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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밥벌이 - 하루 한 시간이면 충분한
곤도 고타로 지음, 권일영 옮김, 우석훈 해제, 하완 그림 / 쌤앤파커스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하완 작가님 그림 덕분에 이 책에 관심이 가서 읽게 되었어요!
《최소한의 밥벌이》의 저자 곤도 고타로는 32년차 아사히신문의 기자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일을 하다가 문득 ‘회사와 사회에 휘둘리는 삶을 살기 싫다’며 대뜸 아무도 가고 싶어하지 않는 지방 발령을 신청해요. 아침에 1시간만 농사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글쓰기를 하겠다면서요.
■ p77 : “곤도 선배, 지난번 그 이야기 말이야, 잘 풀릴 것 같아. 선배가 바라는 쪽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 그러니 좀 더 자세한 기획서를 만들어줘.”
뭐? 정말이야? 농담도 통하지 않는 건가? 내가 농사꾼이 돼? 그게 가능할 리 없잖아?
결국, 그는 정말 시골로 가게 되었습니다. 요즘 신문 기자들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며 고급 차를 타지 말라는 후배의 말에 차에 큰 관심 없던 곤도 고타로는 중고 포르쉐를 단번에 구매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확 튀는 자신의 패션도 버리지 못했죠.
■ p129 : 앞에서도 살짝 언급했지만 ‘알로하셔츠를 입고 모내기’ 정도가 아니다. ‘포르쉐를 끌고 모내기’도 있다. 논에 나갈 때는 포르쉐를 몰고 갈 작정이었다. 이런 허세에 독자들이 등을 돌릴지도 모르겠다. 아, 잠깐만. 잠깐 기다려주시라. 내 말을 좀 더 들어보시라.
시골에서 좋은 스승님을 만난 곤도 고타로는 스승님의 도움과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농사일을 하나 둘씩 알아갑니다. 이 책에는 곤도 고타로가 땅을 얻는 것부터 자신이 직접 수확한 쌀로 밥을 지어 먹는 일까지, 사회와 역사 이야기 그리고 농사 일기를 넘나들면서 그려져 있어요. 농사일은 1도 몰랐던 그가 하는 당당한 행동과 말이 너무 웃겨서 지하철에서 읽으며 몇 번이나 현웃이 터질 뻔했습니다.
■ p154 : 농협은행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장화에 뉴욕메츠 모자, 진흙투성이 알로하셔츠를 걸친 얼터너티브 농부의 평소 패션 그대로다. 불안해서인지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가 커졌다.
“볏모! 6개 주세요!”
■ p318 : 밀레가 그린 명화 <이삭 줍는 사람들>에서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노동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자신의 농사 일기만 적어 놓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앞서 말씀 드렸듯이 기자라서 그런지 일본 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중간중간 꽤 많이 적혀 있더라구요. 일본 사회나 우리나라 사회나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서 씁쓸한 느낌도 들었답니다.
책 초반 읽었을 때는 곤도 고타로가 정말 대책 없이, 터무니없이 일을 저지른 것 같아서 고개를 절레절레 했었는데,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할수록 오히려 ‘그가 어쩌면 현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이렇게 멋지게 하고 있다니! 그의 실행력과 마인드를 본받고 싶어졌어요.
■ p309 :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 이게 아니면 삶의 의미가 없는, 자기 인생을 걸 만한 일을 찾아내라. 그리고 그것에 달라붙어 물어뜯다 쓰러져라.
《최소한의 밥벌이》는 단순히 웃긴 자기계발서만은 아닙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정말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사회를 꼬집는 것 같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히 돈만 있으면 거의 원하는 걸 다 얻을 수 있고,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곤도 고타로가 농사일을 하는 곳에서는 돈 쓸 일이 없어요. 주변 분들 덕분에 상부상조하면서 살아가고 있거든요. 만약 곤도 고타로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지방에도 자본주의가 강하게 들이닥치겠죠. 당연한 세상의 흐름이지만 씁쓸함은 감출 수가 없네요.
사실 이 책 읽기 전에 하완 작가님 만화가 있다 그래서 중간중간에 그림도 그려져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약간 아쉬웠어요. 물론 곤도 고타로의 글이 재밌긴 했지만, 그래도 그림이나 실제 사진이 살짝 있었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이 책이 2015년에 나온 것 같은데, 그 당시 근황이 책의 마지막에 적혀 있습니다. 그로부터 또 몇 년이 흘렀는데, 곤도 고타로의 현재 근황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농사일이 써진 책은 처음 읽어보는데, 곤도 고타로의 필력 덕분인지 그의 성격 덕분인지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가볍게 한 번 읽어보세요.