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푸른도서관 24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작품을 읽으면서는 수없이 울지만, 작가후기를 읽으며 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간간히 들렀던 작가의 블로그 '밤티마을'에서 자녀들 소식을 접했으면서도, 청소년 소설로 형상화시킨 작품 속의 이야기에 작가 엄마의 마음이 읽혀져 눈물났다. 그리고 작가후기를 연거푸 읽으며 두번이나 울었다.

작가 후기에서 "작가가 체득한 삶이 작품에 스며들어, 청소년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들과 딸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들었다." 고 밝혔듯이, 나 또한 우리 아이들과 치열하게 치뤄낸, 아니 지금도 치루고 있는 감정의 대립과 갈등에 살기 싫을 만큼 참담한 진통을 겪어내는지라 저절로 공감의 눈물이 나왔다. 그건 아이에게 남았을 상처와 응어리가 안타깝고, 아이의 감정에 공감하며 보듬어 주지 못했던 자책의 눈물이었다. 이 책을 읽고 감정을 추스리고 숙성시켜, 중3인 아들과도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책 속 주인공들이 행복을 저당잡히고 벼랑 끝에 선 우리 아이들이기에, 나는 그네들을 벼랑으로 내몰지 않았다고 발빰할 수 없는 양심을 가진 독자나 엄마로서 편하게 감상할 수는 없었다. 책 속 이야기가 내 주변에서 펼쳐지는 리얼한 현실감에 코가 먹먹하고 답답한 가슴을 누를 길이 없었다. 노는 아이로 찍힌 난주나 이상한 아이로 찍힌 은조가 바로 내 아이는 아니어도, 우리 딸의 친구였고 우리 아들의 친구들이다. 자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한집에 살았던 경화를 협박하고 옥상에서 밀어버린 난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지난 겨울 절박한 심정으로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 아들과 동갑이었던 이웃 학교의 녀석이 생각나 소름이 돋았다. 또한 우리 아이들에게도 '엄친아'를 심어줬다 생각하면 편하게 웃을 수 없었다.

벼랑에 실린 다섯 편 중, '베스트 프렌드'에 실렸던 '늑대거북의 사랑'이나 '호기심'에 실렸던 '쌩 레미에서, 희수"를 읽고, 우리 큰딸이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었다. 작가선생님은 요즘 고등학생들의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고딩들은 착하지도 않고 그 비행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하는데, 온실 속의 아이들만 그려낸다며 속상해 했었다. 그때 내가 작가를 편들며
"작가도 자기 체험을 바탕으로 주변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에 상상을 더하겠지. 작가의 자녀들이 커가는 대로 작품도 저학년에서 고학년 청소년 대상으로 바뀌었고. 아들이 자퇴하니까 금방 제도권을 벗어난 희수를 그려냈잖아. 범생이 자녀 엄마가 비행의 정도를 어떻게 짐작하겠니? 너도 고등학생이 되어 사방에서 모인 아이들을 보며 기절할 정도였잖아. 엄마도 너를 통해 알았고...... 앞으로 쓰는 작품에선 살벌하게 비행을 일삼는 청소년도 그려내겠지." 하고 말했었다.

그런데, 벼랑에선 온실을 벗어난, 아니 온실을 벗어나고픈 청소년들 얘기가 펼쳐지고 있다. 심각한 비행뿐 아니라 친구를 해코지 하는 청소년도 등장한다. 마치 연작소설을 보는 것처럼, 전편에 나온 주인공이 후편에서도 일정한 분량의 연결고리를 갖는다. '베스트 프렌드'와 '호기심'에서 만났던 두 작품도 연장선에서 읽으니 새롭게 다가왔다. 청소년 단편소설이 연작의 형식이라 신선했다. 첫 편인 '바다 위의 집'에서 스스로 생명을 끊은 미네르마 혜림이가, 마지막 편인 '늑대거북의 사랑'에서 영어 과외샘의 조카 혜림으로 연결되니까 그 절절함이 실감났다.

특히 작가의 아들이 학교를 벗어나겠다 했을 때, 방황하고 갈등하더라도 누구나 걷는 그 길로 다시 들어서기 바라며 '늑대거북의 사랑'을 썼고, 입시 감옥을 벗어나 다른 체험을 시키므로 지금 그 자리의 고마움을 깨닫기 바랬다는 '초록빛 말'이나, 작가의 딸을 모델로 했다는 '바다 위의 집'에서 풀어내는 그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었다. 학교에 대한 불만이나 수없이 자퇴하는 친구들을 보며 흔들리던 딸에게 했던 내 말이 어쩜 그리 똑같이 나오는지... 역시 입시문제는 겪어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인 듯했다.

엄마의 개인적인 체험이나 아픔을 독자와 같이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도록 형상화한 작가에게 고맙고, 엄마의 소설 모델이 되고 모티브를 제공한 딸이 표지 그림까지 그렸다니 대견스럽다. 청소년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은 이제 어른들의 몫이다. 남의 일 일때는 그저 너그럽게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내 아이 일이 될때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부모 뜻대로 하려는 게 이기심이고 위선이라는 자각에 철렁했다. 이렇게 청소년들의 상황과 현실을 잘 담아낸 작품을 읽으며, 그네들을 이해하고 보듬으려는 마음을 갖는 것도 어른들이 준비하고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깨달았다.

우리 청소년들이 꿈꾸는 저당잡힌 행복을 현실에서 누리기 소망하며, 오늘도 춧불 밝혀 뜻을 전하는 그들을 꼭 보듬어 주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희망꿈 2008-06-05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너무 잘 읽었어요. 리뷰만으로도 엄마와 아이들의 아픔이 느껴지네요.
저도 이 책 빨리 읽어야겠어요. 얼마전에 저에게도 왔거든요.
저희 아이들은 아직 어리지만 이런책들을 미리 읽어두면 도움이 되겠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면 좋겠네요.

순오기 2008-06-05 18:15   좋아요 0 | URL
정말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어야 하는데......미래를 위한답시고 현재의 행복을 저당 잡힌 아이들, 우리도 그애들을 벼랑으로 몰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요.ㅠㅠ
 

와아~ 굉장한 책이 나왔어요. 이 책은 꼭 사야겠어요~~

초중딩도 뿔났다 - 정치풍자콩트
김성동 (지은이), 김용민(그림) | 화남출판사
 현역 작가 22명이 광우병 파동, 대운하 사업, 영어 몰입교육, 대한민국 1% 부자 내각 인사들이 벌이는 불법.탈법적인 행태 강부자 고소영 내각으로 불리는 이명박 정부 측근 인사들의 주특기인 땅 투기 및 주식투기, 쇠고기 전면 개방 등 현 정권의 위태로운 정책을 통렬하게 꼬집은 정치풍자 콩트집이다.
화남출판사에서는 민심에 상처를 준 현 정권의 실정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고자 지난 3월부터 정치풍자 콩트집을 기획하였다. 기획 수립에서 원고 청탁과 출간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은 꼬박 석 달여에 걸쳐 이루어졌다

와아~~~ 잔치상 차린 이 메뉴 좀 보세요~~
메뉴만 봐도 군침 돌지 않나요?
아침에 열받았던 알라딘 쿠폰~~ 써먹지 못해도 이 책은 주문이야!! ^^

김성동 | 굿모닝, 오륀쥐
공선옥 | 영감님이 뿔났다
한창훈 | 다시, 구멍에 대하여
이남희 | 천국행 KTX
안재성 | 나 돌아갈래
임영태 | 영호 씨의 코드는 저질 국민이다
김상영 | 뼈대 있는 집안
이시백 | 몰입(沒入)
김곰치 | 악몽
윤동수 | 내 말을 믿지 마라!
조헌용 | 금이 나왔다
유응오 | 유 기자의 ‘특종’
최용탁 | 뭘 잃어버렸다고?
유영갑 | 은평리 이장 선거
김현영 | 기쁘다 구주 오셨네!
유시연 | 미국놈 만세다
박구홍 | 세상에서 펄벅과 박경리님을 가장 사랑하는 어느 귀부인의 경우
정용국 | 여민락(與民樂)
박숙희 | 양아치, 큰형님을 만나다
김종성 | 낯선 손님
강기희 | 저거, 홍식이 아녀?
박선욱 | 달인

~~~~지금 주문하면 6월 7일에 도착~ 그래, 100일도 참았는데 까짓거 나흘을 못 참겠어!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꼬 2008-06-03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진짜 잔치상이네요!

순오기 2008-06-04 04:40   좋아요 0 | URL
100일 잔치 제대로 판 벌렸죠!
명박, 자성의 목소리라고 한 걸 들으면~~ 우쒸!

라주미힌 2008-06-03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도 발빠르게 대응 하는군요 ㅋㅋㅋ

순오기 2008-06-04 04:41   좋아요 0 | URL
국민도 출판도 발빠르게 대처하는데...
갸들만 30년 전 그대로~~~~ ㅠㅠ

bookJourney 2008-06-03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 제목만 봐도 시원하네요~

순오기 2008-06-04 04:41   좋아요 0 | URL
결국 인터공원에 갔었지요.^^

무스탕 2008-06-03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만간 '조중동 신났다'도 나올지 몰라요 --+

순오기 2008-06-04 04:42   좋아요 0 | URL
조중동도 같이 끌어내야 돼욧!

Arch 2008-06-04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대박입니다.^^

순오기 2008-06-04 10: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이 책 대박나겠죠~ㅎㅎ 저도 어제 주문했어요. 다른 데서...ㅋㅋ

치유 2008-06-0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짓거 사흘을 못 참으랴..ㅎㅎㅎ순오기님 대박이네요~~~~.

치유 2008-06-04 14:10   좋아요 0 | URL
헉~~~~@@엿새기다리라는데요??

순오기 2008-06-04 21:21   좋아요 0 | URL
저도 다른 사이트에서 주문했는데 6월 10일 배송이라고 나왔어요.
아직 책이 준비가 안 된 건가?

Mephistopheles 2008-06-04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쯤되면 대부분 동정표가 모이는게 수순인데...
인물이 인물인지라 동정표조차도 안모이는 상황이군요 껄껄껄.

순오기 2008-06-04 21:19   좋아요 0 | URL
다들 대박을 기원하잖아요~ㅎㅎㅎ

ceylontea 2008-06-05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 저도 주문합니다.. ^^

순오기 2008-06-27 07:06   좋아요 0 | URL
으흐흐~ 이 댓글을 이제야 봤어요.
답방해야지~~ 쌩=3=3
 

그동안 꾹 참고 있다가 6월에 발급받은 쿠폰으로 책을 사려고 찜했던 신간도서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중고도서도 두 권 골라서 5만원 이상 마일리지 2,000원까지 딱 맞췄다. 음, 이 알뜰한 구매전략이라니 혼자 뿌듯해서 결제하려는데...... 헉~이럴수가!!

플래티넘 등급에 준 쿠폰 적용이 안되는 거다. 자세히 살펴보니 18개월 이상된 구간 도서 구입금액이 2만원 이상이어야 가능하다. 게다가 마일리지도 구간도서가 한권이라도 포함되어야 적용됐다. 물론 알라딘 맘대로 한 건 아니라고 나와 있다.

   
  작년 10월 도서정가제와 경품고시가 강화된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전 문화관광부)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할인쿠폰 및 마일리지 지급에 대해서 강화된 가이드라인을 제시받았습니다.

저희 알라딘은 도서정가제와 경품고시의 법 준수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으나, 그렇더라도 좀더 고객님들께 혜택을 드릴 수 있도록 법 해석을 하여, 가능한한 할인쿠폰과 마일리지 추가 지급 혜택이 급격히 줄어들지 않도록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할인쿠폰과 마일리지 추가 지급 등의 경품지급에 대해서 5월부터는 보다 엄격하게 감독 및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혀왔습니다. 이에 할인쿠폰 및 경품 혜택에 대해서 법률적인 가이드라인을 충족시키도록 가시적인 변경을 취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구간도서가 아닌 출판 18개월이 안된 신간도서를 구입할때는 쿠폰이나 마일리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쿠폰 금액도 6월에는 절반으로 뚝~~ 떨어졌는데 적용도 안된다니! 오늘 주워담았던 책들은 보관함으로 옮기고 결제를 안 했다. 갈수록 빡빡해지는 인심이라니... 이젠 책 사는 재미를 절반으로 팍 줄여야겠다.ㅠㅠ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울보 2008-06-0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투입니다,,ㅎㅎ

순오기 2008-06-03 18:25   좋아요 0 | URL
구입은 다른 사이트에서 하든지 해야지... 다른 사이트에 적립금 10만냥이 넘게 있어도 한권도 안사고 오로지 내사랑 '알라딘'이었는데 심통났어요.^^

2008-06-03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6-03 18:2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항상 그런식으로 맞췄는데, 오늘은 하기 싫었어요.
구입은 다른 사이트로 옮겨갈까봐요~흥!!

마노아 2008-06-03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고삽 책 한권 끼어서 같이 구매해요. 그나저나 인터공원 적립금도 쓰긴 써야죠. 아마 유통기한(?)이 있을 텐데요.

순오기 2008-06-04 03:51   좋아요 0 | URL
6개월인거 같아요. 그런데 구매액의 20%만 적립금으로 결제할 수 있다니까요~~~ 정말 어이가 없어요. 중고책 한권 끼우면 5만원 마일리지만 적용되고, 쿠폰은 적용이 안되더라니까요.ㅠㅠ

bookJourney 2008-06-03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인쿠폰 사용 가능 금액이 낮아진 대신 할인 금액도 적어졌더군요.
할인쿠폰 적용 안하고도 책을 많이 샀었는데, 할인 혜택이 적어지니 이상하게 사기 싫어지더라구요. --;

순오기 2008-06-04 03:53   좋아요 0 | URL
사람 심리가 그렇죠~ㅎㅎ 쿠폰없이도 잘 사들였는데...혜택이 적어지고 까다로워지니까 괜히 심술나는 심보라니!
기어이 다른 사이트 거래 시작했어요.^^

행복희망꿈 2008-06-04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마음은 다 같은가봐요.
저도 쿠폰 적용하려고 금액 맞춰서 구입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영~ 재미가 없네요.
까다로워지는 혜택에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하고 말이죠.

순오기 2008-06-04 10:46   좋아요 0 | URL
ㅋㅋ 알라딘 매출은 떨어져도 서재인들의 주머니는 털리지 않으니 좋은 일입니다! ^^

BRINY 2008-06-04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 저 엊그제 화장품 왕창에 잡지 한권 껴서 구입했는데, 플래티넘 쿠폰 적용받았는걸요?

순오기 2008-06-04 21:20   좋아요 0 | URL
그 잡지가 구간이었나요? 헐~~~~
 
경부운하, 축복일까 재앙일까
박진섭.장지영 지음 / 오마이뉴스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경부운하의 허와 실, 확실히 알면 얼마나 멍청하고 미친짓인지 판단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들마루의 깨비 작은도서관 12
이금이 지음, 김재홍 그림 / 푸른책들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금이 작가의 블로그에서 청소년소설 '벼랑' 출간 기념 이벤트를 하고 있다. 6월 1일부터 10일까지라 참여하려면 빨리 서둘러야 하리라. 나는 2005년에 이금이 작가의 블로그 '밤티마을'을 알았다. 그해 '유진과 유진'을 읽고 감동 받은 문장 댓글 달기 이벤트에 뽑혔고, 작가의 친필 사인이 든 '도들마루의 깨비'를 받았다. 내가 신청했던 책으로 175쪽이나 되는 동화로는 도톰한 책이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이제는 작가의 사인이 든 책이 대여섯 권이나 된다. ^^

이 책은, 어린 시절 동네마다 하나쯤은 있었을 법한 모질이 '깨비'형과 은우가 나눈 따뜻한 사랑 얘기다. 마을 사람들은 모자란 깨비형을 데려다 일을 시키고 먹을 건 주지만, 자기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건 싫어했다. 그런 중에도 은우 할머니는 따뜻하게 감싼다. 할머니 말씀은 내 고향에서 듣던 말투처럼 정겨웠다. 내가 자란 충청도 시골에도 이런 모질이가 있었기에 마치 우리 동네 풍경화를 보는 듯했고, 작가의 고향이 충청도니까 자연스런 충청도 말이 귀에 감기듯이 들어왔다.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예쁜 우리말이 많았고,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구절이 많아 밑줄을 긋거나 동그라미를 쳐가며 읽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묘사를 잘하는지 역시 작가구나, 감탄했다. 1999년 초판이 나왔으니 벌써 10년 전에 쓴 책이지만, 2004년 8월 김재홍 화가의 그림으로 새단장을 했다. 진짜 만난다는 건 서로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길을 내는 거라며, 남을 업신여기거나 자신의 욕심만 채리면 마음의 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걸 알려준다. 깨비형은 세상의 모든 것과 마음의 길을 내느라 사람 사이에 길을 내는 게 좀 늦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소통이 단절되어 분노를 담아내는 국민의 함성이 하늘을 찌르는 시국을 보며, 모자라지만 겸손하게 마음의 길을 열어가던 깨비형이 그립다. 차라리 오만 방자한 사람보다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름답지 않은가!

맞춤법을 괴물처럼 여기는 은우가 이해되었고, 여간해선 남을 나쁘게 말하지 않는 할머니와 깨비형의 마음 속에 있는 저울이 부러웠다. 깨비형이 돌탑을 쌓아 놓고 갖고 싶은 소원이 '어,엄.마!' 라고 했을땐 정말 가슴이 저렸다. 엉덩이의 종기를 꼬리가 나는 줄 알고 거짓말한 피노키오처럼 전전긍긍하는 은우의 모습에 배시시 웃음이 났다.

"우리 과수원의 사과나무들이 꽃구름 잔치를 벌이던 무렵...한꺼번에 사과꽃이 피면 과수원은 꽃구름 상을 차려 놓은 잔치집 같았다... 내겐 엄마가 꽃구름이었다"

"진짜 만난다는 건 서로의 사이에 마음의 길을 내는 것... 마음의 나이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친구가 될 수 있기에 깨비형에게로 난 마음의 길에 환한 등불을 내걸었다. 겨울잠 자던 사과나무를 깨우는 건 새들도 바람도 아니고, 겨우내 애썼다고 사과나무를 어루만지고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는 햇살이었다."

아주 예쁘게 묘사된 문장들이 많아서 즐거웠고, 사과나무들이 간지럽다고 옴찔거리는 걸 볼 수 있는 작가, 이렇게 멋진 문장을 그려내는 작가가 부러웠다! ^*^

작가들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나면 가슴 속에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야 하니까, 그 이야기를 그만 잊으려고 한단다. 나중에 그 책을 읽어보면 내가 언제 이런 생각을 해서 썼을까, 새로운 느낌이 든다고 한다. 이금이 작가는 '도들마루의 깨비'를 드물게 술술 풀어냈던 이야기로, 누가 대신 써주는 것처럼 어려움보다는 즐거움을 느끼며 썼다고 말했다. 작가가 은우로 사는 동안 행복해서 그런가 보다고 덧붙였다. 이금이 작가는 작품 구상할 때 메모하기 보단, 마음 속에 이야기 방을 하나씩 만들어 놓고 이야기를 숙성시킨다고 했다. 작가의 마음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 방이 만들어져 있는지 그 마음 속을 들여다 보고 싶었다. ^^ 하지만, 그 마음 속을 들여다 보는 길은 작품을 읽는 것이라 생각하고 오늘도 작품을 통해 마음의 길을 열어 나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