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평점 :
평이 좋아 기대를 많이 했는데 생각만큼 좋지는 않았다
자꾸 드는 생각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사변적이지 않나 싶다
영화나 책을 볼 때 작가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책의 경우 소설이 그러한데 작가가 생각하는 주제와 다른 방향으로 느낄 때가 많고, 또 그것이 독자만의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경우는 더욱 그러한데, 남들과 좀 다른 방향으로 느끼는 편이다
포커스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영화평론에 관한 글은 잘 안 읽는다
평론가들의 글을 읽으면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간혹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어려운 영화, 평가받을 만한 명작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글을 읽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즐기는 평이한 수준의 영화일 때는 내 느낌을 가장 중요시한다
이를테면 남들이 신파라고 하는 "태극기 휘날리며" 를 봤을 때 극장에서 얼마나 울었던지 화장지가 부족했다
내가 엉엉 울만큼 서러웠던 점은, 피난민의 행렬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도 없고 목적지도 없이 그저 꾸역꾸역 짐을 싸서 발길에 치여 떠밀려 가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너무 서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가난이란, 또 전쟁이란 사람을 왜 그렇게 피폐하고 끔찍하게 만드는가?
그들이 길에서 세워야 했던 밤과, 그 배고픔의 시간들은 또 얼마나 힘에 겨웠을까?
6.25가 터지기 직전 해방된 조국에서 살아보겠다고 애를 쓰던 평범한 소시민들의 꿈과 희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당장 눈 앞에 닥친 이 끔찍한 피난 행렬은 대체 뭐란 말인가...
피난짐을 싸는 불쌍한 소시민들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아 영화 보는 내내 무척 서러웠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는, 영화를 보면서 나처럼 자기만의 감상 포인트를 철학에서 끄집어 낸 것 같다
철학의 눈으로 영화 보기,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공감하기는 좀 어려웠다
물론 좋은 글도 많았지만, 대체적으로 오버 아닌가? 너무 사변적이다, 억지로 연결한 것 같다, 이런 식의 불평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이를테면 "친절한 금자씨" 의 경우, 금자라는 캐릭터에 플러그를 꽂으면 다른 캐릭터로 변한다는 기계론을 대입한 건 정말 공감하기 힘들었다
아마 내가 그 영화를 별로 재미있게 못 봐서 그럴 수도 있는데, 하여튼 저자의 영화 감상법에 공감이 가지 않았다
빌리 엘리어트의 경우, 저자는 죽은 어머니와 발레라는 걸 연결시켜 설명하는데, 내 경우, 영국 광산 노동자들의 삶이 더 눈에 들어 왔다
이 영화를 직접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 소년의 성장기 내지는 꿈을 찾는 과정,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일단 너무 음울한 탄광촌이 눈에 확 들어 왔다
내가 생각하는 영국은 막연한 선진국의 이미지였는데 역시 그 사회에도 어두운 구석은 여지없이 존재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탄광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똑같은 삶을 사는 빌리의 형 토니가 더 애닯게 느껴졌다
발레라는 다소 엉뚱하고 현학적인 길을 걸으려는 동생을 막는 토니가 나에게는 더 안타까웠다
아마도 토니는 광부 이외의 인생은 알지도 못하고 투쟁해서 얻어내는 것만 의미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도 그렇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 그에 관한 해설도 많이 봤는데 직접 본 나는 평론가들과 아주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브래드 피트의 왼손잡이에 초점을 맞춰, 규격화된 삶에 만족하지 않고 자유를 찾는 젊은이를 예찬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영화 속의 브래드 피트는, 형과 명확히 대비되는 자유인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그것보다는 플라잉 낚시에 대한 열정, 자연과의 친화 이런 면이 돋보였다
영화 전반을 휘감는 그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 플라잉 낚시가 브래드 피트와 가족에게 주는 의미, 이런 부분이 많이 와 닿았다
평론가들이 브래드 피트의 자유로움에 초점을 맞춘 건 어쩐지 도식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트루먼쇼, 도 그랬다
저자는 책에서 사회규범이나 틀을 벗어난 자유로움을 찬양했지만 어느 정도의 구속력은 문화나 사회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런 구속감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닌가 싶다
결혼을 하지 않을 자유, 아이를 낳지 않을 자유, 동성애를 즐길 수 있는 자유, 부모들이 마땅치 않아 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자유 같은 거 말이다
영화에서 (특히 헐리우드 영화) 국가의 감시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어쩐지 나는 불편하다
과도하게 경계하고 오버한다는 느낌 때문이다
이건 좀 다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 얻는 것 없는 반문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오아시스" 의 경우, 제일 화가 났던 부분은, 종두가 공주를 처음 만났을 때 성추행 하려고 했던 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장애인인 공주를 처음으로 여자 취급해 줬다고 썼지만 영화 보면서 나는 정말 화가 났고 저자의 그런 의견에도 동의할 수 없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갑자기 자기를 만지려고 하는데, 그것도 사지를 못쓰는, 대응불가능한 여자에게 성추행하는 걸 어떻게 애정이라고 표현한단 말인가?
이런 식의 해석이야 말로 경계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군데군데 저자의 의견과 상충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거의 다 본 영화들이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된 점은 유익했다
가끔 그런 책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보면서 어떤 느낌이 오는데 그걸 나 대신 글로 표현해 주는, 그런 책 말이다
아마도 그런 느낌의 책은, 나와 감성 코드가 딱 맞는 사람이 쓰는 책일 것이다
내가 좀 특이한 편이라 이런 책을 쉽게 만나긴 어렵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