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비「」밀「 (일반판)
스미노 요루 지음, 김현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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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누군가의 마음을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 사람의 행동, 표정, 말투에서 느껴지는 것이 없어 어떻게 해야될지 모를 때. 차라리 '오해하지 않도록 정확하고 확실하게 말해줄래?'라고 묻고 싶어질 때가 찾아온다. 조금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게 된다면, 내가 지금처럼 끙끙 앓고 있지는 않을텐데. 아무 것도 알 수 없어 더욱 신경쓰이는 사람이 있다면, 덧없이 공감될 만한 청춘 소설을 만나게 됐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의 작가 스미노 요루는 각자의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는 다섯 청춘들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입시를 앞둔 다섯 명의 소년 소녀들은 싱숭생숭한 상황 속에서 서로의 우정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펼친다. 좋아하는 아이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고, 그래서 더욱 신경쓰이는 이 상황에서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사람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흔히들 인간관계라고 하지만, 사실 인간관계는 간단하다. 그런 건 심장의 바닥에 보이는 시소 같은 바의 균형을 플러스 쪽으로 조금 기울이면 된다. 처음에는 마음을 닫고 나의 맹공에 질색하지만, 바가 마이너스 쪽으로 기울어 있다 해도 사랑의 무게로 플러스로 만들 수 있다. 그러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차인 적도 있는 것 같지만, 나쁜 기억은 잊자 잊어. 응. 잊을 수 있어. / p. 65



평범하고 소심해서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말도 못 꺼내는 쿄, 히로인보다 히어로가 되고 싶은 밋키, 키 크고 잘생기고 성격 좋고 운동 잘하는 왕자님 즈카, 엉뚱하고 이상한 행동만 골라서 하는 즈카, 그리고 소심하고 차분하지만 손재주가 좋은 엘은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이다. 1년의 시간이 흐르면, 사회로 나가게 되는 아이들은 제각각 고민거리를 안고 살아간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제각기 다른 형태로 읽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아하는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도 없고, 신경 쓰이는 아이가 왜 우울한지, 나에 대해 얼만큼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네가 재미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내 발언은 내가 이렇게 말하면 재미있다고 생각되겠지라고 계산해서 말하는 거야. 네가 재미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내 행동은 내가 이렇게 하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을 거라 노리고 한 행동이고. " /p. 161



스미노 요루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 보여주었던 달콤씁쓸한 로맨스를 또 한번 보여준다. 《나「」만「」의「」비「」밀「》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모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청춘들이 가진 풋풋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뤄질 듯 이뤄질 수 없는 그 사랑의 관계들 속에서 아이들은 서로에 대한 마음을 알아차리며 한층 성숙해진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리면 다치게 될까,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조금씩 다가가는 모습이 귀여워 보인다.


다섯 명의 청춘들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사실 평범하다. 상대의 표정과 행동, 말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을 종합해 알아차릴 뿐, 독심술을 선보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스미노 요루는 누구나 자신이 가진 생각으로 타인의 감정과 기분을 파악하는 행동을 다양한 기호로 시각화할 뿐이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듯이 다섯 명의 아이들이 가진 기호는 제각기 다른 셈이다. 감정과 생각을 기호로 시각화한다는 참신한 생각은 어디에서 온 걸까, 그 상상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밝혀질수록 점점 바보가 되는 우리들의 비밀.

다들 우리가 멋대로 복잡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더욱 신경쓸 수밖에 없다. 혹여나 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고민하고 걱정하고……단순히 다섯 명의 소년 소녀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저마다 나만의 비밀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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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10분 마음수업 - 지루한 관계와 답답한 일상에 찌든 현대인을 위한
차희연 지음 / 베프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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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나에게 닥친 불행 나에게 닥친 슬픔

그리고 나에게 닥친 이 모든 일들이

나를 성장하게 만든 계기였음을.



예전에 한 번 마음을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다친 마음을 치유하고 싶어 책을 들었다. 관계, 심리, 자기계발…… 마음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찾아 읽었다. 문장마다 마음을 콕 찔렀다. 책을 읽는데만 그쳤다면, 아마 나는 여전히 상처 난 마음을 가지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고 글로 정리했다. 짧든 길든, 떠오르는 대로 모두 적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못한 말들도 적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마음과 마주했다.



힘들거나 좌절을 겪었을 때 혹은 아주 사소한 일상과 세상을 바라보면서 느낀 것들을 짧은 글로 일기처럼 남겼었습니다. 단순히 개인의 지극히 감성적인 글이 아니라 경험들 속에서 깨닫게 된 글이나 이론과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이해하기 쉽게 쓴 글도 있습니다. 짧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 속에 깨달음을 찾으려 노력했지요. / p. 6



감정조절코칭연구소 소장인 차희연은 《매일 10분 마음수업》을 통해 지루한 관계와 답답한 일상에 찌든 현대인들을 위한 색다른 심리학을 펼친다. 심리학 상담 사례나 그를 통한 지침들이 가득한 책들은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지만 실생활에서 적용하기에 한계가 있는 것을 극복하여 그저 잠자기 전이나 하루 속에 여유를 가지고 싶을 때 골라 볼 수 있는 심리학을 이야기한다. 저자 개인의 일상적인 경험은 물론,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낸다.






《매일 10분 마음수업》은 독자들이 자신의 마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내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데 무슨 큰일을 하겠다고'라는 1장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독자들이 자신의 마음과 먼저 마주하도록 한다. 나는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런 감정과 기분을 떨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알고 있는지 등 사례를 통해 제시하면서 나의 경험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내가 무엇에 '무의식적 주의'를 하고 살았는지 바라보지요. 나에게 일어난 모든 '문제'는 타인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 그것을 깨달을 때 드디어 긍정적인 성장이 일어납니다. / p. 48




본래 힘든 것 같은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잃어버리곤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하는 일을 나는 좋아하는지, 싫어하는 것에 대해 나는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등 스스로도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알지 못해 타인에게 모든 탓을 돌리기도 한다. '그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하니 내가 그럴 수밖에 없잖아!'라는 식으로. 그래서 더 힘들고 지치기 마련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

너의 인생은 네가 가고자 하는 대로 가거든.

모든 게 불확실해 보이겠지만

네 삶은 너의 선택이 모인 결과란다.




그래서 더욱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10분 마음수업》은 하루 중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10분의 시간을 마련해준다. 저자 차희연은 독자들에게 사이다 같은 명쾌한 조언을 주기도 하고, 이웃집의 친한 언니처럼 따뜻한 위로도 건네준다.



그 사소하고 우연한 순간에서 의사결정을 한 것은 바로 자신입니다. 그 사소한 순간순간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태도를 취할지를 '선택'하는 것 역시 자신입니다. '선택'은 가치관, 관심사, 강점에서 비롯됩니다. 어쩌면 그 우연들이 진짜 우연일지도 모릅니다. / p. 105



살면서 한 번 크게 상처받았다고 해서 다시 상처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단단하게 만든 마음에도 어딘가 여린 부분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여린 부분이 아프다고 해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다시 내 마음에 집중하는 수밖에. 《매일 10분 마음수업》을 읽고 내 마음과 마주하고 대화해보자.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니? 무엇이 하고 싶은 거니? 마음은 분명, 진심으로 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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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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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지만 그 소녀에게는 너무도 일렀다. 소녀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음식을 만드는 법도, 글을 읽고 쓰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소녀가 배운 것은 '외로움' 이었다.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해온 델리아 오언스는 일흔이 가까워진 나이에 첫 소설을 출간한다. 누군가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맑은 곳을 연상케하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무서운 입소문으로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게 된다.

델리아 오언스는 자신이 그간 자신이 벗삼았던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소설의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한 소녀를 세워둔다. 외로움으로 가득했던 소녀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카야라는 소녀의 성장이야기와 의미심장한 러브스토리, 또한 살인 미스터리 소재를 넣어 법정스릴러를 그려낸다. 카야의 행적을 따라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녀의 마음 한 편에 남아있는 외로움을 함께 느끼게 된다.



"카야, 조심해, 꼭. 누가 와도 절대 집 안에 들어가지 마. 너를 잡아갈 수 있어. 습지 깊은 데로 도망가서 덤불에 꼭꼭 숨어. 발자국 지우는 거 잊지 말고. 오빠가 가르쳐줬잖아. 너도 아버지를 피해서 숨을 수 있어." /p. 24





거기서보면 엄마가 꼭 손을 흔들어줄 거야.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뛰어갔을 때는 파랑색 여행 가방이 시야에서 막 사라지고 있었다. 가방은 숲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계단에 올라가 기다리려고 돌아선 순간 카야의 가슴에 검고 고운 진흙 덩어리처럼 묵직한 슬픔이 얹혔다. / p. 15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카야의 어머니가 집을 떠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다섯 아이 중 막내였고 언니 오빠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카야는 어머니와 조디 오빠를 유독 따르며 좋아했지만, 술만 먹고 들어오면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에게 지친 가족들은 집을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어린 카야는 그저 집에 남아 떠난 가족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갈매기들과 친구로 지내며 늪지에서 자유롭게 지내던 카야는 어느덧 학교 갈 나이가 되었고, 글자를 모른다는 놀림으로 아이들을 피해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늪지에서 살아가는 법을 혼자 터득하기 시작한다.


소설 속 카야의 어린 시절은 애니메이션 <타잔>을 떠올리게 만든다. 유인원 사이에서 자란 타잔은 그들을 보고 학습한 결과로 자신 역시 유인원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늘 자연 속에서 다른 동물과 어울려 지낸다. 물론 카야는 타잔보다는 마을에 가까운 늪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과 가깝다. 그러나 글자를 읽을 줄 몰라 그림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그런 장면들을 연상케 한다.


델리아 오언스는 1952년부터 시작된 카야의 어린 시절과 1969년의 살인 미스터리를 교차로 전개하며 소녀의 성장을 그려낸다. 카야의 성장이 두드러지는 부분은 단연 '첫사랑'이었다. 배를 타고 늪지를 잠깐 벗어난 카야는 길을 잃어 테이트를 만나게 된다. 늪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귀한 깃털을 서로 몰래 가져다 놓으며 두근거리는 설렘을 느끼게 되고, 테이트는 카야에게 글을 알려주며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하지만 카야는 꼼짝도 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소년에게서 강렬한 이끌림과 강렬한 밀어냄이 동시에 느껴지는 바람에 그냥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노를 저어 집으로 돌아갔다. 심장이 갈비뼈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 p. 101



무엇보다도 카야의 감정을 굉장히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읽는 독자들은 카야의 감정을 무엇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소중한 것이 떠났을 때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그 느낌, 강렬한 첫사랑의 떨림, 그리고 또 다시 기약없는 기다림 등 아픈 사랑을 해본 경험이 절로 떠오르는 감정 묘사가 두드러진다. 이렇게 섬세한 전개 때문인지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는 내내 카야가 가깝게 느껴졌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거라지.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

사람들은 결코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사람들은 그녀 혼자 자기 몸을 방어하며 살라고 저버리고 떠났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여기 있게 된 소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 앞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됐다. 너무 일찍 외로움을 알아버린 소녀에게 어떤 말을 전할 수 있을까. 평생을 걸쳐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운 소녀에게 어떤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가재가 노래하는 곳, 그곳에 외로운 소녀가 하나 있다. 그리고 그 소녀가 당신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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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말이 좋아서
김준태 지음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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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서면 특유의 싱그러움이 코를 간지럽힌다. 그곳에 잠시 머무는 것도, 천천히 걸어 나가는 것도, 어떤 선택을 하든 숲속에서는 편안함이 온몸을 감싼다. 미세먼지로 바깥 활동이 꺼려지는 일상을 보내서 그런지 그 어느 때보다 맑은 공기가 생각난다. 주변에 숲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도심 속에서 생활하는 나로선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칙칙한 일상에 신선함을 선사할 책 《나무의 말이 좋아서》를 읽게 되었다.

 

 

 

생각을 게을리했다면 존재하지도 못했겠지.

세상을 읽고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진심을 다해왔기에 나무는 지금을 산다.

 

 

생태융합과 생명철학을 공부하는 탐구자이자 교육자인 저자 김준태는 자연의 오랜 지혜가 살아 있는 나무와 숲의 철학을 전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인가'를 고민하는 이 시대에 숲을 거닐며 자신이 느꼈던 것들을 하나씩 기록한다. 숲은 그에게 비워야 할 것, 채워야 할 것, 그리고 깨달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고, 그는 숲의 전령이 되어 독자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한다.

 

나무들이 함께하니 숲 세상은 흔들리지 않는다. 꽃을 피워 씨를 만들고, 열매에 담아 유전자를 계승한다. 한편에선 빼곡히 잎을 내어 광합성을 하고, 양분을 만든다. 그리고 줄기에서는 물과 영양염류가 부지런히 오간다. 한 해를 마무리할 즈음이 되면 잎이 지고 열매는 어미를 떠난다. 그리고 지혜의 유산이 뿌리에 남겨진다. 이 과정 속에서 삶의 과학과 논리를 만나고, 지혜와 감성을 배운다. 숲 나무들이 들려주는 전설이 바로 인문학이다. /p. 8

 

《나무의 말이 좋아서》는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는 봄부터 시작해 눈이 소복이 내린 겨울까지 사계절의 숲을 그려낸다. 그리고 도시에서 오랫동안 살아 자연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작은 풀꽃부터 시작해 푸르고 웅장한 녹음이 매력적인 나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책을 읽으며 지나온 봄을 다시 되새기기도 하고 이미 시작된 짙은 초록빛의 계절을 텍스트와 이미지로 또 한 번 느끼니 감회가 새롭다. 높은 회색 빌딩이 아니라 탁 트인 자연의 전경이 담긴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느새 저자와 함께 숲속을 거니는 듯한 상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속절없이 바람에 실리는 벚꽃, 단호히 셀프 엔딩을 택하는 동백꽃, 삶의 끝자락을 놓지 못하는 목련꽃. 모두 다 유전자를 남기고 맞이하는 애잔한 피날레이다. 사람들에게 그 모습이 제각각으로 보이겠지만, 그들이 떨어져나간 뒷자리에는 내일의 희망이 남아 있다. 바로 열매라는 이름으로 내일을 약속하는 생명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 p. 24

 

저자는 숲속의 나무와 풀꽃들을 통해 우리 삶을 조망한다. 칡덩굴을 보고 존중과 배려가 없는 여유 없는 우리 사회를 말하기도 하고, 소나무의 송홧가루를 보고 사랑하자고 하기도 한다. 또, 인동이라는 식물을 통해 다가오는 봄을 위해 자신을 성찰하고 인고의 시간을 보내자 다독이기도 한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온 현대인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힐링은 없다. 숲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저자의 사진과 글 때문에 다시 숲으로 가고 싶어지니 말이다.

 

요즈음 살면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정해 실행하는 '버킷 리스트' 만들기가 유행이다. 운동, 예술, 여행, 공부, 재테크 등 사람마다 취향이 다양하다. 배낭을 꾸려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산하 숲길 곳곳을 걷는 미션도 좋겠다. 천천히 느리게 걸으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지금 존재하고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느껴보자. / p. 184

 

올곧게 하늘 위로 뻗은 나무들은 우리들을 부른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잎들끼리 부딪히도록 만들며 솨솨 거리는 소리로 사람들을 이끈다. 자신의 그늘 아래에 앉아 조금 쉬었다 가도 된다고. 땀도 식히고 맑은 공기도 마시고 다시 힘내서 가던 길을 가면 된다고 말이다. 숲으로 갈 수 없는 나는 집 앞 공원으로 간다. 푸른 녹음 아래 가만히 앉아 두 눈을 감고, 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그렇게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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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시장 2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지음, 서정은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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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이제 우리의 인형극이 끝났으니 꼭두각시 인형들을 집어넣고 상자의 뚜껑을 덮자구나."라며 윌리엄 M. 새커리는 《허영의 시장》을 끝맺었다. 1권과 2권을 합쳐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들이 가진 욕심과 허영을 뽐냈고, 그로 인해 비극적 결말을 맞기도 했다. 한 가문의 수장으로서 경제권을 쥐고 흔들고, 전쟁을 피해 비싼 돈을 지불하며 도망을 가고, 또 망해버린 사업으로 딸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던 인물들은 결국 죽음으로 이 연극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들 중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그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녀의 썩은 양심이 이번만은 정말 순수함을 지켰던 것일까? 그녀의 모든 거짓말과 계략, 이기주의와 음모, 기지와 영리함이 결국 이렇게 파국을 맞이하고 말았다. / p. 363

인물 소개가 주를 이루었던 《허영의 시장 1》과는 달리 《허영의 시장 2》에서는 본격적으로 인물들의 욕심과 허영을 보여준다. 로던과 비밀리에 결혼해 야반도주를 했던 레베카는 특유의 성격으로 사교계를 휩쓸며 남심을 사로잡고 많은 여성들의 질투를 받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높은 콧대를 유지하며 자신의 생활이 유지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가 만약 그 시대의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한자리 차지하고도 남았을 만큼 그녀는 주변 사람들을 감언이설로 유혹한다. 그렇게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당시의 영국 상황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1817년과 1818년의 그 행복했던 시기 동안 영국인들의 부와 명예에 대한 존경은 대단한 것이었다. 듣자 하니 그때의 영국인들은 아직 현재의 그들을 특징 짓는 집요하고도 인색한 흥정의 기술 같은 것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유럽의 주요 도시들 역시 아직 악랄한 영국 사기꾼들의 공격을 받기 이전이었다. 그러나 이제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어떤 도시에서도 영국의 귀족이라는 작자들이 상표처럼 달고 다니는 거만한 자세로 여관 주인들을 등쳐먹고 믿을 수 없는 은행에서 발행된 허위 수표들을 남발하고 마차 제작자들에게는 마차를, 세공인들에게는 장신구를 만들게 한 후 돈을 지불하지 않고 가버리고 카드놀이로 순진한 여행객들의 돈을 뜯고 심지어 공공 도서관에서 책을 훔쳐 가는 등의 만행을 일삼는 것을 볼 수 있다. / p. 63

새커리는 이런 레베카의 모습을 통해 당시 영국인들의 허영 넘치던 모습을 비판한다. 돈이 곧 명예라고 생각하고 돈을 좇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아첨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들에 빗대어 영국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인물을 향한 논평을 하는 척 《허영의 시장》을 읽는 독자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아주 냉정한 어조로.

《허영의 시장 2》에서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등장한다. 로맨스. 당시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임을 감안하면, 새커리 입장에서는 이런 소재를 넣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은 웃기게도 독자들이 기대했던 로맨스가 펼쳐지지는 않는다. 그저 한 남자의 애절한 짝사랑만이 남아있을 뿐. 남편 조지가 전사한 뒤, 아들을 낳아 홀로 키우는 아멜리아가 바로 그 짝사랑의 대상이다. 작가가 묘사하기에도 청순하고 남성들이 좋아할 만한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아멜리아를 늘 옆에서 지켜보는 도빈의 사랑은 가슴 아프다.

그건 핑계에 불과해요, 아멜리아. 그렇지 않다면 난 지난 십오 년 간 아무 보람 없이 당신을 지켜보고 사랑해온 걸 겁니다. 나도 그동안 당신의 마음을 읽고 당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어요. 당신의 애정이 무엇인지 나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충실하게 기억에 매달리며 몽상을 소중히 여기고 있지요. 하지만 제가 당신에게 바쳐온 마음은 소중히 여기지 않아요. 당신보다 너그러운 여자에게 제가 받을 수도 있었을 애정을 느낄 줄도 모르고요. 네, 당신은 내가 그동안 바쳐온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 p. 608

작가는 인물들이 각자의 허영을 추구하도록 만들고는 그들을 비판을 위한 대상으로 삼았던 걸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허영의 시장》 속 인물들이 말하는 스타일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레베카는 남편을 멍청한 양반, 작은 괴물 등으로 불러대기도 하며, 자신의 행동이 절대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말투는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만들뿐더러 읽는 독자들조차도 그리 좋게 느끼지는 못한다. 읽는 동안 그런 스타일로 말하는 인물 주변에 여전히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충격적이었던 《허영의 시장》. 원하는 대로 시원한 결말을 맞이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이 가진 욕심과 그 본성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것이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아! 헛되고도 헛되도다! 우리 중 누가 대체 이 세계에서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설사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한들 만족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인간이 가진 허영의 끝은 어디일까. 부디 그 시장의 중간에서 헤매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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