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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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이 좋아 기대를 많이 했는데 생각만큼 좋지는 않았다
자꾸 드는 생각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사변적이지 않나 싶다
영화나 책을 볼 때 작가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책의 경우 소설이 그러한데 작가가 생각하는 주제와 다른 방향으로 느낄 때가 많고, 또 그것이 독자만의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경우는 더욱 그러한데, 남들과 좀 다른 방향으로 느끼는 편이다
포커스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영화평론에 관한 글은 잘 안 읽는다
평론가들의 글을 읽으면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간혹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어려운 영화, 평가받을 만한 명작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글을 읽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즐기는 평이한 수준의 영화일 때는 내 느낌을 가장 중요시한다

이를테면 남들이 신파라고 하는 "태극기 휘날리며" 를 봤을 때 극장에서 얼마나 울었던지 화장지가 부족했다
내가 엉엉 울만큼 서러웠던 점은, 피난민의 행렬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도 없고 목적지도 없이 그저 꾸역꾸역 짐을 싸서 발길에 치여 떠밀려 가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너무 서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가난이란, 또 전쟁이란 사람을 왜 그렇게 피폐하고 끔찍하게 만드는가?
그들이 길에서 세워야 했던 밤과, 그 배고픔의 시간들은 또 얼마나 힘에 겨웠을까?
6.25가 터지기 직전 해방된 조국에서 살아보겠다고 애를 쓰던 평범한 소시민들의 꿈과 희망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당장 눈 앞에 닥친 이 끔찍한 피난 행렬은 대체 뭐란 말인가...
피난짐을 싸는 불쌍한 소시민들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아 영화 보는 내내 무척 서러웠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는, 영화를 보면서 나처럼 자기만의 감상 포인트를 철학에서 끄집어 낸 것 같다
철학의 눈으로 영화 보기,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공감하기는 좀 어려웠다
물론 좋은 글도 많았지만, 대체적으로 오버 아닌가? 너무 사변적이다, 억지로 연결한 것 같다, 이런 식의 불평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이를테면 "친절한 금자씨" 의 경우, 금자라는 캐릭터에 플러그를 꽂으면 다른 캐릭터로 변한다는 기계론을 대입한 건 정말 공감하기 힘들었다
아마 내가 그 영화를 별로 재미있게 못 봐서 그럴 수도 있는데, 하여튼 저자의 영화 감상법에 공감이 가지 않았다

빌리 엘리어트의 경우, 저자는 죽은 어머니와 발레라는 걸 연결시켜 설명하는데, 내 경우,  영국 광산 노동자들의 삶이 더 눈에 들어 왔다
이 영화를 직접 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한 소년의 성장기 내지는 꿈을 찾는 과정,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일단 너무 음울한 탄광촌이 눈에 확 들어 왔다
내가 생각하는 영국은 막연한 선진국의 이미지였는데 역시 그 사회에도 어두운 구석은 여지없이 존재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탄광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똑같은 삶을 사는 빌리의 형 토니가 더 애닯게 느껴졌다
발레라는 다소 엉뚱하고 현학적인 길을 걸으려는 동생을 막는 토니가 나에게는 더 안타까웠다
아마도 토니는 광부 이외의 인생은 알지도 못하고 투쟁해서 얻어내는 것만 의미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 도 그렇다
워낙 유명한 영화라 그에 관한 해설도 많이 봤는데 직접 본 나는 평론가들과 아주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브래드 피트의 왼손잡이에 초점을 맞춰, 규격화된 삶에 만족하지 않고 자유를 찾는 젊은이를 예찬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영화 속의 브래드 피트는, 형과 명확히 대비되는 자유인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그것보다는 플라잉 낚시에 대한 열정,  자연과의 친화 이런 면이 돋보였다
영화 전반을 휘감는 그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 플라잉 낚시가 브래드 피트와 가족에게 주는 의미, 이런 부분이 많이 와 닿았다
평론가들이 브래드 피트의 자유로움에 초점을 맞춘 건 어쩐지 도식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트루먼쇼, 도 그랬다
저자는 책에서 사회규범이나 틀을 벗어난 자유로움을 찬양했지만 어느 정도의 구속력은 문화나 사회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런 구속감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닌가 싶다
결혼을 하지 않을 자유, 아이를 낳지 않을 자유, 동성애를 즐길 수 있는 자유, 부모들이 마땅치 않아 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자유 같은 거 말이다
영화에서 (특히 헐리우드 영화) 국가의 감시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어쩐지 나는 불편하다
과도하게 경계하고 오버한다는 느낌 때문이다
이건 좀 다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반대를 위한 반대, 얻는 것 없는 반문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오아시스" 의 경우, 제일 화가 났던 부분은, 종두가 공주를 처음 만났을 때 성추행 하려고 했던 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장애인인 공주를 처음으로 여자 취급해 줬다고 썼지만 영화 보면서 나는 정말 화가 났고 저자의 그런 의견에도 동의할 수 없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갑자기 자기를 만지려고 하는데, 그것도 사지를 못쓰는, 대응불가능한 여자에게 성추행하는 걸 어떻게 애정이라고 표현한단 말인가?
이런 식의 해석이야 말로 경계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군데군데 저자의 의견과 상충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거의 다 본 영화들이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된 점은 유익했다
가끔 그런 책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보면서 어떤 느낌이 오는데 그걸 나 대신 글로 표현해 주는, 그런 책 말이다
아마도 그런 느낌의 책은, 나와 감성 코드가 딱 맞는 사람이 쓰는 책일 것이다
내가 좀 특이한 편이라 이런 책을 쉽게 만나긴 어렵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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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뽀스 2007-01-0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이타닉을 보면서 저는 "침몰해가는 뱃전에서 연주하는 악사들"때문에 울었고 친구는 "내기로 딴 표를 손에 쥐고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남자"의 모습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차가운 바닷물속에서 영원한 사랑을 외치는 커플따운 우리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는...ㅋㅋㅋ (같이 영화보면서 항상 "우린 참 특이해!!"를 외치곤 하지요.)

marine 2007-01-09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저와 비슷하시네요 저도 좀 엉뚱한 구석에서 막 울어요

마노아 2007-01-09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연주하는 악사들 때문에 울었어요. 사람마다 감상 포인트가 다르지요. 딱 맞는 코드를 찾기는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비로그인 2007-01-0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아시스 그 장면 때문에 보는 내내 불편했어요. 그리고 저도 타이타닉 악사들 장면에서 제일 많이 울었어요^^ 신기해요, 우리만의 코드가 혹은 유형이 있는 걸까요?
아, 그리고 피난민 부분에서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가 생각났는데 혹시라도 안 읽으셨으면 보세요~~

비로그인 2007-01-10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아시스, 처음부터 끝까지 불편했습니다. 고다르가 주는 그런 불편함과는 억만광념쯤 떨어진 불편.

perky 2007-01-10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책 꽤 좋더라구요. 평소 영화를 그냥 별생각없이 보기만했었는데, 영화의 외관보다 텍스트를 깊이있게 들여다보라는 작가의 해설이 제겐 꽤 충격적이었다고 할까요..같은 영화를 봐도 저렇게 철학적으로 사색하며 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라워하며 이 책을 읽었었답니다. ㅋㅋ

marine 2007-01-10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비슷한 코드를 가진 사람 만나면 참 반가워요
라라님, 우리가 좀 비슷한 것 같죠?? ^^ 박완서 소설 꼭 읽어 보겠습니다
쥬드님, 저만 이상하게 영화를 봤나 싶었는데 갑자기 안심이 되네요
차우차우님, 책에 대한 리뷰가 다들 좋아서 올리기 조심스러웠어요 이래서 똑같은 인간은 없나 봐요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엘리자베스 키스 외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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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였을까?
생각만큼 아주 좋지는 않았다
역시 서양 화가가 그린 조선 사람의 모습은 이질적이다
풍속적인 것 같으면서도 확실히 구별이 되는 느낌이다
우리가 서양 사람들을 그릴 때도, 그들 역시 이런 낯선 느낌을 받을까?

목판화라는 것이 참 신기하다
초등학교 때 고무판에 칼로 그림을 새겨서 찍어냈던 적이 있다
그 때 느낌은, 제대로 뭘 새기도 힘들고 색깔내기는 더더욱 어려워, 판화는 매우 힘든 작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판화로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찍어내다니, 놀라울 뿐이다
특히 에칭이라는 작업이 매우 궁금하다
렘브란트의 그림 역시 에칭화로 많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대체 어떻게 하는 작업인지 궁금증이 생긴다
칼로 이렇게 세밀한 선들을 일일이 파낼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뒤러도 판화의 대가였다고 하니, 다음에는 판화에 관한 책을 좀 읽어봐야겠다

어쩔 수 없이 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조선 여인네들의 가엾은 삶이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수도 있겠으나, 가부장 문화에 억눌리고 천시받았던 여성들의 아픈 삶이 자꾸 눈에 밟혀, 책 내용과는 별개로 마음이 아팠다
신기했던 점은,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일본과 중국은 빨래를 남자가 한다고 한다
정말 20세기 초 무렵, 일본과 중국 남자들은 직접 물을 길러 빨래를 했을까?
중국에서는 요리를 할 때 불을 다뤄야 하므로 남자들이 주방일을 한다는 소릴 듣긴 했지만 정말 빨래까지 남자가 하는지 꼭 알아 보고 싶다
엘리자베스 비숍 여사의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이라는 책에서도 나온 바지만, 한국 여성들의 빨래에 대한 부담감은 참으로 엄청났던 것 같다
염료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흰 옷을 입어야 했던 조선인들은, 또 그것을 깨끗하게 빨기 위해 엄청난 노동력을 바쳐야 했다
특히 저자는, 다듬이질이야 말로 끝도 없는 여인네들의 노동이라고 썼다
다듬이 방망이질 소리는 싯구나 수필에서 무조건 아름답게만 묘사되지만, 실제로 그 일을 수행해야 했던 여자들의 고생은, 아마 말로 다 못했을 것이다

의료 환경이 척박했던 점도 참 마음 아프다
현대식 의료가 들어오기 전,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은 근거없는 미신이나 민간요법에 의존해야 했다
이 책에서도 그 예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열 번이나 유산된 여자가 드디어 딸을 출산하게 됐는데, 그 때 회음부 쪽에 상처가 생겼던 모양이다
그러자 마을의 의원이 그 곳을 불로 지지라고 했다
그 가엾은 여자는 회음부 열상을 인두로 지졌고 결국 과다 출혈 상태로 병원에 입원한다
다행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 딸과 함께 퇴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마 이런 일이 비일비재 했을 것이다
당시 조선에 들어와 있던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서양 의료 인력이 어떤 면에서는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측면이 없지 않았겠으나, 이런 미시적인 측면에서는 분명히 큰 혜택을 베풀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쪽으로 생각하자면 당시 서양인들이 확실히 조선이나 일본에 대해서 우위적인 위치를 점했음은 분명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평범한 의사, 화가, 선교사일 뿐인데 선진국, 제국에서 왔다는 이유 만으로 꽤나 높은 대우를 받았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민비의 친척도 만나고 김윤식의 집도 방문한다

그런데 확실히 그림은 사진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정감있다
가끔 구한말 흑백 사진들을 보면, 그 안의 인물들이 참 초라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흑백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워낙 오래된 사진이라 그렇겠지만 표정도 없고 굉장히 무뚝뚝하고 무엇보다 정다운 느낌이 전혀 없어 정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림 속의 조선시대 인물들은 하나같이 따뜻한 표정이 있다
또 현대적인 느낌도 받는다
서양인이 그려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평면적이지 않고 입체적이며, 인물들이 하나같이 키가 커 보인다
같은 시대에 동양인 화가들이 그린 목판화 그림을 보면서 비교해 보고 싶다

그림과 함께 실린 짧은 글을 읽으며 느낀 점은, 저자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매우 사랑했을 것 같다는 점이다
극동의 가난한 식민지에 대해 연민과 함께 우월감도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적어도 그녀가 쓴 글만으로 보면 한국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음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역시 아프리가의 가난한 나라를 방문할 때, 타인의 시선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 한 나라의 문화를 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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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1-09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출간했을 때 저도 엄청 기대했었던 기억이 나요. 전 교보 가서 잠깐 들춰보았는데 그리고는 사기를 포기했어요^^;;;

marine 2007-01-0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 봤답니다
 
책 사냥꾼 - 어느 책 중독자의 수다
존 백스터 지음, 서민아 옮김 / 동녘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서 우연히 빌린 책이다
신간 코너에 꽂혀 있길래 책 수집에 관한 내용인가 보다 하고 집어 들었다
대충 훑어 보는 식으로 읽었는데 결론은 별로 재미없다이다
이런 책에 관한 책은, 역시 한국 사람이 쓴 책이 재밌다
기본적으로 영어권 책에 관해 아는 게 너무 없기 때문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베스트셀러와 다름없는 앤 페이먼의 "서재 결혼시키기" 도 아주 재밌게 읽지는 못했던 것이, 저자가 하는 내용의 70-80%는 못 알아 들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표정훈의 "탐서주의자의 책" 과 같은, 한국인이 쓴 책이 훨씬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저자가 얘기하는 무수한 작가와 책들이, 나에게는 낯선 단어들로 들리니 책을 읽으면서 참 아쉬웠다

좀 뜬금없는 소리이긴 하지만 문득 드는 생각이, 내가 영어권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인데 역시 영어권 태생이라 미국이나 영국 등지의 책을 부담없이 읽는다
영어 배우려고 혈안이 된 이 시점에서, 모순적이게도 영어 공용화 운운하는 건 맞아 죽을 소리일 수도 있겠으나, 순진한 공상에 잠시 빠져 보자면 고종석이 말했던 "우리 모두는 그리스인이다" 라는 막연한 소리가 문득 실감나게 다가온다
영어가 됐든 뭐가 됐든 하나의 통일된 언어권에 산다면, 혹은 공용어 수준으로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다면 체험할 수 있는 문화의 폭이 훨씬 더 넓어지지 않을까 이런 뜬금없는 생각을 해 본다
할 수 있는 언어가 그저 한국어 뿐이다 보니, 세종대왕께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지만, 가끔 외화나 외서 볼 때 짧은 외국어 실력이 한탄스럽기 그지 없다
그래도 책은 좀 나은 편인데 번역된 외화를 보면, 그저 뜻만 막연히 알아들을 뿐 제대로 영화를 감상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당장 아리랑 TV에서 우리 드라마에 영어 자막을 입힌 걸 보면, 간신히 뜻 전달만 될 뿐 대사의 맛을 살린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영어를 습득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고, 외국어 능력이야 말로 사고와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첩경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워낙 모르는 책들이 많아 재밌게 읽지 못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수집벽이 없기 때문에 많이 공감하기 어려웠다
우표를 모은다거나, 그 흔한 곤충채집 한 번 해 본 적이 없고 그림 경매 역시 꼭 내 집에 걸어 놓고 볼 필요가 있을까 싶을 만큼 소유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크지 않기 때문에 솔직히 초판본 찾아 헤매는 그 심정을 100%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나에게 책이란, 언제나 읽어야 할 것은 많은데 시간은 부족한 그런 것이기 때문에, 읽은 책을 또 읽는다든지 꼭 초판본으로 구해 읽어야 한다든지,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나 일단 한 번 내 손에 들어 온 책은, 그 안에 너무 많은 추억과 시간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버리지 못한다
아마도 책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서가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느끼는 것 같다
저자 역시 밝힌 바지만, 내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의 그 흥분감 때문에 더욱 희귀한 것을 모으려고 애쓰는 것 같다

제일 재밌었던 표현은, 도서관에서 책의 가치를 보전하는 것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 부활해서 달걀을 낳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한 번 도서관에 들어간 책은, 보관할 가치가 확 떨어진다는 소리다
일견 이해가 되는 것이, 도서관의 책들은 죄다 겉표지를 벗겨 버리고 큼직하게 도서관 마크를 찍어 볼품없어진다
책커버도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인데 도서관 책은 그야말로 알맹이만 봐야 하니, 보는 즐거움이 반은 깍여 버린다
요즘은 북디자인에도 엄청나게 공을 들이는 추세니, 어쩌면 출판업계가 사는 길은 북디자인에 더욱 신경을 써 독자로 하여금 소유하고 싶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점에 가면 책들이 워낙 예쁘게 나와, 그냥 수집품으로서 갖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한다
특히 그림과 사진이 많은 화려한 책들은 그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꼭 사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이런 북디자인이야 말로 전자책에 맞설 무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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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유어 아이즈 (CD + DVD) - [초특가판], Movie & Classic, Claudio Monteverdi - Excerpts from Madrigali Libro Vlll B + Vlll A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 페넬로페 크루즈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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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너무 독특한 영화라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다
일단 내가 느낀 것만 먼저 써 본다

 

난 이 영화가 매우 야한 영화인 줄 알았다
아마도 니콜 키드먼과 톰 크루즈가 나오는 무슨 영화와 헷갈렸던 것 같고, 여주인공인 페넬로페 크루즈가 톰 크루즈의 새 부인인 줄 알고 있었다
9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니까 완전히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셈이다
스페인 영화인 것 같은데 헐리우드에서 보던 익숙한 영화들과 매우 달라 이질적이면서도 그 때문에 매력적이기도 했다
일단 페넬로페 크루즈는 굉장히 매력적인 여배우다
입술이나 깊은 눈매가 정말 스페인 여자다운 느낌을 준다
남주인공인 에두아르도 노리에가 역시 남다르다
일부러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때는 꼭 미녀와 야수의 야수를 생각나게 하던데 멀쩡한 얼굴은 꽤 잘 생겼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남유럽 사람들과 북유럽 사람들은 생김새가 다른 것 같다
한국인이 남아시아 사람들과 다른 것처럼 말이다

 

몇 가지 생각해 볼 꺼리가 있다
먼저 정신분열증
학교 다닐 때 정신분열증에 대해  배웠고 실제로 환자도 만나 봤다
그 때 느낌은, 이런 사람들과 평생 만나야 밥 먹고 산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싶을 정도로 답답했다
일단 말이 전혀 통하지 않고 사고방식이 정상인과 완전히 딴판이라 그들을 이해한다는 게 불가능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안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울까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들로써는 매우 정상적인 자신을 이해 못 하는 다수의 비정상적인 사람들과 환경이 미치도록 괴로울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매우 독특한 소수자가 아닌가?
이상한 것도 다 같이 하면 정상처럼 느껴지기 마련인데 혼자서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거기다가 그것이 매우 비정상적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미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다
영화 속의 세자르는, 계속 바뀌는 상황 때문에 괴로워 한다
자기는 분명히 누리라의 차에 탔다가 그녀가 일부러 낸 사고 때문에 얼굴이 엉망이 되고 누리아는 죽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랑하던 소피아가 누리아로 바뀌고, 자기가 알고 있던 소피아는 죽었다는 것이다
바뀐 현실에 괴로워 하던 세자르는 섹스 도중 그만 바뀐 소피아를 죽이고 만다
이거야 말로 진짜 정신분열증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우리의 인지 능력은 사실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믿고 있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세자르는 자꾸 이상한 말을 지껄이기 때문에 마약했냐는 의혹을 받는다
마약을 하면 공간지각력이 흔들리고 주변 환경에 착시 현상이 나타난다고 알고 있다
또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그 느낌을 갖기 위해 필로폰이나 대마초를 투여받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은 현실 세계에서 살아야 하니, 현실 감각이 상실되고 붕 떠있는 환상적인 기분을 자꾸 느낀다면 적응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신부가 준다고 약속한 영생을, 현대 과학 시대에는 의사가 준다고 한다
냉동인간 시스템을 통해서 말이다
정신적인 개념이 현실적인 실체로 바뀐 셈이다
해저2만리를 쓴 쥘 베른을 미쳤다고 했으나 이제는 현실이 됐다
우주선도 띄운다
비록 우주전쟁 같은 건 없지만 말이다
과연 영화 속 세상은 2145년이 되면, 냉동시켜서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인간의 수명은 어디까지 연장될 수 있을까?
또 현대 과학으로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열릴까?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에도 시작이 있는데 끝이 없이 계속된다는 건 전제부터 잘못된 것 같다
결국 영생이란 하나님, 곧 창조주의 틀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들은 얼굴을 바꾸고 영생을 실현시켜 주는 전문가로 나온다
확실히 써전들은 전문가스러운 뭔가가 있다
당장 봉합하는 것만 봐도 대단한게 느껴진다
현미경 보면서 수술하는 신경외과도 그렇고 정형외과 같은 것도 수술하는 거 보면 대단하다
의사가 가장 의사다운 것도 바로 수술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외과나 산부인과 가치가 너무 떨어졌지만 가장 의사다운 게 또 그런 파트 아니겠는가?
하여튼 의사들은 굉장한 전문가들이고 기술은 남에게 넘길 수도 없는 독특한 자기만의 것임이 분명하다

진실은 뭘까?
내가 인지하고 있는 것, 그것이 진실일까?
가상현실도 내가 실제라고 믿는다면 그건 나에게는 진실이 되는 게 아닐까?
매트릭스를 보는 기분도 든다
내가 믿고 있는 이 세계가 정말 진짜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인지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
우리들의 인지 능력
믿는만큼 이루어진다는, 요즘 유행하는 긍정의 힘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가상현실과 연결되는 건지도 모른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자기가 어떻게 인지하느냐, 믿느냐에 따라 주변 상황은 얼마든지 바뀌어 보일 수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외모란 무엇일까?
겉모습 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보이는 게 거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미녀와 야수도 결국 그런 얘기 아닌가?
야수일 때나 왕자일 때나 그 사람은 단지 외모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대한다
속마음을 어떻게 보여 주겠는가?
결국 외모도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하나의 거대한 틀이다
어쩌면 생김새와 인격을 나누어 평가하는 것이 틀렸는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존재는 분할되어서 평가될 수 없는 총체적인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독특한 영화였고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다
해설을 참조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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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유산
미셸 로스캠 애빙 지음, 김지원 옮김 / 청아출판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이건 정말 비닐 커버의 승리인 것 같다
서점에 갔을 때 이런 식으로 된 걸 봤더라면 절대 안 샀을 책이다
적어도 렘브란트 그림 몇 점은 도판으로 실려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책을 보면, 조르주 뒤비의 세계사 지도가 절대로 비싸다는 생각이 안 들 것이다
성인을 위한 팝업북이라는 문구는, 몇 장의 편지 같은 걸 가리키는 말이었나 보다
매우매우 실망스럽고 돈도 아깝다
5천원 할인 쿠폰이 아니라 만원 쿠폰을 줬어도 속을 보면 안 샀을 책이다
물론 이건 가격에 비해 비싸다는 점을 토로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렘브란트 그림이 단 한 장도 안 실린 게 너무 속상해서 하는 소리다
생각의 나무에서 나온 세계문화유산 시리즈는 이 책에 비하면 정말 껌값이다
10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이 무려 35000원이라는 가격을 책정한 까닭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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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7-01-04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100페이지도 안된다구요? 그림도 없고. 도대체 책값의 이유는 뭘까. +_+;

marine 2007-01-0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봤더니 책은 64페이지, 정말 도판 몇 장이라도 붙여 줘야 하는 거 아닌지...

마노아 2007-01-04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4페이지라고 안내되어 있는 것보고, 전 모두 그림으로 덮여있는가 했어요. 너무하네요.

marine 2007-01-04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은 그림인데 화질 좋은 도판이 실린 게 아니라 작은 그림 몇개씩 붙여 놨네요 하여튼 전체적인 내용이 너무 빈약합니다

딱붙어 2018-03-29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그림도 감상하고 가격 압박도 안받을 거에요ㅎㅎ 내용이 빈약하긴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