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청춘을 바친 12년

날이 밝으면 막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우리 아이들 셋이 12년을 다닌 학교라 엄마인 나도 같이 다닌 것 같은 우리학교. 두근두근 설레었던 첫 아이 입학식 만큼이나 두근거리는 막내의 졸업식.

'나~~ 눈물이 날 것 같아!'

책을 읽거나 TV를 보다가도 수도꼭지 틀듯 조르르 흐르는 눈물에, 고장난 수도꼭지라 놀림도 받았다. 성깔은 순 오기에 한 승질하는데 왠 눈물은 그리 많은지...... 식구들과 TV를 보다가도 엄마가 울겠다 싶으면 돌아보는 녀석들은, 어느 틈에 흐른 눈물로 코맹맹이 된 엄마를 위해 자동으로 휴지대령. 참, 별일도 아닌데 눈물이 줄줄 나니 대략 난감이다.

재작년 아들의 졸업식에서도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부르는데 눈물이 질금거렸고, 어김없이 옆에 있던 엄마들에게 "언니 울어?" 핀잔을 들어야 했다. 난 눈물나는데 지들은 나를 보며 실실 웃더라니~ 참, 감정이 이렇게 달라서야 같이 놀 수 있겠나? 쩝~~ 세대차이가 절로 느껴진다. 하긴, 졸업생 녀석들도 낄낄거리기만 하던데, 내가 대신 울어주셨다.ㅠㅠ

오늘 졸업식장에서 난, 눈물의 여왕이 될 것 같다.ㅠㅠ내가 보통의 엄마들보다 학부모 노릇에 열정을 쏟아부었기도 하지만, 마치 내가 학교를 다닌 것 같은 넘치는 애정도 주체하지 못한다. 철따라 피고지는 교정의 꽃을 카메라에 담으며 행복했고, 아이들과 함께 한 행사도 추억으로 저장됐다. 2001년부터 시작한 학부모독서회 '파피루스' 7년을 오늘 마무리하면서도 눈물이 났다. 송별케익까지 준비한 젊은 엄마들과 학교에서 졸업회원을 위해 준비한 도서상품권을 받으며 마음이 찡했다.

모임 끝나고 점심 먹으러 가는데도 못가고, 선약이 있던 이웃언니 교수님과 점심을 먹었다. 헛헛한 마음에 같이 영화(추격자)를 보고, 차 한잔 하고 가라는 꼬임에 집까지 들렀다 저녁까지 먹었다. 묵은지와 총각김치를 두통이나 담고도 무엇이 아쉬운지 된장에 청국장, 고등어자반까지, 마치 친정언니처럼 바리바리 싸주어서 아들넘과 막내를 마중오라 해서 가져왔다. 집에서는 엄마가 저녁 먹고 들어온다니, 큰딸이 쌀을 씻어 밥을 해 아빠의 저녁상을 차렸더라. 우리 딸이 밥을 한 것은 아마도 처음인 듯...... 딸이 차려준 밥상에 뿌듯한 아빠의 표정도 보기 좋았다. 오늘 아침 10시에 나가 저녁 8시에 귀가했으니 나를 위한 휴가였고, 완벽한 직무유기였다.^^

졸업 예행연습을 하고 온 막내가 농협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는다고 말했다. 학부모 12년을 마감하는 나에게도 '감사장'을 준다는데, 거기서 눈물나면 주책바가지 될 거 같아 마음을 꽁꽁 다진다.

 시창작반에서 만난 담양사람인 고재종시인의 일곱번째 시집 <쪽빛 문장>에 실린 '담양 한재초등학교의 느티나무'는 도종환 시인이 보내던 E메일에도 담겨왔었다. 문학집배원 도종환이 배달했던 열두 달의 시를 모아, 창비에서 낸 '꽃잎의 말로 편지를 쓴다'에도 실렸다.

우리가 졸업했던 그 옛날의 초등학교를 생각하며......

 

   
 

담양 한재초등학교의 느티나무    -고재종-

 

어른 다섯의 아름이 넘는 교정의 느티나무,

그 그늘 면적은 전교생을 다 들이고도 남는데

그 어처구니를 두려워하는 아이는 별로 없다.

선생들이 그토록 말려도 둥치를 기어올라

가지 사이의 까치집을 더듬는 아이,

매미 잡으러 올라갔다가 수업도 그만 작파하고

거기 매미처럼 붙어 늘어지게 자는 아이,

또 개미 줄을 따라 내려오는 다람쥐와

까만 눈망울을 서로 맞추는 아이도 있다.

하기야 어는 날은 그 초록의 광휘에 젖어서

한 처녀 선생은 반 아이들을 다 끌고 나오니

그 어처구니인들 왜 싱싱하지 않으랴.

아이들의 온갖 주먹다짐, 돌팔매질과 칼끝질에

한 군데도 성한 데 없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가지 끝에 푸른 울음의 별을 매달곤 해도

반짝이어라, 봄이면 그 상처들에서

고물고물 새잎들을 마구 내밀어

고물거리는 아이들을 마냥 간질여댄다.

그러다 또 몇몇 조숙한 여자 아이들이

맑은 갈색 물든 잎새들에 연서를 적다가

총각 선생 곧 떠난다는 소문에 술렁이면

우수수, 그 봉싯한 가슴을 애써 쓸기도 하는데,

그 어처구니나 그 밑의 아이들이나

운동장에 치솟는 신발짝, 함성의 높이만큼은

제 꿈과 사랑의 우듬지를 키운다는 걸

늘 야단만 치는 교장 선생님도 알 만큼은 안다.

아무렴, 가끔은 함박눈 타고 놀러온 하느님과

상급생들 자꾸 도회로 떠나는 뒷모습 보며

그 느티나무 스승 두런두런, 거기 우뚝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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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8-02-19 0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12년 초등 학부모를 마치시는 순오기님께 박수를~~~
이제 중학생이 되는 막내의 졸업과 입학을 축하드려요,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니 한 번 더 축하드리고요. (정말 효녀, 효자들만 두셨어요 ~~)

올려주신 시는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느티나무를 떠올리게 하네요. 그 당시에도 60년된 느티나무라 하여 ... 어린 제가 보기에는 차마 오를 엄두조차 못낼만큼 커다란 아름드리였는데, 그 그늘 아래서 책도 읽고 수다도 떨고 팔방도 하고 놀았었답니다. 아, 그리운 날들이여 ~~

순오기 2008-02-19 21:04   좋아요 0 | URL
우리학교 다닐땐, 오래된 학교라 나무들이 굉장한 아름드리였는데...요즘 도시 학교는 역사가 짧아서 나무들도 작아요.ㅠㅠ
장학금 받은 것으로 가방, 엠피3 사 주었어요. 오늘 민경이 기분이 최고예요.^^

뽀송이 2008-02-19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축하드립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사랑스런 막내 따님의 졸업을 끝으로 초등학교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마치신 님의 훌륭한 모습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더 기쁘고, 뿌듯한 날들을 위하여 크게 웃으시는 날들 되시와요.^^ 늘 좋은 본보기가 되어 주시는 님이 있어 알라딘이 값집니다.^^
저도 오늘 영화 '추적자' 보러 갑니다.^^

앗! '추격자'더군요.^^;; 보고 왔어요.^^

순오기 2008-02-19 21:06   좋아요 0 | URL
추격자~ 볼만하지요?^^
민경인 내일 배치고사 본다고 공부해요.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공부하는...
졸업식에 눈물이 안 났어요. 애국가 부를 때 뭉클해서 잘 참았죠.^^

L.SHIN 2008-02-19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많다는 건 감수성이 풍부하단거죠 ^^
실컷 울고 오세요. 특히나 즐거운 일로 울면 몸 안에 쌓였던 노폐물과 음울한 기도 싹
사라지니까. 그리고 개운한 기분으로 맛있는 것을 먹으며 08년 2/19의 행복 하나를
추가하는거죠. OK~? ^^

순오기 2008-02-19 21:08   좋아요 0 | URL
오늘 눈물이 안 났으니 감수성이 꽝이었나요?ㅎㅎ
맛있는 점심도 먹고 엄마들끼리 찻집에 가서 칵테일도 한잔했죠.^^
어제보다 행복한 오늘, 순오기의 삶은 주욱~~~~ 이어집니다!

프레이야 2008-02-19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내딸 초등졸업 축하해요~~
순오기님도 고생하셨구요. 이궁 눈물나요. 빛나는 졸업장을~~~ 이러면..
근데 요즘 아이들은 눈물 보이는 애들이 거의 없대요.

순오기 2008-02-20 05:47   좋아요 0 | URL
울지도 않고 졸업식 잘 했어요.
고생이란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즐거운 학교놀이 12년!
애들은 낄낄 즐거운데 신참선생님들은 좀 우셨어요.ㅠㅠ

무스탕 2008-02-19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둥이 졸업 축하합니다~~
이쁜 사탕 꽃다발이 또 빛을 발하는 시간이었겠네요.
계신곳 아이들도 안 울지요? 요즘엔 다 그런가봐요..
그래.. 달랑 한 장 주시던가요, 뭔가 얹어 주시던가요? ^^

순오기 2008-02-20 05:49   좋아요 0 | URL
ㅋㅋ막내의 사탕부케가 아작났지요.^^애들이 하나씩 빼가는 바람에...
1년의 생활을 영상으로 보여준 반에서는 모두 울었다네요.
역시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에 감동한 또 하나의 추억이겠죠!

전호인 2008-02-20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내의 졸업 축하합니다.
아이들이 성장할 수록 뒷바라지가 더 힘들어 지겠죠?
많이 우셨나염?

순오기 2008-02-26 01:09   좋아요 0 | URL
ㅎㅎ 많이 울줄 알았는데, 내 최면이 먹혔는지 눈물이 안 났어요.
전, 성장할수록 홀로서기를 시키니까 덜 힘들던데요~ ^^
 
우리 선생님이 최고야! 비룡소의 그림동화 68
케빈 헹크스 글.그림, 이경혜 옮김 / 비룡소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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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97년에 초판이 나와 10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사랑받는 책이다. 케빈 행크스의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이젠 청소년이 되어 그의 청소년소설을 만나는 독자가 되었다. 나도 2006년에 나온 청소년소설 '병속의 바다'로 다시 '케빈 행크스'를 만나며 얼마나 반가웠는지... ^^

유치원이나 학교에 처음 가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처음으로 만나는 선생님에 대한 설레는 기대감은 엄마나 아이가 같을 것 같다. 어쩌면 두려움도 살짝 느낄 것이다. 우리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나를 사랑해 주실까 ~~ 무섭지는 않을까 ~~~ 두근두근 설레임을 갖는다는 건 좋다. 처음이란 건 이렇게 설레임이 동반되어 좋다!

알록달록 예쁜 옷을 차려입은 귀여운 생쥐 '릴리'는 학교가 좋다. 학교에서 하는 건 뭐든 좋다. 그 중에 가장 좋은 건 '슬링어 선생님' 반이 된 것이다. 선생님은 아주 멋쟁이로 멋진 옷에 넥타이도 날마다 다른 색깔로 맨다. "우와!" 릴리는 그저 모든 게 감탄스러워 "난 크면 선생님이 될거야!"라고 소리친다. 선생님들이 패션감각을 갖고 신경써야 한다는 것, 릴리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우리 큰딸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꿈을 변치않고 간직해 이번에 교대를 가게 되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의 영향으로 꿈을 바꾸지 않고 10년이 넘도록 키웠다는 게, 그동안 만난 선생님들께 감사할 일이다. 이제는 여기 나오는 '슬링어선생님'같은 좋은 선생님이 되도록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야 할 차례다.

쇼핑을 해서 멋진 물건을 갖게 된 릴리, 배우들이 쓰는 선글라스와 음악이 흘러나오는 보랏빛 가방, 그 속에 넣을 동전 세 깨까지 갖게 된 릴리는 친구한테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ㅎㅎ 이런 릴리의 마음을 모른척 하며 '나중에'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쉬는 시간이나 '함께 하는 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릴리의 자랑치기... 결국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면 찾아가라며 빼앗아 둔다.

릴리는 큰일났다. 가슴이 울렁거리며 울음이 터질 것 같아, 너무나 슬프고 화가나서 모든 일이 심드렁해졌어. 슬링어 선생님이 자기 물건을 빼앗았으니 선생님이 도둑이라고 생각했고, 드디어 선생님이 되지 않기로 결심했어.

호호호~ 귀여운 릴리, 이런 멋진 그림을 그려 선생님 가방에 집어 넣다니! ㅋㅋㅋ 하지만, 슬링어선생님은 수업이 끝나고 '공부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학교에 가져 와도 좋다'고 하시며 물건을 돌려주셨다. 돌아오면서 가방을 본 릴리는 깜짝 놀랐지, 자기 물건이 고스란히 들어 있고 선생님의 편지도 있었으니까.

 "오늘은 힘들어도 내일은 훨씬 좋아질 거다."

선생님이 도둑이라고 생각한 릴리는 너무 부끄러워서 자기에게 벌을 주었고, 슬링어 선생님을 다시 그리고 얘기도 새로 썼다. 요렇게~~~ ㅎㅎㅎ

 
이때 부모님의 자세는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선생님은 분명히 이해해주실거라며 릴리를 위로하고, 선생님께 편지도 쓰고 학교에 가져가라며 맛난 과자도 만들어 주셨다. 아이 앞에서 선생님을 탓하거나 흉보지 않을 것, 선생님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주는 것은 반드시 부모가 해야할 역할이다. 다음날 편지와 과자를 가지고 학교로 달려간 릴리는 선생님과 어떻게 되었을까? ^^ 너무나 행복한 학교생활이 주욱~ 이어졌을 거란 상상은 어렵지 않겠죠?



'우리 선생님이 최고야!'라고 말할 수 있는 릴리의 학교생활이 얼마나 신이 날지, 선생님과 엄마들은 안봐도 다 알 수 있지요.^^ 이렇게 친절한 선생님, 아이가 좋아할만한 선생님을 만나는 건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축복이다. 하지만, 그 복은 서로의 믿음위에 생겨나는 것이기에 선생님 못지 않게 학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생각하며, 이제 자녀를 유치원이나 학교에 입학시키는 부모를 위한 필독서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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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2-18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카에게 올해 연말에 사줘야겠어요. 그림이 너무 맘에 들어요. ^^

순오기 2008-02-19 01:29   좋아요 0 | URL
책엔 학교라고 나오지만, 유치원과 더 어울린다 싶어요.^^
마노아님은 좋은 이모!!

bookJourney 2008-02-18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지요? 이 책의 릴리도, 선생님도, 부모님도 ... 매우 바람직한 모습이에요 ^^

순오기 2008-02-19 01:30   좋아요 0 | URL
정말 바람직한 ^^ 릴리와 선생님, 그리고 엄마 아빠까지 멋져요!!

산사춘 2008-02-19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순오기님의 따님이라면 멋진 선생님이 되겠지요~

순오기 2008-02-19 02:15   좋아요 0 | URL
감사~~ 열심히 배우고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리라 믿어야죠!
 
까마귀의 소원 -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7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7
하이디 홀더 글.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199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까마귀의 소원'은 교훈적(?)인 내용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열광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른들이 좋아해서 동화구연 선생님이나 독서지도사들이 추천하는 책이다. 너무 교훈을 드러내는 책은 재미가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은 내용보다는 그림이 마음에 쏙 든다. 유아기에 접하는 에니메이션이 화려한 원색이 주조를 이룬다면, 초등 저학년에 걸맞을 이 책은 파스텔톤의 색감이 침착함과 안정감을 주어서 좋다. 거기에 까마귀나 개구리 들쥐를 비롯한 동물과 나무 하나 풀꽃 하나도 세심한 묘사로 감탄을 자아낸다. 잘 보일지 모르지만 그림을 한번 감상하시죠.^^
반짝이는 것을 주워 모으는 까마귀의 특성에 맞게 잘 묘사한 방이다.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 필요할 때 찾아 쓰기 좋게 정리해 두었다. 까마귀의 깃털이나 나뭇잎, 화면 아래 꽃들까지 세심한 묘사로 사실화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림이 섬세하고 색깔이 눈부시지 않아 안정감이 듬뿍 묻어난다. 한 면을 다 차지한 그림과, 다른 쪽엔 꽉 채우지 않은 작은 그림에 몇 줄의 글만 넣어 여백의 미와 공간의 여유를 주는 편집이 좋다.

늙은 까마귀가 덫에 걸린 백조를 구해주고 받은 별가루는, 자기 전 베개 밑에 조금 뿌리고 소원을 빌면 아침에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마법같은 환상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부러워하는 마법같은 소원빌기... ^^ 까마귀는 주머니쥐의 생일초대에 짧은 꼬리로 갈 수 없어 슬퍼하는 생쥐에게 별가루를 준다. 또 선물 살 돈이 없어 슬픈 청개구리에게도 나누어 준다. 생일잔치에 같이 갈 친구가 없어 슬픈 토끼에게도 소원을 이룰 수 있도록 나눠준다. 모두 생일잔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도 까마귀는 몰래 숨어 혼자 외롭게 구경한다.

지친 까마귀는 집으로 돌아와 이제는 늙어서 반짝이는 것들을 주워 올 수 없어 슬퍼한다. '나도 예전엔 젊고 멋있었는데...... 나도 소원을 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는데 반짝 달빛에 별가루 하나가 보인다. '아~ 다시 젊고 활기찬 새로 만들어 주렴.' 다음 날 아침, 까마귀는 힘찬 날개로 하늘을 날아오르며 소원을 이루었을까?

자기 소원보다는 슬퍼하는 이웃에게 별가루를 나누어 준 착한 까마귀가, 자신의 소원도 이루어 힘차게 날아오르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늙은 까마귀를 다시 젊은 까마귀로 되돌린 마무리가, 마치 노인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아 내맘에는 썩 내키지 않았다. 열심히 살아 온 늙은 까마귀에게 도움받은 이웃들이, 잔치에 초대해 위로했다면 더 뻔한 이야기일까? ㅎㅎ

하여간 이야기는 별하나 감점이지만, 그림에 높은 점수를 줄만한 책이라 추천한다. 아이들은 그림에서 본 장면과 색감을 자기도 모르게 모방하므로, 좋은 그림책을 많이 보는 것이 그림 솜씨를 키우는 방법도 된다. 내용이 교훈적이라 재미는 덜하지라도 뭔가 의미를 찾아 생각에 잠길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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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8-02-18 0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색감이 참 멋지네요. 아이들에게 별가루가 있으면 무슨 소원을 빌고 싶은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좋겠어요 ... 음, 난 무슨 소원을 빌지? ^^

순오기 2008-02-18 07:24   좋아요 0 | URL
책을 읽고 나면 '나도 별가루가 있었으면...'하는 아이들이 있지요.^^
음, 나는 무슨 소원을 말할까~~~~

산사춘 2008-02-19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책이 아니라 미술작품이네요.
손으로 만져보고 싶게 만들어요.

순오기 2008-02-19 02:16   좋아요 0 | URL
예, 정말 그림이 마음에 쏘~ 옥~ 드는 책이에요.^^

이팝나무 2008-03-06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갖고 싶은 책이네요..사러 갑니다.

순오기 2008-03-06 17:13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님의 서재에도 다녀왔어요. 감사^^
 

겨우내 옥상에 올라가기 귀찮아서 빨래를 실내에서 말렸다. 아파트처럼 베란다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밤새 뜨끈뜨끈할 보일러 선따라 건조대를 세워두면 바짝 마른 얼굴로 아침을 맞는다. 해마다 게으른 아줌마의 겨울나기였다. ^^

지난 주부터 어찌나 햇살이 눈부시게 유혹하는지 '이제 빨래를 밖에다 널어야겠다' 생각하면서도, 또 옥상까지 올라가긴 싫어서 밍기적거렸다. 오늘 아침은 산뜻한 햇살을 거부하지 못해 옥상까진 아니어도 마당에 빨래를 널었다. 아~~ 빨래를 널고 보니, 살포시 춘설이 날리는거다. 햇살과 더불어 내기하듯 내리던 춘설이 어느새 밀렸는지, 이젠 눈부신 햇살이 승자의 미소를 짓는다.

아~~~ 봄이 시작되는구나! 봄 햇살에 겨우내 웅크렸던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듯, 청춘남녀들의 사랑도 열리겠구나. 호~~ 부럽다! 불혹에 흔들리던 아줌마의 청춘은 한 발작 앞에 있는 지천명에 살짝 숨을 멈춘다. 아서라~~제 사랑 곁에 두고 딴맘 먹는 족속들 탓하던 날이 있었으리니, 시 한편으로 위로받으심이 어떠리!

   
 

 자전거의 연애학        -손택수-

  홀아비로 사는 내 늙은 선생님은 자전거 연애의 창안자다 그에 따르면 유별한 남녀 사이를 자전거만큼 친근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일단 자전거를 능숙하게 탈 줄 알아야 혀 탈 줄 안다는 것, 그건 낙법과 관계가 있지 나는 주로 하굣길에 여학교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점찍어 둔 가방을 낚아채는 방법을 썼어 그럼 제깐 것이 별수 있간디, 가방 달라고 죽어라 뛰어오겠지 그렇게만 되면 만사가 탄탄대로다 이 말이야 지쳐서 더 뛰어오지 못하는 여학생 은근슬쩍 뒤에 태우고 유유히 휘파람이나 불며 달려가면 되는 것이지 뒤에서 허리를 꼭 잡고 놓지 못하도록 약갼의 과속은 필수항목이고, 그렇게 달려가다 갈대숲이나 보리밭이 나오면 어어어 브레이크가 말을 안듣네 이를 어째 가능한 으슥한 곳을 찾아 재깍 넘어지는 거야 그러고는 아주 드러누워버리는 것이지 어째 허리가 펴지질 않는다고, 발목이 삐끗했나보다고, 아무래도 여기서 쪼깐 쉬어가는 게 낫겠다고....... 아울러 이 모든 일엔 품위가 있어야 혀 서화담이 황진이 만나듯인 아니더래도 서규정*이 직녀를 만나듯은 격이 있어야 된단 이 말씀이지 이것이 요즘 너희 젊은것들 잘 나가는 오토바이나 스포츠카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자전거 연애라는 것이야 허허허 좋은 세상이란 그런 것이지 젊으나 젊은것들이 불알 두 쪽만 갖고도 연애를 걸 수 있는 세상이지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한 말씀 더 남기신다 그런데 그 맛에 너무 깊이 빠지면 못써, 잘못하면 나처럼 이 나이껏 혼자서 살아야 할 테니께.

*서규정 '직녀에게' 빛남출판사 1999.

 
   

요즘에 청춘남녀들은 어떤 곳에서 어떤 식의 연애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피가 뜨겁던 사랑 감정이야 시대 따라 다르랴?  아~~ 봄이다. 병아리들은 유치원에서 신나고 아이들은 새학년이 되어 즐거우리. 이제 선남선녀 청춘들은 사랑을 시작하기에 좋은 계절 아니겠는가!

아줌마는 옛날식 사랑을 읊어주신 손택수의 시집 '목련전차'나 꿰차고 봄을 시작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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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8-02-17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도 실내에서 말리고 있답니다. 베란다에도 나가기 귀찮아요~~ 겨울 빨래는 자연 가습기 역할^*^
자전거 연애학 운치 있습니다.

순오기 2008-02-17 17:15   좋아요 0 | URL
청춘이 부러워서 살짝 질투나는 아지매!^^

L.SHIN 2008-02-18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데요, 시. ^^

요즘 낮의 햇빛이 제법 따뜻해졌죠? 그래도 바람은 아직 차가우니 감기 조심하세요.

순오기 2008-02-19 01:28   좋아요 0 | URL
그래요. 햇살은 따사로운데 바람은 여전히 차가운...그래도 봄내음이 몰려오는 그 맛이 좋아요!!

산사춘 2008-02-19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 따땃한 햇빛 아래서 자전거를 열심히 탔구요,
할아버지들 많이 만났답니다.
총각들은 밤에만 타나벼요. (너만 백수여!)

글을 보니 사심끼는 춘 올림


순오기 2008-02-19 02:17   좋아요 0 | URL
호호호~ 요즘 햇살이 정말 좋아요.
자전거도 탈줄 모르는 아지매는 그저 부러워요!
사심끼는 춘님, 총각 하나 싣고 달려보시와용.^^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 광해군일기 - 경험의 함정에 빠진 군주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폐위 군주라 '조'나 '종'도 못 붙이고, '실록'이 아닌 '광해군 일기'라니? 가슴이 짠해지는 우리의 왕이다. 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TV 프로그램 '한국사전'에서 지난 주 '광해군'을 다뤘다. 임진왜란때 선조는 도망가기 바빴지만, 훌륭하게 분조를 이끌어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던 세자. 훌륭한 왕이 될 그릇이었는데, 폐주로 유배지 제주에서 마친 생이 참 안타깝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처음부터 6학년 막내의 독후감으로 올렸기에 11권도...... 이제 중학생이 되면 한 차원 높은 역사인식이 생길 것이라 기대하며!

 
광해군 일기         6학년 선민경

광해군은 앞서 10권에서 전쟁을 피하고 이순신을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아서 내가 ‘어떻게 이럴 수 있냐?’ 라며 분통을 터뜨리게 한 선조의 아들이다. 질투심이 많은 선조는 자기와 달리 전쟁 중 분조를 훌륭하게 이끈 아들에게까지 질투를 해서 광해군은 험난한 어린시절을 보내게 된다. 머리도 똑똑하고 왕의 자질이 있었던 광해군이지만, 어릴 때의 경험으로 인해 결국 옥좌에서 끌어내려진다.

광해군은 역모사건에 유난히 집착했었다. 세자의 자리를 위협당하면서 자라서 그런 건지, 말도 안 되는 역모라도 일단 역모라면 친히 국문장까지 나왔다. 참 어릴 때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광해군은 강력한 군주였지만, 그의 권력을 더욱 높여주었던 옥사가 문제였다. 옥사에 집착하는 왕의 마음을 알아준 이이첨, 그에게 힘을 실어주다 보니 점점 그의 세상이 되어 갔던 것이다. 그래서 옥사를 하지 않으려고 이귀, 김자점 등의 진짜 역모사실이 올라왔는데도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참 운도 지지리도 없다. 가짜는 다 살펴보고 진짜는 피해가고... 어쨌든, 인조반정에 의해 광해군은 폐위되고 죽었다. 광해군은 나름 훌륭한 군주가 될 것 같았지만, 어렸을 때의 경험이 그를 폐위되게 만들어서 좀 아쉬웠다.

지난주에 텔레비전 ‘한국사 전’에서도 ‘광해군’이 나왔는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본 덕분에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독서를 하면 이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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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Journey 2008-02-17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경이가 독서의 힘을 제대로 느끼고 있군요. 책을 읽은 후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태도가 그 힘을 배가시키는 것 같아요. 훌륭해요~~

순오기 2008-02-17 17:03   좋아요 0 | URL
읽고 그냥 지나치는 것보단 쓰는 것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정작 중학생 아들녀석은 한권도 안 봤다네요. 한강 10권을 40일에 걸쳐 오늘 끝냈으니, 이제 읽게 해야겠어요. 학교 공부를 위해서도... ^^

fallin 2008-02-1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국사공부를 할 때 광해군을 좋아라 했었는데... 가장 아쉬운 군주란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리뷰 읽으니 저도 역사공부를 하고 싶어지네요^^

순오기 2008-02-17 17:04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정말 아쉬움이 많은 군주...정조와 더불어!
저도 이 책을 읽으며 역사공부를 다시 해야겠어요.^^

마노아 2008-02-18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사 전을 찾아봐야겠어요. 전 다음 편 인조실록에서 민경이가 어떻게 반응할 지 궁금해요. 우리 미리 냉수 떠다 놓고 마음의 준비를^^ㅎㅎㅎ

순오기 2008-02-19 01:2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인조실록 보고 나면 '남한산성' 본다 할거 같은데~~
냉수는 항상 준비되어 있으니 마음만 준비하면 될 듯...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