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클래식 보물창고 3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함미라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간되자마자 유럽의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유럽 곳곳에서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비평가들 사이에서 주요한 토론의 대상이 되었는데, 이는 문학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었다고 한다. 또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의 죽음을 모방하여 권총으로 자살하는 경우가 발생하여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되었고 이에 금서로 지정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하니 이 작품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으리라. 이는 당시 독일 문학을 지배했던 계몽주의 소설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계몽주의의 이성에 맞선 감정이 적극적인 지지를 얻었다 볼 수 있겠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서간체 소설의 형식으로 주인공이 보낸 여러 편의 편지들로 구성된 소설이다. 서간체 소설은 감정을 세밀하게 전달하는데 효과적이기에 베르테르가 로테를 향한 사랑과 고민들은 독자들에게 베르테르의 감정이 생생하게 전달되어졌고, 이런 과정에서 독자들은 베르테르의 고민에 공감하기도 하고 그의 안타까운 운명에 슬퍼할 수 있었다. 특히, <클래식 보물창고>시리즈로 출간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기존에 소개된 판본들이 개정판을 원본으로 선택한 것과는 달리 초판을 원본으로 완역 출간함으로써 그 섬세함이 더욱 배가시켰다. 이로인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다 결국 죽음을 택한 인물 베르테르를 통해 아픔을 감내하기만을 강요받는 이 시대의 청년들을 위로하고 그들과 기성세대 사이에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고자 한 출간의도가 더욱 빛을 발한 것은 아닐런지.

 

어머니의 유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하임 근처에 머무르게 된 베르테르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다양한 자연 풍광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는 이따금 자신의 위치를 잊고, 선량한 사람들과 함께 인간에게 허용된 즐거움, 이를 테면 잘 차린 식탁에 둘러앉아 솔직하고 담백하게 농담을 나누거나, 산책을 하거나, 춤출 만한 상황에선 흥겹게 춤도 추는 즐거움을 누르곤 했는데,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이러한 주변의 자연과 사람들 이야기이 행복하게 묘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흔적들도 눈에 띈다.

 

친구여, 자네에게 말해 두겠는데 나는 감수성이 벅차올라 더 이상 주체하기 힘들어질 때 이런 사람들을 보면 속 시끄러운 온갖 것이 전부 잦아들곤 한다네. 행복한 마음으로 평온함 속에서 자신이 처한 협소한 범주의 생활을 꿋꿋이 해 나가며 하루, 또 하루를 근근이 버티며 사는 사람들, 그리고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겨울이 오리라는 것 외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말이세. (본문 25p)

 

그러던 어느 날, 베르테르는 무도회에 초청을 받게 되고, 춤 상대인 아가씨와 그리고 그녀의 숙모와 함께 무도회가 열리는 곳으로 가는 도중 함께 태우고 가기로 한 샤를로테 S양과 만나게 된다. 베르테르는 그녀의 만남에 대해서 제대로 들려주기 쉽지 않으며 기록관처럼 사실을 그대로 옮겨 적기란 더더욱 힘들다고 표현했다. 그저 그녀가 자신의 모든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족하다 하였다.

 

그녀는 너무나도 이성적이면서도 그렇게 소박할 수가 없고, 너무나도 단호하면서도 그렇게 어질 수가 없다네. 그리고 진실한 생활 태도와 행동, 아울러 침착한 정신력까지 겸비하였다네. 내가 그녀에 관해 이야기해 보았자 전부 쓸데없는 잡설이요, 귀에 거슬리는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어서 그녀 자체가 품고 있는 특징을 하나도 표현해 낼 수 없다네. (본문 27p)

 

로테와의 만남 이후 베르테르는 자주 그녀의 집에 들러 행복해하는 한편, 이미 약혼자가 있는 로테를 자주 만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한다. 베르테르는 약혼자 알베르트와도 친분을 갖게 되지만 서로 다른 두 사람에게는 갈등이 생겨나기도 한다. 로테를 향한 사랑, 알베르트와의 우정 속에서 고민하던 베르테르는 결국 로테 곁은 떠나지만 결국은 다시 로테에게 돌아온다. 로테 역시 베르테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알게 되지만, 베르테르와의 만남을 피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로테를 향한 사랑 때문에 절망하던 베르테르는 자살을 결심하게 되고, 알베르트에게 빌린 권총으로 자살을 하게 된다.

 

로테, 당신을 위해 죽고, 당신을 위해 헌신하는데 한 몫할 수 있었다면, 그걸로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인생의 기쁨과 평온을 다시 마련해 줄 수 있다면 나는 용감하게, 그리고 즐거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아아, 그러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피를 쏟고, 그리하여 죽음을 통해 그들이 백배는 더 새로운 사람을 살도록 부추길 자격이 주어진 사람은 소수의 고귀한 사람들뿐이더군요. (본문 205p)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 자신의 경험이 반영된 자전적 소설이다. 젊은 날 괴테가 열정을 다해 사모했으나 자신의 사람이 될 수 없었던 샤를로테 부프에 대한 사랑이 준 아픈 기억, 상사의 부인을 사랑했지만 사랑을 얻지 못하고 고뇌하다 죽음에서 탈출구를 찾은 친구 카를 빌헬름 예루잘렘의 자살이 적절(본문 215p)하게 혼합되어 스물 다섯살의 베르테르라는 인물을 통해 펼쳐진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전형적인 삼각관계의 구도를 보여주지만 단순히 사랑에 대한 감정만을 내뱉고 있는 것을 결코 아니었다. 청년의 눈으로 보는 사회의 모습, 인간관계 등에 관한 감정도 표출하고 있어 청년의 사랑과 고통에 대한 감정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삶을 이끌어주는 철학적인 느낌도 함께 전달해주고 있다. 물론 베르테르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자살하는 나약한 면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 결말은 베르테르의 고통이 감내하기엔 너무 버거운 것을 표현하기 위한 방책이었다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분명한 것은 베르테르가 보여준 사랑과 삶에 대한 고통과 고뇌가 오늘날의 청년들이 지니는 고통, 고뇌와 다를 바 없기에 공감하고 또 위로받을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오래전 계몽주의 문학이 합리적 이상을 바탕으로 엄정함을 요구했듯이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도 이러한 이성을 주입하고 있는 교육현실에서, 이 작품은 감성적으로 메말라가는 이들에게 슬픔, 고통, 사랑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촉촉히 젖셔줄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 유럽의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듯이 보물창고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청소년들의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을 듯 싶다.

 

많은 면에서 기존 질서를 반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우선 감정을 우위에 두고 사회 통념에 충실한 인재상에 반기를 드는 면이 그렇고, 사회적으로 허용된 애정관을 파기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거리를 유지하려던 자연관에 대해서조차 자연 현상과 주관적 감정을 합일에 도모하는 면도 그렇다. (본문 211.21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1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 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애거사 크리스티가 1944년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쓴 작품 <<봄에 나는 없었다>>는 작가 스스로 완벽하게 만족하는 작품이자 꼭 쓰고 싶었던 이야기로, 수년 동안 구상한 후 삼일 만에 완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녀가 필명을 사용한 것은 추리소설에서 벗어나 새로이 도전한 심리 서스펜스에 대한 독자들의 혼동을 우려했기 때문인데, 오십 년 가까이 비밀에 부쳐졌었다고 한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작품이 추리 소설이 '아닌' 것에 대한 서운함이 있는 것을 보면 그녀의 우려를 이해할 수 있을 듯 싶다. 놀라운 것은 '인간 내면의 초상을 그린 보석 같은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은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듯이, 추리 소설이 아닌 심리 서스펜스로서의 애거사 크리스티의 역량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추리 소설의 여왕으로서의 애거사 크리스티가 아닌 또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 그녀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일이었으리라. 그녀는 '매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여성의 고독, 사랑의 오만함과 잔인함에 대한 특유의 날카로운 성찰을 담은 여섯 편의 장편을 발표했고, 그 중 <<봄에 나는 없었다>>는 중년의 여인인 조앤 스쿠다모어가 자기기만적인 삶을 깨닫고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그린 작품(표지 中)이다.

 

막내딸 바버라의 갑작스러운 발병 소식에 바그다드에 갔던 조앤은 모든 일을 계획해서 순조롭게 돌아가게 해 놓고 런던으로 돌아가는 길의 기차역 숙소 식당에서 세인트 앤 고등학교에 함께 다녔던 블란치 해거드를 만나게 된다. 조앤은 학창시절에는 누구랄 것 없이 열광했던 블란치가 볼품없이 마르고 부산하고 너저분하고 늙수그레한 여자가 된 것을 보며 그녀의 삶이 불행했음을 짐작하며 자신의 모습에 우쭐해지지만, 오히려 조앤은 블란치로부터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듯한 뜻밖의 말들을 듣게 된다.

 

"바버라는 걱정하지 마. 이젠 괜찮을 거야. 내가 장담해. 윌리엄 레이는 좋은 사람이야, 너도 알겠지만. 아이도 있고, 모든 상황도 그러니 말이지. 바버라가 아주 젊고 이곳 생활이 그래서 그랬을 뿐이야. 젊은 여자의 머릿속은 종종 그렇게 된다니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런 게 바로 학벌 의식이지!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것. 넌 정말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본문 26p)

 

자동차와 기차를 이용해 돌아가려던 그녀는 기차를 놓친 탓에 사막의 기차역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블란치의 의미심장했던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녀에게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게 한다. 반듯하게 잘 자란 아이들, 자상하고 유능한 변호사 남편,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남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자부했던 조앤은 과거 속에서 남편이 원하던 농부가 아닌 변호사가 되기를 권했던 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남편의 외도와 유부남과의 결혼하려는 딸, 외톨이가 되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완벽하다고 느끼던 자신의 삶 속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들과 마주하면서 진실 속에 가려진 허울뿐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조앤은 과거를 의심하게 된다. 그런 의심 속에서 그녀는 끝없이 불안해한다.

 

도와주세요, 하느님....저는 미쳐가고 있습니다...제가 미치지 않게 도와주세요...생각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세요....고요....고요와 태양....그리고 심장 뛰는 소리...신은 날 버리셨어....신은 날 돕지 않으시지...난 외톨이야. 완전히 외톨이야...무시무시한 고요.....지독한 외로움....가여운 조앤 스쿠다모어....멍청이, 헛똑똑이, 사기 덩어리 조앤 스쿠다모어.... (본문 207p)

 

이 책은 이렇게 그녀가 외면했던 진실 속에서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추락하는 과정이 긴장감있게 기록되고 있다. 그녀를 통해 우리는 덮어버리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관대하고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포장하려 한다. 그러나 나의 이런 모습이 타인에게도 포장된 모습 그대로 보여지는 것은 아닐게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그 진실을 받아들이고 바꿔나갈 용기를 가지고 있을까? 여기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조앤의 결말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끝없이 추락하면서 자신의 진실된 모습과 마주했던 조앤,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 후의 이야기는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모습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봄에 나는 없었다>>은 자기만족에 빠진 딱한 영혼인 조앤이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고 진실을 알게 되면서 불안해하는 심리묘사가 압권인 작품이다. 조금은 지루한 진행도 있었으나 마지막 결론이 주는 반전이 놀라운 작품이기도 하다. 불편한 진실 속에서 끝없이 추락해가는 조앤의 모습은 우리가 감추고 외면하며 스스로 포장해왔던 나 스스로의 모습과 닮아있다. 조앤은 아내이자 엄마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마주한 인간의 본성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자문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본문 213p)

 

조두순 사건이 일어나면서 나와 같이 자식을 둔 부모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형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나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사형 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 조두순이 12년의 형량을 받고 나왔을 경우 피해자는 20대의 꽃다운 나이가 된다. 사건에 대한 상처도 아물지 않은 기간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채 빼앗아갔던 범인은 죗값을 받았다는 명목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흔히 죄를 지은 사람은 평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산다고 한다. 그런데 평생 십자가를 등에 지고 사는 사람은 살인자가 아니라, 살인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피해자의 유족이 아닐까? (본문 445p)

 

얼마 전 딸아이는 학교에서 사형제도의 찬반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사형제도가 없다면 또다른 피해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과 사형제도로 인해 법의 잘못된 판단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 대한 이야기로 갑론을박을 펼쳤다고 한다. 글쎄....이 문제에 대해 무엇이 정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두순 사건으로 인해 사형제도를 무조건적으로 찬성했던 나는 <<공허한 십자가>>를 통해 좀더 깊이있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구치 사오리는 한 학년 위인 육상부원 후미야를 짝사랑하고 있었고, 그로부터 1년 후에 비디오 대여점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그와의 인연이 계속되어졌으며, 그로인해 그녀는 그에게 더욱 끌렸고 그 역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는 중학생 사오리와 후미야의 풋풋한 만남을 담은 이야기와 함께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경영하는 나카하라가 경시청 수사1과의 사야마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나카하라의 기억 속의 사야마는 11년 전 딸 마나미의 살해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였다. 11년 전, 딸은 아내 사요코가 잠시 시장을 간 사이에 살해당했고, 범인은 부부의 바람대로 사형을 당했다. 범인의 변호인은 상고를 했지만, 범인 히루카와는 모든 게 귀찮다는 이유로 취하한 탓에 결국 사형은 이루어질 수 있었다. 부부는 사형이 확정되고 판결이 종결되면 응어리를 날려 보낸다든지, 마음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 등 자신들의 마음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실제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범인의 사형 판결을 받는다는 목적으로 살아왔지만 그것이 이루어진 후에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어 상실감만 더해졌으며, 형식적인 면에서는 사건이 끝났을 뿐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통감했다. 결국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괴로웠던 부부는 이혼을 하게 되었고, 나카하라는 사요코와 이혼을 한 후 이모부의 제안으로 다니던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반려동물의 장례식장을 경영하게 되었으며, 이혼 후 1년이 지난 11년 동안 서로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사야마는 전 아내가 살해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아내를 살해한 사람은 마치무라 사쿠조로 단순히 돈을 뺏앗을 목적이었으며 다음날 바로 자수를 하였다고 한다. 나카하라는 이혼 후 사요코가 대학 동창인 잡인 편집자의 주선으로 잡지의 기사를 써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여성의 패션이나 미용에 관한 글을 썼던 사요코는 소년범죄라든지 노동환경, 사회문제에 관한 글도 쓰게 되면서 여기저기 취재를 다녔으며, 최근에는 도벽에 관한 조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요코의 장례식에 참석한 나카하라는 사요코에게 일을 소개해 준 지즈코와 사요코에게 개인적으로 신세를 졌다는 그녀와 함께 온 사오리를 만나게 된다. 지즈코는 사요코가 쓴 마지막 기사가 실린 조만간 출간될 잡지를 보내주기로 약속하는데, 잡지를 받아본 나카하라는 도벽에 관한 사요코의 글 속에 등장하는 4명의 인물 중 자신이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고 여기면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훔친 음식을 먹는 것이라는 여성이 마음에 걸렸는데 이내 장례식장에서 만났던 사오리라는 여성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한편, 게이메이 대학 의학부 부속병원 소아과 의사인 후미야는 장인 어른이 저지른 살해 사건으로 인해 가족들로부터 이혼하기를 권유받지만, 아내 다에코와 절대 헤어지지 않겠다고 한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다에코는 아버지의 부양을 거부했지만 사위인 후미야는 장인을 모른 척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인이 살해한 피해자의 유가족에게 사죄의 편지를 보내기까지 한다. 다에코가 낳은 아들 쇼가 후미야의 친자식이 낳은 아들이 아님을 알게 된 후미야 가족의 거센 반발에도 후미야는 다에코와 이혼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 후미야의 모습을 본 동생 유미는 후미야에게 자신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음을 짐작할 뿐이다.

 

사요코의 부모님은 피해자의 참가인으로 참석하여 재판을 피해자와 유족의 것으로 만들어 범인의 형량이 무기징역으로 끝나지 않고 사형이 집행되도록 하려한다. 이런 과정에 나카하라는 장인과 장모에게 사요코가 책을 내기 위해 작성하던 원고를 건네받게 되고, 사요코의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읽게 된다. 사요코의 원고를 읽은 나카하라는 사요코의 흔적을 되짚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무도 알지 못했던 비밀들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사요코의 살해 이유가 밝혀진다.

 

<<공허한 십자가>>는 살인, 형벌, 사형 제도의 존속 등에 대한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 책에는 두 건의 살해 사건이 일어나다. 11년 전 딸이 살해를 당하고 남은 가족은 범인의 사형을 원한다. 범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지만, 유가족에게는 그 어떤 마음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이번에도 유가족은 범인의 사형 선고를 원한다. 이 두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주인공 나카하라이다. 범인의 사형 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카하라는 앞으로 살아갈 목적이 사라졌다는 공허함을 느낀바 있다. 전 아내의 살해 사건을 다시 접하게 된 나카하라는 전 장인장모가 범인의 사형 선고를 바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사요코의 행적을 되짚던 나카하라는 딸을 살해했던 범인이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사요코의 살해 사건을 관련있는 인물들이 오래 전 범죄를 저지르고 어떻게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두 사건의 서로 다른 범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사형 제도와 형벌, 그리고 범인들의 속죄 등에 관한 깊이 있는 생각을 권유한다.

 

"당신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가, 아마 그 의무에 대한 모범 답안은 없겠지요." (본문 415p)

 

딸아이는 어떤 한 사람의 생명권을 침해한 사람은 자신의 생명권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는 이유로 사형 제도를 찬성하고 있다. 나 역시 사형 제도의 찬성편에 서 있다. 내가 낸 세금으로 죽어 마땅한 범죄자를 부양(?)하고 싶지 않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사형 제도의 찬반에는 사실 그 어떤 정답도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범인의 사형을 강력이 원했던 사요코 역시 자신이 쓴 원고에서 망설임의 흔적이 보인 것은 이 때문이리라. 사형 제도에 대한 찬반 토론을 진행한다면 그 우열은 가릴 수 없으며 오랜 시간을 갖는다해도 그 정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그 정답은 범인 자신과 유가족만이 알 수 있지 않을까? 유가족이 되어본 적 없는 내가 범인이 교화될 시간이 필요하다 말할 수 없으며, 범인이 아닌 이상 사건의 진실이나 속죄의 마음을 알 수도 없으니 말이다.

 

<<공허한 십자가>>는 나카하라가 사요코의 행적을 추적하고 범죄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 수많은 복선 속에서 긴박한 전개를 통해 완벽한 몰입을 선사한다. 그 속에서 던져지는 수많은 질문들, 곱씹어지는 생각의 꼬리들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너무도 무섭고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 범죄의 해결책이 사형 집행이 될 수 있을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형이 정답인 양 이야기했던 나는 그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형 제도의 찬성 쪽에 서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봉 기대승이 들려주는 사단칠정 이야기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50
이명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화장르를 빌어 철학자의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 시리즈 50번째 이야기는 이황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자신의 철학적 경지를 우뚝 세운 고봉 기대승의 사상을 담은 <<고봉 기대승이 들려주는 사단칠정 이야기>> 입니다. 영남 지방 출신의 퇴계 이황과 호남지방 출신의 고봉 기대승이 천리 밖 먼 거리를 두고 8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편지를 주고 받으며 세계 철학사에 길이 남을 사단칠정 이론에 관한 대장정의 토론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지요. 이 책에서는 삼촌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종 사촌 혜민이와 함께 서울에서 울산으로 내려가는 제민이가 버스에서 만난 험상궂은 인상에 어울리지도 않는 선글라스를 낀 이 아저씨와의 만남을 통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흥미롭고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담아내고 있습니다.

 

제민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울산이 고향인 삼촌이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 제민이네 집에서 함께 살면서 제민이는 삼촌이 좋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제민이는 삼촌의 결혼식이 못내 아쉽지만, 당장이라도 달려가 누구보다 더 많이 축하해주고 싶었지요. 그리고 드디어 삼촌 결혼식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울산에 내려갈 생각에 야구하자는 친구들의 부탁도 뒤로 한 채 집에 돌아온 제민이는 엄마와 이모가 먼저 울산에 내려갔다는 사실에 속상했습니다. 아빠는 회사 일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던 탓에 혜민이와 제민이는 용기를 내어 둘이서 울산에 내려가기로 합니다. 두려움에 버스를 탄 제민이와 혜민이의 바로 건너편 자리에 험상궂은 선글라스 아저씨가 앉게 되자 두 사람은 기분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배고픔에 김밥을 먹는 두 사람에게 아저씨는 핀잔을 주었고, 냄새 난다며 먹지 말라던 아저씨는 제민이의 김밥을 뺏어 드셨으니 제민이는 왠지 아저씨 때문에 피곤한 여행이 될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어요.

 

그렇게 울산으로 내려가는 길, 앞 차가 교통사고가 나자 험상궂는 아저씨는 사고로 놀란 사람을 자상하게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두 아이는 그런 아저씨가 멋있어 보였고, 아저씨는 자신이 측은지심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말하네요. 사단칠정에 대해 알고 있던 두 아이들은 울산으로 내려가는 길, 아저씨와 함께 사단칠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무사히 결혼식에도 참석하게 되지요.

 

 

사단(四端)이란 사람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 가지의 선한 마음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근거이자 바탕이기도 합니다. (본문 70p)

칠정(七情)은 사물을 보거나 대할 때 생기는 일곱 가지 감정을 말합니다. (중략)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희, 노, 애, 구 애, 오, 욕, 이렇게 해서 바로 사단칠정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104,105p)

 

초등학교 5학년인 혜민이와 제민이의 독립심을 키우기 위한 엄마들의 작전으로 두 어린이가 서로 기대어 울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만나게 되는 선글라스 아저씨와의 만남으로 전개되는 동화적 스토리를 통해 우리는 고봉 기대승의 사상에 대해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선글라스 아저씨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빗대여 사단칠정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지요.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재미있는 동화 한 편에 스며놓은 기대승의 사상은 독자들에게 철학으로의 접근을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철학을 이해하게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는 철학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철학으로의 안내서이자 부록으로 수록된 [통합형 논술 활용노트]를 통해 논술 교재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는 일석이조의 유익한 책이지요. 우리의 현실과 접목시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접근하기가 더 용이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는 어린이 뿐만 아니라 청소년, 성인들에게까지 적극 추천하고 싶은 시리즈이기도 하답니다.

 

(이미지출처: '고봉 기대승이 들려주는 사단칠정 이야기' 표지에서 발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흄이 들려주는 원인과 결과 이야기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54
박해용 지음 / 자음과모음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화장르를 빌어 철학자의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 시리즈 54번째 이야기는 영국의 철학자로 경험주의를 완성시키고 그 한계를 지적한 사람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흄의 사상을 담은 <<흄이 들려주는 원인과 결과 이야기>>입니다. 흄은 경험론자이면서 동시에 회의론을 철학하는 방법으로 사용해서 그의 철학을 '회의론적 경험론'이라고 한다지요. 흄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사상, 자아의 문제에 대해서 독특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관념과 인상의 문제, 연상의 법칙 등 흄의 사상에 대해 초등학교 6학년인 이오와 그의 아빠 그리고 나무 할머니를 통해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흥미롭고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담아내고 있습니다.

 

 

 

슈퍼 세일 시간까지 챙기는 씩씩하고 똘똘한 초등학교 6학년 이오는 어린왕자에 나오는 별 'B612' 라는 꽃집을 운영하는 무대책, 무계획, 무뎃포인 아빠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빠의 영향을 받은 이오는 자신이 키우는 고구마에게 닦을 수, 이치 리의 수리라는 이름을 붙혀주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토요일 이오는 문화센터에서 조각보를 배우고 있는 아빠가 신음 소리를 내며 매듭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옆에서 함께 꽃집을 보고 있습니다. 그때 꽃집으로 들어온 할머니는 꽃집 이름이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별이라는 것도, 이오의 고구마를 알아주었지요. 이오는 할머니가 궁금했고, 아빠는 그 분이 나무 할머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무 할머니가 인상적이었던 이오는 아빠와 나무 할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흄이 말하는 인상과 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는 기술이라고 가지고 있는 듯한 나무 할머니와의 만남은 그 후에도 이어졌고, 이오와 아빠는 나무 할머니네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오는 나무 할머니가 나무 이야기를 어떻게 듣게 되었는지 궁금했어요. 나무 할머니는 흄에 대해 듣게 되면서부터라고 하시네요. 이오는 나무 할머니를 통해 경험과 감각, 신념 그리고 원인과 결과, 신념과 습관에 관한 흄의 사상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듯 이해하게 되지요.

 

 

 

초등학교 5학년인 이오, 아빠 그리고 나무 할머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를 통해 우리는 흄의 사상에 대해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을 빗댄 나무 할머니의 설명은 흄의 사상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지요. 이를 통해 우리는 흄의 일생과 흄이 말하는 항상성과 정합성, 원인과 결과, 신념과 습관 등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재미있는 동화 한 편에 스며놓은 흄의 사상은 독자들에게 철학으로의 접근을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철학을 이해하게 도와주고 있었지요. 이처럼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는 철학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철학으로의 안내서이자 부록으로 수록된 [통합형 논술 활용노트]를 통해 논술 교재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는 일석이조의 유익한 책이지요. 우리의 현실과 접목시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접근하기가 더 용이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어린이 뿐만 아니라 청소년, 성인들에게까지 적극 추천하고 싶은 시리즈이기도 하답니다.

 

(이미지출처: '흄이 들려주는 원인과 결과 이야기' 표지에서 발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