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 - 새움 에크리티시즘 1
이명원 지음 / 새움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힘들게 힘들게 읽은 책이다
과천 도서관에서 한 정거장 앞에 있는 정보도서관에 이 책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하철을 타고 갔다
한 10분 정도면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진 채 말이다
과천이라는 명칭도 생소한 내가, 더군다나 길치인 내 깜냥으로는 도저히 찾아지지가 않았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도보로 10분이라던데, 도대체 이 도서관은 어디에 붙어 있는 것일까?
도서관에 전화를 했더니 대번에 하는 소리가, "차로 오시는 건가요?" 이랬다
"걸어 가는데요" 라고 답변했더니, "걸어 온다구요?" 곧이어 옆사람에게 하는 말이 들렸다
"걸어 온다는데? "
자기들끼리 하는 말의 뉘앙스는, 지하철에서 내려 도서관까지 걸어 오기는 꽤 먼 거리인데 전화까지 하면서 부득불 온다는 게 신기하다는 말투였다
무더운 여름날, 과천 청사 앞에서 해매고 해맨 끝에, 택시 기사의 도움을 받아, 한 30여 분은 열심히 걸은 끝에 도착했다
아. 그 때의 허탈하고 기운빠지는 기분
차가 있을 때는 차종에 상관없이 그저 차가 있어서 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생각 밖에 안 했다
차가 있어서 우월감을 느낀다든지 (학생 때는 그랬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 참 안 됐다, 이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막상 차를 반납하고 지하철과 도보로 이동하다 보니, 왠지 모를 서글픔과 괜한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언제나 짐은 많고 거리는 멀고 지하철 역 앞에 딱 떨어지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다
이번 도서관 같은 경우도, 지하철에서 내리면 한 15분 이상은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외진 곳에 있었다
와 보니 학생들이 참 많은데, 이 아이들은 죄다 걸어 다니는 걸까? 아니면 차 있는 부모가 공부를 위해 기꺼이 운전사 노릇을 해 주는 걸까?
사회에서 당연시 되는 것을 가지고 있을 때는 우월감이나 자부심을 느끼기 보다는, 뭐 원래 있는 것, 그저 그런 것 정도의 느낌 밖에 없는데, 막상 그것을 박탈당하고 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소외감과 울적함을 느끼게 된다
서울에 올라온 후 차가 없어지고, 또 한 술 더 떠 내 집이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 보니 괜한 자괴심과 우울한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집이 없다는 것, 쉴 수 있는 영구적인 공간이 없다는 것, 그냥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떤 날은 울적해진다

고생스럽게 온 도서관은 최근에 개관한 새 도서관답게 열람실을 없애고 대신 문헌정보실의 좌석을 대폭 늘렸다
정보과학도서관이라는 거창한 명칭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뉴스나 인터넷에서 얼핏 보던 동경해 마지 않던 외국 도서관처럼 앉아서 읽을 좌석이 꽤나 편안하게 디자인되어 있다
특히 군데 군데 쇼파를 배치한 아이디어는 높히 사고 싶다
어제 읽은  "우라야스 도서관 이야기" 에서도 일본인 저자는, 도서관의 학습관화는 잘못된 현상이라는 것을 지적한 바 있지만, 확실히 서구식으로 책 읽을 공간 위주로 꾸민 이 도서관은 퍽 매력적이다
지나친 요구일 수 있겠으나, 커피 한 잔 정도는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
미국의 대형 서점들은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새 책을 편안하게 둘러 볼 수 있도록 한다는데, 도서관도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면 안 될까?
쇼파에 앉아 책을 펼쳐 들었더니 기운이 쭉 빠지면서 몸이 편안해졌다
문득 옆 창문을 보니, 래미안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었다
정말 도서관과 단 1분 정도의 거리 밖에 안 되는, 근거리의 아파트였다
저 집은 얼마 정도 할까?
책을 읽다 말고 곧 상념에 빠졌다
저 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산다면 퇴근 후 산책하듯 매일 도서관에 올 수 있어서 참 좋겠다...
서울에서의 내 집 마련, 쉽지 않은 문제에 당면하여, 요즘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집이 아니라 교통 환경도 편하고 주위 여건도 좋은 그런 쾌적한 주거 공간에 대한 욕구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적인 욕망과 연결되고 만다
결국은 돈이 문제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명원의 "해독" 은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책은 아니었다
나는 비평이나 평론에 약하다
책을 읽을 때 평론가들에게 주눅들지 말라는 얘기를 자주 듣는데, 적어도 나는 그럴 위험은 없는 사람이다
유달리 자의식이 강하고 나름의 독특한 관점을 갖고 있는 나는, 한 번도 비평가들에게 감상을 의존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평론은 잘 읽지 않는다
나는 내 식대로 책을 읽고 싶다
내가 감동을 느끼면 아무리 유치찬란한 책이라도 나에게는 의미가 있고, 그런 책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감상문을 늘어 놓게 된다
그래서인지 남들과 다른 감상을 얘기할 때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
특히 소설에 대해서는 별로 즐겨 읽는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딴나라 얘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오히려 맨 앞 장의 개인적인 고백 부분이 훨씬 더 선명하게 와 닿았다
마이너 기질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자조적이고 서글픈 순간에 대한 글들은 쉽게 공감하곤 한다
뒷부분의 문학계 현실에 대한 분노 부분은, 그저 그렇게 덤덤하게 읽었다
옛날 같으면 공분했을 대목인데도 이제는 그렇게 흥분하지 않는다
직장 생활 탓인지, 요즘은 꽤나 시니컬해져서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건데? 대안은 있어? 이런 식으로 삐딱한 생각이 먼저 든다
다음에는 그의 개인적인 에세이를 읽어 보고 싶다
아무래도 평론 부분은, 워낙에 소설 자체를 즐기지 않아서 덜 흥미로웠지만, 단아한 문체에 자극적이지 않은 그의 "잡문" 은 퍽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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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있다
전여옥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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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여성들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 를 밑줄 그으며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적극적으로 남녀차별에 대항하라는 그녀의 전투적인 메세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 이 여자를 무척 좋아했었다
그런데 그녀의 다음 행보는 실망스럽게도 정몽준 쪽에서 선거 운동을 하더니, 이제는 그렇게 욕해 마지않던 박근혜 쪽에서 대변인 노릇을 했다
토론에 나와 유시민과 붙는 거 보고 완전히 질렸던 기억이 난다
여론에서는 전여옥이 유시민 킬러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택도 없는 소리였다
논리랄 것도 없고 아줌마들 말싸움 하듯 무조건 덤비고 보는 그녀의 형편없는 토론 실력에 기가 찼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 역시나, 책에서도 그 수준이 여실히 드러난다
유시민의 책, "경제학 까페" 를 보면 글솜씨가 그 사람의 수준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는 걸 알 수 있다
유시민의 정책에 동의하든 않든 그가 적어도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전제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정치가로서가 아니라면 적어도 저술가로서라도 말이다
그런데 전여옥은 책을 통해 일천한 지식과 교양 수준을 여실히 드러낸다
혹시라도 내가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 그녀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건 아닌가 걸리기도 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아, 전여옥 정말 수준낮다
정치가로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저술가로서는 정말 아니다
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을까?
확실히 판매량이나 이슈화 되는 것은 책 수준과는 아무런 연관 관계가 없다
그러고 보니 일본은 없다, 도 편견에 가득찬 책이 아닌가 의심된다
책 내용은 둘째치고 문장 수준이 너무 조악해 읽다가 덮었다
시간 아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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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자누스 2007-09-29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hantoma.hani.co.kr/board/view.html?board_id=ht_society:001016&uid=43122 전 여사의 '사건' 기록입니다.

myra6 2009-10-02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솜씨가 조악하다는건 전적으로 님의 주관이신듯하고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 낮게 평가하는게 맞는것 같은데요.
제가 글솜씨에 하자가 없는걸로 받아들였다고 하면 저도 수준낮은 인간이라고 하실듯.

marine 2009-10-05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이야 말로 님의 편견~~
 
우라야스 도서관 이야기
다케우치 노리요시 지음, 도서관운동연구회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도서관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는 됐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독서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상하게 일본책들은 약간은 조잡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너무 세세하게 파고 든다고 해야 할까?
우리와 비슷한 환경이고 같은 아시아인이라는 점에서, 영어로 발간되는 책보다 더 흥미롭고 쉽게 와 닿아야 할텐데 오히려 더 시시하게 느껴지고 얼른 와 닿지가 않는다
하루키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일본 소설이나 에세이에 대해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한다

이 책을 찾을 때도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분들에게는 좀 미안한 얘기지만, 대체적으로 책을 찾아 달라고 했을 때 내켜하는 분들은 거의 없다
아르바이트 학생이나 공익근무요원 같은 젊은 친구들은 말 붙이기는 쉬우나 꼭 찾아주겠다는 의지가 없고 (사실 어디 들어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사서 분들은 불친절 하기 때문에 말 걸기가 꺼려진다
이 책 역시 과천 도서관에서 빌린 것인데 예상되는 자리에 없었다
몇 번 망설이다가 꼭 읽고 싶어 여자 사서에게 부탁했더니 대번에 인상이 변하면 "뭐요? 이름이 뭐라고요? 우리야스?" 이런 식으로 나왔다
옛날 같으면 벌써 목소리가 작아져서 "아니, 그냥 됐어요" 하고 물러섰을 상황이었다
내 발음을 못 알아듣겠다면서 똑바로 말해 보라는 식으로 나오는데 벌써 기분이 확 상했지만 끝까지 찾아 달라고 요구해서 다른 곳에 꽂혀진 이 책을 손에 쥐게 됐다
이 책에 따르면 대출 업무가 도서관의 가장 중요한 일이고 몇 권을 대출했느냐로 실적을 따지는 것 같은데 이용자가 편하게 빌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게 도서관에 대한 내 소망이다

책의 저자는 도서관의 학습관화에 반대하고 대출 업무에 치중하기 때문에 우라야스 도서관은 열람실이 겨우 50여 석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학습관이라고 하니까 거창하게 들리는데, 우리식으로 하자면 무료 독서실 혹은 무료 공부방 아니겠는가?
수험생들 때문에 책 읽을 자리가 없어서 쉽게 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하는 나로써는 분개할 만한 대목이었다
도서관이 시민의 필요에 따라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다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만, 도서관 본연의 업무에서 많이 벗어났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도서관들은 이용자가 얼마나 많은 책을 대출했는가로 실적을 평가하는 것 같다
그러니 당연히 이용자가 쉽게 도서관에 올 수 있도록 걸어서 10분 거리 내의 도서관 확보에 열을 올릴 수 밖에
본관 외에도 10개의 이동문고 정류소를 확보하고 분관까지 네 개나 거느린 우라야스 도서관의 아이디어가 놀랍다
나중에 집을 사게 되면 도서관에서 얼마나 가깝냐를 따지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시민 누구나 걸어서 도서관에 갈 수 있다는 일본의 도서관 현실이 꿈같이 들린다
어떻게 분관 설치를 생각했을까?
열람실을 줄이고 빌려 주는 데 치중한다면 분관 설립도 꼭 예산이 많이 드는 큰 공사는 아닐 것 같다
이동도서관은 직장에 다니는 탓에 별로 이용해 본 일이 없어서 잘 실감이 안 난다
그렇지만 집에 있는 아이들이나 어머니들은 꽤 유용할 것 같다

요즘 도서관이 많이 좋아진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대출 시간이 연장됐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직장인들이 6시까지 책을 빌리러 간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도서관 역시 인력 문제 때문에 힘들다는 건 이해하지만 하여튼 직장인은 주말이 아니면 평일에 대출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서울로 온 후 대부분의 도서관들이 8시까지 대출 업무를 본다
나처럼 늦게 퇴근하는 사람도 매일 도서관에 들려 책을 빌릴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책 종류나 신간 확보 문제는 어느 정도 만족하는 편이다
내가 보는 책이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아닌데도 대부분의 책은 구입되어 있고 신간도 빨리 들어오는 편이다
특히 희망도서는 대부분 한 달 이내에 구입해 준다는 점에서 도서관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대출 권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바다
꼭 필요한 써비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재 대부분의 도서관은 2주일에 5권까지 대출해 주지만 내 경우는 솔직히 좀 모자라다
더구나 직장인이기 때문에 도서관에 자주 갈 수 없어서 대출권수가 아쉬울 때가 많다
그러나 책의 주장처럼 한 사람에게 10권까지 대출이 되려면 이용률이 높은 책은 많이 구입을 해야 하므로 예산 부담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오체불만족 같은 베스트셀러는 한 번에 100권 가까이 구입을 하는 모양이다
도서관이 무료 대여소가 되고 있다고 서점인들이 목소리를 높이지만 날이 갈수록 독서율이 하락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보자면 그나마 도서관이 베스트셀러 확보에 힘써 대출율을 늘리는 것도 출판 문화에 큰 힘이 될 것 같다
그나마 베스트셀러 마저도 직접 돈 주고 사지 않으니 도서관이라도 많이 구입해서 대출함으로써 인구에 회자되게 하면 이슈화 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내 바램을 들자면, 나는 도서관이 북까페 같은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수험생이 아닌 까닭에 열람실에 대해서는 솔직히 부정적이고 종합자료실 좌석을 늘렸으면 한다
책 읽을 공간이 마땅치 않아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데 종합자료실은 열람실에 비해 좌석이 많지 않다
도서관의 공부방화를 개탄하면서도 정작 책 읽는 사람을 위한 배려는 적은 것 같아 안타깝다
음료수 반입이 책에 오물을 묻히는 등의 부작용을 동반할 수도 있겠으나 가능하면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노트북 이용도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제일 부러운 것은 집필실을 제공해 준다는 미국 도서관이다
우리나라도 고시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고시실을 따로 운영하는 걸 보긴 했지만 하여튼 마르크스가 대영제국에서 자본론을 집필하는 것처럼 우리도 작가들이 도서관에 책 쓸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면 좋겠다

덧붙이고 싶은 한 마디는, 대체 왜 도서관 책에 낙서를 하느냐이다
그렇게 줄 긋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면 돈을 주고 책을 사서 맘껏 그으면 될 일이 아닌가?
함께 보라고 빌려 주는 책을, 마치 자기 책이라도 되는 양 여기저기 줄을 긋고 형광펜으로 난도질을 해 놓은 이 책을 읽으면서 솟아오르는 분노 때문에 혼났다
적발해서 어떻게든 책임을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떤 분은 자기가 줄을 그으면 뒷사람이 읽을 때 책읽는 흥미가 배가될 거라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기도 하던데 도서관 책은 본인 소유의 물건이 아님을 유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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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왕국의 풍경, 그리고 새로운 시선
이근우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알라딘에서 신간 발매 소식을 들은 후 무척 읽고 싶었던 책이다
도서관에 신간 신청을 한 후 잊어 버리고 있다가 우연히 과천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그나마 누가 오랫동안 대출해 가서 정말 몇 번 고생 끝에 얻은 책이라 읽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기대하면 실망도 큰 법인데, 어느 정도는 내 기대를 충족시켰다
기본적으로 사실에 입각해 사료를 공평하게 보려는 책의 시각이 마음에 든다
일본서기 중 우리에게 유리한 점만 취하고 불리한 점은 위서라는 식으로 넘어가려는 이중적인 태도를 질책한 점이 제일 마음에 든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는 왜가 한반도 일대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을 지지한다
이를테면, 광개토대왕비의 그 문제많은 단락, 한반도 남부에 군사를 파견한 주체가 광개토대왕인지 왜인지에 대해, 문장 그대로 해석하여 왜쪽을 지지하는 편이다
이성시의 책에서도 읽은 바지만 없는 단어를 일부러 끼워 넣어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전인수 격이 될 것 같다
이희진과는 달리 저자는 물론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하긴 하지만 왜의 존재가 한반도 남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료에 나온 그대로 일본 열도 자체를 의미한다고 본다
지나치게 작의적인 해석을 경계하고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더 신뢰가 간다
관상성 전투에서 성왕이 느닷없이 죽은 것을 우연적인 사건으로 본 점은 이희진과 동일한 시각이다
아마도 일본서기를 참조해서 같은 결론이 나온 것 같다

한민족이 단일 민족이라는 시각을 부정한 점도 신선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단군 아래 한 자손이라는 개념은 극히 민족주의적이다
저자의 지적대로 외침이 심했던 고려 시대, 혹은 이민족의 지배를 받던 일제 시대에 민족 단합이라는 필요성 때문에 만들어진 인위적인 개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지껏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걸 보면 어느 정도는 국민들에게 납득이 됐고 여전히 의미가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외국인 노동자의 이입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통합 모델을 필요로 하는 현 시점에서, 과거의 한민족 개념을 부정하는 다민족 이론이야 말로 역시나 새롭게 사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똑같은 논리의 이론이 아닐까?
어쨌든 다양성의 존중, 민족주의의 극복이라는 점에서 보면 과거 한반도의 민족구성이 다채로웠다는 주장은 흥미롭다
맥족, 예족, 부여족, 남방족, 여진족, 말갈족 등등 여러 계통의 민족이 모여 한반도에서 부대끼고 살았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특히 제주도가 고려 시대까지 독립왕국이었다는 가설 제기는 흥미로웠다
저자에 따르면 전라도 지방도 처음부터 백제가 지배했던 곳이 아니고 마한의 잔존 세력이 여전히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본다
무령왕 이후에나 수도를 웅진으로 옮기면서 세력권을 넓혔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따지자면, 중국의 산둥 반도에 식민지를 건설했다는 얘기는 어처구니 없는 학설이 되고 만다
단지 지역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식민지였을 것이라는 추론 자체를 거부한다
나 역시 황당무계한 가설이라고 치부하는 쪽이라 이 점은 반가웠지만 이덕일 같은 민족사학자와의 대담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고구려의 역사" 를 쓴 이종욱이다
서강대 사학과 교수인데, 고구려의 지배 범위를 축소해서 생각하는 쪽이고 발해도 한국사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라 일반인들로부터 어용사학자라는 비난을 많이 받는다
이근우씨도 민족주의 사학자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이종욱씨와 비슷하고 이덕일 같은 사람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셈이다
책을 읽어보면 무리한 주장이 없고 근거를 분명하게 댄다는 점에서 무척 마음에 든다

왕인 박사가 양나라 사람일 수도 있다는 과감한 주장은 어떤가?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수해준 백제의 유학자로만 알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쩌면 이런 주장은, 매국노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저자에 따르면 일본에 불교를 전한 것도 불교 포교에 힘쓴 아카소 왕처럼, 양나라 무제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일 수도 있는 것이, 당시 중국에 비해 백제의 국력이나 규모는 미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일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백제의 독자적인 힘이라기 보다는, 중국에서 넘어가는 가교 역할 정도라는 게 상식으로 맞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일본의 황실 가계가 백제 왕실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거부한다
오히려 어머니가 비천한 백제계였던 환무 천황이 백제와 일본의 황실 피를 모두 이어받았다는 식으로 모계를 미화시키기 위해 별 상관관계가 없는 백제 왕실을 빌려 왔다는 입장이다
화랑세기에 대해서도 저자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화랑세기는 진위 여부 때문에 흥미로운 책인데 나중에 관련서적을 읽어 볼 생각이다
위작 여부에 대한 논쟁이 더 흥미롭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백제가 양나라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무령왕릉을 통해서도 입증한다
벽돌 형식의 무덤이 양나라 기술자들에 의해서 지어진 것이고 관재 역시 일본에서만 나는 금송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백제의 독자적인 문화를 주장하는 우리 학계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좀 있는 셈이다
이 무령왕의 이름이 바로 사마인데, 일본서기에 의하면 그는 일본으로 가는 사신 행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섬에서 났기 때문에 사마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무령왕릉에도 사마왕이라는 지석이 있는 걸로 보면 이 일화를 기록한 일본서기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확실히 일본 고대사를 연구한 사람이라 그런지 양쪽 모두의 자료를 취한 점이 돋보인다
이성시가 쓴  "동아시아 왕권의 교역" 에서도 읽은 바지만 정창원에 있는 매신라물해 라는 구입 목록 문서를 보면 일본과 신라의 교류도 꽤 활발했던 것 같다
민족주의를 벗어난 새로운 시각이라는 점, 일본 고대사의 자료까지 풍부하게 인용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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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버는 여자 밥 잘 하는 남자 - 맞벌이 부부의 가사분담 이야기
알리 러셀 혹실드 지음, 백영미 옮김 / 아침이슬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책이었다
가벼운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분석적이고 학술적인 책이다
10여명의 가족을 심층 분석한 저자의 세심한 노력이 돋보인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배경이 1980년대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21세기와 이렇게도 유사한지!!
기왕이면 과거보다는 우리가 따라가야 할 롤 모델을 보여줬으면 더 좋겠다
미국의 가족 상황이 꼭 바람직하다는 건 아니지만 여자들 입장에서 보면 가사분담이나 육아분담 측면에서 아무래도 서구 사회를 더 동경할 수 밖에 없다
21세기 미국 가정의 현실이 궁금하다
언젠가 읽었던 책, "현대인의 성생활" 도 이 책과 비슷한 방식으로 성에 관한 의식을 연구했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보다 내밀한 부분까지도 파고 드는 방식으로 진행된 연구는, 대규모 집단 연구와는 또 다르게 놓치기 쉬운 점까지도 세세하게 보여준다
이 책 역시 통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방문하고 장기간 같이 있음으로써 쉽게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
물론 지엽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들이 과연 얼마나 평균적인 미국인을 대표할 수 있을지의 문제 말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바람직한 롤 모델을 필요로 한다
내가 본받고 따라갈 수 있는 그런 가족 모델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그나마 선진 사회는 나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위로로 삼고 있던 미국의 가정 현실도 우리와 다를 것이 없다는 걸 적나라하게 까발려준 이 책 때문에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
결국 여자들은 완벽한 의미에서의 가사분담을 이룩할 수 없는 것일까?
더 답답한 것은 여성의 안식처는 가정, 남성은 일터라는 식의 성별 이분법이 어느 사회에서나 보인다는 점이다
저자는 바로 이 관습적인 개념을 분명하게 꼬집는다
겉으로는 집안일을 돕고 아이를 같이 키우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가까이서 실체를 들여다 보면 생색내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발견한다
하긴 당장 주위를 둘려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과연 남자들 중에서 집안일을 돕는 게 아니라, 책임지고 한다는 책임감을 갖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멀쩡하게 아내가 있는데도 아이들 아침을 굶기고 학교 보낼까 봐 걱정하는 아빠의 비율은 대한민국에서 몇 %나 될까?
기껏해야 늦잠 자는 아내를 비난하는 선에서 끝날 것이다

확실히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력으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한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가사일을 하는 전업주부의 가치는 농경사회 보다 더욱 더 하락할 수 밖에 없다
이혼율의 증가로 결혼이 더 이상 평생 직장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이 책 속의 여자들처럼 대부분 직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남자들은 여전히 가사일을 단지 돕는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일 뿐 자발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지 않는다
그러니 여자들은 직장일에다가 집안일까지 겹쳐 개인 시간은 낼 수가 없고 부부 관계는 악화되고 만다
이혼했을 때를 대비해서 든 보험이 (여성취업) 오히려 이혼을 유발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별 욕심이 없는 내 경우에 비춰 보자면, 아이를 안 낳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많은 부부들은 대부분 육아 때문에 힘들어 한다
아이가 없다면 적어도 아내는 가사 도우미를 쓰는 선에서 남편과 적절하게 합의를 볼 것이고 부부관계 개선을 위해 힘쓸 여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 단지 베이비시터에게 맡기는 것 가지고는 안 된다
아이는 놀이방이나 베이비시터에게 맡기는 정도로 해결될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더군다나 미친 교육 열풍에 휘말리는 대한민국의 경우는 더더욱 엄마 의존도가 심해서, 맞벌이 부부 아이는 서울대에 갈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고 보면 확실히 아이는 부모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솔직히 까발리자면 인간이 종족을 번식시키겠다는 이타심이나 의무감으로 아이를 갖는 건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이기적인 유전자가 후손을 남기게끔 프로그램 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자기를 닮은 자식을 원한다
이기심이 아니라면 입양 문화가 왜 활발하게 퍼지지 않았겠는가?

문득 드는 생각이, 어쩌면 나는 아이 대신 책을 원하고 있지 않나 싶은 거다
여자들이 일을 줄여가면서까지 아이에 집착하는 걸 보면서, 나는 책에 대한 내 욕심과 집착을 떠올렸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직장일을 적게 하려고 하고 로딩을 줄이려고 애쓰는 모습은, 내가 책을 보기 위해 빨리 퇴근하고 회식은 빠지려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
적어도 하루에 세 시간 정도는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게 내 소원이다
남자라면 이 소원이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남자는 직장일이 끝나면 나머지는 모두 자유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한 여자라면, 더군다나 아이까지 있는 여자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여자는 직장일이 끝남과 동시에 집에 가서 가사일과 육아를 시작해야 한다
저녁을 차리고 아이를 돌보고 집을 치우는 식으로 말이다
워킹맘으로써 가사노동에서 벗어날 새가 없는 엄마를 보면서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나는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받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즉 다 타고난 대로 산다는 쪽) 이 책의 해석을 빌리자면 나는 언제나 바쁜 엄마를 보면서, 난 저렇게 안 살겠다는 결심을 했는지도 모른다
학교 선생님인 엄마는 퇴근 후 가사일에 치여서 자기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자식은 셋이나 되고 교육열도 높아서 애들을 내버려두지 못했다
특별히 슈퍼우먼이지도 않는 엄마는 깔끔하지 못한 집에 대해 언제나 부끄러워 했다
자의식이 강한 나로서는, 엄마처럼 내 시간을 하나도 못 갖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엄마 아빠의 결혼 생활은 바람직한 편이라고 평가하겠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가사 노동에 치여 책 읽을 시간을 한 시간도 못 갖는다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절대로!!
내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고 특히 아이에 대해 아예 갖기 않겠다고까지 생각한 것은, 가사부담과 양육이 완전히 여자에게만 책임지워지는 한국 사회 시스템 때문이다
나는 결혼 후에도 지금처럼 책을 읽고 싶고 내 시간을 갖고 싶다
책을 못 읽으면 정말 미쳐 버릴 것 같다
결국 나는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 나에게 안 맞는 건 아닐까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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