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는 파티다
탁주호 지음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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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 하루를 살기 위해 말씀의 지도를 받는 것. 바로 큐티이다. 많은 청년과 학생들이 이 큐티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막상 시작을 해 보면 하루 이틀 빼먹거나, 얼마 가지 않아 흐지부지 되는 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큐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목적으로 쓰인 책이다. 저자는 큐티를 하나의 재미있는 파티로 묘사하면서, 초보자들이 큐티의 깊은 맛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몇 가지 단계를 제시하고 설명한다.

 

 

 

. 감상

 

        매우 실천적인 책이다. 초보자들이 큐티를 실제로 하는데 도움을 주는 여러 지침들이 실려 있어서, 책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 그 계단을 밟아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한다. 큐티를 시작하거나, 이미 시작했더라도 큐티에 관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큐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큐티를 지도하려는 사람에게도 좋은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책 자체가 큐티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한다면 교회 등에서 큐티를 가르치고 인도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수준은 그리 어렵지 않아서, 중 고등학생 정도라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일러스트의 재미있는 삽화는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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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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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살해당했소. 과학적인 진실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교회에 의해서 살해되었지.
종교는 항상 과학을 박해했으니까 말이오.”






. 줄거리                                               

        세계 최고의 과학 연구 기관인 CERN의 레오나르도 박사(이름도 뭔가 지시하는 걸까. 다 빈치의 이름은 레오나르도다.)는 ‘반물질’이라는 획기적인 물질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반물질’은 기존에 존재하는 ‘물질’과 온전히 반대되는 물리적, 전기적 성질을 띠는 것으로, 그 자체가 매우 불안정해 ‘물질’과 결합할 경우 매우 큰 에너지를 방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에너지원이다.

        레오나르도 박사는 단지 과학자일 뿐만 아니라 카톨릭 사제였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믿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반물질에 관한 연구는 모든 것이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사건은 그가 잔인하게 살해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살인 사건이 나자 CERN의 소장은 로버트 랭던에게 연락을 취한다. ‘다 빈치 코드’의 주인공인 바로 그 인물이다. 왜 살인 사건이 났는데 경찰이 아닌 기호학 교수에게 연락을 했을까? 이는 레오나르도 박사의 가슴에 화인으로 찍혀 있는 어떤 문장 때문이었다. ‘일루미나티’.

        일루미나티는 중세에 교회의 핍박을 피해 지하로 숨어든 과학자 집단이다. 그들은 교회를 파멸시키기로 맹세를 하고, 각종 모임에 깊이 침투해 그 집단들의 힘을 이용해 교회를 파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것도 벌써 오래 전의 일. 그런데 이미 사라진 줄 알았던 일루미나티의 문장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로버트 랭던은 이 점에 흥미를 느끼고 이 일에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꼬여서, 인근 지역 수 백 m를 단숨에 파괴시킬 수 있는 반물질이 도난을 당하고,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시국(市國)에서는 교황 후보로 알려진 네 명의 추기경들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하나로 묶는 음모 세력의 존재. 기호학자인 랭던은 바티칸 시에 있는 어려 기호들을 추적해, 한 시간 마다 살해되는 추기경들을 살려내고, 바티칸 시국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진 반물질을 찾아내는 중요한 임무를 맡는다.

        내용이 진행될수록 점점 급박하게 나타나는 반전들. 랭던의 도전은 성공할 것인가? 일루미나티는 과연 어떤 단체인가.



. 감상평                                               

        ‘다 빈치 코드’라는 소설로 한 때 서점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댄 브라운의 다른 작품이다. ‘다 빈치 코드’에서 레오나드로 다빈치를 교회에 대항하는 비밀 조직의 우두머리로 만들고,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을 해 자녀들을 낳았고 그 후손이 메로빙거 왕조를 세웠다는 ‘사실’(?)을 ‘폭로’(?)했던 댄 브라운은, 이번 책에서는 베르니니라는 중세의 교회 예술가를 교회를 파괴하기 위한 일루미나티라는 비밀결사 조직의 조직원으로 만든다.


        댄 브라운 작품의 특징은 사실(fact)과 픽션(fiction)을 혼합한 팩션(faction)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소설에 등장하는 각종 장소를 직접 찾아가 보지 못한 대다수의 독자들로서는 ‘그냥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많은 장소들과 작품들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소설이 매우 전문적이며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물론, 이런 기법 자체는 소설가로서 뛰어난 자질 중 하나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면서 사실과는 다른 정보를 사실인 양 믿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설을 읽으며, 그 소설이 사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때문에 ‘소설 한 권이 뭐가 문제냐’는 말이 통할 수 있다. 하지만 댄 브라운은 '자신의 소설이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문구에 담긴 미묘한 어의를 잡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역시나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역시 ‘표면적인 의미’만을 읽어내지 않겠는가? 더구나 앞에 나온 것과 같은 자세한 실제 건축물들과 조각들에 관한 복잡한 역사적 언급까지 나온다면 그 효과는 더욱 클 것이다.

        
상황을 이렇게까지 몰고 왔다면, 저자는 자신의 책의 내용에 책임을 져야 한다. 단순히 ‘소설인데 어쩔 어떠냐’는 식으로 대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는 확인되지 않은 여러 내용들을 사실처럼 제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소설에는 바티칸이 일루미타니를 미워해서 그들을 샤이탄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며, 그 것은 이슬람어로 ‘적’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사탄’이라는 말이 왔다고 주장한다. 전혀 근거가 없는 소리다. ‘사탄’이라는 말은 이미 기원전 수 백 년 전에 기록된 구약 성경에도 등장한다. 히브리어 ‘싸탄’이 그것이다. 이 말은 다시 기원후 1세기에 기록된 신약 성경에도 그리스어 ‘사타나스’라는 표현으로 다시 등장한다. 근데 이 말이 중세에나 등장하는 일루미나티를 비난하기 위해 사용된 말이라고?



        사실 소설 자체는 하나의 탐정소설처럼, 여러 단서들을 토대로 궁극적인 진실에 도달하는 본격추리소설에 가깝다. 사실 ‘다 빈치 코드’가 후반부에 이르면 한 인물의 설명으로 모든 내용을 진행시키는 따분함을 보여주었다면, 그나마 이 소설은 끝까지 그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우려할 만한 부분은, 작가의 종교관이다. ‘다 빈치 코드’에서 교회를 하나의 큰 사기꾼 집단이자, 진실을 감추기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비도덕적 집단으로 매도했던 저자는, 그 보다 앞서 출판된 이 책에서는 매우 자유주의적인 교회관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교회의 가르침’과 ‘정신적, 도덕적 가치’와 동일시하고 있으며, 소설상의 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교회가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런 ‘정신적 가치’를 보존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런 주장은 얼마 전 새로 교황의 자리에 오른 베네딕토 16세가 펴낸 ‘미래의 도전들’에도 등장하는 사상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카톨릭 내에서는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고 이미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공식적인 교리로 확정된 내용들의 조각들이다. 좀 더 멀리 가자면 독일의 철학자 칸트와 그의 후계자들이 수립한 ‘도덕 종교’에까지 그 근원이 올라간다.

        언뜻 교회의 필요성을 매우 강력하게 논증하는 듯한 이러한 주장은, 사실 그 이면에는 교회를 뿌리부터 파괴시키는 위험한 사상이다. 소설에도 약간 등장하듯, 이런 사상을 발전시켜 나갈 경우, 결국 인간의 ‘정신적 가지를 보존하기 위해 꼭 교회여야만 할 필요가 있느냐’는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교회든, 불교이든, 동양의 명상이듯, 결국 인간의 정신세계 발전에 도움만을 주면 되는 것 아니냐, 결국 모든 종교는 다 하나가 아니겠느냐는 주장이 그것이다. 소설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부분에 분명히 주의를 기울이며 비판적으로 책을 읽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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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에게 묻는 20가지 질문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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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해의 즐거움은 세부를 하나하나 추적해가는 데서 생겨납니다.


 

 

 

. 요약 。。。。。。。                             

 

        로마인 이야기가 좀 팔린다 싶자, 출판사에서 낼름 이 인기를 업고 판매부수를 늘려보자는 심산으로 낸 듯한 책이다. 로마인 이야기 8권이 나왔을 때쯤이면, 한창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재미있게 이야기를 쓰고 있을 무렵이니 그럴 만도 하다.


        책의 구성은 제목에 나와 있는 그대로다. ‘로마’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질문들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대답이 주요 내용이다. 저자의 대답은 일반적인 상식과 비슷한 것도 있지만, 전혀 다른 시각에서 나온 대답도 있다. 이 책의 재미는 바로 이런 부분에 있다. 일반적인 상식을 뒤엎는 시오노 나나미의 ‘새로운 상식’.(물론 그 새로운 시각이 얼마큼 타당성이 있느냐의 문제는 제쳐두고 말이다.)



 

. 감상평 。。。。。。。                           

 

        이런 구성으로 이루어진 책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좋은 질문을 하느냐’하는 것이다. 질문의 가치가 높을수록 그에 대한 답변의 가치도 올라갈 테니까. 그리고 이런 질문을 하려면 저자가 써 놓은 책을 미리 잘 읽어봤어야 한다. 그래야 저자가 앞서 써 놓은 책에는 나오지 않는 이면의 이야기나, 그런 서술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등 좀 더 깊은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책에 실려 있는 질문을 한 사람은 앞서 책을 안 읽은 듯 하다. 당연히 ‘매우 일반적인’ 질문들만 하고 있고, 그에 대한 답변은 저자가 앞서 써 놓은 책들(로마인 이야기 1~8권)에 다 나와 있는 것들이다. 시간의 낭비고, 종이의 낭비고, 책을 구입하는 데 들어간 돈의 낭비다.


 

 

        책의 뒷부분에는 ‘로마인 이야기에 등장하는 명언들’과 연대표가 실려 있는데, 그마저 책의 쪽수 늘이기의 일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위 ‘명언들’에는 고대 로마 사람들이 한 말 뿐만 아니라, 시오노 나나미의 명언들, 시오노 나나미의 다른 책들에 등장하는 말들까지 뒤섞여서 나오고, 연대표는 이미 앞서의 책들의 뒷면에도 늘 나오던 것들이다. 한 마디로 말해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인터넷으로 주문할 때 끼어서 주지 않았다면, 내 책장에 꽂히지 않았을 것 같은 책이다.


 

 

        물론 책의 내용이 가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앞의 책들을 다 읽은 사람이라면 굳이 같은 내용을 중복해 볼 필요는 없다는 의미다. 이 책에서도 역시 앞서의 책들에서 볼 수 있는 저자의 뛰어난 통찰력은 그대로 살아있다.(당연하지.. 같은 내용이니까..;;) 다만 저자의 역사관에서 짙게 묻어나는 유물론적 시각은 종종 위험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다르다고나 하나 로마의 ‘제국주의’에 대한 시오노 나나미의 찬양은 최근 우리 나라 안의 친일파 나부랭이들과 일본 극우인물들의 식민지배정당화론과 놀랄 만큼 유사하기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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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5 - 로마 세계의 종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5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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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로마나’가 언제부터 언제까지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수도 로마가 성벽으로 지켜지지 않았던 기간이라고.

  

 

. 요약 。。。。。。。                                                          

 

        드디어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의 마지막 권에 이르렀다. 이번 장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던 로마의 멸망 이야기에 대해 설명한다. 하지만 과연 어떤 장엄한 전투로 로마의 숨이 끊어질 것인가 하는 긴장감을 가지고 책장을 넘긴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실망을 하고 말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런 스펙터클한 그림을 보여줄 생각이 전혀 없으니까.


        목차에서 알 수 있듯 이번 권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는 마치 꺼지기 직전에 확 타오르는 촛불처럼 잠시 부흥했던 스틸리코의 시대, 두 번째는 여러 이민족들의 침입으로 마침내 소리 소문 없이 무너져 버린 서로마 제국, 세 번째는 이후 서로마 제국의 옛 땅을 차지한 이민족들의 지배와 동로마제국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너무나 쉽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렇게 사라져버린 로마제국. 고대 로마 사람들을 사랑하다 못해 동경해 마지않는 저자는, 과연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마지막을 어떤 식으로 설명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읽어보면 재미 있을 것이다.



 

. 감상평 。。。。。。。                                                         

 

        드디어 종말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열다섯 권이라는 적지 않은 권수에, 각 권도 결코 얇지 않은 두께이며, 그 안에 담긴 내용도 엄청난 문헌들을 참고했으니, 이 놀라운 작업을 마친 저자 시오노 나나미 여사에게 우선 박수를 보낸다.

 

        나나미 여사의 책을 보면, 로마는 큰 나무가 잘려 나갈 때처럼 털썩 하고 넘어간 것이 아니라, 마치 무슨 가루처럼 부스러져서 흩어져버린 듯싶다. 때문에 정작 로마가 함락되었을 때도(비단 처음 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 상징적 의미만을 제외하고서는 크게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였다. 저자로서는 천 년을 지탱해 온 로마의 마지막으로서는 그게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앞서 14권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로마에 대한 저자의 서술에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물론 혼란한 시기였기에 사료 자체가 부족했을 테고, 당시의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할 능력 있는 인물도 없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여기에는 좀 다른 이유도 있지 않나 싶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스타의 은퇴를 지켜보는 팬의 심정이 작가에게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최근 몇 권에서는 로마만 활력을 잃은 것이 아니라, 저자 또한 활력을 잃어버렸다.

 

        한편, 이와 반대급부로 저자의 기독교에 대한 증오는 점차 도를 더해가는 모습이다. 난 로마가 꼭 그들이 가지고 있던 악덕이나 도덕적 부패 때문에 멸망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로마 멸망의 책임을 기독교에 뒤집어씌우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본문 가운데는 “목욕을 환영하지 않는 기독교의 보급으로 몸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생활 습관도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에, 야만족이나 강도의 손에 죽지 않아도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서술(85쪽)도 있다. 기독교가 목욕하지 말라고 해서 위생상태가 나빠졌고, 때문에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늘어 인구가 감소했다는 말이다. 솔직히 좀 억지가 아닌가? 어디 그 뿐인가. 로마제국 말기 혼란한 시대상황으로 인해 더 이상 과거 찬란하게 빛났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는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회가 빈민들을 구제하고, 병자들을 수용해 치료하며, 버려진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양육한 것은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그 가치는 충분히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미 기독교 자체를 마음 깊이 거부하고 있는 저자는 이것마저도 ‘독점’이라는 단어로 평가 절하하고, 원래 그 일들은 사람들이 바친 헌금으로 한 것이니 딱히 교회의 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는다.(86-87쪽)

 

        이밖에도 책의 곳곳에 기독교를 언급한 부분에는, 단지 비꼬기 위한 목적뿐인 쓰레기 문장들이 자주 발견된다. ‘왕이 되는 것은 신의 뜻’임을 강조한 기독교 때문에, 큰 업적이나 능력도 없이 단지 혈통으로 제위가 계승되었다는 내용을 말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는 272:18 이하의 문장들이 그런 예이다. 사실 혈통에 의한 황위 계승 원칙을 처음으로 천명한 인물은 시오노 나나미가 그토록 찬양해 마지않는 인물 가운데 하나인 아우구스투스가 아닌가.

 

        이래서는 로마가 변질되고, 쇠퇴하고, 결국 몰락하는 모든 이유는 기독교 때문이라는 식의 말밖에 안 된다. 아무리 사랑하던 로마가 죽어가는 게 속상하더라도, 종로에서 뺨맞고 동대문에서 화풀이 하는 식이다.


 

 

        이런 점들에도 불구하고, 사료들의 행간을 읽어내는 능력이나, 이를 토대로 대화를 만들어내고, 가상의 일들을 구성하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저자의 능력은 훌륭하다.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니 이 시리즈물을 총 정리하자면, 1권은 약간 생소했고, 2권부터 8권까지는 흥미진진했으며, 9권부터 12권까지는 혼란스러웠고, 13권부터 15권까지는 재미가 없었다. 1권을 참고 2권을 손에 들기 시작하면, 로마인 이야기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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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wcspecial77 2007-06-25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제가 볼땐 나나미 여사는 기독교에 대해서 최대한 객관적 시각을 유지할려고 애쓰신 듯 하신데요 물론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느 부분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고찰한 결과를 쓴거지 감정을 실어서 표현한거라고 보이진 않는군요 쓰신 님이 기독교도신가요?? 그럼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쓰레기 문장이 보인다 이런 표현 자체가 님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문체가 아닐런지~ 읽는 이에게 강요하는 어조~
민감한 부분이긴 하지만 저는 나오미 여사의 편(?)을 여기서 들죠 ㅋㅋ

노란가방 2007-06-25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만 보시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지적해주셨으니 저도 '변명'을 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쓰레기 문장'은 굳이 문맥이나 상황상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단지 다른 단체나 사람들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트집을 잡아 비꼬거나 비난하는 문장입니다.
한 두 번이라면 순간적인 감정의 고양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반복적으로 그런 문장이나 말을 사용한다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에 심각한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네요..(그래도 제가 쓴 게 조금 '센' 표현이었던 점은 인정합니다. ^^;)

하얀양말 2007-08-1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인이 기독교인임을 독서평을 통해 누구나가 알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기독교가 아닌 다른 일반 사람들은 나나미씨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특별히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겠죠.

어짜피 사람들이야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종이다보니 뭐가 되었건 특별한 의미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노란가방 2007-08-14 14:36   좋아요 0 | URL
다만 불필요한 반감이나 오해를 조장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누가 불교도나 이슬람교도라고 해서 그가 특별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도덕성이나 판단력에 필연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나나미 여사의 글에서는 너무나 자주 '문제는 다 기독교 탓이다'라는 식의 논지가 등장하니, 그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죠.. ^^;
 
소녀의 눈동자 1939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
한 놀란 지음, 하정희 옮김 / 내인생의책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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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이미 너무나도 많은 것을 뺏겼지만,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은 우리가 내주지 않는 한,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 그들이 뺏어갈 수 없다.

 

 

 

 줄거리 。。。。。。。                                                  

 

        우리나라로 치면 ‘전사모(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쯤 될까? 독일에도 비슷한 단체가 있다. ‘신 나치주의(Neo-Nazism)’가 그것이다. 히틀러의 나치정권을 찬양하고, 그 신조를 오늘날에 다시 되살리려는 시대착오적 집단. 유럽이나 미국 쪽에서는 실제로 유대인들이나 유색인종에 대한 린치, 방화를 비롯한 각종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니, 어지간히 정신에 문제가 있는 놈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힐러리는 바로 그런 신 나치주의 집단에 얼마 전 가입한 소녀다. 사실 뭐 투철한 계급의식이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에 들어간 건 아니었다. 어머니에 대한 반항감으로 인해 밖으로만 돌다가, 브래드라는 역시 약간 불량기 있는 철없는 남자를 만나 빠졌고, 그로 인해 가입하게 된 것이다. 오토바이 뒤에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데서 자유를 느끼고, 브래드와 함께 일탈행위를 하는데서 기쁨을 얻게 된 힐러리. 어느날 일어난 오토바이 사고는 힐러리를 의식불명의 상태로 이끈다.

 

        그렇게 병원에 입원하게 된 힐러리. 자신의 의식은 분명히 있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의식이 깨어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힐러리는 알 수 없는 꿈에 계속 빠져든다. 꿈 속에서 힐러리는 샤나라는 이름의 폴란드 계 유대인 소녀로 변한다. 시대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샤나와 그의 가족은 갖은 고통과 핍박을 받게 되고, 자신이 이유 없이 증오하던 유대인이 된 힐러리는 이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


 

 

 감상평 。。。。。。。                                                 

        알라딘 서평단에 신청했던 것이 당첨되어서 무료로 받게 된 책이다. 아싸.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배경으로 한 유대인들의 고통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전에 읽었던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이라는 책과 매우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점은 주인공의 성별쯤?

 

        물론 두 책에서 좀 더 다른 점도 있었다. 『운명』에서 주인공은 고통이라는 상황 자체가 가져다주는 정화(淨化)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살피고 있는 반면, 『소녀의 눈동자』의 주인공에게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고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것은 말 그대로 불필요한 것에 불과하다.(p. 260) 이 책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부여하는 근거 없는 폭력과 강제를 통해, 반어적으로 인간의 숭고한 가치를 강조하는 듯 하다.


 

 

        이런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저자는 샤나의 경험을 매우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만약 내가 『운명』을 읽지 않고 이 책을 봤다면 이 책의 이런 부분에 높은 점수를 주었겠지만, 사실 상황에 대한 묘사만 보자면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운명』이 좀 더 깊은 사색과 고민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에 담긴 실감나는 묘사는 나치의 반인륜적인 만행을 널리 알리는데 효과적일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이 책의 구성이다. 저자는 힐러리와 샤나라는 두 인물의 교차를 통해 무엇인가 효과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 둘 사이의 유사점이란 소녀라는 점만 빼면 거의 없다. 물론 힐러리가 유대인 소년 하나를 괴롭히고, 꿈 속의 샤나가 유대인이 되었다는 점도 유사점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단지 그것뿐, 내용상의 연결점은 별로 없다. 힐러리와 샤나의 상황 역시 매우 다르다. 힐러리의 문제는 어머니와의 의사소통의 부재이고, 샤나의 문제는 나치에 의한 이유 없는 고난이다. 굳이 이런 구성을 사용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하나, 책의 곳곳에 적어 둔 성경 구절들은 내용 전개에 그다지 녹아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굳이 그런 식의 인용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각 구절들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들이미는 것은 구성상 좋은 방법은 아닌 듯 싶다.


 

 

        주제나 묘사는 좋지만, 구성이 아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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