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국외자이지만,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사랑》


예술, 또는 창작을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남들과 다른 기질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독일의 한 소도시에 사는 유력인사들의 자제들이 모여, 사교 예법과 춤을 배우는 곳에서도 <토니오 크뢰거>는 그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무엇 때문에 자신이 이 곳에 와 있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고, 자기 방 창가에 앉아 슈토름의 이멘 호를 읽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분수와 오래된 호두나무, 자신의 바이올린과 저 멀리 있는 발트해이다. 그리고 시를 짓는다. 그것이 남들에게는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지만 그러한 사실이 그가 시를 짓는 일을 그만두도록 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토니오가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는 항상 남들을 의식하고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남들도 좋아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를 쓴다는 것이 얼토당토않은 짓이고 사실 온당치 못한 짓임을 그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이를 생뚱맞은 짓거리로 여기는 모든 사람들의 견해를 어느 정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사실이 그가 시를 짓는 일을 그만두도록 하지는 못했다. -p13]

 

<토니오 크뢰거>는 언제나 경쾌하고 당당한 친구인 한스 한젠을 좋아하고,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땐 명랑한 금발의 잉에보르크 홀름을 짝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토니오와 다르게 누구나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과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들만 생각한다. 모든 세상사와 충돌하는 토니오와 다르게 그들은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당연히 실러의 돈 카를로스를 읽지 않고, ‘왕이 우는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그런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토니오는 질투심이 섞인 동경을 한다.

 

너처럼 되면 좋으련만이라고 생각하지만 <토니오 크뢰거>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그들과 쓰는 언어가 달랐고 그들이 행복을 얻는 것들은 그에게 낯설고 서먹서먹한 것이 된다.

 

[슈토름의 그지없이 아름다운 시 한 편이 불현듯 떠올랐다. <난 자고 싶은데 넌 춤을 추겠다는구나.> 사랑하고 있는데 춤을 춰야 한다는 이 굴욕적인 모순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p32]

 

[유희적이고 놀랄 만하지만 우울한 창조력이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동시에 자신이 동경하는 명랑한 사람들은 그 창조력이 닿지 않는 저 반대편에서 마주 보고 서 있음을 안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팠다. 하지만 비록 그가 홀로 국외자의 신세가 되어 아무런 희망도 없이, 닫힌 블라인드 앞에 서서 비탄에 잠긴 채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척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는 행복했다. 그의 심장이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p36]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NOON'시리즈 10권 중에서 제일 첫 번째로 읽은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20대 때 읽었던 마의 산이 어렴풋이 연상된다. 지금 마의 산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워낙 그 책이 어려워 어렴풋이 읽고 이해했다는 느낌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런데 그 어렴풋이남아있는 느낌의 여운이 워낙 강렬해 완전히 이해를 하지 못했어도 그 작품과 토마스 만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느낌이 그리워 이 시리즈 중에서 망설임 없이 작가 토마스 만을 제일 먼저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토니오 크뢰거>마의 산만큼 어렴풋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작가 토마스 만이 나타내는 특유의 공감되고 울림 있는 내용도 많지만, 역시나 토마스 만답게 거창하고 거침없는 몇 페이지에 걸친 장황한 표현들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어렴풋한 것이 또 이 작가의 매력이다. 어렴풋하지만 이해되고 뭔가 알 수 있는 그 내용들이 내가 토마스 만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토니오 크뢰거>라는 이 중편 소설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있어 내가 리뷰를 써야 할 필요도 못 느낄 정도다. 사전정보 없이 읽은 이 소설에서 <토니오 크뢰거>는 작가 토마스 만자신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작가로서, 창작자로서 가야하는 자신의 길에서 무수히 고뇌하고 뒤돌아보는 한 인간의 모습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국외자처럼 살아야하지만 심장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삶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고도 싶은 두 세계에 걸친 예술가의 고뇌와 회한도 있다. 두 세계는 공존이 쉽지 않아 같이 갈 수 없지만 그곳을 동경하고 질투하기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 두 세계 중 <토니오 크뢰거>만이 고뇌하고 그들을 들여다보지만, ‘한스잉에보르크로 대표되는 다른 세계는 <토니오 크뢰거>와 함께 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영원히 타자로서만 치부되는 그런 것들은 예술가의 삶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에 있어 슬프다.

 

[그는 이 지상에서 가장 숭고하다고 생각되는 힘, 그것에 봉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느낀 그 힘에 완전히 몸 바쳤다. 그에게 고귀함과 명예를 약속해 주는 힘, 아무런 의식도 말도 없는 삶에 미소를 머금고 군림하는 정신과 언어의 힘에 완전히 몸 바쳤다. 젊은 날의 열정을 품고 그는 그 힘에 몸을 바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선물함으로써 그에게 보답했고, 그 대가로 앗아 가곤 하는 모든 것을 그에게서 가차 없이 앗아갔다. -41]

 

이마에 찍힌 그의 표지에 의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토니오 크뢰거>는 작가가 된다. 그에게는 인식이 주는 고통과 교만함과 더불어 외로움이 찾아온다. 언어와 형식이 주는 쾌감에도 매료되지만,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가를 고민한다. 화가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를 찾아가 한 말들에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이 부분이 무척 어려운데 그것을 잘 알아듣는 이바노브나가 대단하다) 그리고 삶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길을 잘못 든 시민>입니다. 토니오 크뢰거_<길을 잃고 헤매는 시민>이지요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그는 단호한 태도로 일어서더니 모자와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고맙습니다, 리자베타 이바노브나. 이젠 안심하고 집에 갈 수 있겠습니다. 난 처리되었으니까요.-P68]

 

토니오는 예술을 대변하고 크뢰거는 시민을 대변하는 이름을 가진 길을 잃고 헤매는 시민, ‘토니오 크뢰거는 여행을 떠난다. 자신이 떠나온 고향에 들렀다가 북쪽으로 계속 가서 발트해의 어느 호텔에 기거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그가 짝사랑했던 한스잉에보르크를 다시 만난다. 종족과 유형이 비슷한 그들은 서로 친하게 보였고 역시 변함이 없다. 밝은 유형의 그들은 순수하고 맑으며 명랑한 이미지와 아울러 오만하고 소박하며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냉정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토니오는 그들을 잊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여전히 토니오는 그들을 동경하고 질투한다. 그 어떤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토니오 크뢰거가 안쓰럽기도 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토니오의 그런 모습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인간인지라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욕망과 소속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예술가의 삶을 살아내는 많은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이 저런 고민에 빠질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스 한젠, 넌 너의 정원 문에서 나에게 약속했던 대로 돈 카를로스를 읽었느냐? 읽지 말거라! 네가 그걸 읽기를 더는 요구하지 않아. 외로워서 우는 왕이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니? 넌 우울한 시 따위를 보느라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겨서는 안돼...너처럼 되고 싶구나! -p115]

 

난 자고 싶은데, 넌 춤을 추겠다는 사람과는 서로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다. 언어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서로 공감할 수 없다. 그래도 한 번쯤은, 아니 영원히 내가 가지 못하는 그 길을 흠모하고 들여다보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 삶의 여러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외로운 예술가의 길을 걸으며 참가하지도 않은 축제에 도취될 수 있다. 환심을 사려고 할 수 있으며 질투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토니오 크뢰거>에게 그것은 향수이자 회한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예술의 길로 잘못 들어선 시민, 훌륭한 가정교육에 대한 향수를 지닌 보헤미안,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예술가라 표현한다.

 

오래 전 찍은 빛바랜 사진 중에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 있다. 중학교 때였는데 친구들과 어디를 가기위해 기차역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난 혼자 긴 의자 끄트머리에서 책을 읽고 있다. 그 모습들이 다 들어간 사진인데 누가 그런 구도로 찍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때 내가 들고 읽은 책의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책이 삼중당 문고에서 나온 문고판 책이었다는 것은 기억난다. 열린책들 35주년 기념 ‘NOON'세트는 문고판 판형으로 가볍고 얇게 되어있는데 오래간만에 읽은 문고판 형식이라 옛날 생각이 났다. 나 역시 그때부터 내 이마에 표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지금도 책을 읽고 있고, 그때 그 친구들이 지금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이마에 표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토니오 크뢰거>를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들 역시 토니오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살 것이다.

 

크기가 작게 구성되었는데도 126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이 소설의 리뷰를 쓰면서 난 많은 인용을 했고 내가 쓴 글들 역시 토마스 만의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많다. 이 소설 통째로 옮기고 싶을 정도로 이 소설을 읽으며 많은 공감을 했고, 삶과 예술가, 나에 대해 뒤돌아볼 수 있었다. 예술가는 나에게 외로워서 우는 왕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준다.

 

[난 두 세계 사이에 서 있어서, 어느 세계에도 안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게 좀 힘이 듭니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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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12 15:4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1등~!! 페넬로페님도 읽기 시작이시군요. 주 1권씩 같이 읽어요 ^^ 전 오늘 두번째로 <도둑맞은 편지> 읽고 있어요. 전 이책 세번째로 읽어야 겠어요 😆

페넬로페 2021-08-12 16:03   좋아요 7 | URL
저는 일단 noon시리즈 샀는데 미드나잇은 살지 아직 고민중이예요 ㅎㅎ
아무튼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coolcat329 2021-08-12 16:1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토마스 만 한 권도 안 읽어봤는데 알듯 모를듯 어렴풋한 느낌이 좋으시다니 저도 그런 모호한 작품이 읽고나서 더 생각이 나고 좋더라구요. 토니오 크뢰거 요 이쁜 책으로 읽고싶지만...민음사로 갖고 있으니 대리만족하고 갑니다.
근데 저는 예술가가 주인공인 소설은 참 부담스럽더라구요 ㅋ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제가 워낙 고지식해서요😟

페넬로페 2021-08-12 16:47   좋아요 7 | URL
네, 그 어렴풋하고 모호한 느낌의 매력에 빠져 자꾸 문학작품을 읽는것 같아요~~이 작품은 예술가가 주인공이지만 절대 부담스럽지 않아요. 저는 토니오 크뢰거에 공감하고 이해했어요. 가슴 절절한 뭉클함도 있구요^^

Falstaff 2021-08-12 16:2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전 토마스 만을 무척 좋아해서 번역해서 나온 그이 소설 작품은, 단편 몇 개 빼고는 다 읽었습니다.
전 만의 경우에 단편 읽기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전에 읽은 단편집을 다시 읽어볼까, 아님 다른 책으로 읽을까 생각 중입니다.
힘들었던 단편 가운데 당연히 <토니오 크뢰거>도 들어 있습니다. 새삼 관심이 팍팍 생기네요.

페넬로페 2021-08-12 16:51   좋아요 8 | URL
역시 폴스타프님,
그 어렵다는 토마스 만의 작품을 많이 읽으셨네요.
제가 다른 단편은 읽지 않았는데 이 책은 그나마 이해가 좀 쉬웠어요^^저도 다른 단편 읽어 보겠습니다**

mini74 2021-08-12 16:5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앗 눈 시리즈!!! 아직도 고민중인데 ㅎㅎ페넬로페님 글 읽으니 막 사고 싶어집니다 ㅎㅎ. 통째로옮기고 싶으시다니 !! 전 안똔 체호프. 안똔. ㅠㅠ 영 적응이 안돼요 ㅎㅎ 읽고 있습니다 *^^*

페넬로페 2021-08-12 17:09   좋아요 6 | URL
미니님은 눈 시리즈를 살까말까를 고민하고 계시는군요. ㅋㅋ
안똔??? 쳬홉도 워낙에 좋아서리~~
왜이리 읽고 싶은 책이 많은지 저의 아바타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새파랑 2021-08-12 17:11   좋아요 6 | URL
무주건 사시고 알라디너 티비에 소개하실거라 확신 합니다 😆

scott 2021-08-12 17:21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은 눈 세트 [토마스만]의 토니오 크뢰거로 시작 하셨네요

전 , 토마스만 단편 좋아 하는데 중편 토니오 크뢰거는 여러번 재독
토마스만의 자전적인 모습이 많이 투영 되어 있습니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에 자신의 집안의 흥망 성쇠가 상세하게 나온 대작!
이 작품 읽고 나면 [토니오 크뢰거] 쑥쑥 책장 넘어 감요!

단편 중에 [어릿 광대] 좋아 합니다

페넬로페 2021-08-12 19:29   좋아요 5 | URL
네, 저도 읽으며 토마스 만의 자전적인 내용이 많은것 같더라고요.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꼭 읽어봐야겠어요~~

청아 2021-08-12 17:5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NOON시리즈~♡♡
얇은 책인데 이 페이퍼를 보니 토마스만 명성대로 묵직한 내용을 담고 있나봐요! 발췌문들이 인상적이예요. 보헤미안은 늘 어감이 좋네요ㅎㅎ😙

페넬로페 2021-08-12 19:31   좋아요 5 | URL
발췌문을 더 쓰고 싶었는데 많이 줄였어요~~토니오 크뢰거에 나온 다른 책도 읽고 싶었어요. 우리 모두는 약간씩 보헤미안의 기질이 있는듯 해요^^

레삭매냐 2021-08-15 00: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더부럽~

이거 아무래도 땡겨야 하나요...

페넬로페 2021-08-15 10:00   좋아요 2 | URL
참 애매합니다.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구성이 우리가 거의 읽은 책이 많이 들어 있어서요^^
 

토마스 만ㅡ[토니오 크뢰거]


그는 이 지상에서 가장 숭고하다고 생각되는 힘, 그것에
봉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느낀 그 힘에 
완전히 몸바쳤다. 그에게 고귀함과 명예를 약속해 주는 힘, 아무런 의식도 말도 없는 삶에 미소를 머금고 
군림하는 정신과 언어의 힘에 완전히 몸 바쳤다.
젊은 날의 열정을 품고 그는그 힘에 몸을 바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이 줄 수있는 모든 것을 선물함으로써 그에게 보답했고, 그 대가로 앗아가곤 하는 
모든 것을 그에게서 가차 없이 앗아갔다.
- P41

그는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처럼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처럼 일했다.
그는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고, 오직 창작자로만 간주되기를 바라며, 그밖의
경우에는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게 돌아다녔다. 
배우가 분장을 지우고 연기도 하지 않을 때는 아무런 존재도 아니듯이 말이다. 
그는 말없이 세상을 등지고 눈에 보이지않게 일하면서, 재능을 남과 어울리기 위한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소인배들을 한없이 경멸했다. 이들은 가난하는 부유하든 상관없이, 해진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돌아다니거나, 개성이 넘치는 넥타이를 매고 호사를 떠는 자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훌륭한 작품이란 곤궁한 삶의 압박에
시달릴 때에만 생겨나고, 생활하는 자는 창작할 수 없으며완전한 창작자가 되려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서
행복하고 근사하게 예술가처럼 살겠다고 작정하는 자들이었다.
- P44

「천직 이야길 하질 마세요, 리자베타 이바노브나! 당신에게 분명히 말해 두지만, 문학이란 결코 천직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언제부터 그것이, 이 저주가 느껴지기 시작할까요? 
일찍부터, 끔찍할 정도로 일찍부터입니다. 당연히 아직 하느님과 세상 사람들과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야할 시기에 벌써 그런 저주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자신에게 낙인이 찍혀 있다고 생각하고, 왠지는 잘 알 수없지만 평범하고 정상적인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다르게 느끼기 시작합니다. 당신을 다른 사람들과 멀어지게 하는
아이러니, 회의, 갈등, 인식 및 감정의 골이 점점 더 깊게 벌어져 당신은 고독해집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더는 말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무슨 이런 운명이 다 있을까요! 
이런 운명을 끔찍한 것으로 느낄 정도로 가슴이 충분히 생기에 차있고, 충분히 사랑에 넘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말입니다! 당신은 수천 명 사이에 섞여 있어도 당신의 이마에 찍힌 낙인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를 다 알아볼거라고 느끼기 때문에 자부심이 불타오르는 것입니다.  - P54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말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말일까요? 모르겠습니다. 내가 인식의 구토라고 부르는게 있습니다, 리자베타. 어떤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것만으로도 이미 죽고 싶을 정도로 구역질이 나는, 그래서 그것과 화해하고 싶은 기분이 조금도 들지 않는 상태 말입니다. 햄릿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전형적인 문학자인이 덴마크인 말입니다. 그는 알도록 태어나지 않았으면서 알도록 소명을 받는다는 것이 무언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눈물에 젖은 감정의 베일을 뚫고 통찰해야 하고, 인식하고주의 깊게 살피며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손을맞잡고 서로의 입술을 더듬는 순간에도, 감정에 눈이 멀어 인간의 시선이 흐려지는 순간에도 미소 지으며 관찰한 것을 옆에 챙겨 두어야 합니다. 이는 울화가 치미는 일입니다. 리자베타, 이는 비열한 짓이라서 분노가 치밉니다..... 
하지만 화를 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 P60

한스 한젠, 넌너의 정원 문에서 나에게 약속했던 대로 ‘돈 카를로스‘를읽었느냐? 읽지 말거라! 네가 그걸 읽기를 더는 요구하지않아. 외로워서 우는 왕이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니? 넌 우울한 시 따위를 보느라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겨서는 안 돼. 
너처럼 되고 싶구나! 
다시 한번 시작하여, 너처럼 올바르고 즐거우며 소박하게, 규칙과 질서에 맞게, 
신과 세상 사람들의 동의를 받으며 자라나,
아무런 악의가 없고 행복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싶구나.
잉에보르크 홀름, 너를 아내로 삼고, 한스 한센, 너 같은 아들을 두고 싶구나. 인식의 저주와 창작의 고통이 주는 저주에서 벗어나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사랑하고 찬미하고싶구나! .…다시 한번 시작한다고? 하지만 그래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다시 이렇게 되고 말 것이고, 모든 것이 다시 지금까지와 똑같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잘못된 길을 걷는 까닭은 이들에겐 올바른 길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야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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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8-11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외로워서 우는 왕이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니? 넌 우울한 시 따위를 보느라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겨서는 안 돼.
너처럼 되고 싶구나!
- 이 부분이 저는 무척 슬펐어요. 책으로 두 번 읽었고 딴 작품 때문에 오디오북을 구매했는데 이 작품이 들어 있어 또 들었죠. 글쟁이들에게 바치는 시 같은 작품이죠.

페넬로페 2021-08-11 14:02   좋아요 2 | URL
정말 그렇죠!
저도 슬프기도 하고 그냥 뒤돌아보지 말고 뚜벅뚜벅 가면 안되나 하는 안타까운 맘도 들더라고요. 네, 페크님 말씀처럼 글쟁이와 책쟁이들의 마음을 표현한 책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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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8-07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ㅜㅜ 아 이래서 종이책을 샀었는데
아직 오디오북만 듣고 종이책은 다 못 읽었어요.
편집이 읽기에 얼마나 많은 것을 차지하는지 또 느끼게하네요 :-)

페넬로페 2021-08-07 12:32   좋아요 1 | URL
네,각 나라의 앞장에 간략한 정보가 있어 유익하고 문장이 쉽게 이해를 잘할 수 있게 되어 중동에 대한 전체적인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어요^^
별점 5개 주고 싶어요**

han22598 2021-08-10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북으로는 사진이 이렇게 안 보였는데 ㅠㅠ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

페넬로페 2021-08-10 23:0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사진으로도 많은걸 알 수 있어 유익했어요^^
 

1,등수는 꼴찌에 가깝지만 그래도 31

 

요즘 많이 걷고 있어(수치로는 아닌데, ‘날씨가 더워서라는 핑계를 대고 싶다) 알라딘 22주년 독보적이벤트가 별로 새롭지는 않지만 스탬프에 욕심이 났다. 내가 지금 받은 스탬프는 9개인데 그 다음 도전 스탬프는 참 잘했어요이다. 하루에 3권 이상 리뷰를 쓰고, 5권 읽은 책장에 추가하면 받을 수 있는 스탬프인데, 하루에 3권 이상 리뷰를 쓸 능력이 안 되니 그대로 멈추어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22주년 스페셜 스탬프를 받고자 힘들고 피곤한 날에도 무조건 밖으로 나가 걸었고, 31일 완료했다.

 

예전에 피곤해서 항상 힘이 없다고 하면, 엄마는 늘 나에게 힘을 내면, 또 힘이 난다고 말씀하셨다. 그땐 힘이 없는데 어떻게 힘을 내냐고 엄마에게 짜증을 부렸는데, 피곤해도 나가서 걷거나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면 신기하게 몸에 힘이 생겨 엄마의 그 말씀이 무척 실감이 난다. 걷거나 운동뿐만이 아니라, 힘이 없어도 힘을 내야하는 상황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지 그럴 때마다 엄마의 말씀을 기억하려고 한다.

힘을 내면, 또 힘이 난다

 

2,어디서나 고수는 존재 한다

 

헬스장에 가면-나는 주로 오전에 가는데 그 시간에 매일 오시는 중년과 노년의 헬스 중독 남성분들이 여러 명 계신다. 한 번씩 가는 내가 그분들을 뵈면 참 송구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운동을 하신다. 하루에 2~3시간 정도 운동을 하시는 것 같은데, 그분들의 운동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을 존경한다. 뭔가를 시작해 중독의 상태로까지 가려면 그동안 얼마나 그것에 몰두해야하는지, 또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기에 매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려 그나마 띄엄띄엄 가던 헬스장을 거의 가지 않고 있다. 또한 날씨도 너무 더워 먼 곳에 있는 공원까지 걸어가기가 힘들어 요즘은 동네에 있는 작은 공원을 이용한다. 그곳은 가운데에는 축구나 농구를 할 수 있는 운동장이고, 운동장 바깥으로는 트랙이 있어 걷거나 뛰기에 좋다. 이 공원의 가장 좋은 점은 근육을 단련할 수 있는 운동 기구가 많은 것이다. 트랙을 두 바퀴 돌고 운동 기구를 이용해 운동을 좀 하고, 다시 트랙을 걷는 순서로 운동을 하다보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그런데 거기서도 운동 마니아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헬스장에 있는 분들보다는 근육이 우락부락하지는 않다. 옷도 그냥 평상복 그대로이다. 그 분들이 제일 많이 이용하시는 운동기구는 철봉이나 평행봉이다. 거기에서 보이는 그분들의 묘기는 나의 혼을 빼놓는다. 어떻게 근육을 단련했는지 철봉에서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고, 올림픽경기의 링이나 평행봉, 철봉에서 선수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흔들리지 않고 매달려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눈 깜짝할 사이에 안보여서 찾아보면 철봉에 거꾸로 서 있는 것이다. 정말 놀랍다. 그분들을 보면 오히려 헬스장에서 운동하시는 분들이 하수처럼 느껴진다. 어디서나 저렇게 열심히, 자신의 삶을 단련하며 사는 분들이 많은데 환경을 탓하고, 불평하는 내가 부끄럽다. 헬스장에 몇 개월치 돈을 내놓고 가지도 않고, 책만 사놓고 읽지 않는 게으름에 대해서도..

 

3,그리고 염치없는 사람들도 많다.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 힘은 빠지지만 의욕이 넘쳐, 내가 사는 11층까지 계단으로 걸어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한 때 구청에서 계단 오르기캠페인을 벌였는데, 우리 아파트 계단에도 여러 좋은 문구들이 붙여져 있다. 기분 좋게 헉헉대며 걷는 계단 오르기는 5층과 6층 사이에서 꼭 나를 멈추게 한다. 힘들어서가 아니고, 그곳엔 매번 담배꽁초가 몇 개비 버려져있고, 강아지의 오줌으로 흥건하다. 계단 논슬립은 이미 부식되어 청소하시는 분이 아무리 닦아도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때는 계단참에 아예 담배 한 갑이 놓여있다. 그 담배를 확 차고 싶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혹시 그 담배의 주인공은 조폭? 도끼 들고 날 찾아올까봐 성질을 꾹 누르고 다시 11층으로 향한다. 몇 번 관리실에 전화해 항의도 해봤지만 법적으로 제재할 근거가 없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그곳에는 <금연>이라는 스티커만 붙여져 있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기에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강아지 오줌도 그렇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의 마음은 알지만, 사실 예의를 갖추지 않는 견주도 많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키우면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시작하면 좋겠다.




 4,블랙 위도우

 

마블 영화 광팬인 딸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코로나를 뚫고 블랙 위도우를 보러 갔다. 난 마블보다는 스칼릿 조핸슨의 팬으로서 영화를 봤다. 영화의 내용에는 블랙 위도우들의 성장 과정이 담겨 있는데, 레드룸에서 훈련받는 수많은 위도우들은 이 세상에 깔려 있는 버려지고, 갈 곳 없는 여자 아이들로 채워진다고 한다. 그들은 너무 많아 그들을 데려오는 것은 쉽다. 그 여자 아이들을 데려와 명령에 복종만 하는 인간 병기로 키운다. 갈 곳 없는 여자 아이들이라는 말에 우리의 <펠리시아>가 생각났다. 7월에 알라딘 서재에서 윌리엄 트레버의 펠리시아의 여정을 많은 분들이 읽었기에 <펠리시아>는 우리의 <펠리시아>.




 

 

 

 

 

 

 

 

 





5,‘펠리시아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나 많다.

 

한 때 내가 사는 동네의 한 빌라에서 일정한 시간만 되면 싸구려 양복을 입은 청년들이 우루루 나오곤 했다. 여자들도 몇 명 섞여 있었는데, 그들은 여러 노선의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갔다가 저녁때에 다시 돌아왔다. 다단계에 빠진 청년들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집을 나가게 해서 허황된 욕망을 좇아가야 했는지 짐작은 간다. 세상에는 나쁜 어른들이 많기에 그들은 너무 쉽게 공수되고 착취된다. 갈 데가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이런 것이다. 또한 조종되어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처지로 만들 친구를 또 나쁜 사람들에게 데려가야 하는 수많은 펠리시아의 여정은 고달프다. 그런 그들이 우리 동네의 골칫거리였고 나쁜 이미지를 심어준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단속반이 나왔고 어느 순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설 펠리시아의 여정을 읽으며 왜 난 그들을 떠올렸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들은 어디쯤에 가 있는지 궁금하다.

 

6,‘힐디치의 말이 옳은 것도 있다.

 

[토끼같이 생긴 이 아이의 삶은 어떨까? 힐디치 씨는 생각한다. 이 아이는 저 흑인 여자처럼 종교적이지 않다. 생각해보지 않아도 그냥 알 수 있다. 그저 어딘가 갈 곳을, 의지할 데를 찾느라 이들에게 합류했을 뿐이다. 이 아이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그게 눈에 훤히 드러난다. 그런데 이 아이가 이 미친 인간들과 함께 지내면서, 안내책자를 들고 허튼소리나 하며 돌아다니면서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면, 대체 이 아이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276]

 

난 가톨릭교도이지만 다른 종교에 대해 그렇게 배타적이지는 않다. 내 것이 무조건 옳고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의 신념과 소신으로 종교를 택했고, 그것은 나에게 올바르게 가야 할 삶의 방향을 알려준다. 그런데 드물게 내가 싫어하는 종교가 있는데, 그것은 아이를 데리고 전도하러 다니는 사람들의 종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서 주인공인 덴고와 아오마메는 학교 동창인데, 그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에 서로 그들의 부모와 함께 마주친다. 덴고의 아버지는 NHK(기억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수금원이었고, 아오마메의 부모는 사이비종교에 빠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떤 집들을 방문할 때, 아이를 데리고 방문하면 문전박대 당할 위험이 훨씬 적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돈을 받아내고, 종교를 전도하러 다닌다.

 

아이뿐만 아니라, 혼자 보다는 두 명이 다니면 더 효과적인 것을 알기에 광신도 캘리거리 역시 누군가와 꼭 함께 다닌다. 그 누군가는 부모의 요청에 거절할 힘이 없는 어린아이들이거나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신세를 질 수 밖에 없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이다. 힘없는 아이들이 부모들과 함께 다니며 느끼는 그 자괴감과 어색함을 어른들은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그때 느낀 생각들에 의해 그들이 나중에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설사 알았더라도 자신의 믿음이 이 세상의 전부이고, 그렇게 믿어야 죽어서 영생의 삶을 살고 자신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맹신으로 당연히 자신의 아이들도 그 길을 걸어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어른들이 너무 나쁘다.




 

 

 

 

 

 








7,‘재난으로 재난을 만든다.

 

윤고은의 소설, ‘밤의 여행자들에는 재난을 찾아다니고 수치화해서 그것을 관광 상품으로 내놓고, 사람들은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설정이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는데, 문제는 그것이 사람들에게 먹힌다는 것이다.

 

[정글에서 취급하는 상품은 대략 150개 정도예요.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이 계속 상품을 만들어 내죠. 새롭지 않으면 강력하기라도 해야 상품도 살아남아요. 지진, 태풍, 화산, 산사태, 가뭄, 홍수, 화재, 대학살, 전쟁, 방사능, 사막화, 연쇄 범죄, 쓰나미, 동물 학대, 전염병, 산사태, 수질오염, 수용소, 감옥, 기타 등등 -P107]

 

'재난이라는 것이 프로그램화되고, 자본이 투입되며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재난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 피해자는 물론 가진 것이 없는 소외된 사람들이다. 재난이 재난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 사람들의 눈길이 떠나갈 땐, 다른 강력한 재난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눈에 거슬리거나, 필요한 시체를 얻고자 살아있는 사람을 가차 없이 트럭으로 밀어버린다. 한 번으로 안되면 후진해 다시 돌진한다. 이런 장면들은 영화나 TV 드라마에서도 무수히 많이 나온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본 빈센조에서도 제거해야 할 사람들은 트럭으로 밀어버린다. 난 그 잔인한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경악스럽고 화가 난다. 그렇게 당하고 마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법도 잘 풀어주지 않는다. 세상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도 언제든지 저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빈센조나 어벤져스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강력함에는 더 강력함이 필요하고, 거기에 더 강력한 빌런이 나타나고 어벤져스의 멤버들은 죽기 시작하고, 더 강력한 히어로가 나타나고......그런 악순환이 반복되지만 그래도 빈센조블랙 위도우의 활약은 나의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주었다. ’밤의 여행자들역시 거대한 자연재해가 그들을 응징하지만, 그것은 언제든지 우리들에게도 올 수 있는 것들이다.





 

 

 

 

 








8,역사는 판박이다.

 

미미님의 서재에서 이 책을 보고 읽고 싶어 1,2권을 읽었고, 계속 읽을지 고민하고 있다. 조선의 역사에 대해 그 흐름을 좀 더 정확히 알고 싶었는데 지금의 현실을 보고 있는 것 같아 껄끄럽다. 중간 중간 들어있는 박시백화백의 유머가 날 웃게 만들어 놓치기는 싫지만, 그 뒤에 나올 더 답답한 조선의 모습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다.





 

 

 

 










9,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얘깃거리가 그렇게 많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한국의 작가들은 어떤 소재로 글을 쓰는지 궁금하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전쟁을 겪지도 않았고,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며, 주변에 흑인도 없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지금 30년 정도의 시간이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라고 했다. 그 평화로운 시대에 글로 뭔가를 창조하는 작가들은 대단하다.

 

김금희 작가의 책을 읽으면, 그녀가 써 낸 텍스트하나만으로 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저기서 뭔가를 가져올 필요가 없다. 그냥 이 글만으로, 특별한 문장만으로 그 안에서 충분한 서사와 삶과, 머뭇거려서 슬픈 사랑을 만난다. 모국어로 읽는 희열도 있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도,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직진하지 못하는 사랑도 있어 그것들로 세상을 가득 채우는 느낌이다.

 

[그런 열의 없는 기오성의 추적을 눈치챘는지 꼬마가 담장 너머로 홀짝 넘어간 뒤 더는 달아나지 않고 대치하면서, 기오성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이라고 말할 수 없는 여러 압력들이 생각난 그는 당황했고, 꼬마가 재차 묻고 나서야 페퍼로니에서 왔어,라고 답을 했다고 했다. 페퍼로니가 뭐였는데요?...........그러고는 결국 아무 데서도 오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었을까요,라고 했다. -p160~161]

 

 

 


10,비극은 현실이다.

 

어제 마트에 가려고 집을 나섰는데 내가 사는 동 앞에 경찰차가 세 대나 와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경찰들과 형사들이 많았다. 왜 그런지 궁금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우리 동에서 어떤 여자가 뛰어내렸고, 사망했다고 했다. 여지껏 살면서 이런 사고를 가까이에서 처음 겪어보았다. 현장을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그 기운으로 인해 여전히 우울하다.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책이나 영화보다 비극은 훨씬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

 

당분간 계단 오르기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무섬증이 많은 나는 그 일 이후 계단을 올라가기가 두렵다. 그리고 이럴 때마다 내가 참 싫다. 도대체 종교는 왜 믿으며, 어떤 확고한 삶과 죽음의 경계와 생각을 가지지 못한 내 안의 어린아이를 쫒아내고 싶다. 육체와 영혼은 별개이며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그 영혼을 위한 진정한 묵주기도일 것이다. 그 기도에 이 세상의 모든 비극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염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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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05 13: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등.🖐

페넬로페 2021-08-05 13:46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scott 2021-08-05 16:50   좋아요 3 | URL
이 포스팅은 두서 없이 생각나는데로 쓰신게 아닌
지독할 정도로 무더웠던 7월을 관통했던 우리 이웃들의 삶과 비극이 담겨 있네요.

[육체와 영혼은 별개이며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그 영혼을 위한 진정한 묵주기도일 것이다. 그 기도에 이 세상의 모든 비극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염원]
저도 염원하는 마음!


페넬로페 2021-08-05 18:20   좋아요 2 | URL
저는 모두가 잘 사는 유토피아를 원하지만 세상의 일들에 제가 점점 비관론자가 되는것 같아 두서없이 적어봤어요. scott님께서 소개해주신 ‘밤의 여행자들‘ 너무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1-08-05 14:3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 분량과 정성이라면
다음달의 페이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coolcat329 2021-08-05 14:39   좋아요 4 | URL
동감입니다!👍

독서괭 2021-08-05 15:16   좋아요 3 | URL
동감입니다!!👍👍

scott 2021-08-05 15:29   좋아요 3 | URL
저도! .🖐 동감합니다

페넬로페 2021-08-05 18:24   좋아요 4 | URL
쓰다보니 분량이 많아졌어요~~
한번씩 그냥 제가 생각하는 것들을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아 2021-08-05 15:1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유 참 페넬로페님~♡♡♡ 페넬로페님의 글도 반갑고 그 중 박시백도 반가워요! 벌써 2권이나.사망사고는 팀단위로 재빨리 처리?하기 때문에 가까이 살아도 사건 여부를 모르는 경우가 상당하다고하네요. 저 초딩때 같은 아파트 살던 아이가..한동안 무섭더라구요. 저는 애견주의 에티켓에 철저하답니다(자랑)🤭

페넬로페 2021-08-05 18:28   좋아요 3 | URL
박시백화백의 만화로 쉽게 역사에 대해 정리할 수 있을것 같더라고요, 감사해요~~맞아요, 제가 조금만 늦게 나갔더라면 그런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처리되었을것 같았어요. 요즘은 이웃들이 교류를 잘하지 않아 카더라 통신도 없어요.
그저 섬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ㅠㅠ

mini74 2021-08-05 15: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엄마들 말은 시간지나면 다 맞는 말이 되는 것 같아요 ㅎㅎ 엄마말 좀 들을걸. ㅎㅎ

저도 엄격한 개엄마입니다. 그래서 우리 개가 개춘기를 심하게 하나 싶습니다 ㅎㅎ

아이고 놀라고 황망하시겠어요. 친구 하나는 빨래 널다가 목격을 했어요 근 한달을 친정에 있다가 왔는데도 힘들다며 단층으로 이사갔어요. 저도 같이 기도할게요 ㅠㅠ

페넬로페 2021-08-05 18:31   좋아요 4 | URL
엄마말을 잘듣고 잘 실천했다면 지금 좀 더 나은 인생을 살고 있을것같다는 생각도 해요. 말 안듣는 딸아이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고요 ㅎㅎ
친구분은 직접 목격했으니 더 힘들었을것 같아요. 세상에 좋은 일들만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되겠죠^^

새파랑 2021-08-05 16: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1층을 걸어다니시다니 완전 대단 👍👍 그런데 비극적인 사건이 동네에서 일어나다니 안타깝네요. 많이 놀라셨을거 같네요 ㅜㅜ 그리고 독보적 미션 31일 축하드려요 😄

페넬로페 2021-08-05 18:33   좋아요 3 | URL
11층까지 오르다보면 별로 힘은 안들어요~~알라딘 서재 친구분들과 서로 격려해가며 책 읽고 걷고 해서 미션 완료했어요.
감사드려요^^

붕붕툐툐 2021-08-05 17:5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두서없이 생각대로 쓴 페이퍼 이렇게 좋으면 반칙? 맘 먹고 쓰시면 일 내시겠습니다~😊
31일 성공 축하드려요~
우리 주변에 펠리시아도 고수도 염치 없는 사람도 힐디치도 비극도 많은 거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두려운 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으로 보이는 걸요~ 페넬로페님의 기도가 저의 기도입니다~🙏

페넬로페 2021-08-05 18:36   좋아요 5 | URL
툐툐님께서 매일 쓰시는 페이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거죠.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저 자신이 거기에 속하지는 않는지 은근히 걱정되기도 해요~~두려움을 빨리 떨쳐버리는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고픈데 아무래도 좀 지나야할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1-08-06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힘을 내면 힘이 난다는 님의 어머님의 말씀. 동감합니다.
저도 걷기의 장점을 잘 알고 실천하려 하고 있어요. 동아일보에 의사들의 건강법, 같은 내용을 소개하는 게 있는데 걷기, 를 실천하는 의사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점심 시간에 일부러 먼 식당에 걸어가서 먹고, 엘리베이터 대신 층계를 이용한다고 해요. 퇴근 시엔 버스나 지하철에서 일부러 몇 정거장 앞에 내려 걸어서 귀가하는 의사도 있고요.
걸으면 힘이 난나고 합니다. 걷기 예찬을 하는 분들이 워낙 많죠. 걸어야 산다, 라는 책도 있는 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1-08-06 18:38   좋아요 0 | URL
네, 걸으면 걸을수록 좋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걷기가 건강에도 좋지만 밖으로 나가니 기분 전환도 되더라고요^^

모모 2021-08-06 2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묵주기도로써 평화를 얻으시길...
프란치스코입니다. 반갑네요^^
쇼핑하듯 책은 많이 사두는데 정작 읽기는 유튜브에 지고 마는 현실에 후회 막급입니다.
잘 읽었어요, 늘 느꼈지만 공감이 많이 가네요.

페넬로페 2021-08-06 23:35   좋아요 1 | URL
모모님,, 저도 반가워요~~
어떤 영혼을 위해 하는 기도가 제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어 참 신기한것 같아요^^제 글에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펠리시아의 여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5
윌리엄 트레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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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길을 떠나는 이유와 방법들은 아주 많다. 변변한 가방 하나 없이 비닐 쇼핑백 두 개를 들고 집을 나서는 펠리시아에게도 여정(旅程)의 목적은 있다. 축복받기는커녕 적어도 허가된 것도 아닌 그녀의 떠남은, 낯선 곳에 도착하고도 또다시 800m, 40Km, 두 시간 거리의 도시들을 헤매는 것으로 결과가 예상된다.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 <펠리시아의 여정>은 처음에 펠리시아의 시각을 통해 세밀하고 주도면밀하게 배경이 묘사된다. 나열된 배경은, 이미지로 변해 머릿속에서 계속 영상으로 재생되는 것 같다. 그것은 어떤 자세한 설명보다 시대적 상황이나 펠리시아에게 놓인 현실을 더 잘 이해시켜준다. 그리고 소설의 중간부분부터 작가의 문장과 내용에 점점 빠져 소설에 깊이 몰입하게 된다.

 

가족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칠푼이’, ‘나사 빠진 인간으로 불리어지며 집안일을 도맡아하고, 백 살이 다 된 증조할머니까지 돌보는 펠리시아는 순수한 소녀이다. 외모에 자신이 없고, 첫사랑인 남자에게 고백도 하지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접근한 조니 라이서트를 사랑하게 되고 임신까지 하게 된다. 외롭고 힘들었던 그녀에게 누가 봐도 새파란 건달이며 교활한 그가 한 행동을 펠리시아는 사랑이라 여긴다. 그 어이없는 사랑과 믿음은 그가 있는 영국의 버밍엄 북부를 향해 그녀를 아일랜드의 집에서 떠나게 만든다. 펠리시아가 아는 건, 조니가 영국의 버밍엄 북부에 있는 한 도시에서, 잔디깎이를 만드는 공장의 부품창고에서 관리인으로 일한다는 그것 하나뿐이다. 무모했지만, 아무도 모르게 펠리시아는 출발한다.

 

힘듦은 지금 사는 곳에서 사람을 살게 하지 못하고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펠리시아뿐만 아니라 재키, 베스, 엘시 커빙턴, 샤론, 게이, 보비역시 그 힘듦으로부터 탈출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예상하고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더 끔찍한 건 듀크 오브 웰링턴 로드 3번지처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조용하고도 집요하게 달려드는 선량함과 도움으로 가장한 진짜 악의 모습들이다. 그것은 진실인 듯 보여도 거짓말투성이고, ‘힘듦에서 떠난 사람들이 덥석 잡을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먹이를 가지고 있다.

 

한 번씩 소설에 나오는 인물을 이해하기 힘든 때가 있다. 소설가 켄 리우종이 동물원서문에서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생각이 내가 이 글을 쓰면서 머릿속에 떠올렸던 생각과 똑같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당신과 나, 우리는 서로 다르고, 우리가 지닌 의식의 특질도 우주 양 끝의 두 별만큼이나 서로 다르다고 했다.(‘종이 동물원’, 켄 리우,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서문에서 인용) 우리는 생각과, 살아온 만큼의 배경지식이 다 다르므로 어떤 사람을 제대로 판단하기가 어렵다. 작가가 서술한 힐디치는 누구인지, 작가의 의도대로 내가 그를 이해했는지 궁금했다. 그가 나쁜 사람인지, 아니면 충분히 그에게도 어떤 정상 참작의 이유가 있는지 이 힐디치라는 인물에서 계속 멈추어 있어야 했다.

 

힐디치에 대해 어떤 평가와 단정을 내리려 할 때마다 윌리엄 트레버작가는 그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하나씩 던져주며 우리들의 판단을 유보시킨다. 작가는 힐디치로 대변되는 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은 모호하고 혼란스럽고,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키워진 것일 수도 있다. 힐디치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그의 엄마는 아무 남자에게나 추파를 던지며, 그들을 집에 끌어들이는 여자이다. 자신이 꿈꾸던 군인의 모습도 신체적인 결함으로 이루지 못한다. 어쩌면 듀크 오브 웰링턴 로드 3번지는 그에게 외로움과 지켜지지 않는 약속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키워지고 점점 부풀려지는 내면의 불만들은 왜곡되고 뒤틀린 모습으로 외부로 향해간다. 힐디치가 우정이라 규정하며 행하는 것들은 철저하게 계획적이고 집요하다. 갈 곳 없는 어린 소녀들의 약점을 이용해, 멀리서부터 촘촘히 거미줄을 쳐오며, 마지막엔 그들이 꼼짝할 수 없게 만든다.

 

힐디치는 펠리시아의 돈을 훔치며,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락시키고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 영국에 대해 뼛속깊이 적대적인 감정만을 가지고 있는 펠리시아의 아버지는, 조니를 거부한다. ‘모임의 집광신도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따르며 같이 행동할 사람들만 받아들인다. 그녀가 사랑했던 그 건달은 끝내 그녀에게 주소를 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조니 라이서트는 펠리시아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유가 있고, 그들 역시 힘들었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나쁜 사람은 나쁘다. 그들이 아이들을 떠나게 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만든다.

 

[그녀는 이제 예전의 자신이 아님을 안다. 가을날 결혼식 신부 들러리도 아니고 자동차 뒷자석에서 담요를 뒤집어썼던 아이도 아니다. 한때 그녀의 것이던 순수함은 시간이 흐르며 이제 어리석음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남아 있고, 상실을 경험한 예전의 그녀는 지금의 자신으로 이끈 사람이기에 소중하다. 또다른 아침, 눅눅한 밤을 보내고 맞는 화창한 아침에 길을 걸으며, 그녀는 자신을 감싸는 평온함을 당황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새로이 깃든 그 평온함을 기뻐한다. -p312]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펠리시아의 순수함은 결국 힐디치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힘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노숙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펠리시아를 살리는 것인 동시에 죽이는 것이다.

 

캘리거리같은 광신도가 외치는 기도는 공허하다. 모든 것이 풍요로운 지상 낙원은 죽고 난 뒤에 갈 수 있는 곳이고, 현실에서는 사슴과 사자가 같이 뛰어놀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뭔가가 아주 조금만 있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도 있는 이들에겐 먼 훗날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죽음으로, 노숙자의 삶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처음 읽은 윌리엄 트레버의 글에서 난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힐디치는 흐릿하다. 그의 글을 계속 읽어나가며, 조금은 뚜렷한 힐디치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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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7-31 01:3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것참 <종이 동물원>도 읽어야하네요!! 😉 제가 요즘 꽂히는 주제가 계속 눈에 들어와 신기합니다ㅎㅎ페넬로페님 즐거운 주말 되시길요~♡♡

페넬로페 2021-07-31 08:24   좋아요 4 | URL
제가 생각하는 고민들과 미미님께서 생각하시는 주제가 비슷할듯 해요~~
비오는 주말이 좀 시원해지면 좋겠어요^^

페넬로페 2021-07-31 08:36   좋아요 5 | URL
날씨가 쨍쨍~~
비는 밤에만 오는건가봐요.
미미님, 더위 잘 이기는 주말 보내세요**

scott 2021-07-31 01: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펠리시아 처럼 도시로 올라오는 순수한 영혼을 짓밞는 이들이 존재 한다는 것!최근에 읽은 명상 살인에 독일에서 온갖 범죄짓을 저지르는 일당등이 일자리를 찾아 독일로 밀입국한 소녀들에게 힐디치 같은 짓을 하고 이런 범죄를 은닉하고 변호해주는 변호사들로 넘쳐 난다고 ㅜ.ㅜ 이런 악인을 키운 사회의 법망이 너무 허술 합니다.

페넬로페 2021-07-31 08:28   좋아요 5 | URL
어찌 그런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지 참 슬프고 암담합니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의 모순이 점차 더 이 사회를 흔드는것 같아요 ㅠㅠ

바람돌이 2021-07-31 02:1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종이동물원은 좋나요? 저는 뒤에 나온 어딘가 상상도 못할곳에 수많은 순록떼가 읽었는데 살짝 취향이 아니어서 제껴두었는데요. 그런데 켄 리우 하면 다들 종이동물원 얘기하시더라구요.

페넬로페 2021-07-31 08:30   좋아요 5 | URL
요즘 읽고 있는 책인데 쉽지는 않은것 같아요. 일단 다 읽고 글을 쓰도록 해보겠습니다 ㅎㅎ

coolcat329 2021-07-31 07:35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저도 읽을 책이라 줄거리는 조금 맛만 봤습니다.
<종이 동물원>저도 읽었는데 서문에 저런 말이 있었군요. 기억이...😟

이 소설은 힐디치라는 인물이 문제적인가보네요. 아 더욱 기대됩니다.

페넬로페 2021-07-31 08:33   좋아요 6 | URL
이 소설의 주인공이 분명 펠리시아인데 저에겐 이 힐디치라는 인물에 대해 생각할 것이 더 많았어요. 이 인물에 대해 분명한 결론을 내릴수도 있는데 좀 더 많은 생각을 해볼수 있을것 같더라고요^^

Falstaff 2021-07-31 10:47   좋아요 6 | URL
ㅋㅋㅋㅋㅋ 저도 다 읽고 독후감까지 써놓았습니다. 목요일에 올릴 계획이고요.
읽기 전에 많이 올라왔던 독자서평, 하나도 안 읽었습니다.
얼마나 잘한 일인지 말입니다. ㅋㅋㅋ 다 읽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전 힐디치, 이 양반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읽었습죠. ㅋㅋㅋ (자랑!)

페넬로페 2021-07-31 13:04   좋아요 5 | URL
폴스타프님
네,저도 리뷰 쓰기 전에는 다른 분들이 쓴 리뷰 읽지 않았는데 이제 읽어보려합니다
목요일에 예고하신 리뷰, 기대합니다^^

han22598 2021-08-04 01:28   좋아요 1 | URL
저도 읽지 않았습니다. ㅎㅎㅎ

새파랑 2021-07-31 10:5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읽으셨군요😄 저에게 힐디치는 나쁜놈이지만 불쌍하다면 조니는 그냥 나쁜놈이었어요 ㅋ

페넬로페 2021-07-31 13:06   좋아요 4 | URL
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의 엄마도 똑같았어요
펠리시아가 임신한줄 알면서도 어찌 그렇게 무책임한지 참 화가 났어요^^

서니데이 2021-08-01 00: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오늘부터 8월입니다.
8월엔 더 좋은 시간 되시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08-01 00:41   좋아요 5 | URL
벌써 8월이 시작되었어요.
그리고 아마 계속 무더울 것 같아요.
서니데이님, 8월 한달도 잘 보내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mini74 2021-08-01 14: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종이 동물원의 서문 ㅠㅠ 저도 기억이 전혀 ㅠㅠ 힐디치편만 따로 장편소설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했었어요 ㅎㅎ 페널로페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페넬로페 2021-08-01 17:18   좋아요 1 | URL
책을 펼치면 처음부터 읽는 버릇이 있어서요~~저 서문에서 위로를 좀 받았어요. 펠리시아의 여정에서는 펠리시아가 주인공이지만 그 서사가 우리가 예상가능하잖아요. 그래서 힐디치에 대한 생각들이 더 많아지더라고요^^

레삭매냐 2021-08-03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캘리거리가 외치는 종교가 전혀
펠리시아의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역설이 참...

누구를 위한 믿음이었는지 캘리
거리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악당 힐디치는 마지막 순간에 과
연 회개했을까요...

페넬로페 2021-08-03 19:10   좋아요 0 | URL
캘리거리가 저는 이 책에서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봤어요. 힐디치는 끝까지 자기연민과 자괴감때문에 회개하지 않았을것 같았어요~~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많이 쓰셨는데 다들 너무 훌륭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