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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 성소수자 혐오를 넘어 인권의 확장으로
한국성소수자연구회 지음 / 창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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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기를 마쳤다. 그동안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희미한 관심만 있었을 뿐인데, 현재 한국사회의 성소수자 관련 문제를 총망라한 한권의 책이 있어 반갑다. 2019년 말에 발간된 책이니 그 사이 변화가 있었을텐데, 아직 갈길이 멀지 않았나 싶다. 작년 코로나에 감염되는 바람에 아웃팅 당했던 한 사람의 예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의 인식이 아직도 부정적인 듯 하다. 변희수 하사의 죽음은 또 어떤가. 그래도 용혜원 의원이 군형법의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처벌하는 조항의 폐지 법안을 발의 추진한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서 동성애는 서구에서 '수입된' 퇴폐적인 성적행위로 비난받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퀴어 반대시위는 한국인의 고유한 미풍양속을 지키는 애국적 행위나 미국이나 유럽의 종교적 타락에 맞서는 한국 보수 기독교의 고유한 성전으로 선전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퀴어가 갑자기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는 것에 당황한 일부 시민들은 시기상조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즉 커밍아웃, 성전환, 공인된 동성애적 실천, 동성 간 결혼 등은 개인의 자유주의적 선택권을 옹호하는 민주주의가 발달된 서구사회에서나 가능한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시민이나 국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한 성취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정작 그 민주주의의 상징 안에 당연히 삭제되어야 할 존재로 퀴어를 상상한다. - 김현미, '퀴어운동과 민주주의: 퀴어 죽음정치의 종언', 206쪽


 이 책 후반부에 실린 글들 중에는 김현미 교수의 위 글이 인상적이었다. 아래의 글은 읽다가 뜨끔했다. 나 역시 '그들'에 대한 시혜적 입장에 서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나 돌아보게 되었다.



다시 말해 '동성애자는 원래 그렇게 태어난다'고 인식하며, 그 점을 인지하여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이자는 식이다. 이러한 방식들 모두 동성애에 열등한 지위를 부여하고 이성애의 배타적,우월적 지위를 구성하는 공통점이 있다.  - 김현미, '퀴어운동과 민주주의: 퀴어 죽음정치의 종언', 208,209쪽


 충격적이고 슬펐던 것은 조수미 교수의 퀴어문화축제에 관한 글이었다. 2018년의 인천퀴어문화축제- 고작 3년 전에 이런 엄청난 인권유린이 이루어졌다니. 무서운 일이다.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떤 증오의 원천을 가져 이런 폭력을 자행한단 말인가.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에서 딸이 겪었던 폭력이 떠오른다. 2017년에 출간된 이 소설 속 모습이 현실과 얼마나 비슷한지 소름이 돋는다. 


뒤늦게 도착한 축제 참가자들은 광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반동성애시위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소지품이 빼앗기거나 망가지고, 피켓으로 맞고, 옷이 찢어지고, 목이 졸리고, 손톱에 긁히거나 물리는 등 신체적 폭력과 아이와 노인을 앞세운 몸싸움에 휘말렸다. 부모님이 낳은 것을 후회한다거나 태어난 것이 재앙이라는 등의 모욕과 레즈비언인 여성에게 남자 맛을 보여줘서 고쳐주겠다는 위협을 하고, 장애인 참여자들을 에워싸고 휠체어를 넘어뜨리기도 했다. (...) 또한 성소수자들이 아우팅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이들은 참여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촬영을 했다.  - 조수미, '"우리가 여기에 있다!" 2018년 인천퀴어문화축제', 273쪽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조수미 교수가 가하는 일침을 들어보자.


만약 성소수자의 노출과 애정표현 같은 모습이 불편하다면, 그래서 표현을 막거나 음지로 돌려보내고 싶다면, 사실은 지금까지의 '편함'이라는 것이 다수의 '편함'을 위해 소수자의 권리나 실존을 희생한 결과가 아니었는지, 그런 사회는 과연 윤리적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 조수미, '퀴어문화축제: 가시성과 자긍심의 축제, 263쪽 


우리가 항상 민주주의 민주주의 외치며 자유의 영역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될 부분에까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민주주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제한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완전히 배치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고 반성해볼 필요가 있겠다. 


재생산적 미래주의는 특정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를 상상할 때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데 필수적인 환경 등 아이를 중심적인 기호로 등장시킨다. 사회는 출산, 양육, 아동의 삶의 질, 그들이 새롭게 만들어갈 연속의 역사 안에서 미래를 상상한다. 우리의 현재적 욕망을 투사하고 미래와 연결하는 기호로서 아이가 사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미래에 대한 상상은 너무나 정당한 것으로 믿어지기에 깨질 수 없다. 모든 주의(-ism)가 그렇듯 재생산적 미래주의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라앉히고 균열을 막기 위해 관습화된 방식으로 아이라는 상징을 끌어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이는 ‘바로 여기서‘의 행동과 규범 및 정치질서를 규정하는 데 동원된다. 이런 강한 신념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이성애 커플의 사회적 역할과 기여를 최고의 가치로 승인한다. - 김현미, ‘퀴어운동과 민주주의 퀴어 죽음정치의 종언‘,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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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12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꼭 읽어보겠습니다!

독서괭 2021-07-12 14:50   좋아요 1 | URL
반가운 말씀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1-07-12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께서 이렇게 책 추천해주심으로써, 시선의 유연성을 ˝같이˝ 높이는 큰 일 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꼭, 이 책 찾아볼게요^^

독서괭 2021-07-12 18:06   좋아요 0 | URL
앗 이렇게 과분한 칭찬을 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7-14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여태까지 큰 탈 없던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것들이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과정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독서괭님께서 언급하신 성소수자 문제를 비롯해서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독서괭 2021-07-14 13:54   좋아요 1 | URL
네. 겨울호랑이님 말씀대로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고 이에 귀기울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을 테지요.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그해, 여름 손님》 리마스터판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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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첫사랑의 열병을 적나라하게 풀어냈다. 아름다운 묘사들이 눈에 띄고, 동성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들킬까봐 두려워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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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01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전자책으로 진작에 사두었는데 영화보고 짜증나서 책 안읽고 버려두고 있어요. 독서괭님의 별 셋 리뷰를 보니 안읽어도 크게 아쉬움 없겠구나 싶네요. 물론 내 돈주고 산거라 돈은 좀 아깝지만.. 하하하하하.

독서괭 2021-07-01 09:50   좋아요 0 | URL
앗 전 책은 좀 읽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영화는 괜찮을 것 같았는데- 아름다운 배경과 음악 잘 살리면- 영화 별로인가요?
책은 전 돈시간 아까울 만큼은 아니지만 추천은 못 드리겠습니다.. 읽을 책도 많은데 그냥 패스하셔도 될 것 같아요 ㅎ

다락방 2021-07-0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영화로 보면 풍경도 엄청 아름답고(세상에 집에 복숭아 나무가 있어요!!), 또 주인공의 집이 자연스레 지식인들이 모이는 공간이라 그런건 다 좋은데요, 제가 개인적으로 미성년자랑 성인의 섹스를 너무 싫어해서요. 그것도 싫고,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성인 남자랑 섹스하기 전에 일단 소녀랑 자는 것도 너무 싫고요. 개인적으로 제가 너무 싫어라하는 요소들이 있어서 제가 이 영화를 안좋아합니다. ㅠㅠ

독서괭 2021-07-01 10:38   좋아요 0 | URL
아하 영화의 문제라기보다 원작 자체가 갖고 있는 요소 때문이군요. 미성년자 부분은 확실히 불편한 부분인데 소녀랑 자는 거는 혼란 때문으로 이해가 되더라구요. 그 후에도 관계를 애매하게 이어나가는 건 이해가 안 되지만.. 그래도 그 아름다운 풍경은 보고 싶네요!

다락방 2021-07-01 10:56   좋아요 0 | URL
네. 저는 그 영화속에서 소녀가 ‘소년의 자아찾기‘에 도구로 이용된 것 같아서 싫었어요.

근데 풍경은 진짜 아름다워요. 이탈리아 배경인 영화 보면 하나같이 다 풍경에 미치겠다니까요? 제가 봤던 이탈리아 배경인 영화중에 막 집 앞에 오렌지였나 레몬이였나 나무가 쫙 깔린 것도 있었고요,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막 햇살도 다르고 나무도 다르고 물도 다르고 다 달라요. 풍경은 진짜 기가 막혀요!!

독서괭 2021-07-01 11:12   좋아요 0 | URL
우와 이탈리아 가고 싶네요… 한 17년 전에 갔었는데 ㅋㅋㅋㅋ

다락방 2021-07-01 11:13   좋아요 1 | URL
저는 한 번도 안가봤고 앞으로는 한 번쯤 가볼까 생각은 했었는데요 이 망할놈의 코로나 때문에 ㅠㅠ
저는 언제쯤 이탈리아를 가보게 될까요? 저도 한 번쯤 다녀와보고 싶어요. ㅠㅠ

다락방 2021-07-01 11:17   좋아요 1 | URL
아 독서괭님.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 알아요? 혹시 보셨나요? 이것도 책이 원작이긴 한데 저는 책은 안읽었고요 이 영화도 좋아요. 주인공이 이혼하고 혼자 이탈리아 가서 사는 내용이에요.

아, 덧붙이자면, 그녀의 집앞에는 올리브나무!!

독서괭 2021-07-01 11:41   좋아요 0 | URL
아뇨 저는 영화는 원래도 잘 안 보는데 출산 후에는 아예 못 보고 있어서 ㅠ 책 원작이 어떤지도 궁금하지만 눈이 시원해지는 풍광이 보고싶군요.. 아휴 그래도 오늘은 하늘이 맑아서 좋네요~
40평대 아파트 마련하고 이탈리아에서 와인 마실 다락방님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딸에 대하여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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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는 딸이라는 존재를 낯설게 바라본다. 자식이라고 해도, 특히 동성이고 나를 닮았다면 더욱 엄마인 나와 동일시되기 쉬운 딸이라고 해도 결국은 타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 낯섦은 딸에게도 적용될 수 있고 따라서 낯선 타인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필요한 대화와 이해, 관용은 딸과의 관계에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딸에 대하여> 속의 딸은 엄마인 '나'가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세계에 가 있다.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알던 아이. 내 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한 아이. 아니다, 하면 아니라고 이해하고 옳다, 하면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던 아이. 잘못했다고 말하고 금세 내가 원하는 자리로 되돌아오던 아이. 이제 아이는 나를 앞지르고 저만큼 가 버렸다. 이제는 회초리를 들고 아무리 엄한 얼굴을 해 봐도 소용이 없다. 딸애의 세계는 나로부터 너무 멀다. 딸애는 다시는 내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97쪽

 5살, 3살인 내 아이들은 엄마의 품과 곁을 최고로 여긴다. 사랑한다고 하면 내가 더 많이 사랑한다는 말을 돌려주고 뽀뽀를 퍼부으면 간지러워하며 행복하게 웃는다. 고집을 부리다가도 결국은 눈물을 흘리며 안겨드는 어린 것들. 곁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아이들로 인해 지치다가도 겨우 몇 년만 지나면 사춘기가 찾아와 엄마가 뭘 알아!라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는 어머니들의 말이 떠오른다. 

 내 품으로 키운 자식이 내게서 떨어져 자기만의 세계로 가버리는 것. 세상의 부모들은 그 공허함을 어떻게 딛고 살아가는 걸까. 그게 힘들어서 어떻게든 자식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세계에 붙잡아두려고 애쓰는 건 아닐까.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번듯한 직장을 얻고, 결혼하여 자식을 키우는 삶. 


 이 책의 화자는 자신을 희생하며 열심히 살아온 전형적인 어머니이다. 그는 하나뿐인 딸이 공부도 잘하니 많은 희망과 기대를 걸었지만, 어느샌가 딸은 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있다. 딸은 동성 파트너와 7년을 동거하고 있고, 보따리 강사로 일하다가 동료 강사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해고당하자 이를 바로잡기 위해 시위를 한다. 그 때문에 보증금까지 까먹어 버리고 갈 곳이 없어 '나'가 가진 전재산인 2층 주택에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들어와 살게 된다. 매일같이 딸(그린)과 그의 파트너(레인)의 모습을 마주하면서, 이제라도 딸이 정신차리고 번듯한 신랑감을 데려와 결혼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면서, '나'는 고단한 삶을 이어 간다. 사실 '나'는 혐오와 배제를 지지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 왔다. 딸에게도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느냐 묻는 딸에게, 너는 내 딸이니까, 라고 대답하고 만다. "내 문제만 아니면 관용적일 수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방심한 마음을 이 소설은 파고 든다. 


내 딸은 하필이면 왜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요. 다른 부모들은 평생 생각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그런 문제를 던져 주고 어디 이걸 한번 넘어서 보라는 식으로 날 다그치고 닦달하는 걸까요. 왜 저를 낳아 준 나를 이토록 슬프게 만드는 걸까요. 내 딸은 왜 이토록 가혹한 걸까요. 내 배로 낳은 자식을 나는 왜 부끄러워하는 걸까요. 나는 그 애의 엄마라는 걸 부끄러워하는 내가 싫어요. 그 애는 왜 나로 하여금 그 애들 부정하게 하고 나조차 부정하게 하고 내가 살아온 시간 모두를 부정하게 만드는 걸까요.   -84쪽

 '나'는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돌보는 '젠'이라는 노인은 많은 공부를 하고 많은 사람을 도우면서 살아온 훌륭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찾아오는 가족이 없어 점점 요양원에서 가치가 떨어지게 되고, 많은 다른 요양원 노인들처럼 사용한 기저귀를 잘라서 쓰며 욕창이 생긴 채 방치되는 상황에 이른다. '나'는 딸도 저렇게 젊은 시절 다른 사람을 돕겠다고 시간을 다 보내고 노년에는 가족이 없어 혼자가 될까 두려워한다. 


탄력을 잃고 흐물흐물해진 살들이 앙상한 뼈에 겨우 매달려 있다. 덜렁거리는 살들을 치대며 비누칠을 한다. 젠의 다리가 덜덜 떨린다. 거품이 묻은 손으로 사타구니를 꼼꼼히 매만지고 시커먼 욕창 주변에 일어난 죽은 살들을 떼어 낸다.

어쩌자고 이 여자는 이렇게 오래 살아 있는 걸까.

이런 순간 삶이라는 게 얼마나 혹독한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나고 또 다음 산이 나타나고. 어떤 기대감에 산을 넘고 마침내는 체념하면서 산을 넘고. 그럼에도 삶은 결코 너그러워지는 법이 없다. 관용이나 아량을 기대할 수 없는 상대. 그러니까 결국은 지게 될 싸움. 져야만 끝이 나는 싸움.  -91쪽

 화자가 느끼는 두려움은 실체가 없는 동성애혐오와 달리 분명한 실체가 있는 것이다. 돌봄을 가족에게만 미루는 이 사회에서, 법률상 가족을 결혼과 혈연으로만 구성시켜 주는 이 사회에서, 결혼하지 못하고 자식도 낳지 못하며 쉽게 직장을 잃고 마는 동성애자 커플은 너무나 허약한 울타리인 것이다. 엄마인 자신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기에는 빈곤이 발목을 잡는다. 돈은 늘 문제가 되니까. 이렇게 <딸에 대하여>는 동성애를 바라보는 혐오와 편견의 시선을 넘어서서, 동성애자들을 사회적 약자로 만들어버리는 이 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릿하고 답답했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토록 힘든 조건들을 견뎌내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만약 훗날 내 아이들이 성소수자로서 살아가게 되거나 그들을 비롯한 약자들을 위해 가진 것을 내던지로 힘겨운 길을 택한다면 나는 과연 제3자로서 떠들던 것처럼 올바르다 생각하는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엄마로서 '나'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딸이 속한 낯선 세계와 단절하거나, 그 세계와 연결되거나. 소설 속에서 '나'는 여전히 딸이 번듯한 남자와 결혼하리라는 희망을 완전히 접지 못하지만, 손이 야무지고 예의바른 딸의 파트너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그래도 단절보다는 연결을 택한다. 이렇게 연결을 택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엄마가 세상의 전부라고 알던 아이. 내 말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한 아이. 아니다, 하면 아니라고 이해하고 옳다, 하면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던 아이. 잘못했다고 말하고 금세 내가 원하는 자리로 되돌아오던 아이. 이제 아이는 나를 앞지르고 저만큼 가 버렸다. 이제는 회초리를 들고 아무리 엄한 얼굴을 해 봐도 소용이 없다. 딸애의 세계는 나로부터 너무 멀다. 딸애는 다시는 내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내 잘못인지도 모르지.
그런 의심은 끝내 떨쳐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내 죄책감으로 바뀐다. 나는 빛깔과 무늬를 달리하며 스스로 떠오르고 저무는 감정을 바라보느라 말을 잃는다. 딸애에게 걸었던 기대와 욕심, 가능성과 희망. 그런 것들은 버리고 또 버려도 또다시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 내가 얼마나 앙상해지고 공허해져야 그것들은 마침내 나를 놓아줄까. - P97

마음은 왜 항상 까치발을 하고 두려움이 오는 쪽을 향해 서 있는 걸까.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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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6-21 2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책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의 세계를 담고 있네요.
단절 보다 연결에 동감합니다.
우리 모두 같은 세상에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들이니,,,

그레이스 2021-06-21 20:45   좋아요 2 | URL
저는 ‘내가 이 엄마라면?‘하고 생각하며 읽기도 하고, 나는 엄마에게 어떤 딸일까 하는 생각도 하고, 또 나는 내 아이들의 세계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를 더 많이 생각했던 책입니다.

독서괭 2021-06-22 13:32   좋아요 2 | URL
네. 이 책은 직접 퀴어의 입장에 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범주 안에 퀴어를 데려옴으로써 ˝그들˝의 일을 ˝우리˝의 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이입하게 되더라구요^^

독서괭 2021-06-22 13:34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님/ 저도 많이 생각하게 되었던 지점입니다. 특히 아이들의 세계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전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아이들만의 세계가 형성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경험할 일들이 좀 두렵기도 합니다.

scott 2021-07-07 16: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이달의 당선 축!카축!카
이책 찜 👆

독서괭 2021-07-07 16:20   좋아요 3 | URL
헉 scott님 덕에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영광이네요^^

그레이스 2021-07-07 1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해요~♡

독서괭 2021-07-07 16:20   좋아요 2 | URL
와와 감사합니다~~^^

mini74 2021-07-07 16: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저도 축하드려요 *^^*

독서괭 2021-07-07 16:38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그동안 서로 당선 축하하는 댓글 보면서 남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쁘네요^^

새파랑 2021-07-07 17: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완전 축하드려요~!!😄👍

독서괭 2021-07-07 18:11   좋아요 2 | URL
와~ 감사합니다^^

초딩 2021-07-07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독서괭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독서괭 2021-07-08 10:34   좋아요 0 | URL
초딩님 감사합니다~ 초딩님의 당선도 축하드립니다^^

이하라 2021-07-08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독서괭 2021-07-08 10:36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LGBT+ 첫걸음
애슐리 마델 지음, 팀 이르다 옮김 / 봄알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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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이분법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얼마나 다양한 젠더정체성과 성적지향성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안내서. 낯선 용어가 많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해당 정체성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사람이 쓴 글을 인용한 점이 좋았다. 젠더 고정관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되짚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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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1-06-12 0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이 생과 사로 단순 이분법으로 정의되지 않는 것처럼, 자세히 보면 우리 주변에 이분법 사고방식으로 빚어진 수많은 폭력과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 정체성에 대한 인식도 그 중에 하나인것 같습니다.

독서괭 2021-06-13 20:19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이분법적 사고를 바탕으로 내뱉는 말이 어떤 이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겠습니다.

초딩 2021-06-15 0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이분법이라는 건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을까? 또 최초의 의도를 굉장히 확대하고 왜곡해서 왜 이렇게도 많이 아무곳에나 적용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슈뢰딩거도 모든 물질이 작은 원자 분자로 이루어진 것은 모든 것이 확률로 일어나고 구분되어지게 해야 다양성과 어느 정도의 편향을 가져서 세상이 유지될 수 있다고 했는데 말이에요 ^^

독서괭 2021-06-15 11:21   좋아요 1 | URL
와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그 슈뢰딩거가요? 고양이실험밖에 모르는데 ㅋㅋ 멋진 말을 했네요. 이분법이나 흑백논리 같은 것이 다수에 속하는 사람들의 불안을 줄여주고 세상과 자신에 대한 고민을 소거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순응하기만 하면 결국 생각없이 소수자를 혐오하게 되겠죠..
 
[세트] 내 이름은 샤이앤 + 내 이름은 말랑,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 전2권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
샤이앤 지음 / 꿈꾼문고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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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가 겪는 많은 어려움과 기초지식에 대해 쉽게 설명해주는 좋은 만화다. 나는 거꾸로 읽었는데, 샤이앤을 먼저 읽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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