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책 읽기
최성일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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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읽은 책 에세이 중 상당히 수준있는, 괜찮은 책이다

보통 책 에세이라면 개인의 취향이나 책에 얽힌 경험담을 위주로 하는데, 이 책은 좋은 책을 소개해 주는 서평 같은 느낌이다

"테마가 있는 책 읽기"라는 제목에 충실한 셈이다

 

여기 소개된 책 중 가장 인상깊었던 책은 신영복의 "엽서"다

이른바 옥중서신인데 기다림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눈물이 날 뻔 했다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늙은 어머니에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만으로도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위로하는데, 그렇게 밖에 말하지 못하는 한 양심수의 애끓는 마음이 전해지는 기분이다

다음 번에 읽을 책은 당연히 "엽서"다

이 책은 저자가 언급한 옥중서신 중 가장 뛰어나고 또 제일 많이 팔렸다고 한다

 

80년대만 해도 자본론이나 사회과학 서적 등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필수 교양 도서로 인식됐는데, 시대가 변한 탓일까?

대학 앞 사회과학 서점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고 한다

더 이상 대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고, 영상 매체나 미디어라는 새로운 문화 형식에 열광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왠지 쓸쓸해지는 건 사실이다

 

환경 문제나 의료 개혁, 인디언, 아나키즘 같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여러 책들이 소개되는데 한 번쯤 읽어 볼만한 책들이 많다

특히 박홍규의 책을 꼭 읽고 싶다

그는 까뮈나 카프카 등에 관한 전기를 썼는데, 까뮈는 식민 치하 조선에 살면서도 조선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는 일본 지식인에 비유하거나, 카프카는 식민지 치하의 노동자로 일하면서 밤에만 글을 쓰는 가엾은 젊은이로 묘사한다

카프카는 자기와 출신이 비슷해서 쉽게 읽히는데, 카프카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 때문에 쓸데없이 어려워졌다고 논평한다

그 말을 들으니, "변신"이나 "성" 등이 읽고 싶어진다

또 "얼어 있는 강을 도끼로 내리치는 정도로 우리 머리를 강타하는 책이 아니라면, 대체 왜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라는 카프카의 과격한 독서론을 인용한다

나도 이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저자는 고종석의 전작주의자인데, 한 작가의 책을 모두 읽으면 그 작가와 비슷한 관점을 갖게 된다고 한다

조셉 켐벨은 한 수 위로, 그 작가가 읽는 책까지 다 읽는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작가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가치관을 갖는 방법은 좋은 작가를 정한 뒤, 작가의 책은 물론, 작가가 읽는 책까지 다 읽어 버리라는데, 쉽게 실천하기 힘들 것 같다

그렇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작가라면 시도해 볼 만 하다

 

아나키즘이란 무정부주의자라기 보다는 무권력주의라는 저자의 해석도 마음에 들고, 환경 에세이를 내면서 정작 비환경적인 종이로 출판하는 위선을 꼬집는 것도 시원했다

또 산을 타는 사람들과, 바다를 소개하는 책도 무척 흥미로웠다

등산이란 예술과 과학과 스포츠의 절묘한 조합이라는 말을 들으니, 산 타는 사람들이 새롭게 보인다

사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등산이다

걷기나 오래 달리기 같은 건 잘 하고 좋아하는데, 계단 오르기나 등산은 정말 싫어하고 또 못한다

풍선 하나를 다 불지 못하는 작은 폐활량 때문일 것이다

대체 왜 위험을 무릅쓰고 산에 오를까, 그 심리가 궁금했는데 산악인들이 등산을 예술로 생각한다고 하니,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술을 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주고, 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을 불러 일으키며, 우리의 삶을 치열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 때문에 아무 이득 없이도 매달리는 게 바로 예술 아닌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과학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아주 드문 책이라고 한다

나는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읽었는데, 칼 세이건은 절대 재밌게 혹은 쉽게 읽히는 작가가 아니다

그 지루하고 반복적인 논증에 많은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과학의 정신을 밝히는 그의 노력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비록 지루하고 어렵게 읽은 책이지만, 기술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정신으로서의 과학을 얻게 된 좋은 책이다

그가 쓴 가장 유명한 "코스모스"를 읽어 보고 싶다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 출판된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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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 새 시대를 열어간 사람들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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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이라면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자로 알려졌다

18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 동안 그는 수백권의 책을 썼는데, 새 시대를 여는 새로운 학문으로 평가받는다

비록 요즘은 실학이 유교의 변형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 되기는 하나, 어쨌든 그가 위대한 학자였음은 분명하다

정약용이 유배됐던 강진의 다산 초당에 가 본 적이 있다

유배지로부터 꽤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매일 이 곳을 오르내리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18년씩이나 시골 벽지에 버려진 한 천재의 고뇌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간다

 

이덕일의 역사서는 실록과 문집에 의거한 정확한 사실이라는 게 마음에 든다

그렇지만 그의 해석들은 다소 편향된 기분이다

같은 자료를 보고도 한 쪽으로만 몰아간다고 해야 할까?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재밌게 읽었지만, 지나치게 송시열을 깍아 내린다는 기분이 들어 편치 않았다

또 "사도 세자의 고백"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기록들을 인용하면서 정확한 사실들을 제시하지만, 사도 세자를 지나치게 치켜 세운다든지, 혜경궁 홍씨의 고백을 철저하게 위선적인 것으로 모는 집필 태도가 불편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구절 중 이런 게 있다

실록이나 한중록에서는 사도 세자를 정신병자로 묘사하나, 사도 세자의 행장에서는 더없이 총명하고 훌륭한 군주로 나온다며 이 괴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묻는다

그러나 실록은 비교적 객관적인 기록이고, 행장은 죽은 후 고인의 좋은 점만을 모은 문집이다

어떻게 이 둘을 비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또 그의 서술은 워낙 사료 인용이 많아 다소 지루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정확한 근거를 대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 의미에서 정약용에 관한 책도 망설임 없이 골랐다

 

1권을 읽었는데, 정약용의 개인사 보다는 그가 처한 정치 현실에 관한 얘기가 많다

18세기를 강타한 정치 문제라면 천주교와 사도 세자일 것이다

정권을 잡은 노론은 반대파인 남인을 치기 위해, 이 두 문제를 끊임없이 정쟁에 이용했다

불행히도 정약용을 비롯한 대부분의 남인들이 천주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조선에 천주교가 전해진 경로는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하고 놀라운 일이다

대부분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되기 마련인데, 조선에서는 서학을 공부하는 양반층을 중심으로 자연 발생된다

중국 외에는 쇄국 정책으로 일임한 폐쇄적인 조선에 서양의 종교가 학문을 통해 스스로 일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지나치게 경직된 성리학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학문은 개방성을 유지할 때 발전할 수 있는데, 청나라가 들어선 후 조선은 소중화에 빠져 주자학 이외의 학문은 모두 사문난적시 했다

이것에 대한 반성으로 실학이 생기고, 좀 더 나아가 천주학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나 역시 천주교인이지만, 박해 때 순교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로마 시대 십자가형을 당한 성인들의 순교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수많은 교인들이 끔찍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

불교나 기타 다른 종교와는 달리 천주교는 서양에서 전래됐다는 사실 만으로도 거부감이 들기 마련인데, 얼마나 믿음이 깊었으면 순교까지 할 수 있었을지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특히 사대부였던 이승훈이나 이벽, 권철신 등의 순교는 더욱 존경스럽다

평민들과는 달리 주자학으로 길러지고 가문에 묶여 있을 사람들인데, 양반이라는 특권을 거부한 채 신앙을 고집한 그들의 믿음이 참으로 대단하다

이벽의 아버지는 심지어 아들의 배교를 위해 스스로 목을 매달 정도였으니, 아들이 느꼈을 심적 고통을 알 만 하다

 

정약용은 천주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혼인으로 넓게 엮어진 것은 알지만, 그 집안은 유독 천주교인과 인연이 많았다

아마도 남인들끼리 혼인을 하고, 그 남인에서 천주교를 받아 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정약용의 매형이 조선 최초 영세자인 이승훈이고, 부모의 위패를 불태웠다고 사형당한 윤지충이 그의 외종 육촌이 된다

형 정약현의 사위는 백서 사건으로 유명한 황사영이고, 셋째 형 약전은 국문장에서도 천주교인임을 당당히 밝혀 사형당한다

또 정약현의 처남이 조선 최초로 천주교를 일으킨 이 벽이다

그의 인척 관계를 보면, 천주교에 관심이 없는 게 이상할 정도다

 

이 때 천주교가 심한 박해를 받은 가장 큰 원인은 제사를 모시지 않는 문제였는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현재 천주교에서는 부모의 제사를 인정한다

시대가 달라지면 달리 적용될 수 있는 교리의 문제를, 왜 교황청에서 강직된 태도로 일관했는지 모르겠다

제사가 허용되더라도 조선의 특성상 탄압이 있었겠지만, 그 강도가 훨씬 덜했을 것이다

어쨌든 옳은 일에 대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대부들은,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처참하게 죽어 갔다

 

정약용과 정조는 매우 특별하고 가까운 관계였는데, 정조가 그의 재능을 아끼고 사랑했다

그러나 정약용은 남인이었고, 정조는 노론 일색인 조종에 쉽게 그를 등용하지 못했다

책에는 정조가 얼마나 카리스마 넘치는 왕인지 잘 묘사된다

비록 자신의 반대당인 노론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으나, 신하들을 휘어잡고 정국을 주도하는 강한 왕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다

일견 태종이나 세종, 영조 등에 비견될 만 하다

(임진왜란이 정조 시대에 일어났다면, 선조처럼 만주로 피난가자고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 세자가 뒤주 속에서 굶어 죽는 걸 목격한 비운의 아들이기 떄문에, 노론에 대해 뼈에 사무치는 원한을 갖는다

그러나 즉위 후에도 함부로 그들을 처단할 수 없을 만큼 노론은 큰 세력이 됐다

숙종이 환국을 통해 노론과 남인의 등용을 반복한 것과 달리, 영,정조 시대에는 이미 왕 혼자 정국을 운영하지 못하게 된 듯 하다

정조는 아버지의 원한을 25년의 치세 내내 서서히 갚아가는 방식을 택한다

즉 사도 세자 일로 죽이는 게 아니라, 다른 이유를 들어 하나씩 제거하는 것이다

정조처럼 신하들과 정국을 장악한 왕이 일거에 원수들을 처결하지 못한 걸 보면, 정당 정치의 싹이 보였다는 평가도 맞을 듯 하다

 

1권은 정조의 죽음에서 끝난다

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남인이란 이유로 이런저런 한직을 전전한 정약용은, 정조 사후 정순왕후에 의해 주도된 신유박해 때 유배되어 18년 동안 강진에 머문다

참으로 긴 세월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결국은 유배지에서 풀어 준 걸 보면, 이미 그가 아무 영향력도 없다는 걸 입증하는 기분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열린 미래를 지향하여 억압당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혔는데, 그것은 오늘날에도 해당되는 얘기 같다

특정 사상에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으나, 탄압받아 마땅한 사상은 없다고 생각한다

정조의 말처럼 정학이 바로 서면 서학을 탄압할 것도 없이 저절로 사멸할 것이다

사상 탄압을 할 시간에 그 관심과 여유를 바른 학문에 돌리는 학문적 아량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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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기술 1 로버트 그린의 권력술 시리즈 3
로버트 그린 지음, 강미경 옮김 / 이마고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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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멋있어서 읽고 싶던 책인데, 막상 고르고 보니 분량이 만만치 않다

700페이지 남짓 되는 분량이라 (미국 책들은 대체적으로 엄청난 분량을 자랑한다 힐러리 자서전도 분량이 너무 많아 두 권으로 분책했다고 한다) 며칠에 걸쳐 나눠 읽었다

다행히 쉬운 내용이라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이성을 유혹하는 연애 서적은 자기 계발서와 더불어 널리 퍼져 있다

이 책이 그런 뻔한 내용을 담았다면 700페이지 씩이나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상투적인 말도 있지만, 풍부한 역사적 문학적 예화들과 인간의 심리 분석이 돋보이는 책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훌륭한 책은 아니다

 

저자의 주장대로 현대 사회는 이성만을 유혹하는 게 아니다

유혹은 도처에 널려 있다

특히 매스미디어에 의한 광고가 일반화 되고, 선거를 통한 대중 정치로 바뀌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유혹을 당하고, 또 남을 유혹해야 한다

유혹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요즘 유행하는 "설득"이라는 단어로 대치할 수 있다

"유혹의 기술"을 다른 말로 바꾸면 "설득의 심리학"이 될 것 같다

저자는 함께 사는 사회에서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인간 관계를 맺기 위해서라도 유혹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마 전에 읽은 "이미지와 환상"에 완전히 대치되는 책이다

부어스틴은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고 실체를 간파하라 충고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을 이미지로 둘러싸 상대가 나의 실체를 보지 못하도록 감추라고 말한다

사회적 현상, 즉 정치라든가 매스 미디어에서는 부어스틴의 말을 참고하고,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이 책을 참조하는 게 현명할 것 같다

 

여러 가지 유혹의 전략, 혹은 인간의 심리에 대해 설명하지만 기본 조건은 본인이 매력적이어야 할 것이다

또 매력의 가장 큰 부분은 외모다

현대 사회가 외모 지상주의라 걱정하지만, 비단 오늘날의 문제는 아님을 보여 준다

다만 과거에는 남자가 지닌 권력을 나눠 갖기 위해 여자에게만 중요했던 외모가, 이제는 남녀 모두에게 중요해졌다는 게 차이다

날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외모는 지적 수준과 더불어 개인의 가치를 높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물론 경제적인 능력이야 두 번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기본 조건이다

 

유혹의 기술들을 살펴 보면, 헤어질 때는 과감하게 이별을 고하든가 아니면 상대가 집착하는 것 이상으로 매달리라고 한다

그러면 상대는 금방 질려서 도망갈 거라고 한다

이것은 반대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사랑을 지키고 싶다면 집착이나 소유욕은 절대 금기라는 얘기다

인간이 유혹에 곧잘 넘어가는 이유는 권태 때문이라고 한다

기본적인 생존 욕구가 해결되면 가장 견디기 힘든 감정이 바로 권태감일 것 같다

흔히 배부른 소리라고 하지만 사는 게 재미없고 지겨워지면 하루하루가 끔찍해진다

이 때 짠 하고 나타나 색다른 즐거움을 주면서 유혹하면 대부분은 쉽게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니까 유혹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절대 평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연인 관계가 일상화 되면 곧 관계는 깨지기 쉽다

현실이란 늘 지루하고 따분한 것이므로 또다른 유혹을 기다리는 게 인지상정이다

저자는 관계 지속을 원하면 재유혹 하라고 충고한다

재유혹이란 색다른 환경을 말한다

여행이나 축제 등의 공간적 변화일 수도 있고, 질투를 유발시키는 삼각 관계일 수도 있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뒤르 부인은 변신의 천재였다고 한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같은 드레스를 입은 적이 없고, 처소에 온갖 희귀한 물건들을 장식했으며 (중국 도자기나 비단 같은), 나중에는 아예 극장을 지어 매주 새로운 공연을 선보였다고 한다

사냥에 몰두하던 루이 15세가 문화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바로 그녀의 공연이었다고 하니, 왕의 기대감이 얼마나 컸는지 알 만 하다

그야말로 천일 동안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 주면서 왕의 관심을 유지한 셰헤라자데에 비견될만 하다

(퐁파뒤르 부인은 나이가 들자 젊은 여자를 왕에게 공급하는 방식으로 관심을 유지했다고 하니, 권력을 원하는 약한 여자의 가엾은 발버둥 같기도 하다 장녹수 역시 왕에게 제공되는 여자를 직접 고르는 식으로 연산군의 관심을 유지했다)

 

흥미있는 예화는 "위험한 관계"에 등장하는 발몽과 투르벧 부인이다

이 소설은 "조선남녀상열지사-스캔들"이라는 우리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는데, 정숙한 여인이 바람둥이에게 넘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바람둥이는 정숙한 여인의 내부에 잠들어 있는 일탈 욕구와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다), 상대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는 죄책감을 이용한다

당신 때문에 괴롭다고 자학적인 모습을 보이면 마음이 약한 정숙한 부인은 자비와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이뤄진 사랑이 과연 행복할 것인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한가인과 이정진의 사랑이 곧 깨지듯 (이정진은 비오는 날 그녀의 집 앞에서 주먹으로 벽을 내리치는 자학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얻는다) 바람둥이에게 유혹이란 그저 게임 에 불과하다

 

여러가지 전략과 기술들을 서술해 놨지만, 이 책의 미덕을 찾자면 상대의 입장에 서서 그가 뭘 원하는지 들여다 보라는 발상의 전환이 새롭다

윤리 교과서에 나오는 "역지사지"나, "대접받고 싶은 만큼 남을 대접하라"는 성경의 문구가 인간 관계의 황금률임은 익히 알고 있으나, 이 책은 새로운 방식으로 그 진리를 강조한다

인간은 누구나 나르시시즘에 빠져 살기 때문에, 자기 말을 성실하게 들어 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관심을 표명해 주면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기 마련이라고 한다

즉 내 관점에서 보지 말고, 상대의 관점에서 보라고 한다

쉬운 말 같으나, 참 하기 어려운 충고다

진정한 유혹자는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꿰뚫어 채워주기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반드시 남을 유혹하려는 경우가 아닐지라도, 상대의 입장을 배려해 주는 마음가짐은 모든 인간 관계에 필요한 핵심 상항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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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 2004-12-1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글이었습다..마지막에 '진정한 유혹자는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꿰뚫어 채워주기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부분이 맘에 드네요...



 
의료개혁과 의료권력 나남신서 531
조병희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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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개혁은 직업적인 이유로 늘 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적절한 책을 찾기 힘들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집어 들었는데, 많지 않은 분량에 핵심을 잘 집어낸 좋은 책이다

(우수 학술 도서에 선정됨)

의료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의사들이나, 시민 단체가 참조해 볼만 하다

 

이 책의 배경은 2000년에 벌어진 초유의 사건, 의사 파업이다

국민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의사들이 파업을 벌였다는 도덕적인 충격 보다는, 기득권층이라 여겨 온 전문가 집단이 정부에 반발해 파업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훨씬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당시 의사들을 지지하는 사회 세력은 거의 전무했는데, 다만 변호사 협회가 전문가들에 대한 국가의 간섭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지지를 보냈을 뿐이다

저자는 의사들의 척박한 의료 환경을 옆에서 지켜 보는 간호사나 병원 노조들이 왜 그들의 파업에 동조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만약 그들이 의사들의 파업에 지지 성명을 냈다면, 집단 이기주의라는 도덕적 비난의 차원을 넘어서 의료계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인식했을 거라며 아쉬워 한다

 

의사들이 저수가 정책에 시달리며, 약가 마진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지를 맞출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외면한 채, 의사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무조건 의약 분업만 시행하려 든다고 불평을 토로했다

그런데 저자는 근본적인 문제를 의료 환경의 변화로 본다

지금까지 의사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질병 치료에 절대적인 권력을 휘둘러 왔다

특히 생의학을 바탕으로 한 서양 의학이 눈부신 성공을 거두면서, 환자들은 치료에 소외되어 갔고 더욱 전문적이고 복잡한 치료가 최선의 치료라 각광받았다

그러므로 의사들은 의약 분업을 논의하는 자리에, 동네 슈퍼 아줌마나 주유소 아저씨가 왜 나오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일반인의 의학적 지식을 신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변하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현대는 갈수록 탈권위적인 사회로 변모해 간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정보가 공유되고 이제 환자들은 의료에 있어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비단 의학 분야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전문가 집단은 사회의 개방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권위를 내세우며 전문성을 근거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일반인의 개입을 극도로 혐오하게 됐다

이것이 의사들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킨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열린 의료란 어쩌면 패러다임의 전환일지도 모른다

의료 행위의 결정 과정에 의학적 지식이 부족한 일반인들의 의견을 참조해야 하고,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행위들에 대해서도 수용할 것을 요구하니, 어찌 보면 의사로서의 자부심을 훼손시키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처럼 그것이 대세라면 결국 어떤 방향으로든 수용해야 살아 남을 것이다

현재와 같이 의사가 치료에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다는 생각으로는, 변화하는 의료 환경에서 생존하기 힘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례로 미국은 이미 열린 의료를 지향하며, 대체의학 등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한다고 한다

 

의사 파업을 바라보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은, 의사와 병원의 분리다

그 동안 정치에 무관하고 진료실에서 개인적인 삶을 살아 온 의사들이 한꺼번에 파업을 한 것은 놀라운 일이며, 의사라는 신분이 그들을 하나로 묶었다고 본다

즉 같은 의사라고 동지 의식을 갖은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병원 자본과 프롤레타리아 의사를 구분한다

과거 한국은 의사가 소자본으로 자기 진료소를 운영하는 방식이 대세였는데, 정부가 민간 부문에 의료 사업을 의존하면서 급속도로 의료 자본이 성장하게 된다

의사들이 영리 목적으로 일하면서도 탈자본화를 지향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 분업이었는데, 병원 자본이 대량 도입되면서 자체적인 견제가 불가능해진다

의료 체계가 제대로 수립되면 의사들은 자기 영역 환자만 보고 그 외는 다른 병원이나 상위 체계로 넘긴다

말하자면 동료 의사나 병원과 보완재 관계이지, 대체제 관계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런데 종합병원이 이익 창출을 위해 외래 환자 유치에 나서면서 (이것은 전국민 의료 보험과 저수가 정책에 원인이 있다) 동네 의원과 경쟁 관계에 놓인다

큰 병원과 전문 의료진을 선호하는 국민들의 특성상, 의사 개인이 자본에 대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종합 병원은 전공의 선발권이나 의료 환경의 높은 위상을 위해 대학 병원으로 승격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 이 노력이 신설 의대 설립을 유도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의료 개혁이 종결되면 의사들의 계층 분화가 이뤄질 것이라 예상한다

사실 이것은 새삼스런 주장도 아니다

자본을 소유한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의 분화는 이미 "부자 의사, 가난한 의사"의 구분을 일반화 시키고 있다

의사가 자본에 예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1차 의료 기관을 살려야 하고, 그것이 의료비 상승을 막는 효과적인 방법임을 주지시킨다

병원의 외래 환자에 대해서도 의약 분업을 실시한 것이 그 노력의 일환이다

또한 의료 전달 체계를 확립하여 병원이 의원과 경쟁하는 것을 최소화 시키라고 한다

전문의와 큰 병원, 고가의 검사 기구에 집착하는 국민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현대가 self care의 시대임을 지적한다

이미 미국에서는 자조 집단이 활성화 되서 이 집단의 컨설트를 전문으로 하는 의사도 생겼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알콜 중독자의 모임인 AA일 것이다

(이 단체의 효과는 정신과 교과서에도 나온다)

출산을 질병이 아닌, 인체의 자연스런 발달 과정으로 인지해 병원이 아닌 집에서, 의사가 아닌 가족의 주도 하에 분만하려는 노력도 TV에 자주 소개된다

저자는 비아그라나 폐경기 후 호르몬 복용 등을 예로 들면서 의학이 생활을 지배한다고 걱정한다

말하자면 과거에는 질병이 아닌 자연스런 노화 과정이었는데, 이러한 생활약물이 등장하면서 개인의 일상을 의료 권력이 통제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나는 고백한다, 현대 의학을"에서도 읽은 내용이지만 생활 약물은 (life drug) 개인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 준다

이제는 질병이 아니더라도 사는 데 불편한 점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이다

노화 연구도 넓게 보면 이 범주에 들어간다

질병의 치유 보다 예방이 더 중요시 되는 현대의 건강 수준을 만족시키려면 생활 약물의 개발은 당연한 수순이라 본다

 

외부에서 바라 본 의사 집단에 대한 분석을 읽으며, 가장 중요한 핵심은 열린 의료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교과서적인 진료 요구에 깔려 있는 "부권적 전문주의"를 읽어 낸다

사실 모든 과학이 갖는 불확실성이라는 한계를 인정한다면, 열린 의료는 실수를 줄이기 위한 유일한 대안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전에 해결해야 될 문제들이 많지만, 어쨌든 이론은 그렇다)

특히 저자는 의료 행위에 있어 의사가 유일한 주체가 아니며, 환자는 물론 약사, 간호사, 의료 기사, 대체 의학 등등 기타 집단과의 상호 협조를 요구한다

주도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으나 유일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타자가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냉정하기 마련이다

변해 가는 의료 환경에 적응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환자 치료에 임하기 위해서 한 번쯤 생각해 볼 중요한 문제들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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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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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고 싶던 책이었다

아마도 직업적인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번역할 때 원제보다 훨씬 그럴 듯한 제목을 잘 붙이는데, 이 책의 원제는 "Complications"였다

(스티븐 킹의 창작론 "유혹하는 글쓰기"의 원제는 "Writing"이었다)

이 단어는 합병증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환자들의 불만을 뜻하는 "complain"과 더불어 병원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일단 레지던트가 (그것도 외과 레지던트가) 한 권의 책을 펴냈다는 것 자체가 존경스럽다

sugury 파트는 년차가 올라갈수록 바쁜 법인데, 그는 8년의 수련 과정 중 7년차이다

미국이라고 해서 특별히 수련 과정이 한가한 것도 아닐텐데 (그래도 한국보다는 훨씬 인간적이라고 들었다 이를테면 당직을 선 날은 다음 날 오전에 병원에 나타나면 안 된다고 한다), 300페이지가 넘는 글을 쓸 여력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한 번에 다 쓴 건 아니고, 여러 잡지에 기고한 글을 편집한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글솜씨는 괜찮은 편이다

개인의 신상 명세서가 아니라, 일선 진료 현장의 의사가 겪는 의학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고 냉철한 분석과 자기 반성을 시도한다

이 정도면 단순한 수필집은 아닌 듯 하다

계명대 외과 교수가 쓴 "나는 외과 의사다"라는 책 보다 한 수 위 같다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지만, 현대의학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저자의 지적처럼 의학, 혹은 과학 자체의 불확실성에 있다

세상에 100% 완전한 것은 없다는 대명제를 생각해 보다면, 의학에 오류가 없는 게 이상할 것이다

문제는 그 완전할 수 없는 학문의 대상이 사람이라는 데 있다

살아 있는 생명을 상대하는 이상, 도덕적으로 본다면 단 1%의 오류도 없는 것만 의학이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현실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의학이 완전무결 하다면 인간은 죽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의료 현장에서 겪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솔직하고 반성적인 태도로 접근한다

특히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불확실한 선택을 해야 할 경우, 의사는 고민에 빠진다

선택을 내릴 환자가 가족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저자는 딸의 치료 방법을 결정할 때, 선택권을 다른 의사에게 넘겨 버린다

잘못된 선택일 경우 죄책감 때문에 살 수 없을 것 같아, 그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켜 버린 것이다

현대 의학은 환자의 결정권을 가장 우선시 하지만, 실제로 그 결정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환자는 드물다고 한다

암 환자의 경우 환자에게 선택권을 주면 12%만이 그렇게 한다고 한다

환자들은 의사가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일방적으로 쥐고 흔든다고 불평하지만 (즉 치료에서 그들이 소외된다고 여기지만), 실제로 목숨이 달린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경우 결코 그 책임을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자는 "실력과 친절"이라는 상투적이지만 본질적인 얘기를 한다

환자에게 최선의 care를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상태에서 친절하게 설명한 뒤 환자의 선택을 돕고 조언하라는 것이다

물론 그 "친절"이라는 단어 속에는 치료가 종결되는 마지막 시점까지 환자에게 끊임없이 어떤 상태이고 어떤 치료를 하고 있는지 성실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100% 완전할 수 없다면, 적어도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도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괴사성 근막염이라는, 사망률이 70%에 달하는 질병에 걸린 엘리노어 얘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단순히 봉와직염이라 생각하고 항생제 치료만 할까 했는데, 저자는 최악의 경우에 대한 불길한 생각을 떨치치 못한다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단순히 불길한 느낌에 불과했는데 결국 저자의 그 느낌에 의거해 그녀는 무사히 수술을 받았다

그렇지만 다리를 자를 위기에 처할 정도로 심각한 질병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걷기도 힘들고, 재발할까 봐 두려움에 떤다

단 1%의 유병률에 걸렸으니, 다른 모든 희귀한 질병이 나에게 닥치지 않으리라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일상의 불편함과 질병의 공포에 떨면서도, 그녀는 강인하게 말한다

결국 나는 70%가 죽는다는 이 질병을 이겨냈고, 다리도 자르지 않았으며 현재 잘 살고 있다

큰 어려움을 극복했으니, 다른 일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것이야 말로 왜 하필 나에게 끔찍한 일이 닥쳤냐고 한탄하는, 대부분의 불행한 환자들에게 필요한 모범 답안인지도 모르겠다

또 크고 작은 불행을 겪고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유용한 답일 것이다

 

안면 홍조 때문에 앵커우먼을 포기한 여자나, 200kg이 넘는 고도 비만으로 직장은 커녕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는 불행한 남자의 얘기도 나온다

둘 다 수술을 통해 어느 정도 정상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때로 의학은 환자들의 인격을 위협하는 "사소한" 불편에 대한 해결책을 주기도 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질병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 의학은 견딜 수 있으나 심적으로 괴로운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도 얼굴을 돌릴 필요가 있다

이미 미국의 보험 회사들은 고도 비만의 위절제술의 보험 수가를 인정하고 있단다

(보험 전 수가는 2만 달러)

 

칼 세이건이 말했듯, 과학의 미덕은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언제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개선할 의지가 분명하다는 데 있다

의학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현대 의학의 완전무결성을 믿지 않는다

다만 끊임없는 자기 반성과 여러 실패들을 통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간다는 확신을 가질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과 같은 자기 반성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저자는 혹시 책에 실릴 실패들이 동료 의사들의 명성에 누가 될까 염려했으나, 흔쾌히 인용에 동의해 줬다고 기뻐한다

모든 의사가 책을 낼 것까진 없지만, 어떤 의사든지 의학의 불확실성에 대해 고민하고 반성하며 더 나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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