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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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책뿐 아니라, 세계적 석학들과의 대담, 과학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서평들을 기고하기도 했다. 특히 여섯 개 장의 포문을 여는 대담집이 압권인데, 칼 세이건 후계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거, 이론물리학자 로렌스 크라우스 등 과학과 종교, 뇌의 오류, 다윈, 진화에 대해 함께 나누는 대화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렇게 대담으로 시작한 후 각 주제와 부합되는 여러 책의 서평들이 소개된다.

대부분 그의 인생 책으로 추천하며 극찬하는 책 들이지만, 몇몇 서평은 가혹할 정도로 신랄하게 비판한 것들도 있다. 그가 지금까지 쓴 가장 잔인한 서평 《신비의 춤 : 인간 성의 진화에 대해》서는 과학자가 어떻게 이런 허세 가득한 헛소리냐 말하고,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는 소음으로 가득 찬 읽을 필요조차 없는 책이라 평한다. 도킨스의 이런 맹렬한 비판 때문인지 일부 저자들은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인스타에서 나도 많은 서평들을 써오고 있지만, 아주 솔직하고 대담하게 쓰기는 쉽지 않다. 책에 실린 56개의 서평 글을 보며 역시나 그의 뛰어난 통찰력과 분석에 감탄하게 된다. 무엇보다 책의 핵심을 여러 과학과 문학을 인용해 사용한 부분은 그가 문학하는 과학자 임을 증명하는 듯하다. 물론 나의 최애는 시인 같은 과학자 칼세이건 이지만^^

우리나라에 출판되지 않은 책의 서평이 많다 보니 그의 서평만으로 그 책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도킨스가 극찬한 대니얼 F. 갤루이의 《암흑 우주》, 프레드 호일의 《검은 구름》 은 한국 번역본이 없어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도킨스가 자기가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가장 많은 시샘을 했던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은 현재 한국번역본이 있어 당장 신청해놨다. 거기다 너무 궁금했던 유사과학에 관한 책이라 더욱 기대가 크다.

리처드 도킨스의 인생 책들을 보며 하나씩 벽돌 깨기 하듯 읽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물론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가 많지만 우선 소설부터 공략해 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 이 책 서평들의 모음집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스 책장을 훔쳐보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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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의 그림으로 읽는 과학사 - 다면체부터 가이아까지, 과학 문명의 컬렉션들
홍성욱 지음 / 김영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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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그림과 과학을 좋아하다 보니 책을 만만하게 봤나 보다. 그동안 알던 그림도 있었지만 생소한 그림들과 어려운 과학 이야기들의 나열이라 읽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 기하학이니 다면체니 수학 이야기는 나를 참 어지럽게 만든다. 저자는 어떻게 이런 그림들을 다 수집해왔는지 그게 더 놀라울 정도였는데, 마치 다빈치의 노트를 몰래 훔쳐보는 듯 흥미롭기도 하다.

저자는 과학과 예술의 접점을 발견하면서 과학지식의 형성에서 시각화와 재현의 중요성을 깨닫고 더욱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 널리 퍼져있던 기하학적 세계관, 플라톤의 다면체, 15세기 원근법의 발명, 성모마리아 그림 속에서 발견된 갈릴레오와 망원경의 역사, 세상의 모든 지식을 끌어모으려고 했던 백과전서, 샤틀렌 부인 초상화에 담긴 뉴턴의 철학, 헤켈의 생명의 나무 등 진기한 그림들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중 과학과 사랑에 빠졌던 샤틀레 부인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평가 받았던 그녀의 지적 성취가 안타까웠다. 아마 책 속에 소개된 그녀가 번역한 네덜란드 작가 베르나르트 맨더빌의 《꿀벌의 우화》 속 이야기가 그녀가 정말 호소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과학에서 보편적으로 여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편견은 나를 매우 강하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 여성이 사고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장소는 한곳도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커다란 모순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략
모든 면에서 남성의 지성과 유사한 지성을 소유하는 피조물들이 왜 넘을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억제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요? 가능하다면 누구라도 그 이유를 알려주십시오.

분명 그 당시에도 뛰어난 재능과 지적 능력을 갖춘 여성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이 자유롭게 연구를 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과학과 예술의 새롭게 발전됐을지도 모른다. 그럼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은 그때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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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산책
김종완 지음 / 김영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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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산책하듯 거닐고 싶은 공간은 어디입니까?

책 띠지에 나온 문구에 혹 해 이 책을 선택했다. 산책 좋아하는데, 얼마나 좋은 산책길들을 추천해 주려나 잔뜩 기대하고 책을 펼쳤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공간 인테리어와 관련된 책이었다. 다소 실망한 마음에 읽기를 미루다 어느 날 공간 디자인 사진들을 쭈욱 넘겨보는데, 한 루프톱 수영장 사진에 넋을 잃고 말았다.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수영장 그림 시리즈를 옮겨놓은 듯 작품이 현실 공간에 들어온 거 같았다. 내가 저 공간에 있다면 에드워드 호퍼 작품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이랄까, 당장 거기가 어딘지 찾아봤다. 그래, 다음 여행에서는 이 공간에 꼭 머물러야지.

사람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는 거, 말과 태도, 외모와 패션 등 다양한 것들이 있겠지만 한 공간으로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그렇기에 공간에 매력적이고 공감 가는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건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다. 책의 저자 김종완 공간 디자이너는 그래서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거 같다. 그곳의 철학과 신념, 앞으로 나아가 방향을 잘 캐치해 무형의 공간에 채우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곳을 방문한 이들이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낸다.

책에는 호텔, 사무실, 병원, 백화점 매장 등 7년간의 공간 디자인 기록이 담겨있는데, 특히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공간은 팬데믹으로 운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라진 공간들이었다. 너무나도 정갈하고 아름다웠던 오마카세 레스토랑과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아동 뷰티 놀이 공간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질 때 그곳에 심혈을 기울였던 클라이언트와 공간 디자이너들은 얼마나 마음 아팠을까. 몇 개월 동안 애써 품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그 마음은 헤아릴 수가 없다. 책에도 그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어 독자들도 더 마음이 가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저자가 운영하는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들을 보니 하나같이 고급스러움이 묻어난다. 아니나 다를까 명품 공간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고가의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데, 이 부분에서 살짝 삐딱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돈을 쳐발쳐발하면 당연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 그런데 남은 자재들을 활용해 소외계층을 위한 공간을 선물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삐딱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 자신이 참 미안해진다. '저스트 키든 파운데이션'이라는 타이틀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매해 신청을 받아 소외계층에게 새로운 공간을 선물하고 있는데, 올해는 갈 곳 없는 청년들의 임시 보호소를 만들어 그들에게 따뜻한 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다.

멋지고 아름다운 공간을 창조하는 거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실천을 해오고 있는 종킴스튜디오가 앞으로도 흥하길 바란다. 그만큼 더 많은 ESG로 되돌아오지 않을까. 다음에는 '저스트 키든 파운데이션' 공간들이 책으로 나오면 너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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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가 빛날 때 (블랙 에디션) - 푸른 행성의 수면 아래에서 만난 경이로운 지적 발견의 세계
율리아 슈네처 지음, 오공훈 옮김 / 푸른숲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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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새끼발가락 위에 코끼리 두 마리가 서있다고 생각해 보라.
새끼발가락에 코끼리 두 마리가 올라서기 힘들겠지만 그만큼의 압력이 새끼발가락에 가해진다고 생각하면 내 발가락은 아마 죽이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만큼의 압력을 가지고 있는 마리아나해구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수심을 가지고 있다. 특별한 장치 없이 인간이 그곳으로 들어간다면 아마 평평한 오징어처럼 될지 모른다. 감히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그곳에는 어떤 생명체들이 살고 있을까?

이 책은 해양생물학자인 저자가 그의 모든 삶을 바쳐 연구해 온 해양생물연구기를 과감 없이 담아내고 있다.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불사불멸의 홍해파리, 색맹이지만 망막에 있는 간상세포 덕분에 녹색형광빛 만 볼 수 있는 상어 (상어의 눈에서 발견된 색소는 440~540나노미터 범위의 광파만 흡수하는데 이 파장은 청색 형광에서 녹색 형광으로 바뀌는 파장 범위와 정확히 위치한다), 사람의 이름처럼 태어나 한 달 후 자신만의 고유 이름을 만드는 (서명휘파람) 돌고래, 산소 없이도 살아가는 최초의 동물 헤내구야 살미니콜라등 신기한 해양생물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하지만 단순히 해양생물에 대한 비밀을 밝히고 앞으로 밝혀질 비밀에 대한 호기심만 담기보다 바다에 사는 동식물을 위협하는 오염, 남획, 소음 공해, 심해 채굴 등의 위험요소와 인간들의 환경파괴에 대한 심각성도 언급하며 해양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이 인간의 막중한 책임임을 강조한다.

실제로 바다는 30억 인구의 생활 기반을 마련해 줄 만큼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다. 그럼에도 인간은 바다를 없이 여기고 푸대접한다. 바다는 병들어가고 인간은 99퍼센트 의존해 살아가는 그곳을 잃고 나서야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밝혀지지 않는 미지의 바닷속 세계의 비밀을 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그 바닷속 생물들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보존하는 것도 인간이 해야 하는 역할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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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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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살고 싶어 한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치료를 거부하고 덤덤히 죽음을 받아들일 줄 몰랐다. 엄마에게 남은 마지막 두 달 동안 늘 그렇듯 일상을 보내온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 혼수상태에 빠진 엄마는 결국 정연의 곁을 떠났다.

출산을 겪고 나서야 내가 엄마의 살을 파고 나온 걸 알게 됐다. 그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고도 나를 그 누구보다 귀하게 여겨준 엄마. 소설을 읽는 내내 엄마 생각에 먹먹해진다. 나의 엄마 또한 건강이 좋지 않기에 늘 친정에서 오는 전화는 나를 긴장케 한다. 행여 새벽이나 늦은 밤에 친정에서 전화가 올까 두렵기도 하다. 그리고 소설 속 정연이 마치 내가 된 듯 이야기 속에 몰입한다.

엄마의 영원한 부재에 대한 공포이자 엄마가 떠난 뒤부터 반복될 내 외로움과 죄책감에 대한 공포...... 엄마가 떠난 후 느꼈을 정연의 그 공포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내 손을 잡고 걸어가던 그 손이 사라지고 암흑 속 끝없는 공간에 갇힌 느낌일까. 엄마가 떠난 후 홀로 남은 정연은 엄마의 그 공간에 엄마의 옷을 입고 엄마의 부재 속 엄마의 식당을 열며 엄마의 공간에서 엄마의 냄새를 자신의 몸에서 맡는다. 그렇게 엄마가 떠났다는 걸 덤덤히 받아들이는 충분히 시간을 가진 후에야 끝이 없을 거 같은 암흑 속 저 멀리 희미한 빛이 보인다.

홀로 극장에 앉아 독립영화 한 편을 본 듯 조용히 눈물을 닦아냈다. 짧은 소설에 긴 여운을 남긴 이 소설을 이 겨울에 만나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조해진 작가님을 왠지 사랑하게 될 거 같다. 이 겨울이 결코 시리지만은 않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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