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일구는 사람들] 6. 출판사 사장 45명 모임 ‘책을 만드는 사람들’

책만드는 사람들은 생각을 많이 한다. 출판사 사장이 새 책을 만들면서 “어떻게 하면 잘 팔릴까”란 고민은 너무나 당연하다. 또 있다. 다른 제조업체 사장과 달리 그들은 “이 책 출판이 가치가 있나, 없나”, “독자에 좇아가야 하나, 이끌어 가야 하나” 등 가치와 의미까지 따진다. 책이 그저 이쑤시개 같은 ‘상품’만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 4일 오후 5시, 서울 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회관 지하 회의실. 출판사 사장 20여명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사장스럽지 않은’ 허름한 복장으로 서로 덕담을 나누며 분주한 이들은 ‘책을 만드는 사람들’(책만사)의 회원들. 책만사는 우리 출판계의 핵심을 이루는 출판사 사장 45명의 모임이다. 30~40대 출판인으로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매월 모임을 가져온 지 12년째. 이날 모임은 144번째로 12년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지속돼온 만남이다.

책만사는 ‘출판이 곧 운동’이던 80년대를 지나면서 시대변화에 따라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창립회원인 한철희 사장(돌베개)은 “사회과학출판사들을 중심으로 전문성 높은 출판인이 되기 위한 연구모임을 시작한 게 책만사의 뿌리”라며 “이제는 다양한 분야의 능력있는 출판사들이 골고루 모여 연구·토론해 무척 뿌듯하다”고 밝혔다.

책만사는 매월 모임을 통해 스스로의 힘과 능력, 나아가 한국 출판의 역량을 키워오고 있다. 전문가를 초빙해 교양강의를 듣는가 하면, 출판기획 사례나 회계관리, 저작권이나 마케팅, 국내외 출판시장 트렌드 등을 토론한다. 조미숙 총무간사(창조문화 사장)는 “전문분야의 필자나 시장전망 등의 정보획득이라는 현실적 장점 외에 서로 모여 콘텐츠를 공유하고 시대성을 고민하다 보면 긍정적인 자극과 힘을 주고받게 된다”고 책만사의 장점을 강조한다. 대표간사인 장인용 사장(지호)은 “정관 등 엄격한 규율에 따라 회원들의 자발적 봉사정신으로 굴러가는 모임”이라며 “책만사라는 이름을 내세운 대외활동은 자제하지만 한국 출판문화를 위해 회원 각자는 개별적으로 곳곳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책만사는 매년 하는 ‘올해의 책’ 선정 외에 지난해는 ‘책만사 문고’ 만들기에 나섰다. 지난해 9월 백령도 초·중·고교와 군부대에 2,000권의 책을 기증한 것. 이젠 1년에 단 한 곳이더라도 문화소외 지역에 대한 책만사 차원의 활동이 추진될 예정이다. 그러나 책만사는 그 역량에 비해 대외활동을 많이 자제해왔다. 기존 출판 단체들이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역할을 축소하는 것은 책만사의 장점이자 단점. 근래에는 안팎에서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한성봉 기획간사(동아시아 사장), 양상호 총무간사(해바라기 사장)는 “사실 한국출판의 흐름을 만드는데 책만사는 큰 역할을 할 수 있고, 일부 회원은 개인적으로 그런 역할을 한다”며 “이제 연륜도 있는 만큼 책만사 이름으로 출판문화나 사회 발전을 위한 대외적 역할을 찾자는 분위기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건전한 역량을 펼쳐보이자는 분위기 속에 책만사 모임에서는 새해 전망, 각오 등 출판계 전반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를 꽃피웠다. 회원들은 올해도 출판시장이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 심화 등 만만치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주현 기획간사(예문 사장)는 “불황에 대한 출판계의 자성과 노력도 중요하다”며 “독자들에게 더 다가가기 위한 전문화, 세분화, 다양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곽미순 기획간사(한울림 사장)는 “중복출판 등 제살 깎아 먹기식의 출판계 문제점들도 고쳐나가야 한다”며 “올해는 교육전문 출판사로서 기획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전한다.

결코 밝지 않은 시장상황이지만 책만사 회원들은 헤어지면서 하나같이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책은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이고, 책 읽기가 주는 엄청난 효과를 거듭 강조하며 올해는 “제발, 책 좀 더 많이 읽자”고 외친다.


(경향신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문출판사를 찾아서 (16)] “철학이 없는 삶은 없다” [06/01/03]
철학전문 ‘서광사’

30년간 500여권 출간, 어린이 위한 철학만화도 펴내... 플라톤의 `국가`는 14년 걸려

서광사에 전화로 책을 주문하는 고객은 주민번호까지 일일이 불러줘야 한다. 2005년 초 세무조사에서 ‘개인에게 책을 팔 때도 세금계산서를 끊어야 한다’는 사실을 고지받은 후 이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직원 5명이 일하는 작은 출판사지만 이렇듯 서광사는 원리원칙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

철학책을 전문으로 펴내는 ‘서광사’는 김신혁(金信爀·62) 사장이 1974년 당시 다니던 인쇄소를 그만두고 나와 자본금 100만원을 가지고 문을 열었다. “사장님이 가톨릭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한때 신부가 되려고까지 했어요. 처음부터 철학책을 전문적으로 내는 출판사를 세우기로 마음먹었던 거죠.” 1999년 12월 김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진 후 회사의 경영을 맡고 있는 부인 이숙(李淑·58) 부사장의 말이다.

아직 국내에 저작권법이 발효되기 전이었던 당시엔 원서를 제본해서 판매하는 리프린트부터 시작했다. 리프린트하는 책 또한 철학 원서였다. 많은 수의 원서를 리프린트 하면서 훑어보고 번역출판 가능성을 검토해 본격적으로 출판에 뛰어들 채비를 했다. 마침내 1977년 서광사의 첫 번째 책인 롤스의 ‘사회정의론’이 출간되었다.

서광사의 책에는 고유번호가 매겨져 있다. 롤스의 사회정의론을 1번으로 해 가장 최근에 출간된 ‘공자와 유가’는 511번을 달고 있다. 약 30년 동안 500여권을 펴냈으니 한 해에 출간한 책은 20권이 채 안되는 셈이다. 한 권당 1년에 보통 100권 정도가 팔린다고 하니 ‘저렇게 팔아서 장사가 되려나’ 싶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500여권의 책이 대부분 절판되지 않고 10년이고 20년이고 꾸준히 팔리고 있다. 1년 동안 팔리는 책을 합산해 보면 8만~9만권 정도가 된다.

서광사는 시대를 앞선 경영 방식으로 출판가에 화제가 되곤 했었다. 우선 야근이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되어있는 출판계의 상황에서 정시 출퇴근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아침 9시 출근, 오후 5시 50분 퇴근’이 그것. 야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사장한테 허락을 맡도록 했다. 더욱 놀랄 일은 1987년에 이미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한 것. “처음엔 직원들이 더 불만이 많았었다고 해요. 특히 우리나라 남자들은 남들 일할 때 집에서 쉬고 있으면 불안해 하잖아요. 그런데 얼마 지나니까 역시 다들 만족해하더래요. 처음엔 사람들이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몰랐던 거죠.”

서광사가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한 지 3년쯤 지났을 때 김신혁 사장이 한 잡지에 기고한 글을 봤다. 거기에는 “(사원들이) 주5일 근무제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며 “새로 입사한 직원 중에는 ‘회사가 개인에게 지나치게 관여한다’거나 ‘숨이 콱콱 막히는 것 같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었다”고 적혀 있었다. 토요일에 일하고 싶은 사람을 회사에 못 나오게 하는 것도 당시엔 심각한 사생활 침해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1993년에 외국에서는 일반적인 관행으로 자리잡았지만 국내에는 생소했던 인세후불제를 시행했다. “저자들은 안전하게 선불로 계약금 받는 걸 선호했죠.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저자들도 연말마다 세금공제 서류까지 첨부해서 책의 매출현황을 정확하게 기록한 내역서를 받아보시고는 이렇게 투명하게 하는 쪽이 더 낫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자에게 보내는 매출내역서를 정리하듯이 회사의 재무관리도 책 한 권, 비품 하나까지 꼼꼼히 챙기며 투명하게 해나갔다. “10년쯤 전이었을 거예요. 세무사들이 세무조사를 하러 왔는데 막상 아무런 잘못도 발견하지 못한 거예요. 나중에는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짜증을 냈다고 하더라고요.”

회사가 투명하다는 것은 사장이 없더라도 회사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투명하게 경영한 덕을 보게 되었다. 김신혁 사장이 뇌출혈로 쓰러진 뒤 거동이 불편하고 무엇보다도 언어장애가 왔기 때문에 경영을 계속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족들은 출판사의 거취를 놓고 고민했다. 이 부사장은 “출판 일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엄두가 안 났죠. 그렇다고 사장님이 그토록 애정을 가진 사업을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결국 유학 가기 전에 잠시 회사 일을 돕고 있던 큰 아들과 함께 이 부사장이 회사를 맡기로 했다.

“예전에 사장님이 집에 오면 회사 얘기를 참 많이 했어요. 그냥 무슨 일이 있었다는 정도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회사에 이러이러한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식으로 저한테 자문도 많이 구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집에 있으면서도 회사가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었죠. 또 회사에 와보니 매출, 수금현황 등 회사 경영에 대한 자료가 워낙 투명하게 잘 정리돼 있어서 그런 것들을 하나둘 보면서 업무를 익힐 수 있었어요.”

취재를 하면서 매출실적, 출간현황 등을 물어보면 이 부사장의 큰 아들인 김찬우 부장이 표와 자료를 뒤져가면서 정확한 수치를 대답해줬다. 김 사장이 쓰러진 후 항간에는 ‘서광사가 문을 닫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사장이 경영을 맡은 후에도 서광사의 책이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는 등 전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금 출판사엔 역·저자의 원고가 밀려들고 있다.

30년 이상 철학책만 펴내다보니 주위에서 “돈 안되는 철학만 전문으로 할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책을 내보라”고 권유도 많이 받았다. 서광사는 ‘철학 외길’을 포기하고 다른 분야의 책을 내는 대신에 다른 연령대를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1990년부터 출간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철학 동화 ‘사랑과 지혜가 담긴 동화’와 ‘세상의 빛깔들’ 시리즈, 1997년부터 펴낸 청소년을 위해 만든 ‘만화로 읽는 철학’ 시리즈가 그것이다. 현재는 청소년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철학책이 전체 매출액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서광사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아동용 철학책을 찾는 분 중에 논술과 관련된 책인지를 묻는 분이 적지 않게 있어요. 철학책마저도 입시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보고 찾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해요.”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무어냐고 물었다. “플라톤의 ‘국가’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계약을 한 건 1983년이었을 거예요. 1997년에 출간됐으니까 책이 나오기까지 14년이 걸린 거죠. 원고가 도착하던 날 사장님이 ‘14년 만에 원고 받아오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찼다’고 말씀하시던 게 생각나요. 플라톤의 ‘국가’는 원체 유명한 고전이긴 하지만 국내에서 그리스어를 원서로 해서 완역을 한 건 처음이었을 거예요.”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덕인지 판매실적도 지금껏 나온 책 중에 가장 좋다. 지금까지 1만2000부 정도가 팔려나갔다.

어느덧 3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 서광사는 국내 철학 출판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앞으로의 목표는 소박하다. “집에 계신 사장님 꿈이 생전에 철학책 1000권을 출간하는 거예요. 30년 동안 절반 정도 냈으니까 앞으로도 부지런히 내야죠. 시장환경이 안 좋아도 좋은 책은 꾸준히 팔리더라고요. 특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같은 고전은 세대가 바뀌어도 계속 찾는 사람이 생기잖아요. 이런 고전분야를 비롯한 좋은 철학책을 꾸준히 내서 서광사 일련번호를 1000번까지 늘리고 싶습니다.”


(주간조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푸른그대의 김용규 대표
등록일 : 2005/11/21
천공天空을 어깨에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처럼

한미화|출판칼럼니스트 bangku@dreamwiz.com

사정은 이렇다. 『철학통조림』이라는 청소년을 위한 철학책을 읽다보니 청소년만 읽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이 시대를 어떻게 쉬크하게 살아야 하는가가 늘 관심사지만 때로는 본질적인 이야기도 필요하다. 『철학통조림』에는 그런 본질이 있었다. 더구나 청소년이 읽을 수 있도록 썼으니 예시와 비유가 풍부해 나처럼 교양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적절했다.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으니 혼자 읽기는 아깝고 소개를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소개하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은 작가와 아나운서의 반응은 싸늘했다. 성인대상 프로그램에서 소개하기는 부적절하다, 청소년책을 어떻게 성인대상 방송에서 소개하느냐는 반응이 돌아왔다. 정말 이 책을 소개할 거냐고 심각하게 되물었다.

자존심이 좀 상한 나머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내가 고른 『철학통조림』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이우일의 일러스트를 사용한 표지와 제목이 너무 튀어서 가벼워 보였나. 본문 안의 일러스트나 딸과 아빠의 대화형식 등이 성인이 읽기에는 수준이 낮은 책이라는 인식을 줬는가. 책의 내용이 아니라 외양에 집착한 탓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청소년책을 성인이 읽으면 안 된다는 건 마치 그림책을 어린이만 보고, 만화책을 초등학생만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기합리화는 이렇게 했는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소개할 책을 교체했으니 귀한 책을 협찬해준 출판사에 어떻게든 진상을 밝히고 사과를 해야 했다. 게다가 이 책을 출간한 푸른그대는 달랑 『철학통조림』 두 권을 이제 막 펴낸 신생출판사였다. 실망도 클 것이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 출판사의 대표와 저자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철학통조림』의 저자인 김용규 씨는 이미 『알도와 떠도는 사원』 『다니』 그리고 『영화관 옆 철학카페』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등 일련의 대중 철학서를 펴낸 저자이다. 그런 그가 푸른그대라는 출판사를 내고 첫 번째로 낸 책이었다.

저자이자 출판사 대표인 김용규 선생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사과를 구할 겸해서 아예 저자가 출판사 대표로 변신한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마음 먹었다. 이것이 『철학통조림』을 인터뷰하러 간 사정이다.

   인터뷰를 위해 집을 방문한 적은 처음입니다. 선생이 쓰신 책의 서문에 보면 '청파동에서' 하는 마무리 글이 보이던데, 거기서 말하는 청파동이 여기군요.
   5년 넘게 청파동에서 살았습니다. 집사람이 피아노를 전공하는데, 그런 연유로 피아노 소리 때문에 아파트에서 살 수가 없어 단독주택에 살고 있습니다. 단독주택에 사니 집에 온다는 생각이 더 들겠지요.

한미화(이하 한)   『철학통조림』에 나오는, 골치 아픈 질문 던지기가 취미고, 모르면서 아는 척하기가 특기인 딸과 함께 사는 집이 바로 이 집이겠군요. 딸이라는 독자 대상이 분명하니 책을 만드는 작업이 앞의 작업들보다 쉽지는 않았는지요.
김용규(이하 김)   독일 유학중에, 그러니까 제 나이 마흔에 딸을 낳았어요.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으니 공부하는 중에는 아이를 갖는 일을 엄두도 못 내다가 많이 늦었지요. 집사람이 마침 공부를 일찍 시작해서 독일에서 일을 하던 때 아이를 낳았는데 그러다보니 공부를 하던 제가 딸아이를 목욕시키고 우유를 먹이면서 길렀어요. 그래서 마치 엄마와 딸처럼 아이와 저는 붙어 지내는 시간이 많았죠.
아이가 작년에 중학생이 됐는데, 집사람과 딸아이가 아빠는 왜 다른 사람은 종종 가르치면서 딸은 안 가르치느냐는 항의를 하더군요. 그래서 일요일마다 두 시간씩 딸아이를 가르쳤어요.

   결혼하고 나서 뼈저리게 느낀 것 중 하나가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지 말라인데, 아버지와 딸의 수업은 원만했나봅니다. 책으로 나왔으니까요.
   웬걸요. 아이에게 가르치려고 생각하니 난감합디다. 전문용어도 모르고 무엇보다 아이의 어휘력이 부족하더군요. 그래서 아이를 위해 전문용어를 풀고 예를 넣으면서 새롭게 강의안을 매주 한 편씩 준비했어요.
사람들이 철학을 어려워 하는 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철학자들이 개념을 엄밀하게 사용하길 바라기 때문이죠. 철학자는 자기가 말한 단어가 다른 철학자 누가 사용한 단어와는 다른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사랑이라고 할 때도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과 철학자가 생각하는 사랑은 틀린 거죠. 하이데거는 인간이라는 말을 두고도 현존재라고 했잖아요. 인간이라는 말에는 이미 선입관이 있다고 생각하니 자기만의 개념을 만든 건데 이러니까 일반인에게는 당연히 생소하고 어려운 거죠.
두 번째 이유는 철학자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보편적인 인간이 사랑에 대해 갖는 개념으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소설가가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사랑으로 말하지만 철학자들은 인류보편적 사랑을 이야기하지요. 그러나 일반인들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보다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요. 거기서 간극이 오는 겁니다.

   맞아요. 일테면 예가 들어가지 않은 글을 읽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아이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개념은 일상용어로 풀고, 소설이나 주변의 사례 등 구체적 예를 들었습니다.

『철학통조림』에는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라는 꼭지가 있다. 이걸 좀 폼 나는 말로 바꾸면 '실존주의란 무엇인가'로 바꿀 수 있다. 딸아이가 아빠에게 “우리는 왜 사는 건가요”하고 묻는다. 그러면 아버지는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라는 책을 통해 실존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이다. 까뮈는 인간에게 가장 참기 어려운 고통은 아무런 보람도 희망도 없는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이며 이를 시지프의 형벌이라고 불렀다.

시지프는 산꼭대기에 도달하면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영원토록 산꼭대기까지 운반하는 작업을 되풀이해야만 한다. 신들이 시지프에게 준 이 형벌은 무의미한 노동이었지만, 시지프는 이 노동에 반항함으로서 자신의 삶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했다. 까뮈는 인간의 삶에는 본래부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시지프처럼 스스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줄 때만 의미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철학통조림』은 추천목록에 올라있을 법한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나 사르트르의 『구토』 같은 고전 이야기를 통해 철학의 개념을 풀어주니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철학적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더불어 고전을 접해야 하는 청소년에게는 맞춤하다.



저자가 출판사 대표가 된다는 일은 어떤 것인가
   책은 얼마나 파셨습니까.
   이번 책이 어렵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 중학생도 읽고 이해한다고 하더군요.
주위 분들도 나쁘지는 않다고 하는데, 판매는 미미합니다. 책이 나온 지 넉 달 정도 됐는데 2쇄까지 찍었습니다. 두 권이 5천 질 정도 판매된 거지요. 저는 책이 좀 불운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언론에서 아무도 주목하질 않더라고요.

   아니죠.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셨잖아요.
   인터뷰를 하기는 했는데, 왠지 책이나 저보다는 일러스트를 그린 이우일 씨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거든요.

   아마도 청소년책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언론의 반응이 없었던가 보군요.
   책이 나오고 나서 물어보니 북섹션 담당 기자들은 이 책을 논술용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예 리뷰 대상에서 배제한 듯합니다. 책을 출간하고 나서 대형서점에서는 비소설 코너에 깔렸어요. 그런데 철학책이라 비소설 코너보다는 인문 코너가 적합하겠다 싶어 자리를 바꾸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저는 『철학통조림』을 출판하면서 청소년책의 운명 같은 걸 몸으로 겪은 셈입니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니 청소년에 맞는 컨셉트로 재미나고 쉽게 만듭니다. 그런데 청소년책이라서 신문과 방송 등의 매체가 일단 거부감을 표시하고 당연히 홍보가 전혀 안 됩니다. 그렇지만 다루는 주제는 인문적 지식이라 성인과 청소년 모두 읽어도 좋을 법합니다. 그러니 청소년 코너가 따로 없다면 인문 코너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데 인문서적을 사러오는 3-40대의 남성독자가 보기에는 애들 책이라고 여겨 손이 가질 않는 거지요.
실제로 모 출판사 사장님은 지금이라도 책을 전량 폐기하고 품위 있는 인문서적으로 다시 출간하라는 조언을 하기도 하더군요.

   제가 푸른그대를 인터뷰 상대로 고른 이유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앞에서 말씀드렸고 다른 하나는 김용규 선생께서 여러 권의 책을 내신 필자인데, 『철학통조림』으로 직접 출판사를 시작하셨기 때문이에요. 왜 하셨는지, 해보니 어떤지가 궁금합니다.
   제가 출판을 한다고 하니 다들 말리더군요. 막 시작했을 때 어느 출판사 사장님과 식사를 했는데, 출판사를 하려고 한다니 대뜸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출판이란 문화적 취향이 있는 사람들이 1억 정도 들고 왔다가 기부하고 나가는 일이다”라고요.

   사장님께 말씀을 주신 출판사 사장님 역시 1990년대 중반 출판사를 시작하실 때 주위 선배들에게 같은 말을 들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능력이 없는 거겠지요. 어쨌거나 제가 출판을 하게 된 것은 여러 이유 때문입니다. 어쩌다보니 쓰게 된 책 말고 필자로서 정말 쓰고 싶은 책을 출간하고 싶었어요. 또 명함을 갖고 싶었어요.

   필자라는 이력이 있는데 명함이 없으면 어때요. 소설가들이 명함을 들고 다니나요.
   제게 별명이 있습니다. '오무五無 선생'이라고. 없는 게 다섯 가지라는 건데요.
명함, 자가용, 핸드폰, 신용카드, 이메일 주소가 없어요. 나머지야 그렇다 치고 필자가 메일이 없는 걸 의아해 하지만 상업화된 인터넷 환경이 지겨워 컴퓨터에 인터넷 연결을 안했어요.
마흔 살 무렵 한국으로 돌아와 신학대학에 잠깐 자리를 잡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그러니까 1997년경부터 죽 집에서 생활했어요. 옛날에 어머니가 여자도 오십이 넘으면 부엌에 들어가기 싫다고 하셨는데, 그때부터 제가 학교에 나가는 아내를 대신해서 부엌일을 한 것이 쉰 넷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매달리고 싶다는 바람이 출판으로 저를 내몰았죠.

김용규 선생은 1982년 독일로 유학을 떠나 프라이부르크대와 튀빙겐대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고 몇 년간 병원신세를 지게 되면서 박사 학위를 포기했다. 결국 박사학위 없이 귀국한 탓에 대학에 자리를 잡기는 어려웠고 논술 지도교사를 대상으로 철학사상을 강의하게 되었다.

첫 책인 『알도와 떠도는 사원』(이론과실천)은 부업으로 했던 논술지도의 결과이다. 철학을 아이들에게 가르쳐보니 아이들이 통 흥미를 보이지도 않거니와 꾸벅꾸벅 졸아서 아이들에게 요즘 무슨 책을 읽는지 물었다. 한참 판타지 소설이 유행할 때라 그런 소설들이 열거됐고 김용규 선생도 따라 읽었다. 판타지 소설이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같은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환상적 이야기 속에 철학적 지식을 담아 강의한 내용을 한 꼭지씩 만든 것이 바로 『알도와 떠도는 사원』이다.

『영화관 옆 철학카페』(이론과실천) 역시 일반인들에게 철학 강의를 했던 결과물이다. 중년 주부들을 대상으로 철학 강의를 하게 됐는데, 역시나 철학이야기를 재미없어 했다. 중년 여성들이 문화적으로 무엇을 좋아하나 살펴보니 영화였다. 자신이 유학 전에 본 영화라야 <람보> 정도 수준인데 그들은 타르코프스키나 앙겔로플로스의 작품 같은 예술영화를 즐겨본다는 사실을 알고 그때부터 그런 영화들을 찾아봤다. 그리고 영화에 철학을 얹어 강의를 했다. 그 강의록을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제가 명함이 갖고 싶다, 부엌에 들어가기 싫다 등으로 출판을 시작한 이유를 말했지만, 아마도 필자로서 혹은 생활인으로 사는 데 한계가 분명하니 차라리 내가 출판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지요.
집사람이 학교에 나가니 생활고에 시달릴 정도는 아니지만 사회적 수입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순전히 책만 써서는 충족할 수가 없어요. 제 또 다른 별명이 연봉 삼백입니다. 일년 동안 글 써서 책 한 권 내고 인세 300만원 받는다고 해서 붙은 별명입니다.
단행본을 쓸 때 시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필자로서 책을 쓸 때 다른 사람도 쓸 수 있는 책을 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내가 아니면 태어날 수 없는 책을 쓰고 싶지요. 그건 구태여 글을 쓰는 사람의 자존심이겠죠.
굳이 단행본을 내고 싶은 저자가 있다면 그건 자기만 쓸 수 있는 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단행본은 시장을 무시하고는 쓸 수가 없어요. 제가 내고 싶은 책도 받아주는 출판사가 있어야 출간이 가능하니까요. 그러다보니 결국에는 남들도 다 쓰는 책을 쓰게 됩니다.
출판사에서는 늘 그러지요. 국내에 저자가 없다고요. 그러나 우리 시장은 국내 저자들이 쓰고 싶은 책을 쓰도록 허락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제가 살다온 독일은 우선 책의 가격이 우리보다 10배는 비싸요. 강의 안 해도 책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됩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다 빈치 코드』처럼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한 권의 책만 보고 말지요. 다른 책은 천 명의 독자도 사 보지 않아요. 그러나 독일에서는 독자들이 다양한 책을 사서 봐요.
그러니 책을 써서 존경도 받고, 먹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 환경이 마련되어 있으니 다양한 책도 나올 수 있는 거고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필자가 시장을 염두에 두고 책을 써서 잘 팔리고 책의 질도 높아지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아요. 시장을 염두에 두면 둘수록 책의 질은 떨어져요. 국내 저자를 보고 함량이 부족하다고 그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요.
저 역시 쓰고 싶은 책은 엄두도 못 내고 어떻게, 많이 팔리지 않을까, 하고 『철학통조림』을 냈던 게 아니겠습니까. 이 책이 대중 철학서로서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운 책은 아닙니다. 대학 교양과정의 윤리학체계를 담고 있으며, 고전작품을 예로 들고 있는 의미가 있는 책입니다.

국내에서 전문 필자로 산다는 일
   처음 선생의 존재감을 알린 『알도와…』는 연작예정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후속편이 나오지 않은 것은 왜입니까.
   지금은 제가 출판사를 시작했으니 그나마 출판에 대해 참 많은 걸 알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책도 잘난 사람이나 출간하는 걸로 알았어요.
어찌어찌 이론과실천으로 원고가 갔는데, 김태경 사장이 『알도와…』을 무척 좋아했어요.
그가 그동안 이런 지식소설을 찾았던 거죠. 그러면서 제게 과도한 희망을 주었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당시 이론과실천이 사업적으로 굉장히 어려울 때였는데 저는 그런 걸 몰랐어요.
당시 김태경 사장의 개인적 바람 위에 제 책이 놓여져서 과도하게 평가되었던 것인데 그걸 저는 액면 그대로 다 진실로 받아들였어요. 근거 없는 희망이 커지다보니 나중에 절망도 그만큼 컸습니다.

   『알도와…』은 당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던 걸로 아는데요. 책의 판매는 부진했었던가 보군요.
   8천 질 정도 팔렸습니다. 당시 이 책을 두고 김 사장은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이원호의 『밤의 대통령』의 원고를 처음 접했을 때만큼 흥분된다고 평했어요. 그야말로 초 밀리언셀러를 기대한 거지요. 저와 김 사장이 공동으로 환상을 갖고 책을 바라봤으니 얼마나 허망했겠습니까.
그래서 후속작업을 안 했지요. 후속작업을 위해 밑그림을 그려두었던 원고가 올 여름에 나온 『다니』(김성규 공저, 지안출판사)입니다. 원고에서 『알도와…』에서 다룬 부분을 제하고 책을 냈지요.

   보통 소설은 동생과 함께 작업을 하고, 나머지 책은 혼자 작업을 하시더군요.
   보통 제가 스토리라인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갈 지식을 간추리면 동생이 서술과 묘사를 도와주지요. 『알도와…』 때에도 동생이 도와줬지만 이름 밝히기를 거부했어요. 『다니』는 10년 전에 동생이 제인구달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쓴 중편이 바탕이 됐어요.
아주 서정적인 작품이었는데, 중편이니 책으로 내기도 애매해서 묵혀 두었던 원고죠. 그래서 그 소설을 기본으로 하되 주제를 환경문제로 잡고 다시 틀을 잡았어요. 『다니』는 동생 이름으로 출간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제가 이름이 알려졌다고 출판사에서 반대를 하는 바람에 공동이름으로 나왔어요.
사실 『다니』를 시작으로 동생을 공적인 글쓰기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는데 이 책 역시 판매가 그저 그렇습니다. 연봉 삼백 수준인 인세를 반으로 나누니 수고비도 안 나오지요. 동생이 앞으로는 형님이나 글 많이 쓰라고 하니 제가 할 말도 없더군요.

   그렇지만 작년에는 『다 빈치 코드』 같은 팩션이, 올해는 최인호의 『유림』처럼 소설이지만 지식이 앞선 책들이 인기를 얻었으니 지식소설을 좀 더 쓰실 생각은 없나요.
   저는 문학하는 사람도, 문학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물론 일년에 소설 몇 권 정도를 읽기는 합니다. 귀국해서 간헐적으로 소설을 사서 읽긴 했는데 그때 한 생각이 언제까지 이런 이야기만 하고 있을 것인가 싶더군요. 인간의 내면 즉 정신세계가 욕망과 감성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사람에 따라서는 이성적 사고로 구성되어 있기도 해요. 그런데 왜 유독 소설은 감성만 조명하는가 싶었어요. 철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내면이나 자아가 규정되어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규정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기도 하고, 그건 결국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지식소설을 내면서 이런 식의 접근이 다른 활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문단에서는 지식소설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듯해요. 『다니』를 두고 지식소설이라고 하면 다른 소설은 지식이 없다는 거냐는 반응이지요.

독일사전과 우리사전을 비교해보면 가장 큰 차이는 명사가 많고 적다는 것이다. 독일은 명사가 많아 학문하는 사람이 개념을 내세우기가 쉬운데 우리는 반대로 형용사가 많다. '빨갛다'라는 말 하나만도 여러 가지 형용사로 표현된다. 아마도 이런 차이가 감성적이고 애잔한 소설을 좋아하는 국민성과도 연결되지 않는가 싶다. 영화로 말하자면 <너는 내 운명> 아니면 <가문의 영광>을 선택하는 식이다. 대중은 슬프거나 웃기는 영화를 좋아한다. 이성적으로 사고해야 하는 추리소설이나 SF가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할 만하다. 대중이 드라마를 좋아하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소설이 큰 인기를 얻는다는 게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왕 출판을 시작하셨는데 계속 하실 건가요.
   제가 생각하는 책을 출판을 통해 구현할 수도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해보니 뜻대로 되지는 않더군요. 표지나 책의 컨셉트만 해도 출판을 한다고 다 내 마음대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요.
게다가 만 권이라는 책이 모두 시장에 출고됐지만 자금은 거의 회수가 안 되고 있어요. 모 도매상애서는 책을 가져가고 아직 한 푼도 결재를 안 해요. 제가 출판계에 특별한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외상거래도 안 되고요. 출판을 시작했지만 고민 중입니다.

책을 내고 반응이 없을 때 가장 상처를 받는 것은 자존심이며, 그로 인해 깊어지는 것이 자기 환멸이다. 여기에 대해 김용규 선생은 영화로 보는 철학책을 세 권이나 출간한 저자답게 타르코프스키 이야기로 답을 했다.

영화사에 남는 감독으로 기억되는 타르코프스키는 이런 말을 했다. 천공을 떠받들고 있는 아틀라스가 위대한 것은 오랫동안 그런 일을 해서가 아니라, 언제든 던져버릴 수 있지만 자기 환멸에 빠지지 않고 그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소련의 억압으로 평생 7편의 영화밖에 만들지 못한 타르코프스키는 서방세계로 나와서도 상업주의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예술이라는 신념을 위해 살았다. 그러나 신념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회의와 자기 환멸이다. 일을 하다보면 이게 옳은 일인가, 내가 과연 옳게 살았는가 싶은 환멸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타르코프스키가 그랬듯 혹은 아틀라스나 시지프처럼 우리 모두 무의미한 것에서 의미를 찾고 절망에서 희망을 찾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니까.

기사게재 : <기획회의> 32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섯수레 김태진 사장·김경희 주간
등록일 : 2005/12/20
더디지만 신뢰받는 출판으로 승부

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 차장 khmzip@donga.com

나이 쉰에 두 사람은 ‘다섯수레’라는 이름으로 출판등록을 했다. 남편은 출판을 잘 몰라서, 아내는 출판을 너무 잘 알아서 막막했다. 김태진 사장은 동아일보 기자와 PD로 근무했지만 1975년 ‘자유언론실천선언’으로 해직되어 10년 넘게 방황하다 1988년 드디어 출판을 업으로 삼았다. 그때까지도 그에게 출판은 막연한 동경일 뿐이었다.

김경희 주간은 잡지왕국 학원사에서 <학원> <주부생활>의 잡지기자로 활동하다가 1980년 초 단행본 사업부가 만들어질 때 편집자로 전직, 10년 가까이 말 그대로 맹렬하게 책을 냈다. 학원사의 첫 책이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었으니 시작부터 기세가 대단했다. 이후 <주부생활>의 전통을 살린 생활무크에서부터 교양물, 신서, 문학, 일반 단행본 등 2-3년 사이 학원사는 손대는 분야마다 성공을 거뒀다. 이때가 학원사 출판국장으로 단행본 사업을 이끈 김 주간의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서점에 나가 보면 일본 책에 실린 사진을 그대로 재분해해 찍어낸 조악한 출판물들이 널려 있던 시절에 학원사의 사진 스태프와 생활기자들의 노하우로 직접 만든 무크는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다. 『임신 출산』 책은 10년 동안 개정 없이 팔렸고, 카드식으로 스프링제본한 요리책을 개발해 30권까지 펴내기도 했다. 이 요리책 역시 10년 이상 장수 아이템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또 학원사의 인테리어 무크는 거꾸로 잡지에 인테리어 코너가 생기는 데 일조했다. 아파트 문화가 보급되면서 좁은 공간 활용하기, 그린 인테리어 등에 대한 관심이 급증할 무렵 학원사 무크팀은 인테리어 무크를 선보였다. 전국의 아파트를 뒤져서 잘 된 인테리어 사례들을 모아 책으로 펴냈던 것.

한마디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잡지 메커니즘이 아니라면 해낼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요리 선생님들 옆에서 한 큰 술, 두 큰 술 세어가며 요리 원고를 만들고, 니트 제조법을 설명하기 위해 한 올 한 올을 모눈종이에 그림을 그리던 생활기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잡지 노하우를 바탕으로 성장한 학원사 단행본은 무서울 게 없었고 그곳에서 김경희 주간은 ‘한국 무크의 시조’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80년대 말 학원사가 무리한 확장으로 경영이 악화되자 하루아침에 국장급 이상 직원들이 줄줄이 퇴사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김경희 주간은 “순진하게도 50대 중반까지는 회사에서 일할 거라고 생각했죠. 그렇게 20년 넘게 일만 알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나오니 정말 망연자실하더군요.”라고 회고했다.



출판의 진리를 깨닫게 해준 『사람아 아, 사람아!』
자의든 타의든 책 만드는 전문가가 합세한 덕분에 다섯수레의 바퀴는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1년 중국 작가 다이허우잉의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이후 『사람아』)가 나왔다. 출간 당시 지식인,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불렸던 이 책은 14년이 지난 지금도 절판되지 않고 다섯수레를 대표하는 출판물로 자리 잡았다. 이 책 덕분에 두 사람은 출판의 진리를 깨달았다. 아무리 소박해도 좋은 의도와 열정을 가지고 정성껏 만든 책은 반드시 누군가 읽어준다는 사실을.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의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에서 따온 ‘다섯수레’는 김 사장의 친구인 신영복 교수의 작품이다. 통역당 사건으로 20년 옥살이를 마치고 세상에 나온 신 교수는 막 출판사를 시작하려는 초로의 친구를 위해 기꺼이 작명을 해주었다. ‘남아수독오거서’라는 말이 좋긴 한데 너무 길고, ‘오거’라는 말만 가져다 쓰면 좋겠는데 ‘오차’로 잘못 읽으면 그것도 곤란하니, 그렇다면 뜻을 풀어 써서 ‘다섯수레’로 하자. 이렇게 작명이 끝나고 신 교수는 다섯수레의 대표작이 된 『사람아』의 번역까지 맡았다. 『사람아』의 독특한 제목 글씨가 신영복 교수의 솜씨라는 것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사람아』 덕분에 다섯수레가 사회과학 출판사로 알려졌지만 이후 꾸준히 아동용 논픽션물을 출간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김태진 사장을 만나기 위해 마포구 서교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다섯수레를 찾아갔다. 대문 입구를 지키는 키 큰 단풍나무가 계절을 잊은 듯 아직도 초록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일반 주택을 개조한 것이어서 마당 쪽을 향한 대형 유리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이 햇살이 문제였다. 창가의 큰 탁자에 나란히 앉는 순간부터 대화는 도서정가제에서 출판동네 이야기,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으로 화제를 바꿔갔고, 시간은 물처럼 흘렀다. 다섯수레에 대한 이야기는 10분의 1도 못 꺼내고 일어서야 했다.

김경희 주간과의 만남은 2차 인터뷰로 미뤘다. 열흘쯤 지나 이번에는 책과 자료들로 발 디딜 틈도 없는 김경희 주간의 공간에 허락 없이 발을 들이밀었다. 다섯수레가 나이만 먹었지 해놓은 일이 없어 할 말도 없다는 김 주간에게 ‘옛날이야기’ 하나 해달라며 털퍼덕 주저앉았다. 잡지기자 10여 년, 편집자 10여 년의 노하우를 어찌 만만히 얻어듣겠냐 싶었다. 엉덩이 무거운 후배 노릇을 하며 한국 출판의 소사小史를 귀동냥했다. 다리가 저려올 무렵 고개를 드니 시계는 이미 두 시간이 흘렀음을 알려준다. 희한하게도 이곳에서는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 하지만 문지기 단풍나무는 어느새 노랗게 옷을 갈아입고서 잡을 수 없는 세월을 알려 주었다. 김태진 사장과 김경희 주간의 인터뷰는 이렇게 따로따로 이뤄졌지만 편의상 이 글에서는 하나의 인터뷰로 정리했다.

김현미(이하 현) 김 주간님의 경력으로 보면 출판사를 시작한 것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김 사장님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출판을 시작하셨어요?

김태진(이하 태) 지금도 출판등록일을 정확히 기억해요. 1988년 10월 13일. 1987년 6.29선언 전까지는 출판이 허가제여서 우리 같은 사람이 출판사 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 후 등록제로 바뀌니 얼른 문화부에 갔죠. 왜 출판을 하려는지 이유를 쓰라고 해서 이렇게 쓴 기억이 나요.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우리나라 주변국과 관련된 출판을 하겠다, 주변국의 여러 가지 현재 상황이나 역사, 철학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한국에게도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오래 전부터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출판도 하나의 매스미디어인데 우리사회에 보탬이 되는 뭔가를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있었고, 당시 우리가 러시아나 중국 같은 주변 국가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는 반성도 있었어요. 그렇게 출판의 이유를 적고 등록을 마치고 나서 한승헌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내가 출판사 한다고 했더니, “김형이 출판을 하면 책 세 권 내고 만세 부를 거요.” 합디다. 좋아서 부르는 만세가 아니라 ‘아이고 그만’ 하는 만세죠. 그 분이 변호사 자격 박탈당하고 삼민사라는 출판사를 했었는데 책을 내기만 하면 판금이 되더라는 거에요. 그렇게 애를 먹었는데 ‘당신도 출판사를 하느냐’는 걱정이었죠. 그리고 그때는 편집자 출신이 출판사 하면 망한다는 게 대세였으니까 처음부터 다섯수레가 잘 될 거라는 기대는 할 수 없었지요. 그래도 아내가 출판에 대해서는 나보다 잘 알 테고, 나는 일반 장사꾼 노릇 하는 것보다는 출판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아 시작한 거예요.

여기서 잠깐, 김 사장은 ‘자유언론실천선언’ 이후 어려웠던 시절을 더듬었다. 당시 해직기자들에게는 재취업의 기회마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동료들 가운데에는 경력을 밝히지 않고 위장취업을 했다가 몇 개월 만에 다시 해고되는 수모를 당한 이도 있었다. 이런 현실을 잘 아는 그는 출판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마침 인쇄업을 하는 지인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자신의 비좁은 인쇄소 한쪽에 사무실을 마련해주고 외상으로 인쇄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태진 사장보다 김 주간의 마음이 무거웠다. 큰 출판사에서 오너가 마음만 먹으면 인력이며 자금이며 팍팍 밀어주던 시스템에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같이 일할 사람도 자금도 없이 맨손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김 주간에게는 황소걸음으로 가는 다섯수레가 여전히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보인다.

김경희(이하 경) 학원사에서 『세계문학』 100권짜리 기획까지 정말 다양한 책을 내봤어요.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건 다 회사 덕분이죠. 또 잡지를 하다가 출판을 하게 된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잡지만 하면 출판의 재미를 모를 뻔 했죠. 그래서 출판에 대한 애정이 더 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잡지는 세태를 빨리 반영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수명이 길지 못하죠. 출판은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오랫동안 읽힌다는 게 보람이죠. 그만큼 책임감도 강해야 하고. 책은 만들면 만들수록 어렵다는 생각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나와서 우리사회에 뭔가 기여한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열정이 생기는 법이죠. 그렇게 만든 책은 반드시 독자가 알아봐요. 바쁜 중에 적당히 만들어 서점으로 나간 책이 있고, 끝까지 꼼꼼히 점검해서 나간 책이 있는데 결국 그런 편집실의 분위기가 독자들에게 전달된다고 봅니다. 그건 제가 경험으로 알아요. 그래서 출판은 오랫동안 차분하게 해야 해요.

   출판사를 시작하자마자 『사람아』 같은 히트작이 나왔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 아닙니까? 출판사 등록 전부터 단단히 별러온 작품인가요?    처음부터 운이 좋았다고만은 할 수 없어요. 1980년대 말이면 저작권 개념도 없을 때여서 해외 출판물을 남보다 먼저 번역해서 내면 그만이었는데, 그러다보니 번역까지 다해놓은 상태에서 다른 출판사가 먼저 그 책을 내버려 출판을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다섯수레 첫 책이 될 뻔했죠. 번역료만 날리고. 그 무렵 지명관 교수가 일본 동경대에서 『사람아』를 발견하고 원서를 찾아 보내줬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이 죽의 장막에 가려 있어 우리가 직접 중국의 자료나 책을 본다는 게 쉽지 않았죠. 그래서 일본을 통해 우회적으로 입수했습니다. 책이 왔는데 마침 신영복 씨가 우리 사무실에 놀러왔기에 검토해 보라고 줬더니 직접 번역하겠다고 해서 일이 그렇게 된 거예요. 원서보다 신영복 교수 번역이 더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가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냈으니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소설의 남자 주인공 심정을 얼마나 잘 이해하겠어요. 그리고 타이밍도 잘 맞았죠. 중국에 대한 욕구가 상승할 때 문화혁명기의 지식인들의 삶을 담은 소설이 나왔으니까. 그래도 솔직히 처음부터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못했어요. 주변의 도움도 있었죠. 어느 날 법정스님이 동아일보 칼럼에 우리 책 『사람아』와 실천문학사의 『닥터 노먼 베쑨』(테드 알렌·시드니 고든 지음)을 언급하셨는데 그게 독자들에게 와 닿은 모양이었어요. 그때부터 책이 활발하게 팔리기 시작했죠.

   『사람아』는 중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팔린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이 사회과학 시대의 마지막 책이라고 봐요. 80년대식 사회과학이 아니라 소설의 형식을 빌린, 연애 이야기를 앞세운 사회과학이었죠. 저는 처음에 이 책의 독자를 두 부류로 보았습니다. 하나는 그냥 연애소설로 읽는 사람, 다른 하나는 책에 담긴 휴머니즘이나 사상적인 면에서 공감하는 사람. 그런데 첫 번째 예측은 빗나갔어요. 연애소설로 읽기에는 이야기 전개가 너무 느리고 무거웠던 겁니다. 큐비즘 문학이라고 하는데 주인공들이 한 명씩 등장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형식도 낯설고 대중소설에 익숙한 분들은 몇 장 못 읽고 던져버렸어요. 반면 두 번째 부류는 이 책에 엄청 빨려 들어가 읽고나서 적극적으로 퍼뜨려 주었죠. 결과적으로 소문에 비하면 많이 팔린 것은 아니에요.

어린이용 과학책은 시대를 앞선 기획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아』는 15년 동안 몇 부나 팔렸을까? 세속적인 호기심인줄 알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김 사장은 “20만 부 쯤 되나?” 했고, 김 주간은 “생각처럼 많이 나가는 책은 아니다”라며 웃기만 한다. 2년 전 <중앙일보>에 실린 ‘우리 출판사 첫 책’이란 기사를 보니 다섯수레의 『사람아』는 2003년까지 초판 판형 그대로 57쇄를 찍어 45만 부를 기록했으며 매년 5000부 가량 팔린다고 했다. 2005년 초 이 책의 개정판이 나왔다.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람아』가 다섯수레의 첫 책은 아니었습니다. 그 책은 번역에 착수해서 나오기까지 워낙 시간이 많이 걸린 편이라 그 사이에 어린이책을 냈죠. 다섯수레의 공식 첫 책은 ‘초롱이 걸음마 자연공부’ 시리즈입니다. 김 사장은 사회과학출판에 관심이 많았고 저는 처음부터 출판사를 하면 어린이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학원사에서 아동물을 완성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도 있었죠. 아동물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학원사 시절로 돌아가야겠네요. 1980년대 학원사의 단행본 분야는 엄청나게 성장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잡지 부서 한쪽을 쓰다가 어느새 건물 한 층을 단행본이 차지할 정도로 외형적 성장을 했고 손을 댄 분야마다 실패한 적이 없었죠. <주부생활>의 전통을 이어받은 생활파트, 교양신서, 문학, 일반단행본까지 대부분 성공을 시켰고 마지막으로 아동물이 남았어요. 1984년 드디어 회사가 아동물 출판을 하기로 결정해서 곧바로 팀을 꾸렸습니다. 운도 따라준 게 당시 웅진출판에서 ‘어린이마을’ 전집을 기획했던 윤구병 교수가 새로운 기획을 하려고 나와 있는 상태여서 우리랑 손잡고 일하기로 했죠. 이철수, 박불똥 씨 등 그림 그릴 분들도 확보하고. 그렇게 1년여가 지나 어느 정도 원고와 그림까지 받아놓은 상태에서 회사가 갑자기 이 일을 중단했습니다. 결과를 보기도 전에 팀이 해체됐으니 정말 아쉬웠죠. 그후 윤구병 교수는 직접 기획사를 차려 ‘올챙이 그림책’ 시리즈를 만들었죠. 저도 그 미련 때문인지 출판을 하면 당연히 아동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80년대 후반까지도 우리 아동물 시장은 열악했어요. 대형서점에 가도 아동물이라고 할 게 별로 없고 전래동화가 다였죠. 그나마 ‘창비아동문고’가 돋보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섯수레의 첫 책은 아동물, 그것도 과학 논픽션물인 ‘초롱이 걸음마 자연공부’ 10권이 되었습니다.

   90년대 어린이책 출판사들은 대부분 동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책으로 성공을 거뒀는데, 다섯수레가 ‘과학’ 분야를 택한 것은 상당히 앞선 선택이었다고 보입니다.
   나야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하고 싶었지만, 출판사가 책 한 권 내고 끝나서는 안 되니까 좀더 장기적으로 보려면 어린이책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거죠. 그리고 과학이란 분야는 60-70년대에 우리나라가 무엇으로 성장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자본도 기술도 없고 가진 건 사람밖에 없는 나라에서 자칫 미국과 일본의 하청공장이 될지도 모르는데 거기서 탈피하려면 과학밖에 없었잖아요.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머리 좋은 젊은이들이 이공계 분야에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을 했죠. 그런데 말로만 과학한국이라고 떠들었지 어린이들이 볼 만한 과학책은 전무했어요. 그때 ‘초롱이 걸음마 자연공부’ 시리즈가 나오기 시작한 거죠.
   어떤 책을 기획하느냐는 사람이 하는 것이니까 결국 자기 머리 속에 있는 책을 고르게 되죠. 제가 학원사 시절 아무래도 신서나 생활무크 쪽에 주력했기 때문에 문학이나 창작물에 대한 소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탓도 있을 겁니다. 어쨌든 시장에서의 반응은 초기에 그저 그랬어요. 우리야 웅진처럼 전집물로 방문판매를 할 수 있는 영업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점에 내놓고 낱권으로 팔 수밖에 없잖아요. 반응이 오기까지 3년이 걸렸어요.
대신 아동물은 오래 가요. 3년이 될 무렵 반응이 와서 5년쯤 됐을 때 판매가 피크였으니까요.

도서정가제 하루 빨리 복원돼야
   다섯수레 아동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게 ‘왜 그런지 정말 궁금해요’ 시리즈죠. 킹피셔의 번역물인줄로만 알았는데 국내 기획물들이 시리즈 중간 중간에 들어가 있어 눈에 띕니다. 이 시리즈의 인기 비결은 뭘까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왜 그런지 궁금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알게 해주는 지면 구성의 힘이죠. 번역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내 저자들에게 의뢰해 시리즈의 형식에 맞춰 우리 역사 이야기를 써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고구려, 신라, 백제 편이 나오게 된 거죠. 지금까지 31종이 나왔는데 가장 반응이 좋은 책이 『고구려 사람들은 왜 벽화를 그렸나요?―고구려에 관한 궁금증33』(이하 『고구려』)이었습니다. 여기를 보세요(책 21쪽을 펴며). 고구려의 귀부인과 마차를 그린 벽화죠? 고구려 때는 마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었답니다. 그러다 신라 때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도로가 좁아졌고 이로 인해 내륙 유통이 발달하지 못했다고 해요. 이런 책은 어른들이 봐도 재미있어요. 지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이 책의 영문판을 만들어 가지고 나갔어요. 앞으로 고조선, 가야, 고려 등이 추가될 겁니다.

『고구려』의 판권을 보니 1998년 5월 5일 초판 발행, 그리고 딱 6년 만에 9쇄를 찍었다. 판권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최근 분 고구려 열풍을 등에 업고 급조한 책이 아니군, 그리고 어린이 책에서도 ‘벽화’라는 세분화된 주제를 가지고 깊이 있는 설명이 가능하구나.

‘왜 그런지 정말 궁금해요’ 시리즈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31종이 나왔다. 시리즈물로 적지 않은 종수지만 1년에 3권씩 펴낸 것으로 따지면 출간이 여간 더딘 게 아니다. 그래서인지 다섯수레는 아동물 비중이 높은 출판사 치고 연륜에 비해 종수가 많지 않다. 연간 몇 종이 목표냐는 질문에 김 사장은 “우린 책을 빨리 못내. 천천히 내. 그러니까 빨리 빨리 성장하지 못하지”하며 웃기만 한다. 하루에 신간이 100종 가까이 쏟아지는데 다섯수레는 세상과 역행하는 듯하다. 김 주간이 정답을 귀띔해준다. “돈이 없어서죠. 대형시리즈를 한꺼번에 계약해서 내는 게 아니라 한 권 내고 또 다음 계약하는 식으로 책을 만드니까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그렇게 내서 언제 홈쇼핑에 진출해요?” 요즘 어린이책 출판사들은 너도나도 TV홈쇼핑행이다. 매출의 절반을 홈쇼핑에서 올렸다는 출판사도 있으니 할인마트와 함께 홈쇼핑은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그런데 김 사장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나온다.

   우리 책은 홈쇼핑은 물론이고 할인마트에도 안 나가요. 올해 처음으로 온라인 서점 한군데와 직거래를 시작했는데 나머지는 모두 도매상을 통해 조금씩 나가는 정도고. 온라인 쪽도 주력은 아니죠.
   그러고도 판매에 지장이 없으세요?
   그냥 열심히 내면 나가요.

웬 선문답이냐. 문득 김태진 사장이 2003년 1월 도서정가제의 틀이 무너지는 순간 출판문화협회 부회장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왜 그처럼 온라인 서점, 할인마트, 홈쇼핑 판매를 반대하세요?    도서정가제 관련 법률안을 만들면서 온라인서점에는 10% 할인해주는 데까지 합의를 하고 대신 경품과 마일리지, 무료배송은 안 하는 것으로 시행령을 만들자고 했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더 이상 내 힘으로는 이 문제를 어찌 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만 둔 겁니다.
지금도 도서정가제가 무너진 것은 출판사들이 공공의 이익보다 눈앞의 이익만 쫓기 때문이라고 봐요.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과거 프랑스와 너무 똑같습니다. 프랑스도 한때 미국의 압력으로 도서정가제가 무너졌습니다. 그러자 소형서점들이 문을 닫고 남은 서점들은 재벌들에 의해 체인화 됐어요. 지금 우리나라가 꼭 그렇잖아요. 지방서점의 주인들은 그냥 장사꾼이 아니라 문화사업가라는 자부심이 있어요. 우리나라의 경우 지방에 도서관이 없으니까 서점들이 대신 문화공간이 될 수 있는데 이미 7000여 개의 서점이 2000개 정도로 줄어들어 버렸습니다. 2006년에는 학습참고서가 도서정가제에서 빠져나가니까 그나마 참고서 팔아 연명하던 작은 서점들이 더 이상 살아남을 방법이 없습니다. 프랑스가 그런 식이었어요. 대형서점은 잘 팔리는 책 위주로 책을 전시하고 소수의 책은 제대로 진열도 안 되니까 이러다가는 프랑스 문화가 무너진다고 해서 자크 랑 문화부장관이 세계 최초로 정가제를 강제법률로 만들었죠. 도서정가제를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무는 법안이었습니다. 이어 독일도 정가제를 지키도록 강제법률을 만들었죠. 이처럼 자국 고유 언어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도서정가제를 고집하는 이유를 잘 생각해 봐야 합니다. 도서정가제로 자국 문화를 지키겠다는 의지거든요.
홈쇼핑은 모든 책이 할인판매 위주로 되어버리니까 문제에요. 책은 일반 공산품과 다릅니다.
과일은 맛있으면 계속 사먹지만 책은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두 번 사지는 않잖아요. 그런 책을 마구잡이 할인판매를 하다보면 출판사는 책값을 인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독자들은 서점마다 다른 가격이 매겨진 책을 보게 되고 때로는 책을 산 뒤 비싸게 사서 속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죠. 이런 것이 오히려 서점으로부터 독자들을 점점 더 멀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봅니다. 온라인 서점들도 가격할인에 마일리지 제공, 무료배송 등을 감안하면 상당한 출혈을 하고 있는 셈인데 이를 보전하기 위해 출판사 쪽에 계속 출고율을 낮추도록 요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출판사는 책값을 더 올려 받아야 하고. 한마디로 악순환이죠. 가격경쟁이 아니더라도 온라인서점은 분명히 편리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어요.

   저도 출판은 기업형으로 가면 안 된다고 봐요. 출판에서 상업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문화적인 것을 더 강조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아』가 사회과학 분야에서 마지막 주자였던 것 같다고 말씀드렸는데 1980년대는 분명 사회과학 출판이 주도했어요. 90년대는 대중소설이 주도한 베스트셀러의 시대였죠. 5단통 광고를 내가며 매출을 올리기에 바빴습니다.
그래서 저는 1990년대 한국출판은 허수가 많았다고 봐요. 출판으로 한몫 잡겠다는 사람들로 인해 투기판처럼 변했어요. 2000년대 출판은 무한대의 성장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질적 성장이 동반되지 않는 매출은 무의미해요. 우리가 자꾸 영미권 출판사들을 닮아갈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프랑스나 독일, 이탈리아의 개성 있는 작은 출판사들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지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도 영미권 출판물들은 눈에 띄는 것이 별로 없었어요. 예전 컨텐츠를 화려하게 재편집한 책들이 대부분이었죠. 볼 게 없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출판인들은 요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는데 이렇게 된 데는 출판사에도 책임이 있어요. 출판사들이 좋은 책을 만들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책을 읽으면 재미있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해야죠. 국제 도서전 다니면서 외국 것 들여오기 바쁜데 그 시간, 그 노력으로 우리 것을 만들어야 해요. 서양은 이집트 하나만 가지고도 우려먹고 또 우려먹는데 우리는 그보다 더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으면서 개발하지 못하잖아요? 하루 이틀 빨리 내고 늦게 내고가 문제가 아니라 투자를 해야죠. 학자들이 연구한 것을 책으로 낼 수 있게 해주고. 그런데 밤낮 매출액 경쟁을 해서야…. 그렇게 1등을 하면 뭐한답니까?

무한대의 가격경쟁과 경품전쟁으로 복마전이 되어가는 출판시장. 도서정가제라는 말이 공허하기만 한 이때 두 출판계 선배의 잔소리가 회초리처럼 따갑다. 정성껏 만든 책은 분명히 독자가 알아본다는 두 분의 말을 믿고 싶다. 몇 권 팔릴까, 얼마 남을까를 따기지 전에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