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나날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끊임없이 분위기를 띄우려 하고, 다른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안심하는 걸까.





살다보면 여러 번 바뀌는 날씨를 보기 마련이다. 어떤 날은 내가 버젓이 있는데 은근슬쩍 내 옆에 섰다가 슬슬슬 새치기하는 엑스엑스를 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마트 냉장고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그 앞으로 쓱 지나가는 사람이 '실례합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거대한 사건을 제외하면, 사람의 일생은 작은 습관과 그가 제어할 수 없는 타인들의 예측할 수 없는 날씨로 이루어졌다. 




어떤 순간의 서늘함과 후덥지근함,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날씨. 어떤 구름 뒤에 해가 있을지는 모르니까 그런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나는 더 가만해졌던 것 같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를 생각하는 순간, 그냥 그렇게 물 밑으로 가라앉아버렸을 사건이 수면 위로 떠 오르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가만한 나날'은 보여준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 재미와 소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마음을 느끼게 해준 소설집. 




1987년 목포 출생, 국어국문학과, 서사창작, 제 9회 젊은작가상, 이런 글귀가 책날개에 적혀있다. 그리고 넘기면 지하철을 갈아타고 약속 장소로 가는 연승의 초조한 기색, 그런 그를 바라보는 여자친구 진아의 얼굴 가득한 물음표가 보인다. 그들은 연승이 몹시 존경하는 선배를 만나러 가는데, 연승은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제 막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몇편의 작품, 공모전 출품, 그러다 들어간 대형 할인점 체인의 유통 분야, 그러다 그는 이제 영화를 만들려고 하고, 그보다 먼저 다큐 작업을 하는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려 한다. 

작가의 시선은 이들이 곧 만나게 되는 이상하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딱히 예상했다고 말하기도 힘든 선배 부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연승의 여자친구 진아도, 중한 선배를 좋아하는 연승도 예견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앉을 곳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조그만 공간, 너무나도 작고 천장마저 낮은데 그곳에서 태어난 아기 이야기에서부터 산부인과 이야기 같은 것, 요컨대 제각기 모두가 처음부터 과녁을 맞출 생각이라고는 없이 던져진 화살들같이 같은 지점을 통과하는 상황, 혹은 마음속에서는 알레르기가 올라오는데 하필 마지막으로 다녀온 곳이 뷔페여서 대체 무슨 음식에 내가 이러나, 말하기도 뭣한 상황. 친구와 약속을 잡아놓고서도 내심 '이 친구가 오늘 일이 있어서 못만난다고 문자 한 통 보내줬으면'하고 생각하며 외출 준비를 하는 순간.





 이런 순간의 물밑 흐름을 김세희는 잡아낸다. 그리고 이 작가의 단편을 읽다 보면, 세상에 소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잡아채거나 가르치거나 막아서지 않는 글씨들. 그런 다행스러움은 표제작 '가만한 나날들'에서 담담하고 조용하게 드러난다. 





첫 출근을 앞둔 일요일, 나는 대학로에서 우연히 재화 언니를 만났다. 구름 끼고 쌀쌀한 바람이 불던 오후였다. 그때 스물여섯이던 나는 출근을 앞두고 마음의 준비를 한답시고 종일 원룸에 혼자 있다가, 괜히 잡생각만 가득해지고 점점 압박감이 들어서 집 밖으로 나갔다. 마로니에 공원 쪽으로 좀 걷다가 아이쇼핑을 할까 싶었다. 밤에는 엄마와 통화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지.




이 스물여섯의 '나'는 블로그 마케팅으로 제품 홍보를 하는 회사에 입사하여 가상의 인물 '채털리 부인'을 만들어 블로그를 꾸민다. 첫 출근을 하며 마음 속으로 재화 언니가 말해준 것처럼 '나는 프로다'라는 말을 주술처럼 되내이던 '나'는 가상의 채털리 부인이 되어 열심히 성과를 자기 눈으로 확인해간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개인 경험은 아주 생생하게 구체적인데, 이러한 구체성은 김세희 작가의 모든 단편 전반에 나타나 있다. 





주민등록번호도 있고, 금요일 밤이면 편의점에서 맥주 몇 캔을 사와 영화를 보며 마시고,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면 딸기와 롤 케이크를 사서 가는 그런 사람들. 김세희의 소설 속에는 멀리 있는 엄마의 잔소리에 넌더리를 내는 원희(현기증)가 있고, 저 아이가 저런 모습이었나 싶어 남자친구를 바라보는 진아(그건 정말로 슬픈 일일거야)가 있다. 첫직장에서 사수로부터 폴더를 만드는 법, 다이어리에 그날그날의 업무를 기록하는 법까지 배우던 선화(드림팀)가 있고, 처음 가본 동네에서 거대한 전기장판을 옆에 놓고 낮에 맥주를 마시는 루미(우리가 물나들이에 갔을 때)가 있다. 



 

이 여자들은 자기가 직접 화자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타인의 눈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이 여자들의 공통된 모습은 버거운 공기에 숨을 참다가도 가볍게 숨을 틔울 줄 아는, 이제 막 자라 어미 새의 둥지를 떠나는 어른의 모습이다. 거울을 바라보며 자기가 보는 것이 거울 표면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사람의 모습, 한마디로 부끄러움을 배워나가고 이별을 예감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할 줄 아는 여자의 모습. 이렇게 말하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사실 오랜 시간 한국 소설 속의 여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던가를 생각하면, 조경란과 정이현의 인물들을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신선함이 다시금 느껴진다. 





어떤 종류의 경험은 소설로밖에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신선함이 순간의 경쾌함으로 그치지 않는 동시에 개인의 경험을 넘어 보편적인 묵직한 잔향을 만들어내는 것은 작가의 균형 감각이다. 한 세계에서 일어난 어떤 거대한 사건 앞에서, 그 사건과 개인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의 예리한 날 선 감각, 균형을 잡는 힘. 브레이크를 적절히 사용하면서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놓치지 않는 흐름을 보노라면 소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한 나날' 속의 경진과 채털리 부인의 목소리 같은 것이.





채털리 부인은 신생아부터 6세까지 사용가능한 '3단계로 변형되는 프리미엄 토들러 침대'에 아기를 재우고, 토요일 밤에는 일본에서 수입한 '개 샴푸계의 샤넬' 제품으로 개를 목욕시켰다.

...

리뷰 업무를 하느라 하루를 다 보낸 날에는 저녁을 먹고 사무실에 남아 일상 게시글을 작성했다. 개인 블로그로 보이기 위해 일상적인 내용을 담은 글을 올려야 했고, 직원들은 가족과 친척들, 그 반려동물들 사진까지 활용했다. 이웃 수를 유지하려면 이웃을 맺은 블로그를 방문해 댓글도 남겨야 했다. 




라식수술, 치아교정 광고를 교묘히 허위로 만든 블로그에 거짓으로 작성하며 경진은 잠시 이래도 될지 망설이기도 하지만 이내 그는 자신의 결과물에 만족하고, 성취감을 느끼고, 나아가서는 일을 못 해서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가는 예린을 살짝 깔보기도 한다. 한 사람을 만들어나가고 채우는 작은 계단들이 있다면, 경진의 걸음은 계단 어느 즈음에서 층계참을 지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던 순간 이런 브레이크가 걸린다.




블로그 이웃이라는 여자였는데, 그 여자는 자신을 B기업의 뿌리는 살균제 피해자라고 소개했다. 두 아이 중 갓난아기를 잃었고, 다섯 살 아이는 폐가 손상돼 평생 산소 호스를 끼고 살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이것이 B기업의 뿌리는 살균제 '뽀송이' 때문이라는, 그 안에 포함된 독성 물질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채털리 부인님이 올린 후기를 보고 구매해서 쓰기 시작했거든요. 날마다 사용한다고 했는데 괜찮으신지......아무 일 없으시길 바라지만 혹시나 무슨 일이 있었다면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경진의 엑셀러레이터가 잠시 멈추고 브레이크를 밟게 되는 순간, 그 멈춤에 스스로 답하는 순간, 그리고 내린 첫눈의 대목은 소설을 읽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사건이 일어나고, 그 시간을 통과하고, 그것을 인정한 다음 느끼는 죄책감과 부끄러움. 이러한 부끄러움이 사회의 경험과 개인의 이야기로 겹쳐질 때, 오르한 파묵이 말한 '서로 어긋나는 것을 동시에 바라보는 능력'이 빚어내는 소설 읽기가 나름의 의미를 지닌다. 




나의 첫 직장, 나는 그곳에서 26개월간 일했다. 스물여섯 봄부터 스물여덟 여름 무렵까지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얼굴에 확 와 닿던 건조한 공기며 흰 책상들이 놓여 있던 모습이 선명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은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어쩌다 첫 회사가 화제에 오를 때면, 작은 광고대행사에 다녔다고만 대답한다.

 하지 않는 말들은 그것 말고도 또 있다. 별것 아니지만, 이를테면 이런 것. 그곳을 나온 이후 나는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책장에 꽂혀 있으나 어쩐지 펼쳐 볼 마음이 일지 않는책. 나는 어디에서도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런 사람. 0과 1 이후의 진심을 보았던 사람. 엄중한 회초리의 사설이 아닌 경진 개인의 경험으로 회자하는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독자. 날씨는 내 옆 사람 탓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마트나 백화점 앞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날씨 때문에 공기가 후덥지근하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주 준엄하게 모든 사건의 시비를 가릴거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김세희의 단편 묶음은 독자에게 어떠한 결심을 하게 만들지 않고 그 자체의 구조 안에서 의문을 가지게끔 만든다. 비슷한 얼굴들 속 다른 얼굴이 보이게끔 하는 작품집이다. 




-따옴표 글은 책속 인용.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9-03-23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좀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쟌느님의 페이퍼때문에라도 이 책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맞아요. 말씀처럼 ˝어떤 경험은 소설로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 게 읽어서 비로소 정리되고 이해되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Jeanne_Hebuterne 2019-03-24 06:04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너무 오랜만에 알라딘 서재에 와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기분이었는데 블랑카 님 이미지를 보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너무너무 반가워서요!!
이 책은 뭔가 쎄하고 꽁기한데 말하면 내가 소인배같아보이고..근데 기분은 또 그게 아니고 그런 포인트를 너무 잘 짚어내서 읽다가 그 생생함에 놀랐어요. 결국, 시인과 소설가는 더 잘 느끼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읽다가 정이현의 삼풍 백화점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잘 지내시지요? 새해엔 서재에서더 자주 보아요, 반가운 블랑카님^0^
 
글쓰는 여자의 공간 - 여성 작가 35인, 그녀들을 글쓰기로 몰아붙인 창작의 무대들
타니아 슐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봄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게 다 은행 잔액의 차이다. 엉뚱하게도 '글쓰는 여자의 공간'을 읽으며 작가의 서재를 구경하다가 든 생각이다. 명작을 쓰지 못해서도 억울한데, 대체 명작을 뽑아내는 사람들은 터를 잘 잡아서인가! 이런 경망스럽고 불순한 호기심과 다른 사람 인스타그램 구경보다 재미있는 다른 사람 집구경이, 특히 작가들의 서재가 아닌 글 쓰는 작업실이 궁금해서 집어 든 책이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의외로 작업실의 스펙트럼이 넓고, 작업실을 규정하는 두 가지 결정적 요인은 개인의 재력과 성향,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글쓰는 여자의 공간'은 버지니아 울프, 프랑수아즈 사강,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실비아 플라스(내가 좋아하는 순서다) 등 여성 작가 35인의 글쓰는 공간을 담고 있다. 집은 그 사람의 성정을 담았다면 작가가 글을 쓰는 공간으로 쓰는 곳은 작가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작업실은 때로는 부엌, 개인 서재, 호텔, 카페, 혹은 집안 곳곳이 되기도 했다. 

 나탈리 샤로트는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허공에 뛰어드는 일과 흡사하다. 카페에서라면 쉽게 뛰어들 수 있다'라고 말하며 전화를 받을 일도, 누군가 자질구레한 집안일로 자기를 찾는 일도, 불쑥 방문을 여는 사람으로 방해받을 일도 없는 카페를 글쓰기 공간으로 칭송했다. 이 책은 가정과 개인, 사회의 여러가지 방해와 비협조 속에서 가까스로 자기의 글쓰기 공간을 찾아내 스스로에게서 무언가를 뽑아낸 사람들의 마음속이 한가득 있다. 




 35명의 작가들의 제각각 글만큼이나 다른 사정들이 있어서, 물론 집이 여러채 있고 글쓰기를 위해 로지아를 지어 글을 썼다는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도 있고, 개인 비서를 두고 사자 모피를 깔개로 둔 서재에서 작업한 카렌 블릭센 같은 작가도 있다. 

 서재는 글쓰는 공간이 될 수 있지만 글쓰는 공간이 서재인 것은 아니어서, 이 부등식에는 오히려 글 쓰는 공간보다 중요한 것도 있으니, 작가 개개인의 성향과 삶의 사이클 같은 것이 포함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실비아 플라스는 결혼과 출산 후 온전히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었고, 버지니아 울프는 몽크스 하우스의 헛간을 개조해 글쓰는 공간으로 활용하다가 마침내 정원 구석에 목재로 된 작업실을 짓고 나서야 더욱 마음편히 글을 쓸 수 있었다. 왜 그 전에는 마음이 불편해서 글을 쓸 수 없었냐고? 어머니 사망 후 열세 살부터 9년간 아버지를 뒤치다꺼리했고 의붓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그가 아버지 사후 24년 후 쓴 글을 보면 엿볼 수 있다.



 "아버지의 생일이다. 살아 계셨다면 오늘로 아흔여섯 살이었겠다. 아버지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흔여섯까지 살 수 있었을 텐데, 다행히도 그러질 못하셨다. 만약 그랬다면, 아버지의 인생은 내 인생을 완전히 끝장냈을 것이다. 살아 계셨다면 어땠을까? 나는 글도 책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실비아 플라스에 관해서는 엇갈린 증언들이 나온다. 주로 알려진 사실은 테드 휴즈와 실비아 플라스가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았고,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던 실비아 플라스는 그야말로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는 증언과, 부부가 일을 나누어서 했다는 증언(번역가 유타 카우센)이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책 속 사진의 실비아 플라스는 책상 위에 올라가 앉아 책을 들여다보거나 뒷마당 테이블 위 타자기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 사진은 순간이어서 그가 연속 몇 시간 동안 작업을 했는지, 혹은 일할 시간을 넉넉히 가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단, 실비아 플라스가 남긴 말은 그 시간의 흐름이 녹녹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많이 써보면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작품을 잘 쓸 때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할까?"




 서른다섯 명의 문체만큼이나 다양하고 제각각인 글 쓰는 공간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게 되는 책이다. 주로 세상에 이제는 없는 작가들이 많지만, 엘프리데 옐리네크, 니콜 크라우스처럼 살아있는 작가도 다루고 있다. 제인 오스틴처럼 초상화로 사진을 대신한 작가도 있고, 인물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사를 누린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 같은 작가도 있다. 오죽하면 '식탁에 앉은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는 꼭 타락한 천사 같았다'고 무려 토마스 만이 말했겠는가. 



 

 주로 작가의 서재를 구경하다보면 높은 천장과 시원한 전망, 책으로 가득한 서고 같은 것으로 주눅이 들곤 하는데, 이 책 속의 작가들은 그 스펙트럼이 참으로 넓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지정학적 위치가 작품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해리엇 비처 스토가 뉴잉글랜드 메인 주에 살고 있었으니 다행이었지, 남부 연합군 지역에 살았다면 과연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나올 수 있었을까? 공간에 대해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다시 자연스레 앞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까 이 책에 소개된 작가 중 메리 매카시는 한나 아렌트와 절친이었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는 메리 매카시를 좋아하지 않았고, 카슨 매컬러스는 엘리자베스 보옌과 친했지만 그는 또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를 사랑했고..읽다 보면 글쓰는 여자들의 굳게 앉은 뒷모습 그림자가 보일듯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방 안은 따뜻했고 희미한 먼지 냄새가 났다. 그녀는 젖은 옷과 양말을 벗고 실내복으로 갈아입었다. 컵에 담긴 양초에 불을 붙이자 길쭉한 심지가 타들어가면서 타닥타닥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장작 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아득히 먼 곳에서 터지는 폭죽 소리 같기도 했다. 그녀는 침대에 앉아 마른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문질렀다. 찬비가 끝없이 내리는 낯선 숲속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와 쉴 수 있는 그녀만의 따뜻하고 보송한 공간이 있다는 게, 그래, 나쁘지만은 않아, 하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녀는 가방을 열어 옷과 책을 정리하고 커피잔에 소주를 부어 천천히 마셨다. 소주를 다 마시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 두어 페이지도 못 읽고 잠에 빠져들었다. 자세를 바꾸느라 잠시 깨었을 때 그녀는 한두시간 뒤면 식당에서 따뜻한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자 휘진 몸에 따스한 쾌감이 온천수처럼 잔잔하게 퍼져가는 걸 느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몹시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역광





 책장을 펼치면 술 냄새가 오를 것 같은 까닭에 읽는 내도록 술을 마시며 읽었던 책이 있다. 짧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대학원생과 사귀다 헤어지기도 하고, 환영을 보기도 한다. 또는 가까이 있는 것은 보지 못하고 멀리 있는 것을 보기도 하고, 남동생의 도박 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되어 집에서 나와 자기만을 위해 살아내기를 결심하거나 작정했다는 듯 술을 마시다 알코올성 치매에 걸리거나 어느 날 헤어지지 않고 헤어진 남자친구가 왜 사라졌는지를 술을 먹다 알게 되기도 한다. 

 소설 속의 대부분의 고전적인 서사는 사람들 삶의 어떤 질서가 무너지고, 이야기는 그 질서를 되찾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권여선의 단편에서 어떤 질서는 조금씩 인생의 악희를 통해 더 나빠지는 방향을 드러내기도 하고, 또 어떤 단편에서는 그 모든 것이 환영이었음을 종이를 찢듯 보여주기도 한다. 필연을 찾으려는 인간은 인생이 건네는 농담 앞에 얼마나 무력한가. 이 소설집의 일곱 편의 단편은 그런 면에서 삶과 닮았다.




삶 속의 물음을 이 책 속의 사람들은 조심스레 건넨다. 




그게...... 내 탓은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층




 일상적이지 않았던 통화를 하필이면 그 여자가 엿들었을 때, 하필이면 '미친년'이라고 욕설을 할 때, 그것은 그의 탓도, 그녀의 탓도 아니었다. 반듯하다고 생각했던 남자의 폭력성을 오인하기에 충분한 우연이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그 남자가 욕설할 때 전화통화를 엿듣게 된 것은 그 여자의 탓이 아니다. 그 남자가 하필이면 그때 욕설을 한 것도 그의 탓은 아니다. 오히려 지적장애 누이가 있다는 것부터가 지독한 우연이었는데, 우리 생의 어떤 단면에서는 '하필'이 필연처럼 펼쳐진다. 

 이런 비극은 삶의 질서를 흔들어 위태롭게고 불안하게 만든다. 롤러코스터가 높이 올라갈수록 위치 에너지가 증가하듯 높이와 에너지가 비례한다고 믿었던 때가 젊은 날이었다면, 이제는 그 롤러코스터는 양의 에너지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음의 에너지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때가 온 것이다. 그것은 의지가 아닌 성격의 영역일 수도 있으며 인간은 삶의 농담을 견뎌내기에는 종종 그 껍데기가 너무 얇다. 

 이를테면 쇠심줄처럼 튼튼해지는 것이 아니라 닳은 밧줄처럼 너덜너덜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뭘까...... 나를 살게 한...... 그 고약한 게......

-이모





 그 너덜거리는 마음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버티려는 사람의 이야기가 '이모'이다. 

 대학 1학년 때부터 가장 노릇을 해왔지만 서른아홉 살에 남동생의 도박 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되었던 사람, 이후 오십이 되자 더는 자신을 찾지 말라며 원하는 대로 살기로 했던 사람. 다른 사람에게 기대려고 하지도, 기대게 해주지도 않겠다고 결심했으나 살아가는 일은 죄책감과 불가해성, 무례함과 성가심으로 점철되어 있다. 한마디로 내가 들였던 노력이 반드시 내게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어떤 우연한 사건이 필연이 될지 우연으로 끝날지도 알 수 없음이 '이모'의 일생을 통해 드러난다. 마침내는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기억을 더듬고 더듬어 대학 1학년 때 귀찮다는 이유로 무신경하게 자기를 좋아했던 남학생의 손바닥에 담배를 비벼 끈 일을 기억해낸다. 

 어느 겨울날의 무례한 이웃들, 짜증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보낸 시간이 어쩌면 자기 앞의 생과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이대로는 안 된는 전언에 가까운 결론에 스스로 놀라게  되기까지, 그 사람은 얼마나 긴 둘레길을 걸었을까. 




 가까스로 다다른 통찰.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 지구에서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 






이런 얘기 해도 되나?

-실내화 한 켤레





 그러나 어떤 삶의 부분은 그 얼굴과 뒷면이 예상 밖으로 심술궂다.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기운이 있다면 이러한 종류의 전언이다. 또한 전언을 전하는 자의 심술궂음, 카산드라의 미소. 결국, 해서는 안 될 이야기를 일부러 한 박자 늦게 꺼내는 악희는 우리 삶의 저변에 의도치 않게 깔린 안개 같다. 그래서 비누 거품 같았던 인간은 어느새 제각각의 성격, 혹은 제각각의 결함을 지닌 채 이에 대항하려 하지만 어떤 이는 그것을 우연히 피해가고, 어떤 이는 맞서야만 한다. 그게 내 탓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그게 뭐였을지를 생각해 내야 하고, '이런 얘기 해도 되나?' 하는 삶의 심술궂음에 애써 스스로 다잡아야 하는 삶. 어쩌다 열린 술판 같은 자리. 맨정신이었다면 들을 일이 없었을 다른 이의 비밀, 볼 일이 없었던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 우연히 얻어걸린 어떤 사건들. 

 '실내화 한 켤레'의 세 사람은 고등학교 수학 선생의 모진 수업을 견뎌내려 만나게 되고, 어른이 되어 우연히 만나 술자리를 갖는다. 그러나 알면서도 일부러 발설하지 않다가 그날 만난 남자가 지독한 성병에 걸렸다는 말을 하는 선미의 얼굴은 심술궂은 인생의 우연 같다. 그래서 그 남자와 잤을 것으로 추정되는 혜련에 대해 선미가 '혜련이가 너무 걱정돼, 경안아. 아직 애도 없는데.'라고 말할 때, 실은 우리가 가졌던 술자리는 찰나의 진실이 아닌 어젯밤의 차악이 되기도 한다. 






 우연히 가게 된 술자리, 내 옆에 누가 앉을지는 나도 모를 일. 술자리에서 나는 주로 먼저 집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고 은근슬쩍 사라지곤 한다. 인생에서도 그러고 싶으나 나의 차악, 나의 물음이 다른 사람이 건네는 농담, 공감과 적절히 만날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술자리에서 슬쩍 빠져나와 이 책이 건네는 농담과 위로를 읽고 있자니, 내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바닥에 깔린 내가 은근슬쩍 술을 따라주는 느낌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비에 흠뻑 젖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사무실 여직원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왜 이렇게 젖으셨어요? 전화를 주셨으면 모시러 갔을텐데요."

 그녀는 여직원이 내미는 수건을 사양하고 그가 언제 오는지를 물었다.

 "어느 분이시라고요?"

 그녀가 그의 이름을 말하자 여직원은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분은 안 오시는데요."

 근는 그의 이름이 적히지 않은 화이트보드를 뚫어져라 보았다. 여직원이 책상 서랍에서 서류철을 꺼내 뒤적였다.

 "그런 분은 올해 아예 입주 신청도 안하셨어요."

 그녀는 열쇠를 받아 사무실을 나왔다. 1층 로비를 지나 문을 열고 나와 계단으로 향했다. 비가 들이치는 실외 계단을 올라가 2층 9호 처마 밑에서 열쇠로 문을 열려다 그녀는 등 뒤에 어떤 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맞은편 공용 발코니에는 아무도 없었다. 발코니 앞 단풍나무가 영원한 작별의 불가피성을 안다는 듯 젖은 손바닥 모양의 나뭇잎을 은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역광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7-12-16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았죠? 저나 쟌느님이나 다 어떤 상승, 삶의 기쁨 뒷면의 무게를 가늠하게 되는 나이가 되어버렸나봐요.

Jeanne_Hebuterne 2017-12-22 06:15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술마실 때면 꼭 펴놓고 읽게 되는 본격 주정문학입니다. 작가의 의도도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싶어요. 요즈음엔 한국말의 맛이 새롭게 다가와서 엊그제 한국 소설책을 주문했습니다.
십여년 전의 감정들이 강렬하고 날카로웠다면 지금은 약간의 한숨을 쉬며 먼 곳을 바라보려고 해요. 제대로 되지는 않지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7-12-16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2 0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6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2 0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금수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금수錦繡

1.수를 놓은 직물

2.아름다운 직물이나 화려한 의복

3.아름다운 단풍이나 꽃을 비유하는 말

4.시문, 훌륭한 문장을 비유하는 말




 금방이라도 변할 것 같은 빛을 바탕으로 흩날리고 바스러지는 잎사귀, 한글과 한자로 쓰인 책 제목과 작가의 이름. 1982년, 미야모토 테루가 쓴 흰 아름다운 책을 손에 넣었습니다.




햇빛이 넘치고 바람이 가득하던 날, 집에 돌아오던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하늘이 유난히 파랗고 높은 날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길가 담장을 따라 자란 푸른색 나뭇잎이 더 눈에 띄었고, 그 푸른색 속의 노란빛도 더 그랬겠지요. 나뭇잎은 온통 짙은 초록색이었어요. 그런 초록의 나뭇잎이 담장을 둘러 빼곡했는데, 그중 유난히 샛노란 개나리 빛의 뭔가가 눈에 띄었어요. 늦거나 이른 봄꽃인가, 싶어 보았더니 그 샛노란 빛깔은 나무의 여리고 아픈 잎사귀였습니다. 너무 연약해서 꽃으로 보이는 잎을 만지려다가, 마침 머리 위에서 새가 크게 울어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어요. 그것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지만, 갑자기 작년에 읽었던 미야모토 테루의 '금수'가 다시 떠올라 책장을 펼쳤습니다. 재독을 잘 하지 않지만, 다시 따라가는 이 남녀의 편지는 제 기억과는 다른 부분이 조금씩 있었어요.



어느날 새벽 5시에 사건을 알리는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2층 침실에서 자고 있던 저는 가정부인 이쿠코 씨가 깨워 일어났습니다.

 "야스아키 씨께 큰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쿠코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목소리가 떨려 저는 심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저는 파자마 위에 카디건을 걸치고 계단을 뛰어내려 갔습니다. 전화를 받아 보니 굵고 차분한 목소리로 경찰서라고 하면서 아리마 야스아키 씨와 어떤 관계냐고 물었습니다.

 "안사람입니다만." 저는 추위와 동요로 떨릴 것 같은 목소리를 억누르며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나서 사무적인 어조로 당신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이 아라시야마의 여관에서 동반자살 사건을 일으켰다, 상대 여성은 사망했지만 남편은 어쩌면 목숨을 건질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아주 엄중한 상태이니 당장 오시라, 하며 병원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아키와 아리마는 이혼하게 됩니다. 십 년의 시간이 흘러 마음이 무뎌질 무렵 자오의 달리아 화원에서 돗코누마로 오르는 케이블카 리프트 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고, 아키가 아리마의 주소를 알아내어 편지를 보내지요. 아키는 그저 당시 동반자살 사건을 일으켰던 여자, 유카코의 부친이 자살 사건 이후 자신을 방문하여 사과했던 일을 전하는 걸 목적으로 우편함에 이 편지를 넣는다고 썼지만...... 정말, 그랬을까요?



 저는 이 때로는 조용하고 때로는 섬뜩한 이야기가 주는 매력에 다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가 어느정도 자극적이고, 미야모토 테루에게는 뒷페이지를 궁금하게 만드는 재주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인물들의 마음이 심연에서 차츰 뭍으로 오르는 과정에서 나름의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살인은 격정의 범죄입니다. 어지간한 마음의 동요, 혹은 계획이 있지 않고서야 벌이기 힘든 일이지요. 그런데 이 유카코 라는 여성은 내연관계에 있던 아리마를 찌르고, 자신도 찔러 스스로 죽고 맙니다. 그 격정이 어쩌면 그렇게 활짝 핀 꽃 같은 자기까지 죽인 것일까. 그리고 그 뒤 시간은 왜 그렇게 잔인한 것일까. 그런 생각이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들었다면, 어젯밤 다시 읽었을 땐 이 두 사람의 차분한 격정이 향하는 방향이 꼭 사람의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아키와 아리마, 이 두 사람의 편지가 모조리 제 마음과 쏙 닮았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아리마는 유카코에 대해 써내려간 아리마의 편지에 격분해서 물음표를 잔뜩 넣은 편지를 쓰게 되고, 아리마는 그에 대해 '저에게 유카코와의 전말을 써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신을 보낼 때가 그랬어요. 

 또는, 기막힌 사업 아이템을 내놓고도 오히려 아리마에게 '역시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저 같은 사람은 결국 여자라니까요. 거기까지 머리가 안 돌아가요.' 라고 레이코가 감탄할 때엔 슬프기도 했어요. 아리마가 어떻게 움직일지 다 예측하고 그에 선수를 두는 대담한 이 사람이, 1982년의 여자였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고서야 이 이야기는 다른 시대의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소설은 작은 이야기입니다. 그 속에서 무엇이 정말 리얼한 것일까요? 저는 이야기가 시대를 벗어날 수도, 혹은 시대를 반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제가 될지 모를 미래의 독자는 책을 읽기에 앞서 그 책이 언제 일어난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앞으로 부모님에게 효도해야겠다든지, 혼외정사를 하는 사람들을 벌주어야겠다든지 하는 일체의 도덕적 판단을 하게 된다면 그 소설은 실패한 소설입니다. 그 속의 미학적 구조와 진정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게 되었다는 말이니까요.

 그러나 오히려 이 책의 모든 인물은 도덕, 윤리의 축이 아닌 뭔가 다른 저마다의 기준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키가 혼외정사로 아이까지 둔 남편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였다, 라고 합니다만 아키야말로 자기 인생의 패턴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신기한 것은, 아키의 그 노력이 출구를 찾게 되는 것은 오히려 가장 비논리적인 레이코의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서 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학실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깨달은 것은 아니다. 군대로 끌려간 네 아들이 먼 남방에서 차례로 죽어 나간 뒤 곧바로 종전을 맞이하고, 그리고 1년 가까이 지나 나는 쉰 한 살이 되려 하고 있었다. 내 아들들은 왜 서른도 안 되어 죽어야만 했는지를 생각하면서 불탄 들판인 더운 오사카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다가 문득 생각한 것이다. 나는 어쩌면 죽은 아들들과 또 어딘가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만날 것이다. 그것도 내세가 아니라 이 세계에서 다시 귀여운 아들들 중 세 명을 만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비할 데 없는 기쁨이 느껴져 눈물을 흘리고, 비할 데 없는 슬픔도 느껴져 눈물을 흘렸다. 나는 네 개밖에 없는 손가락을 몸빼 바지의 주머니에서 꺼내 햇빛에 비추어 보았다. 나는 내내 서서 그 기분 나쁜 손을 얼마나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나 자신도 오싹해질 만큼 추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그 추함과 무서움의 덩어리 같은 타고난, 네 개밖에 없는 손이 왠지 이 세상에서 다시 한번 아들들과 틀림없이 만날 거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던 것이다. 




 레이코의 할머니는 왼손 손가락이 네 개였습니다. 이 손가락이 네 개라는 것과 전사한 아들들을 다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은 실은 전혀 관계가 없지요. 그러나 할머니는 자신의 손가락 네 개와 전사한 아들 중 셋을 떠올립니다. 자살한 아들인 겐스케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을 테니까, 만날 수 없다는 생각, 그러나 셋은 꼭 만나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어쩌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겐스케를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가여운 아이로 마음속에 품고요. 



 어쩌면, 우리가 살아있는 일은 종종 이상할 만큼 인과관계를 벗어납니다. 아키의 두 남편이 외도한 것은 아키의 행동과 무관한 일입니다. 아리마가 백화점 6층 침구 매장에 발을 들인 것과 아키가 낳은 아이가 아주 아팠던 것에도 아무런 인과관계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키는 필시 누군가와 결혼해도 딴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기는 업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아내려고까지 합니다. 이것은 손에 쥔 카드와 빼앗긴 카드를 비교해보려고 하는 노력이지요. 

 



 자신의 무엇인가가 원인과 결과가 되어 지금에 되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던 아키가 오히려 홀가분해 하는 것, 레이코의 할머니가 아들을 만날 것이라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 아리마가 지도를 펴고 오늘은 어디로 가볼까, 하며 미용실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것.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길가 담장을 따라 웃자란 푸른색 나무의 꽃같던 노랑 잎사귀 같이 느껴졌습니다. 종종 하늘이 높고 푸르거나 낮은 회색빛으로 내려앉으면 어떻게든 흔들리거나 언젠가는 사라질 그 꽃같던 잎사귀. 

 소설 속 아키는 내도록 십년 전의 전남편의 자살 사건을 잊지 못하다가 모든 것을 알게 된 다음 더이상 뒤돌아보지 않게 됩니다. 두 사람이 나누는 편지는 그러므로 긴 터널을 빠져나가려는 사람의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도 같습니다. 빠져나가고 나서야 손에 쥔 것을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터널이, 너무 길거나 짧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인간의 바람이지만 그것조차도 시간의 일이겠지요.




나이프로 자신의 목을 찔러 죽은 세오 유카코 씨. 죽어 있는 자신을 바라보았으면서도 다시 살아 돌아온 당신. 나이 들어 한층 일에 집중하고 있는 쓸쓸한 아버지. 또 하나의 숨겨진 가정을 갖고 그 여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세 살짜리 여자아이의 아버지로서 고심하고 있을 가쓰누마 소이치로. 당신이 고양이에게 먹히는 쥐를 봤던 바로 그 시각에 근처 달리아 화원의 벤치에 앉아 무한한 별들을 바라보았던 저와 기요타카. 우리의 생명이란 얼마나 불가사의한 법칙과 구조를 숨기고 있는 것일까요?

 언제까지 써도 끝에 없습니다. 드디어 펜을 놓을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우주에서, 불가사의한 법칙과 구조를 숨기고 있는 우주에서 당신과 레이코 씨가 앞으로도 쭉 행복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이 편지를 봉투에 넣고 발신인을 쓰고 우표를 붙이고 나면 오랜만에 모차르트의 <39번> 심포니에 귀를 기울이려고 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아무쪼록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그럼 이만 줄입니다.

11월 18일

가쓰누마 아키 올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페 '검은 양조장'카운터에 기대앉아 나는 맥주 한 잔을 마신다. 이봐, 오늘부터 넌 혼자야. 홀로 세상에 맞서야 해. 마음이 안내키더라도 사람들을 보러 나가 즐기고 연기를 해야 할 거야. 이 땅에 발붙이고 있는 동안은 말이야. 오늘부터는 수심에 찬 원들만 소용돌이치는군......전진이 곧 후퇴인 셈이지. 그래, 프로그레수스 아드 오리기넴과 레그레수스아드 푸투룸은 같은 말이야. 너의 뇌는 압축기에 짓이겨진 한꾸러미의 사고에 불과하지.

 햇살을 받고 앉아 맥주를 마시며 카렐 광장은 쉴새없이 오가는 사람들의 무리를 지켜보았다. 젊은 사람들, 젊은이와 학생뿐이다. 그들의 이마에는 모두 별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 삶이 시작되는 순간 저마다의 내면에 싹트는 천재성의 표징이다. 그들의 시선은 힘을 발휘한다. 소장이 나를 바보 천치라고 부르기 전에는 내게서도 샘솟던 힘이다. 나는 난간에 몸을 기댄채 바라본다. 전차들이 돌며 한 방향에서 내려와 다른 방향으로 되올라간다. 그것들의 붉은 줄무늬를 보니 내 마음도 유쾌해진다. 내게는 이제 시간이 있다.




 어떻게 지내는지를 묻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조금씩 아스라해질 때,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빙하가 녹은 물에 세수하고, 짧은 시간 빨리 샤워를 끝내야 하고, 조그만 노트에 그림을 그리거나 수첩에 뭔가를 적으며 신문도 인터넷도 도착하지 않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니, 마침내는 나는 아직도 집에 온 것인지, 여행 중인지가 헛갈렸던 봄날. 인터넷도 안되는 곳에 가져가야 할 책은 얇고 짧고 깊은 것이어야 했다. 깊은 초록빛의 얇은 책, 와주었구나. 



 

밀란 쿤데라, 줄리언 반스, 제임스 우드가 극찬한 책. 페이지를 조용히 천천히, 커피는 진하고 깊게. 밤에는 집에 있을 고양이들을 생각하며 별도 보고 타들어 가는 나무 냄새를 맡으며 곁의 휘파람 소리를 듣던 기억. 삼십오 년째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는 남자와 삼십오 년 남짓 종이 더미를 뒤지는 나의 공통된 기억. 내가 누구이든, 어디에 있던 간에 이름 앞에 숨은 그림자를 캐내는 듯한 목소리.





 폐지를 압축하던 남자, 한탸. 그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 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책 속에서 그는 문장이 천천히 스며들어 그의 뇌와 심장을 적시고, 혈관 깊숙이 모세 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고 고백한다. 책과 글씨가 그 자신이 되고, 그가 흡수한 것이 곧 그 자신이 되는 경지에 오른 글을 좋아하는 남자가 하는 작은 회상. 책 한 줄 읽지 않은 그의 연인, 그러나 누구보다도 멀리 갈 수 있었던 여자. 많이 읽는 것과 깊이 읽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똥스키를 타던 여자는 온몸으로 보여준다. 물 건너간 기품, 절망보다 먼저 터지는 웃음.





나의 만차는 투숙객들이 햇볕에 몸을 그을리고 있는 테라스를 따라 평소처럼 이리저리 오가고 있었다. 사업가 이나의 안목이 정확했다. 그날 만차는 정말이지 멋졌다. 그런데 그녀가 거기에 있던 투숙객 몇 명을 막 지나친 순간 여자들 몇이 돌아보며 웃음을 참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내 쪽으로 다가올수록 여자들의 웃음이 더 자지러졌다. 남자들도 뒤로 벌렁 나자빠지며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열심히 읽는 척하거나 차라리 눈을 감았다. 마침내 만차가 내 곁을 지나가는 순간 나는 보았다. 그녀가 신은 한쪽 스키, 그러니까 발꿈치 바로 뒤쪽에 큼직한 똥이 얹혀 있는 것을. 야로슬라프 브르흘리츠키의 아름다운 시에도 나오는, 문진만큼이나 큰 똥......나는 대번에 이해했다. 만차의 삶에서 이제 제 2막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명예를 지키지 못하고 치욕을 견뎌야 하리라고 예견된 삶이었다. 




 이 똥스키 사건에서 한탸는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으며, 사고하는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생각한다. 폐지를 압축하며 만차를 생각하는 한탸, 밤새 샴페인을 마시며 용서를 빌었건만 결국, 떠난 만차. 그가 압축하기로 한 노자의 도덕경. 

 치욕을 겪고 명예를 지킨다는 내용의 페이지를 압축통 한가운데 놓는다. 바스러지는 종이, 바스러지는 명예, 결국 지금에야 회상하는 삶의 한 토막.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면 페이지를 더 넘기는 것이야말로 읽는 사람의 도리일 것이다.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조금씩 맞추어가는 호흡이 얼마나 황홀한지를 느끼게 해주는 문학적 성취. 책과 나 사이의 적절한 거리, 내 머릿속에 천천히 들어오는 작가의 목소리. 

 책의 각 장은 한탸의 일을 소개하는 짧은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어느 것 하나 같지 않고 조금씩 끝이 맞물려 돌아가서, 보흐밀 흐라발은 글씨와 이야기로 이어지는 작은 푸가를 완성한다. 




 침대에 등을 대고 비스듬히 누워 있는데 아주 작은 생쥐 한 마리가 내 가슴팍 위로 떨어져 미끄러지듯 달아나 몸을 숨겼다. 내 가방이나 외투 호주머니에 두세 마리가 딸려온 게 틀림없었다. 마당에 변기 냄새가 가득 퍼져 있는 것을 보니 곧 비가 퍼붓겠다 싶었다. 술과 노동으로 멍해진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이틀 동안 내 지하실을 청소하며 생쥐들을 희생시킨 참이었다. 그저 책이나 갉아먹고 폐지 더미에 뚫린 구멍 속에 살며 그 작은 둥지 안에서 새끼들을 낳고 키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소박한 짐승들인데. 추운 밤이면 내 품안에서 공처럼 웅크렸던 내 어린 집시 여자처럼 몸을 사린 생쥐들이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절망에 앞서 웃음이 먼저 나오던 만차의 상황이 희비극이라면, 따스한 작은 둥지 속 생쥐를 뒤늦게 걱정하는 한탸의 상황은 부조리극에 가깝다.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지도 않고, 앞에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이 뒤에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아닐까. 그저 작은 둥지 안에서 새끼들을 낳고 키우고, 추우면 따뜻한 품안에 웅크리는 생쥐를 떠올리는 한탸가 보아온 것이 무언이던가. 왕실의 문장이 찍힌 책, 노자의 도덕경, 니체와 사르트르, 카뮈.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코카콜라를 마시며 그리스와 불가리아 휴가를 생각하는 신식 노동자들 앞에서 무너진다. 똥스키 사건으로 만차의 삶이 제2막으로 들어섰다면, 신식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한탸의 삶은 막장으로 들어선다. 갱도의 끝, 더는 갈 곳이 없음을 깨달은 그가 찾는 곳은 그가 평생을 바쳐온 압축기이다. 





 평생을 우체국에서 일하느라 등이 굽고 무릎이 불편한 동료들을 보던 '우체국'의 찰스 부코스키가 그려낸 노동, 접시닦이부터 시작해 그날그날 찾아드는 잡일을 하고 공원 벤치나 구빈원에서 체험한 조지 오웰의 밑바닥. 찰스 부코스키가 그의 노동을 담배 한 개비 후 느껴지는 쓴맛처럼, 조지 오웰이 그의 노동을 걸인의 너덜거리는 신발 밑창처럼 그렸다면 보후밀 흐라발은 한 세계의 종말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늙은 노동자의 회상을 더없이 깊은 명상으로 보여준다. 

 조금의 술 한 잔과 아스라한 모닥불 연기를 쐬고 나면 천천히 다가오는 맑은 새벽. 

 사라져가는 것들이 쌓인 새벽, 무리가 아닌 그 속에 스민 한 사람의 몸냄새가 풍겨오는 밤의 끝.







 여행의 끝, 어둠 속의 집을 보면 조용히 안도감이 든다. 여전히 낱말과 글씨 앞에서 조용해지고 뒷마당의 새들에게 줄 모이를 사게 된다. 꼬리털을 살짝 스치며 지나가는 고양이를 보면 고향의 '새첩다'는 말을 떠올리다 그곳 공기를 생각하기도 한다. 잘 돌아와 반갑다는 인사를 들으며 눈뜨고 잠드는 생활. 한탸의 생활처럼 바깥이 아수라장이어도 여전히 호기심과 품위를 유지하고픈 인간적인 욕망 하나쯤을 품은 생활로 돌아와 다시 한번 책장을 열었다 닫는 봄날에 스치는 시 같은 소설.





...이 작품을 규정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자유나 저항 같은 거창한 단어보다 '연민'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도처에 허무가 널려 있어도 삶은 자체의 생명력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불가항력적이면서 매력적인 것임을 흐라발은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일상의 삶이 신성화되어 예배의 노래 같기도 한, 짧지만 강렬한 이 책을 읽노라면 책을 관통하는 한줄기 바람, 성령이기도 한 숨결에 단숨에 실려가는 느낌이 든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두고 흐라발 자신은 자신의 삶과 작품 전체를 상징하는, 그가 쓴 책들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책이라고 고백했다. 그가 세상에 온 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쓰기 위해서였다고.-역자 후기 중에서.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7-04-10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런게 서재브리핑에 이 글에 대한 리뷰를 쟌님이 썼다고 뜬 순간, 이 분은 좋아했을 것이다! 단번에 생각했어요. 아니나다를까, 별 다섯이네요. 훗.

Jeanne_Hebuterne 2017-04-10 10: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다락방님.
책은 요즈음 많이 읽었는데 리뷰에 많이 소홀했었어요.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라는 보후밀 흐라발의 전작이 참 좋아서 이 책도 기대가 컸는데, 전 이 책이 산문을 가장한 시 같이 느껴졌어요. 한 글자 한 글자를 꾹꾹 눌러 쓰고,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그런데, (제가 너무 똥똥거리나 싶지만) 똥스키 부분은 우습지 않던가요ㅠㅠ 전 우리집 고양이 김칼리의 풍성한 털 탓에 못볼 것을 본 적이 꽤 되어서 꼭 만차 라는 여자친구가 김칼리같더라구요! (아무개 님이나 하이드 님은 나를 이해할 것이야...라고 집사를 끌어들여 보는데, 이건 김칼리만 이런지도ㅠㅠ)
너무나도 귀엽고 우아하게 아아아아?? 하면서 다가오는데 풍성한 꼬리털에 그것을 본 순간..만차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어요..

더군다나 책을 압축통에 늘 넣고, 온갖 책을 다 접하는 남자라니,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고, 그 스스로가 압축통에 들어가게 될 때엔 이렇게 사라지다니, 슬프기도 하고. 보후밀 흐라발은 늘 제겐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자마자 다시 앞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작가였어요. 줄리언 반스가 톱니바퀴처럼 낱말을 딱닥 맞춘다면 흐라발은 돌림노래, 푸가의 울림을 만드는 작가랄까요.

미세먼지 조심하시고, 또 자주 뵈어요^^

mysuvin 2017-04-1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다 그래서 장바구니에 담아놓고...이러다 해를 넘기겠구나 싶을 정도로 뒤로 밀리고 있는데 한 번 도전해 볼까 싶네요. 이렇게 예쁜 리뷰는 오랜만에 읽어봐요~♥ 다른 리뷰들도 천천히 보고 가야겠어요!

Jeanne_Hebuterne 2017-04-19 10:22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mysuvin님!
실은 저 이 책 읽는데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렸어요. 앞에 한 페이지 읽었다가 다시 되돌아가서 또 읽고,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며 또 곱씹고, 뒷장 먼저 쓰윽 훑어보기도 하다보니 책은 얇은데 정말 오래 걸렸어요.
오래, 천천히, 조용히 들여다보아야 하는 얼굴이 있는 것처럼 책들도 그런듯 합니다. 한번에 빨려들게 하고 일체의 거부감도 없이 읽다가 책장을 덮고나면 줄거리가 두번다시 기억나지 않는 종류도 있고, 반대로 계속 나를 튕겨내고, 밀어내고..그러나 책장을 덮고나면 종종 오랫동안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이 책은 후자의 경우에요. 저는 두 경우 모두 우리 삶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벚꽃이 질 즈음에는 이런 느긋한 독서도 좋을 것 같아요.
미세먼지 조심합시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