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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독 - 새움 에크리티시즘 1
이명원 지음 / 새움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힘들게 힘들게 읽은 책이다
과천 도서관에서 한 정거장 앞에 있는 정보도서관에 이 책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하철을 타고 갔다
한 10분 정도면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 채 말이다
과천이라는 명칭도 생소한 내가, 더군다나 길치인 내 깜냥으로는 도저히 찾아지지가 않았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도보로 10분이라던데, 도대체 이 도서관은 어디에 붙어 있는 것일까?
도서관에 전화를 했더니 대번에 하는 소리가, "차로 오시는 건가요?" 이랬다
"걸어 가는데요" 라고 답변했더니, "걸어 온다구요?" 곧이어 옆사람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걸어 온다는데? "
자기들끼리 하는 말의 뉘앙스는, 지하철에서 내려 도서관까지 걸어 오기는 꽤 먼 거리인데 전화까지 하면서 부득불 온다는 게 신기하다는 말투였다
무더운 여름날, 과천 청사 앞에서 해매고 해맨 끝에, 택시 기사의 도움을 받아, 한 30여 분은 열심히 걸은 끝에 도착했다
아. 그 때의 허탈하고 기운빠지는 기분
차가 있을 때는 차종에 상관없이 그저 차가 있어서 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생각 밖에 안 했다
차가 있어서 우월감을 느낀다든지 (학생 때는 그랬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 참 안 됐다, 이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막상 차를 반납하고 지하철과 도보로 이동하다 보니, 왠지 모를 서글픔과 괜한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언제나 짐은 많고 거리는 멀고 지하철 역 앞에 딱 떨어지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다
이번 도서관 같은 경우도, 지하철에서 내리면 한 15분 이상은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외진 곳에 있었다
와 보니 학생들이 참 많은데, 이 아이들은 죄다 걸어 다니는 걸까? 아니면 차 있는 부모가 공부를 위해 기꺼이 운전사 노릇을 해 주는 걸까?
사회에서 당연시 되는 것을 가지고 있을 때는 우월감이나 자부심을 느끼기 보다는, 뭐 원래 있는 것, 그저 그런 것 정도의 느낌 밖에 없는데, 막상 그것을 박탈당하고 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소외감과 울적함을 느끼게 된다
서울에 올라온 후 차가 없어지고, 또 한 술 더 떠 내 집이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 괜한 자괴심과 우울한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집이 없다는 것, 쉴 수 있는 영구적인 공간이 없다는 것, 그냥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떤 날은 울적해진다
고생스럽게 온 도서관은 최근에 개관한 새 도서관답게 열람실을 없애고 대신 문헌정보실의 좌석을 대폭 늘렸다
정보과학도서관이라는 거창한 명칭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뉴스나 인터넷에서 얼핏 보던 동경해 마지 않던 외국 도서관처럼 앉아서 읽을 좌석이 꽤나 편안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특히 군데 군데 쇼파를 배치한 아이디어는 높히 사고 싶다
어제 읽은 "우라야스 도서관 이야기" 에서도 일본인 저자는, 도서관의 학습관화는 잘못된 현상이라는 것을 지적한 바 있지만, 확실히 서구식으로 책 읽을 공간 위주로 꾸민 이 도서관은 퍽 매력적이다
지나친 요구일 수 있겠으나, 커피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미국의 대형 서점들은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새 책을 편안하게 둘러 볼 수 있도록 한다는데, 도서관도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면 안 될까?
쇼파에 앉아 책을 펼쳐 들었더니 기운이 쭉 빠지면서 몸이 편안해졌다
문득 옆 창문을 보니, 래미안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었다
정말 도서관과 단 1분 정도의 거리 밖에 안 되는, 근거리의 아파트였다
저 집은 얼마 정도 할까?
책을 읽다 말고 곧 상념에 빠졌다
저 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산다면 퇴근 후 산책하듯 매일 도서관에 올 수 있어서 참 좋겠다...
서울에서의 내 집 마련, 쉽지 않은 문제에 당면하여, 요즘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집이 아니라 교통 환경도 편하고 주위 여건도 좋은 그런 쾌적한 주거 공간에 대한 욕구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적인 욕망과 연결되고 만다
결국은 돈이 문제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명원의 "해독" 은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책은 아니었다
나는 비평이나 평론에 약하다
책을 읽을 때 평론가들에게 주눅들지 말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데, 적어도 나는 그럴 위험은 없는 사람이다
유달리 자의식이 강하고 나름의 독특한 관점을 갖고 있는 나는, 한 번도 비평가들에게 감상을 의존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평론은 잘 읽지 않는다
나는 내 식대로 책을 읽고 싶다
내가 감동을 느끼면 아무리 유치찬란한 책이라도 나에게는 의미가 있고, 그런 책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감상문을 늘어 놓게 된다
그래서인지 남들과 다른 감상을 얘기할 때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
특히 소설에 대해서는 별로 즐겨 읽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딴나라 얘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오히려 맨 앞 장의 개인적인 고백 부분이 훨씬 더 선명하게 와 닿았다
마이너 기질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자조적이고 서글픈 순간에 대한 글들은 쉽게 공감하곤 한다
뒷부분의 문학계 현실에 대한 분노 부분은, 그저 그렇게 덤덤하게 읽었다
옛날 같으면 공분했을 대목인데도 이제는 그렇게 흥분하지 않는다
직장 생활 탓인지, 요즘은 꽤나 시니컬해져서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건데? 대안은 있어? 이런 식으로 삐딱한 생각이 먼저 든다
다음에는 그의 개인적인 에세이를 읽어 보고 싶다
아무래도 평론 부분은, 워낙에 소설 자체를 즐기지 않아서 덜 흥미로웠지만, 단아한 문체에 자극적이지 않은 그의 "잡문" 은 퍽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