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논은 목요일까지만 학교에 가고 금요일은 쉰다. 아마도 기독교의 주일에 해당하는 날이 이슬람에선 금요일인 것 같다. 그래서 금요일 아침은 늦게 일어난다. 내 아들이나 남의 아들이나 학교 안가는 날 늦잠자는 건 마찬가지다. 나도 학교 안 가는 날의 늦잠자는 맛을 알기에 일어날때까지 놔 둔다. 우리 애들은 그러면 '해가 000까지 뜨도록' 잔다. 그래도 버논은 9시 되기전에 일어나니 양호하다.

오늘, 복지관에서 하는 '주부대학 초급생활영어회화'의 첫수업이었다. 버논한테 "I am go to english conversation study today begining." 이렇게 말하고 달려갔다. 이 말이 어법에 맞는지 안 맞는지 난 모른다. 그냥 버논이 알아먹었으면 되는 거다.~~~ㅎㅎ 내가 콩글리쉬로 지껄여도 그는 다 알아먹는데, 문제는 그가 하는 말을 내가 못 알아먹는다는 거니까......

하여간 35명 정원이었는데, 47명이 등록했다~~ 오~~놀라워라, 대단한 아줌마들의 이 열정을 누가 말리랴! 호주에서 3년간 있었다는 상큼한 아가씨가 우리의 선생님인데, 왜 영어를 배우러 왔는가 물었다. 아마도 70 가까이 됐음직한 우리들의 왕언니 왈, "1년에 다섯달은 미국가서 겨울나고 오는데, 손주들과 영어로 얘기할래도 주둥이가 안 떨어져서 좀 배우려고 왔어요." 이러시는 거다. 헉~~~주둥이란 말에 다들 웃었지만 충분히 공감하는 분위기,

또 딸 아이가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우는데, 엄마가 읽어주면 "엄마, 우리 선생님은 그렇게 안 했어. 엄마 소리는 이상해." 라는 말에 부끄러워, 이참에 제대로 발음 좀 배우자는 생각으로 왔단다. 또 다른 엄마들도 아이의 학습을 위해 기꺼이 왔노라고 몰표를 던졌다.ㅎㅎ 대한민국 엄마들의 자랑스런 교육열에 힘입어 자신을 한 단계 UP시키는 건 좋은 현상이다.

"저는 원어민 강사 홈스테이 하는데, 제가 할 말은 한영사전을 찾든, 콩글리쉬든 뜻이 통하는데, 그 친구가 하는 본토 발음이 '소 귀에 경읽기'라서 도움을 받을까 하고요..."  "와아~좋겠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탄성모드로 잠시 술렁였다. '부럽긴 뭬가 부럽다는 거야. 애들 영어실력 쑥쑥 올라가는 줄 알고?' ㅎㅎㅎ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 나......

하여간에 오늘 두시간 재미있게 공부하며, 궁금했던 걸 질문도 하고 내겐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니, 버논이 뭐라 뭐라 묻는다. 그런데 딱 하나 귀에 걸리는 단어가 'Class'였다. ㅎㅎ~오늘 수업이 어땠는지 묻는거구나 눈치로 때려잡고, "I`m so good, i`m so happy"  이 말이 대답에 맞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내 기분은 그랬다.

버논은 어제 먹고 남은 핏자 두 조각 뎁히고, 나는 육개장과 열무김치에 밥을 차려 한 식탁 딴 상차림으로 점심을 먹고, 친구들과 여행 간다는 말을 한참 하는데, 그 중에 내가 알아 들은 말은 "~~come back home, sunday"

"친구 누구? 팀, 레아~?" 하고 물으니, "another Friend"

"일요일 언제 올건데?"  "I don`t know, sunday afternoon"

나는 콩글리쉬로 묻고, 그가 하는 본토 발음중에 내 귀에 걸리는 녀석만 알아먹는 나......

어떤 친구인지 잘 모르지만, 2박 3일 가방 싸서 여행을 갔다. 참, 남의 식구라는 게 이런 건가~~며칠간 밥을 안 해줘도 된다 싶으니, 오늘도 반찬하기 싫어서 오랜만에 해물을 듬뿍 넣은 쟁반짜장 시켰다. 우리 네식구, 쟁반짜장 10,000원어치 시켜 면은 먹고 남은 소스에 흰쌀밥 쓱쓱 비벼 먹었다~~~아,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안 먹냐고? ㅎㅎㅎ우리 네 식구 간만에 쟁반짜장으로 포식했다.

'버논도 어디서든 저녁밥은 먹었겠지?'

 ***아 참, 오늘 영어공부를 하다보니 아주 아주 쉬운 단어도 자신있게 쓸 수 있는 spell~~몇 개 안되더라는 비애를 절절히 느끼고 왔다. 여기 쓴 것도 옆에 아들한테 묻거나 사전 펴서 확인했다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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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2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들에게 배울 기회를 주면 거의 매진이 되더군요.
저도 여기 저기 다녀 보았지만 엄마들에게 치어서 많이 힘들어요.
대신 자극을 많이 받고 공부도 많이 되지요.
열심히 사는 분을 옆에서 보면 기운이 많이 나는건 사실이에요.
열심히 해보세요.
주둥이~가 아주 친근하게 느껴지는 글이었어요.

순오기 2007-09-22 00:08   좋아요 0 | URL
ㅎㅎ~ 주둥이 그 얘기를 간간히 여러번 반복해서~~~ㅎㅎㅎ
옙, 저도 열심히 해보렵니다~~~ 매주 금요일 10주, 20시간이니까요...
빠지지 않고 배우다보면 뭔가 건져지는 게 있겠죠?

마노아 2007-09-21 2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들의 공부도 끝이 안 나요. 삶이 끝없는 공부이기도 하지만요^^
버논의 여행으로 나름 휴가 분위기가 된 건가요? ^^;;

순오기 2007-09-22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마노아님, 사실 버논이 있어도 저 하던대로 다 하고 사는데도 며칠 없다 생각하니 엄청 한가하고~홀가분하고... 그런거 있죠? ㅎㅎㅎ

라로 2007-09-22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넘 멋져요~~~.
늘 활기차시고!!!!그 에너지의 원천은 뭘까요???ㅎㅎ
오랫만에 올리신 페이퍼 넘 재밌었어요.ㅎㅎㅎ
그래두 알아들으실건 다 알아들으시면서~~~^^

순오기 2007-09-22 01:10   좋아요 1 | URL
nabi님, 제 영어가 맞는건가요? ㅎㅎ울 아들넘에게 물으니, 버논이 알아들으면 됐지 뭘~그런던데요! ㅎㅎㅎ
에너지의 원천? 그거 애 셋 낳아봐야 알아요~ㅎㅎㅎ

세실 2007-09-22 1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o good! 님 늘 활기차고 멋지십니다. 작은아이 윤선생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때 저두 영어공부 시작~~
풍성한 추석 되세요!

순오기 2007-09-22 14:44   좋아요 1 | URL
예, 감사해요!
세실님도 풍성한 추석 되세요오오~~~~~~ ^*^
 
하얀 눈썹 호랑이 안 알려진 호랑이 이야기 1
이진숙 지음, 백대승 그림 / 한솔수북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앞뒤 표지가 연결되도록 좌악 펼치면 한마리 호랑이가 하얀 눈썹을 달고 뭔가 모호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글쎄~이런 표정을 뭐라고 묘사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그저 쥐꼬리만한 나의 표현력을 탓할 수밖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한솔수북에서 나온 '잘 알려지지 않은 호랑이 이야기' 1번을 찾아보시라.

이 책은 민화풍의 그림과 환타스틱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아이들이 상당히 좋아했다. 흔히 들은 호랑이 이야기가 아닌 새로운 이야기라 내용에도 무척 흥미로워 했지만, 그림을 가까이 보려는 아이들은 "잠깐만요, 그림 더 보여주세요" 라고 외치며 그림에도 상당히 집중했다. 그림책은 바로 이런 맛에 보고 또 본다는 걸 입증한 책이다.

게다가, 하얀눈썹만 있으면 사람의 속마음을 볼 수 있다는 것에 환호하는 녀석들, 자기들도 호랑이 눈썹 얻으면 선생님 마음을 엿보고 싶다나~ㅎㅎㅎ 귀여운 것들! 하얀눈썹으로 변신해서 하얀수염을 흩날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짠~하고 나타나서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여보면, 멧돼지, 여우, 너구리, 뱀... 더럽고 추악한 사람들의 모습이 여지없이 드러나 꿀꺽~~잡아먹었다는 이야기.

그렇게 변장했어도 호랑이라는 걸 알고, 굽이굽이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온 맹랑한 여자 아이, 그 아이의 속마음은 선녀인듯, 천사인듯 아주 고운 마음이었기에 하얀눈썹을 얻었다. 그 여자애는 호랑이 말처럼,착한사람을 돕는데 썼을까? 궁금증을 던지는 마무리에 호기심이 발동한 녀석들은 스스로 뒷이야기를 꾸며보겠다고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모두들 뒷이야기를 꾸미는 와중에도 조용히 독서일기를 남긴 아이가 있어 소개한다.

독서 일기 - '하얀눈썹 호랑이'를 읽고     2학년 박하은

호랑이야, 넌 어떻게 해서 천살까지 살 수 있니?

난 엄마 아빠가 살으실 때까지 안마 해드리고 효도 할거야.

호랑아, 너 거짓말로 마음 알아보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니? 내 속마음도 한번 알아맞춰 봐.

호랑아, 너 진짜 산신령이니? 호랑아, 넌 좋겠다.

넌 하얀눈썹으로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아서 좋겠다.

나도 사람들의 속마음을 보고 싶어, 어떻게 네가 가진 하얀눈썹을 가질 수 없겠니?

하얀눈썹을 받은 그 여자애는, 정말 외롭고 힘들고 병든 사람들을 돕는데 썼을까? 정말 궁금해.

그리고, 이 책에 신기한게 많아서 난 친구들에게 읽어보라고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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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9-2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그림들이 저도 궁금해요. 아이의 독서일기가 참 솔직하고 순수해요. 저도 호랑이의 속눈썹을 갖고 싶어요. 평생은 말고 하루에 한 번만 사람 속내를 알 수 있음 좋겠어요^^ㅎㅎㅎ

마노아 2007-09-2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리보기로 그림을 보았는데 엄청 매력적이에요! 당장 장바구니에 담았어요(>_<)

순오기 2007-09-22 00:05   좋아요 0 | URL
제가 님처럼 포토리뷰를 올린다면 좋을텐데...요즘 거기까지는 신경 쓸 참이 없네요. 그저 님이 올리는 포토리뷰 감상하는 걸로 만족입니다. 요 책도 님이 포토리뷰로 올리실거죠? 기대합니당!!

뽀송이 2007-09-22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고 싶어지는데요.^.~
민화풍의 그림이라 더 관심이 가요.^^
짬을 내어 잠시 들렀어요. 고향 가셨을래나??

순오기 2007-09-22 14:37   좋아요 0 | URL
앗~민화풍의 그림이란 말에 책임이 있을듯...딱히 맞는 표현이 아닌것 같아요. 동양적인 그림에 환타스틱한 분위기인데 뭐라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선인장 호텔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2
브렌다 기버슨 지음, 이명희 옮김, 미간로이드 그림 / 마루벌 / 199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선인장 호텔은 생태계의 질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온갖 동물들의 호텔이 되어주는 사구아로 선인장은 미국 남부의 사막과 멕시코 북부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키 20미터, 무게 8천 킬로그램에 수명이 200년이나 되는 거대한 사구아로 선인장의 일생을 다룬 그림책이다.

그림이 참 예뻐서 좋고, 환경문제와 생명체의 최대목표인 종족유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잠시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어른들은 이런 이유로 좋은 책으로 손꼽지만, 실제 어린이들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주제의 무거움에 아이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저학년보다는 고학년을 위한 책으로 추천한다.

그러나 그림책이라 실제 저학년 아이들이 많이 접한다. 그래서 저학년에게 읽어줄때는 선인장의 성장을 강조하여, 다섯살 어린이만큼, 엄마 키 두배만큼, 아빠 키 세배 만큼...  오버하듯 읽어주었고, 고학년에겐 생태계의 순환과 인생을 생각할 수 있는 주제로 접근하도록 도와 주었다.  이 책을 읽고, '사구아로 선인장'과 '팔로버드 나무'를 알게 되어 참 좋았다.

마노아님이 올린 '선인장 호텔' 리뷰를 보다가, 아들 녀석이 6학년 여름방학에 그렸던 만화가 생각나 찾아 보았다. ㅎㅎ~ 역시 보물창고에 잘 보관하고 있으면 이렇게 쓸모가 있다. 이 다음, 아이들이 자기 영역에서 빛나는 사람이 되었을 때, 생가를 기념관으로 만들면 전시할 게 있어야 될 거 같아 버리지 않고 두는 것중에 일기, 독서록, 방송기록장, 편지, 앨범... 이런 것들이 있다. 엄마의 야무진 꿈이 이루어지리라 믿으며, 오늘도 아들 솜씨를 고슴도치 엄마가 되어 올려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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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9-20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순오기님표로 다시 읽으니 더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갑니다. 아드님 그림 독서일기 너무 멋져요. 울 조카도 이런 글 언제나 쓰려나 생각했습니다. 전시회 준비까지 하시고, 아드님 분명 크게 될 거야요^^ㅎㅎㅎ

순오기 2007-09-21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옙, 크게 될 겁니다~ㅎㅎ~우리집을 생가 기념관으로 만든다는 엄마의 꿈, 꿈은 이루어진다!~~~ 참 좋은 말입니다~~~그쵸?
앞집을 사서 우리집과 연결된 도서관으로 꾸미려는 프로젝트를 꿈꾸고 있지요.
'도서관'의 엘리자베스 브라운 같은 삶이 제가 꿈꾸는 미래... ^.~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3 - 인도차이나 남부아시아
한비야 지음 / 금토 / 1998년 7월
평점 :
품절


*아들녀석이 중1때 남긴 독서노트 엿보기가 계속 됩니다.

Man, Men   선성주 (2006. 11. 5. 어제와 같은 날씨)

'바람의 딸~~~'시리즈는 내용구성이 다 같다. 그 나라의 오지체험, 에피소드다. 각 권마다 읽었던 걸 또 읽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도 굳이 쓰자면 3권은 인도차이나와 남부아시아 편인데, 남자에 관한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일 수 있는 장면은 마약 피는 남자에 대한 것이다. 가장이 하루종일 일도 안하고 마약만 피운다. 여자와 아이는 일을 한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름지기 남자라면 일을 하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것은 말 그대로 하루종일 마약만 피운다는 것이다. 심심하지도 않을까? 난 아무리 좋아하는 컴퓨터라도 몇 시간 계속 하면 지루해진다. 지지치도 않고 마약만 피워대니 어디 살 맛이라도 날까? 마약이 과연 삶의 맛일까? 마약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처음엔 재밌었지만 3권까지 읽고 나니 지금은 더 읽고 싶지 않은 바람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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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9-19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솔직한 리뷰네요.

비로그인 2007-09-19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들의 리뷰를 보는것같아요.
읽으며 웃었어요.

라로 2007-09-1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한비야의 책들을 광신자 처럼 읽었더랬는데,
마지막 책 한권은 읽다 말았다는,,,,^^;;;
근데, 아드님의 시각이 예리한데요!!

순오기 2007-09-20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애들의 장점이자 단점은 너무 솔직하다는 거...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꾸미는 거 잘 못하는 유전자 때문인듯...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기 - 역사 보물 창고
마저리 엘리자베스 브라이머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1972년이던가~  '자유교양도서'라는 문고판보다 조금 큰 연하늘색과 살구색 표지의 시리즈 책이 있었다. 늘 읽을 것에 굶주렸던 난, '그리스 로마신화'를 발견하고 한동안 끼고 살았다. 이런 좋은 기억에도 불구하고 신화의 세계를 역사의 세계로 성큼 끌어 올린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기'를 읽는데는 망설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집중할 수 없다는 이유로 톡톡 끊어서 읽게 될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다 며칠 전 만사 제쳐두고 책을 펼쳤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정말이지 손에서 놓기가 아쉬워 학교에 땡땡이 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렇게 재밌는 책을 왜 자꾸 미뤘을까 살짝 후회도 하면서~~~

우선 이 책의 장점을 짚어보자~~~
1. 친절한 각주가 붙어 있다.
책의 두께에서 멈칫, 어렵거나 딱딱하지 않을까라는 지레짐작으로 주춤하게끔 표지는 장중함을 담고 있다. 그러나 책을 펼치면 굵은 소제목 아래 '오디세이아'의 한 구절을 적어 관심을 확 끌어당긴다. 그리고는 각주를 달아 친절한 설명으로 오디세이아와 지명이나 인물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슐리만의 행보를 따라잡는데 어렵지 않도록 잘 안내하고 있다. 

 2. 짧은 챕터가 독서 속도를 조절한다.
한 챕터의 길이가 결코 길지 않아 질리지 않도록 독서 속도를 조절한다. 지나치게 짧은 챕터는 이야기의 흐름이 끊기기 쉽고, 너무 긴 챕터는 따라 읽으려면 호흡이 빨라져서 내가 읽은 부분을 되새김하기가 벅차다. 그러나, 이 책은 적당한 길이로 슐리만 따라 잡기가 무리없이 진행된다.

 3. 21줄의 편집이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내가 노안이 올만한 나이가 돼서인지, 보통 한쪽에 25줄이 들어찬 책은 읽기가 힘들다. 글자 크기도 작고 너무 빽빽해서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 그런데, 이 책은 21줄의 편집이라 너무나 반가왔다. 게다가 가끔 각주가 붙어 있어 20줄 미만일 때가 많으니 270여페이지가 어느 틈에 슥슥 잘도 넘아간다. ^*^ 노안이 가까운 나이보다는 한창 꿈을 키워 갈 청소년들을 위한 도서라, 그들이 질리지 않고 잘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4. 지도와 사진으로 이해를 돕고 근거를 제시한다
슐리만의 행보에 따라 지도와 관련 사진을 넣어 이해를 돕고, 슐리만 행적의 근거를 제시한다. 1,2,3부 들어가기 전, 한 페이지에 가득 넣은 지도로 그리스와 트로이 등 주변을 지리적으로 훑어볼 수 있게 안내한 것도 좋다.

 5.에필로그와 부록으로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에필로그 '현대 고고학의 태동'이란 제목으로 신념과 열정으로 이룩한 슐리만의 업적을 다시 한번 요약 정리하여 짚어준다. 또한 부록으로 '트로이 유적 연대표, 슐리만 연보, 저자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도서, 찾아보기'까지 두어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세심한 편집에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이제는 이 책의 주인공 '하인리히 슐리만'을 살펴보자.
1. 슐리만은 자기 가치를 창출할 줄 아는 사람이다.
10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삼촌집으로 보내져 학교도 다니다 말고, 식품점에서 일하다가 회사 사환으로 일한다. 그는 어떤 일이 맡겨져도 최선을 다하여 인정을 받음으로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 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것도 자신의 가치를 최고로 만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2. 탁월한 언어 능력은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이다.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만나는 현지인과 소통하기 위해 그곳의 언어를 익히는 노력을 부단히 했다. 21살부터 40살이 넘어서까지 독학이나 과외를 받으며 영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포르투칼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중국어, 스웨덴어, 덴마크어, 폴란드어, 슬로바키아어, 라틴어, 그리스어, 아랍어, 힌두스타니어, 터키어를 익혔으니 언어의 귀재는 저절로 된 것이 아니었다.

3. 꿈꾸는 자만이 꿈을 이룰수 있다고 증명한 사람이다.
여덟살에 아버지에게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 '어린이를 위한 세계사'는 그의 일생을 바꿔 놓은 책이다. 일리아스의 트로이가 슐리만의 가슴에 박혀 역사 앞에 트로이를 드러내리라 꿈꾼다. 그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신념과 열정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여덟살에 꾼 꿈을 일생동안 실현한 그의 열정은 젊은이들의 본보기가 될만하다.

4. 돈을 벌 줄도 알고 쓸 줄도 아는 사람이다.
슐리만은 트로이 발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엄청난 돈이 필요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돈을 벌었고,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넣어 과감하게 트로이 발굴에 착수했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였고 뜬구름 잡는 일이라 비아냥거려도 자신의 꿈을 위해 과감하게 돈을 쓸 줄 아는 진짜 사업가였다.

5. 실패를 겁내거나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실패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크림전쟁으로 자신의 재산이 송두리째 날아갈 상황에서 '운명의 신이 빗겨가는구나' 원망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큰 그릇이었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버리지 않고 아무것도 잃지 않은 유일한 사람으로 그의 꿈을 실현하도록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결혼생활의 실패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트로이 발굴을 이해하지 못하는 첫부인과 이혼하고, 자신의 꿈을 이해하고 지원해주는 새로운 반려자 소피아를 만나 트로이 발굴의 꿈을 이룬다. 10년이 넘는 세월의 발굴작업에서도 학자들의 비난과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결과물로 증명코자 노력한 사람이다.

6. 끊임없이 배우고 저술을 남긴 부지런한 사람이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언어 뿐아니라 고고학이나 발굴에 필요한 것들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기록이나 저술로 결과물을 남겼다.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고고학과 발굴작업이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무엇이든 길을 개척하는 사람은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슐리만은 끊임없이 배우고 기록하므로 그 길을 열어 놓은 고마운 사람이다.

꿈꾸는 사람 하인리히 슐리만은 트로이 발굴기를 읽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꿈을 꾸는가? 그 꿈을 위해 당신의 일생을 걸 수 있는가?"
오늘 책으로 만난 그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진지한 물음에, 당신은 자신의 꿈이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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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za 2007-09-17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묘미 있는 리뷰네요. 장점을 이렇게 추릴 수 있다는 것도~ 시간 나면 한번 읽어봐야 겠어요

순오기 2007-09-18 08:38   좋아요 0 | URL
ㅎㅎ~ 너무 길어서 읽기가 그렇죠?
저도 리뷰 쓰다가 간식 만들어 큰딸 기숙사에 갔다주고..세번에 걸쳐 썼어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길어진지도 모르고... 읽는 사람을 배려하지 못했네요.
이자님, 굵은 소제목만 읽으셔도 될거예요!

개구리 2007-09-19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깔끔한 정리가 돋보이는 서평 ^^ 울 딸이 읽기엔 좀 어렵겠지만, 관심가져봅니다.
꾹꾹꾹!

순오기 2007-09-21 21:02   좋아요 0 | URL
따님이 몇학년? 6학년 우리 민경인 재미있게 읽었대요!

책향기 2007-09-20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나의 꿈이 무엇있던가 생각하게 되네요. 보관하고 갑니다. 추천두요~^^

순오기 2007-09-21 21:02   좋아요 0 | URL
정말 꿈꾸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지요~~~~잃어버린, 잊어버린 꿈찾기 도전!

쏭쏭아 2008-01-23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좋은 리뷰같아요^^* 도서관에서 방금 이 책을 읽고 왔는데 그 책을 읽고 나서 이 리뷰를 읽고나니까 더 정리가 잘 되네요^^* 감사해요

순오기 2008-01-23 23: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 책을 읽었다니 친밀감이 드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