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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평점 :
<데미안><싯다르타><수레바퀴 아래서> 등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중 한 명인 헤르만 헤세. 우리는 그의 작품을 읽고,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고,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등 작가의 작품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한다. 하지만 문학 천재였던 헤르만 헤스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누구나 알고 있는 헤르만 헤세,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봤을 헤르만 헤세의 작품, 하지만 정작 구속받기를 싫어했던 헤세의 사랑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나는 자음과모음 <<헤르만 헤세의 사랑>>을 통해서 처음으로 헤세의 이면을 보게 되었다.
<<헤르만 헤세의 사랑>>에서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여러 편지와 문서를 수록하여 헤세가 사랑한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첫번째 부인이었던 바젤의 학자 집안 출신인 사진작가 마리아 베르누이, 두번째 젋은 성악가 루트 벵거 그리고 세번째 부인은 미술사학자였던 니논 돌빈을 통해 헤세의 사랑과 문학적 천재였던 헤세의 삶의 이면을 살펴볼 수 있다.
기대와 실망, 그리고 이별, 베르벨 레츠는 다수의 미공개 자료를 토대로 비범한 세 여인의 삶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헤세의 새로운 면목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표지 中)
여러 차례의 자살 시도, 두 번의 이혼과 세 번의 결혼,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헤세는 구속을 거부하는 인물이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는 작가로서는 천재적인 인물이었을지 몰라도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작가와 남편, 작가와 아버지라는 관계 속에서 헤세는 많이 허덕인 듯 했다. 그런 그를 가장 많이 이해해주었던 첫번째 부인 마리아를 떠난 것으로 헤세의 삶은 더욱 힘겨워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 얼마 전부터 나는 저녁마다 한 여인을 만나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에 머리카락이 검은, 매력적이면서도 거친 야생마같은 여인입니다. (...) 나는 자유 시간을 그 여인과 함께 보냅니다. 기껏해야 내 턱수염에 닿을 정도로 자그마한 여인이지만 그녀의 열정적인 키스는 나를 거의 질식하게 만듭니다. 물론 나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결혼에 대한 소질도 없는 거 같고요. 대산에 나는 이미 다 녹슬어버린 사랑의 기술을 다시금 되살리고 있는 중입니다.
-1903년 6월 4일, 바젤에서 헤르만 헤세가 케스코 코모에게 보낸 편지 (본문 25p)
헤세에게 보낸 마리아의 편지에는 그녀가 그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헤세는 마리아의 그런 마음을 조금도 받아들여주지 않은 듯 보인다. 마리아는 13년 넘게 이어지는 헤세의 도피 행각으로 혼자 살림과 육아를 책임져야했으며, 헤세의 신경질적 반응도 감당해야 했다. 늘 남편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헤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헤세는 가족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명한 시인 헤세의 시를 사랑한 루트 벵거는 헤세에게 첫눈에 반했고, 헤세 역시 젊은 여인에게 정신을 빼앗겼다.
아이들에게서 고향과 엄마를 빼앗아버린 당신에게 아이들이 고마워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언젠가는 당신 역시 지금과 다른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나와 아이들에게 강요한 이별의 고통은 아무 쓸모 없는 무자비하고 잔인한 행위일 뿐입니다.
1920년 10월 30일, 아스코나에서 마리아 베르누이가 헤르만 헤세에게 보낸 편지 (본문 221p)
마리아는 헤세의 인생에 또 다른 여인이 나타났음을 예감하고, 헤세가 자신보다 더 아름답고 멋진 여자들을 만난다 해도 자신만큼 헤세를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 말했다. 이후 루트는 헤세의 친구인 화가 카를 호퍼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헤세는 결혼한 여인 니논과 연애를 시작했다. 니논은 첫번재 부인과 두번재 부인이 모두 실패한 역할인 "나의 불쌍한 아이" 헤세 어머니의 역할을 자처했다. 헤세는 니논 돌빈과 동반자 관계를 유지한 채 창작에 몰두했다.
쉰네 살의 헤세는 두 번의 이혼을 경험했다. 그에게는 성장한 세 명의 아들과 한 명의 손녀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보다 열여덟 살이나 어린 유부녀 니논이 그에게 결혼을 요구하고 있었다. (중략) 헤세는 자신의 영혼 속에 내재한 "꿈과 시학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고 그에게 경고했다. (본문 408p)
헤세가 자신의 삶의 전체였던 세 여인과 달리 헤세에게 세 여인과 결혼 생활은 족쇄였다. 헤세를 사랑했지만 헤세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던 세 여인을 보면서 문학적 천재였던 헤세의 또 다른 이면을 보게 된다. 어쩌면 이러한 그의 평탄치 못한 삶이 천재적인 작품을 탄생시켰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헤세에게는 작가로서의 필연적인 삶이었을지 모르지만, 헤세의 여인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소외된 삶(표지 中)이라는 구절이 와닿는다. 작가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삶을 살아야했던 헤세가 감당해야 했던 무게에 대한 연민과 반면 무책임에 대한 원망이 느껴지는 그의 삶의 무게가 작품의 깊이를 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가 감당해야했던 힘겨웠던 삶만큼이나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을 것일지도.
헤세가 사랑했던 여인들, 그리고 헤세를 사랑한 여인들. 그들의 사랑은 해피엔드가 아니었다. 일상의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창작이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작가 헤세에 대한 연민도 있었지만, 동시에 가정을 내팽개치고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린 인간 헤세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 어쩌면 그것이 헤세 전기의 실체인지도 모르겠다. (본문 56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