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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의 베토벤 - 리처드 용재 오닐이 들려주는 베토벤 현악사중주
리처드 용재 오닐.노승림 지음 / 오픈하우스 / 2016년 6월
평점 :
리처드 용재 오닐은 다소 인기가 떨어진다고 칭해지는 비올라를 연주하는 연주자로써는 드물게도 국내에서 7개의 음반을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몇 개의 앨범을 아주 즐겁게 감상했던 기억이 있고요, 특히 슈베르트의 겨울여행을 연주한 음반은 지금도 가끔씩 듣곤 합니다. 비올라가 얼마나 인간의 목소리와 가까울 수 있는지, 그 따뜻함을 잘 보여준 훌륭한 음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앙상블 디토로 활약한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었지만 그쪽으로는 사실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요, 이번에 갑자기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전곡을 다룬 책을 냈다고 해서 놀랐네요. 알고 보니 지난달에 에네스 사중주단의 일원으로 전곡 연주 공연을 했더라고요. 공연 정보는 커녕 에네스 사중주단이라는 실내악단이 있다는 것도 몰랐으니 뒷북이라면 뒷북이네요.
비루투오조로 알려져 있는 연주자라도 실내악에 대해서 유독 애정을 보이는 경우가 왕왕 있는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실내악이 관심에서 살짝 비껴나있습니다만, 연주자들이 느끼게 될 앙상블의 일체감만큼은 미루어 짐작하게도 되는군요. 특히 베토벤의 현악 4중주는 실내악곡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것이고 많은 연주자들의 도전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고요. 교향곡에 피아노 소나타에 현악 4중주까지, 베토벤이라는 작곡가가 가지는 무게감은 역시 대단하지요. 저 역시 베토벤의 협주곡과 소나타는 꽤 좋아합니다만 사실 현악 4중주는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베토벤의 곡을 듣다 보면 대부분의 곡에서 미간에 내천자를 그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지라 약간 껄끄러움을 느끼게 되곤 하는데요, 그런 이미지가 가장 강하게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현악 4중주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많은 이들이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인내를 가지고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언젠가는 역시 그것을 깨닫게 된다고 믿는 편이라 가끔씩은 도전하고 있는 도중입니다.
캐쥬얼하게 클래식을 듣는 저는 굳이 음악책을 뒤져보는 편은 아닌지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만, 베토벤 현악 4중주를 해설하는 책이 국내에 출간된 것은 정말 희귀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출간된 책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만 그 희귀성만으로도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이하달까, 용재 오닐 뿐 아니라 노승림 씨가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는데요, 용재 오닐이 우리말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번역을 해줄 필요가 있기도 했고 더하여 베토벤의 생애에 대한 해설 부분을 써주시기도 한 모양입니다.
사실 한곡 한곡에 대해서 세세하고 깊이있게 해설하는 책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강조되는 것은 오닐의 생애에서 그 곡을 만나게 된 순간을 포착하고 그에 대한 소회나 감상을 회고적으로 스케치하는 것이라고 하겠네요. 타고난 음악가는 음악가인가 보다 싶은 것이 어릴 적부터 베토벤 현사에 대한 접점이 꾸준히 있었더군요. 그쪽 분야에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외부의 눈에서 보면 그것 자체가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생의 중심에 항상 음악이 있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동경하게 되기도 하네요. 물론 외부자의 눈에서 미화된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기대했던 것에 비해 개별 곡에 대한 통찰이 깊이 들어가지 않아 아쉬운 면이 있었던 것에 비해, 베토벤의 생애를 그려낸 부분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베토벤의 생애에 대해서는 개략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노승림 씨가 추려내어 다듬어낸 베토벤의 삶의 모습은 관심을 끄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스승에 대한 경쟁심, 귀족을 경멸하면서도 그 신분체제에 들어갈 수 있기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역설적인 모습 등 이러한 불완전하고 모순되는 듯한 면모야말로 베토벤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더군요. 음악을 이해하는데 있어 음악가의 성격과 가치관, 그가 살았던 시대상 등은 때로는 오히려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만, 그런 요소들을 종합하여 적용해보는 것은 충분히 가치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작곡가나 연주가의 내면적 성숙도나 도덕성을 곡의 완성도나 아름다움과 등치시키려는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기는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음악을 듣는 것이 정말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될까 의심하고 있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오래 곱씹고 생각해볼 문제겠지요.
교양서와 전문서의 간극은 참으로 메우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매양 교양서만 읽는 저입니다만 전문서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두 마리 토끼를 기가 막히게 잡아내는 책은 정말로 희귀하고 그런 책조차도 갈증을 완전히 해소시켜 주지는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요. 실은 막상 전문서를 읽을 만한 에너지를 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특히 클래식 분야는 제대로 된 감상을 하려면 반드시 공부를 해야된다고 느껴지는 어떠한 선이 느껴지는데요, 영 그것을 넘어가지는 못하고 있네요. 클래식 관련 교양 서적이 죄다 에세이인 것이 아쉽게 느껴지곤 하는 것은 이런 개인적인 필요성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