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속물들
오현종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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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들이 거룩하다니...참 아이러니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시인 김수영의 산문 '이 거룩한 속물들'에서 가져온것이라는데 과연 거룩한 속물들이란 어떤 모습일지

들여다보자.  숭고와 봉사를 미덕으로 삼아야 하는 사회복지학과라는 거룩한 학과를 다니는 여대생 명과 지은과 기린은

가장 빛나는 20대에 이미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치룬 막장파 아가씨들이다.

할아버지의 유산이 어디로 갈것인가가 집안의 이슈인 명의 가족들은 사업에 교수에 먹고사는데는 지장이 없는 사람들

임에도 호시탐탐 오늘 낼 하는 할아버지의 유산에 촉각이 곤두서있다. 제주도도 못가봤다고 징징거리는 명의 엄마는

해외골프여행에 보석을 휘두른 부잣집 마나님이고 당연히 엄마를 제대로 닮은 명은 시시한 이나라가 싫어서 졸업하면

유학을 가려고 준비하는 새침녀이다.

공인중개사시험을 보라고 윽박지르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지은은 6개월을 넘지 못하는 연애를 밥먹듯이 하고

사귀던 남자들이 사준 명품을 더 사랑하는 불감녀이다. 그녀의 오르가즘은 순전히 서비스용이다.

아무도 그녀의 불감증을 눈치채지 못할만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감의 연기가 탁월하지만 정작 중요한건 사랑불감증이

심각하다는 거다. 불꺼진 집이 싫어서 방황하고 잠깐이라도 남자가 곁에 없으면 초조해지는 그녀는...외롭다.

SKY의 화려한 이력과는 다르게 백수로 전락한 아버지와 늙은 피아노 교습선생인 엄마...TV속 환상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언니와 살고있는 기린은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면서 명과 지은의 공주놀음을 가까스로 합류했지만

에비앙생수병에 학교식당정수기물을 리필하는 뱁새 아가씨이다.

졸업을 앞둔 그녀들이 세상을 사는 방법은 참 속물스럽다. 돈이 최고라고 믿고 의사를 만나 결혼해서 급행열차 1등석에

합류하고싶은 골빈녀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들 나름대로는 삶의 목표가 확실하고 현실적이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있는것들이 더 무서워. 리필녀 기린을 데리고 다니면서 뒤에서는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는 명과 지은에게 기린은 자신들을

돋보이게 하는 받침대에 불과했던 것일까? 졸업하면 밥벌이를 할 걱정도 없고 물려받은 유산으로 희희낙락 살아갈수 있는

그녀들의 눈에 세상은 참 만만하게 보이기도 하겠다.

 

기린은 왜 황새족 명과 지은과 함께 할수 밖에 없었을까. 같이 있는 순간만큼은 20년넘은 아파트에 지리멸멸하게 살고있는

가족들과 졸업후에 뭘해야할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걱정을 잊을수 있었던 것일까.

우연히 방송아카데미에 등록하고 스크립터가 되면서 기린은 자신이 뭘할 수 있는지 뭘하고 싶은지를 알게된다.

공중보건의로 근무하는 동운과의 만남은 단지 사모님소리가 듣고 싶었던 속물근성때문이었을까.

요즘 젊은 사람들 참 쿨하다. 사랑과 의미없는 섹스를 즐기고 책임같은건 서로에게 묻지 않는다.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 하지만 외로움의 골은 더 깊어진다는걸...본인들은 안다.

아쉬움으로 끝낸 어설픈 만남과 헤어짐이 깊은 사랑으로 인한 상처는 만들지 않았다는것 뿐.

 

대학졸업식이 축복이기만 한 시대는 갔다. 명과 지은은 그녀들이 살았고 살아야 할 뻔한 세상속에 남겨지고

서울 밖으로, 명과 지은과 잠깐 동안 속했던 세상밖으로 기린은 나올 준비를 한다.

속물들이 없는 세상에 고고한 사람들만 산다면 세상이 아름다워질수 있을까.

고고함이 돋보이려면 속물들도 필요한 법. 이제 기린은 편협하고 좁은 세상에서 걸어나와 커다란 세상속에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그녀가 쓰고싶었던 글속에 한때는 속물스러웠던 시간들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수많은 속물들이 환호할 그런 글을 쓸것이다. 속물만세! 특히 거룩한 속물 더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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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라 브라바! - 기대해도 좋을 내 인생을 위해
아네스 안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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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Brava! Princess!

이책을 읽는 내내 20여년전 내가 걸었던 그길들이 떠올라 가슴이 벅차 올랐다.

디즈니랜드가 빤히 보이던 애너하임에서 나도 길을 잃고 서있었으며 이책에 소개된 우리의 프린세스들이

치열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했던 샌프란시스코와 라스베가스에서도 나는 서있었다.

강수가 모자랐던 그 사막의 땅에 홍수가 나고 지진이 나고 결국은 흑인폭동이 휩쓸고 지나가던 그때에

나도 몇푼의 돈만을 들고 꿈을 쫓아 그곳을 찾았었다. 내가 지나갔던 그길을 그녀들이 걸었고 결국은

머리에 빛나는 왕관을 쓰고 언젠가 그녀들을 뒤쫓을 수많은 후배들에게 이정표가 되었다.

 

 '내 꿈을 비 맞게 할 수 없다'는 글을 본순간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나는 수없이 내꿈을 비맞게 했으므로..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우산은 상관없이 비오는 하늘만 원망했으므로..

 

'가장 창피한 건 실력없는 자존심이다. 실력없는 자존심은 버려야 한다. 자신의 가슴속에 감춰져 있는 오기와 근성을

건드려준 이에게 해줄 보답은 오직 실력을 보여주는 일뿐이다'-40p

 

알량한 오기와 자존심만으로 똘똘뭉쳐있는 내가 과연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기는 한걸일까.

우리의 프린세스들은 풍요한 나라의 그림같은 프린세스들이 아니었다. 재투성이 신데렐라처럼

빨래도 하고 불도 때고 물도 길어 올리는 시녀에 가까웠던 그녀들이 잘생긴 왕자를 만나 선택을 받은것이 아니라

파도뒤에 보이는 대륙을 향해 힘차게 노를 저어 아무도 갈수 없을거라고 믿었던 신대륙에 스스로 깃발을 꽂은

프론티어 공주였던 것이다. 이제부터 그녀들이 할일은 왕국을 번성시킬 신하들과 시종들을 구하는 일만 남았다.

물론 언제든지 또다른 대륙을 향해 호시탐탐 열정을 불태우고 있으니 그녀들의 미래에 배팅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적당한 사람만나서 결혼만 잘하면 되는거지. 폭풍도 없고 홍수도 일어날것 같지 않은 삶이면 족한거지.

우리는 이런 무탈한 삶에 너무 빨리 안주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 내가 사절한다.'  어디서 이런 똑부러지는 말들을 끌어냈을까.

갑자기 나는 저자를 만나 꼭 안아주고 싶어졌다. 이런 재간둥이 같으니라구..

머리로만 떠올린 글이라면 이렇게 내가슴을 울리지 못했을것이다. 실제로 그녀가 치열하게 겪지 않았다면

끌어낼수 없는 언어들이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색맹화가를 위해, 꿈을 접고 암으로 죽어가는 화가를 위해, 정작 어렵게 자신의 전시회가 열리던날 뇌수술을

받고 의식이 희미한 화가를 위해 비디오 카메라와 컴퓨터를 가지고 병원으로 달려간 큐레이터 박설빈을 보면서

단순히 명예와 성공만을 향하는 액션이 아니라 우리나라사람 특유의 섬세하고 따뜻한 인정이 개인주의에 익숙한

그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내곁에도 희망스위치가 있을까? 날아오르지 못하는 호박벌의 숙명을 떨치고 나는 꿀을 딸수가 있을까.

이미 다 차지해버린 기득권자들의 틈속에 아직 예외가 남아있기는 한것일까.

이미 그길을 걸었지만 '기회야 네가 올줄 알았다'하고 잡지 못했던..아니 준비조차 못했던 내게

그녀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늦으면 어때요. 패자부활전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힘내요. 한번뿐인 소중한 인생인데 어때요?

다시 한번 힘을 내보는 게...Queen! La Brava!.

 

결국 고개를 넘지 못해 물이나 긷고 있는 무수리지만 한때 다른 누군가의 삶을 동경하고 꿈꾸다

이제는 누군가의 꿈이 되어 버린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를 짓누르고 있는 껍질을 벗어던지고

훨훨 날아오르는 꿈을 다시한번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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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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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홍대입구역 2번 출구로 나와 주유소 뒷길로 들어서, 오십 미터쯤 걸어 막회 집 앞에서 좌회전하여

KT신촌지사 담장을 따라 실내 포장마차와 작은 빵집을 지나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세번째 건물 지하에

'제3의 작가'라는 간판이 걸려있고 그곳에 대필작가인 한남자가 살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에 사막속 우물처럼 숨어있는 이곳은 시간이 비껴간듯이 오래된 건물들과 목욕탕과 어디론가

떠나갈 수 없는 오래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맹호부대로 베트남에도 다녀왔고 장기복무를 끝내고 시작한 두번의 사업이 망해버리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남자의 아버지는 가난했던 유년의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둠의 그림자이다.

그가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했던 유일한 존재인 아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해심 많고 따뜻한 여자였다.

도시에서 쫓겨 시골에 가서도 그곳에서 쫓겨 다시 도시의 지하로 숨어들때도 그녀는 그남자의 곁에서

울타리처럼 이불처럼 보듬어주던 존재였다.  무능한 남자들을 떠나가는 여자들이 많아지는 세상임에도

조바심없이 하지만 단아하게 그렇게 그를 지탱해 주던 아내가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양 종신보험을

들어놓고 세상을 떠난 후에 아내가 직접 새긴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이라는 문패를 발견하게 된다.

과거와 미래를 보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아내가 아무 이유없이 만든 문패가 아닐 터였다.

순종이라는 증명서를 달고 시골 그들의 집에 들어왔던 진돗개 '태인'은 순수 혈통 진돗개임을 증명하려고

고군분투하다가...집자리를 봐주러온 스님 말대로라면 안주인 살리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명견이었다.

무병을 앓았을까. 남들이 보지 못하는것을 보고 동물들과 소통하고 알지 못한 병을 앓았던 아내를 그는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쓰면 책열권으로도 모자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 써주면서 왜 자신의 이야기는 쓰지 못했을까.

불쑥 나타나 자신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하고 갑자기 죽어버린 장선생은 비범한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다는데..

혹 죽기전 그 남자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글로 세상에 나오라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은 아내의 전령사가

아니었을까.

 

" 나는 우연을 안 믿거든요. 안 믿는 게 아니라 다 필연이라고 생각하지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어떤 일도 필요해서

생긴다는 거지요. 당연히,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어요. 거창한 목적이 아니라, 저마다 세상에 기여하는

자기 역할이 있어요. 그럼 나는 어디에 필요한 존재였을까...."-130p

 

비록 지하에 그림자처럼 숨어 살지만 분명 그가 세상에 온 이유는 있을것이다. 나또한 내 역할이 분명 있을것이다.

좋아하는 종우형이 끓인 도루묵 찌개와  일부러 챙겨준 비타민 통과"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더 하명하실 일은?"

메모에 그가 아직은 누군가로 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한것 같아 눈물이 나왔다.

 

'산자가 보내지 않으면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못 떠나는 건 산 사람 때문이다.'-247p

여전히 보내지 못하는 그에게 그의 아내가 가만히 속삭일것 같다.

 

"우리가 있는곳을 짚어봐요. 마음으로 보면 돼요. 우리가 보일 때까지 이 점속으로 들어가 봐요. 마음으로 점을

따라가면 지도가 확장될 거에요." -135p

어쩌면 그곳이 그녀가 꿈꾸었던곳...하지만 함께 도달할 수는 없었던곳...혼자지만 기어이 점을 찍어야 하는곳..

'아홉 번째 집 두번 째 대문'이 아닐까.

 

'사랑은 하나의 시련이다. 우리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 -249 p

 

    

                                                                              

          빛은

          조금이었어

 

          아주

          조금 이었지

 

         그래도 그게

         빛이었거든            -아내의 시(詩) '별은'

 

어둠이 깊을수록 아무리 적은 불빛이라도 등대는 될수 있다. 언젠가 다시올거라고 아내가 말했던 태인의 닮은

개를 앞세우고 그 불빛을 따라가면 '아홉 번째 두번 째 대문'에 그가 도달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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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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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보리-매년 청명이면 만나는 연인이 있다. 어리석기 때문에,가난하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너무도 무섭기

때문에.."가끔이라도 매달려 울 수 있는 태산 같은 남자가 필요해요. 가난이 죄는 아닌거죠?"라고 물어오는 여자를

뿌리치지 못한 남자가 있었다. 한여자를 사랑한다고 믿는 남자의 먼친척뻘이자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고 우연히

불려나간 술자리에서 마뜩치않게 마주친 여자는 후배가 아닌 다른 남자와 호텔객실 엘리베이터에서 한번 마주친

기억이 있는 여자였다. 그녀가 불쑥 1년에 그저 몇번만 만나주면 된다니..참 당돌한 여자다.

청명에 만난 그녀에게 그남자는 '보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왜 꼭 그남자여야 했는지..굳이 아내있는 남자여야 했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아마 수경은 구속하지 않는 사랑을

원했기 때문에...그런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에 그가 나타났기때문이라고 대답하지 않았을까.

진물이 흐르는 젖가슴을 부여잡고 발목을 다친 학이 날아와 몸을 회복하고 돌아간 온천에 내려가 그를 기다린다.

이제 그를 놓아주기 위해,칼로 젖가슴을 도려내는 것 보다 더 큰 아픔을 될 마지막 여행을 하기 위해..

그리고 '보리'라는 이름을 가슴에 새기고 긴 여행을 떠나기 위해...

 

 #2. 풀밭위의 점심-대학시절 만나 서로 우정과 애정 사이를 오가다 끝내 모든 인연이 흐트러져 버리고 중년의 나이가 된

세사람의 이야기이다. 한여자를 사랑했던 두남자와 두남자를 사랑했던 한여자는 결국 그중 한남자를 선택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이별한다. 남겨진 한남자는 결혼기념일에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여자의 전남편이기도 한 연우의 전시회를 찾아간다.

오래전 그녀의 고향인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를 구경하고 풀밭에 앉아 그녀가 싸온 점심을 먹고 알몸이 된 그녀와 사진을

찍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결혼생활 내내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녀가 그리워했던 것은 남겨진 남자였을까.

아이를 찾기위해 한국에 온 그녀가 "헤어지기 전에 나 좀 안아줄래?"...남자가 그녀를 안아주었을때 이제 그녀가 더이상

그리움의 고통속에서 허우적 거리지 않을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3. 대설주의보-실연이 고통에 빠진 여자와 일본에서의 기괴한 체험때문에 '삶의 연속성'을 잃고 허둥거리던 남자가

만났다. 연인이 된 그들이 평안했던건 1년뿐. 그녀의 친구이기 한 한여자의 이해할수 없는 장난만 아니었다면 그들은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이 흘러 문득 그녀가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언뜻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는것 같은 느낌속에서 그들은 드문드문 만나기도 하고..연인인지..친구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시간들이 흐른다. 어느날 그녀의 자살소식을 듣고 남자는 그녀에게로 향한다. 이제 자신이 뭘해야하는지 확신을

가진 남자는 대설주의보의 길을 뚫고 백담사로 달려간다. 20분이면 될거리를 12년이나 걸려 휘둘러간 사랑의 길을..

폭설을 뚫고 백담사에 오르던 그에게 부연 불빛이 보인다. 12년의 시간을 뚫고 그녀가 그를 마중나오고 있다.

 

 #4. 꿈은 사라지고의 역사-유난히 최무룡이 부른 '꿈은 사라지고'를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결국은 피를 보고야 마는

폭력성이 있는 삼촌은 자신의 첫사랑 여자와 결혼한다. 이제는 숙모가 되어버린 여자의 남편이기도 한 삼촌은 결국

자신이 조카의 여자와 사는것에 평생 죄책감을 느낀다. 애증의 세월이 흘러 죽음을 맞이한 삼촌의 병실에서 다시만난

여자에게 말한다. "삼촌이 우리를 사랑했던 걸까요?"



 #오대산 하늘구경-아무도 사주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여자와 그여자를 먼저 아는체한 남자가 말한다. "함께 있으면

뭔가 위안이 돼." 그남자는 비합리적이고 비물질적인 관계가 필요했다. 부부관계를 포함해 늘 거래에 지쳐있던 터였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감정을 공유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그럼 이런 관계는 뭐라고 말해야 하나.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이런관계가 그녀를 적멸보궁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얘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니, 그대는 가던 길로 마저 가게."

노비구니의 말처럼 그녀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아마 그남자는 그곳으로 그녀를 데리간것을 뼈아프게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도비도에서 생긴 일-잘나가는 영화 시나리오도 소설도 쓰지 못하는 여자작가가 있다. 우리는 그녀를 '미쓰 강'이라고

부른다. 한남자는 그녀를 모욕하는 영화사에서 그녀를 건져내 선세를 주고 소설을 쓰게한다. 소설을 쓰기위해 도비도에

내려간 그녀를 보기위해 두남자는 섬으로 간다. 결국 그렇게 쓰여진 소설도 빛을 보지 못하지만..

왜 그녀는 도비도에서 죽음을 맞이했을까. 밀물이 자신을 휩쓸고 가리라는걸 알았을까.

한 번 배신당하면 두 번 다시 울어주지 않는 여자와 같은 시(詩)를...물질적으로 눈물과 성분이 같은 시를 끝내 쓰지

못한 한남자의 그녀의 죽음에 결백을 증명하지 못하고 다시 도비도로 향한다. 분노에 찬 또다른 남자와 최후의 만찬을

즐기기 위해..미쓰 강을 지우기 위해..

 

 #여행, 여름-글을 쓰는 두 남자가 여행을 떠난다. 굳이 같이 가야 할 이유도 없고 목적도 없는 그 여행길에서 한남자는

떠나간 여자가 대학로에서 화장품가게를 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그런이유로 대학로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다. 원주 토지문학관에서 처음만난 이들이 자갈치시장으로 해운대로 달맞이 고개로...어느날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떼로 와서 죽은 고래가 있는 강구항으로...안동에서 간고등어 정식을 먹고 한남자는 끝내 안동에 있다는 지인을 만나지

않은 채 서울로 돌아왔다. 강구에서 만난 화장품 가게 주인인 서울여자의 추억은 덤이라고 할까.

고래가 떠밀려 왔다고 전화를 걸어온 여자를 두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한남자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한남자는 혼자 다시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무것도 가미되지 않은 토속음식을 맛있게 먹은 기분이다. 깊이 사색하고 흠뻑 취할 수 있는

문학의 정수를 그대로 마신 느낌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기억속에 묻혀있던 고향을 맛을 떠올리게한  이 단편의 글들은

길었던 지난 겨울만큼이나 춥고 시리다. 어긋난 사랑들과 이기적인 사랑때문에 외로웠다.

늘 엇갈리고 피해가는 사랑때문에 안타까웠다. 이 책을 읽는내내 대설주의보속에 갇혀 옴짝달짝 못하고 있는 조난자처럼

고독했다. 그런데 묘하게 가슴은 조용한 평정이 찾아왔다. 눈이 오는밤은 유난히 조용한것처럼..

모든 소음과 번잡을 잡아먹고 눈이 내려앉은 것 같은 마음으로 조용히 책을 덮었다.

아무 누군가 다시 이책을 집어든다면 '대설주의보'속 폭설에 꼼짝없이 갇히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알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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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능성이다 - 기적의 트럼펫 소년 패트릭 헨리의 열정 행진곡
패트릭 헨리 휴스 외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두눈 멀쩡한 나를 부끄럽게 한 책입니다. 사랑의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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