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도둑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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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말 그대로 깨끗한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느낌이다. ‘수국꽃 정사’의 묘사력이나, ‘나락’에 나오는 사회적 음모에 대한 비판, ‘죽음비용’에 나타나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고찰, ‘히나마츠리’의 감동, ‘장미도둑’의 동심어린 서술... 어느 것 하나 버릴 데가 없을 것 같은 책이다.

        일본 작가가 쓴 책을 몇 권 읽어보기는 했지만, 이 책만큼 감동을 주는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움베르토 에코보다는 덜 냉정하고, 베르나르보다는 문학성이 더 강한 느낌이다.



        단편소설들의 모음집인 이 책은, 각 이야기마다 생각을 해 보게 만드는 작품들이었다. ‘나락’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유능한 인재를 철저하게 망가뜨리고 조롱했는지, 그러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가 남을 밟고 올라가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게 만들고 있으며, ‘죽음비용’을 통해서는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값으로 얼마가 적당할까 하는 생각꺼리를 제공하면서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아름다운 죽음이란 어떤 죽음일까.


        역시 소설에는 문학성이 들어가야 하는가 보다. 그동안 많이 읽었던 역사소설류에서는 잘 느낄 수 없었던 감동이 진하게 배어들어왔다.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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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토노트 1 (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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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미』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이다. 제목인 『타나토노트』는 '죽음'과 '여행자'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를 합쳐서 만든 조어.




     이 소설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시도를 그리고 있다. 일종의 독약을 통해 죽음에 이르게 만든 뒤, 전기충격으로 깨어나게 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임사체험을 시키고,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사후세계의 지도를 완성해 나간다는.. 말만 보자면 허황되기 그지 없는 내용이지만, 베르나르의 다른 작품에서와 마찬가지고 여러가지 철학적인 질문들을 소설 안에서 던지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저자는 여러가지를 소설 안에서 말하고 싶어한다. 절대적인 선과 악의 구분, 이와 연관되어 천국과 지옥에 대한 사색, 인과응보, 숙명론, 영생과 같은 기독교적인 주제들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이는 저자가 무신론자, 적어도 기독교적인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래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서양에서 태어났기에, 기독교적인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베르나르에게서 나타나는 위의 주제들은 온통 뒤죽박죽인 채, 쉽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인간 이성의 가치를 매우 높게 보고 있기에, 이성에 따라 합리적인 삶을 사는 것으로 선을 이룰수 있다는 생각이 엿보이고, 모든 종교는 하나라던가, 종교의 목적은 평화라는 주장까지 보인다.

     근본적으로 하나님, 혹은 절대적인 신의 존재를 배제하고 접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 그 안에서 던지고 있는 여러 질문들에 명쾌한 해결책을 내지 못하고, 언제나 회의주의자와 계몽주의자의 사이에서 왔가갔다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점이 내가 베르나르에게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작가 개인으로써의 베르나르의 소설은 상당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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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
더글라스 에이브람스 지음, 홍성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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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남자들이 전투에서는 용감하지만,

아무런 무기도 갖고 있지 않은 여자들과 맞서는 것은 두려워하죠."

 

 

. 줄거리 。。。。。。。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서양에서는 돈 주앙이라는 인물이 제법 유명하다. 스페인 사람인데, 발음하기에 따라서 돈 후앙, 돈 지오반니 등으로 불리는 바로 그 사람.(모짜르트나 슈트라우스 등의 위대한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이 책의 주인공인 돈 주앙은 카사노바처럼 엄청난 바람둥이로 유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대개의 옛날이야기가 어느 한 편의 완성된 스토리가 아니라 지방마다 서로 다른 버전들이 있는 것처럼, 돈 주앙 이야기도 서로 다른 일화들이 지역마다 다르다고 한다.(앞서 소개한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의 곡들이 서로 다른 것처럼) 이 책의 저자는 그 이야기들을 수집해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 재미있게 재구성해 놓았다.

 

 

     이야기의 배경은 스페인의 세비야. 지금이야 스페인스 수도가 마드리드로 옮겨졌지만, 옛날만 하더라도 큰 항구도시로 유명했던 곳이다. 콜럼부스가 스페인의 여왕에게 자금지원을 받고 배를 띄운 곳이 바로 여기 세비야(세빌리야)다. 돈 주앙은 그 도시에 살면서 많은 여자들과 연애행각을 한다. 세비야에 사는 모든 사람은 그를 알고 있고, 마치 연예인을 훔쳐보기 좋아하는 오늘날 사람들처럼, 사람들은 주앙의 행위 하나하나를 보면서 즐긴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 보게 된 아나 아가씨에게 한 눈에 빠져버린 주앙. 그는 어떻게든 아나의 마음을 얻고자 하지만 생각대로 쉽지만은 않다. 또 그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상황은 더욱 쉽지만은 않게 되었다. 과연 주앙은 아나 아가씨의 사랑을 얻어낼 수 있을까? 작가는 일기라는 형식을 통해(자연히 1인칭 주인공 시점이 된다)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주앙과 한 패가 되도록 만든다. 중세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바람둥이의 순정 이야기가 펼쳐진다.


 


 

. 감상평 。。。。。。。                    

      

      또 책 겉종이에 ‘출간도 되기 전에 세계 유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느니, ‘전 세계 25개국에 판권이 팔렸다’느니 하는 수식어들이 잔뜩 붙어 있는 책이다. 뒤표지에는 각계각층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찬사들이 또한 길게 줄을 서 있다. 출판사에서는 이렇게 하면 책의 가치가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을까? 하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이런 식의 과대포장 된 책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화려하기만 하고 정작 맛이 없는 과일들이 떠올라서 말이다. 그리고 대개 정말로 중요한 사람들은 자신을 숨기지 드러내지 않는다.(대통령이 이동할 때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똑같이 생긴 차 3대가 함께 움직인다고도 하지 않는가.) 아무튼, 이 책에 실려 있는 '무한히 위대한 영도자'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개들 때문에 일단 마이너스 점수를 먹고 들어가는 책이다.

 

     그래도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스페인이라는 매우 독특한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책 속에 잘 재현에 놓았다는 점이다. 일찍부터 로마의 지배 아래 들어가 로마식의 문명 건설이 이루어졌고, 기독교의 로마로의 침투에 발맞추어 기독교화 되었지만, 이슬람 세력의 지배 아래 한 동안 놓이게 되면서 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두 종교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게 되었던 상황. 스페인 사람들만의 독특한 삶의 양식과 태도 등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해야만 제대로 보인다고 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작품 안에 제대로 복원해 놓았고, 때문에 독자는 책을 통해 마치 직접 그 시대 그 장소에 가 있는 것처럼 스페인이라는 독특한 나라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배경적 장치들을 넘어서 직접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상당히 실망스럽다. 우선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에 그다지 많은 개연성이 보이지 않으며, 저자는 그다지 할 말이 없을 때마다 남녀의 잠자리에 대한 묘사를 하기에 바쁘다.(물론 사람들의 행동이 언제나 논리적 추론의 결과는 아니지만.) 또, 책이 애초부터 ‘잃어버린 일기’라는 이름을 갖는다면(요즘 유행하는 ‘팩션’으로 쓰고 싶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책 안에 등장하는 서술을 하는 주인공은 당대의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하지만 종종 ‘지나치게 현대적인’ 생각들이 등장하고, 처음의 장치(‘잃어버린 일기’라는)는 책 안에서 그다지 효용이 없어서 그냥 일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로만 보일 뿐이다.



     스페인이라는 이색적인 배경에, 돈 주앙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뭔가 크게 한 건 터뜨릴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 그에 상당하는 만족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스페인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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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컴 X vs. 마틴 루터 킹 - 다르지만 같은 길 1
제임스 H. 콘 지음, 정철수 옮김 / 갑인공방(갑인미디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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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어떻게 해서 백인들은 기독교도임을 공언하면서도

여전히 흑인들을 노예로 소유하거나 교회와 사회에서 분리시킬 수 있었는가?

이는 흑인 기독교도들에게는 심각한 오류요, 역설이었다.

 
 

. 요약 。。。。。。。                      

 

     제목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책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흑인으로 평생을 동료 흑인들의 권리를 위해 살다 간 두 사람이지만, 제목에도 나타나듯(vs.), 두 사람의 일생은 많은 부분에서 대조적이었다. 이 책은 그들의 삶에 나타난 대조점들을 중심으로 살피면서, 그들의 사상의 중심을 살피고 있다.

 

     이 두 사람을 극명하게 대조시키는 것은 사람들이 그들을 부르는 별명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람들은 마틴을 ‘꿈꾸는 자’라고 불렀고, 맬컴은 ‘사악한 검둥이’라고 불렀다. 1장과 2장은 이 두 사람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룬다. 3장부터 6장까지는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미국 내 흑인운동의 양 갈래의 투쟁을 다룬다. 마틴 루터 킹을 중심으로 한 통합주의자(흑인과 백인의)들과 맬컴 엑스를 중심으로 한 흑인민족주의자들이 그것이다. 필연적으로 마틴은 비폭력을 중심으로 한 투쟁을, 맬컴은 방어를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게 된다.

 

     7장과 8장은 두 사람의 마지막을 그리는 장들이다. 흑인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목적은 같았지만, 서로 다른 방법을 취했던 두 사람. 하지만 의외로 평생 동안 두 사람은 부딪히지 않았다. 오히려 생의 말기에 다다랐을 때 두 사람은 진심으로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게 되었고, 서로의 입장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함께 투쟁을 펼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지만 이런 기대는 두 사람 모두 암살로 급작스럽게 생을 마감하게 되면서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9장은 이제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며, 두 사람이 걸어온 투쟁을 요약하는 장이고, 10장에서는 두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한계를 지적한다. 11장은 이상의 내용을 통해 오늘날 계승해야 할 부분들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 감상평 。。。。。。。                    

 

     처음 생각과는 달리 제법 학술적인 냄새가 풍기는 책이었다. 마틴 루터 킹과 관련된 책은 두 권 정도 읽은 경험이 있지만, 대개 그의 연설이나 설교집이어서 한 인물을 종합적으로 살피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또, 말컴 엑스에 관한 내용도 매우 자극적으로 편집된 어떤 책의 한 챕터를 통해서만 가볍게 접했던 터라, 이 책은 이 두 인물에 대한 나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줄만한 책이었다.

 


     책을 통해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두 사람의 ‘행동’이었다. 둘은 도서관이나 강의실에서만 통하는 이야기만 반복하지 않았으며,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믿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이 말을 한 대로 살았고, 때문에 그들이 갖는 힘은 결코 작지 않을 수 있었다. 또, 철저한 도덕성은 그들이 가진 큰 자산이었다. 누구도 그들을 도덕적 이유로 비난할 수가 없었기에,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과연 어떤 요건들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열매는 없이 잎만 무성한 나무들처럼 말만 하고 행동은 없는, 거기에 도덕적인 결함들까지 엄청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소위 지도층이라는 사람들과 얼마나 비교가 되는가.

     한편 그들의 그러한 삶에 종교적 신념이 끼친 큰 영향도 주목할 만하다. 마틴은 기독교, 맬컴은 이슬람교라는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단지 ‘배경’으로의 역할만을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대하는 자세에 핵심적인 기능을 했다. “하나님이 홀로 모든 것을 다 하시지는 않습니다. 방관하는 교회는 정말 위험한 교회입니다.”라는 마틴의 말은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많은 관심과 그에 뒤따르는 실천들, 그리고 훌륭한 리더가 갖춰야 할 여러 조건들 등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들이라 하겠다. 또,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이분법적인 대결구도가 아니라, 미국 흑인운동이라는 큰 조류 안에 있는 두 흐름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점 등은 이 책이 갖는 독특한 공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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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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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평소에는 편히 앉아 국록만 축내더니

이제 와서는 나라를 망치고 백성마저 속이는구나?”

- 평양에서 도망가는 신하들을 향해 백성들이 한 말



 

. 요약 。。。。。。。                      

 

     징비록. 책 제목이 쉽지 않다. 이 어려운 제목은 ‘지나간 일을 뉘우치고(懲), 훗일을 위해 근신시킨다(毖)’는 뜻을 담고 있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조선의 요직에 있었던 유성룡이 자신의 전쟁 경험을 글로 남긴 책이다.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의 안일한 정부의 대비부터 시작해, 왜적들이 서울을 향해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는데도 물구하고 거의 공황상태에 빠져 아무 것도 해보지 못하고 그저 도망가기 바쁜 선조와 중신들의 생생한 모습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많은 의병들과 충무공 이순신의 활약 등이 책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



. 감상평 。。。。。。。                    

 

     책을 읽는 내내 울분을 토하게 된다. 글줄이나 읽을 줄만 알고 자기 한 몸보신하는 데만 눈이 밝았지 나라나 백성들의 삶은 아예 관심권 밖에 두고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왜 500년이나 지났는데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치욕적인 일을 당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시대의 흐름을 정학하게 읽어내지 못했던 당시 지도층들의 어두운 눈 때문이었다. 당리당략에만 집중하면서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상대 당파를 헐뜯기에만 바빴던 것이다. 실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당연히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중요한 지휘계통의 통일과 지휘권의 독립이라는 기초적인 부분도 확보되지 못했으니 속절없이 왜적들에게 밀린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눈앞의 작은 것만 쳐다보고 있으니, 큰 그림을 볼 수가 없었을 터.
 

     아울러 ‘평시’를 준비하는 데 사용하지 못하고 낭비해버린 것도 큰 피해의 원인이었다. 국방을 위해 군대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데 실패했고, 과거로부터 내려온 것을 그저 고수하려는 완고함은 적절한 시기에 무기의 개량과 군편제의 개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자연히 전쟁에 임하는 조선의 자세는 시종일관 임기웅변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끌려 다니는 형국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또, 유성룡은 알지 못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현상은 임진왜란 이전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왜란 당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자기가 속한 당파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이익까지도 제쳐두었던 그들은, 이후 남인과 북인, 소북과 대북, 노론과 소론 등으로 나뉘어 그 끊임없는 싸움을 계속하지 않았던가.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 그 때와 오늘의 가장 큰 차이는, 나라의 지도자들을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뽑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때문에 당시 국가가 처한 어려움에 있어서 백성들은 책임을 면할 수 있었다. 그저 지배층들의 무능력 탓이라고 마음껏 비난하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의 국가가 처한 어려움에서 국민들은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무능한 지도자들을 뽑은 것은 무능한 국민들이니 말이다.

     허구한 날 욕설과 비방만 해대는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텔레비전의 화면과 이 책의 내용이 오버랩되면서 갑자기 나라 걱정을 해보게 된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좋은 옛 것을 배워 오늘에 맞춰 사용하고(溫故知新), 실패한 과거를 경계로 삼아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것이다(他山之石). 올해 말의 대선, 그리고 내년에 있을 총선,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사를 아는 멋진 국민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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