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
표정훈 지음 / 궁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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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고 싶던 딱 그 책이다

그렇지만 100% 만족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책의 수준을 결정짓는 조건 중 자료 수집 능력과 서술 능력을 들었는데, 내용은 아주 마음에 들지만 저자의 서술 스타일이 나랑은 좀 안 맞는 것 같다

어떤 책들은 술술 읽히는데, 또 어떤 책들은 내용과는 상관없이 잘 안 읽힌다

자꾸 건너 뛰는 부분이 생겨 자 들고 한 글자, 한 글자 읽으려고 노력한 책이다

 

이 책은 나처럼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읽기 에세이라 하겠다

북 패티시즘이라는 용어까지 나오는데 솔직히 난 아직 이 수준은 아니다

독서광이 되면 책을 읽는 행위를 뛰어 넘어 책 자체에 집착을 보이게 된다

물건으로서의 책 그 자체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구하기 힘든 책일수록 반드시 손에 넣으려는 집착을 보인다

독서광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책을 소장할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저자 역시 큰 방을 아예 서재로 꾸며 버리고 발코니도 공사를 해서 서재로 쓰고 있다

이건 우리집에서도 흔히 보는 일이다

아빠가 워낙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 때문에 주거 공간이 줄어들 지경이다

책을 소장하고도 여유 공간이 많은 넓은 집에서 살면 좋으련만, 그 정도로 부유하지는 않으니 불편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아빠 연구실로 분산이 되있어 다행이지만, 내 책까지 더해져 집이 창고 수준이 되가고 있다

 

책을 어떻게 보관해야 할까?

아빠 책들 때문에 나는 책을 소장하는데 좀 부정적인 편이다

일본의 유명한 저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보면 서재에서 원하는 책을 즉시 찾아 줄 비서를 고용하고, 책을 소장하기 위해 건물을 지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돈 주고 산 책을 쉽게 버릴 수도 없고, 계속 쌓아 놓을 수도 없어 지금까지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편인데, 도서관의 문제점은 신간이 늦게 나온다는 점이다

신문에서 괜찮은 책 서평을 읽으면 당장 그 책을 읽고 싶은데, 도서관에 입점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지라 돈을 벌면서 부터는 바로 사 버린다

아직까지 내 책이 주거 공간을 침해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빠랑 같이 살려면 나도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겠다

 

나는 가끔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사는데 별 도움도 안 되는 책을 읽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가끔 회의가 든다

특히 세이노란 사람이 "직업에 우선 충실하고 교양 쌓는 건 돈 번 다음에 해라, 박찬호가 야구 연습 안 하고 교양 도서만 읽는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겠는가?" 라는 식으로 쓴 글을 읽으면서 고민에 빠지게 됐다

(물론 그도 책 열심히 읽으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 때 책은 역사책 같은 게 아니라 경영서나 부동산 같은,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책들이다)

단순히 지적인 즐거움을 위해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다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특히 이런 의문은 고대 이집트에 관한 책이나 알파벳의 역사 같은 현실에 별 쓸모가 없는 책을 읽을 때 더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나의 고민에 해답을 준다

책을 읽으면서 연관성을 기르라고 한다

이를테면 중국 문화에 대해 알고 싶으면 중국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섭렵한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 대한 배경 지식이 쌓이고, 중국에 관한 신문 기사나 뉴스를 접할 때 보다 체계적인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또 나중에 중국에 관한 사업을 하게 된다면 과거에 읽은 책들을 통해 중국에 대한 기본 지식을 쌓을 경우 훨씬 잘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사실 이건 좀 단순한 예에 불과하고,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세상을 더 넓게 보기 위해서라고 하겠다

또 책은 책 자체의 지식을 머리에 집어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를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읽는다고 할 수 있다

모르면 모를수록 교양이 생기는 것 중에 여성지와 스포츠 신문, 유럽의 왕실 암투, 드라마 등이 있다고 하는데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다

 

요켠대 책이란 지식을 쌓기 위해서 읽는다기 보다는 (이것은 책의 하위 목적에 불과하다) 타인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히며, 근본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방향을 잡기 위해 읽는 것이다

저자는 논술 고사에 대해서도 비판을 한다

영상 매체에 길들여진 요즘 학생들에게 고전의 지문을 주고 거기에 관한 내용을 쓰라는 것은 수영도 못하는 사람을 바다에 던져 놓고 헤엄쳐 나오라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가까스로 헤엄쳐 나온 후 과연 그 학생은 물 근처에 다시 가려고 할까?

책을 읽는 행위는 세상을 보는 기본적인 틀을 잡는 것인데, 시험을 위해서라는 목적이 생겨 버리면 과연 의미있는 독서가 될 것인가를 걱정한다

그러므로 대학들은 학생에게 무조건적인 고전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고전의 의미를 해석하는, 접근하기 쉬운 텍스트를 먼저 내 놓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한다

 

소제목의 아래에 책에 관한 좋은 글귀들이 많이 실려 있다

"천국은 거대한 도서관일지도 모른다"

"돈이 생기면 책을 사고, 그래도 남으면 음식과 옷을 사겠다"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책일수록 그 책은 아무도 안 읽었을 가능성이 크다" 등등 인류 문화를 대표하는 위인들의 입에서는 책에 관한 주옥같은 명언들이 쏟아져 나온다

(천국이 도서관일거라 상상하는 가슈통 바슬라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책을 사랑한 사람이 아닐까?)

 

이 책에서 새로운 개념은 북큐레이터다

큐레이터란 미술관에나 필요한 건 줄 알았는데, 미국은 도서관에 북 큐레이터가 근무한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도서관 사서인 셈인데, 단순히 우리나라처럼 대출 서비스를 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박사 학위까지 소유한 전문가들이라고 한다

인문학 전공, 역사학 전공, 문학 전공 하는 식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도서관에 어떤 책을 소장할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한다

어떤 주제에 관한 논문을 쓸 때 인터넷 검색을 하는 것 보다, 도서관 북 큐레이터에게 문의하는 게 훨씬 빠르다고 한다

저자는 사서들의 질을 높히기 위해 복수 전공을 의무화 하여 도서관학 외에 전문 분야를 두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하지만, 현실적으로 사서의 대우가 형편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려울 거라는 말도 빼먹지 않는다

빌 게이츠는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것은 공공 도서관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고향이자 마이크로 소프트 회사가 있는 시애틀의 도서관에 2천만 달러를 기부했다고 한다

강철왕 카네기는 미국 전역에 수천개의 도서관을 설립하고, 그 운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히 세계 최고의 부자들다운 배포 큰 멋진 기부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기부 문화가 정착되면 도서관에 기부하는 것이야 말로 거의 영원히 자신의 이름을 길이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망한 분야일 거라고 저자는 돈많은 사람들을 설득한다

(카네기나 빌 게이츠 만큼은 못 벌어도 작은 돈이나마 기부하게 될 날이 왔음 좋겠다)

 

요즘처럼 실용서가 난무하는 시대에 책이 주는 진정한 의미가 과연 지식인가, 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어쩌면 책은 우리의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전자북이 보급되면 종이책은 사라질 거라 섣부른 진단을 하기도 하지만, 책이 곧 삶을 의미하는 지성인들이 버티는 한 생각보다 종이책의 생명력은 길 것이다

어쩌면 인류의 운명과 그 궤를 같이 하여 끝까지 따라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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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스 -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형선호 옮김 / 동방미디어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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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권의 리뷰를 올린다

사실 끝까지 다 읽지는 않았다

책을 읽을 때 제일 난감한 경우는 과연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다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이야 (사실 이런 경우는 드물지만) 쉽게 던져 버리지만, 같은 얘기를 계속 동어반복 하는 책을 대할 때는 참 고민스럽다

앞에 다 나온 얘긴데, 계속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혹시 또 다른 얘기도 있을지 모르니까 성실하게 읽어야 하는데, 뭐 이런 식의 고민들

책을 열심히 읽는가, 혹은 그렇지 않는가는 내가 저자의 생각에 얼마나 동의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어려운 책은 읽기 힘들어서 대충 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저자의 생각에 일단 거부감이 들면 그 때부터 글자가 눈에 잘 안 들어온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미셸 푸코에 관한 책을 읽을 때 굉장히 어려웠지만, 워낙 감동스러워 (여기서 감동이란 소설 읽고 느끼는 그런 감동이 아니라, 저자의 날카로운 관계 분석에 경의를 표하는 것) 자를 들고 밑줄 그어 가며 열심히 읽었다

연습장에다 책 내용 기록해 가며 교과서 읽듯 여러 번 읽었다

그런데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는 책은 어쩔 수 없이 대충 읽게 된다

끝까지 읽는 건 대부분 저자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서다

 

누군가의 리뷰에서처럼 이 책의 주제는 1장에 압축되어 있다

1장은 퍽 훌륭하다

보보가 어떤 개념인지 쉽지만 정확하게 밝혀낸다

어떤 책인지 궁금한데 시간이 없는 분은 1장만 읽어도 충분하겠다

그렇지만 저자의 서술 능력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워낙 같은 얘기를 반복하다 보니 좀 지루하다는 것 뿐

아마도 보보라는 게 어떤 개념인지를 여러 예를 통해 제시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저자 역시 통계보다는 주로 자신이 수집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기술한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 책들은 근거 대기에 어쩜 그렇게 철저한지, 단순히 자기 주장만 대충 늘어 놓는 책임없는 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약간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주장을 펼칠 때는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그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를 분명히 대야 한다 과학적으로는 밝힐 수 없는 신비한 것이다는 식의 말뿐인 현학적인 논리들, 적어도 의학에서는 이런 태도를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간단히 말하면 보보란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합성어로, 세속적인 성공을 지향하면서도 드러내 놓고 즐기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부르주아의 특징인 물질적인 성공과 보헤미안의 특징인 자유로움, 혹은 정신적인 가치의 추구가 합해져 오늘날 보보를 탄생시켰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데로 보보스란 바로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를 지칭한다

요즘 유행하는 웰빙도 바로 보보스의 핵심적인 특징 중 하나다

유기농만 먹고 요가를 즐기고 오지 체험을 하는 식의 라이프 스타일 말이다

저자의 미덕은 본인이 보보이면서 오늘날의 지배 이념이라고 정의하면서도, 그 속물적인 근성까지 함께 밝힘으로써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하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속물적인 근성"이란 이런 것이다

휴가를 떠나도 리조트 이런 데로 가면 부르주아다

보보스는 라틴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혹은 인도 등의 오지로 떠나야 한다

단순히 여행 자체를 즐기면 안 되고, 극한 체험을 통해 뭔가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을 얻으려고 해야 보보답다

물건을 사도 너무 새 것을 사면 부르주아처럼 보이니까, 적당히 낡은 느낌을 주는 걸 골라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새 것을 헌 것처럼 보이게 파손시키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생긴다)

 

과거 부르주아 시대에 권력은 가문에서 나왔다

집안이 좋으면 대부분 출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교육의 시대다

아이비 리그의 대학들은 이제 좋은 가문의 자제들을 받아 들이는 대신, SAT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우수한 학생을 선호한다

(저자는 이 변화야 말로 미국을 보다 강하게 만든 핵심이라고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학벌 지상주의 내지는 엄청난 교육열도 반드시 부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과거 미국을 이끈 WASP 계층의 힘이 혈통, 재산, 군사적 힘 등에서 나왔다면 현제 미국의 지배 계층을 결정하는 요소는 대학, 학위, 사회적 경력, 부모의 직업 등이라고 한다

(강남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시대적 대세인 모양이다)

 

재밌는 일화 하나

어떤 이가 영국 작은 마을의 대학을 나왔습니다, 라고 말하면 그가 보보스일 경우 그 대학은 이튼 스쿨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영국으로 쫒겨 가서 대학 생활을 했다면, 그가 보보스일 경우 로즈 장학생이라는 걸 은근히 암시하는 말 (클린턴처럼 로즈 장학생에 선발되면 옥스퍼드에 유학 갈 수 있다)

이처럼 보보스는 자기가 성취한 것을 자랑스러워 하나, 남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신적 가치를 높힌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예인지는 모르겠는데, 배낭 여행 갔을 때 두 여학생이 자기들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 다닌다고 소개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 다 서울대 법대생이었음)

 

미국에서 혼전임신이 늘고 마약이 판을 치는 등, 어찌보면 자유롭고 어찌보면 타락한 문화가 난무했던 까닭은 부르주아에 대항하는 보헤미안 문화 탓이었다고 한다

이제 보보들은 과거 보헤미안의 무절제한 자유를 거부한다

대신 그들은 부르주아처럼 종교적, 혹은 도덕적 규범으로 자신들을 규제하는 게 아니라,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위해서 절제한다

혼외정사를 안 하는 건 교회에서 가정에 충실하라고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에이즈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고, 담배를 안 피우는 것도 도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에 나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일도 도덕적, 종교적 규제가 수반되면 무조건 거부하고, 아무리 나쁜 일도 정신적 영적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반드시 한다

그들을 규제하는 게 사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미국은 다른 어느 세대 보다도 금욕적이고 청교도적이라고 한다

 

한 때 자유로움, 창의성, 모험 정신 등이 도덕, 종교, 근면함 등 과거 덕목들 보다 가치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과거란 무조건 고리타분하고 잘못된 것이고, 특히 전통이란 거부할수록 좋은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결국 우리 세대가 내세우는 가치나 이념 역시 하나의 트렌드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게 요즘은 말 자체의 격이 떨어져 버린 바로 그 웰빙 아니겠는가!!

(광고에 넘쳐 나는 그 놈의 웰빙 홍수를 보면 자본주의 시대는 이념도 판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사람이 쓴 미국 문화 탐방기 등을 읽지 않게 됐다

사실 나는 미국 문화에 대해 동경이 강한 편인데 (정확히 말하자면 인권이나 사회적인 분위기 등이 우리보다 성숙했다고 생각했다) 그 까닭은 미국을 소개하는 책자들 때문이었다

미국 사회를 분석하는 책들은 대체적으로 감탄하고 그 우월성을 우리에게 훈계하는 식이다

비판하는 책들은 너무나 도덕적인 기준을 들이대며, 미국은 사실 타락한 자본주의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웃는지라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미국인이 직접 쓴 미국 사회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보다 정확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요즘 나의 결론은 민족성이 나빠서, 혹은 훌륭해서라는 식의 관점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부의 축적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시민 의식의 성숙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미국 역시 우리와 비슷한 시행 절차를 먼저 겪었을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미국은 이러지 않는데 우리는 이게 뭐냐, 혹은 미국 같으면 안 그런다 식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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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평전
정규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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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TV에서 나혜석의 일생을 조명할 때가 있다

아마 그녀가 갖는 다양한 의미들 때문일 것이다

한 마디로 얘깃거리가 많다고 해야 하나?

항상 그렇지만 대부분의 책이나 프로그램에서 나혜석에 관한 이야기는 그림 자체 보다는 그녀 삶의 비극성에 초점을 맞춘다

조선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라는 화려한 타이틀과, 시립병원에서 행려병자로 죽은 말년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후 춘원 이광수를 비롯, 조선 유학생들 사이에서 많은 흠모를 받았다고 하길래 그녀가 아주 미인일 거라고 상상했는데 의외로 사진을 보니 평범하다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촌스러운 (좀 경망스런 표현이긴 하지만) 20세기 초의 평범한 여성이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최승희의 요염하고 매혹적인 흑백 사진과 비교된다

그녀가 여러 남성들에게 흠모의 대상이 됐던 것은 외모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동경 유학생이라는 게 더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어쨌든 젊은 시절은 무척이나 화려했다

구한말 여자가 학교에 다니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서양 그림을 그리고, 거기다 일본으로 유학까지 떠났으니 말이다

일본 유학은 남자들도 쉬운 일이 아닌데 당시로서는 최고의 엘리트였던 셈이다

아버지가 큰 부자였는데 특별히 개화 사상을 가져서 그런 건 아니라고 한다

그녀의 둘째 오빠가 깨인 사람이라 여동생들의 유학을 강력하게 주장해서 이뤄진 것이다

어찌 됐든 4남매가 모두 일본으로 유학을 갔으니, 대단한 집안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이야기의 핵심은 최린과의 스캔들에 있다

남편 김우영이 일본의 배려로 세계 여행을 떠나게 되서 파리에 머무는 중 18살이나 많은 최린과 바람이 난다

당시 남편은 베를린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중이었고, 나혜석은 파리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파리에 조선 여자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화제가 될텐데, 세력가인 최린과 바람이 났으니 파리의 조선 사회가 그 문제로 시끌벅적했다고 한다

그런데 웃긴 건 남편이 그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처음에는 관대하게 넘어가 두 부부는 파리에서 넷째를 임신하기까지 한다

 

왜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때 일이 문제가 되어 이혼까지 갔을까?

이 책은 소설 형식인데 여기 나오는 얘기들은 대부분 나혜석이 신문에 발표한 것들을 기초로 한다

그녀의 얘기를 들어 보면 순진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유부녀가 잠시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어도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남편에게 더 잘 하면 부부간의 사랑은 두터워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주장하나

말하자면 바람 피운 게 결혼 생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식이다

바람핀 남자들의 뻔뻔한 변명으로, 21세기에도 통용되지 않을 이 말이 1920년대에 조선 여자로부터 나왔다는 게 참 놀랍다

그녀가 예술가이기 때문일까?

작가의 추론으로는 그녀가 남편에게 직접 그 얘기를 했을 거라고 한다

참,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유럽에서는 임신까지 하고 무사히 귀국했으나 결국 이혼까지 간데는 나혜석이 다시 최린에게 사귀자고 보낸 편지에 책임이 있다

남편이 부인의 떠들석한 스캔들을 눈감아 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부유한 최린에게 다시 사귀자고 편지를 띄운다

최린이 자신과 가족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줄 거라 기대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좀 이해가 안 간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할 생각도 없었고, 남편이 변호사로 개업 후 일이 안 풀려 시댁이 어려움에 처하자 이런 편지를 썼다고 한다

물론 최린이 세력가이긴 하지만 지고지순한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니고, 잠깐 외국에서 바람핀 유부녀의 생계를 돌봐 준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겨우 4개월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최린이라는 놈도 나쁜 놈이다

나혜석이 그런 철없는 편지를 보내 왔으면 점잖게 거절했으면 될 일을, 친구를 시켜 김우영에게 아내 단속 잘 하라고 훈계를 한다

열받은 김우영은 결국 나혜석에게 이혼을 강요하고 바로 새장가를 든다

웃긴 건 아직 이혼이 성립하지 않았는데도, 버젓이 새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는 것이다

김우영은 이미 나혜석과 결혼할 때 두 번째였는데, 그 후로도 두 번이나 결혼을 더 해서 총 4회의 결혼 전력을 갖는다

나혜석과의 결혼 당시 사진을 보면 평범하게 생긴 나혜석과는 달리 점잖고 부드러운 멋쟁이 신사답다

시어머니를 모시지 않고, 자신의 예술 활동을 후원해 주며, 죽은 첫사랑의 (최승구) 무덤에 비석을 세워 달라는 걸 결혼 조건으로 내세운 나혜석을 아내로 맞아 들인 점이나 (그는 아내의 예술 활동에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네 번째 결혼한 여자가 독립운동가인 양한나 (해방 후 부산에 경찰서를 창립하고, YWCA를 세우는 등 사회 활동이 활발했다) 등인 걸 보면 그도 퍽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다

 

그렇지만 네 번이나 결혼을 하고 (첫부인과는 사별) 나혜석과의 이혼 과정에서 단 한 푼의 재산도 주지 않은 채 쫒아낸 뒤 아이들과의 접근도 막은 걸 보면, 역시 시대적인 한계성을 갖는 인물이라 하겠다

나혜석은 이혼을 하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이혼고백장을 잡지에 (삼천리) 실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다

요즘 같으면 여성지에 이혼 후 심경 고백 등을 기고했다고 할까?

지금도 이혼한 여자가 억울하다고 잡지에 글 쓰면 일단 삐딱한 시선으로 보기 마련인데, 1920년대 상황이 오죽 했으랴 싶다

나혜석을 대담하게도 자신의 불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왜 남자는 혼외정사를 가져도 되는데 여자는 안 되냐고 반문한다

또 비록 불륜을 저지르긴 했으나 재산은 둘이 이룬 것이므로 절반을 내 놓라고 한다

최린에게도 유부녀의 정조를 유린했으니 위자료를 내 놓으라고 소송을 건다

사회적 명망이 손상되는 걸 우려한 최린은 재판으로 가기 전에 합의금을 지불하고 끝낸다

 

시대를 완전히 앞서 간 여인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재능이 뛰어나는 수 밖에 없다

적당히 훌륭해서도 안 되고, 탁월할 정도로 뛰어나야 비로소 세상의 편견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나혜석의 예술적 재능은 세상의 편견과 질시를 이겨낼 만큼 탁월하지는 않았다

김우영과 이혼 후 조선미전과 일본 제전 등에 입선하던 촉망받는 화가의 그림은 형편없는 평가를 받아 생계마저 위협하게 된다

여학교 교사 자리 등이 났는데도 이상하게 나혜석은 방랑벽이 있어 정착을 못한다

최린에게 받은 돈을 가지고 파리로 떠나려고 하지만, 건강이 악화되고 좀 더 많은 돈을 모으고자 그린 그림들이 혹평을 받으면서 나혜석은 급속히 몰락해 간다

오빠 집에 의탁하기도 하고 절을 떠돌기도 하는 등 정착을 못하다가 결국 그녀는 시립병원에서 불행한 인생을 마감한다

 

다른 건 몰라도 저자의 말대로 그녀가 취한 일련의 행동들이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았더라면 그녀의 예술성이 그토록 참혹하게 짖밟히지는 않았을 것 같다

요즘 같으면 시대를 선도하는 페미니즘 화가라고도 불릴 만 한데, 나혜석이 살았던 시대는 불행히도 1920-30년대다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예술가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는 살고 있는 시대와 사회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받아 들여야 하는 법인데, 나혜석이 그 점을 가볍게 생각한 것 같다

어쨌든 조선 최로의 여류 서양화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슬픈 삶을 산 나혜석이 그나마 요즘 와서 그 일생을 조명받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녀의 예술 보다는 불행한 일생에 초점을 맞추기는 하지만 말이다

책 표지에는 전혜린 보다 먼저 나혜석이 있었다고 하던데, 전혜린 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삶을 산 것은 그녀가 한 세대 앞에 살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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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
존 맨 지음, 남경태 옮김 / 예지(Wisdom)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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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렵다

갱지 같은 가벼운 종이를 사용해서 400페이지나 되지만 무척 가벼운 게 마음에 들어 집어 들었는데, 생각보다 어렵다

일단 그림이 한 장도 없기 때문에 알파벳의 발전 역사를 글을 읽으면서 추론할 수 밖에 없다

알파벳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대단히 궁금한 사람이거나, 유럽 역사에 정통한 분이 아니라면 과히 일독을 권하지는 않겠다

번역은 "종횡무진 서양사 & 동양사"를 쓴 남경태 씨가 맡았는데, 꼼꼼한 각주가 돋보인다

그렇지만 저자가 워낙 복잡한 이야기를 어렵게 써서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어제 읽은 이집트 책에서 보듯, 알파벳의 기원은 수메르 문자나 상형 문자에서 비롯됐다

그 문자들이 알파벳으로 변형됐다기 보다는, 말을 글로 남긴다는 혁명적인 발상을 전수받은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겠다

저자는 알파벳이 언제 최초로 등장해서 오늘날의 위치에 이르렀는지를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거론하며 설명한다

그런데 오늘날 유럽 국가들의 대부분이 자신들의 언어를 알파벳을 이용해 표기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거의 모든 유럽 국가의 역사들이 들먹여진다

유럽 역사에 어느 정도 식견이 있지 않다면 무슨 얘기인지 조차 알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다

 

그나마 이 책에서 반가웠던 것은 한글에 대한 설명이 따로 한 장으로 독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제일 관심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알파벳처럼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로 기존의 것을 변형시켜 문자를 만들어 온 것은 이해가 가는데, 도대체 한글이란 문자는 어느 날 갑자기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 것도 참조하지 않고 문자를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여간 신비로운 게 아니다

(물론 옛 가림토 문자나 위구르 문자 등을 참조했다는 건 알지만 결정적인 근거는 될 수 없다고 본다)

저자가 이 부분에 대해 실증적인 논증을 해주길 바랬는데, 실망스럽게도 자세한 논증은 없다

다만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 글자인지에 관해 감탄할 뿐이다

아마도 저자는 한글에 대해서 구체적인 지식이 없는 것 같다

전공하지 않는 학자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래도 한글이 세계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문자이고,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인정받는다는 걸 알게 되서 뿌듯하다

(활자를 좋아하는 나는 세종대왕에게 늘 감사한다 그 분이 한글을 발명하지 않았더라면, 그 어려운 한자로 책을 읽어야 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기독교도로서 받아들이기 난처한 부분이 이 책에서도 나온다

나는 기독교도이지만 성경을 있는 그대로 (즉 쓰여진 그대로)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문학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21세기의 보편적인 이념를 믿는 나로서는 괴롭지 않을 수가 없다

세상이 7일만에 창조됐고, 곧 말세가 닥칠 거라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들은 오히려 해결하기 쉽다

워낙 분명하게 과학적으로 논증된 문제들이기 때문에 재론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모세의 이집트 탈출이라든가, 가나안 입성 등의 구체적인 역사적 기록으로 들어가면 괴로워진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출애굽" 사건을 상당히 부정하는 편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모세가 실존 인물인지조차 의심스럽다는 입장이고, 현존했다면 "출애굽"은 성경에 기록한 것처럼 엄청난 대사건이 아니라 이집트 역사에는 기록할 가치조차 없는 노예들의 작은 반란에 지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들은 구약 성경을 유태 민족의 신화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다른 여러 나라의 정황들이나 고고학적 발굴 결과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를 우려해서 중세 시대에는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금지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스라엘에 알파벳이 전해진 과정을 기술한 부분은 나를 무척 곤혹스럽게 했다

(내 믿음이 부족한 건 아닐까, 이런 생각도 했다!!)

 

그 외에도 이탈리아에 먼저 살았던 에트루리아인들의 문자라든가, 크레타 섬의 선형 B 문자, 중국의 한자까지 다양한 지역들의 문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저자의 결론은 알파벳이란 여러 문화의 복합적인 발명품이고, 또 글을 표기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체계이기 때문에 미국의 영향력은 차치하고서라도 결국 이 문자가 세상을 지배하리라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고대 로마인들조차 알 수 있는 키보드를, 중국인들도 익히는 걸 보면 고유 문자 체계는 알파벳과 협력해야만 존속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역자의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영어 공용화 논란은 단순히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만 볼 일은 아닌 듯 싶다

이제 한글도 알파벳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점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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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와 함께하는 이집트 역사기행 - 서해컬처북스 4
요시무라 사쿠지 지음, 김이경 옮김 / 서해문집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사실 이 책도 읽을까, 말까 고민을 한 책이다

이집트 역사에 관한 책이라 오래 전부터 내 눈길을 끌긴 했는데 저자가 일본인이라 좀 망설였다

여태까지 내가 본 일본 번역서들은 자기 계발류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신뢰가 안 갔다

누군가도 지적했지만, 세세하게 행동 하나하나까지 이렇게 하라고 제시해 놓은 자기 계발류를 보면 유치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집트 연구는 서구 사람들이 쓴 책이 더 전문적일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몇 번 망설이다 집어든 책인데, 내 걱정이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정말 재밌고 아주 유익한 책이다

 

이집트 역사하면 피라미드와 미라, 혹은 클레오파트라가 전부이다

이미 쇠잔해 버린 고대 문명이기 때문에 그리스 로마 문화와는 달리 후손들에게 전승되지 않고 잊혀졌다고 생각했는데,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 됐다

기원전 5천년 전부터 (얼마나 아득한 옛날인지!!) 나일강을 사이에 두고 찬란한 (진부한 표현이지만 제일 적합한 말이기도 하다) 고대 문명을 꽃피운 이 놀라운 문화가 계승되지 않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요즘 읽고 있는 알파벳의 역사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학자들은 알파벳의 기원을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 찾고 있다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상형문자는 표의 문자도 있고 표음 문자도 있다

이 고난이도의 상형문자를 발음하는데로 쓰기 쉽게 개선한 문자가 바로 알파벳이다

이집트와 상거래를 했던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발전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미이라와 피라미드에 얽혀 있는 그들의 내세관이다

이집트인들은 왜 시신을 미이라로 만들었을까?

건조하고 더운 기후 때문에 미이라가 되기 쉬운 환경도 있지만, 보다 고차원적인 내세관이 숨어 있다

그들은 인간이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고 생각했다

"아크트"라는 육신과, "바"라는 혼과, "카"라는 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바"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개념이지만 "카"는 과연 무엇인가?

(정령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슬람의 6대 믿음 중에도 이 정령이 있다 사실 정확한 개념은 잘 모르겠다)

이집트학 학자인 저자도 어려워 한 이 개념은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이나 기타 사물들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사후 세계로 간다

미트 여신이 자신의 깃털과 망자의 심장을 천칭 저울에 올려 놓아 평형을 이루면 영생을 누리고, 죄가 많을 경우 심장 쪽으로 기울어지면 영원한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므로 미라를 만들 때 다른 장기는 다 꺼내도 절대 심장을 꺼내면 안 된다고 한다 심장이 없으면 무엇으로 사후 세계에서 심판을 받겠는가?)

즉 고대 이집트에는 지옥의 개념이 없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육신의 죽음과 동시에 영혼도 죽을 뿐이다

(이 개념은 여호와 증인교와도 일치한다)

 

그렇다면 영생을 얻게 된 사람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가?

한번 사후 세계로 간 "바"는 다시 현세로 돌아올 수 없다

이 때 지상에 남아 있던 그 사람의 본질, 즉 "카"가 다시 육신으로 돌아가, 죽은 사람은 부활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게 될 경우 "카"가 돌아갈 육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미라가 만들어진 근원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껏 영생을 얻었는데 돌아갈 육신이 이미 썩어 버리면 영혼이 머물 곳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이 "카"의 개념은 플라톤에게 전수되어 이데아로 발전한다

사람의 본질을 밝힌 "카"의 개념은 실로 위대한 이집트 철학이 아닐 수 없다

찬란한 고대 이집트 문명은 그리스에 전파되어 서구 문명 발전에 이바지 하고,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기여하고 있다

 

이보다 더 파격적이고 놀라운 주장은 기독교에 있다

예수가 헤롯의 박해를 피해 10살 때까지 이집트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성경에 기재되어 있다

이 때 예수가 이집트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또한 유일신 사상이라든가, 처녀의 수태 같은 교리는 모두 이집트 신학에 등장하는 내용들이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에서 같은 주장을 본 적이 있는데, 지나친 비약 같아 읽다 만 적이 있다)

이집트 신왕국 시대에 아크나톤은 아톤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파격적인 정책을 단행한다

저자는 이 유일신 신앙을 종교 개혁보다 더 위대하고 놀라운 발상으로 본다

사실 살아 있는 모든 동물들을 신으로 섬기고 (동물 그 자체를 섬긴 게 아니라, 동물을 신의 형상으로 의인화 시킴) 수백만의 신을 받드는 (무려 8백만이나 됐다고 한다) 이집트인들에게 신은 단 하나라는 생각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일 것이다

저자는 이 유일신 사상이 히브리인들에게 전파되어, 야훼가 유태 민족을 선택한 게 아니라 유태 민족이 수많은 신 들 가운데 야훼 신을 택한 것이라고 본다

기독교인이 고고학서나 역사서를 읽는다는 건, 이럴 땐 참 고역이다

 

카터의 투탕카멘 묘 발굴 이야기는 흥미를 넘어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온 카터의 이집트 사랑은 놀랍기 그지 없다

자신의 전 생을 바쳐 추구한 일이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면, 그 보다 더 보람되고 가치있는 삶은 없을 것이다

카터의 발굴을 후원한 카나본 경의 열정도 놀랍고, 그 외 고고학 발전에 이바지한 수많은 학자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돈 되는 학문도 아니고, 어찌 보면 쓸모없는 짓일지도 모르는 일을 인류 문명의 태초를 밝힌다는 신념 하나로 사막을 파고 있을 그들의 열정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피라미드의 건축법을 밝히기 위해 이집트 사막에서 1/4 크기로 피라미드를 옛날 방식대로 짓기까지 했다

또 쿠푸의 무덤에서 태양선을 발굴한 뒤 실제 그 배가 떴는지, 아니면 의식용 배인지를 밝히기 위해 직접 제작해 나일 강에 띄워 보기도 한다

문헌으로만 공부하는 고고학은 불완전하다는 신념으로 1년에 석 달은 이집트 모래 사막을 파헤치는 저자의 실증주의적 연구 방법에 박수를 보낸다

 

와세다 대학 교수인 저자는 일본에서는 이집트학으로 책도 많이 내고 TV 출현도 자주 하는 모양이다

그는 이 책이 문헌 몇 개 뒤져 적당히 짜집기 해서 이집트 소개하려는 책이 아니라, 직접 발로 뛰면서 얻은 지식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의 이 말에 깊히 공감할 만큼 아주 체계적이고 성실한, 또 곳곳에 이집트 사랑이 묻어 있는 훌륭한 책이다

특히 대중을 위한 글쓰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이집트 역사에 대해, 혹은 피라미드가 진짜 무엇인지에 대해 (피라미드는 왕들의 무덤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혹은 인류 문명의 시작을 연 찬란한 고대 문명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적극 권하고 싶다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고대 문명이 여전히 우리 생활 속에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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