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화] 서평단 알림
인생만화 - 그림쟁이 박재동이 사랑한, 세상의 모든 것들
박재동 글.그림 / 열림원 / 2008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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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임이 가득한 계절.
*서평단 도서.
2월 28일 택배 도착, 29일 독서 완료.

저는 여러 개의 무수한 원이 겹쳐진 영역에 발을 딛고 있습니다. 그 장소엔 경계가 없고, 특정하게 구분 짓지 않는 시선이 가득했지요. 겹쳐진 부위에 발을 걸치고 있어도, 밀어내는 움직임이 없고, 거치적거리는 어떤 아이템조차 없었어요. 자유로웠습니다. 이 길 저 길 넘나들며 탐험을 떠났습니다. 후딱 해치울까 하다가, 드문드문 허상에 잠기기도 하고, 곰곰이 되짚어나가기도 했습니다. 보슬보슬한 강아지풀이 귓가를 간질이는 느낌도 받고, 뭉툭한 바위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마당을 바라보는 기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비가 주룩주룩 끊임없이 내리곤 해, 연못을 이룬 마당에 찰박찰박 장화를 신고 돌아다니며 조그맣게 접은 종이배를 퐁퐁 띄워놓고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소금쟁이, 물방개, 개구리 친구들을 불러 모으기도 하죠. 우리만의 작은 연주회를 시작합니다. 빙그레 웃음 지으면서 고여 있던 늪과도 같은 마음의 물을 멀리멀리 흘려보냅니다. 땅이 마르고, 하늘에 나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자전거 앞 바구니에 책을 싣고(;) 질주를 합니다. 맑음과 비의 사이, 그 간격을 아슬아슬 넘나들며 덤벼드는 거죠.
누군가 들여다보면 한없이 사소한 것일 테지만, 세심한 관찰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환호성을 지르고 내내 달려갑니다. 선을 긋지 않고, 아이들의 장난을 즐기듯 통쾌합니다. 시원합니다. 와와, 나이도 잊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 마구 지르게 되었습니다. 웃음을 가득 공중에 뿌리기도 했습니다. 동네 할머니, 매미 소리, 너구리 콘서트, 코스모스, 뻥튀기, 옥수수 에피소드, …. 매미 소리가 쏟아지듯 매미 소나기가 내리는 그림과 꽃눈처럼 공중에 뜬 뻥튀기 그림이 특히 좋았습니다. 학교 운동장과 언덕을 채색했던 가득한 코스모스, 뻥튀기 소리에 놀라 울음을 곧잘 터뜨렸던 동네 친구, 매미의 연주가 없으면 여름이 아닌 것 같다고- 자동차의 클랙슨 소리에 비하면 매미와 귀뚜라미의 가락은 흥얼거림과 휘파람을 재생시킬 수 있다고 헤헤거렸던 나―. 돌돌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쥐고 붕 바람을 가르며 달려, 폐 깊숙이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즐기며 새로이 몰두할 수 있어, 하며 중얼거리게 합니다.

*: 잘 그리려는 그림보다 즐기려는 그림이 좋다. 중심에 몰리지 않고, 주변으로 시선 이동을 해 정겹게 담는 지은이의 그림이 좋다. ‘나’라고 하는 인물이 있기까지 보듬어주었던 그림자 같은 고마운 이들과 버팀목의 상황이 여기저기 녹아들어갔기에 가능한 것. 요모조모 들여다보는 것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담담히 느끼기.
_ [0210, 리스트.]라는 제목으로 페이퍼에 끼적였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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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지은이) | 푸른숲

두 형제가 목숨을 걸고 험난한 등정에 나서는 이 이야기는 생사와 우애, 위기와 모험, 믿음과 의심, 가족애와 사랑이라는 우리 시대의 테마들을 하나의 찬란한 피륙으로 엮어낸 '명품 소설'이다. 인생의 길에 대한 커다란 비유인 이 소설을 읽고 나자 내 마음에도 높고 신성한 큰 봉우리, '촐라체'가 솟아올랐다. - 홍은택 (NHN 부사장,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의 저자)

: 소설가 분과 이웃을 맺어놓고, 제대로 찾아가서 글을 읽지는 못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진득하니 글을 읽을 수 있는 여지와 그럴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핑계(;)도 있고. 단행본이 출간되었으니까, 천천히 소장하고 싶다. 여유를 가지며, 곱씹고 느낄 수 있도록. 쫓기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무수히 뻗은 그 ‘길’위에 발자국 하나하나 깊게 새기며.


오늘을 잡아라 - 세계문학전집 170 
솔 벨로우 지음, 양현미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 책 소개 없이, 책 표지만 크게 찍혔다. 짤막한 옮긴이 소개도 덧붙여 있고. 민음사 전집 시리즈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문제는 내가 자꾸 혹한다는 거다. 궁금하면, 무엇이든 들추고 알아내고 배우고 싶은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어쨌건, 주문은 했다. 기다리고 있는 중. 아직 책은 준비되지 않은 것 같다.

사랑의 그네를 매달 시간 - 인도의 영혼, 카비르의 황홀한 시 
카비르 (지은이), 강진복, 신현림 (옮긴이) | 글로연
몸을 빛이 나도록 씻어도,
마음속에 음악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지?

사랑의 길은 굽이굽이 부서지기 쉬운 민감한 길이네.
이 길 위에 갈망하거나 갈망하지 않거나
님에게 닿는 순간 내 전부는 쉽사리 사라지네.
그를 찾는 기쁨은 너무나 강렬해서,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치듯
님의 거대한 사랑 속으로 뛰어드네.

: ‘그네’를 소재로 한, 좋아하는 가사가 많다. 음악과 잘 어우러져, 듣고 있으면, 울컥해지기도 하고, 여기저기 ‘헤엄치듯’ 느슨해지기도 한다. ‘마음속에 음악이 없다’는 상황은 생각하기조차 싫다. 소개된 시만으로 평가하기는 그렇지만, 무작정 읽어보고 싶은 리듬.

여왕코끼리의 힘 - 민음의 시 145 
조명 (지은이) | 민음사

텅 빈 방에 쓸쓸한 햇살 비춰 들고, 프리즘 속 세월이여, 후회 없이 가라. - 고형렬(시인)
일상적인 시어들은 구체적이고 솔직하다. 아주 생생한 촉감이 있다. 그런데 촉감은, 표면에만 머물지 않고 한없이 깊어진다. 아주 견고한 일상이 경계를 허물어 우주처럼 넓어지고 깊어지는 순간의 매혹이 이 시집에 있다.

우선 시원스럽다. 자잘한 것들에 구애받지 않는 데서 오는 힘 같은 것이 느껴진다. 조명 시의 시원스럽고 힘 있음은 시가 주는 즐거움의 새로운 측면을 생각하게 만든다. 여왕코끼리의 막강한 힘이 평화와 행복을 위한 것이듯, 조명의 활기도 긍정적이고 개방적이다. 굴절되어 있지 않은 페미니즘, 생명에 대한 무한한 경외와 존중이 바로 그 활기의 원천이다.
 - 신경림 (시인)

: 리스트 만들기 전에, 미리 주문. 택배 도착. 우선, ‘힘이 있다’는 것에 솔깃했다. 근래 밑바닥의 물이 출렁거릴 만큼 파도를 몰아치는 시를 몇 번이고 거듭 읽기를 원했다. 소장한 시집의 몇몇 부분에서 간혹 발견했지만, 아주 만족을 얻었던 건 아니었기에. 혹시, 하고 기대를 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 세계문학전집 171 | 원제 Things Fall Apart (1958) 
치누아 아체베 (지은이), 조규형 (옮긴이) | 민음사

주인공 오콩코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19세기 아프리카 부족 마을의 삶을 굉장히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적 과장이나 묘사를 최대한 배제하였기에 이 소설은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준다. 소설 마지막에 백인 치안판사가 오콩코의 죽음을 자기 논문에 끼워 넣는 구상을 하는 장면은 이 작품이 하나의 '인류학 보고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민음사 시리즈의 출간 간격이 굉장히 짧아졌음을 느낀다. [포스트 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가 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민음사 시리즈 중 아프리카 소설로 최초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둥 그런 소개는 죄다 무시하고, 그저 표지 그림이 좋아서 보관함에 이동시켰다. 다만, 최초라는 걸 지우고, 어디까지나 부족 이야기라는 구분,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라는 일부 소개에 더욱 끌려들어가고 있다.

힐링 가든 - 정직한 땀과 꽃.나무.흙의 기운으로 나를 풍요롭게 가꾼다, Natural Life 002 
김주덕 (지은이) | 다빈치

풀과 나무의 푸름을 보고, 형형색색 꽃들의 화사함을 보고, 이른 아침 새들의 재재거림을 듣고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이 있을까? 이른 봄 파릇파릇 돋아나는 연둣빛 새싹, 한여름 내리쬐던 햇살을 가리며 시원스레 쏟아지는 소나기, 살랑대는 가을바람에 고운 색깔 뽐내는 단풍, 소복한 흰 눈 머리에 이고 있는 장독대 앞에서 화를 내는 사람이 있을까? 이들은 모두 자연이 우리에게 베푸는 선물이다.
우리 마음을 다독이는 자연은 작은 꽃 한 송이에, 풀 한 포기에 귀를 기울이고 몸을 낮추어 들여다보는 내 자세에서 시작된다. 거창한 정원이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남의 손을 빌려 인위적으로 연출한 정원도 아니다. 핏줄이 당기듯 자연스레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들에 다가가 가만가만 내게 손짓하는 꽃과 나무와 마음을 나누면 된다. 그러므로 나를 치유하는 정원은 내 책상 위, 탁자 위, 창틀에 놓인 작은 꽃병, 화분 하나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 동네에서 두 번째 이사한 세 번째 집에서 살고 있는데, 문득문득 두 번째 살던 집이 그리울 때가 있다. (첫 번째 집은 아주 어렸던 때. 다만 뱀 에피소드, 마구 뒹굴었던 언덕 에피소드, 몇 가지를 소중하게 담아 놓고 있다.) 그곳에서 대부분의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숨겨졌던 기발한 놀이터와 소품, 갖가지 묘기(;)를 선보였던 곳이었기에. 마당이 꽤 넓었고, 옹기종기 붙은 이웃집, 도란도란 이웃 친구들이 있었다. 나이 차가 났어도 그런 자잘한 간격을 생각하지 않았고, 함께 어울리고 무척 즐거웠던. 집안 형편 상 가족 여행을 갔다거나 그런 것 없이 울적해지는 기억도 많지만, 그나마 여러 가지 모험하듯 벌였던 사건들이 있어 그리운 추억이다. 자연이 보듬어주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할머니가 가꾸셨던 허술하지만 아름다웠던 정원(맨드라미의 강렬한 빨강은 여전히 기억), 마당의 장독대, 바위, 꽃잎에 살그머니 앉았던 나비, 조잘조잘 개구리, 하늘을 노니는 잠자리 떼,  ….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금껏 살고 있는 세 번째 집은 모교 운동장이 우리들의 언더그라운드 무대였다. 정글 탐험을 하듯 여기저기 헤집고 지나쳤고, 뱅뱅 맴돌았다. 물론, 같은 동네기에 자연의 친구들은 여전히 우리 주위에 가득 있었다, 그 시절에는. 지금은 도시만큼은 아니지만, 대구의 사람들이 몰려들고, 차도 많아지고 해서, 그때만큼의 푸름과 자연의 와글거림은 일부 사라졌기에 아쉬워진다. 매미의 연주와 언덕에 살짝 피었던 코스모스(운동장에서는 볼 수 없어져서 씁쓸해졌다), 곧 추위가 풀리면 흐드러질 벚꽃을 볼 수 있음에 그나마 위안을 가진다.  

쓸쓸한 사냥꾼 | 원제 淋しい狩人  
미야베 미유키 (지은이), 권일영 (옮긴이) | 북스피어

도쿄의 헌책방을 무대로 펼쳐지는 연작 미스터리. 사건은 언제나 책으로부터 시작하며, 이를 해결하는 것은 헌책방 주인 이와 씨와 그의 손자 미노루다. 수록된 여섯 단편 모두 이와 같은 구조로 통일되어 있다.

: 지금에서 떠올리면 우습지만, 어릴 적 동생이랑 ******(멋대로 붙인 이름)서점 사건 파일(;)을 작성했던 놀이가 있다. 살인사건의 수수께끼와 연관해서 탐정이 되어 추리도 하고 그랬다. 그때의 철없고 엉뚱했던 영상의 조각을 콜라주처럼 만들어낼 수 있을 듯. 사냥꾼을 수식한 ‘쓸쓸한’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풀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로마는 소장하고 있다.
몇 가지는 빌려보고, 몇 가지는 소장할 계획. 찬찬히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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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우울.]

휘돌아나가는 노란 페이지에
조각조각 정사각형이 모여 촘촘 깔렸다
채움의 단계를 낮췄을 때
은은한 배경을 삽입할 수 있었다
순수를 쥐려다가 잔털을 살짝 남겼다
쓱싹하려다, 도로 그 자리에 고정해두고
솔솔 가루를 뿌려, 까슬까슬한 덧칠 효과를 살렸다
달콤한 물을 한 잔 마시기에
끌어오는 노력의 퍼센트는
상당한 수치다
눈을 몇 번 깜박거릴 반복행위에
망막에 부옇게 안개가 스미다

: 2월 27일.
(3월 4일 이미지 완성, 4월 3일 이미지 삽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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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02-2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음...새로이 만든 문님의 대문 이미지 작업 이야기인가..
아니면 자아의 이야기인가.
그런데 배경벽지 은은하면서 따뜻한게 좋은데요 ^^

302moon 2008-03-03 22:24   좋아요 0 | URL
비밀! (웃음)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속닥속닥)
이미지가 바뀌었네요. 귀여워~
 


 

 

: 날개를 활짝 편 이미지, 허공에 팔랑 날아오르는 이미지, 여러 가지 영상을 그리며 언제든 들춰볼 책. 시간에 바짝 쫓기거나 무언가에 구애받지 않고, 페이지를 펼쳐볼 수 있는 수집용 도서로 제격인 듯. 호기심의 자극과 새로 생성 가능한 이미지의 귀퉁이에 퐁퐁 솟은 조그만 점의 시작.
두루미가 물가에 노니는 모습에 흠뻑 빠져 눈을 떼지 못했던 적이 여러 번 있다. 날씨가 건조해서 물이 바짝 마른 땅에 두리번거리는 것에 자신을 겹쳐 보기도 했다. 흔히 겉보기에 아무것도 없는, 깊이 파보았자 건져지는 게 없을 쓸데없는 것에 매여 있지 말고 돈이 되는 다른 것에 눈을 돌려보라는 말을 잔뜩 들었던 탓이다. 나는 스스로 내 능력 밖의 것을 욕심낸 적 없기에 그래도 떳떳하고 즐길 줄 안다고 자부했던 것. 이야기의 방향이 미묘하게 어긋났는데, 다시금 혹해본다. 소장하고 싶음.


거룩한 허기 - 랜덤시선 035 
전동균 (지은이) | 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전동균의 시는 아프고 슬프지만 아름답고 깨끗하다. 꾸밈이 없고 담백하며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다. 그의 시 역시 삶의 비극에 그 실뿌리가 닿아 있으나 통곡하지 않고 미소 짓는다. 비극을 비극으로 노래하지 않고 비극 너머에 숨어 있는 그 어떤 긍정과 기쁨의 풍경을 노래한다. 연과 연 사이의 침묵의 시간은 길고 깊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묵언의 자세를 취하게 만든다. 시를 어떤 속도에 비유한다면 그의 시는 첫눈 내린 숲길을 산책하는 자의 걸음걸이와 같다. 그는 외치지 않고 속삭인다. 그의 시를 마음속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 마치 막 제본돼 나온 기도서를 읽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고요하고 진지하고 정갈하다 못해 오히려 성스럽다. 타자의 삶에서 발견한 고통을 껴안으려는 성스러운 따스함이 시집 전체에 배어 있다. 오늘 밤, 추위에 떠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의 시집 속에서 따뜻하게 잠들어도 좋으리라. - 정호승 (시인)

: 굉장히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내딛어야 할 정도. 무언가 표현할 수 없을 프리즘으로 먹먹하게 만들었다가, 주먹을 불끈 쥐게도 하고, 마치 꼭두각시가 된 듯도 하다가 마지막에는 아릿한 가슴을 움켜쥐어야 했다. 시인의 ‘노래’에 까딱이다가 주저앉을 뻔도 하고, 미미한 스크래치에 약간의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시인의 ‘숲길에서 산책하는 걸음걸이’는 여러 가지 이미지로 다가온다.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 랜덤시선 036 
신동옥 (지은이) | 랜덤하우스코리아(랜덤하우스중앙)

아침에는 인두겁을 벗어 벽장에 걸었다. 간신히 1인칭이 되어 거리로 나섰다. 바람처럼 샛길로만 다녔다. 걸음을 멈추면 외계의 종점으로 몸이 먼저 옮아갔다. 무수한 낱낱의 표정들, 일사불란한, 상처도 구체적으로, 아픔도 구체적으로.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았다. 무언가를 갈망하지도 않았다. 낮에는 허무하려 애썼다. 혼자였고, 혼자이며, 혼자이기 위한 싸움은 계속된다. 우주(宇宙)가 주검이 되어 식탁에 놓인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테다.
방문을 열면 시린 무릎이 먼저 들어가 앉는다. 밤이면 냉정하려 애썼다. 부드럽게 부푸는 흰 종이의 척후병(斥候兵), 한 꺼풀씩 몸에 들씌운 인두겁을 벗어 재웠다. 일그러진 가면을 차곡차곡 재웠다. 그것은 번번이 비정한 울음이었다.
여기 한 권의 시집이 당신 앞에 놓였다. 행간에서 심장까지 가 닿는 간극을 손톱으로 헤아리며, 책갈피를 넘기는 당신의 손가락도 있다. 나는 단 1초 동안 기쁘고, 다시 홀로 있으라. 마침내 당신은 내 지음(知音)이 되라. - 신동옥

담배 한 대를 피우는 동안, 담배 연기 끝에서 피어나는 호랑이들의 몸짓을 나는 이끌 수 없다. 나는 호랑이를 위해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고, 호랑이를 위해 기타를 연주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가령 신동옥의 시편들을 담배 연기 끝에서 피어난 호랑이나 사자에 비유하자면, 그 호랑이와 사자들은 아마 그의 ‘일렉트릭 레이디 랜드’에 빛나는 ‘별들의 옷’일 것이다. 그의 상념의 끝에서 피어난 호랑이와 사자들은 이미 목경(木經)을 뛰쳐나와 세상의 숲과 들판을 내달리며 결정적인 영혼의 싸움을 치른 후에 스스로 펄럭이는 하나의 깃발이 되었으니, 그들이 험한 세상을 쏘다니며 거칠게 남겨놓은 발톱 자국이거나 이빨 자국에서는 이상하게도 섬세한 악보가 돋아나 있는 것이다. 울음이 노래가 되다니. 그 울음은 이상하게도 순수한, ‘알 수 없는’ 울음이어서 가령 루이스 세풀베다식의 울음마저도 이미 노래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시퍼런 레몬처럼 씁쓸하게 웃는” 세상을 향해, “빛의 제국에는 절망이 부족하다”라고 그가 말할 때, 나는 스스로 온몸을 깃발처럼 펄럭이며 영혼 쪽으로 걸어가던 빅토르 하라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히 ‘환음경(幻音經)’이라 지칭할 만한 절창들을 나는 그의 ‘악공 시편’들에서 본다. 그의 ‘악공 시편’들은 고독에 중독된 악공만이 연주할 수 있는, 환음기가 달린 악기를 통해서만이 연주할 수 있는, 거대한 몽상과 고독의 제국인 것이다. 담배 연기처럼 생겨나서 사라지는 게 시의 운명이라면,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의 담배 연기 끝에서 생겨난 그의 호랑이와 사자는 오히려 무현금(無絃琴)의 연주를 통해 환음을 울고 있는, 목이 기다란 초식성 기린을 닮았다고 해야겠다. ‘현 위의 인생’을 살며 온몸으로 무현금을 연주하는 그의 기린은 아마, ‘만년 고독’을 견딘 후에 오롯이 일현금으로 환생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대들이여, 끝끝내 자신의 ‘관상동맥의 길’을 따라가며 “온몸에 스미는 현(絃)”을 기다리는 이 집요한, ‘중독된 고독’이 빚어내는 ‘흑요석’처럼 빛나는 노래를 들어보라. 아직도 그대들 가슴속에 고독의 현으로 팽팽히 당겨진 심금이 남아 있다면. - 박정대 (시인)

: 최근에 커버를 덮은 시인의 추천 글을 붙였다. (아, 리뷰 써야 하는데-_-) 어쨌든, 발견했던 즉각 주문하고 얌전히 앉아서(?) 기다리는 중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노래’를 듣는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그 리듬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보컬의 그 거칠음에서 무수한 에피소드를 끌어올린다. 그것은 시집을 읽을 때도 적용이 된다. 페이지에 쓰인 글자를 파헤치면 때때로 함정에 빠져 허탈해지기도 한다. 얕은 구덩이는 발돋움을 해서 탈출(;)하고, 깊이가 있는 구덩이에 빠졌을 경우에는 끌어올려주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을 때까지 막연하게 흐느적거리다가 신호가 되는 나의 ‘노래’를 끄집어낸다. 그렇게 어설픈 ‘건드리기’를 시도한다.

비밀정원 - 시작시인선 0095 
김백겸 (지은이) | 천년의시작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백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비밀정원』은 광활한 우주까지 상상력의 진폭을 확장하며 그를 통해 깨달은 사유의 정수를 담았다. 신화와 현실 세계를 넘나들며 재창조된 세계는 찬란하고 생생하다. 시인의 손으로 빚은 세계임을 인식하면서도 독자들은 “비밀정원”으로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총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시인의 내밀한 일상이 소탈하게 그려진다. 2부와 3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신화, 전설, 우주적 현상들을 다루기 시작한다. 눈여겨 볼 것은 시인이 끌어들인 환상적 소재들이 현실세계와 맞물려 어떤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는가이다.
비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서 그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정원의 입구”다. 시인은 “비밀정원”의 정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의 가슴 속에는 각자의 비밀정원이 들어설 것이다.

: 그의 ‘우주’에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일단 여행을 시작했으니까, 도중에 블랙홀을 만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소행성과 자글자글 알갱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파편을 이어 엉뚱한 아이템을 만들기에도 주저하지 않을 생각. 페이지를 더듬을 적마다 솟아나는 방울의 영상이 풍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바위 - 시작시인선 0094 
이은봉 (지은이) | 천년의시작

사물의 겉과 속, 존재와 본질 등 대상의 양면성을 밀도 있게 추적한다. "바위는 제 몸에 낡고 오래된 책을 숨기고 있다"고 밝힌 바와 같이 시인은 현상을 좀 더 깊숙이 파고들어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어둑어둑한 진실을 조명한다.
찬찬히 그가 펼쳐 보이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지난 날 함부로 지나쳤던 소중한 순간들이 아련히 떠오를 것이다.

: 퍼즐과 미로 같은 ‘길’을 상상한다. 무수한 갈래로 꼬였을 듯하다. 어느 쪽으로 가든 진기한 풍경을 맞닥뜨릴 것을 예상하며, 먼 과거의 기억까지 헤집을 가능성도 있다. ‘함부로 지나쳤던 소중한 순간들’의 메모를 끼적거리며, 담담히 마주하련다.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지은이), 신유희 (옮긴이) | 소담출판사

: 어릴 적 나랑 동생처럼 할머니의 손에 키워졌던 맨드라미가 생각났다. 그때 강렬한 빨강을 눈에 가득 담아내고 지금까지 빨강의 여러 효과 의미를 집어넣으며 함께 달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요소와 양념을 갖춘 이야기일까. 호기심을 감추지 않는다. 이제껏 그랬듯, 또 주문을 하고야 말았다.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모락모락 피워 올리게 하고, 은근히 강력한데, 응?! (-_-;) 

독일. 디자인. 여행. 
장인영 (지은이) | 안그라픽스

벤츠, 아우디, BMW, 폴크스바겐 등을 탄생시킨 자동차의 명가, 근대 디자인의 정신이라 일컬어지는 바우하우스, 구텐바르크의 금속활자, 소시지와 맥주,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독일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공통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바로 유럽 디자인 강국으로서의 독일이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디자인에 강했으며 최근에는 순수예술까지도 그 중심지가 뉴욕에서 베를린으로 옮겨오고 있다고 이야기될 정도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그 열기가 강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주목해야 할 곳임은 분명하다.

: 오늘 교보문고 매장에서 슬쩍 살펴봤다. 무심코 넘긴 페이지에 약간 거칠거칠하게 자리를 잡은 맥주 이미지가 확, 끌어당겼다. 예상했던 대로, 소장해야만 하는(-_-)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마음에 쏙 든 디자인 계열의 책은 웬만해서 포기할 수 없는.) 매장에 구비된 책은 비닐포장이 되어 있었고, 진열된 지 얼마 안 되었던 터라 꽤 깨끗했다. 바로 구매하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내리누르고, 집에 돌아온 즉각 주문하고 대기 중.

정말 궁금한 우리 예절 53가지 - 젊은 철학자의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이야기 
이창일 (지은이) | 예담

예절의 형식에 대한 옳고 그름보다는 그 속에 담겨 있는 뜻과 함께 반성과 성찰을 이끌어내고 있다. 지은이는 예절의 정신에 중심을 두어 그 의미를 먼저 들여다보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생활 속에서 부딪치며 궁금해 하는 것들을 질문 형식으로 구성하여 재미있게 찾아볼 수 있도록 인문적 내용과 실용적 구성을 결합시켰으며, 일러스트가 읽는 재미를 살려준다. 부록으로 예절과 관련해 읽어보면 좋을 책들을 소개하고, 더 진전된 논의나 연구를 소개받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연구논문과 관련 자료를 함께 덧붙였다.

: 언제였던가, 아빠가 예절에 관한 책을 사야겠다 말씀하셨던 적이 있다. 그때 알라딘에서 검색해봤는데, 출간일이 퍽 오래된, 표지 디자인이 꽝인(좀 말하기 뭣하지만) 책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서 겨우 하나 정해 보관함에 담아두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살펴본 후 구입하자 싶어 주문하기를 미뤘는데,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번에 신간으로 나온 이 책, 당장 주문하긴 그렇고(좀 더 꼼꼼히 뜯어봐야;), 거듭 고민한 후에 결정할 생각.

떡 한과 전통음료 - 21세기 웰빙
: 무식한 빵 만들기(오븐 없이 프라이팬에 굽고, 제멋대로 감행)에 거의 성공한 후, 이제 겁 없이(-_-) 떡과 전통음료에 도전해볼까 싶어 리스트에 올려둔다. 옆 집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 드시라고 가져오신 수정과에 번쩍하고 의지를 불태웠다.
출판사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나중에 살펴봐야지. (오늘은 못 발견했다;)

전설의 100대 와인
: 전설이라느니, 100대라느니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와인’에 관한 책이니까 일단은 보관함.



 

기타리스트를 위한 귀카피 북 
나루세 마사키 (지은이) | SRM(SRmusic)
귀카피'란 카피 악보 등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귀로 음이나 플레이를 들어서 곡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 평소 음악을 2~3번 들어 외우고 익힌 후에 노래를 시도한다. 악보가 없기에(내가 듣는 밴드들은 악보 구하기 쉬운 쪽과 어려운 쪽이 섞여 있다), 다소 무식한 방법이라 생각하면서도 이것저것 적용하는 것을 좋아해서 쭉 그렇게 이어져왔다. 시력이 많이 나빠 그에 대비해 청각이나 후각이 꽤 예민한 편이라 가능했던. 사설이 길었는데, 문득 떠올라 끼적거렸다. 어쨌든, 이 책은 수집용이다. 나중에 기타를 칠 때 도움이 될 듯. 꼭 기타리스트가 아니라도 활용할 수 있을 듯.

고흐보다 소중한 우리미술가 33 - 오늘의 한국미술대가와 중진작가 33인을 찾아서 
임두빈 (지은이) | 가람기획

: 책 소개는 생략. ‘고흐보다 소중한’이라는 제목의 일부가 좀 거슬린다. 화가 고흐를 꽤 좋아하지만,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어서. 한정하는 기분이 들어 씁쓸해진다. 고흐가 대단한 건 알지만, 고흐 마니아(나랑 내 친구 포함)가 꽤 되는 것도 알지만, 개인적으로 이건 아니다 싶다. 특정 화가를 드러내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어쨌건, 그건 그거고(;), 책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가격이나 이런저런 사항을 따지지 않고, 무작정 이끌렸을 정도. 다시 세세하게 살피면 어떻게 변할까 싶지만, 그리 차이가 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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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지에 흩어진 X항.]

사각, 먼지가 묻어나는 달.
이글이글 얼룩에 둘러싸여,
파고들 틈 없이
바짝 마른 목,
축이며 문지른다.
쪼그려 웅크린 너에게 달라붙는다.

머릿속에 어지러이 흐르는
석양의 비상경보.
무수한 점을 건너뛰는 소용돌이.
헝클어진 머리를 감싸고
마구 찧는 가로등.
핏빛이 번진다.
올려다본,
허우적거리는 네가 히죽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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