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위인전 - 뻔뻔하지만 납득되는
보리스 존슨 지음, 이경준.오윤성 옮김 / 마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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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드라마 <셜록>의 배경으로 기억 속에 남은 이 도시는 한 번쯤은 방문하고 싶은 느낌을 자아낸다. 안개가 자욱한 템스 강을 가로지르는 타워 브리지와 런던 브리지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행렬, 거대한 시계탑 빅벤과 런던 아이를 구경하며 조용히 내리는 빗소리를 감상하고 싶은 그런 이미지의 도시.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런던이라는 도시는 어떻게 거대해질 수 있었을까?

런던 시장이었던 보리스 존슨은 자신이 사랑하는 런던의 역사를 런던 위인전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뻔뻔하지만 납득되는이라는 부연 설명은 런던을 편애하는 보리스 존슨의 마음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나의 조심스러운 주장은 런던은 지난 500년 간 세계의 문화와 기술, 정치와 언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도시라는 것이다.”라며 그는 런던이 얼마나 멋있는 도시인지를 강조하며 이 런던이 이 자리에 있기까지에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풀어낸다.

 

후에 존슨은 이렇게 말했다. “런던을 떠나려고 하는 지식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런던이 시들해졌다면 삶이 시들해진 것이지요. 런던에는 우리가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이 있으니까요.” (p. 166)

 

런던 위인전은 여느 위인전과는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런던이라는 도시가 형성되고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역사적 인물들의 일화를 통해 설명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는 런던을 빛내기 위한 부가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그래서 보리스 존슨은 마치 독자들에게 런던을 설명해주는 가이드처럼 내용을 전개한다. 런던 브리지를 통해 런던으로 입성한 독자들은 부디카를 시작으로 런던의 역사를 순차적으로 여행하게 된다. 그리고 근사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가진 미들랜드 그랜드 호텔에서 그 여행을 마무리 짓는다.

 

그런 시대에 셰익스피어는 잉글랜드에 대한 어떤 상을 제공했다. 그는 잉글랜드를 한쪽에 떨어진 특별한 나라, 은빛 바다에 둘러싸인 보석 같은 땅으로 그려 냈고,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강경론적인 연극 헨리 5에서 아쟁쿠르 전투의 기억을 부활시켰다. (p. 124)

 





 

 

런던의 역사 외에도 보리스 존슨은 런던에서 발명되거나 발전된 것들을 이야기한다. 수세식 변기, 자전거, 수트, 지하철 등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누구나 사용하고 있는 물건이나 이동 수단들이 어떻게 런던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흥미로운 일화들을 통해 설명한다.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런던이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 한 마디로 정리한다.

 

결국 런던이라는 세계적인 브랜드와 매력을 창조한 것은 2000년 간 이어져 온 런던 사람들의 행렬이다. 런던이 낳은 가장 유명한 시인 겸 극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을 빼면 도시에 무엇이 있겠는가?” (p. 401)

 

도시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 때문이다. 그러니까 보리스 존슨이 런던을 빛내기 위한 요소로 역사적 인물을 택한 데에는,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런던이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이름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런던이라는 도시를 사랑하고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런던 위인전을 읽으면서 우리가 사는 한국의 수도인 서울을 빛낸 위인은 누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서울 위인전이라는 제목의 책을 써 내려가면 외국인들에게 서울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다행히도 나는 서울에 살지 않아 서울을 향한 사랑이 깊지 않아 단순한 호기심에 그쳤다.) , 어쨌든 나는 언젠가 런던에 방문하고 싶다. 대체 얼마나 대단하면 이렇게 400페이지에 걸쳐 런던을 노래했는지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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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좋은 습관은 어렵고 나쁜 습관은 쉬울까?
에이미 존슨 지음, 임가영 옮김 / 생각의서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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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듯이 나에게도 고치고 싶은 습관이 여럿 있다.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물어뜯기도 하고 쇄골을 꾹꾹 누르기도 한다. 책이나 영화를 보다 집중하게 되면, 어느새 엄지손톱을 깨물고 있기도 하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이 습관들을 때로는 거슬려 고치고자 마음먹기는 하지만 결국 고치지 못한 채 제자리에 머물게 된다. 왜 나쁜 습관은 쉽게 고칠 수 없는 걸까?

라이프 코치인 에이미 존슨은 왜 좋은 습관은 어렵고 나쁜 습관을 쉬울까?를 통해 우리가 나쁜 습관을 쉽게 고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습관은 생각에 기반을 둔 경험이며, 개인의 본성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안하고 불편한 현재에서 멀어지기 위해 습관을 방어기제로 사용하기 때문에, 습관의 본질을 파악하면 나쁜 습관을 떨쳐낼 수 있다고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습관은 그저 하나의 생각을 기반으로 한다는 진실과, 그 생각은 순간적이고, 일시적이며, 본질적으로 의미 없는 것이라는 사실, 습관은 뇌 활동이 반영된 현상이지만, 그것이 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진실 말이다. (p. 45)

 

에이미 존슨은 우리가 나쁜 습관을 가지게 된 원리를 1부에 걸쳐 길게 설명한다. 난폭 운전, 쇼핑 중독, 알코올 중독, 인터넷 중독, 불안증 등 자신이 맡았던 내담자들의 사례를 통해 습관이 생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도록 한다. 충동은 우리에게 중독성 있는 목소리로 유혹하지만, 그것이 사실은 우리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시적인 생각에 불과하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통찰력을 제시하며, 2부와 3부에 걸쳐 중독성 있지만 일시적인 목소리를 무시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 그게 전부다. 우리가 개인과는 상관 없는, 저절로 왔다가 가는 경험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볼 때, 생각이 증발하도록 놔두기도 더 쉬워진다. 충동이 그저 왔다가 간다면 우리가 문제를 겪을 이유는 없다. 존재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p. 187)



 


자신에게 돌연 찾아온 충동이 어떤 습관을 불러일으키는지 그 시스템을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나쁜 습관을 떨쳐내는 데 훨씬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 다리를 떨거나 손가락 관절을 꺾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이후에 같은 습관이 등장하였을 때 나는 나의 심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저 내가 많이 불안하구나.’ 혹은 내가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나?’라고 생각하며 결핍된 부분을 충족시켜 습관과 서서히 이별을 고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듯이 나쁜 습관을 한 번에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에이미 존슨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 습관이 행동으로 표현되기까지의 뇌의 회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습관을 버릴 준비가 되었다고 용기를 북돋아준다.

 

그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생각이 차분히 가라앉고, 지금 이 순간을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게 되면, 이내 삶이란 꽤나 놀라운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처럼. (p. 222)

 

책을 읽으며 내가 고치고 싶은 습관들은 어떨 때 나타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어색한 상황에 몸 둘 바를 몰라 조금은 불안할 때 쇄골을 꾹꾹 누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사실 이건 오래 전부터 파악했지만, 왠지 모를 안정감에 사로잡혀 고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의지의 차이인 것 같다.) 그럼 이제 불안한 상황이 올 때, 나는 생각을 달리하면 될 것이다. ‘지금 좀 불안한 것 같으니까, 쇄골 누를 시간에 잠시 나가 바람을 쐬고 오는 것도 좋을 거야.’라고. , 솔직히 말하면 아직 습관 고치기는 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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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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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가족은 하나의 공동체로 여겨졌다. 가족 구성원들을 개인보다는 전체로 바라보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등등 가족 구성원들을 하나로 엮어보는 시선들은 예전부터 존재했다. 즐거움도, 슬픔도, 모든 것을 함께 짊어져야 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어디까지 짊어져야 할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따뜻한 감동을 주었던 히가시노 게이고는 편지라는 소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무거운 주제를 던져준다. ‘살인자의 가족들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외면 받아야 하는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오키와 츠요시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생각하도록 한다.

 

나는 이제부터 혼자다. 형은 돌아오지 않는다. 언젠가는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그건 여러 해 뒤의 일이다. 아니 몇 십 년 뒤가 될지도 모른다. (p. 47)

 

츠요시는 동생 나오키의 대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삿짐을 날랐던 집을 털기로 한다. 돈과 더불어 동생이 좋아하는 톈진 군밤을 챙겨 둔 츠요시는 인기척을 느끼고, 자신도 모르게 범행 사실을 감추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이내 그는 검거되어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졸지에 살인자의 동생이 되어 버린 나오키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게 된다. 생활비를 벌어가며 고등학교 졸업을 마쳤지만, 형이 살인자라는 사실 때문에 계속해서 이사를 다니게 된다. 형의 비밀을 숨기려고 하지만 이내 사실일 밝혀지면서 꿈도, 연애도 포기하게 된다. ‘살인자의 동생이라는 주홍 글씨는 나오키를 따라다니며 그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항상 도망 다니며 생활했기 때문에 이제 도망치는 건 싫어. 다른 사람이 도망 다니는 것도 싫어. 그래서 너도 도망치지 않았으면 했어. 그뿐이야. (p. 382)

 

매달 배달되는 벚꽃 도장이 찍힌 편지는 나오키를 괴롭힌다. 배달된 편지는 나오키에게 사회에서 껄끄러운 존재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수단이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오키를 통해 살인자의 가족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피해자의 가족이 느낀 슬픔에 쉽게 공감하며, 반대로 살인자의 가족은 하나로 묶어 비난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츠요시의 잘못이었음에도 나오키 역시 살인이라는 죄 앞에 함께 서며 사람들에게 차별 받는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편지를 통해 무거운 주제를 제시하지만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들 뿐 답을 주지는 않는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던 편지편지속에서는 끊고 싶지만 끊을 수 없는 가족의 인연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래서 쉽게 읽히는 것에 비해 히가시노 게이고의 질문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만약 나의 가족이 살인자라면, 그 무게를 함께 이겨내야 하는가? 혹은 사회는 그것을 포용해줄 수 있는가?

 

나오키는 온몸이 허탈감에 휩싸이는 것을 느꼈다. 이런 게 어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란 걸까? 어른이란 참 이상한 동물이다. 어떤 때는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어떤 때는 교묘하게 차별을 조장한다. 그런 자기모순을 안고 어떻게 살아갈까? 나도 그런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 182)

 

살인자의 가족에게 행복은 허락되지 않는다. 사회는 그들이 더 많은 고통 받기를 원하며, 차별하고 외면한다. 살인자의 범죄에 대해서 쉽게 용납할 수 없는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함께 주홍 글씨를 가지고 살아갈 그들이 행복할 권리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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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벚꽃 에디션)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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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또 봬요.” 그저 형식적인 말일수도 있다. 기약 없는 만남을 생각하며 서로가 기분 좋게 헤어질 수 있는 인사치레와 같은. 하지만 나는 이 말이 좋다. 어찌됐든 이 말을 나눈 우리가 서로 다시 볼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니까. 또 다시 만날 시간에,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들 테니까. 그 사이에 조금은 달라졌을 서로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고.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꿈꾸며 열심히 달려온 나를 위로해주었던 야매 득도 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를 읽은 지 말이다. ‘드라마 작가, 방송 작가라는 잃어버린 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나는 1년 동안 내 속도와 방향을 정하는 시간을 보냈다. 100여권이 넘는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이전보다 생각이 단단해졌고, 조금은 성숙해졌다. (오로지 내 생각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의 속옷만 입고 누워 있던 일러스트가 그려진 표지는 봄바람이 살랑~ 느껴지는 표지로 바뀌었다. (초판보다는 조금 더 귀여워지고, 밝아 보이는 것은 내 기분 탓일까. )

열정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지 절대 강요로 만들어질 수 없다. 열정은 사람이다. 그 일을 사랑하는 것에서 열정은 시작된다. 물론 사랑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p. 33)

그 사이에 좋아하는 일도 생겼다. 글을 쓰는 순간이 즐겁고 소중하다고 말했던 나는 그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새해마다 다짐했던 일기 쓰기도 일주일이 지나면 뒷전으로 미뤄놨던 내가 여전히 글을 쓰고 앉아있다. 가끔은 일기 쓰기만큼이나 하기 싫어 미뤄버릴 때도 있지만, 이렇게 꼬박꼬박 쓴다는 것이 어디인가. 그리고 이 글쓰기로 인해 좋아진 일로 방향을 정했다. 그랬더니 조바심이 생겨났다. 이 길에 들어서니 나보다 더 오랫동안 이 길에 서 있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잘하고 싶어서,

틀리고 싶지 않아서.


이런 마음 때문에 힘이 들어간다. 힘이 들어간다는 건 경직된다는 것, 유연하지 않다는 것,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뭐든지 힘이 들어가서 잘되는 걸 못 봤다. 그림도, 노래도, 운동도 어쩌면 인생도 그럴지 모르겠다. 너무 힘이 들어간 탓에 내 인생도 이렇게 삐뚤빼뚤해진 게 아닐까? 힘이 들어가니 힘이 드는 게 아닐까? (p. 72)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겁이 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욕심이 났다. 내 길이라고 굳게 믿고 싶었고, 이 일을 꼭 해야 한다고. 그 욕심이 뭐라고, 스스로를 괴롭혔다. 얼마 전, 이 길에 서기 위해 첫 발을 내딛었다. 남들은 졸업 전에 자신이 갈 길을 미리 정하고 준비한다지만, 나는 이제서야 그 길로 첫 발을 떼었다. 사실 이 첫 발을 떼기까지도 여전히 겁이 났다. “나는 책 한 권, 한 권에서 가치를 끌어내는 너의 서평이 좋았거든.” 그 때 들은 이 말 한마디로 하여금 아차!’싶었다. 스스로 알지 못했던 사실을 다른 이로 하여금 듣게 되었으니.

  

꿈꾸던 대로 되지 못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끌어안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까 이건 관점의 차이다. (p.233)

  

잘하고 싶어 겁이 나는 건 당연하다. 조금은 힘을 빼도 된다. 겨우 떼어낸 첫 발이 잘못 되었다고 해서 이 길로 영영 들어서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은 1년의 시간이 지나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또 다른 위로를 건넸다. 훗날 내가 이 책을 다시 읽게 된다면, 나는 이 책에서 또 어떤 표현들이 와 닿을까. , 저는 천천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다시 또 만나요. 그 때도 반갑게 반겨주세요, 따뜻한 위로의 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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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사는 비 갠 하늘을 보며 그대에게 기도한다 - 상 마지막 의사 시리즈
니노미야 아츠토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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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렸다. 날씨가 제법 흐리더니 이내 땅을 투둑투둑 적시기 시작했다. 카페에 앉아 창밖을 보던 나는 급하게 짐을 챙겨 길을 나섰다. 우산없이 비를 맞으며 정류장으로 향했다. 머리와 어깨에 톡톡 떨어지는 빗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며. 그리고 문득 카페에서 읽은 책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짜증스럽게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낱개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물방울이 군집을 이루어 벽처럼 다가왔다. 가녀리게 지면을 두드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부근 일대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기척이 났다. 산소와 수소가 체모 사이로 파고들어 피부에 들러붙는 것 같았다. (상권p. 8)


《마지막 의사는 벚꽃을 바라보며 그대를 그리워한다》의 후속작 《마지막 의사는 비 갠 하늘을 보며 그대에게 기도한다》는 흐린 날씨에 조금은 우울한 그 감정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긴 제목만큼이나 강렬한 첫 시작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하루만에 상,하권을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니노미야 아츠토는 굉장한 흡입력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환자들의 의사를 존중하며 치료 대신 죽음을 종용하기도 하는 의사 키리코와 환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으며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열정적인 의사 후쿠하라는 두 사람을 이어주던 유일한 친구의 죽음 이후 각자의 길을 걷는다. 시치주지 병원에서 나온 키리코는 '키리코 의원'이라는 낡고 허름한 의원을 세운다.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 한 연인이 각각 병원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같은 병에 걸렸음에도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삶의 의지를 태우기도 하는 반면, 방향을 잃고 절망하며 끝없이 추락한다. 결국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가는 것 자체가 본래 투쟁이야. 싸울 의지도 없이 단지 주어진 삶을 멍청하게, 혹은 도망치면서 살아가는 녀석은 살아갈 가치가 없어. (상권 p.91)






《마지막 의사는 비 갠 하늘을 보며 그대에게 기도한다》는 불치병이라고 여겨지는 에이즈 환자, 말기암 환자와 치매 환자의 심리를 묘사하며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순간들을 그려낸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환자들의 이야기는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나에게 남은 시간들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고 싶은지, 그 시간을 온전히 바칠 수 있을 만큼의 소중한 꿈이 있는지 니노미야 아츠토는 키리코와 후쿠하라의 입을 빌려 독자들에게 묻는다.


인생은 병에 걸리기 전부터 시작돼 있었잖아요. 그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을 테고, 그러기 위해 살아왔을 거잖아요? 제가 볼 때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하고 싶은 일이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는 뜻이에요. (상권 p. 136)


짜증스럽게 내리던 비는 세 사람의 죽음을 끝으로 멎어든다. 삶을 향한 열정을 중요하게 여기든, 치료 대신 죽음을 종용하든, 두 의사는 환자를 구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그들이 살리고자 한 생명이 더욱 존엄하게 느껴진다. 비가 그친 후에도 삶과 죽음, 그 기로에 놓이는 순간은 끝나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내릴 비에 힘들고 지치지 않도록. 니노미야 아츠토는 특유의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비는 내린다. 어딘가에서 내리고 어딘가에서 그치기를 되풀이하는, 사람의 생명과 마찬가지다. 키리코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내리쬐는 빛을 보았다. 작은 물 입자가 여전히 대기 속에서 춤추며 저마다 자유로운 파장의 광선을 흩뿌리고 있었다. (p.226)


모든 생명엔 희망이 있음을, 봄비와 더불어 《마지막 의사는 비 갠 하늘을 보며 그대에게 기도한다》를 통해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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