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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하수연 지음 / 턴어라운드 / 2019년 6월
평점 :
죽는 것과 사는 것
둘 중에 하나는 쉬워야 되는 거 아닌가.
어느 날, 이전에는 알 수 없는 병이 지루할 만큼 무난한 나의 일상에 침투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의 온전했던 일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삶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누군가의 투병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그렇게 버틸 힘이 있을지, 고통스러워도 이 삶을 계속해서 연명해 나갈 용기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진다. 내가 상상하지 못할 고통을 겪은 이의 앞에서 어찌 그 이야기를 함부로 논할 수 있을까.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은 갑작스럽게 희귀난치병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게 된 저자 하수연의 에세이를 담고 있다. 18살에 갑자기 찾아온 '재생불량성 빈혈'은 그녀의 삶을 산산조각 낸 뒤 어디서도 얻지 못할 깨달음과 시야를 선사한다. 희귀난치병인 만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힘이 되고자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기록한다. 장장 6년간의 투병 기록은 그녀는 누구보다도 솔직하게 써 내려간다.
나는 내 안에서 방황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투병을 시작한 열여덟 살부터 지금까지
내 안에서 유랑하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 p. 224
일반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재생불량성 빈혈에 대해 저자 하수연은 그림을 통해 쉽게 전달한다. 백혈병과 비슷하지만 다른 병으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모두가 감소하는 범혈구 감소증이 나타나 조혈 기능에 장애가 생기는 이 병은 골수 이식을 통해 치료될 수 있다. 저자 하수연은 병의 증상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때부터 판정을 받고, 골수 이식, 항암 치료까지의 과정을 모두 적나라하게 고백한다.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과 마주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의지를 다져가는 그녀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용기 있어 보인다.
문제를 직면한다고 해서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직면하지 않고서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고 한다. 나는 문제를
똑바로 쳐다볼 용기조차 없는데 어떡하지…. 앞으로 닥칠
상황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워 여태껏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부딪혀야 한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전장에 등 떠밀려 나가는 기분이다.
내가 이 병과 함께 어디까지 가게 될까. / p. 53
그래도 내 인생이잖아.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인데
살아야지. 버텨야지. 일어나야지.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중 '눈물의 미역국' 에피소드는 읽는 독자로서 함께 울컥하게 만들었다. 항암치료로 인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저자 하수연은 앞 침대 환자의 식사 냄새를 맡고는 저녁밥으로 미역국을 신청한다. 주문의 오류로 미역국이 아닌 냄새가 덜한 감자, 고구마, 삶은 계란 등으로 이루어진 식단이 들어오자 그 서러움을 물밀듯 밀려 들어오고, 겨우 먹게 된 미역국에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는 장면은 너무도 서글프고 안쓰러웠다.
이 밖에도 항암치료로 까무잡잡해져 버린 자신과 마주하는 일, 화장실에 온전히 혼자 가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수치에 따라 먹고 싶은 음식을 조절해야 되는 일, 자신의 몸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었던 히크만 등등 환자로서 느꼈던 고통스러운 상황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수없이 나을 수 있다고 주문을 외운 덕분일까. 저자 하수연은 골수 이식 이후에 완치에 이르게 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에 감사하며, 주변 사람들을 더욱 아끼며 살아간다.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은 그녀의 투병 기록이자 그녀의 성장 일기이기도 하다. 앞으로 그녀에게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으면 바란다.
지구상의 많은 생명들이 허물을 벗고 탈피를 하며 성장한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허물을 벗어야 할 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만큼 건강해지고 단단해질 거라 믿는다. / p.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