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데라야마 슈지 지음, 김성기 옮김 / 이마고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청승맞게도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엉엉 울고 말았다
어쩜 이렇게 구구절절 훌륭한 말씀만 하실까?
남루한 우리 인생, 누구나 속을 들여다 보면 초라하고 비루할 수 밖에 없는 가엾은 삶의 단면을 참 잘도 묘사해 놨다
저자의 그 번뜩이는 관찰력과 냉소에 박수를 보내는 바다
은희경류의 자조적인 냉소와는 격이 다른, 뭐랄까?
좀 더 발랄하고 좀 더 긍정적이지만 결국은 인생의 초라한 이면을 남김없이 까발린다는 점에서는 통하는 그런 글들이다
저자가 탐닉한 경마, 카드 같은 노름판에 애착이 생긴다
워낙 도박 같은 걸 싫어하고 심지어 그 흔한 로또 복권마저도 사 본 일이 없는 성격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왠지 그런 노름이나 도박에도 괜시리 정이 가게 된다
특히 경마에 대한 저자의 애착은 정말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도쿄 경마 대회에서 한물 간 말들이 지방으로 팔려 가 하찮은 대우를 받으며 지나간 영광을 쓸쓸히 회상한다는 저자의 글을 보고, 지방경마대회 주자가 반론의 글을 썼다
경주마는 원래 달리는 게 천성이고 지방 대회 역시 나름대로의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주최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그런 동정 따위는 필요없다는 것이다
지방 경마 주자의 그 자부심 가득한 편지에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고 나 역시 지방문화에 대한 편견을 수정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말 뿐 아니라 사람 역시 타고난 혈통, 타고난 품격, 타고난 외모나 머리 같은 선천적인 것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우열이 가려지는 것이고,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은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조잡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민중이니 평등이니 하는 것보다 결국은 이기적인 유전자의 적자생존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소시민의 비루함을 떨치려면 "일점호화주의"를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말도 재밌는 "일점호화주의"란 자기가 애착을 느끼는 한 분야에 올인하라는 것이다
한 달 굶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사흘 식사를 한다거나, 바퀴벌레 나오는 아파트에서 살더라도 차는 최고급으로 탄다
한 때 머리 빈 족속이라고 비웃었던 이른바 명품족, 한 달 라면 먹고 구찌 가방 사는 식의 여자들도 어쩌면 이런 "일점호화주의" 를 실천하는 이들인지도 모르겠다
벌 수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고 이것저것 따지면서 분배하다 보면 결국 그 날이 그 날인 뻔한 인생이 될 수 밖에 없으니, 저자의 말처럼 비루한 삶을 벗어나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올인하면서 그것만은 폼나게 살아 버리는 거다
물론 나 같은 소시민은 절대 할 수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불가능 할 것이고 저자와 같은 예술적 끼가 다분한 이들만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심혜진이 까페 가수로 나오는 드라마가 있었다
그녀의 상대역은 착실한 감우성, 전기회사의 a/s 직원이다
버는대로 써버리는 심혜진은 가난 따위는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돈 없으면 없는대로 버티고 있으면 폼나게 써 버리는 거라고 말한다
월급 받아 저축하고 아끼면서 사는 평범한 감우성 스타일의 남자가 감당할 수 없는 여자인 셈이다
그 때는 정말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능력이 고만고만한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드라마 속의 심혜진 같은 스타일, 혹은 이 책의 저자와 같은 "일점호화주의"가 조금이라도 인생의 비루함을 더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내가 올인하는 건 뭐가 있을까?
기껏해야 책?
그것마저 소유하는 것에는 큰 욕심이 없어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으로 만족한다
내가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은 게 반은 작용한다
물론 남에게 선행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간단히 말하면 가족 이기주의다
내 가족에게 잘하고 싶은 것, 아마 대부분의 소시민이 그런 의미로 열심히 돈을 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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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반디 앤 루니스 서점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산 책이다
정말 얼마만에 책을 사 보는지 모르겠다
몇 번 망설이다가 계산대로 갔다
그러면서도 미련을 못 버려, 다른 책으로 바꿀 수 있나요? 환불은 되나요? 등 구차한 질문을 던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의 가격은 비싸게 느껴진다
겨우 200페이지에 불과한 이 얇은 에세익 12000원이라는 건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이 가격이면 돈을 좀 더 주고 그림과 사진이 많은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같은 책을 사겠다고 혼자 궁시렁 거렸다
대체 책값은 왜 이렇게 비싼 걸까?
책값이 5천원 내외, 혹은 만원 안쪽만 됐어도 훨씬 덜 망설였을 것이다
북디자인이 특별히 예쁜 것도 아니고, 하여튼 부당하게 비싼 걸로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계산대로 책을 가져간 것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저자의 전작, "열하일기" 를 매우 매우 지루하게 읽은 덕에 이 여자의 글솜씨를 신뢰하지 못하긴 하지만 그래도 학자가 말하는 공부법에는 관심이 간다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 가 훨씬 진지하긴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쉽게 쓰여져 읽기 편하다는 데 있고 또 역시 공부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할 만한 문구들이 많아 많이 옮겨 적었다

나 역시 책을 좋아한다
그것도 인문학적 호기심을 만족시켜 줄 좀 어려운 책, 수준있는 책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공부는 싫다
뭔가 생산해 내는 공부는 역시 어렵고 또 지루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돈과 상관없는 분야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가벼운 마음으로 교양서를 읽는 모습이다

고전을 읽자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하는 바다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고 시대마다 새롭게 해석되는 고전은 대중문화와 비교할 수 없는 인류 문명의 정수일 것이다
암송에 대한 주장도 새롭게 들린다
확실히 소리를 내어 읽으면 느낌이 남다르다
암기와는 다른 암송, 한 번쯤 생각해 볼만 하다
지적 파티를 열자는 주장도 새롭다
혼자 하는 공부, 혹은 독서보다는 함께 나누는 책읽기가 훨씬 더 즐겁고, 또 그런 의미에서 알라딘 같은 블로그가 활성화 된 것이리라
독서모임 같은 것, 흥미롭다
그렇지만 주제를 정해서 강제성을 띄고 하는 건 싫다
뭐든 부담되는 건 싫다
가볍게 만나 차 한 잔 마시면서 사교의 장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 이런 건 좋다
결국 나는 생산적인 사람이 못 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고미숙이라는 사람은 에너지가 넘치는, 솔직히 말하자면 상당히 오버하는 사람 같다
하여튼 공부에 대한 욕구는 대단한 것 같다
제도권 밖에서도 대중을 향한 글쓰기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줬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그래도 시시껄렁한 잡문들 보다는 뭐, 훨씬 건전하고 바람직하다

학생들의 자율에 맡기면 토론은 100% 실패한다는 말에 동의하는 바다
확실히 공부는 강제성이 있고 좀 애를 써야 얻는 게 있다
결국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지루한 것을 좀 파고 들어야 비로소 관심사를 찾아보고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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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샨보이 2007-05-25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싸다는데 동의. 인터넷으로 샀는데 받고서는 책(분량,느낌 등)에 비해 너무 비싼 가격이라 생각되네요. 출판사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인세를 많이 줘서 그러나 아님 고미숙 선생님이 이제 많이 달라고 하시나? ㅋㅋㅋ 암튼 비싼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marine 2007-05-25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그러게 말입니다 전 서점에서 직접 사서 더 비싸게 느껴지더라구요
 
공룡학자 이융남 박사의 공룡대탐험
이융남 지음 / 창비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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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쥬라기 공원이 한창 뜨고 있을 때 출간된 책인 것 같은데, 아주 재밌게 읽지는 못했다
삽화가 풍부하긴 한데, BBC 방송국에서 출간된 공룡 책과 비교해 볼 때 수준이 상당히 떨어지고 솔직히 그림이 조악한 편이다
공룡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실제 발굴에도 참여한 저자의 독창적인 저술은 인정하지만,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은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마지막에 공룡 탐사 기행문은 상당히 지루했고 공룡을 세분화 해서 나열한 것도 흥미롭기 보다는 꽤나 지루했다
확실히 저술 능력과 학자로서의 깊이는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공룡이 활동했던 중생대 전반을 설명한 첫 챕터가 제일 마음에 든다
덕분에 중생대의 시대 구분은 확실히 할 수 있게 됐다
트라이아스기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삼첩기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중생대 초기에는 포유류와 유사한 파충류가 출현했지만,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진 대신 공룡류의 거대 파충류가 번성하게 됐다
삼첩기에는 지구가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대륙이었고 (판게아) 쥐라기에는 곤드와나와 로렌시아로 나뉘었으며 백악기 때 비로소 현재의 대륙 모습이 완성됐다고 한다
그래서 중생대 초기 공룡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 똑같이 발견된다고 한다
시조새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하늘을 나는 새들이 공룡의 후손이라니, 신기하지 않은가?
열심히 뛰다가 어느날 갑자기 하늘로 날아 올랐다는 얘기가, 아마도 진화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18세기에는 꽤나 어처구니 없게 들렸을 것 같다
어쨌든 새의 조상이 되는 공룡에게는 보온을 위해 비늘 대신 깃털이 났다고 한다

공룡이 온혈동물이냐는 논쟁은, 아마도 체온 조절 방식이 다양했다는 쪽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현재의 파충류처럼 냉혈동물인 것도 있지만, 새처럼 체온을 일정하게 조절하는 종류도 있는 등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형태가 가능했다고 보는 쪽이 타당할 것 같다
공룡의 멸망 역시 거대한 운석이 떨어진 후 기후 변화에 의해 멸종했다고 보는 쪽이 맞는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고생대가 끝날 무렵에도 생존하던 생명체의 97% 이상이 멸종했고 그 빈 공간을 새롭게 출현한 공룡류가 메꾼 것이니, 공룡만 갑자기 멸종한 것도 아닐 터이다
하늘에는 익룡이 날아다니고 바다에서는 수장룡이나 어룡이 헤엄쳐 다니는 파충류의 천국, 중생대!!
그들의 후손인 악어나 거북이들이 과연 천국이라고 부를만한 시대였을 것 같다
아마도 극지방조차 10~15도의 높은 기온을 유지했던 당시 생태계 환경이 거대 파충류의 번성을 가져왔을 것이다
신기한 점은 악어류가 땅을 기어다니는 것에 비해, 공룡류는 걸어다닌다는 점이다
그래서 악어는 아무리 커도 몸집이 한정된 반면, 공룡은 아파토사우르스처럼 수십톤까지 커질 수 있었다고 한다
또 기린처럼 높은 곳에 있는 어린잎을 따먹기 위해 목이 길어졌다고 하니, 과연 진화의 법칙은 어디나 작용하는 것 같다

어렸을 때 공룡 그림책을 보면서 모자를 쓰고 반바지를 입고 돋보기를 들고 밀림을 헤매는 고고학자를 꿈꾸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안 된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모래 사막을 뒤지고 암벽에 달라붙어 드릴로 화석을 채굴해 내는 고고학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책에 나오는 것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육체노동이 지적 작업보다 월등히 많은 직업임이 분명하다
다음에는 BBC 방송국에서 출판한 공룡책을 읽어 봐야겠다
확실히 한 주제에 관해 몇 권의 책을 읽으면 윤곽이 잡힌다
그래서 독서를 하면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전체적으로는 많이 아쉬운 책이지만, 우리나라 학자가 직접 펴냈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보내는 바다

P.S) 아래 리뷰들을 보니 어린애들에게 읽히려고 부모들이 구입하는 모양인데, 이 책을 어린이들이 읽다니, 놀라울 뿐이다
아이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수준은 절대 아니다
아마도 그림이 풍부해서 읽는 모양인데 해부학적 내용도 많고 애들이 과연 몇 %나 이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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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7-05-15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융남 박사는 우리 나라에서 출판된 공룡 관련 책에 단골로 등장하는 분이신 것 같아요.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라면 아이책 어른책 안 가리더군요.
 
러시아정교 - 역사.신학.예술 고려대학교출판부 인문사회과학총서 61
석영중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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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재밌게 읽은 책이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네이버의 연애 기사만 읽다가도 가끔 이런 인문학적 교양서를 읽으면서 지적 유희를 맛본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왜 대중문화는 천박해질 수 밖에 없는가? 고급 문화의 대중화는 정말 불가능한 것일까? 라는 식의 끝도 없는 의문이 제기된다
클래식이 국가의 보호 아래 겨우겨우 숨을 쉬고 있고, 고전문학은 논술 교재로서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지만, 모짜르트나 베토벤의 웅장한 음악을 들었을 때 격정적으로 떨리는 순간이나, 좋은 책을 읽은 후 느껴지는 충만감 등을 생각하면 왜 순수예술이 대중문화 시대에 외면받을 수 밖에 없는지 안타깝지 그지없어진다
이 책도 널리 소개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로 유익할 뿐더러 무척이나 재밌는 책이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열혈독자라면 한 번쯤 정독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똘스또이나 기타 러시아 문학 책을 읽을 때 등장 인물의 캐릭터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작가가 오버해서 창작해 놓은 비현실적인 인물처럼 느꼈었는데, 러시아 시대와 문화를 모르는 상태에서 과연 몇 %나 이해될 수 있는지 이제서야 알게 됐다
어쩌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고전 문학들도, 사실은 그 시대나 문화권에서 살지 못한 바로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서구 문화가 대세를 이룬 21세기를 살고 있는 극동의 조그만 나라 독자로써는, 서구 문화의 기본 지식이 부족한 게 언제나 한스러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좋은 책은 배경지식이 전무한 이에게도 깊은 감동을 준다

러시아 정교란 대체 뭘까?
그리스 정교와 비슷한 것인가?
동방 교회의 변형인가?
워낙 교류가 없는 나라이다 보니 말만 들었을 뿐,  제대로 이해를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런 호기심에서 집어든 책인데, 러시아 민족이 이렇게도 종교적인지 새삼 놀랬다
러시아 정교를 논하지 않고서는 러시아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저자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여러 작품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설명하면서 러시아 정교와의 연관성을 짚어준다
도스또예프스끼 역시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인, 정교회 신자였다고 한다
그에 반해 진리 추구를 최우선으로 삼았던 똘스또이는 말년에는 거의 스스로 종교를 창조해 낼 정도로 합리적인 신앙을 강조했다고 한다
실천적 지식인 똘스또이에 비해, 저자는 러시아 정교의 본질을 대변하는 도스또예프스끼 쪽으로 더 많은 애정을 기울인다
그렇지만 작품이나 작가의 삶을 생각해 볼 때, 내 쪽에서는 똘스또이가 훨씬 더 매력적이다
합리적인 신앙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저지르기 쉬운 오류, 외적인 교회는 무지한 민중을 계도할 때나 필요할 뿐, 지식인은 내적인 교회, 즉 실체가 없는 정신적인 교회를 통해서 참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의 논리 확장을 저자는 경고하고 있지만, 무교회가 또 다른 신앙의 형태라고 믿는 나로써는 진리 추구에 평생을 바친 똘스또이에 더  끌릴 수 밖에

아름다움에 대한 솔제니찐의 논평은,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의의를 분명하게 설명해 준다
진선미 중 가장 아랫부분이라고 생각했던 그 예술이 사실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위대한 진리일 수 있음을 그의 연설을 통해 새롭게 느꼈다
러시아 정교는 모든 예배 의식을 통해 하나님께로 다가가는 방법으로써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장엄한 종교음악, 화려한 이콘, 아름다운 성당, 우아한 미사 의식...
러시아 민족이 얼마나 예술적이며 또 종교적인지 새롭게 인식했다
그렇지만 이콘은 솔직히 별로 와닿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루벤스나 라파엘로 풍의 화려하고 정밀한 묘사에 있다보니, 평면적인 이콘화들은 아무대로 별 감흥을 못 준다
그래서 나는 현대 미술이나 동양화에서 감동을 그다지 못 받는 편이다
내가 생각하는 명작이란, 르네상스 풍의 정교하기 짝이 없는, 색체의 현란함이 관객의 눈을 어지럽히는 그런 아름다운 그림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은 아무 의미가 없고, 오직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예술을 추구한다는 이콘화의 성행은, 러시아 미술의 지향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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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에서 돈 키호테까지 - 서양고중세사 깊이읽기
윌리엄 레너드 랭어 엮음, 박상익 옮김 / 푸른역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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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스캐너라는 걸 샀다
필요한 문장에 줄을 그으면 사진처럼 찍혀서 컴퓨터로 옮길 수 있는 물건이다
그러나, 역시 성능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렇게 편한 물건이 이렇게 안 팔리는 걸 보면, 제대로 기능을 못한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끝도 없는 내 호기심이 충동구매를 하게끔 만들었다
영어와 한글이 같이 있으면 영어는 아예 읽지를 못하고 글씨가 깨져 버린다
배터리도 어찌나 빨리 닳아지는지 한 시간도 채 못쓰는 것 같다
내가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이런 물건을 산 이유는, 옮겨 적을 글들이 워낙 많이 때문이다
내 책이라 할지라도 줄을 그어 놓으면 그걸로 끝이다
다시 들여다 보기란 참 어렵다
그나마 한 곳에 옮겨 놓으면 몇 번은 들여다 보게 된다
그 노동을 안 하고 싶어 출혈을 했건만 만족도는 매우 떨어진다

하여튼, 나는 다시 이 책을 읽으면서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렸다
그만큼 심장에 콕콕 꽂히는 문장들이 많았다
역시 괜히 유명한 게 아니었다
보통 여러 사람들이 집필을 하면 통일성이 깨지고 수준도 제각각이라 산만한데 이 책은 정말 유기적으로 잘 엮여 있다
오히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기가 전공한 인물들을 썼기 때문에 더 신뢰가 간다
어쩜 이렇게 글솜씨들이 좋은지, 감탄하면서 읽었다

1.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억울하지만은 않다는 점은 새롭게 안 사실이다
보통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민주정의 폐해, 우민 정치의 표본으로 꼽힌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당시 아테네는 놀라울 정도로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는 훌륭한 민주정이었고,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천재에 대한 대중의 시기심이 아니라, 체제를 뒤흔드는 위험성 있는 발언 때문이었다고 진단한다
플라톤이 철인에 의한 독재정을 주장한 걸 보면, 확실히 스승인 소크라테스도 위험성이 다분했을 것이다

2. 일리아드와 오딧세이가 음유 시인 특유의 문법으로 구성됐다는 점을 간과하면 호메로스 혼자 쓴 게 아니라는 오해를 받게 된다
심지어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설까지 있을 정도로 평가절하 되기도 하지만, 저자는 이 놀라운 서사시가 읽기를 위해서가 아닌, 낭송용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크레타 멸망 후 왜 선문자 B는 전승되지 못했을까?
저자의 말로는, 크레타 멸망 후 새롭게 일어선 그리스 본토에서는 아예 문자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나중에 페니키아 상인들을 통해 알파벳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문자 발명이란 보통 일이 아닌데 왜 이처럼 훌륭한 발명품이 전승되지 못했는지 의아하다
완전히 폭삭 망해서 문화 전승 자체가 불가능했던지 아니면 아예 교류 자체가 없었던 걸까?

3. 노예 상인에 관한 서술은 챕터 중 가히 최고라 할 만 하다
고대 시대에 노예 무역이 갖는 의의를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한다
노예제도가 없었다면 여가나 문화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바다
또 노예가 될만한 열등한 민족이 있는 게 아니라, 가능만 하다면 그리스인은 그리스인을 노예로 삼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타인의 권리를 빼앗고 노동력을 갈취하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본성인 셈이다

4. 새롭게 인지하게 된 매력적인 인물들, 샤를마뉴 대제, 알렉산드로스 대왕, 정복왕 윌리엄
이 세 사람은 단지 이름만 들었을 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던 인물들이다
책을 읽으면서 모두가 개성있고 매력적인 존재로써 분명하게 인식됐다
윌리엄의 영국 정복을 수놓은 그 유명한 테피스트리를 보고 싶다

5. 중세는 야만족의 시대가 아니었다!!
이 명제는 이미 새로울 것도 없지만, 하여튼 게르만족이 위대한 로마 문명을 망가뜨린 후 암흑의 중세 천년이 시작됐다는 말은 틀린 얘기다
저자에 따르면 중세는 유럽이 하나의 동질성을 획득하는 시기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지배하는 동아시아와 유럽 대륙은 느낌이 다르다
수십 개의 나라가 유럽 연합으로 뭉치는 것은 가능해도, 단 세 나라, 중국, 일본, 한국이 동아시아 연합이 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 같다
게르만족의 이동을 통한 중세의 성립과 발전과정이 놀라운 필체로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 외에도 아직 읽지 못한 챕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각 챕터마다 너무 재밌고 흥미로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고 있다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같은 가벼운 역사서 보다는 역사 이해에 훨씬 더 많은 지식과 흥미를 줄 것임이 틀림없다
강추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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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7-05-10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고나니 이 책에 관심갑니다. 마린님께서 강추하신다니 완전 신뢰가는 책인데요? ^^

marine 2007-05-1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인사 드려요, 차우차우님^^
저자들의 글 쓰는 내공이 상당합니다 재밌게 읽으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