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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비실록 - 숨겨진 절반의 역사
신명호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생각보다 알찬 내용에 다소 놀래면서 읽었다
이런 종류의 책은, 일단 사료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확인되지 않은 야사 위주로 흐를 위험이 있어 경계하는 편인데, 저자는 비교적 꼼꼼하게 실록을 분석해 무난한 추론을 펼친다
비약이 심하지 않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의 왕비라면 이른바 나라의 어머니인데 왜 이렇게 정사 기록이 부족한지 모르겠다
실록이나 승정원 일기처럼 왕비들의 일생을 기술한 역사서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사극이 궁중 여인들의 암투 따위로 물들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아마도 조선 시대는 여자의 이름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왕비의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은 걸 보면 말이다
어렸을 때는 아명으로 불리다가 시집을 가면 그 때부터는 누구 엄마, 누구 며느리 등으로 이름이 실생활에서 불려질 기회가 거의 없지 않았을까?
이름을 중시 여기고 신성시 하다 보니 감히 제대로 부르지도 못하고 호나 자 등을 따로 붙인 관습을 생각해 보면, 조선 사회에서 이름없는 여성들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조선의 모든 왕비를 다 그리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비교적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일곱 명의 왕비로 국한한 점이, 책의 내용을 보다 풍성하게 해 준다
여기 나온 왕비들은 사극으로도 많이 만들어졌고 그만큼 파란의 세월을 산 인물들이다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나 정조의 왕비 효의왕후처럼 비교적 평탄하게 삶을 보낸 이들에 대한 언급이 없어 아쉽기는 하다
워낙 기록이 없으니 어쩔 수 없겠지만, 새로운 사실들이 발굴되길 기대해 본다
몇 가지 기억에 남을 만한 이들을 언급해 보자면, 먼저 명성황후 민씨의 가계다
한미한 집안의 고아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족보를 열어 보니 인현왕후의 직계 자손이었다
명성황후의 아버지 민치록은,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5대 종손이라고 한다
드라마에서 민비의 어머니 이씨 부인을, 감고당 마님이라고 부르던데, 바로 그 감고당이 인현왕후가 궁에서 쫓겨난 기간 동안 머물렀던 가옥이라고 하니, 과연 보통 집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민유중의 큰아들 민진후가 노론의 극렬 강경파이다 보니 아마도 이 집안은 대대로 노론 집안이었을 것이다
세도 정치가 시작된 후 안동 김씨에게 밀려 노론조차 설 자리가 없었던지라 이들은 민유중의 선산이 있는 여주에 머무르다가 민치록이 죽은 후 종가가 있는 안국동 집, 즉 감고당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민치록의 양자가 민승호인데 이 사람이 또 대원군의 처남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민승호의 친누나가 바로 대원군 부인이었던 것이다
대원군은 결국 처가쪽 집안 사람을 왕비로 앉힌 것이다
의의로 민비와 고종은 사이가 좋았던 모양으로 살아남은 자식은 순종 뿐이지만 그 전에도 세 명의 아이를 낳고 유산하기도 했다고 한다
우유부단하기 짝이 없는 고종을 쥐고 흔든 게 민비였던 걸 보면 꽤나 당찬 성격이었을 것 같다
비극적인 죽음을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망국의 책임은 분명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궁궐 경비가 얼마나 허술했으면 왕비가 일개 낭인들에게 칼맞아 죽었을지 참 한숨만 나온다
정희왕후와 소혜왕후 부분도 흥미로웠다
특히 소혜왕후의 아버지 한확이라는 사람의 집안 내력이 재밌었다
워낙에 출중한 인물을 자랑하는 집안이라, 한확의 두 누이는 명나라 영락제와 선덕제의 후궁이 됐다고 한다
또 그녀들을 수행한 한확 역시 빼어난 외모 때문에 명나라 황제의 사랑을 듬뿍 받아 벼슬까지 제수받았다고 하니 과연 보통 인물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런 아버지와 고모들을 둔 인수대비 역시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을 것 같다
인물 얘기를 하자면 고려사에 뛰어난 미인이었다는 기록이 남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가 있었으니, 바로 원경왕후의 이모였다
한 이모는 원나라 황제의 후궁이 되기도 해서 원경왕후의 외가는 부원세력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하니, 과연 왕비들은 집안 뿐 아니라 인물들도 보통 이상이었을 것 같다
정희왕후는 남편 세조와 동지적인 관계였을 것 같다
쿠데타를 일으킬 때도 갑옷을 준비해 줄 정도로 당찬 성격이었던 그녀는, 과연 남편 사후에도 최초의 수렴청정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
정순왕후나 순원왕후처럼 세도정치의 오명을 남기지 않은 걸 보면 비교적 무난하게 욕심 부리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일처리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미지가 넉넉해 보인다
세조는 왕이 되기 전 박팽년의 딸 근빈 박씨를 소실로 맞아 아들을 보았고, 그 외 노비 출신 첩이 있었으나 정작 왕이 된 후에는 후궁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젊은 시절 기록을 보면 꽤나 여색을 밝혔던 것 같은데 왕이 된 후 공식적인 후궁이 없었던 걸 보면 비록 여자 관계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겠으나 왕비 윤씨를 꽤나 존중했던 건 사실인 듯 하다
다소 놀라운 것은, 왕비 폐출이 생각보다 쉬웠다는 점이다
세종이 첫번째 며느리 휘빈 김씨를 폐출시킨 것은, 단순히 비방을 일삼았다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이유에서였다
다음 며느리인 순빈 봉씨야 동성애를 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세자의 사랑을 받는 여인의 신발을 태웠다고 해서 한 나라의 세자빈을 쫓아낸다는 건 황당하기까지 하다
아마도 생각만큼 왕비의 자리가 탄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즉 친정 집안이 든든하게 뒤를 봐 주지 않는다면 사소한 잘못 가지고도 쉽게 쫓겨 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휘빈 김씨야 아기가 없으니 방패막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연산군의 어머니는 또 어떤가?
떡 하니 원자까지 낳아준 윤씨를, 정희왕후와 소혜왕후는 출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즉 결혼식을 올린지 1년도 안 되서) 사술을 쓴다는 이유로 폐출 논의를 한다
친정인 윤기견의 집안이 하위 관리직이어서 따로 왕비를 방어해 줄 세력이 없었던 것이 결정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나마 그녀는 둘째 아들을 낳은지 백일도 안 되서 폐출됐고 그 불행한 아기도 죽고 만다
아들을 둘씩이나 낳은 정비를 단지 질투한다는 이유만으로 쫓아낸 걸 보면, 아이도 낳지 못하는 인현왕후가 쫓겨난 것은 얼핏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인현왕후는 든든한 집안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노론의 중진) 다시 복위할 수 있었고, 이 가엾은 폐비윤씨는 오히려 아들이 왕이 될 거라는 이유로 사사당한다
개인적으로 알고 싶은 왕비로는 안동김씨 60년 세도의 기반을 다진 순조비 순원왕후와 정조의 왕비 효의왕후 등이다
사실 순원왕후야 말로 세도정치의 가장 위에 있었던 인물이니 문정왕후나 정순왕후처럼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야 맞는데 의외로 이 사람은 베일에 쌓여 있다
드라마를 만들어도 재밌을텐데 말이다
정조비 효의왕후는 있는 듯 없는 듯 했던 왕비였던 것 같다
시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지극정성으로 받들었고 순조를 낳은 가순궁 박씨와도 동기처럼 우애있게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남편 정조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고 불임이었다고 한다
너무 반듯하게 일생을 보내서 극적인 요소가 없다 보니 얘깃거리로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꽤나 궁금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