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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들의 도시
김주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6월
평점 :
『작은 땅의 야수들』로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하며 세계 문학계에 강렬한 발자국을 남긴 김주혜 작가가 3년 만에 돌아왔다.
더욱 내밀하고, 더욱 절박한 이야기로 ......
『밤새들의 도시』는 발레리나 나탈리아의 고통과 비상의 궤적을 따라간다.
사실 ‘발레’라는 소재가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 역시 처음엔 그랬다. 정제된 예술의 세계에 어떻게 몰입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그런데 그건 기우였다.
"내가 이렇게 된 게 다 누구 때문인데."
"나타샤, 네가 날 안 좋아 한다는 사실은 나도 아는데, 그래도 말은 바로 해야지. 내가 그런 건 아니잖아."
"너만 아니었으면......사고 날 일도 없었으니까.“
초반부터 휘몰아치는 궁금증.
나타샤가 겪은 ‘그 사고’는 무엇일까.
그녀가 무대를 떠난 이유는 무엇이고, 다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를 끝까지 분노하게 만드는 두 사람의 정체와 계속해서 그녀를 쫓는 환영은 또 무엇일까.
작가는 그 긴장을 단 한순간도 놓지 않는다.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질문이 맴돌고, 책장을 놓지 못하게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 파리.
세 도시를 가로지르며 펼쳐지는 발레리나 나탈리아의 삶은 단순한 무대 뒤 이야기가 아니다.
예술을 선택한 한 인간이 견뎌야 했던 고통과 상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놓지 않았던 비상의 순간을 그린다.
어린 시절의 결핍, 가족과의 어긋난 감정선, 경쟁과 질투가 뒤엉킨 발레단의 삶, 그리고 다시 돌아온 도시에서 마주한 과거의 망령들.
김주혜 작가는 이 모든 내면의 층위를 정교하고도 치열하게 써 내려간다.
“삶이란, 추락하고도 다시 날아오르는 것.”
예술이 현실을 이기지 못하는 시대, 김주혜 작가는 말한다.
“진정한 예술은 다른 생명에게 연민을 일으킨다”고.
『밤새들의 도시』는 바로 그 연민의 문학, 존재를 지키기 위한 고통스러운 비상의 문학이다.
이 뜨거운 기록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삶이 한때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얼마나 찬란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밤새들의 도시』는 이 근원적인 물음 앞에 독자를 세운다.
특히 이 소설이 던지는 윤리적 긴장과 정서적 진폭은 우리 안의 사회적 감수성과 도덕적 직관을 예민하게 건드린다.
그리고 나에 묻게 된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날아오르려는 용기를, 과연 나는 끝까지 품을 수 있을까.
나타샤의 삶을 지켜보며, 꼭 그렇게까지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여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때 누구보다 뜨겁고 열정적이었던 나의 시절이 떠올랐고,
문득 깨달았다. 그녀의 절박함이 내 과거의 열망과 다르지 않다는걸. 그래서 결국, 나는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 영원한 사랑은 없고
사랑은 믿을 수 없으며
사람은 늘 실망시킨다는 것을
책 속 시커먼 까마귀처럼 나 또 흑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