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서판 -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히 최고의 분량을 자랑하는 책이다

책값도 4만원으로 만만치 않고 (그림이 한 장도 없는데 말이다) 내용도 800페이지에 달한다

워낙 종횡무진 하면서 수많은 이론들과 실험 결과를 서술한 책이라 독서 시간을 따로 내서 집중적으로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위해 며칠간 6시에 출근했다

결론은 아주 유익하다

내용 자체가 어렵진 않은데 워낙 많은 자료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상당히 집중을 해야 했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빈 서판 이론, 즉 인간의 마음은 백지와 같다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통용돼 왔고, 교육이나 여성의 권리, 인류 평등 등을 지지하는 기본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다른 건 몰라도 나 역시 여성의 권리 측면에서는, 본질적인 남녀 차이가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적인 관습과 문화에 의해 여성성과 남성성이 결정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부분은 받아 들이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과학이 뇌의 신비를 풀어 감에 따라 빈 서판 이론이 허구라는 사실이 입증되어 가고, 여성성 역시 본질적인 차이는 인정해야 함을 느낀다

 

빈 서판 이론에 대항하는 저자의 주장, 혹은 과학의 결과는 한 개인을 특징지우는 가장 큰 요인이 유전이라는 사실이다

과학이 유전의 역할을 증명해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반대를 겪는 까닭은, 인종 차별주의나 남성 우월주의 등에 이용될까 두려워서다

특히 이 이론은 사회적 다윈주의나 우생학의 근거로 악용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저자는 개인을 집단의 범주로 묶은 뒤 그 범주에 해당하는 규칙으로 다루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빈 서판 이론에 특히 격렬하게 반대할 그룹은 조기 교육 사업자들일 것 같다

교육 분야에서 빈 서판 이론은 특히 신봉되는데, 어린아이 때 어떻게 길러지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일생이 결정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고, 지능 발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수많은 장난감과 책 등등에 돈을 쏟아 붓는다

그러나 저자는 어린이란 절대, 마음대로 조작할 있는 물렁물렁한 고무 찰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태어나는 순간 이미 성격과 인격적 특성과 지능 등이 상당 부분 결정되기 때문에 (즉 유전에 의해), 양육 방식에 따라 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쌍둥이와 입양아 연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서로 떨어져 산 쌍둥이는 함께 자란 입양아 보다 훨씬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유전이 아이의 50%를 결정 짓는다면 나머지 50%는 무엇에 의해 결정될까?

저자는 양육 태도와 같은 공유 경험이 아니라 (즉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형제의 경우, 혹은 같은 방식으로 키워진 아이들) 또래 집단과 같은 단독 경험이라고 말한다

형제들을 놓고 봤을 때 집안 환경이 공유 경험이라면, 그들이 다니는 학교의 또래 집단은 각 형제들의 단독 경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단독 경험 역시 사회화에 영향을 끼칠 뿐, 인격적 특성에는 별다를 게 없다고 한다

 

이미 아이의 지능이나 성격이 규정지어져 있다면, 올바른 양육이란 불필요한 것일까?

저자는 부부 관계를 예로 든다

부부는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지 않지만 (신혼 초를 제외한다면), 좋은 관계를 위해 서로에게 잘 하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부모 자식 간에도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애써야지, 내가 아이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일 뿐이라는 얘기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가정 환경이 나빠서 이렇게 됐다는 식의 주장은 그저 핑계에 지나지 않다

또 조기 교육을 위해 쉴 틈도 없이 여러 학원에 보내고 많은 교육비를 쏟아 부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저자는 아이가 접하는 가정 밖의 환경은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면 어른이 그들의 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 돈을 벌려고 애쓰듯, 아이 역시 자신들의 세계에서 우월한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또래 집단의 가치를 내제화 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즉 담배를 피우고 주먹질을 잘 하는 게 멋지다고 평가받는 집단에 속해 있으면 (흑인 슬램가처럼) 아이는 폭력적이 되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편부모 가정 자체가 위험한 게 아니라, 편부모 가정이 속해 있는 지역이 훨씬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강간에서도 빈 서판 이론은 틀렸다고 지적한다

빈 서판 이론은 강간이 여성 지배를 위한 가부장적 문화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명백히 그것은 섹스와 관련됐다고 말한다

능력있는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매너를 갖추고 돈을 쓰지만, 사회에서 뒤쳐진 범죄자들은 섹스 욕구를 위해 폭력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부장 문화의 소멸은 강간의 소멸과 별 관계가 없고, 보다 강력한 치안 유지가 해결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 의미로 보자면, 여자들 역시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자동차 열쇠를 꽂은 채로 차를 떠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의 주장은 진보주의 철학과 어긋나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빈 서판 이론이 틀렸다고 보면, 인류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모순들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현대 사회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문명 이전 시대가 평화로웠다는 말도 그저 관념적인 얘기일 뿐 현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도킨슨이 쓴 "이기적인 유전자"에 부합되는 얘기다

요즘 나온 "이타적인 유전자"에 대해 말하자면, 보다 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호혜적인 이타주의 전략을 쓴다고 할 수 있다

즉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만 성립된다는 말이다

 

나는 대체적으로 이 책의 주장에 동의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주장들이 과학적이고 입증할 수 있는 실험과 조사들을 거쳐 내린 결론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

저자가 우려한 것처럼 어떤 신념이나 개념이 옳다는 것은 도덕적인 당위 명령만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 결과가 특정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체의학 역시 왜 옳은지를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단지 도덕적으로 그렇다, 혹은 철학적인 당위성 만으로는 존재 의미를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 지적 망국론 + 현대 교양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정환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이라면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무척 재미없게 읽은 기억이 있다

일본 최고의 독서가라고 하길래, 기대를 잔뜩 갖고 읽었는데 건조한 문체에 질려 간신히 읽었다

그래서 솔직히 이 책 역시 별 기대는 않했는데, 의외로 큰 소득을 거뒀다

역시 일본 최고의 지성인답다

 

이 책에서 가장 새로운 개념은 교양에 대한 정의다

교양이라면 그저 지식인의 스노비즘에 불과하다는 평가절하를 받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비춰 볼 때, 교양인이야 말로 인류 문화의 총체라고 평한 그의 주장은 새로울 수 밖에 없다

그의 주장은 인문학부가 존폐 위기에 선 요즘 같은 실정에 비추어 볼 때, 시대 역행적이라는 생각조차 든다

대학이 직업 교육장으로 전락한지 이미 오래됐고, 신입생 티만 벗으면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런 대학생들에게 교양을 기대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기본적인 인간성으로서의 교양이 아니라, 일정한 지적 수준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의미로서의 교양을 갖추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고 불평할 만 하다

 

언젠가 주간지에서 요즘 대학 졸업생들은 회사에 들어오고 나면 실무 교육에 제대로 써 먹을 수가 없다며, 대학이 보다 실제적인 교육을 해야 한다는 불평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는 나에게 상당한 충격을 줬는데, 대학이란 더 이상 학문의 지성소가 아니라 직업 훈련을 받는 곳인가, 하는 고민에 빠졌다

과거 유교 사회가 지나치게 학문적인 것에만 몰두해 과학과 기술을 천시한 것에 대한 반발인 양, 오늘날에는 순수 학문은 죽은 학문이라는 식으로 실생활에 도움이 안 되면 쓸데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철학과에 지원하는 학생이 없어져 학과를 폐쇄해야 할 지경이라는 뉴스를 접할 때 만큼이나 몹시 착잡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마저 요즘 같은 테크놀로지 시대에 과연 퀘퀘묵은 고전들을 들입다 파는 것이 옳은 일인가에 대한 회의였다

(나는 가끔 실생활에 별 도움도 안 되는 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뭐라고 답해야 할지 참 남감해진다)

 

다치바나는 나의 이 의문과 회의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고 용기를 북돋워 준다

그가 말하는 교양이란 단순히 고전을 읽는 행위가 아니다

그는 교양을 "시대가 만드는 모든 이념 체계"라고 정의할 때, 현대의 교양이란 과학이라는 말을 한다

사실 우리는 최첨단 과학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 컴퓨터, 유전자 공학, 우주선 등등 우리 주변을 둘러 보면 과학이 생활을 지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에 대한 현대인의 인식 수준은 대단히 미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비 과학에 속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이비 과학이란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을 직관에 의존해, 단지 증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엉터리 주장을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과학 지식은, 어떤 직업을 갖느냐에 상관없이 반드시 알아야 할 교양이라고 한다

 

교양을 갖춘다는 것은 책에서 읽은 내용을 종합하여 자신의 언어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총체적인 인식을 갖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치바나는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사고 과정이란 정보의 수집, 평가, 이용 전달이라고 했다

그는 현대의 교양인이 되려면 인터넷의 검색 기능을 잘 익히는 게 중요한데, 그 덕분에 주입식 암기 교육은 구시대 유물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얼마든지 단순 지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옛날처럼 선생이 불러 주는 내용을 기록한 후 암기해서 시험보는 식의 평가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시험장에 교과서도 들고 가고, 인터넷 검색도 허락해서, 단순 지식의 암기 여부를 물을 게 아니라 그러한 여러 지식들을 종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아직도 학교 교육이란, 대학 교육을 포함해서 교사가 불러 주는 내용을 받아 쓴 후 열심히 암기하는 방식이다

대학 입학 시험에 논술이 반영되긴 하지만, 토론 수업을 전혀 하지 않는 상황에서 학원 강사가 집어 주는 몇몇 주제를 연습하는 식으로 준비하는 게 과연 제대로 된 사고 능력을 키우는 것인지 의심된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는 일본을 상당 부분 본뜬 모양인데, 다치바나가 걱정하는 일본 교육의 문제점은 놀라울 정도로 우리와 유사하다

일본 역시 학교란 노는 곳이고, 제대로 된 공부는 학원에서 따로 한다는 식의 사교육 우선주의가 팽배해 있다

공교육에서 원하는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이미 대학 정원보다 입학생 수가 현저하게 모자라기 때문에, 대학은 학생 유치를 위해 입학 시험을 더욱 쉽게 개편하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 어떤 대학은 OX 문제만 풀고 들어가기도 한다

도쿄 대학조차 국영수 세 과목과 사회나 과학 과목 중 하나를 선택해서 보기 때문에, 의대에 입학한 학생이 생물학을 전혀 배우지 않은 예도 흔하다고 한다

(말하자면 본인이 입시에서 선택하지 않은 과목은 고등학교 때 아예 배우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 기본적인 과학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학생에게 전문적인 대학 교육을 시킨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대학 당국자들은 실력 미달의 학생들을 위해 보충 수업을 실시한다고 한다

강의를 들을 수준이 안 되는 학생들에게 대학이 보충 수업을 시킨다니, 그렇다면 대체 입학 시험이 왜 필요한 것일까?

저자는 차라리 제비뽑기를 해서 대학 신입생을 결정하는 게 낫겠다고 통탄한다

 

일본의 도쿄대라면 우리나라의 서울대와 같은 위상일 것이다

(단순 비교로 보자면 서울대 보다 훨씬 높은 위상을 가졌을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서울대생은 바보가 됐는가"라는 책이 나왔다면, 일부 사람들은 저자가 서울대 출신인지 아닌지부터 따질 것이다

(강준만이 쓴 "서울대 죽이기"를 제대로 읽지도 않은 사람이, 비서울대 출신의 서울대 콤플레스라고 폄훼한 것처럼 말이다)

다행히 저자는 이런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

도쿄대 출신에다가 3년 동안 교수로 초빙되어 실제로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은 학벌주의 사회에 일견 혁명적이기까지 하다

이제는 대학이 그 사람의 품질을 말해 주는 시대는 지났다고 한다

어느 대학 출신인가가 그 사람의 보증서가 될 수 없다는 소리다

즉 도쿄대를 나와도 바보일 수 있고 (상당하다고 지적한다) 삼류대라고 무시하는 대학을 나와도 훌륭한 사람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린 셈이다

실제로 일본의 대기업들에게 사원들을 대학 출신별로 평가해 달라고 하자, 대부분의 항목에서 쿄토대와 와세다 대학 등이 1,2 위에 랭킹됐고 도쿄대는 7위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런 결과는 도쿄대생이 대학 이름이 주는 우월감에 안주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학생 선발 방식부터가 우수한 인재를 뽑기 힘들게 하고, 커리큘럼도 우수한 인재로 키우기 어렵게 만든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는 인터넷 시대에 "유비쿼스트 대학"을 강조한다

유비쿼스트란 어디에나 있는, 도처에 존재한다는 의미로 본인이 배우려고만 하면 어디서든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더 이상 대학만이 지식을 전달하는 유일한 매체가 아님을 지적한다

그러므로 대학에 들어가 대학 강의에 충실했다고 그가 훌륭한 능력을 갖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대학 이외의 수많은 매체들이 (책과 인터넷 등등) 대학보다 훨씬 많은 정보와 지적 자극을 제공해 준다

그러므로 저자는 교양의 필수 요소 중 하나로 인터넷 검색 능력과 문서의 조작 능력을 꼽는다

(또한 저자는 현대가 미디어 시대임을 역설하고 누구나 미디어에 대응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의 자체도 특수한 전공 분야에 치우쳐진 마당에 강의에만 의존하여 학습을 끝내려 한다면, 21세기가 요구하는 진정한 교양인, 다시 말해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사실 저자는 스페셜리스트 보다 제너럴리스트를 높이 평가한다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과 아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전작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서 제너럴리스트를 추구하는 모습이 왠지 신뢰감을 줄 수 없었는데, 이 책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제너럴리스트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제너럴리스트란 단순히 이것저것 잡다한 지식을 가진 만물박사가 아니다

스페셜리스트가 자기 전공 분야의 좁은 학문에 능통한 반면, 제너럴리스트는 여러 학문들의 기본 정신을 두루 섭렵하여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고, 최종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특히 리더에게 이런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자질이 요구된다

(몇 년 전, 손숙이 환경부 장관에 임명된 것에 대해 배우가 뭘 알아서 환경부 장관을 할 수 있냐고 비판하자, 강준만이 전문가 신드롬에 빠지지 말자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아마도 다치바나와 비슷한 논지였을 것 같다)

리더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문제를 대국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필수적이다

도쿄대생이라면 대부분이 정부 고위 관료에 진출하는 사람들인데, 제너럴리스트의 자질을 기를 수 있는 교양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교양의 또다른 자질로는 창의성을 들 수 있다

창의성이야 말로 서구 국가에 한참 뒤지는 덕목인데, 일본 대학 역시 교수가 불러주는 내용을 열심히 필기해 암기 여부를 평가하는 고전적인 방식을 취하는 모양이다

심지어 어떤 교수는 강의록을 보고 그대로 읽느라 "한자로 된 일"이라던가, "아라비아 숫자로 된 일"이라는 말까지 친절하게 불러 준다고 한다

사실 암기 위주 교육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학생들의 학습 능력 저하를 우려한 미국 교육학자들은 오히려 동양식의 암기 학습을 더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기초 교육에 대한 내용이다

필수적인 부분을 암기한 다음에는 당연히 활발한 토론과 깊이있는 연구가 수행되어야 진정한 의미의 고등교육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까지 강의록을 불러 주고 베끼는 방식의 교육은 분명 문제가 있다

또 대학을 들어오기만 하면 졸업이 당연하게 인식된 것도, 저자는 대학 당국의 지나치게 인자한 태도라고 꼬집는다

유럽이나 미국처럼 누구에게나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는 제공하되 (물론 기본적인 선별은 필요하겠지만) 일단 시작하면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는 졸업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교육 수준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타과 학생들은 어쩔지 모르지만, 적어도 의과대학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유급 제도가 없다면 방대한 양의 의학 공부를 6년 내내 고 3 학생처럼 열심히 공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유급 제도의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저자는 "다치바나 세미나"를 통해 학생들의 정보 수집, 조작, 전달 능력 등을 길러 준다

이 세미나는 자발적으로 조직됐는데, 그가 주제를 주면 팀을 이룬 학생들끼리 정보를 모으고, 그것을 책으로 엮으면 다치바나가 평가과 지적을 해 준 후, 공식적인 출판을 통해 타인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이다

(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출판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런 활동은 실제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데 아주 유용하다

수동적으로 학습하는 게 아니라 직접적인 참여를 끌어 내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동적인 학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런 활동이 진정한 의미의 교양이라고 말한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본 최고의 독서가라는 평가답게 상당히 엄격하고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을 요구한다

모든 학생들이 이 수준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부심을 가져도 될만한 대학의 학생들이라면 그 자부심이 알맹이도 없는 헛된 속물 근성이 되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도쿄대생에 대해 아주 시니컬한 비판을 하는데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다, 옛날부터 바보였다"는 식으로 자문자답 한다

다소 과격한 얘기도 있지만, 대학생이라면 (즉 고등교육을 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저자의 이야기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책을 대학 시절에 봤다면 좀 더 열심히, 자발적으로 대학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저자도 지적한 것처럼 현대는 대학만이 유일한 학습 기관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학습이 끝난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대학을 졸업한 사회인 역시 이 책에 귀기울일 충분한 이유가 있다

진정한 의미의 교양을 쌓기 위해, 제너럴리스트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미지와 환상
대니얼 J. 부어스틴 지음, 정태철 옮김 / 사계절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제가 이번 주에 추천해 드릴 책은 "조선 국왕 이야기" 1,2 권입니다

어렵게 한 권을 다 읽었다

속독하는 독서 습관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한 줄 한 줄 더욱 꼼꼼히 읽었다

저자 초판 서문, 25주년 기념 서문, 역자 서문, 심지어 참고 문헌까지 (무려 20장이나 됐다) 성실하게 읽었다

소설책과는 달리 사회 현상을 비판하는 이런 책들은 읽기가 만만치 않다

그래도 이 책은 비교적 쉽게 쓰여지긴 했는데, 워낙 다루는 범위가 넓고, 번역한 책이라 읽는데 애를 먹은 듯 하다

 

이 책의 주제는 역자 서문에 더 잘 나타난다

역자는 그 꼼꼼하다 못해 조잡해 보일 정도로 모든 페이지에 걸쳐 각주를 세심하게 달았는데, 그만큼 역자에게는 큰 의미를 준 책인 듯 하다

그는 이 책과의 만남을 자기 일생의 큰 반환점이라고 했고, 한국의 젊은 세대가 읽어 주길 간절히 바란다

1962년에 발간된 책이지만, 미국보다 30여년 뒤진다는 우리나라 상황에 그대로 들어맞는다

제일 인상깊은 구절은 우리 시대에 널려 있는 수많은 문제들, 이를테면 공교육 붕괴, 신용 불량자 양산, 기러기 아빠, 지역감정, 권력형 비리 등을 책임져야 할 진짜 장본인은 바로 N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이라는 부분이다

소위 인터넷 세대라 불리우며 2002년 대선을 계기로 중요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이들은 이미지의 허상에 빠져 온 국민이(즉 기득권층이나 민중 모두가) 그 문제들을 양산해 낸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보수 정치인, 미국 등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긴 하지만, 어쨌든 젊은 세대 역시 이미지의 환상에 빠져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만은 변함없는 진리인 것 같다

 

이미지란 간단히 말하면 가짜다

실체가 아니라 허구라는 얘기다

대표적인 예로 연예인들을 들 수 있다

박신양은 "파리의 연인"에서 멋지고 능력있는 자동차 회사 사장으로 나오지만, 그것은 드라마에서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기주와 박신양을 동일시 하여 박신양의 일거수 일투족에 주목한다

부어스틴의 진단대로 현대 사회는 이미지의 환상 속에 빠져 있기 때문에 이미지에 의해 실체가 가려지는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현대 사회는 더 이상 영웅을 원하지 않는다

영웅이란 가치 있는 업적을 쌓고 그 가치 때문에 사람들이 숭배하는 인물인데, 대중화 사회가 되면서 더 이상 그들은 받들어 모실 특별한 인물을 원하지 않게 된다

이 영웅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사람이 바로 "유명인"이다

"유명인"이란 하나의 고유 명사로써 쓸 수 있을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유명인의 가장 큰 특징은 업적은 없고 이름만 있다는 것이다

업적이 이름에 가려져 이름 자체만으로 세인의 관심과 돈을 벌어 들일 수 있다면, 그는 유명인의 자격을 얻은 셈이다

이 유명인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집단은 언론이다

연예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도하여 돈을 버는 스포츠 신문이나 연예 정보 프로그램이 가장 간단한 예다

 

부어스틴은 대서양을 최초로 횡단한 린드버그가 어떻게 영웅에서 유명인으로 몰락했는지를 통해 자세히 설명한다

25세의 나이로 단독비행으로 대서양을 횡당한 린드버그는 온 미국인의 영웅이 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영웅은 별다른 돈벌이가 되지 못한다

미국 언론들은 그를 유명인으로 깍아 내리면서 엄청난 돈을 번다

이를테면 린드버그의 어린 시절, 린드버그가 좋아하는 것, 린드버그가 추천하는 책 등 린드버그에 관한 온갖 가쉽거리를 만들어 내므로써 신문과 TV 프로그램을 판다

월드컵 당시 신문과 텔레비젼이 군중들이 모인 장면을 단지 찍기만 해서도 엄청난 기사를 만들어 냈던 것처럼, 미국 언론은 린드버그에 관한 아주 사소한 것도 기사거리로 둔갑시킨다

부어스틴이 간파한 것처럼 이것은 사람들의 과도한 기대 심리에서 비롯된다

사실 특정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진짜 기사거리는 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자극적이고 더 새로운 기사를 원한다

언론은 바로 이 심리에 영합해 아무 것도 아닌 일을 엄청난 기사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이 일은 큰 돈이 되기 때문에 더욱 더 정교하고 전문적으로 행해진다

 

저자는 뉴스나 신문의 기사들을 가짜 사건이라고 정의하는데, 가짜 사건이란 실체와 아무 관련이 없는, 자연발생적이 아닌 계획적으로 조작된 모든 기사를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가 정치인들의 폭로성 발언이다

그들은 마치 뭔가 대단한 게 있는 양 자극적인 발언을 하므로써 세인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언론은 그들을 뒤쫓아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다 기사로 만든다

그러나 정작 시간이 지나면 그런 발언들은 아무 증거도 없는 뜬소문에 불과하다는 게 밝혀진다

그들은 세인의 이목을 주목시키기 위해 있지도 않은 사건을 만들어 내고, 언론은 충실히 그들의 의도대로 열심히 홍보를 해 준다

(걸핏하면 폭로성 발언을 일삼는 홍준표 의원이 생각난다)

미국의 유명한 극우 반공주의를 몰고 온 매커시 의원은 언론을 다루는데 뛰어난 기술을 가졌는데, 오후에 기자 회견을 하려면 오전에 기자 회견을 통해 오후에 중요한 발표가 있다고 홍보했다고 한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실체가 없는 가짜 사건이 드러날 처지가 되면 증인이 확보되지 않았다, 누군가 발표를 막을 압력을 넣는다는 식으로 발표를 미루면서도 세인의 이목을 다시금 집중시킨다

 

이미지라는 가짜에 가려 진실이 왜곡된 대표적인 경우로 저자는 또 여행을 든다

과거에 여행이란 고행과 이국적인 분위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여행은 돈을 주면 즐길 수 있는 관광으로 전락했다

이제 사람들은 모험을 즐기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

유명 관광지라고 사람들이 쫒아 다니는 곳은 본래의 의미를 잃어 버린 채 관람하기 위한 객체로 전락한다

즉 가짜(관광지)가 진짜(자연)를 눌러 버린 것이다

사실 이 부분에서 나는 무척 고민을 했다

고생하는 것이 진짜 여행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흔히 패키지 관광을 깃발 부대라고 비난하지만, 여러 단점들이 있지만 안내자와 함께 가는 패키지 역시 좋은 점이 많다

가장 일반적이고 핵심적인 곳을 가장 짧은 시간에 데려다 준다는 점에서, 일주일도 못 되는 휴가를 가진 직장인들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쇼핑지에 끌려 다닌다거나, 돈벌이로 전락한 원주민들의 민속춤을 구경할 때는 왠지 모를 비애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이 관광 대상이 되지 않는다면 생계 수단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이미지란, 특히 광고로 대표되는 이미지란 개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지배 이념이 되버렸다

그가 후기에서도 밝히는 바이지만, 이제 이미지란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식으로 수용해야 할지를 논의해야 할 때다

이 책이 쓰여진 60년대는 미국이 최고의 경제 성장을 누리며 자본주의의 폐혜에 대해 막 눈뜰 시점이다

그래픽 혁명 시대에 대한 고찰이 아직은 학계에서 인정받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 당시 미국 학자들은 건국 당시 정치 상황 등에 몰두했다고 한다) 부어스틴이 첫 시도를 한 셈이다

부어스틴은 겸손하게도 성급한 전망이나 나아갈 방향 등은 제시하지 않았다

우리가 인지하지조차 못하는 이미지의 허구와 환상에 대해 그는 조목조목 밝히고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이미지"는 경제적인 이득과 연결되어 어쩔 수 없이 돈벌이와 관계없는 "진실"을 잡아 먹어 버린다

"이미지"를 부정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것과도 같은 엄청난 일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미지를 없애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이미지가 어떻게 진실을 가리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 세대가 할 일은 (부어스틴은 현재 90세다) 어떤 방향으로 이미지를 수용해야 할 것인가의 실제적인 논의다

 

명품을 가지면 특별한 사람이 된다는 환상, 요가를 하면 웰빙 열풍에 동참하게 된다는 착각, 몸짱이 되야 인정받는다는 강박관념, 정작 축구에는 별 관심도 없으면서 붉은 악마에 가입하는 허위 의식 등 우리 주변에는 이미지가 실체를 가리는 일들이 널려 있다

(문득 립싱크 욕하던 신해철의 독설이 생각난다 진짜 음악을 들으려면 콘서트장에 와야지, 왜 TV 앞에 편하게 앉아 욕하냐고 하더라)

이제 우리는 이미지와 실체를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해야 할 것이다

이미지를 거부하지는 못하더라도 무엇이 실체고 무엇이 이미지인지 조차 모르게 되면, 정체성을 잃은 가짜 삶을 살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부터 읽고 싶던 책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서관에는 없어서 광주까지 가서 어렵게 빌렸던지라 더욱 열심히 읽었는데,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다른 독자들도 지적했듯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책과 작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쉽게 몰입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나마 토머스 하디나 에드워드 기번처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라면 좀 알겠는데, 미국이나 영국에서 유명한 현대 작가들은 들어 본 적도 없는지라 쉽게 공감이 안 갔다

또 저자의 서술 태도 역시 쉽고 매끄럽지만은 않았다

모르긴 해도 역자 역시 번역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소설과 작가와 단어들의 뉘앙스를 설명하기 위해 역자는 주석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볼만한 재밌는 에세이다

제일 부러운 것은 저자 앤 패디먼의 가족 환경이다

출판사에서 교정일을 보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앤은 어머니와 오빠를 포함한 네 가족이 모두 활자 중독 수준이었는데, 자신과 똑같은 남자와 결혼해 두 아이들까지 같은 증세를 보인다

이 얼마나 대단한 행복인지!!

서문에서도 밝히지만 이 책은 그저 앤의 개인적인 일상사를 이야기 함에도 불구하고, 전부가 책에 대한 이야기다

책이 곧 삶이기 때문이다

남편 조지와 침대에서 서로 책을 낭독해 주다가 잠이 든다는 부분에서는 두 손 다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취미를 공유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연애의 방법임이 틀림없다

 

책을 사랑하는 습성은 부모에게 물려받기 쉬운데, 앤이 그랬듯 나 역시 아빠에게서 전해 받았다

활자 중독증이라는 특성 때문에 아빠와 유달리 친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앤의 가족과는 다르게 내 동생들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만 아빠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물려받은 셈이다)

그래서 우리 부녀간의 대화는 거의 대부분이 책에 관한 내용이다

거기까지는 앤과 비슷한데, 결혼 부분에 이르면 그녀를 부러워 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남자 친구는 책에 거의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가 읽는 책은 기껏해야 세금 적게 내는 방법 같은 실용서다) 함께 캠핑을 가서 텐트 안에서 책을 읽는 연애 따위는 기대할 수가 없다

물론 결혼을 하게 되면 내 책만 소장하면 되니까 공간적인 면에서는 이득이긴 하다

 

책을 어떻게 소장할 것인가는 책 애호가들에게 공통된 골칫거리인 모양이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가진다"의 저자 역시 같은 고민을 토로했는데, 앤 역시 남편 책까지 합쳐져 아파트가 고서점으로 변할 것 같다는 걱정을 한다

특히 앤은 90이 넘은 아버지의 책들까지 물려 받아, 다시 아들딸에게 전해 줄 계획이라 소장할 책들이 더욱 많다

책 소장 문제는 우리 집도 심각하다

책을 몽땅 쌓아 놓고도 살기에 충분할 만큼 넓은 집에 살면 문제가 없으련만, 경제적 능력 때문에 집의 크기는 늘 한정되어 책이 주거 공간을 침입하고 있다

지금 우리 집은 더 이상 책을 쌓을 공간이 없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계속 책을 산다) 내가 독립해서 나오지 않는 이상 내 책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다

 

이 책에서 새롭게 발견한 독서법이 바로 "현장 독서"다

책에 나온 바로 그 장소에서 책을 읽는 독서법인데, 이를테면 "로마 제국 흥망사"를 로마에서 읽는 식이다

앤과 그녀의 남편은 "콜로라도 강과 그 협곡 탐험"을 콜로라도 강 옆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면서 읽었다

당연히 책에 등장하는 급류의 두려움을 온 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인쇄된 그림으로만 보는 명화들을 직접 미술관에 가서 볼 생각은 했지만, 책에 나오는 장소에서 책 읽을 생각은 미처 못했는데, 역시 앤은 대단하다!!

 

앤이 나와 비슷한 습관이 하나 있는데, 카탈로그를 열심히 읽는 것이다

내가 활자 중독임을 카탈로그를 읽을 때 느끼는데, 앤 역시 아주 꼼꼼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 읽는다

덕분에 그녀의 집에는 온갖 종류의 카탈로그가 배달이 되서, 그녀가 일이 많을 때는 남편이 우편함에서 미리 절반은 버려 버린다

앤과 나의 공통점은 카탈로그를 열심히 읽지만, 절대 물건을 사지는 않는다

우리가 카탈로그를 읽는 까닭은 활자를 읽기 위함이지,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책을 소장하는데 별 의의를 안 두기 때문에 저자의 싸인을 받는다거나, 누군가의 헌사가 쓰여진 책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는데, 앤을 보면서 소장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느꼈다

싸인회가 생기지 전에 열혈 독자들은 책을 산 후 저자에게 싸인해 달라고 보낸다

물론 베스트셀러 작가의 경우 수 십만권의 책에 일일히 싸인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책이 주인에게 돌아갈 확률은 아주 낮다

자신의 글을 남겨 선물한 책을 어느 헌책방에서 발견하게 된 기분은 어떨까?

적어도 누군가 글을 써서 선물한 책은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간직해야 될 것 같다

또한 서점에 진열된 책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앤은 말한다

워낙 책이 많아 나중에 고서점을 열까 하는 소망도 갖지만, 집 없는 책은 그저 팔아야 할 물건일 뿐이라는 서점 직원의 충고를 앤은 기꺼이 받아 들인다

"집 없는 책"이란 말은 우리가 책을 읽고 내 것으로 소유할 때만이 의미있는 한 권의 책이 된다는 것을 잘 말해 준다

 

맞춤법에 집착하는 앤의 가족은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아 반가웠다

솔직히 나는 앤처럼 한 권의 책에서 수백 개의 오자를 발견할 만큼 대단한 실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맞춤법에 맞게 글을 쓰려고 꽤 애를 쓴다

특히 광고 등에서 잘못된 철자를 발견하면 꼭 지적하고 넘어간다

(옛날에 만나던 남자 친구의 편지를 엄마가 보더니만, 맞춤법도 제대로 못 맞추는 남자랑은 만나지 말라는 엄마 말이 생각난다 엄마는 국어 선생님이시다)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가서 메뉴판을 보면서 잘못된 철자를 찾아 내는 앤 가족의 모습에 정이 간다

 

역자는 후기에서, 한 때 독서가 취미라고 하면 당연한 것을 취미라 말한다고 비난받던 시절이 그리울 정도로 요즘은 책 읽는 게 특별한 일이 되버렸다고 한탄한다

이제 독서도 동호회를 만들 정도로 특별한 취미가 됐다

취미로서의 독서는 당연히 해야 할 교양으로서의 독서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 게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책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앤의 에세이는 더욱 빛이 난다

나도 내 책에 애정을 느끼면서 수집하는데 열을 올릴 날이 왔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멋지다 다나카
구로다 다쓰히코 지음, 김향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언젠가 신문에서 일본의 회사원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좀 이해가 안 가서 잘못 알려진 게 아닌가 했다

말하자면 이슈를 만들기 위해 과장했다고 추측했다

노벨상이라면 가장 널리 알려지고 권위를 가진 상인데, 학자가 아닌 회사원이 수상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속사정을 알아 보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다

 

다나카는 월급을 받고 회사에서 일하는 샐러리맨이 맞다

시마즈 제작소의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다

노벨상을 받은 그의 업적은 차치하고서라도, 석사 학위도 없는 무명의 젊은 회사원에게 과감히 수상을 결정한 노벨상 위원회의 열린 사고에 놀랬다

특히 연공 서열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교수도 아닌 겨우 42세의 샐러리맨의 노벨상 수상은 사회적으로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특히 그의 연구 성과를 공정하게 기록하고 전세계에 알린 미국과 독일 학자들의 학자적 양심도 빛을 발한다

(로버트 코터 교수가 아니었으면 그의 논문은 학회에 소개되지 못했을 것이다)

 

다나카가 이룬 업적은 고분자 단백질의 질량 분석에 성공한 것이다

레이저를 쏘아 질량 분석을 하는데, 이 때 레이저 광선의 힘을 흡수하는 완충제를 만드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대부분 레이저 광선을 이기지 못해 녹아 버리기 마련인데 그의 표현을 빌리면 "우연히" 코발트와 글리세린을 섞게 됐다

코발트가 워낙 비싼 시료라 그냥 버리기 아까워 레이저를 쏘았는데, 녹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 완충제로 인해 레이저에 의한 고분자 단백질의 질량 분석이 가능해졌다

비록 그가 "우연히"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그 우연한 발견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실험과 시행 착오를 겪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무명의 회사원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 외에도 일본인의 마음을 끄는 다나카의 매력은 바로 그 겸손함과 유머 감각에 있는 것 같다

다나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 온 영광의 무게에 묻히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애쓰고, 여유있는 태도를 견지한다

노벨상으로 받은 상금을 어디에 쓰겠냐는 질문에 몇 십만엔이라면 디지털 카메라를 사겠지만, 너무 많은 돈이라 뭘 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던가, 여자들이 당신을 최고의 남편감이라고 치켜 세우는데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I hope that I were single"이라는 재치있는 답변을 한다

또 쿄도대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하자 힘 안들이고 얻는 학위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른 곳에는 절대 사용하지 않겠지만, 비지니스석 예약에 학위가 도움이 된다고 하니, 비행기 탈 때만 쓰겠다고 쑥쓰럽게 웃기도 한다

노벨상 수상식에서 영어로 연설하기 위해 밤새워 연습한 그는 혹시 사람들이 그 연설을 듣고 진짜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착각하면 어쩌냐고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멋지다 다나카"라는 제목에 딱 어울리는 에피소드들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그는 일본 유수의 대학이나 해외 연구소들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시마즈 제작소의 엔지니어로 남는 놀라운 결단을 보여 준다

이미 시마즈 같은 작은 회사에서는 거물이 되버린 다나카에 대한 적절한 예우를 갖추기 어렵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하던 연구를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한다

부장이나 이사 같은 관리직도 거절한 다나카에게 회사는 펠로우라는 직책을 주고 현장에서 계속 연구할 수 있게 배려해 주지만,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턱없이 부족함은 물론이다

언론에서는 다나카가 외국으로 나가면 얼마나 많은 강연료와 연구비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호들갑을 떠는데, 그가 계속 회사에 남겠다고 결심한 것은 참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통 노벨상을 타면 연구를 그만두고 연구소장 같은 행정 책임자로 들어 앉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사실 이런 종류의 전기를 대할 때는 지나친 미화에 눈살을 찌푸리기 마련인데, 더구나 동시대인인 까닭에 어느 정도의 거부감은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높이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일본인인 저자가 서구 언론의 비판을 겸손하게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 언론들은 일본 내의 기술자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연구 성과를 올리더라도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고 그 이득을 회사가 취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연공 서열을 중시하고 집단 문화 속에서 개인이 튀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개인의 창의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닫힌 사회라고 평한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발명하기 보다는 있는 것을 개선하는 식의 연구가 많고, "흉내는 잘 내지만 신규 개척은 서투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샐러리맨의 수상에 대해 일본 내부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꼬집어 낸 미국 언론의 비판을 비난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라고 수용하는 저자의 성숙한 서술 태도에 박수를 보낸다

또한 서구에서는 노벨상 수상에 마치 국운이라도 걸린 듯 소란 피우지 않고, 평화상을 제외한 다른 부문의 상들은 그저 학계 내에서만 인정을 받을 뿐이라고, 요란스런 일본 언론의 행태를 비웃지만 샐러리맨의 수상은 세계 최초이고, 일본에서는 노벨상 수상이 흔한 일이 아니니 그런 비웃음 쯤은 얼마든지 감내하면서 크게 기뻐해도 되지 않겠냐고 한다

그 여유있고 솔직한 태도가 마음에 든다

 

노벨상이 국력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는 아니라 할지라도 일본이 이미 12명의 수상자를 냈다는 것은 분명 부러운 일이다

이럴 때는 일본이 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한다

특히 과학 분야에서는 무려 9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연속 수상했고, 다나카가 화학상을 받은 2002년에는 도쿄대 교수인 고시바 마사토시가 물리학상을 받아 한 해에만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우리 나라도 과학 분야에서 이런 자랑스런 학자들을 가질 날이 곧 오게 되길 바란다

이공계의 위기라고 다들 이공계를 기피하는 분위기인데, 샐러리맨조차 노벨상을 받는 일본의 저력이 부럽기만 하다

 

다나카에게 노벨상 수상이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설마 그 노벨상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스웨덴에 비슷한 상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고 한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찾아 온 엄청난 영광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다나카가 정말 멋지게 보인다

특히 엔지니어라는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그 마음가짐이 더욱 돋보인다

이제 겨우 43세인 다나카가 인류 발전에 기여할 더 훌륭한 연구들을 많이 하게 되길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