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즐거움이 많은 달이지만, 내겐 5월이 아픈 달이다. 산자의 죄의식을 갖게 하는 5.18이 그렇고, 4년 전 5월 18일에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삶이 또 아프다. 102살까지 사신 시할머니를 모시느라, 당신은 어른이 되어보지 못한-시어머니로서의 권리를 누려보지도 못하고 가신 삶이 짠하다. 막 결혼해서 여자의 일생을 생각하니, 이런 시어머니의 삶이 어쨰 그리 짠하던지... 내 딴엔 마음을 담아 편지도 보내며 좋은 며느리가 되고 싶었다. 그럼에도 살다보면 또 마음처럼 잘 하고 살지 못하는게 인생이더라.ㅠㅠ

말씀이 많지 않으셨던 시어머님은, 열여섯까지 일본에서 자라고 해방이 되어 우리땅에 돌아와 부모님이 정해준 배필 만나 혼인하고 자식 낳아 키우며 살아오신 전형적인 우리 어머니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공무원이셨던 아버님의 박봉(예전의 공무원은 정말 박봉이었다)을 쪼개어 6남매를 키우고 가르치느라, 여늬 부모들처럼 자신을 위해선 철저하게 절제하며 살아오신 세월이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지난 일요일은 시어머니의 제사였다. 돌아가시기 2년 전, 대장암 진단으로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전이된 암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수술하고 그 힘들다는 항암주사를 맞으면서도 시할머니를 1년 더 모셨으니, 우리 자식들은 너무 오래 사는 시할머니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할머니를 땅으로 보내드리며, 당신이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마음 섭하게 했던 일들을 다 용서하고 편히 가시라던 시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면, 언제나 내 가슴이 아프고 눈시울이 젖는다. 모시고 살면서 항상 잘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고 며느리 마음임을 나도 알만큼은 알 세월이 지났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의 임종을 혼자 지킨 나는, 처음엔 내 도리를 했다고 혼자 뿌듯했었다. 마지막 생신도 우리집에서 내가 차려드렸고, 목욕시켜 드리고 난 이틀 후 혼수상태가 되어 딱 이주만에 눈을 감으셨는데 그 임종까지 지켰으니 내 할 도리 다했다고 생각했다. 기차를 타고 가서 뵌 어머님은 차마 숨을 거두지 못하고 힘겹게 호흡하고 계셨다. 혼자 병상을 지키며 독서회 토론도서였던 '오월의 미소'를 읽고 있다가, 힘겨운 호흡을 유지하는 어머님이 안쓰러워 "혼자 남을 아버님이 걱정돼 못 가시나요? 아버님 잘 모시겠으니 걱정 말고 편히 가셔요!" 속삭였더니 정말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숨을 거둬가셨다.

시어머님을 보내고 치열했던 우리의 삶이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큰딸 세살때 이혼하겠다고 했던 내가, 곱지 않은 며느리였음에도 어머님은 찾아와 내 손을 잡으며 "네가 더 잘났으면 잘난 사람 만났겠지, 내 아들을 만났겠냐~ 그저 이게 네 복이다 생각하고 살아라!" 하시던 말씀에 난 더 할말이 없었다. 나도 내 자식을 키워보니, 자기 자식을 부족하다고 말하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겠더라. 부모에겐 다 금쪽같은 자식이고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자식인데, 그 자식을 낮춰 말하며 나를 다독였던 게 그분의 인격이고 사랑이었단 걸 절절히 깨달은 건 한참 후였다.

시어머님의 그런 다독임이 있었기에 내 자리 지키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시어머니 눈에 내가 곱기야 했겠냐만 어머니의 포용은 이렇게 우리 가정을 지켜낸 힘이었단걸 믿는다. 엊그제 제사에 동서들과 시누이가 모여 음식을 만들며 어머니 이야기로 그분을 추억했다. 2004년 5월 18일에 가신 시어머니를 추억하는 내게 5월은 아프다.


돌아가신 날을 음력으로 하니 5월 4일 일요일이었다. 성주,민경이랑 무궁화 기차를 타고 목포로 ~
한시간 후~ 목포역에 도착~ 마중 나온 큰시숙님과 큰동서, 둘째 시누이랑 같이 큰댁으로 가는 길에, 간만에 고향에 온 시누이를 위해 목포 앞바다도 보여줄 겸 빙~ 드라이브 ! 클리오님은 잘 아시겠지만(^^) 신안비치 옆에 있던 커피숍 '헤밍웨이'도 사라지고... 이번주 '한국사전- 이순신 3부'에 나올 '고하도'가 오른쪽으로 보이는데 사진은 못 찍었다. 차 세우기가 곤란해서.....ㅠㅠ
유달산의 '노적봉'은 차를 세우고 찍었다. 주변에 가려지는 것들이 많아서 형체가 보일려나~~


이사람 저사람 사들고 온 과일이 넘쳐 국산 수입산 가리지 않고 다 상에 올렸다. 카톨릭에선 고인의 사진을 놓고 제사지낸다. 이번 제사는 연휴라서 식구들이 많이 모여 사진에 다 담을 수 없었다. 우리 어머님 모처럼 흐뭇하게 지켜보셨을 듯...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희망꿈 2008-05-07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네요. 부모의 마음은 정말 한결 같은가봐요.
힘드셨겠지만 그 분을 추억하며 따뜻하게 5월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저희 시아버님 제사는 내일이랍니다. 이제 돌아가신지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참 많이 흐른것 같아요.

무스탕 2008-05-0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할머니께서 92세에 돌아가셨죠. 10년전입니다.
엄마가 65세 되시도록, 같이 늙어가도록 시어머니를 모셨던 거에요.
엄마의 걱정은 그러다(울 할머니께서 워낙 정정하셨거든요..;;) 자식 먼저 앞세울까 걱정이셨대요 (사위(제 고모부시죠) 한 분이 먼저 돌아가셨거든요)
외할머니는 엄마가 결혼 하기 전에 돌아가셨으니 친정엄마보다 시어머니랑 훨씬훨씬 오래 사신거지요.
전 저희 엄마가 할머니한테 해 드린거의 10%도 시어머니한테 못해드리는데 가끔 생각해 보면 에혀.. 한숨만 나와요.. 한심한 며느리.. ;;
순오기님. 좋았던 것만 기억하시고 지금은 편안하게 지내실거니까 웃으세요 ^^

클리오 2008-05-0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반동 바닷가 정비하니까 깨끗해지고 좋긴한데, 옛날의 오밀조밀 분위기 있는 카페들이 전부 사라져서 흑.. 시어머니, 선하고 좋으신분인데 제가 싫어하는 잔소리과시다보니 좋은 의미인줄 알면서도 더 잘하지 못하네요. 겉으로라도 애교많은 며느리면 훨 나으련만...

세실 2008-05-07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짠합니다. 오늘 친정 부모님 모시고 점심식사 했는데 저희 엄마도 할머니, 외할머니 모시고 사느라 고생 많으셨거든요. 오늘 뵈오니 참 많이 늙으셨고, 야위셨단 생각 했습니다....저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참 불효하고 있습니다. ㅠㅠ
아웅 눈물나요.

마노아 2008-05-07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찡하고 짠하고 뭉클하고 그랬어요. 시어머님께 순오기님도 인연이 된 며느리였을 거예요. 사람 사는 모양들이, 참 아프고도 아름답네요.

2008-05-07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5-08 07:32   좋아요 0 | URL
누구나 스스로 좋은 며느리라고 생각하진 못하죠. 그런 마음이기에 또 잘해드려야지 다짐하는 거고요... 친정아버지도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시어머니보다 6개월 먼저...ㅠㅠ

2008-05-07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5-08 07:3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마음으로 아파요~~ 76세에 가셨는데도, 가시기 1년전까지 시할머니 모셨으니... 부모에게 내가 잘한 며느리라고 생각할 사람 하나도 없을거에요.

웽스북스 2008-05-08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시어머님이 순오기님같은 며느리를 만나신 건
그분의 삶에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오기 2008-05-08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아침부터 이 글 올려놓고 하루 종일 마음이 아파서 알라딘도 못 들어왔어요. 감정기복이 심한건지, 조절이 잘 안되는건지 그랬어요.ㅠㅠ
꿈님/부모를 보낸 자식 마음은 다 같겠죠. 시아버님 제사가 오늘이요.수고..
무스탕님/오래 사시기를 바라면서 모시는 분의 수고는 생각지 않았던거 같아요.
클리오님/목포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좋군요. 아무리 좋아도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인듯... ^^
세실님/살기 바빠서 도리도 제대로 못한다는 죄책감은 누구나 다 갖고 있을 듯...
마노아님/사람 사는 삶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 그게 사랑이겠죠! ^^
웬디양님/결혼하면 좋은 며느리 되어야지~~ 하는 것도 내 꿈의 하나였어요.^^

프레이야 2008-05-08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눈물이 나는 글이에요.
가시고 보내드리는 두분의 모습이 애틋해요.
님에게 오월은 또 그런 의미로도 아프군요.

순오기 2008-05-08 18:55   좋아요 0 | URL
어머니 사랑이 우리 눈물의 원천이겠죠~~ 오월, 참 아픈 달이에요.ㅠㅠ
 
8월 15일 광복절을 기념하며 -땅은 우리민족의 목숨이었다

내가 토지를 처음 접한 건 최수지가 '최서희'역으로 나왔던 TV드라마였다. 21권으로 완간된 책을 산 건 2002년 1월이었고, 그 책을 완독한 건 2004년 3월 10일 수요일 오전 10시 37분이었다. 40일만에 토지 읽기를 끝낸 감동은 굉장했었다. (먼댓글)

박경리 선생의 이름을 들은 건 중고등학교 국어책에 제목만 실렸던 '파시'때문이었다. 문학소녀를 자청했던 난, 그 작품을 찾아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의 감동을 되살리려고, 초등학교 학부모독서회에서 2002년 '김약국의 딸들'과  2004년 '토지'를 토론했기에 대가의 작품을 탐독할 기회를 다시 얻었다. 그 후 TV아침드라로 방송되었던 '성녀와 마녀'를 만났고, '김약국의 딸들'은 원작과 많이 달라 도중에 시청을 접었다.

 다행히 '토지'를 읽기 전에 박경리 선생을 뵐 기회가 있었다. 하동군에서 '토지'에 묘사된대로 '최참판댁'을 복원하고 가진 '제1회 토지문학제'에 그분이 오셨다. 2001년 11월 11일 광주시교육청의 학부모독서회 문학기행에 참여했기에, 당당한 그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었다. 그분을 뵈었기에 그 후 토지를 사면서도 망설이지 않았고......

 

팜플릿 아래 사진은 '토지'에 묘사된대로 복원한 최참판댁과 초가집은 별당아씨의 초당이다.



박경리 선생은 전야제부터 참석하셨고, 함께 온 많은 문인들을 뵙는 것만으로도 우린 좋았다. 하지만 하동군청의 이 행사를 박경리선생은 썩 달가와하지 않으셨다는 후문으로, 하동군에선 최참판댁과 전시관을 세우고도 원주의 '토지문화관' 때문에 '평사리문학관'으로 명명했다.

당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되었던 그분을 응원하는 현수막도 걸렸다. 우린 일정상 백일장엔 참여하지 못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 아쉬움이 많았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얼마 전, 공지영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한 것이다'에 거론된, 박경리선생의 'Q씨에게'를 구입하려다 절판이라 못 샀다. 4월 25일 뇌졸중으로 쓰러진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웠는데, 5월 5일 눈을 감으셨다니 그분께 경의를 표하며 명복을 빈다. 작년 7월 폐암선고를 받고도 치료를 거부하고 겸허히 받아들이셨단 기사에 울컥~ 했었다. 우리시대 최고의 문학산맥이었던 그분은 평생의 역작이었던 '토지'를 남기셨기에 편히 눈을 감았으리라... 장례위원장이신 박완서선생께서 편안히 눈감으셨다고 전하는 걸 뉴스에서 보았다. 이제는 다시 뵐 수 없는 분이기에 남겨주신 작품으로만 만나야 하리라!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멜기세덱 2008-05-0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께서 우리에게 베풀고 가신 것이 너무 많아 감사한데도, 좀더 우리곁에서 더 많은 것을 내어놓고 가시라고 막 투정을 부리고 싶네요.
사진들 보니, 너무너무 좋으셨겠어요. 선생의 존안을, 그 손 한 번, 뵙지 못하고, 잡아보지 못하고 보내드린 것이 무척 아쉬운 아침입니다.

순오기 2008-05-06 13:54   좋아요 0 | URL
너무나 아쉽지만, 폐암 치료도 거부하고 담담히 받아들였단 기사를 읽으며 편하게 가신게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겸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에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전호인 2008-05-06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얼굴을 보아서는 푸근하다는 인상이 지배적이었는데, 인생살이에 팔자가 드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초저녁에 태어나셨는 데 호랑이 띠인지라. 사주풀이상 초저녁은 호랑이가 굶주림에 먹이를 찾아야 하는 시간이었기에 팔자가 드셀 수 밖에 없었다네여. 그래서 부군과 아들을 여의고 힘들게 살수 밖에 없었다는 선생의 말이 갑자기 기억이 납니다.
독자와 함께했던 지난 날들이 그래도 외롭지는 않으셨을 듯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오셔서 함께 할 수 있기에 안타깝지만 위로가 됩니다. 고이 영면하소서.

순오기 2008-05-06 13:55   좋아요 0 | URL
사주팔자라는게 지나고 보면 그렇게 맞아떨어지는가 봅니다. 때론 해석하기 나름일거라 생각도 하지만... 당신의 '토지'로 돌아가신 그분을 우리는 작품의 '토지'로 또 만날 수 있으니까요!

뽀송이 2008-05-06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한번은 가게 되는 길인데도... 어찌나 마음이 횡하던지...
그만큼 박경리 작가가 우리에게 주었던 의미가 컸던것 같아요.
저 위의 시집 <우리들의 시간>에서 보면 그 분은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 속에서 외로움을 저는 느꼈답니다.
제 고향이 하동이라 더 짠하군요. 고인의 명복을 빌어드립니다.(__)

순오기 2008-05-06 13:58   좋아요 0 | URL
이참에 박경리선생의 시집을 사봐야겠다 생각했어요.
송이님 고향이 하동이군요. 이때 하동 솔밭에서 날씨가 추워 벌벌 떨며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ㅜㅜ

무스탕 2008-05-0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소식 듣고는 선생님 조금 더 오래 우리 곁에 머물러 주시지 이리 가십니까.. 아쉽고 안타깝더라구요..
직접 뵌적은 없지만 선생님은 계신 그 자체로 참 행복하고 감사하신 분이셨는데 말이에요..
고이 잠드소서..

순오기 2008-05-06 13:5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뇌졸중으로 쓰러지지 않았다면 조금은 더 머물수도 있었을텐데...
저런 분이 우리 곁에 계셨다는게 참 감사할 뿐이죠!

다락방 2008-05-06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지는 실제인듯 생생했죠. 그 모든 등장인물들이 현실감 있었으니깐요. 읽으면서도 읽고나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저는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죽음앞에서는 어떤 말도 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요.
고인의 명복을 빌 따름입니다.

순오기 2008-05-06 14:02   좋아요 0 | URL
토지를 잡고 살던 40일은 제가 그속에서 사는 듯했어요.
실타래처럼 엉킨 사람들의 삶을 목숨과 같은 토지로 잘 풀어내셨지요.
저도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아요.

2008-05-06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5-06 14:04   좋아요 0 | URL
전에도 누군가에게 교정 받았는데도, 한번 입력되면 고치기가 쉽지 않네요.^^ 수정했습니다. 감사~

2008-05-06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06 16: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희망꿈 2008-05-0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보내는 사람의 마음은 슬픈것 같아요.
누구나 한 번은 들어보았을 그 분의 이름이 우리문학사에 오래도록 남을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쓰셨다는 시의 내용을 보니 모든것을 훌훌 털어버리시고 편하게 정말 토지로
돌아가신것 같더라구요.
좀더 좋은글을 많이 남기셨다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순오기 2008-05-07 06:36   좋아요 0 | URL
보내는 사람의 애잔함...
담담하게 생을 마감하는 아름다움...

Jade 2008-05-07 0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지'는 아직 못읽어봤는데 순오기님 페이퍼를 보니 읽고싶어지네요. 문인장으로 치른다는 말, 밤새 빈소를 지켰다는 쟁쟁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보고 가슴이 찡했어요.

순오기 2008-05-08 07:39   좋아요 0 | URL
위대한 작가이면서 존경받는 사람이 된다는 건 그분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거겠죠. 이런 어른들이 한분 한분 가시는 게 안타깝지만, 그것이 인생이고 순리이기에 잘 보내드려야겠지요!
'토지'는 큰 맘 먹고 읽어야 할 명작이죠.

마노아 2008-05-07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북지역 답사를 갔을 때 최참판 댁을 지나긴 했는데 제대로 둘러보질 못했어요. 그놈의 일정에 쫓겨서 말이지요. 두고두고 아쉬워요. 토지를 완독하고 다시 찾아가면 감회가 다를 것 같아요.

순오기 2008-05-08 07:42   좋아요 0 | URL
저는 최참판댁 복원한 첫 해에 갔었는데, 다음해에 갔다 온 독서회원들 말로는 '평사리문학관'도 지었고 자꾸 무언가 더하는 것 같아 아쉽더라고요. 토지의 독자들이 음미하며 더듬어 볼 공간이 되었으면... 뭐든 일정 때문에 제대로 맛보기가 어려운 일이 많아요.ㅠㅠ

후애(厚愛) 2008-05-07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토지를 즐겨 읽었던 독자로서 마음이 무척이나 아픕니다.
어제 인터넷에 뜬 기사를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오래 사실 줄 알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순오기 2008-05-08 07:48   좋아요 0 | URL
댓글 따라 님 서재에 가 봤어요. 흔적 감사해요.
조금 더 사셨더라면...아쉬움도 있지만 이미 육체에 고통이 있다면 더 오래 붙잡기도 힘들지요. 편히 가신 길 명복을 빌 뿐입니다.ㅠㅠ
 

어젯밤 9시 넘어 큰딸한테 '엄마콜'이라는 문자가 와서 통화했습니다. 약간은 흥분된 억양으로 '화려한 휴가의 함성과 분위기'를 느꼈다는 말로 촛불집회 동참 소감을 전했습니다. 진중권씨를 만나 사진도 찍었는데 잘 안 나와 아쉽다는 것까지...... 교육대 1년생이 교과서가 아닌 세상에서 '사회'를 제대로 배우는 중입니다. 

작년 10월 24일 딸아이가 입학면접을 볼때, "이라크 파병같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안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고, "교사의 생각보다는 객관적인 정보를 알려주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겠다."는 모범(?)적인 답변을 했었습니다. 올바른 가치 판단을 돕는 준비된 교사가 되기 위해, 미래의 초등샘 우리 딸은 현장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한국사전 - 이순신 2부'를 시청한 후, MBC뉴스가 끝나고 채널을 돌려 '미디어 다시보기'를 봤습니다. 우리나라 신문들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방송이었는데, 교육부 발표를 보도한 기사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신문들의 보도행태를 수년전의 보도자료와 비교하여 보여주었습니다. 어제 방송으로 새삼스러울것도 없이 확인된 결과는 '한겨레'와 '경향신문'만 신문이었습니다.  
"헐~ 조중동, 저게 뭐야? 정말 말도 안돼!"
중학교 1학년 민경이의 시청소감이었습니다. 다시 채널을 돌리니 EBS '지식e' 베스트 방송이 나오더군요. 마침 '식코'를 재편집한 방송이 나와 중학생 남매와 같이 보았습니다. 어쩌면 너희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며.......

십수년 봐왔던 '중앙일보'를 끊고 3월 1일자로 '경향신문'을 구독한지 닷새만에,
"경향신문 정말 놀라워. 이런 기사를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중앙과는 확실히 달라!"
라는 감탄을 쏟아내던 중3 아들녀석. 세상이 바르게, 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언제 느낄지 아직은 깜깜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세상배우기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메피님의 서재말처럼, '세상은 미쳐 돌아가기 시작'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ㅠㅠ

엄마는 촛불축제에 동참하진 못하지만 인터넷 서명엔 동참합니다. 어머니독서회카페에도 올리고 회원들께 문자를 보내 동참을 권유했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 마음이 세상을 바꾸는 '힘'으로 표출되기를 바라며...... '미친정부의 미친소 수입을 국민의 힘으로 막아냅시다!'
 

국민주권 시민연대 

창조한국당 블로그

다음 아고라 광장

국민 저항권 서명 운동

미친소닷넷 

촛불문화축제 후기 
(알라딘 무화과나무님)

-----위 사이트는 '아프락사스'님 서재에서 

-----아래 글과 사진은 '무화과나무'님 서재에서 옮겨왔습니다. 우리 큰딸이 참여했기에...

'우리는 미친소를 먹을 권리가 없다' 

오늘 청계천 광장에 갔다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오늘 청계천 광장에서 모인 촛불 문화축제(시위가 아니라 문화축제)는 매우 평화적이고, 매우 이성적이며, 매우 질서정연하게 치뤄졌다. 그리고 이 문화축체의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였다. 그리고 여러가지 하위주제들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고,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으며, 자신들의 의견들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 오늘의 촛불 문화축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으로 정리될 수 있다.  

1) 촛불 문화축체의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였다. 아무래도 이명박 정권의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은 전 국민적인 분노와 저항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는데 오늘 축제를 통해서 그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계천에 모인 학생, 주부, 지식인, 군인, 그밖의 시민들은 지극히 이성적이었다. 어느 누구도 감정적으로 극한의 상태에 이르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너무나 이성적이었다. 특히 종로 경찰서에서 이번 모임 축제가 불법이라고 반복적으로 공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은 전혀 없었다.

3) 촛불 문화축체의 최소한의 공통분모는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밖의 다양한 주제가 오고갔다. 주로 학생들(중학생들, 고등학생들)이 단상에서 이야기 할 기회가 많이 제공됐고, 그밖에 지식인, 군인, 의사, 학원강사, 시민이 참여하여 단상에서 자기 이야기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인신공격, 욕설, 야유)등이 초반에는 많았으나 중반 이후부터는 참여자들 스스로에 의해, 특히 중, 고등학생 등의 젊은 학생들에 의해서 자중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자신과 연관하여 다양한 불만등이 제기됐는데, 특히 의료보험 민영화, 공기업 민영화, 사교육 시장 개방, 영어 몰입교육 등에 대한 불만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4) 시민들의 촛불 문화집회는 지극히 평화적이고, 이성적이고, 질서정연했다. 어떤 폭력적 행위도 없었으며, 자기가 가지고 온 쓰레기를 스스로 치웠으며, 집회가 끝난 다음 해산할 때도 매우 질서정연했다. 심지어 이번 집회를 의도적으로 조장했다고 느껴지는 어떠한 느낌도 받을 수 없었으며, 그걸 의도적으로 조작하려는 움직임은 자발적으로 제재를 당했다. 예를 들어 NL 계열 학생운동 조직에 의한 '깃발 논쟁'의 움직임과 폭력시위는 즉각적으로 제재를 당했다. 그것도 중, 고등학생을 통해서 말이다. 또한 한나라당의 쁘락지(알바)에 의한 폭력시위의 의도적 조장도 제재를 당했다. 문화축제 중간중간에 "알바생들은 물러가라 !"라는 언성이 오고갔고, 피케팅을 통해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는데 당시엔 잘 몰랐지만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아마도 한나라당의 알바생들이 맞는 것 같았다.

5) 생각보다 광우병의 심각성에 대한 서울시민 이외의 국민들의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의 문화축제를 통해 광우병의 심각성을 더욱더 많이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주최측에서는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들은 냄비가 아니라 뚝배기입니다."
 
6) 무엇보다도 광우병에 걸린 소가 직접 수입되었을 때 가장 크게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인 학생들(초, 중, 고등학교 급식 비율이 80%인 한국의 상황을 봤을 때 학생들은 정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시험이 끝난 학생들, 아직 끝나지 않은 학생들이 모두 참여했다.), 군인들, 그리고 자녀들을 두고 있는 주부들의 관심도와 참여도가 높았다. 특히 단상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했던 중학생들의 말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국민에,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해 민주주의가 존재하며, 그것이 민주주의적 정치아닌가요?"

촛불 문화축제 #1 : 대한민국을 외치는 사람들(사진: 무화과나무) 




 

 

 

 

 

 

 

 

 

 
이번 두 번의 촛불 문화집회는 매우 높은 한국 국민들의 시위문화적 수준과 감정적 폭력에 치우치지 않는 이성적 판단의 수준, 그리고 민주주의 의식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중, 고등학생들, 그 중에서도 여학생들은 유쾌하고, 발랄하고, 즐겁기까지 한, 그렇지만 매우 통찰력있는 문제제기를 해줬다. 이건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새로운 유형의 혁명의 쾌락, 쾌락의 혁명이었다. 억압과 분노를 억압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즐겁고도, 기쁘게, 그러면서도 충분히 혁명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눈앞에서 직접 펼쳐졌다.  

오늘 집회를 보면서 "대중의 욕망은 어떻게 배치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오늘 집회를 통해서 대한민국 대중이 단순히 광기에 치우치는 비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당면한 문제를 이성적(여기서의 이성은 데카르트적 이성말고 신체적 무의식에 기반한 이성을 지칭한다)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함을 깨달았다.  
 
결국, 우리는 "대중은 아직 죽지 않았다 !", "대한민국은 아직 건강한 나라다!",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가진 나라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대한민국 파이팅 !", "Fuck You MB"(이 표현은 집회 도중에 몇 번 나올뻔 했는데 집회 참여자 스스로 삼갔다. 의도적으로 말이다. 이 부분은 전략적으로 매우 유효했던 것 같다. 적대에서 전선이 분명하게 갈리는 것을 참가자 스스로 감을 잡았고, 절대 감정적으로 동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서로서로 독려했다. 그랬기에 이런 말이 군데군데서 나오기는 했으나 참여자 스스로들 이를 삼가려고 노력했다)

촛불 문화축제 #2 : 우리는 미친소를 먹을 수 없어요.  



 

 

 

 

 

 

 

 

 

 

 촛불 문화축제 #3 : 미친소는 MB나 쳐드셈 













 

 

 

 

 

촛불 문화축제 #4 : 미친소의 형상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8-05-04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05 0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8-05-0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한 새싹들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들에 희망을 느낍니다. 우리는 이번 위기도 반드시 극복해낼 겁니다.

순오기 2008-05-05 01:17   좋아요 0 | URL
시어머님 기일이라 목포 다녀왔어요.
새싹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건 어른들의 몫인데... 위기는 기회로!!

웽스북스 2008-05-05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남매가 살아갈 세상도 참 녹록지 않겠죠...
저는 진심으로, 아이를 낳는 게 아이에게 미안해지는 세상이지 않을까, 라는 고민을 해봤어요

순오기 2008-05-05 01:19   좋아요 0 | URL
아이들의 미래가 참담할 거 같아 정말 안타깝지요.
육아, 교육비 감당만으로도 출산을 기피하는 현실인데...참 어찌될려는지 안타깝습니다!ㅠㅠ

2008-05-05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5-05 17:57   좋아요 0 | URL
참~~~ 가슴 아린 일이군요. 원없이 드시게 해야할지...
우린 풀만 먹고 살자고 했어요. 아이들도 워낙 심각성을 인식하는지라~
도대체 저들의 머릿속엔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기막힐 뿐입니다.ㅠㅠ
 






렴형미, 「아이를 키우며」(낭송 성병숙)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세실 2008-05-03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따뜻한 엄마네요. 닮고 싶은 엄마......

순오기 2008-05-04 06:44   좋아요 0 | URL
엄마들이 시인의 마음을 닮아 이렇게 키우려고 노력해야지요~~~ 그래서 따뜻한 아이로 자라면 되는거고요.^^ 저도 노력해야지요~~~

2008-05-03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04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실 2008-05-04 22:46   좋아요 0 | URL
아웅 감사합니다^*^

bookJourney 2008-05-04 0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찡합니다. 우리 애들도 이렇게 키워야 하는데 ... 자신이 없어요 ... --;;

순오기 2008-05-04 06:47   좋아요 0 | URL
자신 있는 부모 아무도 없겠죠. 다만 이런 마음 가짐으로 노력할 뿐이지요~~~ 님도 저도!!
 

MBC 미친소 수입에 관한 여론조사


미국산 쇠고기 시장 '전면 개방'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타결돼 쇠고기 시장이 전면 개방됐습니다. 4년여 수입이 금지됐던 LA갈비뿐만 아니라 사골, 우족, 내장까지 들여오기로 합의했습니다. '30개월 미만' 연형 제한도 단계적으로 없애기도 했습니다.
투표 기간 : 2008/04/22 ~ 2008/05/04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수입키로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찬성
357명(1%)
  반대
43394명(99%)


당신은 1%에 해당하십니까?


이 여론조사는 5월 4일까지 입니다.

아래 사이트로 들어가 로그인하시고~

http://imnews.imbc.com/netizen/research/index.html
 

우리 애들에게 미친소를 먹이지 않으려면......

걱정하거나 울분만 토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용기 있는 작은 실천뿐입니다.

자아~ 귀찮아도 사이트에 들어가 의사표시를 합시다.

 

국민주권시민 연대

http://www.gobada.co.kr/csig/sig.php

 

창조한국당 블러그

http://rokp.tistory.com

서명이 단순한 의사표현을 넘어서, 효력을 발휘하려면

여기(↑)에 해야 한다는군요.

부록 :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40221

(효력은 없지만 가장 많이 서명한 곳)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