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 - 문명의 기반이 된 '철'부터 미래를 이끌 '메타물질'까지!
사토 겐타로 지음, 송은애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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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우리 곁에 있고 누구나 보면서도 의식한 적 없는 혁명,

이것이 바로 신소재의 힘이다.


많은 과학적 발전이 없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일상을 누릴 수 있었을까. 이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순간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발견과 발명이 있었는지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는 이야기한다. 우리가 입고 쓰는 모든 것을 12가지 재료로 정리하여 불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설명한다. 역사와 과학의 결합은 읽는 내내 흥미를 자극한다.


역사를 좋아하지만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로서는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으로 알려진 저자 사토 겐타로는 역사의 흐름을 바꾼 12가지의 '재료'의 발견과 발명의 순간들을 독자들에게 설명한다. 우리가 '혁명'이라고 일컫는 역사적 사실들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그 바탕을 될 수 있었던 것에는 우리가 새로운 재료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문명이 한 단계 위로 나아가려면 다양한 요인이 필요하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 사람들의 의식 변화, 정치와 경제, 기상과 재해 등 수많은 요소가 얽혀서 필요한 조건이 하나라도 빠지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훌륭한 신소재는 다른 요인보다 출현하기가 극히 어렵다. 그래서 '시대가 원하는 재료의 등장이 바로 세상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결정타, 즉 속도결정단계가 아닐까'라는 것이 내가 세운 가설이다. / p. 9



《세계사를 바꾼 12가지 신소재》는 이제는 우리 일상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소재인 금, 도자기, 철,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 12가지의 재료들을 다룬다. 읽는 내내 흔히 알고 있는 재료의 쓰임 외에도 형태를 바꿔 일상 속에 녹아져 있는 재료들의 뒷이야기들을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하다. 피부 재생력을 위해 화장품 원료로 주로 사용되었던 콜라겐이 사진 필름을 만드는 데에 사용된다는 이야기나 자석으로 음악 생산 방식이 바뀌면서 음악 산업이 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놓쳤던 역사의 재밌는 이면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근래에 탄생한 인공지능은 점점 더 우수한 신소재를 만들어내고 있다. 요즘 인공지능이 인류의 능력을 뛰어넘어 더 우수한 인공지능을 설계하는 '싱귤래리티'가 자주 거론되는데, 이미 재료의 세계는 이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다. / p. 257



과거의 역사에서 재료들의 등장을 이야기하던 사토 겐타로는 최근 새롭게 발견된 재료들까지 총망라한다. 실리콘밸리를 형성하도록 도와준 '실리콘'에서 자연스럽게 인공지능과 메타물질로 넘어가면서 앞으로 또 새롭게 등장할 재료를 전망한다. 강철보다 강한 종이, 깨져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도자기, 작게 접을 수 있는 유리 등 그동안 상상만 했던 재료들을 발견하고 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앞으로 신소재가 등장한다면 우리의 삶은 또 어떤 변화를 하게 될까?




실제로 재료는 만물의 기초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 군사와 문화,

온갖 삼라만상이 재료 위에 세워진다.

나는 우리 생활을 뒷받침하면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영웅들에게 빛을 비춰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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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14
가와이 하야오 지음, 위정훈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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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 많은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약점, 단점이라는 뜻으로 일상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타인에게 들키지 않기를 원한다. 타인이 나의 콤플렉스를 알아차리는 순간, 그 앞에 나신으로 선 것만 같은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러나 웃기게도 콤플렉스는 가리려 하면 할수록 타인의 눈에 더 잘 드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콤플렉스를 잘 관리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일본 융 심리학의 제1인자'로 불리는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콤플렉스'의 정의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의 정의를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융 심리학을 바탕으로 우리가 배제해야만 하는 티끌 따위가 아니라 콤플렉스는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열쇠라고 이야기한다. 즉, 자아를 바탕으로 노이로제, 인간관계 등 콤플렉스를 심적 생명의 초점이자 결절점이라고 구성한다.



결국 콤플렉스의 존재 여부, 또는 행동의 진심 여부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자아와 콤플렉스의 관계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 p. 80



《콤플렉스》는 콤플렉스의 정의를 시작으로 자아와의 관계, 콤플렉스의 구조, 그리고 콤플렉스의 다양한 형태들을 보여준다. 또한, 노력을 통해서 콤플렉스를 해소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콤플렉스와 정면으로 부딪혀 자아를 강화시킬 수 있음을 말한다. 흔히 꿈은 무의식의 세계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콤플렉스를 인격화하여 만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흥미롭다.


가와이 하야오는 융 심리학을 바탕으로 《콤플렉스》를 구성했기 때문에 이 책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서 설명한다. 사실 이전까지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그는 서양과 동양에서 콤플렉스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느 정도는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같은 이중인격처럼 서양에서는 콤플렉스와 자아가 다른 것이라고 여기며, 다양한 인격으로 구분하는 반면에 동양에서는 모호한 상태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자아가 콤플렉스와 명백하게 구별되고 그것을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와 콤플렉스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인 것이다. 즉, 자아와 콤플렉스는 '창호지 너머' 이웃해서 살고 있으며, 서양처럼 문이 달린 각자의 방으로 나뉘어 살고 있는 모습이 아닌 것 같다. / p. 201



《콤플렉스》를 읽으면서 표면적인 콤플렉스를 깊숙이 파고들면 또 다른 기저의 콤플렉스가 드러난다는 것이 신기했다. 예시로 요리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여성을 검사했더니 열등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고, 더 깊숙한 기저에는 아버지에 대한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요리 콤플렉스로 인지되었던 건 엘렉트라 콤플렉스였던 셈이다. 이처럼 콤플렉스도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콤플렉스를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콤플렉스와의 대결을 통해 죽음과 재생을 체험하고 자아의 힘을 점차 강화시켜나가는 것이 자기실현 과정인 것이다. / p. 218



스스로 콤플렉스라고 여겼던 것이 있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인지한 콤플렉스는 없는 것 같지만, 혹여나 콤플렉스를 인지하게 되는 순간 그대로 마주하려고 한다. 오히려 감추고자 할수록 콤플렉스는 서서히 내면을 죄어 올 테니까. 그에 대한 선행학습으로 《콤플렉스》를 읽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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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빙수의 전설 웅진 모두의 그림책 21
이지은 글.그림 / 웅진주니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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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얼린 얼음을 꺼내 탈탈 털어 기계 안으로 모두 털어 넣는다. 드르륵, 드르륵.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돌릴 때마다 곱게 갈린 얼음이 그릇 위로 수북히 쌓이기 시작한다. 딸각, 하며 팥이 담긴 통조림을 열고 그릇에 가득찬 얼음 위로 팥 한 스푼을 얹는다. 설탕이 골고루 묻혀진 과일맛 젤리도 넣고, 아빠가 좋아하는 작은 빙수용 떡도 올린다. 참, 후르츠칵테일도 한 스푼 넣어야지. 단 게 너무 좋으니까 연유 시럽도 조금 뿌린다. 서걱서걱, 숟가락으로 얼음을 살살 녹여 모든 재료를 잘 섞은 뒤에 한 입 가득 넣으면 혀 끝이 짜릿하면서 머리가 찡하다.



여름마다 찾아 먹는 빙수. 요즘은 프랜차이즈에서 '눈꽃 빙수'라는 이름으로 곱디고운 얼음을 이용해 다양한 빙수를 선보이는 덕에 애써 땀을 뻘뻘 흘리며 빙수를 만들어 먹을 일이 전혀 없다. 초코맛 빙수, 치즈맛 빙수, 인절미 빙수 등등. 다양한 빙수의 세계가 열렸는데 어째서 내 혀는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얼른 모여 봐.

지금부터 엄청 재미난 얘기를 해 줄 거여.

옛날옛날 한 옛날에,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좋은 그런 날이었어.



《팥빙수의 전설》은 어릴 적 온가족이 함께 모여 만들어 먹던 빙수를 생각나게 하는 동화다. 이지은 작가는 어릴 적, 한 여름 밤이 되면 손수 얼음을 갈아 한 사발씩 만들어 주시던 할머니표 팥빙수의 시원달콤한 맛을 《팥빙수의 전설》에 담아낸다. 손에는 팥빙수 한 사발을 들고, 할머니 곁에 앉아 옹기종기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떠오르는 《팥빙수의 전설》은 읽는 내내 미소를 짓게끔 만든다.






빨간 보자기를 질끈 감고 밭으로 나가는 할머니의 일과로 《팥빙수의 전설》은 시작된다. 잘익은 수박, 달달한 참외와 탱글탱글한 팥, 빨갛게 익은 딸기를 모두 수확한 할머니는 장에 나가 팔기로 계획한다. 그리고 따스한 날, 장으로 나선 할머니는 갑작스럽게 내리는 눈에 당황한다. "요렇게 따스운 날에 눈이 오면 눈호랑이가 나온다고 했거든."






맛있는 거 주면 안 잡아먹지.



전래동화 <햇님달님>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가 생각나는 《팥빙수의 전설》에서 눈호랑이는 할머니를 마주칠 때마다 맛있는 거를 요구한다. 호랑이에게 맛있는 것을 하나씩 건네주고 조심조심 도망가는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눈호랑이와의 체구 차이에서 오는 큐티뽀작함이란..







더구나 할머니는 눈호랑이를 따돌리겠다며 귀여운 꼼수도 쓰신다. 눈호랑이가 더는 쫓아오지 못하도록 다리를 끊고 '메롱'을 하시는 여유까지 선보이시며. 이지은 작가는 이런 귀엽고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팥빙수에 대한 상상력을 모두 표현한다. 아이들에게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를,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팥빙수를 떠올리게 만드는 《팥빙수의 전설》. 이지은 작가의 또 다른 재밌는 이야기들을 앞으로 더 많이 만나보고 싶다.



재밌는 얘기 또 해 달라고?

맛있는 거 주면 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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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방법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나카야 우키치로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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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무엇일까? 중학생까지만 해도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의 이유를 공부하며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는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과학과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대입을 앞두고 수학이 아닌 국어를, 과학이 아닌 사회를 선택한 순간부터였다. 당시 '수포자'였던 나에게 숫자는 울렁거리는 존재였고, 숫자로 표현되는 과학 수식들은 더욱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과학'이라는 분야는 내게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카야 우키치로의 《과학의 방법》은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자연과학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방법을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해왔는지를 생각해보기 위한 책이다. NHK 교양대학 강좌로 9회에 걸쳐 방송했던 강의를 바탕으로, 과학론에 대한 수필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사회학에 비해 낯설 수 있는 '과학'에 대해 나카야 우키치로는 쉬운 방식으로 과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재정의한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이 발견한 것의 실체나 법칙은 인간과 자연의 공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과학적 시각으로 검토해가는 과정을 통해 차츰 자연의 실체가 무엇인지 규명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품인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의 완성의 의미는 예술가가 조각을 만든다거나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 p. 37



과학은 자연의 실체를 바라본다. 매우 복잡한 자연현상들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재현 가능'하다는 '법칙'에 넣어 정리한 학문인 셈이다. 인간이 자연 전체를 바라보고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나카야 우키치로는 비교적 간단한 자연현상만으로 국한해도, 현재 우리들이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으로는 다룰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게 과학이라는 학문의 기본부터 한계까지를 차근차근 정리하여 독자들에게 설명한다.


《과학의 방법》을 읽으며 단연 흥미로웠던 부분은 과학과 수학간의 관계였다. 자연계에는 인간이 추상적으로 만든 '숫자'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대 과학에서 수학은 빼놓을 수 없다. 나카야 우키치로는 자연현상에서 뽑아낸 것들을 인간의 두뇌로 정리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인간과 자연의 융합, 수학과 과학이라는 학문이갖는 관계로 증명하는 셈이다.



한편 수학은 첫 부분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인간의 두뇌로 만들어진 학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고차원적인 수학을 활용해도 인간이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은 수학에서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해도 개인이 만든 것은 아니다. 이른바 인류의 두뇌가 만든 것이다. 그런 만큼 기본적인 자연현상의 지식을 수학으로 번역하면 그다음에는 수학이라는 인류의 두뇌를 사용해 그 지식을 정리하거나 발전시킬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의 두뇌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었던 곳까지 인간의 사고를 이끌어준다. 바로 그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수학의 소중함을 발견 할 수 있다. / p. 161



나카야 우키치로는 《과학의 방법》을 통해 앞으로 과학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과학에서의 인간적 요소'라는 소제목에 맞게 그는 과학에 대해서도 인문학적 시각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물질 내부로 파고들어 살펴보는 것만이 과학의 본질이 아니며, 다양한 방향으로 진보해나가야 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어 과학의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크게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자연과학이 매우 큰 발전을 거듭했기 때문에 과학만능주의적 경향이 전반적인 풍조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자연과학은 인간이 자연 속에서 현재의 과학의 방법에 의해 뽑아낸 자연의 모습이다. 자연 그 자체는 좀 더 복잡하고 심오하다. 따라서 자연과학의 장래는 영구히 발전해가야 할 성질의 것이다. / p. 256



과학이 크게 진보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하다. 앞으로 과학은 더 발전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과학의 방법》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과학에 조금은 다가갔음을 위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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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하수연 지음 / 턴어라운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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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과 사는 것

둘 중에 하나는 쉬워야 되는 거 아닌가.



어느 날, 이전에는 알 수 없는 병이 지루할 만큼 무난한 나의 일상에 침투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의 온전했던 일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삶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누군가의 투병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그렇게 버틸 힘이 있을지, 고통스러워도 이 삶을 계속해서 연명해 나갈 용기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진다. 내가 상상하지 못할 고통을 겪은 이의 앞에서 어찌 그 이야기를 함부로 논할 수 있을까.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은 갑작스럽게 희귀난치병 '재생불량성 빈혈'을 앓게 된 저자 하수연의 에세이를 담고 있다. 18살에 갑자기 찾아온 '재생불량성 빈혈'은 그녀의 삶을 산산조각 낸 뒤 어디서도 얻지 못할 깨달음과 시야를 선사한다. 희귀난치병인 만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힘이 되고자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기록한다. 장장 6년간의 투병 기록은 그녀는 누구보다도 솔직하게 써 내려간다.




나는 내 안에서 방황하며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투병을 시작한 열여덟 살부터 지금까지

내 안에서 유랑하는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 p. 224







일반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재생불량성 빈혈에 대해 저자 하수연은 그림을 통해 쉽게 전달한다. 백혈병과 비슷하지만 다른 병으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모두가 감소하는 범혈구 감소증이 나타나 조혈 기능에 장애가 생기는 이 병은 골수 이식을 통해 치료될 수 있다. 저자 하수연은 병의 증상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때부터 판정을 받고, 골수 이식, 항암 치료까지의 과정을 모두 적나라하게 고백한다.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찾아온 죽음과 마주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의지를 다져가는 그녀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용기 있어 보인다.



문제를 직면한다고 해서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직면하지 않고서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고 한다. 나는 문제를

똑바로 쳐다볼 용기조차 없는데 어떡하지…. 앞으로 닥칠

상황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워 여태껏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부딪혀야 한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전장에 등 떠밀려 나가는 기분이다.

내가 이 병과 함께 어디까지 가게 될까. / p. 53







그래도 내 인생이잖아.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인데

살아야지. 버텨야지. 일어나야지.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중 '눈물의 미역국' 에피소드는 읽는 독자로서 함께 울컥하게 만들었다. 항암치료로 인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저자 하수연은 앞 침대 환자의 식사 냄새를 맡고는 저녁밥으로 미역국을 신청한다. 주문의 오류로 미역국이 아닌 냄새가 덜한 감자, 고구마, 삶은 계란 등으로 이루어진 식단이 들어오자 그 서러움을 물밀듯 밀려 들어오고, 겨우 먹게 된 미역국에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는 장면은 너무도 서글프고 안쓰러웠다.


이 밖에도 항암치료로 까무잡잡해져 버린 자신과 마주하는 일, 화장실에 온전히 혼자 가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수치에 따라 먹고 싶은 음식을 조절해야 되는 일, 자신의 몸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었던 히크만 등등 환자로서 느꼈던 고통스러운 상황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수없이 나을 수 있다고 주문을 외운 덕분일까. 저자 하수연은 골수 이식 이후에 완치에 이르게 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에 감사하며, 주변 사람들을 더욱 아끼며 살아간다.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은 그녀의 투병 기록이자 그녀의 성장 일기이기도 하다. 앞으로 그녀에게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으면 바란다.



지구상의 많은 생명들이 허물을 벗고 탈피를 하며 성장한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허물을 벗어야 할 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만큼 건강해지고 단단해질 거라 믿는다. / p.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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