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나카노 교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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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 작품을 소개하고 해설하는 류의 책은 항상 일정 정도 이상의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일단 시각적으로 강하게 어필이 될 뿐더러, 작가나 역사적 배경 등의 요소를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기도 하니 말입니다. 저도 꾸준한 애독자 중 하나입니다만, 중복되는 소재가 있더라도 늘 새로운 점이 더해져 있게 마련이라 새로운 기분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나카노 교코는 '무서운 그림' 시리즈로 알게 되었습니다만 그 후로도 꾸준히 이런 책을 내주고 있네요. 글솜씨도 글솜씨지만 잘 골라낸 주제에 그림들을 묶어내는 선구안(?)이 뛰어난 작가라는 인상입니다. 이번 책에서는 화가의 일생을 설명하되 그 화가의 백조의 노래로 정점을 이루도록 글을 짜내고 있군요. 유명한 예술가들만 소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접근 때문에 참신함을 잃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일반적으로 가장 친근하면서 직접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명화들이 쏟아져 나온 시대입니다. 이 시기는 다시 셋으로 나뉘어서, 르네상스 초기 신화와 종교를 소재로 하는 시기, 궁정의 요구에 응하여 그림을 그려낸 시기,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시민사회의 수요에 응답하는 시기가 차례로 소개되어 있네요. 이렇게 시간순을 따르다보니 미술사의 전개도 상당히 강하게 드러나더군요. 그렇다곤 해도 역시 각각의 예술가의 삶의 모습이 더 부각되어 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첫번째로 소개된 보티첼리의 생애부터가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보티첼리 하면 [비너스의 탄생]이나 [봄]처럼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그림으로 알려져 있고, 그만큼 르네상스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사보나롤라의 시대를 거치면서 기존의 예술관을 버리고 금욕적인 우의화로 회귀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사보나롤라의 반동이 피렌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지식은 있었습니다만, 그것이 우리가 잘 아는 화가의 삶에 이런 식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생생함을 전해주는군요. 특히 [아필레스의 중상모략]이라는 작품을 통해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건조함과 경직됨을 보노라면 이것이 정말로 그 보티첼리의 작품인가 눈을 의심하게 될 따름입니다. 이랬기에 미술사에서 이렇게 묻혀버렸던 것이겠지만요. 비록 자신의 신념에 따른 개종이었으니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을지 모르겠습니다만, 후세 역사의 흐름을 알고 있는 이들의 눈에는 이런 침잠은 안타까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겠네요. 



 충격을 준 그림으로는 루벤스의 [댐이 있는 풍경]도 빠뜨리면 않을 것 같습니다. '정육점 주인'이라 놀림을 받을 정도로, 따뜻한 색감으로 그려낸 풍만한 여체가 하나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루벤스인데요, 그런 그가 그려낸 마지막 그림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처음 이 그림을 보고 떠올린 것은 추사의 '세한도'였습니다. 수묵화 같은 질감으로 사람 한 명 없는 풍경을 다소 메마르게 그려낸 이 그림은 내면으로 침잠해간 말년의 루벤스를 상상하게 만들더군요. 추사의 불운한 인생과는 꽤 다른 삶을 살았던 그이지만 시간과 공간은 물론 개인의 경험까지 넘어서서 말년에 건너본 세계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당시 아직까지 풍경화가 천대받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그야말로 자신만을 위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해낸 그림이라고 하겠네요. 



 그 외에도 그야말로 고야라는 인물을 거칠게 던져주는 듯한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와, 세월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서글픔을 느끼게 만드는 페르메이의 [버지널 앞에 앉아있는 여인]도 기억에 남는군요. 가장 대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기교적으로 정점을 지났을지라도, 예술가가 남긴 마지막 작품은 미술사적 가치와는 다른 시사점을 보여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책이었어요. 특유의 쿨한 문체는 보는 재미를 더해주었고요, 일본 작가의 책답게 간결하면서도 친절한 구성의 책이라는 점도 덧붙여야겠네요.(역시 일본 교양서답게 분량은 좀 적은 편이라는 점도요.) 내용 면에서나 구성 면에서나 글솜씨 면에서나 꽤나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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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의 베토벤 - 리처드 용재 오닐이 들려주는 베토벤 현악사중주
리처드 용재 오닐.노승림 지음 / 오픈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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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용재 오닐은 다소 인기가 떨어진다고 칭해지는 비올라를 연주하는 연주자로써는 드물게도 국내에서 7개의 음반을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몇 개의 앨범을 아주 즐겁게 감상했던 기억이 있고요, 특히 슈베르트의 겨울여행을 연주한 음반은 지금도 가끔씩 듣곤 합니다. 비올라가 얼마나 인간의 목소리와 가까울 수 있는지, 그 따뜻함을 잘 보여준 훌륭한 음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앙상블 디토로 활약한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었지만 그쪽으로는 사실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요, 이번에 갑자기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전곡을 다룬 책을 냈다고 해서 놀랐네요. 알고 보니 지난달에 에네스 사중주단의 일원으로 전곡 연주 공연을 했더라고요. 공연 정보는 커녕 에네스 사중주단이라는 실내악단이 있다는 것도 몰랐으니 뒷북이라면 뒷북이네요. 



 비루투오조로 알려져 있는 연주자라도 실내악에 대해서 유독 애정을 보이는 경우가 왕왕 있는 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실내악이 관심에서 살짝 비껴나있습니다만, 연주자들이 느끼게 될 앙상블의 일체감만큼은 미루어 짐작하게도 되는군요. 특히 베토벤의 현악 4중주는 실내악곡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것이고 많은 연주자들의 도전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고요. 교향곡에 피아노 소나타에 현악 4중주까지, 베토벤이라는 작곡가가 가지는 무게감은 역시 대단하지요. 저 역시 베토벤의 협주곡과 소나타는 꽤 좋아합니다만 사실 현악 4중주는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베토벤의 곡을 듣다 보면 대부분의 곡에서 미간에 내천자를 그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지라 약간 껄끄러움을 느끼게 되곤 하는데요, 그런 이미지가 가장 강하게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현악 4중주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다만 많은 이들이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인내를 가지고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언젠가는 역시 그것을 깨닫게 된다고 믿는 편이라 가끔씩은 도전하고 있는 도중입니다. 



 캐쥬얼하게 클래식을 듣는 저는 굳이 음악책을 뒤져보는 편은 아닌지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만, 베토벤 현악 4중주를 해설하는 책이 국내에 출간된 것은 정말 희귀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프로모션의 일환으로 출간된 책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만 그 희귀성만으로도 관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이하달까, 용재 오닐 뿐 아니라 노승림 씨가 공저자로 참여하고 있는데요, 용재 오닐이 우리말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번역을 해줄 필요가 있기도 했고 더하여 베토벤의 생애에 대한 해설 부분을 써주시기도 한 모양입니다.


 사실 한곡 한곡에 대해서 세세하고 깊이있게 해설하는 책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강조되는 것은 오닐의 생애에서 그 곡을 만나게 된 순간을 포착하고 그에 대한 소회나 감상을 회고적으로 스케치하는 것이라고 하겠네요. 타고난 음악가는 음악가인가 보다 싶은 것이 어릴 적부터 베토벤 현사에 대한 접점이 꾸준히 있었더군요. 그쪽 분야에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외부의 눈에서 보면 그것 자체가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생의 중심에 항상 음악이 있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동경하게 되기도 하네요. 물론 외부자의 눈에서 미화된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기대했던 것에 비해 개별 곡에 대한 통찰이 깊이 들어가지 않아 아쉬운 면이 있었던 것에 비해, 베토벤의 생애를 그려낸 부분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베토벤의 생애에 대해서는 개략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노승림 씨가 추려내어 다듬어낸 베토벤의 삶의 모습은 관심을 끄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스승에 대한 경쟁심, 귀족을 경멸하면서도 그 신분체제에 들어갈 수 있기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역설적인 모습 등 이러한 불완전하고 모순되는 듯한 면모야말로 베토벤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싶더군요. 음악을 이해하는데 있어 음악가의 성격과 가치관, 그가 살았던 시대상 등은 때로는 오히려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만, 그런 요소들을 종합하여 적용해보는 것은 충분히 가치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작곡가나 연주가의 내면적 성숙도나 도덕성을 곡의 완성도나 아름다움과 등치시키려는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기는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음악을 듣는 것이 정말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데 도움이 될까 의심하고 있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오래 곱씹고 생각해볼 문제겠지요.



 교양서와 전문서의 간극은 참으로 메우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매양 교양서만 읽는 저입니다만 전문서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두 마리 토끼를 기가 막히게 잡아내는 책은 정말로 희귀하고 그런 책조차도 갈증을 완전히 해소시켜 주지는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요. 실은 막상 전문서를 읽을 만한 에너지를 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특히 클래식 분야는 제대로 된 감상을 하려면 반드시 공부를 해야된다고 느껴지는 어떠한 선이 느껴지는데요, 영 그것을 넘어가지는 못하고 있네요. 클래식 관련 교양 서적이 죄다 에세이인 것이 아쉽게 느껴지곤 하는 것은 이런 개인적인 필요성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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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나이트 -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현대지성 문학서재 4
르네 불 그림, 윤후남 옮김, 작가 미상 / 현대지성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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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출간되었던 현대지성의 인문서재 시리즈를 꽤 인상적으로 봤던지라 다음 책은 무엇일까 궁금했었습니다. 역사서(십팔사략), 신화(북유럽 신화), 영웅담(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이어 이번 책은 우화집이었군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상당한 두께의 두 권짜리 책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번 것은 조금 더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편이었습니다. 특히 이번 책은 최초로 삽화가 들어가 있기도 하거든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다양한 버전의 출간본이 있는 것처럼 아라비안 나이트도 그런 모양인데요, 이 책은 르네 불이라는 삽화가의 삽화가 들어간 버전을 채택한 모양입니다. 전작이 완역본이었던데 비해 이번 책은 선집인 것 같고요. 한결 편안히 즐길 수 있는 편이라고 하겠네요.



 어릴 적에 신화나 우화를 워낙 좋아했던지라 아라비안 나이트도 여러 번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완역본을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책을 읽어서인지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대부분 읽어본 적이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실은 완역본도 도전했던 적이 있는데요, 워낙 거칠고 솔직(?)해서 깜짝 놀라 덮었던 기억이 있네요.) 다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는 책으로 다시 찾아보지는 않았던지라 이번 책은 또 꽤 새로운 기분으로 읽게 되더군요.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는 사람이라면 다 공감하는 것이겠지만 책의 구성상의 독특함은 생소하면서도 첫번째로 흥미를 끌어내는 요소일 것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 이야기 속의 누군가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는 식의, 액자 속 액자 속 액자 방식은 혼란스러우면서도 인상적입니다. 마치 물 속에 가라앉듯 이야기 속으로 침잠해가다 다시 서서히 떠오르는 듯한 경험을 해보면, '이야기'가 가지는 본질적인 매력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방식을 잘 택한 옛 이야기꾼의 재주에 감탄하게 되기도 합니다. 


 분량상으로도 그렇지만 역시 가장 무게감 있는 것은 역시 신밧드의 모험 이야기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다시 봐도 흥미진진하더군요. 또 어릴 적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오히려 어른의 눈으로 보면 잔혹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확실히 신화나 전설류는 아무래도 정제가 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문명의 혜택을 입은 사람의 눈에는 거칠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가 많지요. 어부 이야기의 경우, 어릴 적에는 물고기 굽는 이야기(?)가 재밌기만 했습니다만 지금 보니 잔인함에 있어서는 손꼽힐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군요.



 애초에 아이들에게 들려주려고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님에도 동화로 전용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만, 아라비안 나이트도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아이들에게 읽으라 하기에는 확실히 문제가 될만한 부분이 꽤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역시 문학작품은 시대의 산물이네요. 특정 시대의 작품이 수정되지 않은 채로 읽힌다면, 비판적인 눈을 갖춘 사람이 읽지 않으면 오해를 일으킬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라비안 나이트는 오히려 성인의 사랑을 받아야할 작품이 아닐까요? 뭐, 개인적으로 어릴 적의 추억이 떠올라 더 즐거웠던 것을 감안해보면 타당성이 줄어드는 견해 같기도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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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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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은 죽음을 격리시키고 의식적으로 잊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누군가가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기억이 손꼽을 정도였고요. 그렇지만 죽음에 대해 관심이 없느냐는 또 별개의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생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요.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드물고 잦다는 차이는 있어도 죽음을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이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하나의 본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주변 사람과 진지하게 하는 일은 참 드물지요. 불편하기도 하고 만족스럽지 않기도 하게 마련이니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그 답을 책에서 찾게 되곤 하더군요. 사실 이런저런 책을 읽어봐도 여전히 죽음 자체를 이해하는 것은 요원해 보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것을 마주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좋은 조언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줄리언 반스의 이 책도 그런 면에서 책의 제목에 먼저 눈길이 갔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줄리언 반스라는 이름에 더 끌린 것이 사실이네요. 짧지만 강렬했던 소설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받은 인상이 아직도 깊이 남아있기에 그가 쓴 책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설과 수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어느 쪽에서든 빛을 발할만한 스타일이라고 생각되었거든요. 번뜩이는 통찰과 재치있는 언어의 조화가 수기에도 딱 맞으리라 예상했던 것인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예상은 잘 들어맞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영국식 개그에 신랄한 자기 성찰까지 덧붙여져서 읽는 맛이 쏠쏠했습니다. 사실 수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책장이 술술 넘어가더군요. 목차 구분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이어지고 있는 특이한 서술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끊이지 않고 읽어갈 수 있어서 반갑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이 책은 죽음에 인파이터 형식으로 대결하며 풀어내는 책은 아닙니다. 사실 이 책의 원제가 'Nothing to be frightened of'이고 보면-설사 그 목적어가 죽음일지라도-작가가 죽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예상할만한 부분입니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두 축은 '가족'과 '예술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이 삶을 살아가고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변 사람의 죽음에 대처하며 스스로의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작가의 유머러스한 논평이 덧붙여져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자연스레 이런저런 단상을 이끌어냅니다. 사실 평범하다기에는 너무나 스마트한 가족들이라는 생각이 자꾸 끼어들기는 합니다만 문화와 시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감하는 면들이 적지 않더군요. 작가의 형은 철학자인 모양인데요, 둘 사이의 대화가 특히 볼만합니다. 기억에 대한 두 사람의 입장 차이는 자연스레 '예감은..'을 연상시켜 흥미롭기도 하네요.


 가족 이야기가 캐쥬얼하다면 예술가 이야기는 묵직합니다. 예술가들의 사유가 무겁기도 하겠지만 그것에 더해서 담아내는 작가의 사유가 무겁기 때문이라는게 더 정확할 듯 합니다. 작가 자신이 소설가이고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지요. 특히 신에 대한 고민이 깊이 뿌리박혀 있는데요,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에 대한 성찰을 길게 이어간 것은 책의 첫머리에서 그 이유가 천명되어 있기도 합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그립다]라는 문장으로 책을 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그의 형의 응답이 [질척해]인 것도 걸작입니다만.. 작가 뿐 아니라 책에 소개된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 속에 신을 녹여낸 것을 보면 확실히 서구인들에게 있어 신과 죽음의 문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무신론자조차 그 중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혹은 무신론자라는 말 속에 신이라는 말이 담겨있는만큼 진지하게 사유하는 것이 빠질 수 없는 것 같다 같은 생각들이 스쳐가더군요. 한편 동양인은 오히려 죽음의 문제를 다룰 때 신을 개입시킬 당위를 덜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철학자나 문학자가 쓴 책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책도 부분부분 그들의 지성이 만들어내는 논리의 도약이 존재하여 보통 사람인 제가 걸려 넘어지게 만들곤 했습니다. 결국 갸우뚱 하며 넘어가 버린 부분도 없지 않고요. 그래도 에코의 책에 비할 정도는 아니고요, 기본적으로는 경쾌한 감각으로 쓰여진 책이었습니다. 무언가 답을 내겠다는 의도로 쓴 책이라고 보이지도 않고요. 이 책이 쓰여질 당시 이미 작가의 나이가 예순 근처였으니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담담한 화해의 태도인 것도 당연하달 수 있겠군요. 덧붙여서 번역이 상당히 매끈하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원문을 본 것은 아니니 단언이야 할 수 없겠습니다만, 분명 만만치 않은 문맥이었겠다 싶은 부분이 많은데도 자연스럽게 한국어 풍으로 옮겨냈더군요. 문화의 차이를 느낄 부분들을 충실한 주석으로 간결히 풀어내준 것도 아주 좋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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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물리학 -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지적 교양을 위한 물리학 입문서
렛 얼레인 지음, 정훈직 옮김, 이기진 감수 / 북라이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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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형식으로 일상 속의 체험을 과학으로 해석해보는 형식의 책은 사실 꾸준히 사랑받는 교양서가 아닌가 합니다. 그것을 보면 역시 자연을 이해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교과서로 가지만 않는다면 세상 지식은 다 흥미롭기 마련이지요 ㅎㅎ [괴짜물리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도 그런 내용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체험하는 일들을 물리학으로 해설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영화 속의 초과학적 기술의 물리학적 설명에 이르기까지 딱 50개의 꼭지가 실려 있습니다. 몇 장 안되는 꼭지들이 대부분입니다만 50개나 되는 꼭지가 실려있다 보니 생각보다 두께가 꽤 나가는군요.



 초반부에 실린 일상 속 물리학 부분은 상대적으로 자주 소개되는 익숙한 소재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수영장에 공을 넣으면 물이 얼마나 무거워지는지 소개하는 꼭지가 흥미롭네요. 기본적인 내용만으로 술술 결론까지 이어가는 과정이 작가의 스타일을 잘 드러내고 있었어요. 꽤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서술 방식이 칼럼니스트 답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더군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런 형식의 책에 있어서 서양 서적이 가지는 장점은 유머러스함이 아닌가 합니다. 국내의 도서는 대부분 진지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유머를 구사해도 자연스럽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인상이 있는데 비해, 서양의 사람들은 뭔가 아재 개그 같은 개그조차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능숙함이 있어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문화의 차이인 것일까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네요.



 거울 속의 영상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더군요. 거울 하면 보통 좌우를 뒤집어놓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뒤집어놓는 것은 앞과 뒤라는 설명이었는데요, 어찌보면 물리학이라기보다 사고 게임에 가까운 내용입니다만 한참 생각하게 되더군요. 말장난 같으면서도 맞아 떨어지는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영화 속 장면을 물리학으로 설명하는 부분 중에서는 '진짜 한 솔로가 먼저 쐈을까?'가 기억이 나는군요. 미국인의 스타워즈 사랑은 엄청난가보다 싶기도 합니다. 뭐 그래도 스타트렉은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이 두 영화 시리즈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책도 한아름은 되지 않나 싶네요. 아무튼 스타워즈1에서 한 솔로가 현상금 사냥꾼을 먼저 쏴버리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그것을 두고 그의 인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리마스터 버전에서는 심지어 그 장면을 바꿔버렸다고 하는데요, 책에서 저자가 한 솔로가 총을 쏘는 이 장면을 소수점 초 단위로 나누어가며 서술해가는 진지함이 어이없으면서도 재미있었어요.



 '비행기에서 땅콩 한 봉지를 빼면 얼마나 절약될까?'도 기억에 남습니다. 어쩔 수 없이 땅콩 회항이 떠오르는 제목이었습니다만, 내용상으로는 오히려 '마션' 쪽이 떠오르더라고요. 아무래도 마션에서 중량 계산하는 부분이 자세히 나오다보니 연상이 된 모양입니다. 그 소설 속에서는 비용을 희생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보니 돈 문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비행기 승객 80명이 탑승 전에 소변만 봐도 연간 절약되는 연료비가 198만 달러라고 하니 우주선의 중량 감소 문제가 얼마나 민감한 문제일지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겠네요. '마션' 이야기를 한번 더 하자면, 마크 와트니가 동료가 가져온 나무 목걸이 십자가를 불쏘시개로 쓰려고 하면서 나사 직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십자가를 가져온 동료의 고집에 대해서 언급하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그 십자가가 잡아먹었을 돈을 생각하면 나사 직원의 반대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군요.

 캐쥬얼하게 보기 좋은 책이었습니다만 이런 유의 책이 가지는 공통의 문제는 여전합니다. 설명을 간결하게 하는 만큼 오히려 이해는 어려워지는 문제점이지요. 이 문제는 어떤 소재에 대해 설명하느냐 따라서 낙차가 크게 나타나게 되기도 하지요. 저야 늘 그렇듯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쿨하게 접어버리고 넘어가버렸는데요, 반드시 좋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만 스트레스 안 받고 책을 읽는 방법이기는 하지 않으려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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