, 더 이상 숨길 것도 없고 물러설 곳도 없는 여자들을 아주 가까이서 냉정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치 내 얘기를, 내 치부를 들춰내듯 속삭이는 그녀에게 빨려들었다. 바로 이것이 공선옥의 매력 아닐까? 한 발 물러나서 편안하게 관찰하는 독자가 아니라, 내 얘기를 주절주절 털어내는 주인공 같은 느낌으로 맞딱뜨리게 된다. 결코 편안치 않은 독서이면서 손에서 내려놓을 수도 없는 '명랑한 밤길'이었다. 12편을 하루에 한 편씩 내 삶의 단면을 들여다보듯 야금야금 씹어 먹었다.

맹랑한 통증으로 같이 한 숨 쉬며 체념하고 싶은 인생들, 무엇 하나 만족스럽거나 윤택과는 거리가 먼 그녀들의 삶에서 건져올리는 명랑함이라니? 작가의 사진을 보니, 예전보다 볼 살이 올라 좀 여유롭고 윤택해 보이기는 하는데, 그렇다면 작품 속 여자들의 삶도 좀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살짝 내 눈꼬리가 흘겨지려 한다. 그러나 12편의 단편을 다 읽고나선, 공선옥 그녀도 나이 먹었고 두어 살 더 먹은 나도 나이 먹었음을 발견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삶을 대하는 자세나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음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불에 덴 혀로 왕소금을 씹어 삼키는 것 같은 나날들'이지만, 꿈에서나 상상속에서라도 행복이 다글다글 굴러다닐 것 같은 희망과 용기가 있다면 사는 거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울지 않는다고 구박 받으면서도 울 수 없던 영희가, 장례를 치르고 살기 위해 목놓아 통곡하는 것처럼.(영희는 언제 우는가) 아무리 힘든 파출부 일을 다녀도 쓰레기가 될 뿐인 온갖 도구에 흙을 채워 꽃과 채소를 가꾸고 있으면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즐거움이 있기에.(도넛과 토마토) 스물한살 처녀를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격렬하게 떨면서도 또박또박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기에.(명랑한 밤길) 처녀가 애를 낳는 게 죄가 되는 세상에, 낳아서 버린 아이를 대신해 입양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79년의 아이)

12편 모두가 웃을 일 하나 없는 신산한 그녀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신산한 삶에서도 왜 명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삶이 신산할수록 웃어야 살 수 있다. 나도 근 1년을 웃지 않고 이를 북북 갈듯이 산 세월이 있었다. 그 결과 내 삶이 달라지는 건 없었고, 머리가 듬성듬성 빠지는 원형탈모만 겪었다. 지금도 숭덩숭덩 빠지고 나고를 반복하지만 이젠 탈모 자체에 신경쓰지 않는다. 웃지 않는 신산한 삶은 자기를 소모시킬 뿐, 결코 상황이나 현실을 바꿀 수 없었다. 그 상황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고 내 삶을 다른 시각으로 직시했을 때,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그래서 삶이 신산할수록 명랑해야만 살 수 있다. 명랑할 이유를 찾아 자기의 인생을 가꿔가야 한다고, 공선옥 그녀는 12편의 그녀들을 통해 독자에게 소곤소곤 풀어낸다.

동감이다~~~ 공선옥, 그녀의 삶이 누구보다도 신산했기에, 이렇게 분신같은 그녀들의 애정어린 삶을 얘기할 수 있는 거다. 나도 이를 갈며 웃지 않고 산 세월이 있었기에, 구질구질하다 여겨졌던 그녀들의 삶에 동감할 수 있는 거다. 내가 신산한 삶을 살았기에, 비로소 남들의 신산한 삶이 눈에 들어오는 인생의 이치를 발견한 독서였다. 오늘 내 삶이 어이없이 황당하고 억울해도, 웃을 수 있는 이유를 찾아내어 명랑하게 웃으며 살자. 그것이 신산하기만 한 우리네 인생을 지탱하는 힘이고, 세상을 따뜻하게 살 수 있는 길이기에......

*이 책을 선물해 주신 멜기님께 마구 고마움이 일어나는 독서였어요. ^^


댓글(12) 먼댓글(1)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순오기님을...
    from 나비의 오래된 감각 2008-02-10 10:14 
    알라딘의 친선대사로 임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른사람들의 댓글(내것도 포함해서)에 다신 글을 읽으며 들었다. 알라딘에서의 생활에 활기를 넣어주시는 순오기님 화이팅!!
 
 
세실 2008-02-0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는게 거짓말 같을때>,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랑 이름이 같아서 더 와닿았던 작가. '삶이 산산할수록 웃어야 살 수 있다'는 님의 말씀에 공감 갑니다.

순오기 2008-02-10 08:34   좋아요 0 | URL
<사는게 거짓말 같을 때>는 내가 손을 끊었을 때 나온 책이라, 아직 못봤어요.^^
작가 또래의 연배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겠죠? 신산함을 겪어야 비로소 남들의 신산한 삶이 눈에 들어오는 인생의 이치를 발견한 독서였어요.

2008-02-09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2-09 15:51   좋아요 0 | URL
작가의 삶이 그만큼 신산했음을 알기에 더 공감하지요.
올려놓고 수정하는 사이에 기다렸다는 듯 댓글이 달려 있어 깜짝 놀랐어요. 부족한 리뷰를 보고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니 감사해요.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야 명랑하고 따뜻하게 살 수 있는 듯해요.^^

라로 2008-02-09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랑한 밤길...꼭 읽고 싶어졌어요.
명랑하게 웃는게 인생을 지탱하는 힘이고, 세상을 따뜻하게 살 수 있는 길이란 말씀 깊이 담아갑니다.

순오기 2008-02-09 15:51   좋아요 0 | URL
어머~ 나비님 안녕! 명절 잘 지냈죠?
이젠 희망이도 나이가 두 살이군요. 겨우 백일 막 지났는데 두살이라니?ㅎㅎ
명랑하게 웃는 게 인생을 지탱하는 힘이라, 우리가 날마다 알라딘에서 웃잖아요! ^^

bookJourney 2008-02-09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신산한 소설을 감히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당이 안되더라구요. 그런데, 순오기님의 리뷰를 읽으니 ... 다시 시작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순오기 2008-02-10 08:35   좋아요 0 | URL
살다보면 그런 소설이 싫어지는 때가 있더군요.^^
역시~ 공선옥이다! 싶을만큼 괜찮았어요. 꼭꼭 씹어가며 먹을 책이에요!

프레이야 2008-02-09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랑한 순오기 님, 목포 잘 다녀오셨지요? ^^

순오기 2008-02-10 08:36   좋아요 0 | URL
옙, 혜경님도 즐거운 명절 보내셨나요?
알라딘의 즐거움이 명랑한 삶을 살 수 있게 하지요!!^^

마노아 2008-02-11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랑 가족 한 권 읽었을 뿐인데 참 오래오래 마음에 남았어요. 신산함... 공선옥 작가를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 중 하나일 거예요. 신산함을 넘어선 명랑함을 만날래요^^

순오기 2008-02-11 04:10   좋아요 0 | URL
그래서 공선옥의 작품을 읽기가 버거울때가 있죠~~~
우리 다같이 신산함을 넘어 명랑함을 만나요! ^^
 
얘, 내 옆에 앉아! - 초등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책읽는 가족 36
연필시 동인 엮음, 권현진 그림 / 푸른책들 / 200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개정판을 거듭 내면서 끊임없이 사랑받는 책이다. 이 시집을 들여다 보면, 초등 교과서에 실렸다는 이유만으로 사랑받는 것은 아닌 듯하다. 1992년에 모인 <연필시> 동인들의 세번째 책이라는 점, 그 시인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시를 쓴다는 점, 연필을 주제로 한 시와 교과서에 실린 시를 모았다는 점, 아홉 시인들의 작품을 맛볼 수 있도록 따로 또 실었다는 점이 사랑받는 이유라 생각된다.

그래도 엄마들은 교과서에 실렸다는 것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에 몇 편 소개해본다. 2부는 교과서에 실린 시를 따로 모았는데, 7차 교육과정에서 바뀐 것도 있어 확실한 것을 추려보았다.

2학년 1학기 <말하기,듣기>에 하청호님의 '돌다리' <읽기>에 노원호님의 '눈치 챈 바람'

4학년 1학기 <읽기>에 정두리님의 '떡볶이' 4학년 2학기 <읽기>에 박두순님의 '몸무게'

5학년 1학기 <읽기>에 노원호님의 '바람과 풀꽃', 이준관님의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6학년 2학기 <읽기>에 신형건님의 '그림자' 등이 실렸다.

교과서에 실린 하청호, 노원호, 정두리, 박두순, 이준관, 신형건님 외에도 손동연, 권영상, 이창건시인과, 초대시인인 허명희 시인의 작품을 모아 모두 12부로 구성되었다.

학교에서 '시암송대회' 때, 아이들이 가장 많이 암송하는 시 중에 하나인 '떡볶이'를 감상해보자.
떡볶이는 엄마들이 쉽게 해 주는 간식이고, 아이들이 즐겨먹기에 감정을 표현하기가 좋아서 가장 많이 암송되는 듯하다. 엄마도 실감나게 암송해 보면 어떠실지...... ^^

내가 갖고 있는 책은 2005년 판이라 흑백이지만, 2006년 개정판은 동시의 맛을 살려주는 그림이 컬러라서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동시를 읊으며 아이와 교감하고, 떡볶이도 먹으면서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즐거운 추억여행이 될 것이기에 추천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ookJourney 2008-02-09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시는, 소리내어 읽을 때 운율이 느껴져서 참 좋아요~
소개해주신 '떡볶이'도 재미있네요~~ 저희 아이에게도 읽어보라고 해야겠어요 ^^

순오기 2008-02-09 12:22   좋아요 0 | URL
요즘 교과서는 동시가 많이 실려 있어 좋아요.
소리내야 제대로 맛을 느낄수 있는 게 시의 매력이겠죠!

이소령 2008-03-3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jhkhkhjkhj
 

설 명절은 잘 지내셨나요? 고향에도 다녀오시고요~  혹시, 호남이 고향이거나 시댁이라 오셨던 분이 계시다면, 광주댁 순오기가 쌍수 들어 환영했을 것인데! ^^ 전, 목포 큰댁에 다녀왔어요. 명절에는 한번도 친정에 못 갔지만 어쩌겄어요. 나라도 귀성행렬에서 빠져줘야지! 그래도 지난 1월말에 친정엄니랑 형제들 다 보고 왔으니 그것으로 족하고......오늘은 고향 얘기를 하고 싶은디, 나가 이제는 남도사람 다 되었고, 앞으로도 남도귀신으로 남도에 뼈를 묻을 사람이라 우리 전라도 야그를 쬐매 하겄어라~~ ^^

음~ 소쇄원 풍경을 읊은 한시 사십팔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즐길만한 멜기세덱님께 선물했더니, 마치 설빔을 받은 듯 기뻐하기에 나도 흡족했지요. ^^ 앞으로 추진할 '광주이벤트'를 위해 살짝 맛뵈기를 하자면, '시와 그림으로 수놓은 소쇄원 사십팔경'은 전남대 박준규 교수와 전남도립담양대 최한선교수의 글과, 박행보의 그림으로 2000년에 펴낸 '호남의 누정문학'이다.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의 은둔거사 양산보가 조성한, 자연과 인공의 미가 어우러진 우리나라 최고의 정원으로 꼽힌다. 이 곳에서 송순, 임억령, 김인후, 오겸, 기대승 등 당대의 명사들과 시를 읊은 누정문학의 산실이며, 하서 김인후가 읊은 '소쇄원 48영'을 그림과 더불어 해석하고 감상하여 소쇄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엮은 책이다.

소쇄원의 그림과 한시를 실었고, 해설과 감상을 덧붙이며 이해를 위한 어휘해설과 한자까지 친절히 풀어놓았다. 1영부터 48영까지 소쇄원 구석구석 아름다움을 샅샅이 훑어볼 수 있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내가 한시 지식도 부족하고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펼쳐 낼 능력도 없기에 이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이 책의 공저자인 '최한선교수'의 시를 한 편 읊어보는 것이다. 쬐끔 친분이 있어 2006년 4월에 시집 '화사한 고독'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받았는데, 정말 재미있는 전라도 시가 많이 들어 있다. 아래의 시를 전라도 버전으로 읊어본다면, 전라도 맛을 물씬 느끼며 쬐끔은 남도를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고향이고 부모님 얘기일지 모르지만......

 

 

 

 

   
 

남도 허풍         -최 한 선 -

-촌놈 만세

 

나  그래도 고향이 남쪽이요

뭣이라 했소 말이 쫌 껄적지근 하다고라우

금매 내가 저 뭐냐 뿌리사 밸 볼일 없지만서도

그래도 울아부지 엄니가 심지만은

곧아서 나도 씬찮게는 뭣을 안한단 말요

돈이나 몇 푼에 으째불라고 하덜 말더라고

짹 하고 죽어불망정 놈 눈에 눈물은 못빼것고

자석들 볼 낯없는 짓은 안할라고 한디

시상은 맬없이 나를 허풍띄우고 날리네 그려

그래 봤자지만 그래도 얇은 주머니는 미련이사

떨칠 수 없게 만든다네 참 우습제잉 안 그런가

자네 내 맘 알겄는가 배는 쫴끔 고프고 뭐 빛은

안 나지만 우리 조부니 한마니는

약무호남 시무국가 후손 아니던가봬

참새가 죽을 때는 짹하고 죽는다는디

그래 좀 씬찮아도 봐주제 지 묵고 산다는디

으쩌것는가잉 나 오늘 밤 잠이 참 잘 올것네야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ookJourney 2008-02-08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 잘 지내셨어요?
오래간만에 듣는 남도 말이네요. 전라도 사람이 아니면 '씬찮다'는 말이 주는 그 느낌을 이해 못할 걸요. ^^
(전주에서는 '씬찮다'까지는 아니고, '션찮다'라고들 하지요~)

순오기 2008-02-08 12:15   좋아요 0 | URL
전주가 고향이세요? 제 고향 충청도랑 전북은 말이 많이 비슷하지요.
우리 고향에서도 '션찮다'라고 했어요. ^^
떡국은 한 그릇 다 드셨나요? 호호~ 난 반그릇만 먹고 나이도 반살 먹고 싶었어요.

웽스북스 2008-02-08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전라도 사람 아니지만 씬찮다, 보고 무슨 말인지 어감으로 알아챘는걸요 ㅎㅎ
소쇄원 정말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인데, 순오기님 염장질쟁이 흥! 입니다 ㅋㅋ

순오기 2008-02-08 13:44   좋아요 0 | URL
똑똑한 웬디양님! ㅎㅎ 광주이벤트에서 소쇄원은 반드시, 꼭 들려볼 곳이니까 날짜만 잘 맞춰보자고요!

마노아 2008-02-09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이벤트 전초전이에요. 올려준 시는 잘 못 알아듣겠는 말들이 있지만 그 리듬감은 알 것 같아요. 율동이 나오는 전라도시입니다. ^^

순오기 2008-02-09 04:35   좋아요 0 | URL
전라도 말, 다 알아듣기 어렵죠.^^
 
라일락 피면 -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4
최인석 외 지음, 원종찬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대의 선택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라일락 피면'을 읽고 쉽게 리뷰를 올리지 못했다. 무언지 모를 부담감에 편안하지 않았다. 내 인생의 나이테가 10대라면 희망에 부풀어 어떤 선택이든 할 것 같지만, 이제는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두고 유혹을 느낄 나이도 지난 듯하다. 그래도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는 질문이 그들 인생의 첫번째 선택이 아니었을까? ^^ 어른들은 재미로 묻지만, 어린 그네들은 엄마 아빠 눈치봐서 답해야 되고, 그 답에 따라 희비쌍곡선을 지켜봐야 했던 경험으로,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어렴풋이 감지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치기어린 질문에 대한 답변부터, 무얼 먹을까 무얼 입을까를 선택하고, 자기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학교와 진로를 선택함에는 오히려 부모가 더 많이 개입하는 아니러니를 경험하게 된다. 부모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끝없는 대리만족의 폐해를 자녀는 선택의 여지없이 당하기도 한다. 몇 살이면 내 인생의 행로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질까? 물론 개인의 삶에 개입하는 시대적 상황까지도 감당해야 할 인생이라면 누구든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표제작이며 첫번째 수록된 공선옥의 '라일락 피면'은, 5.18  한 복판의 광주에서 고등학생 석진의 시대적 선택을 보여준다. 피가 뜨거운 나이에 라일락 향기같던 아랫방 누나 윤희의 죽음에 감전되듯 5.18에 동참한 석진은 죽음으로 청춘을 마감한다. 부채처럼 짊어지고 사는 '산자들의 죄의식'을 알기에, 라일락 향기 진동하는 봄밤 석진의 기일에 쏟아내는 어머니의 통곡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80년 광주를 겪은 세대가 어떤 선택을 했든 함께 지고 가는 시대의 아픔이다.

방미진의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여고생들의 교실에서 벌어지는 형액형 논쟁을 맛깔스럽게 그려내 아주 유쾌하고 상큼하게 읽힌다. 혈액형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아는 그녀들의 풋풋한 수다가, 마치 영희가 대단한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양 몰아가며 O형을 선택하게 되는 풍경이 발랄하게 펼쳐진다.

성석제의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은 가장 소설다운 작품으로 읽혔다. 자신이 그림에 소질이나 특기가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가지 않은 길이었던 화가가 되어야 했던 나 - 백선규와, 글짓기에 소질이 없었던 부잣집 딸이 사생대회에 나가 비슷한 위치에서 그려낸 히말라야시다 그림의 비밀이 잘 짜여진 구조로 담담하게 그려진다. 복선과 반전이 잘 그려진 수작이다.

오수연의 '너와 함께'는 자기 내면과의 대화로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다. 오진원의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는 성적 소수자의 특별한 가정에 입양된 소녀 보린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엄마이면서 아빠인 두 남자의 인생을 새롭게 이해하는 이야기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덜어내고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려나?

조은이의 '헤바 HEBA'는 청춘의 여신인 헤바라고 자칭하며 사는 이종누나 윤이를 바라보는 성호의 좌충우돌 사춘기가 재미있게 펼쳐진다. 사춘기의 성적호기심과 동경이 윤이누나를 통해 해소되고 이해되는 과정을 솔직하게 그려낸다. 남들은 바람둥이 팜므 파탈이라고 치부할지라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소신껏 당당하게 사는 윤이가 살짝 부러웠다.^^

최인석의 '쉰아홉 개의 이빨'은 재혼가정에서 새아버지 장목사의 폭력을 견뎌야 하는 순근의 자기찾기다. 장목사의 아들 우석과 딸 우연과의 정신적 연대감에 가슴이 짠했다. 어머니 혹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자녀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여지없이 몰아부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친아버지는 쉰아홉개의 이빨을 갖고 있었으니 자신도 예순개로 늘어나기를 기다리며 견디는 순근이, 가정이나 부모를 선택할 권리가 주어진다면 그들은 어떤 어떤 부모를 원할까?

표명희의 '널 위해 준비했어'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아들을 세상으로 이끄는 어머니의 배려가 눈물겹게 읽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6학년 때 서둘러 어른이 되어야 했던 소년은 정신적 성장이 신체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한 듯, 세상이 두려워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같은 아픔을 겪는 친구들과 인터넷으로 소통할 뿐이다. 한때 단절의 세계에 빠졌던 어머니가 그런 아들을 지켜보는 마음은 어떨까? 그 아들을 세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준비한 어머니의 선물, 오랫동안 먼지를 뒤집어 쓰고 기다려온 오토바이 할리를 타고 나서며 비로소 깨닫는 어머니의 사랑에 찡한다.

자의든 타의든 끊임없이 선택의 길목에 들어 선 10대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책임을 지고 가지 않은 길에 미련을 두지 않을 인생이면 좋겠다. 이제 중3 되는 아들녀석도 자신의 인생을 펼쳐가는데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아름다운 청춘들과 부모가 읽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문학으로 만나는 5.18
    from 파피루스 2008-05-19 04:48 
    다른 지역보단 5.18을 가까이 느끼며 자랐을 광주의 초등학생들은 5.18을 얼마나, 혹은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해마다 5.18기념일이면 학교에서 교육하지만 아이들이 체감하는 5.18의 실체가 궁금해서 정의를 내려보게 했다. 아이들에게 5.18의 실체와 정신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어른들의 몫이라 생각해, 나역시 작은 역할이라도 담당하려고 5월 이야기 한 꼭지라도 들려주고 풀어내는 커리큘럼을 짠다. 작년에는 3학년 이
 
 
 

오늘 우체국에 다녀왔다는 혜경님을 위해, '불과 얼음의 콘서트'에 실린 '우울한 샹송'을 올린다. 같은 시가 예전에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 검색해보니 절판이다. 이수익 시인의 최근 시집으론 '꽃나무 아래의 키스'가 뜬다.

어제 받은 테트리스 강도가 너무 쎄서 기분도 꿀꿀하니, 퍼머하고 영화 보고 심야에 귀가했다. 나돌다가 집으로 들어오며 하는 말, '역시 내집이 최고야!' ^^

   
 

우울한 샹송      -이수익-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 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질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
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중학교 2학년 때 충청도 산골에서 인천으로 전학 온 순오기에게, 하트를 그려 보냈던 악동들의 편지를 동창 동아리방에 공개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니셜 P군의 편지 K군의 편지 하면서...... 그 때 태평양 건너 사는 동창이 불현듯 손으로 편지를 쓰고 싶다며 여행지마다 엽서를 보내왔다. 시드니와 알마티 밸리던가 데스 밸리던가~ 하여간 10년 후에나 공개하라며 세 장을 보냈는데, 내 그런 괴발개발은 처음이다. 몇 자 밖에 안되지만 스캔받아 공개해도 알아 볼 사람은 본인 밖에 없을거다. ㅎㅎㅎ

내 보물창고엔 초,중,고 친구들과 나눈 편지가 담겨 있다. 지금 보면 틀린 글씨도 많고 웃기는 내용이지만, 추억이 묻어나는 편지는 볼때마다 나를 그 시절로 실어 나른다. 백 튜더 퓨쳐~~~~~ ^^   우울한 샹송을 읊으며, 편지를 끄적여 우체국에 부치러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8-02-05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래 들려주시는 줄 알았어요^^ 아흑, 카드 보내려고 우체국 가려고 결심했는데, 어차피 구정 연휴 전에 도착하기 힘들다는 판단에 또 다시 미뤄졌습니다..;;;;;
담주에 부지런을 떨어보겠다고 결심했어요. 순오기님 테트리스 떨궈내셔요(>_<)

순오기 2008-02-05 18:28   좋아요 0 | URL
흐흐~ 불혹이 지난 세대는 '우울한 샹송'하면 이수익 시를 떠올릴걸요.^^
테트리스는 어제 떨궈내고 들어왔죠~~그래서 또 내 집이 좋은 것이죠.^^
마노아님은 설날에 세뱃돈을 주는 쪽이려나 받는 쪽이려나? ㅎㅎ

마노아 2008-02-05 12:28   좋아요 0 | URL
어릴 때도 주는 사람 없었는데, 이젠 오로지 제가 주는 쪽이 되어버렸어요. 윽...생각해 보니 왕 억울...ㅜ.ㅜ

순오기 2008-02-05 18:50   좋아요 0 | URL
ㅎㅎ 친척들이 많아야 세뱃돈도 많이 받는데...^^
조카들한테 세뱃돈 주고, 형부한테 복돈 주라고 하세요~~~^^

bookJourney 2008-02-05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죠? 시를 읽었는데 정말 샹송을 돋고 있는 기분이 드니 말이에요. 역시 시인의 힘이란 .... ^^
테트리스 떨쳐내시고 힘 내세요 !!

순오기 2008-02-05 10:56   좋아요 0 | URL
호호~ 님의 댓글 읽고 나도 소리내어 읽었어요. 샹송처럼 들리는가 하고...^^
테트리스 떨쳤어요. 설 잘 보내시고 행복하세요!

무스탕 2008-02-05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래 들려주시나 했어요 ^^;;
문득 조용필 노래 가사중 '베고니아 화분이 놓이 우체국 계단..' 하는 부분이 생각나네요.

순오기 2008-02-05 11:00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노래 옮겨오는 건 할 줄 몰라요~~ㅠㅠ
아~ 난, 조용필 매니아인데..... 저 가사가 나오는 노래가 뭔지 모르겠네요.^^
설 쇠러 먼데로 가시나요? 가가우면 그것도 한 부조하는데... 저는 광주에서 목포로 간답니다. 님도 명절 잘 보내시고 복 많이 받으시와요!

깐따삐야 2008-02-05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시 좋아해요.^^

순오기 2008-02-05 10:59   좋아요 0 | URL
물론 님이 좋아하시니 제게도 보내주셨으리라 생각해요.^^
설날 맛난 거 많이 드시고, 떡국은 딱 한 그릇만 드세요! ㅎㅎㅎ

프레이야 2008-02-05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어요. (박박 우겨야쥐~)
그러고보니 우체국이 들어가는 노랫말도 좀 있네요. 윤도현의 '가을우체국'이
생각나요. 목포 잘 다녀오세요.~~

순오기 2008-02-06 05:31   좋아요 0 | URL
우체국~~~ 광주엔 '우다방'으로 불리는 전설의 우체국이 있답니다.
아마도 사랑을 잃어버렸다가 찾은 이들도 많으리라 짐작되죠.^^
윤도현 '가을 우체국'도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