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러브 유
이시다 이라.이사카 고타로 외 지음, 신유희 옮김 / 해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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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015.)

*상큼한 과일의 단면.

레몬 빛깔 속표지가 상큼했다. 그래서 혹했다. (내용만큼 표지디자인에도 엄청 이끌린다.)
그렇다고 내용을 멀리 제켜두고 표지만 보고 덜컥 구입한 건 아니다, 들춰서 나름대로 꼼꼼히 살피는 과정을 거쳤다. ‘북극곰’ ‘버튼’ 글귀를 보고, [그래, 궁금하니까 사는 거야. 모험을 하는 거야.]라고 주술 비슷한 것을 걸며, 온라인 주문을 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보다 더욱 좋았다.(별 다섯까지는 아니었지만.)
단순한 연애소설이라고 치부하면 곤란해질 정도로, 각양각색 맛깔스러운 세트 음식 같았다. 종합선물과자와도 비슷한 맥락. 작품마다, 연애에 있어서 조금씩 다른 견해랄까, 시선을 가진 작가의 해석을 풍성하게 불어넣었다. 헤집고, 들추고, 느끼고, 불러오고, 변화를 주고 함께 하면서, 어쩌다 틈을 메울 수 있었던 장면이 나오면, 번쩍하는 표현들을 기록해나갔다. 더불어, 몇몇 문장은 역으로 일본어 문장으로 바꿔보기도 했다. 좀 더 많은 작가가 참여했으면, 아쉬움이 살짝 남았다.
개인적으로, 연애소설이라고 해서 꼭 말랑말랑한 장면과 묘사만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공허한 감촉에 공감을 느끼고 덩달아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고, 마음 밑바닥에서 끌어 오르는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아내려 함께 끅끅거릴 때도 있다. 그때는, 자신조차도 모르는 군데군데 흩어진 여러 명의 ‘나’가 모여 만들어내는 풍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럴 때, 부끄러운 게 아니다. 후련해지는 것이다. 그들의 에피소드는 우리들의 일상에 책상의 금 같은 일부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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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015)

---
*
성장소설로 분류한, 그러나 개인적으로 약간이나마 순정만화 타입의 묘사도 섞였다고 생각을 했다. 2번째 읽고 나서, 머릿속을 정리하고 가다듬고, 리뷰를 쓰는 것이다. 처음엔 느슨한 이야기 방식에, (개인적으로)어딘가 모르게 작위적인 느낌도 살짝 났다는 기억이 있다. 목이 칼칼하고, 조각이 걸린 듯, 둔중한 바위가 떡하니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는 영상처럼 답답함이 잔뜩 훑고 지나갔다고 할까. 당황스러움으로 리뷰 쓰기를 슬금슬금 미루다가, 은근슬쩍 접히면서 묻히고 말았다. 2번째 읽은 지금, 전체적 느낌이 그리 변하지는 않았는데, 불러오기와 재생은 보다 수월해졌다. 조그마한 구석 자리, 회선이 꼬인 부분에 조금이나마 엉킴이 풀리고, 한결 가뿐해졌다.
복작복작 잡다한 바구니 같은 교실에 각자 서로의 고유 영역과 미묘한 경계를 지은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저마다 고민을 하나씩 가졌고, -타인(어른)이 보기에 지극히 가볍고 어이없을 수 있는, 그저 장난처럼 받아넘기는- 나름의 방식을 정해놓았고(사탕일기의 카나), 의식의 혼란으로 퓨즈 끊김 상태가 지속되기도 한다.(초록고양이의 에미)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친다 해도,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는 이가 없고, 그어놓은 선을 넘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듯 보인다. 암흑뿐인 공간에 빛이 찾아들기란 좀처럼 어려워 보인다.
이쪽과 저쪽, 간당간당한 선에서 흐르는 듯 자유로이, 오솔길을 거닐듯 팔랑거리는 분위기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는 개인적인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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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과 들판의 별 문학과지성 시인선 337
황병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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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거리는 레모네이드 환상.

(1028, 트랙과 들판의 별.)

끌리는 신간 페이퍼에 언급하려다 묻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물거리지만, 코너에서 발견하자마자 표제에 마구 이끌려, 시인에 이끌려, 시의 풍기는 이미지에 고루 이끌려, 일찌감치 찜해뒀었는데, 최초 발견 당시에 확인하고 사겠다고 살짝 미적거렸다가, 이제야 읽고 리뷰를 쓴다. 교보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슬렁슬렁 돌아다니다 마지막에 친구랑 나올 때 구입했다. 그 시점에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신호를 잡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챙기지 않으면 은근슬쩍 의도 혹은 그냥 허망하게 놓치고 마는 아이템이 더러 있었다.)
*이제 본격 리뷰.
(라기 보다는 개인적 주절거림에 가까운.)

이니셜 ‘S’ 인 사람이 공 같은 방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 S에게, 공허의 눈동자로 응시하는 그림자가 말을 걸며, 소통하기를 시작했다. S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끅끅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통을 호소한다. 채 뭉개지지 않은 슬픔을 겨우겨우 삼켰지만,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몸부림을 친다. 한계가 없는, 연관이 없는, 솟구치는 문장의 나열과 이미지의 행진이 거듭 화면에 표시된다. 뚝뚝 받아내는 데 간격이 생기고 만다. 견뎌내기 어려운 의문으로 가득한 오한에 휩싸인다. 부르르 떨면서, 허우적거림에 가까운 행동을 취한다.
그렇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 공간, 꼬임이 반복되고 희부옇게 기운이 가라앉은 공간에는 흐느적거리는, 술렁거리는 음악이 연속 재생되고 있다. 극한.
머릿속에 얼룩이 생기고, 점점 영역을 넓히며 번지고, 둘레를 가득 채운다. 새로이 형성된 그곳은 경계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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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다.
밋밋한 텅 빈 종이에
잿빛 배경을 채운다.
동그라미를 여러 번 거듭 그린다.
모양이 고르지 않고,
들쭉날쭉한 동그라미가
무수한 둘레를 그었다.

몇 겹을 씌워도
잔상이 떠오른다.
희끗희끗한 라인이
바닥에 과감히 들어차 있다.
누가 알아차릴세라,
후다닥 검정막을 다시 끼운다.
여기저기 제멋대로
채 그러모으지 못한 잔여물이
부스스 흩어져 있다.

*
S의 방.
출입구를 열쇠로 채우지 않았다.
활짝 무방비하게 열려 있지만,
때때로 의뭉스럽게 단단히 걸어 잠근다.
그 주기에 돌입하면,
철저한 소통 거부가 된다.
장치조차 떨어뜨린다.
오고 가는 이 자유롭고,
배경은 훤히 드러나지만,
언뜻 희희낙락 밝은 천성인 듯 비치지만,
실제 건져지는 건, 겉보기만.
단 1%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 줌 모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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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モザイク越しの夢。]

덜커덕덜커덕 어긋난 톱니바퀴.
악몽의 영상을 억지스레 고집한다.
서로 엇갈리는 교차점을 지나고,
낡은 지도를 버리지 못하고,
저마다의 슬픔은 얼룩조차 만들지 못하는 상태며,
위장술의 행위 발자국을 또각또각 남기고 멀어진다.
이제 필름으로만 간직된 기억들,
돌아갈 수 없는, 되새길 여지도 없는,
우리들의 흐물흐물한 장소.
우리들의 아득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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