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교환학생으로 간 학교의 학기가 끝나는 시기에 맞춰 5월에 여행일정을 정하고, 1월에 파리로 가는 직항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경유해서 가는 좀 더 싼 비행기 표를 알아볼 수도 있었지만 혼자 가는 초행길이라 중간에 갈아타는 것이 불안했고, 힘든 경로로 인해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과감히 질러 버렸다.
여행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중에 가슴 한 켠에 한 가지 걱정이 계속 맴돌았다. 박완서 작가의 표현대로 ‘언제 죽어도 이상할 거 없는(확실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뉘앙스였던 것 같다)’ 양가의 노모가 ‘여행 직전이나 여행 중에 혹시라도 위독하시거나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어쩌나!’라는 우려였다. 2주 동안이나 일을 쉬어야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라 마음이 계속 불안한 상태였다. 그러다 엉뚱한 곳에서 큰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4월 중순에 학기를 마친 딸아이는 2주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을 혼자 다녀오고, 그 후 나와 합류할 계획을 세웠다. 누구나 한번쯤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은 로망이 있다. 나는 가톨릭교도이기에 그 길에 대한 더 큰 기대가 있다. 하지만 딸아이가 혼자 그 길을 간다고 했을 때 산티아고 순례길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전에 제주 올레길을 혼자 걷다가 살해당한 여성이 떠오를 정도였다.
처음에는 반대를 했지만 내 말을 들을 딸아이가 아니었다. 배낭, 신발 등 순례길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커뮤니티에도 가입해서 같은 날 출발하는 한국 사람들과 그곳에서 식사까지 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었다. 지친 일상을 벗어나 자신을 찾고 싶은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마침 투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 와 여행기를 연재하는 작가가 있어 그 분에게 문의도 해 보았다. 너무 늦게 혼자서 걷지 않는 한 별로 위험하지 않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약간 안심이 되었다.
순례길을 가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하고 포르투갈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 딸아이는 그동안 사용한 물건을 넣어 둔 캐리어를 짐을 보관해주는 호스텔에 맡겨야만 했다. 캐리어를 끌고 길을 걷는데(무거운 배낭을 어깨에 맨 채로) 갑자기 쏟아진 비로 길이 미끄러워 그만 캐리어가 넘어져버리고 말았다. 그 반동으로 딸아이까지 길에 미끄러져 왼쪽 발목이 완전 접질려졌다.
통증으로 빗길에 한참 쓰러져있던 아이를 자전거를 타고 가던 프랑스 여성이 자전거에서 내려 아이를 도와 약국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약국에서 간단한 응급처치를 하고 급하게 병원에 예약을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물론이고 포르투갈 행 비행기 표도 완전히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달리 아프면 일단 1차 병원에 먼저 가야한다. 그곳에서 진료를 받고 의사의 결정에 따라 다른 병원으로 갈 수 있는데 그것도 많이 기다려야 한다. 한국처럼 1차로 갈 수 있는 병원이 종류별로 나눠져 있지 않고, 응급실은 정말 위급할 때만 갈 수 있다고 한다. 어떤 한국인이 응급실에 갔다가 병원비가 천만 원이 나왔다는 얘기도 있다.
X-ray 판독결과로 뼈에 골절이 있지는 않아 움직이지 말라는 것과 발목 보호대와 진통제 한 알만을 병원에서 처방받았다. 딸아이는 급하게 숙소를 잡았지만 그곳에서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기는 무리였다. 일단 통증이 너무 심했고, 좀 더 세밀한 치료가 필요했다. 다리가 불편해 세끼를 챙겨먹는 것도 힘들었다. 멀리 있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속만 태워야했다. 오죽하면 일면식도 없는 알라딘 서재의 난티나무님께 비밀댓글로 문의를 했다. 난티나무님께서도 병원의 처방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글을 통해 난티나무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전한다.
딸아이는 귀국을 해야 했고 나는 여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로 딸아이는 통증과 함께 나에게 미안해했고, 나는 딸아이에 대한 걱정과 여행에 대한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파리에서 딸아이가 이에 대해 고민을 했고, 귀국과 여행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생각해냈다. 만약 내가 갈 때까지 파리에서 체류해도 어차피 돈이 많이 들 것이니 그 체류비로 왕복 비행기티켓을 끊어 한국에서 치료받고 다시 나와 여행을 하자고 했다. 여행을 포기해도 손해가 많았다. 돌아오는 비행기 표의 날짜를 한 번 바꾸었기에 딸아이의 비행기는 환불받을 수 없었고, 나의 비행기도 30만 원정도 수수료를 내어야하고, 유로스타를 비롯해 숙소 등 다른 예약한 곳에도 100% 환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예매할 수 있는 비행기중 가장 싼 것을 선택하다보니 딸아이는 아픈 다리로 바르샤바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야했으며 돌아갈 때도 나보다 하루 먼저 출발해야 했다. 딸아이가 돌아온 그 다음날 바로 병원에 데려갔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이 있는 정형외과와 재활의학과는 합쳐서 5군데 정도 된다. 그 중 평소에 다니던 곳으로 갔다. 뼈가 골절이 되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실금이 있을 수 있다는 소견과 함께 그동안 반 깁스를 하자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어쨌든 대한민국의 의료 시스템이 이렇게나 좋을 수가!
다시 출국하기 위해 딸아이는 반 깁스를 풀었지만 완전히 좋아진 건 아니었다. 전에 언니도 호주여행을 갔을 때 다리를 접질려 그곳에서 지팡이를 구매해 사용했었는데, 그 지팡이를 보내주었다. 딸아이는 발목보호대를 찬 채로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만 했다.
인생사 새옹지마, 전화위복!
지팡이를 짚고, 여전히 통증이 있어 거동이 불편한 딸아이를 옆에서 부축하며 다니기 힘들었지만, 어디에서나 배려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유럽의 유명한 미술관은 예약을 해도 줄을 길게 서야 하는데, 딸아이는 장애인으로 분류되어 줄을 서지 않고도 입장할 수 있었다.
특히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볼 때가 압권이었다. 모나리자는 방탄유리로 보호되고 있었고, 관람객들은 먼 발치에서 여러 사람에 둘러싸여 그 유명한 그림을 감상해야만 한다. 그러나 딸아이는 장애인으로, 나는 보호자로 모나리자 바로 앞에서 직관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아무런 시야의 방해도, 시간제약도 받지 않고 모나리자를 감상할 수 있었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모나리자는 나에게 웅숭깊은 말을 걸어왔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율이 느껴졌다. 이 그림이 왜 그렇게 유명한지 잘 표현하지는 못해도 이유를 알 수 있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의 숙소가 좁고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곳이라(그래도 하루에 20만원이다) 힘들었고, 여행에 조금 지친 상태라 새로운 도시로 이동해 4박 5일을 잘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파리에서는 거의 매일 비가 오고 날이 개기를 반복했고, 네덜란드의 쾨켄호프에서도 비가 내려 계속 우산이 필요했다. 비가 오면 또 다른 도시의 풍경을 만날 수 있어 낭만적이고 운치가 있지만 다리가 불편한 딸아이에게는 위험해 긴장해야만 했다. 반 곱슬머리인 나에게도 비와 습기는 치명적이다. 아침에 드라이기와 고데기로 잘 정리한 내 머리는 조금의 물기를 만나도 제 본성으로 돌아가 버린다.
런던은 한국의 초봄 기온과 비슷해 쌀쌀했지만 우리가 머무는 내내 날씨가 맑아 좋았다. 날씨 안 좋기로 소문난 런던이라 걱정했는데 오히려 세 도시 중 날씨가 최상이었다. 런던은 생각보다 현대적이었고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다. 어디를 가든지 버스킹을 하는 뮤지션을 만날 수 있었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양편에 뮤지컬 공연 포스터가 빽빽이 들어 차 있었다. 파리와 암스테르담에 비해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도 적었고, no-smoking지역도 많았다. 일단 영어로 모든 것이 소통 가능해 마음이 놓였다. 숙소비용이 가장 저렴했지만, 제일 만족스러웠다. 런던의 지하철은 파리에 비해 훨씬 이용하기 편했고, 한 라인에 여러 노선이 다니는 것이 한국과 달랐다.
‘노팅 힐 서점’은 1999년에 개봉한 영화 ‘노팅 힐’ 덕분에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곳에 관심이 많았다. 실력이 부족해 영어 원서를 잘 읽어내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떠나 책 구경 자체는 언제나 흥미롭다. ‘더 노팅힐 북샵’은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서점이었다. 전시된 책의 표지들이 정말 예뻤다.
‘노팅힐 북샵’에서 사고 싶은 책이 많았지만 딱 한 권만 골랐다. 호머의 ‘The Odyssey’이다. 나를 그리스 고전의 세계로 인도해준 책이고, 여행자에게 이만큼 어울리는 책은 없을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영웅이기보다 인간적이라 매력적이며,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는 그것을 통한 경험, 고통으로 한층 더 성숙한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노팅 힐을 방문한 날이 마침 토요일이라 포토벨로 거리에 굉장히 큰 로드 마켓(Portobello Road Market)이 열려 있었다. 규모가 엄청났다. 여러 가지 물건과 길거리 음식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마켓을 구경하며, 물건을 전시하는 방법은 한국의 남대문 시장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노팅 힐에서 딸아이와 티 타임!
러시아 출신의 금융계의 거목인 존 줄리어스 앵거스테인이 사망하자 그의 소장품 38점이 미술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영국 정부가 그것을 매입하고 1824년 앵거스테인의 개인 저택에 내셔널 갤러리를 개장한다. 1838년 트라팔가 광장 인근에 웅장한 고전 스타일로 지은 새 건물로 이전한다. 내셔널 갤러리는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초기의 작품부터 19세기 말 작품까지 회화작품만을 전시하고 있다.(내셔널 갤러리에서 꼭 봐야 할 그림, 김영숙, 휴머니스트, p.100)
파리와 달리 런던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거의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그림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 잘 모르지만 한국에서도 기회가 될 때마다 미술 전시를 관람하곤 했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볼 때, 그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면 좋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전문가의 설명을 그대로 그림에 적용시킬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림 앞에 서서, 그 그림을 내 눈에 담고 나름의 느낌을 간직하면 된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보다 다른 그림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내셔널 갤러리 앞에서의 거리의 화가와 버스킹
뮤지컬 『위키드』, 아폴로 빅토리아 극장
런던은 단연 뮤지컬의 도시라고 할만하다. 한 작품을 전용극장에서 장기 공연할 정도로 인프라가 풍부하다. 상연되는 여러 뮤지컬 중 어떤 것을 볼 것인지 고민했는데, 영어 듣기가 잘 되지 않는 나를 위해 딸아이는 위키드와 레미제라블을 선택했다. 이 두 뮤지컬은 다른 뮤지컬에 비해 저렴했고, 한국에서 관람한 적이 있어 내용과 넘버가 익숙했다.
한국에서는 뮤지컬을 볼 때, 기침소리를 내는 것조차도 민폐에 속한다. 심지어 공연이 끝난 후 몇 열 어느 좌석에 앉은 누군가가 기침을 해서 관람에 방해가 되었다고 공연 후기에 지적할 정도이다. 위키드를 상연하는 극장에 조금 빨리 도착한 딸아이와 나는 그곳에서 한국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뮤지컬을 보면서 음식과 음료를 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 좌석 앞에 있는 QR코드에 접속해 음식을 시키면 직원이 좌석까지 직접 배달해주었다. 인터 미션때는 아이스크림을 관람석에 가져와 팔기까지 했다. 관객들은 다들 먹을 것을 들고 왔다. 와인 병을 통째로, 와인글라스까지 들고 왔다.
이런 문화가 뮤지컬 관람에만 집중하고자 하는 관객에게 방해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배우들의 공연과 관객들의 즐길 권리가 너무 잘 어우러졌다. 위키드의 내용이 약간 즐기면서 볼 수 있기도 하지만, 관객들은 공연에 방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 잘 즐길 줄 알았다. 뮤지컬만 보는 것이 목적이 아닌, 가족, 연인들이 함께 와서 몇 시간동안 충분히 잘 놀다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문화적 차이가 충격으로 다가 올 만큼 신선했고, 우리도 한 번 시도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Sondheim Theatre
레미제라블은 위키드만큼의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음료 정도는 마실 수 있었다. 딸아이와 나도 미리 맥주를 준비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이 ‘레미제라블’인데 역시나 좋았다. 레미제라블의 넘버는 언제나 좋고 자베르역을 맡은 배우가 너무 멋있었다. 그가 부르는 ‘Stars’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뱅크사이드 발전소를 개조해 개관한 테이트 모던 갤러리는 20세기 이후의 현대미술을 전시해 놓고 있다. 여러 분야의 현대미술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는 테이트 모던은 나에게는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곳이었다. 전시 목적과 설명을 잘 읽으면 어느 정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역부족이라 그 이미지만을 느끼고 나와야 해서 아쉬웠다.
12시에 문을 여는 테이트 모던 6층에 있는 ‘테라스 바(Tate Modern Terrace Bar)’는 템즈강의 아름다운 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맞은편에는 ‘세인트 폴 대성당’이 있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입장료가 20파운드가 넘어 그냥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테라스 바 아래로는 밀레니엄 브리지가 있다. 템즈강이 별로 넓지 않아 밀레니엄 브리지로 금방 건널 수 있지만 역시나 보기만 했다.
테이트 모던 갤러리 가까이에 버러 마켓(Borough Market)이 있어 이곳에서 빠에야 한 접시와 생과일 쥬스로 점심을 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