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근대 - 100년 전 영국이 평가한 한국과 일본의 근대성
박지향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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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박지향 교수의 책이라면 이미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을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다
또 지난 번에 봤던 책,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에서도 그의 논문 한 편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의 존재는, 바로 그 논문에서 알게 됐다
마음에 드는 학자였고 무엇보다 영국인의 눈에 비친 근대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주제로 삼았다는 점이 흥미로워 상당히 기대를 하고 본 책인데 100% 만족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본인의 전공 분야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영국 역사를 쓴 책에서는 번뜩이는 재치가 빛났는데 한국의 근대화를 바라보는 풍경은, 아마추어적인 냄새가 난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였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민족주의에 대한 거부감은 비록 일반 대중에게는 다수의 정서이나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청산해야 할 과거 유습이라는 지배가 다수인지라, 학자들이 외치는 민족주의 극복이 참신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자의 타자성 극복 역시 새로울 것은 없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한국인에게 민족주의 정서가 퍼진 것은 겨우 식민지 시대에 불과했다고 하지만 (즉 일본에 대한 대항 논리로써) 과거에는 외세와의 접촉 자체가 없었으니 민족주의라 이름붙일 만한 현상조차 없었을 것이다
즉,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민족주의라고 명명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 이전에도 조선인은 일본이나 여진 등에 대한 타민족에게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고 임진왜란 당시 의병활동만 봐도 얼마나 극렬하게 그들을 배척했는지 쉽게 알 수 있지 않는가?

여전히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얘기겠지만, 근대에 관한 책을 읽을수록 일본이란 국가의 저력은 놀랍기만 하다
어쩌면 일본에 문화를 전수해줬다는 자부심 때문에 갖게 되는 우월감 자체가, 사실은 과거부터 실체가 모호한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 조상들이 일본을 하수로 여겼던 것만큼, 일본이 조선을 대단하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일본에 대한 우월감은, 그저 막연하게 남을 우습게 보는 유아독존적인 유치한 감정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일본은 조선과는 매우 다른 별개의 문화를 만들어갔고 유교 문화의 공통점이라면, 중국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 과연 조선에 대해 얼마나 문화적으로 고마워 하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본 지도층이 사생결단을 내고 전력한 결과였다고 보는, 저자의 견해를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은, 당연히 고종을 위시한 왕조 세력가들의 무능함과 부패다
이상하게도 식민지배의 책임은, 을사오적을 비롯한 일부 친일파에게만 국한됐고 정작 조선을 대표하는 당사자, 고종과 민비 등에게는 동정론이 퍼져 있다
마치 고종은 외세와 친일파들에게 휘둘려 제 뜻을 펼치지 못하고 불행하게 죽은 가엾은 왕이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과연 고종이 그런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일까?
만약 그런 식으로 동정을 받는다면 그야말로 무능함의 표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민비나 아버지 대원군에게도 휘둘렸던 걸 보면 아마도 고종은 난세를 헤쳐나갈 군주감은 못됐던 것 같다
이미 국운이 쇠락해져 누가 왕이 됐더라도 왕조의 멸망은 정해진 수순이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태종이나 세종, 혹은 영조나 정조 등의 군주였다면 그런 식으로 힘 한 번 못 써 보고 식민지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군주로서의 무능함은, 다시 한 번 집중 조명되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따지면 이른바 "조선의 국모"라는 명성황후의 부패상과 정권욕도 보다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외세 침입 때문에, 즉 나쁜 놈들 때문에 착하고 선량한 조국이 멸망했다는 식의 자조론은, 저자의 말마따나 발전지향적인 미래상에 하등 도움될 것이 없다
슬픈 아일랜드라는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우리 경제력이 일본을 압도할 때야 비로소 일본에 대한 근거없는 우월감이나 혹은 열등감을 극복하지 않을까 싶다

엘리자베스 비숍의 한국 여행기는 읽은 적이 있다
항상 원자료가 2차적인 해설서 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는데 그것도 원자료를 분석할 수준이 될 때 하는 얘기라는 걸 이번에 느꼈다
물론 "한국과 이웃나라들" 을 재밌게 읽긴 했으나 박지향 교수가 분석한 글이 좀 더 쉽게 다가온다
책이 갖는 시대적 의미나, 혹은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윤치호 일기가 국역됐다는 소식을 듣고, 읽어볼까 하고 집어들었다가 그 복잡다단함에 놀라 손을 들었던 생각이 난다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 은 워낙에 관심이 많은 분야라서 그런지 이덕일씨의 "사도세자의 고백" 보다 100배는 재밌게 읽었지만 나머지 것들은 원자료 보다 해설서가 아직은 더 쉽게 다가온다

일본의 잔학한 식민지 통치는 이 책에서도 영국인의 눈을 통해 확인된다
영국이 간접 지배를 선호했던 데 비해, 일본은 완전 동화 정책을 썼기 때문에 억압과 반발이 더 심할 수 밖에 없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가 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윤치호 같은 사람은 이왕 식민지라 될 바에야 일본보다는 영국이 낫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간접통치 방식 때문인 것 같다
영국인이 훌륭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박애와 사랑 정신에 가득차서 그런 것은 물론 아니다
영국은 워낙에 광대한 제국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특정 국가를 100% 복속시킬 수는 없었다
여력이 안 됐다는 뜻이다
반면 일본은 한국 하나 밖에 없었으므로 전면적인 동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동화 정책이 심한 억압과 함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너무 당연하다
당시 영국 제국주의 관료들에 따르면, 일본이 동화 정책을 포기하고 간접 지배 쪽으로 돌아선다면, 즉 보다 인도적으로 그들을 지배한다면 한국인은 식민 지배를 유순하게 받아들였을 거라고 전망했다고 한다
일본의 잔학한 식민 정책은, 당시 같은 편이었던 영국 관리들 마저도 고개를 흔들게 만들만큼 끔찍했다고 하니, 식민지를 살아 낸 조선인들의 분노와 한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구한말 조선인들의 얼굴에 표정이 없다는 점은, 나만 느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구한말 사진을 볼 때마다 의아하게 생각했던 점인데, 대체 왜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도 무표정했다는 말인가?
요즘 눈으로 보자면 상당히 촌스럽기까지 하다
매우 평면적이고 뚱한 느낌을 준다
고위 관리들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난 단지 오래된 사진이라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당시 한국을 방문한 유럽인들도 나처럼 조선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사진기라는 신식 물건에 너무 긴장해서인가?
아니면 원래 전근대는 개인의 감정이 무시되는 전체주의적인 사회여서인가?
비슷한 시대의 다른 나라 사진들도 좀 구해서 보고 싶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상대적으로 일본인은 보다 화사하고 생기있게 느꼈다고 한다
아무래도 산업화에 성공하고 한창 국력이 물오를 때였으니 유럽인들이 생동감 있게 느꼈을 것이 당연하다
또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일본의 판화를 보면, 꽤나 강렬하게 역동적인 색감을 확인할 수 있다
확실히 일본은 유럽인들에게 뚜렷하게 각인되는 동양 국가였을 것이다

비숍 여사가 식민지 관리였던 커즌과 달리, 젠더라는 측면에서 남성에 비해 소수자였기 때문에 지배적인 타자성에서 벗어났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인도의 부왕까지 지낸 커즌의 여행기와, 개인 여행가에 불과했던 비숍의 여행기가 다른 관점이었음은 당연하다
근본적으로는 유럽중심주의 혹은 영국 제국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세밀한 부분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서양을 우상시 하고 따라잡을 목표로 봤던 일본에서는, 젠더보다 인종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비숍 여사는 일본에서 훌륭한 대우를 받는다
반면, 서양을 배척해야 할 오랑캐로 간주했던 조선에서는 (아마도 일반 민중들까지 서양 기술력의 위대한 실체를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인종보다 더 앞선 것이 젠더였다
동방예의지국을 엄청난 자랑거리로 생각하던 당시 양반 계층조차, 비숍 여사의 눈에는 매우 무례하게 느껴졌던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에 있다
상대적으로 커즌은 남자였기 때문에 관으로부터 지극한 대접을 받았고 여행시 불편한 점이 있다면 관이나 양반 계층으로부터 도움을 받으라는 충고까지 적어 놓는다
그러나 비숍 여사는 관의 협조문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마을을 가든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괴롭힘을 당한다
19세기 조선인의 눈에는, 여자 혼자서 먼 이국땅을 여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고 정상적인 인물로 보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계급적인 부분은 (민족이나 젠더, 직업군,인종 등 모든 신분을 망라해서) 개인이 풀기에는 너무 거대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비숍 여사는 일본에서 단지 유럽인, 특히 영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한 노력 없이도 현지인들의 호의를 넘치게 받을 수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할 정도로 형편없는 대우를 받았다
백인이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백인의 특권까지 거부해 버린 것이다
반면 커즌은 백인 남성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비슷한 정도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민족주의나 집단적인 대응이 근본적으로는 싫지만 이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개인은 미약할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느낀다
"관용에 대하여" 라는 책에서도 지적한 바대로, 아무리 완벽한 개인의 시대를 외친다고 해도 결국 우리를 규정하는 정체성이라는 것은, 민족이나 젠더, 인종, 종교 등으로 명명될 수 밖에 없고 완벽한 개인의 시대란 어쩌면 영원이 오지 않을 것 같다는 비극적인 느낌이 든다
결국 국가가 완벽하게 사라지는 아나키즘 역시 유토피아 같은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가장 발전된 형태의 사회란 국가가 완전히 소멸된 아나키즘의 시대가 아니라, 유럽 연합이나 미 합중국 같은 느슨한 의미의 지역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페미니즘이나 민족주의 역시 나름의 생명력을 끈질기게 유지할 것 같다

300 페이지에 불과한 얇은 책이고 서술도 평이해서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관점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시각으로 근대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윤치호 일기를 분석한 책을 읽어 보고 싶다
이제 김구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 말고도 일제 시대를 살았던 다른 지식인들에 대한 연구도 시작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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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08-0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재밌게 읽었습니다. 책도 재밌을 것 같고요. 전 한국 밖에 있으면서 일본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됩니다. 가까이 있었을 땐 거의 아는게 없었는데 말이죠.
 
전인권이 읽은 사람과 세상 - 전인권 평론집
전인권 지음 / 이학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좋아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없게 읽었다
그가 쓴 다른 책들, 박정희 평전이나 남자의 탄생에 비하면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책 같다
인터뷰집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
약간의 편견이 가미된 말일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하려면 어느 정도는 인터뷰이를 공격적으로 몰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승호의 인터뷰집을 읽을 때 참 답답했던 게, 그가 인터뷰 하는 대상들이 모두 존경하는(?) 인물들이어서 그런지 마치 학생이 선생님 말 받아 적듯 감탄하면서 진행한다는 점이었다
저자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깊이있는 질문을 하는 것 까진느 좋은데, 인터뷰이에게 완전히 경도되서 얌전한 학생처럼 오롯이 그 말을 100% 받아들이는 자세는, 뭐랄까, 독자로 하여금 답답증을 불러 일으킨다
소설이긴 하지만 "살인자의 건강법" 에서 아멜리 노통브처럼 인터뷰이를 완전히 코너로 몰고 갈 만큼 대담하고 적극적인 공격을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의 저자 전인권은, 지승호보다 한 술 더 떠서 거의 찬양조로 일관한다
채시라는 나도 무척 좋아하는 배우지만 마치 위인 전기라도 쓰는 양 미화시킨 점에 대해서는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예전에 정혜신의 심은하 예찬론을 보면서도 과연 심은하가 저렇게까지 평가받을 만한 훌륭한 배우인가 하는 점에 의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나름대로 심리 기제 분석이라도 있었는데 전인권의 배우 분석론은 완전히 찬양조다
언젠가 신동아에서 김혜수를 인터뷰 하는 기사가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연예인을 좀 우습게 알던 시절인데, 기자가 어떤 책 즐겨 보냐고 물었더니 김혜수가 신동아도 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기자가 좀 얄궃게 지난 호에 무슨 내용이 인상적이었냐고 묻는 거다
김혜수 답변은 신통찮았던 것 같다
그런 식의 짖궃은 질문이 좋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하여튼 좀 비판적으로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게 인터뷰어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인터뷰집 보다는 아무래도 죽은 후의 평전이 훨씬 더 믿음직스럽다
전인권의 쓴 박정희 평전, 은 참 재밌게 읽은 데 비해, 이번 인터뷰집은 꽤나 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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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소한 일상 - 다자이 오사무 산문집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시공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휴가 가서 읽으려고 고른 책이다 보니, 좀 가벼운 걸로 집어 들었다
역시 너무 가벼워서였을까?
생각만큼 아주 재밌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인간실격" 등으로 유명한 사람이라 수필집도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너무 가볍다는 표현이 생각날 정도로 감흥이 별로 없었다
다소 시시한 기분?
프로필에 따르면 그는 삼십 대 중반에 연인과 자살했다는데, 그렇다면 수필 속에 드러나는 1남 2녀의 자녀들은 모두 허구란 말인가?
가난한 가장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많던데, 모두 상상속의 일이란 말인가?
궁금한 대목이다
폴 오스터의 경우 혹은 하루키는, 소설 만큼이나 수필도 흥미진진하게 잘 쓰는데, 대체적으로 수필과 소설이 비슷하게 재밌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아직 그의 소설을 읽어 보진 않았지만, 이 책 때문인지 그다지 끌리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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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7-07-2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혹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나쓰메소세키가 쓴 것 아니었던가요?

marine 2007-07-23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실수했네요

마리미아 2008-12-25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작가의 활동연도가 최근이 아니잖아요-_-; 전후 일본이라면 여자라면 고교재학생일 나이면(18~20) 다 시집갔어요. 1남 2녀 다 사실이고 원래 갑부집 아들이였는데 혼자 방탕하게 살고 그래서 가난과 마약 이런거에 찌들었어요 책 제대로 읽으신거 맞으신지..

marine 2008-12-26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팬이신가요? 뭘 그렇게까지 흥분하시긴...

hondana 2009-01-20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읽어보셨나요? 제가 보이기엔 그의 소설은 읽지 않고 단지 유명한 작가라고 생각하셔셔 기대하고 읽으신 것같은데.. 다자이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봐도 알수 있듯이, 그의 글은 실제의 곤궁하고, 난잡하고 복잡한 생활(인생)과 달리 '익살'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실격의 경우에도 주인공이 처한 최악의 상황에서도 다자이는 익살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소설을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가볍다 생각하고 읽으시면 단지 허접한 글쟁이의 낙서질일 뿐이겠지만, 조금의 관심이라도 두고 읽는다면 익살과 경박함으로 포장된 문장속에서 그의 고뇌를 읽으실수 있을겁니다. 그게 다자이 문학의 묘미이자, 다자이 글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식 웃게 만드는 익살가득한 문장에서 다시한번 생각하게하고 쓴웃음 짓게만드는 글. 본문에 있는 이글을 다시한번 읽어보세요 "나는 슬플 때 도리어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나 스스로는 가장 괜찮은 봉사라고 생각하지만, 남들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다자이란 작가도 요즈음은 경박해, 재미만으로 독자를 낚는다, 극히 안이하다고, 나를 경멸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이 나쁜 일인가? 점잔 빼고 좀처럼 웃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인가?"

marine 2009-01-22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작가라고 해서 모든 책이 다 훌륭한 것은 아닙니다. 특히 소설가라면 본업인 소설과 부업인 에세이가 글의 수준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같은 에세이라고 해서 다 훌륭한 것도 물론 아니구요. 다자이라는 작가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특정 글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 <나의 소소한 일상>은 다른 성격의 글이기 때문에 각자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임지현.이성시 엮음,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포럼 기획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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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나 극우주의를 싫어하거나 혹은 국가 권력을 최소화시키자는 보편주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입맛에 맞을 만한 책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매우 편협한 이념이라고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자들의 주장과 대체적으로 생각이 비슷했다
민족을 넘어서 보다 보편적인 세계주의를 주장하는 게 요즘의 대세인 것 같지만, 아직도 네이버 댓글 같은 익명의 공간에는 민족주의를 넘어 극우적인 발언들이 판을 친다
이 책에 대한 반론의 글을 보면, 여전히 우리를 지지하는 것은 국민국가인데, 정말 국사의 해체를 주장할 거라면 차라리 민중을 볼모로 잡고 있는 그 국가 자체를 없애는 게 낫겠다고 비아냥 거린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지 않겠나
나 역시 저자들이 지나치게 자극적인 발언으로 (국사를 없애야 한다는 식) 오히려 대중의 반감을 사고 있음에 동의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보다 느슨해진 국가 연합, 미국과 같은 합중국 체제, 혹은 유럽 연합 같은 공동체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선 민족주의에 길들여진 국사부터 하나씩 뜯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역시 궁극적으로는 민족주의의 소산이라는 저자의 글에 동의한다
시오니즘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민족주의의 형태가 아니겠는가?
그들의 편협하고 이기적인 모습이 우리에게로 투영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식민지 문제는 너무나 예민한 주제라 뭐라고 말하기가 참 어렵다
그러나 나는 S씨의 일기와 같은 소시민적인 문헌들이 보다 많이 연구되야 한다고 믿는 쪽이다
글에 소개된 S씨의 일기를 보면, 일본이라는 거대한 적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TV에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식민지 시대의 일제 만행이 정작 그 시대를 살아간 일반 민중에게는 일상적으로 보이지도 않고 또 식민지배 체제라는 사실에 시대극 속의 배우들처럼 분노하지도 않는다
일제의 지배가 정당했다거나, 오히려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식의 차원이 아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시대의 물결을 선두했던 몇몇 유명인들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가는 삶을 산 대다수의 민중들의 "실제적인" 삶이다
정말 틀에 박힌 듯이 모든 조선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치를 떨고 반독립 투사처럼 행동했을까?
그들의 의식구조 속에는 일제야말로 나라를 빼앗은 철천지 원수고 반드시 독립을 이룩해야 한다는 굳은 결의로 차 있었을까?
어쩐지 이거야말로 신화 같다
"태평천하" 에 묘사된 윤직원 같은 인물은 그저 풍자나 조롱의 대상으로만 삼았으나, 보다 다양한 인물들에게 카메라를 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거대 담론에 묻혀 버린 소시민들의 일상이나 사고방식에도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영훈 교수의 논문은 찬반이 극렬하게 갈릴 수 있는 다소 위험하고 도발적인 문구들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나는 이 논문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내제적 발전론, 혹은 자본주의의 씨앗이 싹텄다는 식의 주장은, 오히려 서구 이론에 우리 역사를 끼워 맞추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주장처럼, 조선 사회는 선물사회였고(가족 공동체주의나 부조, 축의금 같은 제도에서도 보듯이) 국가가 잉여 가치를 걷어간 후 나눠주는 재분배 사회였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사유재산이 경제 발전의 중요한 축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질적으로 완연히 달랐다고 생각한다

이효석이 모더니스트였다는 논문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향토 소설인 "메밀꽃 필 무렵" 은 저자의 말마따나 액자에 들어 있는 고향 풍경일 따름이다
정말로 향토 그 자체에 애착을 품고 생활인의 모습을 그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장의 탐스러움 때문에 우리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서정적인 향토 소설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근대화의 현상이었던 모더니즘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화상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전인권의 인터뷰집을 보면 마지막 황손이라는 이구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황실복원운동에 동의하는 입장인지 모르겠는데, 책을 읽으면서 황손을 예우해야 한다는 의견에 도대체 동의할 수가 없었다
이미 사라져 버린 조선왕조, 그것도 치욕스럽게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만든 생명력 다한 왕조의 후손들을 현대판 귀족처럼 국가가 지원해 줘야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오히려 왕실 문화 전수자로써 문화재적인 측면에서 보존하자면 기꺼이 동의하겠다
박지향의 논문에서도 나온 바지만, 고종이나 순종, 명성황후 등 당시 지배층의 실정이야 말로 명백히 규명되야 할 문제라고 본다
이완용 등 일부 친일파 몇에 의해 과연 조선이 무너졌을까?
국가를 책임지는 사람은, 더구나 전제왕조 체제의 주권자는 명백히 국왕이 아닌가
왜 고종은 어리석은 신하들에 둘러싸여 길을 헤매는 가엾은 국왕이라는 이미지로 보호되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조선왕조 몰락에 명백하게 책임이 있는 명성황후는 말할 것도 없이 성공한 뮤지컬 한 편으로 온 국민에게 추앙받는 국모로 변모했다
드라마와 현실은 엄연히 다른 것이고 역사적 평가야 말로 실로 냉철해야 한다고 믿는다
제국주의의 희생양 식으로 어영부영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의친왕이 독립투사였다는 이미지 역시 보다 사실적으로 해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읽는 사람에 따라 거부감이 강할 수도 있는, 문제제기가 뚜렷한 책이다
어쨌든 다양성의 존중 측면에서 많은 관점의 글이 나왔으면 좋겠고 식민지 시대에 대해서도 천편일률적인 희생자적 하소연이나 압제에 대한 저항 식의 당위적인 모습 말고도 진짜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민중들의 다양한 모습이 발굴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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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평전 - 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행동에 관한 전기적 연구
전인권 지음 / 이학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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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박정희, 그는 누구인가?
정치적 측면 보다는 인간적 측면에, 더 정확히는 심리 기제 분석을 주로 한 책이다
그래서 제목도 "평전" 이다
정치 얘기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박정희 시대에 관한 책은 즐겨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박정희라는 개인에 중점을 준다는 점에서 선택하게 됐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나귀님의 호의적인 리뷰가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그러고 보면 내 독서의 폭은 이 분 때문에 많이 확대되는 것 같다

박정희가 "심리적 고아" 라는 식의 설명은 솔직히 별로 끌리지가 않는다
한 사람이나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설명 체계는 어쩐지 작위적, 혹은 결과론적이라는 느낌 때문에 신뢰가 잘 안 간다
박정희가 심리적 고아였다면,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적고, 부모와 반대되는 길을 가는 모든 사람이 다 고아일 것이다
한편으로 따지면, 고아 즉 부모와 결별한 사람만이 부모 세대를 뛰어넘어 업적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처럼 부모에게 너무 밀착된 사람은 결국 부모가 원하는 길, 부모가 제시한 방향 이상으로 나가지는 못한다
이른바 모범생 컴플렉스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조갑제가 쓴 전기의 인용이 많다는 점이다
조갑제 하면 수구 꼴통 내지는 박정희 신도 같은 부정적인 생각 밖에 안 떠오르는데 그래도 다른 책에서 인용할 수 있을 만큼의 객관성이나 정확성은 확보하고 전기를 썼나 보다
책에서 언급한 대로 박정희와 김대중은 정 반대의 성향을 가졌다
두 사람의 전기를 같이 읽어 보고 싶다
강준만식의 인물 비평 같은 전기는 싫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책은 꽤나 성실하고 우수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전라도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나는 자유주의적인 김대중에게 더 끌릴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박정희식의 국가주의나 전체주의, 혹은 공동체 윤리적인 게 너무 싫다
그냥 싫은 게 아니라 너무너무 싫다
1970년대에 학교를 다니지 않은 점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아마도 사회부적응자가 되었을 게 뻔 하다
그렇다고 학생운동 세력이 되지도 않았을 것 같다
학생운동 진영 역시 권위적이고 민족주의적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개인의 자유가 공동체의 이익보다 앞서는 사회, 좀 더 양보하자면 최소한 비슷한 무게를 지니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다

박정희의 남로당 가입이 순전히 권력욕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동감하는 바다
당시 시대 상황에서 보자면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했다기 보다는, 비정상적인 코스로 빠르게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쪽에 섰음이 분명하다
이를테면, 서울대 나와서 정통 관료가 되는 길로는 갈 수 없으니 대안을 선택했다고 해야 하나?
아빠가 고백한 것처럼 70년대는 학생운동이 또다른 대안적 권력잡기의 길이 아니었던가?
만약 그가 진실로 공산주의자였다면 한 번의 검거로 그토록 완벽하게 변절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저자의 분석대로 형 박상희의 죽음에 따른 울분과, 형 덕분에 남로당 고위층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는 점이, 그에게 공산주의자라는 신분을 부여했을 것이다

박정희가 능력있는 군인이라는 점이 자주 언급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꽤 긍정적으로 바뀌게 됐다
독재자,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 파시스트 대략 이런 게 박정희에 대한 내 이미지였는데, 상당히 객관적인 저자의 서술에 따르면, 박정희는 나름대로 사상도 있고 확고한 행동력과 능력을 갖춘 유능한 군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긴 남로당 사건으로 숙청될 위기에 몰린 그가, 한국전쟁 중에도 군에서 복무하고, 반공이 국시인 나라에서 승승장구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저자의 말마따나 뛰어난 실력이었을 것이다
과거청산을 못하고 친일파가 국가의 요직을 점령한 점은, 민족기강 면에서 보자면, 혹은 인과응보 법칙에서 보자면 통탄할 일이지만, 그나마 교육을 받고 국가경영을 할 만한 집단은 기존의 관료나 군인들 밖에 없었을 것 같다
미국이나 이승만 입장에서 친일파 관료 집단을 받아들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따지면 단지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능력의 검증도 없이 국가의 중요 직책을 맡는 게 온당하냐는 의문이 생긴다
결국 민주화 운동 내지는 독립 운동은, 또다른 권력획득으로 보상받는 게 아니라 시민 사회의 존경과 국가의 경제적 보상 수준에서 마무리 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육영수와의 결혼 이야기는 로맨틱한 구석이 있다
대단한 부잣집 딸이었던 육영수가 가난한 군인에게 끌려, 그것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전쟁터에 결혼을 감행했다는 점은 특이할 만한 점이다
확실히 박정희에게는 사람을 끌 만한 카리스마가 있었던 것 같다
육영수는 아버지의 비서 노릇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뜻을 받들었던 것처럼, 박정희를 깍듯히 섬겼다
강요되지 않았다는 점, 이를테면 자발적이었다는 느낌 때문인지 기존의 가부장제에 대한 거부감과는 다르게, 아름답게 느껴졌다
저자에 따르면 이 부부는 완벽한 커플십을 자랑했다고 한다
육영수가 죽은 후 박정희가 심리적으로 심한 방황과 갈등을 했다는 점도 지적한다
박근혜는 그녀의 어머니가 청와대 내의 야당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육영수는 박정희가 원하는 대로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내조를 했다고 한다
내 생각에도 그녀의 스타일로 봤을 때 남편 뜻을 크게 거스르면서 자유와 평등을 설파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상당히 전통적인 여성이었던 것 같다
육영수의 아버지 육종관은 얼마나 부유했던지 소실을 다섯이나 거느리고, 자식이 22명이나 됐다고 한다
재력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 대단한 사람이 정실 부인에게서 낳은 딸을, 그것도 비서 역할을 잘 수행해 내던 신뢰하던 딸을, 재취로 줘야 했으니 꽤나 반대가 심했을 법 하다

상관에게는 철저하게 복종하고, 아랫사람들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베푸는 식의 종적인 인간관계에 익숙한 박정희는, 반대로 동료들과의 횡적인 관계는 서툴렀다
이거야 말로 아빠의 특성을 보는 것 같다
아빠 역시 자기가 지배할 수 있는 아랫사람에게는 자애로움과 변치않는 애정을 보이고, 반대로 힘있는 윗사람은 깍듯이 모신다
그런데 정작 본인과 위치가 비슷한 동료들과의 관계는 서툴다
아빠의 경우는, 동료들보다 특별히 나은 위치에 서지 못해 인간관계 자체를 회피하는 식으로 풀었던 것에 비해, 박정희는 아빠보다는 훨씬 능력있는 시대의 인물이다 보니, 그들을 제압하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했다
평전을 읽을수록 아빠가 박정희와 비슷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을 숭상하고 횡적인 관계에 약하고 반대로 종적인 관계에서는 강하고, 남을 제압하려고 하고 소탈하고 적자생존 논리에 동의하고 권위주의적인 면 등등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아빠가 학생운동을 했던 것도 박정희가 남로당에 가입했던 것처럼 정상적인 루트로 권력을 잡지 못한 상황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안이었던 것 같다
나는 아빠를 사랑하고 특히 아빠와 많은 부분에서 기질적으로 일치하지만, 권위주의적이고 공동체적인 면은 매우 싫어한다
우리가 갈등을 빚는 부분은 바로 이 점이다
이를테면 나는 유교적 가치나 공동체 윤리 측면의 전체주의적인 부분을 싫어한다
꼭 결혼을 해야 하는가, 꼭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등과 같은 유교적인 도덕 부분은 우리가 늘 갈등하는 부분이다
박정희와 기질이 매우 비슷한 아빠가 정작 박정희에 반대하는 데모를 하다가 청춘을 바친 걸 보면 아이러니 하면서도, 절대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던 박정희가 남로당에 가입했던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박정희가 생존 문제에 집착했다는 점은 내 기질과 비슷하다
이 점은 아빠와 내가 다른 점이기도 하다
내가 여자인 탓도 있겠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비정치적이고 권력을 잡는 문제에 대해 매우 무관심하다
다만 나는 가난이라던가 경제적 의존 같은 문제에는 너무너무 민감하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용감하게 자유를 찾아 떠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그 경제적 생존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나는 돈 문제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될 상황이다
나 역시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고 내가 그토록 동경해 마지 않는 예술적인 관람자 생활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질상 절대로 그런 낭비적인 삶을 살 수 없다
경제적 생존 문제는 나를 넘어 우리 가족에게까지 확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박정희는 가족은 건너 뛰고 바로 국가나 민족에게로 확장시켰던 것 같다
저자의 지적처럼 심리적 고아이다 보니, 가족의 가난 극복은 뒷전이고 (어쩌면 형 박상희에게 일임하고) 민족의 생존 문제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하여튼 나는, 심리적 고아는 절대로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지나치게 가족 의존적이기 때문에)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아마도 나는 죽는 날까지 우리 가족의 경제 문제에 매달릴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사치하는 날은, 내 기질상 죽는 날까지 오지 않을 것 같다
명품을 사고 비싼 차를 사는 것 같은 사치가 아니라, 오페라를 보고 책을 모으는 문화적 종류의 사치까지도 말이다

저자가 일찍 타계했다는 점은 참 아쉽다
"남자의 탄생" 도 참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박정희의 딸 박근혜에 대한 분석도 시도했을 것 같다
박정희가 근대 사회에 남긴 흔적을 생각해 보면, 박근혜가 과연 정권을 잡을 수 있을지 문제도 퍽 흥미롭다
여자라는 결정적인 이유 때문에 아마도 힘들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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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현대사, 그리고 운동 (作)
    from 木筆 2007-07-10 12:30 
    전인권선생님의 타계가 아쉽지요. 저도 소식듣고 꽤나 우울했답니다. 학자적 접근 못지 않게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자료들이 너무 적은 것이 아쉬운 것 같습니다. 손살같이 지나온...
 
 
2 2011-04-1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조갑제는 흔히 박정희 찬양자로 알려져 있고 그런 면도 있지만 다른 건 몰라도 기본적 팩트왜곡은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박정희 반대자들이 이용하는 자료들조차 상당수가 조갑제가 조사하고 확인한 자료입니다(대표적으로 이혼경력이나 혈서설)
책에도 나와있듯이 찬양이나 부정이냐를 떠나서 박정희에 관해 1차적 자료를 발굴,조사,재확인은 조갑제가 대부분 다 했다고 봐도 무방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